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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에 도전하는 교회의 학습혁명
    2002-03-12 22:43:38   read : 2656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들어가는 말

    인터넷 열풍

    우리가 경험하는 현대 사회의 변화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조목조목 모든 분야를 이야기 할 필요가 없이 인터넷만 이야기해도 될 것 같다. 한국 인터넷 정보센터(http://start.nic.or. kr)의 인터넷 관련 통계와 분석 글을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보자.
    20세기말과 21세기 초는 인터넷의 시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인터넷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라디오의 보급이 5,000만 가구에 이르는 데 약 38년이 걸렸고, 텔레비전은 13년, 케이블TV는 약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한편 인터넷은 1994년 23살의 마크 안드레센이 웹브라우저를 세상에 내놓은 이후 5,000만 가구에 도달하는데 겨우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실로 그 어떠한 매체도 이루지 못한 엄청난 확산 속도이다. 이제 인터넷은 그냥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니라, 전 세계를 시장으로 하여 물건이 거래되고 사용자를 대상으로 광고가 실시되는 거대한 지구촌 공동체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과연 인터넷은 과거보다 얼마나 발전했을까.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을까.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와 광고시장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향후 인터넷은 얼마나 발전할 것인가 등 많은 질문들에 대해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호스트 컴퓨터 수는 1969년 ARPANET의 4대에서 출발하여 1996년에 10,000,000대, 1997년에 20,000,000를 넘어 2000년 초에 드디어 70,000,000대를 돌파하는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7천만대의 초대형 정보 도서관이 그물 망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국내의 경우 1993년말에 7,650대에 불과하던 Host의 수가 매년 성장하여 1999년 8월에는 460,974대에 이르는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인터넷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서는 '도메인'이라는 인터넷 주소가 필요하다. 즉 도메인네임이란 인터넷에서 각 웹사이트들의 주소를 지칭하는 말로 세계적으로는 Inter Nic(현재는 Internet Software Consortium에서 총괄함)에서 이를 총괄 관리하고 있고, 국내는 한국인터넷정보센터에서 관리하고 있다. 도메인 네임은 1989년에는 3,900개에 불과하던 것이 1995년을 전후해서 급격하게 증가 1997년에는 백만 개를 돌파하였다. 이후 Internet Software Consortium에서 호스트 수에 근거한 새로운 도메인 조사방법을 적용한 바에 따르면, 2000년 초에는 이미 7천만 개를 돌파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인터넷이 가장 번창하고 있는 곳은 단연 미국이다. 인터넷의 신화라 할 수 있는 야후와 익사이트, 알타비스타, 인포시크와 같은 대형 검색엔진은 물론이고 아마존, 델, 이베이(eBay)등 성공적인 인터넷 기업 거의 대부분이 미국에 있다. 인터넷 인구 역시 전 세계 인터넷 인구 중 미국이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여 1999년 Computer Industry Almantec의 조사 결과를 보면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수중에서 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42.79%에 달한다.

    [1999년도 인터넷 사용자수 상위 15개국] 순위 국가 인터넷사용자(백만) 비율(%)
    1 미국 110.83 /42.79 %
    2 일본 18.16 /7.01 %
    3 영국 13.98 /5.40 %
    4 캐나다 13.28 /5.13 %
    5 독일 12.29 /4.75 %
    6 호주 6.84 /2.64 %
    7 브라질 6.79 /2.62 %
    8 중국 6.31 /2.44 %
    9 프랑스 5.70 /2.20 %
    10 대한민국 5.69 /2.20 %
    11 대만 4.79 /1.85 %
    12 이탈리아 4.75 /1.83 %
    13 스웨덴 3.95 /1.53 %
    14 네델란드 2.93 /1.13 %
    15 스페인 1.91 /1.12 %
    Top 15 국가 219.20 /84.63 %
    전세계 259 100.0
    <자료원 : Computer Industry Almanac Inc (1999) >

    위의 통계로 보면 전 세계 인터넷 인구 중 상위 15개국이 전체 인터넷 인구의 84.63%나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인터넷이 아직 소수 선진국들만의 잔치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미국 다음으로 일본, 영국, 캐나다, 독일 등이 뒤따르고 있으나 규모 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시아권에서는 일본, 중국, 우리나라, 대만이 상위에 속해 있다.
    이외에도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아래의 인터넷 인구 밀도에 대한 통계이다. 아래의 통계를 한번 살펴보라. 이 통계는 1998년도를 기준으로 인터넷 사용자들의 인터넷 인구밀도를 조사한 것이다. 인터넷의 절대적인 인구는 미국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인구 천 명당 인터넷 사용자수를 보면 아이스랜드,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이 오히려 미국을 앞서고 있다. 아일랜드의 경우에는 전체 인구의 약32%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인터넷 사용자의 평균 연령은 37.6세로 조사되었는데 이는 94년도 조사된 평균 연령인 30세보다 상당히 높아진 것이다. 연령층의 분포를 보면 26세에서 30세까지의 비율이 16.1%로 가장 높았으며, 다음으로 31세에서 35세까지가 13.6%, 21세에서 25세가 12.5%로 조사되었다. 인터넷을 사용자는 주 연령층은 26세에서 30세까지로 아직 젊은 계층이 인터넷 사용의 중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40세 이상의 사용자 비율이 40.4%나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보면 인터넷은 이제 어느 정도 저변 확대를 이루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는 인터넷의 놀라운 성장 추세에 기가 질리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은 21세기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고 있는 주체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우리는 거부하든지 수용하든지 아니면 리드하든지 반응을 보여야만 한다.

    허풍떠는 인터넷
    1995년 인터넷이 한 창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을 때 클리프 스톨은 "Silicon Snake Oil"(허풍떠는 인터넷, 세종서적, 1996)이라는 책을 써냈는데 이 책은 1995년도 비즈니스 위크가 선정한 최우수 도서가 되었다. 클리프 스톨은 인터넷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한계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글을 쓴 시점으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인터넷의 폭발적 성장에 대해서 과소평가 했다는 느낌이 있지만 몇 가지 비판은 귀를 기울일 만 한 것이다. 첫째 문제의 본질은 인터넷이 발달하여 빠르게 정보를 주고받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매체가 우리 삶의 방식에 끼치는 영향에 있다. 즉 "간단히 말해서 인간의 의사 소통 매체는 인간이 자기 생각을 체계화하는 방법을 변화시킨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컴퓨터를 프로그램 하지만 컴퓨터는 사람을 프로그램 한다."(68쪽) 스톨이 염려하는 것은 인터넷의 기본적인 방향성에 관한 것이다. 인터넷이 추구하는 것은 지식의 깊이가 아니라 정보 사용의 편리성이다. 편리한 것이 지식의 질이나 생각의 깊이, 그리고 창조성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 지속적으로 가치 있는 지식을 생산해 내지 않는다면 초고속 정보 고속도로에는 음란물이나 깊이가 결여된 쓰레기더미들만 유통될 것이다.
    두 번째 그가 지적하는 문제점은 디지털 신호로 이루어진 인터넷의 본질적인 한계이다. 퍼지나 인공지능이 연구되고 있기는 하지만 당분간 컴퓨터는 0과 1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2진법의 패러다임 한계 안에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해도 책이나 도서관 시스템을 대체하지 못한다. 책은 아날로그 패러다임을 근거로 제작되어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디지털 신호로 된 자료에는 독자가 마음대로 줄을 긋거나 중요한 것을 메모할 수가 없다. 그림이나 도표, 심볼을 그려 넣는 것은 더욱 불편한 일이다. 현대 도서관은 인덱스 시스템을 컴퓨터 검색기능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는데 빠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디지털 신호로 바뀐 검색 기능은 예전에 카드를 뒤적이다가 우연히 더 중요한 자료를 발견하게되는 길은 완전히 막아 놓는다. 디지털은 예와 아니오 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신호의 문제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그것이 반드시 전기를 필요요 한다는 불편이 있다. 필자도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지만 축전지는 채 2시간을 견뎌 주지 못한다. 자료 검색의 편리함은 있지만 컴퓨터를 부팅하고 자료를 읽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자료를 읽어들이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만 한다. 아직은 디지털 매체가 책의 기동성과 편이성, 그리고 보존성을 좇아가지 못하는 점이 있다. 스톨이 지적하는 세 번째 인터넷 문화의 문제점은 역사의 단절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소장하고 있는 모든 정보들을 완벽하게 디지털 신호로 바꾸어 놓지 않는다면 디지털 이전의 아날로그 식 자료들에 접근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차단이 된다. 그렇다고 모든 자료를 스캔해서 자료화하는 것은 너무나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다. 설사 그렇게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아날로그 식 자료가 완벽하게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지는 않는다. 책은 그 형태와 디자인에서 이미 저자와 출판사의 고유한 창의성이 반영되어 있다. 이처럼 스톨은 인터넷을 한계점을 지적하지만 그가 반 문명주의를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의 허풍스런 면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확실히 인터넷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우리 삶 속으로 들어와 있다. 그러나 인터넷만 잘 하면 마치 모든 인간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확실히 과장된 신념이다. 인터넷이 정보를 유통시키는데 탁월한 매체이기는 하지만 정보를 생산하는 주체는 창조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정보화라는 관점에서 20세기까지를 노하우(know-how)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노-훼어(know-where)시대하고 한다. 즉 인터넷을 통해서 모든 정보들이 공개되기 때문에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를 빠른 속도로 찾아내는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한가지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노-훼어의 능력이 있다고 해서 노하우를 더 이상 생산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군가 노하우를 생산하여 자료화하기 때문에 인터넷이 쓸모 있는 도구이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점은 정보의 양이 폭증하는 것이 정보의 질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보가 한 눈에 검색할 만큼 소량일 때는 무엇이 가치 있는 정보인지 가려내는데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요구하는 종류의 정보가 수만 건 수천 만 건 검색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실제로 야후 코리아(http://www.yahoo.co.kr)에 접속하여 '컴퓨터'라는 주제어로 검색해 보면 3256개의 항목이 검색된다. 만약 그 열 배 혹은 백 배의 항목이 검색된다면? 홍수가 나면 가장 귀한 것은 먹을 수 있는 식수이듯이 정보의 양이 폭증하는 것이 지식의 질이나 삶의 질을 반드시 높여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인터넷으로 연결된 사이버 공간에서 참으로 필요한 능력은 이제 노-훼어가 아닌 노-훳(know-what), 즉 무엇이 가치 있는 정보인가를 분별하는 능력이 될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기술이나 방법의 문제가 아니요 가치관의 문제이며 결국 노-훹(know-what)의 문제로 귀결된다. "왜 특정한 정보가 가치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요 철학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인터넷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의 가치관과 정체성, 그리고 신앙을 대신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 자체가 창의적인 인간의 능력을 대체할 수 없는 것이 명백한 일이다.

    1. 왜 독서지도인가?

    변화의 요구에 직면한 교회교육

    지금 한국 교회의 현실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되는 속도를 좇아가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물리적인 환경면에서 그렇다. 학교는 빠르게 학습 공간이 바뀌어 가고 있다. 초등학교 교실을 들어가 보자. 교실 앞에는 대형 스크린이 장착되어 있고 실물 투영기와 비디오, 프로젝터는 기본이다. 그것들은 초고속 인터넷과 연결되어 있어 음악과 영상자료를 굳이 시디롬이나 하드에 보관하지 않고도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바로 보여줄 수 있다. 선생님들은 기본적으로 노트북 한 대는 가지고 있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교회는 어떤가?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분반공부 시간에 입만 가지고 때우는(?) 교사들이 태반이다. 고성능 멀티 미디어에 길들여져 있는 아이들이 입만 가지고 수업을 공과를 가르치려는 교사의 말에 집중할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교회가 학교같이 멀티 미디어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춘다는 것은 몇 몇 대형 교회를 빼놓고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뚜렷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분반공부 시간을 때우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교회교육은 분명히 변화되기를 요구받고 있다. 변화에 적응하든지 아니면 변화를 거부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변화를 리드하든지 선택해야만 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이것이든지 저것이든지 선택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면 선택할 바에야 최상의 것을 선택하자. 최상의 것을 선택한 다음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차선의 것이라도 수확을 거둘 수 있지만 애초부터 차선이나 차차선을 선택한 다면 결코 최상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다. 가장 높은 목표로부터 시작하는 것을 스티븐 K. 스코트(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의 15가지 습관, 정보나라. 2000)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달을 향해 발사하는" 것으로 비유한다. 달을 향해 발사하는 것은, 6미터 담 위에 목표를 설정하고, 고결한 목표를 이루는데 실패했을 경우에 시선을 낮추는 것이다. 즉, 쉽게 이룰 수 잇는 목표인 아래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시작해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다. 초고속으로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 대하여 교회 교육이 취할 수 있는 최선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고 변화를 주도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 땅에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좇아가는 것 가체가 목적일 수 없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고 선교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변화에 대처하는 교회의 교육은 필연코 훌륭한 사람, 이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변화를 창조적으로 올바로 주도해갈 그런 인물을 키워내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고속도를 잘 닦아 놓는다고 저절로 생산적이고 바람직한 차들만 다니는 것은 아니다. 초고속 정보 통신망이 세계를 거미줄처럼 뒤덮는다고 삶의 질이 저절로 나아지는 것도 지식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도, 하나님의 나라가 저절로 임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고속도를 인류를 위해 가치 있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지 않는 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21세기에 교회를 통하여 인류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정보화 사회에 바른 가치관과 방향을 제시할 그런 인물들이 일어나기를 꿈꾼다. 구태의연한 교육 방법으로는 그 일이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인물을 기를 것인가?



    독서의 의미와 교회교육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훌륭한 인물을 길러내는 데 있어서 탁월한 학습방법은 읽기 교육이다. 나는 여기서 굳이 "독서교육"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읽기 교육"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독서란, 글자 속에 담긴 사상과 사건과 원리를 끄집어내서 나의 정신과 삶에 담는 행위이다. 글자 속에 담긴 인생, 사건, 원리를 우리의 지성 속에 운반하여 내 삶의 영양분으로 활용하는 것이 책 읽기의 예술이다(장경철, 책 읽기의 즐거운 혁명, 두란노). 그런데 읽기는 독서보다 훨씬 포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읽기는 물론 책읽기가 기본이지만 읽기는 여기서 멈추어서는 독서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읽기는 책을 넘어서 저자를 읽어내고, 역사책을 넘어서 역사를 읽어내는 능력, 그리고 이 사회와 자신의 하나님의 뜻을 읽어내는 능력으로 확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읽기의 핵심은 주제를 파악하는 능력이다. 책을 읽었으면 그 책을 통해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하고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았으면 그것을 통해 감독이 그것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을 꿰뚫을 수 있어야 하며 성경을 읽었으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발견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읽기 위해서는 반드시 질문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장경철,2000). 중요한 질문은 가치 있는 해답을 얻는 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 현대 사회에 특히 요구되는 것은 우리의 읽기 능력이 멀티미어를 읽기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가! 멀티미디어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 우리는 텔레비전이나 영화의 노예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장경철 교수에 의하면 일기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유통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정보를 오감으로 수집하여 분류하여 정리하고 그것을 마음속에서 곰 삭힌 다음에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수용한 정보를 단순히 컴퓨터처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가공하여 재생산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읽기 교육은 단순히 많은 정보를 학생들에게 집어넣는 작업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사고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읽기가 얼마나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인간의 활동인지 천경록과 이재승이 인용한 글을 재인용해 본다(천경록 이재승, 읽기 교육의 이해,우리교육).

    첫째, 읽기는 사회적 과정이다. 자신에 대한 신뢰성이나 사회적 수용성이 풍부하고, 집단 내에서 협동심이 있으면 읽기를 잘 하게된다. 반대로 편견이나 갈등, 가정 문제나 이중 언어의 사용, 가정과 학교 사이의 문화적 충돌 등은 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둘째, 읽기는 심리적 과정이다. 독자가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문제는 모두 읽기의 과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감정적인 안정성이나 자기 중심과 사회성 사이의 균형이 이루어져 있으면 읽기는 보다 편안하게 이루어진다. 반동이나 합리화, 억압, 습관 등의 심리적 요인들이 모두 읽기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이렇듯 독자의 심리 상태가 읽기에 영향을 미친다.
    셋째, 읽기는 생리적 과정이다. 독자가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줄 한 줄씩 집중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읽기를 하는 데에는 청각적인 예민함이나 언어적 표현력, 눈동자를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넷째, 읽기는 지각적 과정이다. 읽기를 하는 데에는 청각적인 예민함이나 언어적 표현력, 눈동자를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다섯째, 읽기는 언어적 과정이다. 읽기 행위에는 형태와 소리와의 관계, 억양이나 강세, 쉼, 어조 등을 지각할 수 있는 요소가 작용한다. 또한 은유적인 언어나 사투리, 관용적 표현 등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 읽기는 지적인 과정이다. 독자는 읽기를 하기 위해서는 단어에 대한 지식, 기억, 비판적 판단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Zintz&Maggart, 1986)

    결국 읽기는 글과 독자가 만나는 과정에서 독자가 자신의 배경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의미를 구성하는 행위로서 여기에서는 사고적, 언어적, 정서적, 신체적, 그리고 사회적(관계적)인 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고도로 역동적인 인지적 행위라는 것이다.
    읽기 교육은 이처럼 포괄적이지만 그것의 핵심은 역시 "독서교육"이다. 독서 교육은 책을 통한 읽기의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통한 읽기 교육의 최대의 장점은 책이라는 매체가 수용자 중심이라는 점이다. 비디오나 텔레비전 같은 영상매체들은 고도로 훈련되지 않으면 그것을 보면서 비판하거나 메모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어렵다. 그러나 책은 독자의 독서 연령에 맞게 속도를 조정할 수 있으며 띄엄띄엄 읽거나 한눈에 구조를 파악하기(점검독서), 메시지 전체의 구조를 파악하고 비평하기(분석독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기(종합독서)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책에다 밑줄을 긋거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덧붙이고 요약하고 메모할 수 있다. 그러다 졸리면 누워서 볼 수도 있고 얼굴에 덮고 달콤한 낮잠을 잘 수도 있다. 그렇게 손때 뭍은 자신의 책을 들고 나와 그룹으로 독서 토론을 벌일 수 있고 다 읽은 책은 꼽아 두었다고 필요할 때 다시 참고할 할 수 있다. 책은 완벽하게 독자 중심의 매체인 것이다. 디지털 매체가 탁월하게 발달하여 책의 이러한 아날로그 적 특성을 모두 흉내 낼 수 있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못하다면 책은 여전히 읽기 교육의 핵심적인 매체로 자신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킬 것이다. 칼라 텔레비전이 나왔을 때 어떤 사람들은 라디오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예언은 정확하게 빗나가고 말았다. 오늘날 라디오는 자동차에 부착되어 운전자의 필수품처럼 되었다. 라디오를 달고 다니는 운전자는 많아도 텔레비전을 자동차에 달고 다니는 운전자는 찾아보기도 힘들다. 비슷하게 엘빈 토플로는 그의 미래학 저서들에서 컴퓨터의 발달로 사무실에서 종이가 없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정확하게 틀렸음이 판명되었다. 인쇄매체는 오히려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더욱 고급화되고 함께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통한 읽기 교육은 사람들에게 창조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다. 따라서 미래의 문명을 주도할 인재를 길러내고자 하는 교회교육에서 독서교육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2. 틈새 시장을 노려라
    시장에는 틈새 시장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사는 도시에도 동네에도 초대형 백화점과 슈퍼마켓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아파트 바로 앞의 가게는 문을 닫지 않고 계속 장사를 그런 대로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대형 상점들이 가격도 싸고 물건도 많고 심지어 아파트 문 앞에까지 시간마다 버스를 돌리는데도 말이다. 그 비결은 틈새시장에 있다. 사람들이 면도날 하나, 콜라 한 병 사려고 백화점에 가지는 않는다. 밤 한시까지 문을 열고 꼭 두 새벽에 물건을 살 수 있는 곳도 동네 슈퍼뿐이다. 만약 동네 슈퍼에서 내가 필요한 물건이 언제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전화를 해준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원리를 적용해 볼 수 있다. 교회가 정부가 지원하는 학교나 기업 차원에서 지원하는 사회교육의 하드웨어를 능가한다는 것은 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더구나 한국에 수많은 교회가 있다고 하지만 내가 알기에 70% 이상이 중소형 교회임을 가만할 때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학교 교육이나 사회 교육 기관이 해내지 못하는 어떤 틈새가 있을까?

    틈새 1// 영유아기의 영재 교육

    어떤 장군이 거대한 함대를 지휘하여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항해 중 밤이 되었는데 저쪽 편에서 불빛이 보였다. 함장은 즉시 상대방에게 신호를 보내도록 했다. "여기는 군함! 당신들과 충돌할 수 있으니 빨리 방향을 바꾸기 바람" 저쪽에서도 신호가 왔다. "당신들이 방향을 바꾸기 바람" "무슨 소린가. 여기는 OOO 함대다. 우리는 너무 거대해서 쉽게 방향을 바꿀 수 없으니 당신들이 속히 방향을 바꾸기 바란다." "당신들이 방향을 바꾸기 바람. 왜냐하면 여기는 등대임!"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일곱가지 습관"이라는 책에서 패러다임 전환을 설명하면서 예로든 이야기이다. 요즈음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에서 대단히 빈번하게 쓰이는 말이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본래는 자연과학을 하는 과학자들이 객관적으로 사물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간에 공유된 시대적 인식의 틀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말이었으나 지금은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로서 보편화된 용어가 되었다. 패러다임은 안경과 같은 것이다. 파란 안경을 끼면 온통 세상이 파랗게 보이고 노란 안경을 쓰면 온통 노랗게 보이듯이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데는 투명하게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인식의 틀, 즉 패러다임을 가지고 본다는 것이다. 때문에 패러다임은 사물을 보고 해석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창문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우리 인식의 제약이 되기도 한다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패러다임이 세계관보다 더 원초적인 것은 그것이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것이 잘 인식되지 않는 다는 점과 한 시대, 한 문화를 걸쳐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영유아기 독서지도를 이야기하면서 패러다임을 말하는 것은 그동안 우리 부모들이 영유아에 대한 잘못된 패러다임을 지니고 있었음을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글렌 도만 박사의 조용한 혁명 시리즈 책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부모들 아니 현재에도 대부분의 부모들이 영유아를 보는 시각은 '아직 미숙한 어른'정도 일 것이다. 이 말은 영유아를 영유아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성인이라는 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뇌장애아 치료에 평생을 헌신해 온 글렌 도만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적어도 토미라는 중증 뇌장애아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그에게 극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난 만남이 있었다. 그의 환자 중에서 겨우 5세 밖에 되지 않은 중증 뇌장애아인 토미가 그보다 두 배나 나이가 많은 보통 아이보다도 글자를 더 잘 읽을 수 있었고, 나아가 뜻을 완전히 알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45쪽). 토미로 인해서 그는 중증 뇌 장애아도 어려부터 읽기를 가르치면 보통아이보다 더 잘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읽기를 배우는 것이 치료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읽기를 치료의 관점에서 머물지 않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는 점이다.
    "선천적으로 뇌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적절한 방법으로 읽기를 가르치면 오히려 비 장애아 보다 탁월하게 잘 읽을 수 있게된다면 비 장애아를 지도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그의 질문은 정당한 것이었고 영유아기 아이들과 성인들은 배우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장애아 든 비장애아 든지 간에 적절한 방법으로 가르치기만 한다면 아기와 부모 모두 행복하게 학습하는 법을 개발해 낸 것이다. 그는 지금도 펜실바니아에 인간잠재능력 개발 센타를 세워 아이들의 재능을 개발하는 법을 수십 년 간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영유아들은 어떻게 배우며 어떻게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읽기를 그것도 아이와 부모가 모두 행복하게 배울 수 있는지 글렌 도만 박사의 탁월한 책 "아기에게 읽기를 가르치는 방법"(민지사)에 근거하여 설명해 보려고 한다.

    학습자로서의 영유아에 대한 이해

    1)재능채감의 법칙: 영유아기 아이들은 어른들과 전해 배우는 방법이 다른데 이는 그들의 뇌의 발육 과정과 관련이 있다. 영유아기 아이들의 뇌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서 8세까지 그 구조가 완성된다. 따라서 막 태어나서 8세까지는 신비한 능력이 있는데 나이가
    어릴수록 탁월한 학습능력이 있는데 이를 재능체감의 법칙이라고 한다(참고: 시찌다 마꼬도, 엄마 나를 천재로 길러주세요, 민지사). 이 시기에는 사물을 사진으로 찍어서 정보를 저장하기 때문에 글자를 가르칠 때 그 것이 충분히 크기만 하면 기억하는데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8세가 지나면 이런 신기한 능력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시기는 오감으로 학습한다. 그러므로 다양하고 양질의 경험이 필수 적이다. 이시기의 아기들에게 적절한 방법으로 읽기뿐만 아니라 수학과 바이올린 수영과 같은 스포츠를 쉽게 가르칠 수 있다. 언어의 경우 5개 국어도 무리 없이 소화해 낼 수 있다. 실제로 모든 아이는 틀림없는 천재이다. 어떤 성인이 영어나 한국어를 불과 몇 년만에 마스터 할 수 있는가?
    2)행복한 학습자: 실제로 아기들은 배우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있으며 배울 수 있고 배우고 있으며 또한 배워야만한다(47-111쪽).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행복해 한다는 사실이다. 배우고 싶어하는 욕구를 적절하게 충족하는 것과 그렇지 못할 때 어느 때가 더 행복할 것인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단지 부적절한 학습이 문제가 있는 것이지 아이들에게 읽기를 가르치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점을 글렌 도만은 그의 수십 년 간의 경험으로 단정하고 있다.
    3)"기능이 구조를 결정한다." 이 원리는 글렌 도만 학습이론의 핵심적인 철학이다. 뇌의 구조는 8세까지 완성되며 그 이후는 단지 그것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뿐이라고 한다. 8세 이전에 운동하고(뒤집기, 배밀이, 기어다니기, 걷기 등등), 듣고, 읽고 쓰는 기능은 뇌에 양질의 구조를 형성하는데 필수적이다. 장애아들이 읽기를 배우지 못하는 까닭은 '장애아는 결코 읽고 쓸 수 없다'라는 부모들의 편견의 산물이다. 이 편견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장애아들이 풍부하고 양질의 자극으로부터 배제되고(심한 경우 어두운 골방에 홀로 가두어 놓는다 든지) 그렇기 때문에 더욱 뇌가 미성숙하게 되고 미성숙한 뇌는 다시 신체적인 장애를 유발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나는 종종 가정에서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의 안전을 염려한 나머지 배밀이를 하고 기어다녀야 할 때 보행기에 하루 종일 앉혀 놓는 경우를 본다. 글렌 도만 박사에 의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내 아이의 발달을 방해하고 저능아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능과 뇌의 발달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고 글렌 도만은 운동과 감각의 상호관계를 상세하게 도표로 예시하고 있다.

    아기에게 읽기를 가르치는 방법
    1)크기: 글자가 충분히 커야 한다. 영유아기의 아이들이 실제로 배우고 싶어하고 배울 수 있고 배우고 있다면 왜 많은 아이들이 글을 깨치지 못한 채 그 시기를 지나는가? 이 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글렌 도만 박사는 한 마디로 말한다. "너무 글자가 작았다." 웃음을 나올 정도로 간단한 이치가 아닌가! 아직 아기들은 성인들만큼 눈의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한다. 때문에 글자이든 그림이든 그들이 초점을 맞출 만큼 충분히 커야 했던 것이다. 어떤 책도 영유아기 아이들이 볼 수 있을 만큼 큰 글자로 쓰여지지 않았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영유아기 아이들이 볼 수 있을 만큼의 크기는 얼마정도 될까? 가로 40cm 세로 20의 백색 카드에 빨간색으로 글자를 쓰되 글자의 크기는 높이 8cm, 두께 1cm 이다. 글자색을 빨강으로 하는 까닭은 가장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이처럼 글자가 충분히 크면 아이들이 볼 수 있고 보는 것을 이미지로 처리하여 머릿속에 저장했다가 나중에 소리와 연결시키게 되는 것이다.
    2)속도: 빨라야한다. 영유아에게 읽기를 가르치는데 있어서 속도는 크기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이다. 속도가 너무 빨라도 너무 느려도 아이를 지루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너무 느린 것이 문제가 된다고 한다. 텔레비전 광고 15초 동안에 화면이 몇 번이나 바뀌는지 세어 보라. 심한 것은 30회 이상 바뀌는 것도 있다. 영유아들은 글자를 자음 모음으로 분석해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미지로 처리한다. 즉 빛의 속도로 사진을 찍는 것이다. 아기에게 장남감을 주고 관찰해 보면 알 수 있다. 먼저 물어뜯어 본다(먹을 것인지 아닌지, 화학실험?). 흔들어 본다(청각). 냄새를 맡아본다(후각). 그리고 방바닥에 팽개친다(물리실험?). 이렇게 한 사물을 연구하는데 몇 분이나 걸릴까? 불과 몇 십 초에서 몇 분이다. 따라서 카드를 보이는 속도는 1-2초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여기서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빨라야 한다. 아기들은 빛의 속도로 공부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3)학습량: 학습량은 처음인 경우 서너 장의 카드를 가지고 3-4초 정도로 시작한다. 이렇게 한 번 실시하는 것을 세션(session)이라고 하는데 하루에 3회 정도 실시한다. 그리고 연령에 따라 점차 카드의 크기도 줄일 수 있고 학습량도 늘려갈 수 있는데 상세한 것은 글렌 도만의 책 8장 "시작하기에 알맞은 나이"를 참고하기 바란다. 중요한 것은 카드의 량을 어항에 물을 갈아주듯 항상 새로운 것을 절반정도 첨가하라는 것이다. 아기에게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 것이지 한 가지를 끝까지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세션을 지속적으로 1년이나 2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다 중도에 그만 두었으면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하면 된다.
    4)끝내는 시기: 반드시 아기가 좀 더 하고 싶어할 때 끝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기의 학습에 대한 욕구를 지속시킬 수 있는 것이다. 부모의 욕심에 근거하지 말고 아이의 욕구에 부응해야 한다. 글렌 도만 박사는 '아기를 지루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부모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잘못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지루해 하는 아기에게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부디 좀더 하고 싶어할 때 끝내야 한다.
    5)공부하는 타이밍: 타이밍이 중요하다. 아기에게 읽기를 가르치는데 가장 좋은 시간은 아기와 엄마가 모두 컨디션이 좋을 때이다. 아기가 짜증부릴 때 억지로 공부시키는 것은 금물이다. 반대로 부모가 짜증날 때도 비효과적이다. 둘 다 행복할 때 학습을 즐겨야 한다.
    6)테스트는 금물: 아기에게 읽기를 어느 정도 가르친 부모들은 빨리 테스트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험처럼 아기를 지겹게 만드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것은 누구나 마찬가지 아닌가? 아이들에게 양질의 정보가 쌓이게 되면 그들에게 표현력이 생길 때에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참으라.
    7)교재에 대하여: 교재는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물론 시중에 글렌 도만 박사의 학습법에 따라 제작된 읽기 카드(플레시 카드라 함)가 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엔 부모들이 집에서 쉽게 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방구에서 적당한 구격의 흰색 판지를 구한다. 그리고 책방에서 지난 잡지들을 싸게 구해온다. 그런 다음 한 면에는 단어를 쓰고 다른 면에는 심플하고 충분히 큰 그림을 오려 붙여 사용하면 된다. 만드는 재미도 있고 경제적으로 많이 절약이 될 것이다.
    8)가르치는 순서: 아기에게 가장 친숙한 명사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아기들에게 가나다라를 가르치는 것은 별로 효과적이지 못하다. 명사에서 시작하여 그 다음에는 동사 --> 형용사 등의 순서로 나간다. 단어가 어느 정도 숙달되면 배운 단어로 구를 만들 수 있고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아기가 확실히 문장을 익혔으면 영유아용 그림책을 읽을 수 있도록 지도한다. 영유아용 그림책은 한 쪽에 그림 한가지와 한 문장이 1cm 정도 크기의 글자로 쓰여 있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림과 글이 겹치지 않아야 한다. 더 자세한 내용과 학습자료 샘플 구입은 글렌 도만 만 박사 연구소 홈페이지(http://www.iahp.org)에 접속해 보시기 바란다.

    연결 시켜라 그러면 기적이 일어 날 것이다(전병욱, 부흥.COM, 2000)

    나는 "연결 시켜라 그러면 기적이 일어 날 것이다." 라는 전병욱 목사의 말을 좋아한다. 글렌 도만 박사의 탁월한 영재교육 방법과 교회교육을 연결시킬 때 분명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글렌 도만 박사의 학습 방법을 교회학교의 영 유아부 교육에 도입한 것은 1997년부터였다. "아기에게 읽기를 가르치는 방법", "아기의 지능은 무한하다"라는 등등의 책을 교사들과 함께 읽어나가는 동안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목격했다. 부산에서 사역을 시작한 것은 1998년 6월부터이다. 이제 만 2년이 되어 가는데 처음 대연교회에 부임했을 때 영유아부는 장년 700명 출석에 겨우 10명 안팎이었다. 그것도 교육이나 예배의 수준이 아니라 탁아의 수준이었다. 역시 지도교역자를 포함해서 서너명의 교사들과 함께 글렌도만의 책으로 세미나를 시작했다. 거기다가 시찌다 마꼬도의 {엄마 나를 천재로 길러 주세요}라는 책을 추가해서 함께 읽어나갔다. 교역자와 교사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영유아부를 보는 교사들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을 보았다. 패러다임의 변환은 매우 강력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때로부터 만 2년이 되는 지금 대연교회 영유아부는 지난주에 60명 출석을 돌파하였다. 그 사이 여섯 배로 성장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숫자의 성장뿐만 아니라 영유아부의 학습과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997년도 영유아부를 맡았을 때 만약 글렌도만이 학습법을 모른 사역을 시작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목사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설교가 회중 들과 소통되지 않을 때이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는 글렌 도만 박사의 학습법을 응용하면 영유아부 설교가 가장 쉽고 재미있다. 그리고 영향력도 강력하여 젖먹이들 설교에 교사와 부모들이 은혜를 더 받는다.
    글렌 도만 박사의 학습법은 영유아를 둔 부모들을 강력하게 동기부여 한다. "아기에게 읽기를 가르치는 방법"이라는 책을 교재로 학부모들과 세미나를 해 본 결과 비 기독교인들고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한 번씩 세미나를 하고 나면 영유아부를 위한 자원봉사자를 구하기가 쉽다.
    영유아기 교육을 결정적으로 잘 못 인도한 것은 삐아제의 발달 심리학이라고 본다. 인지발달 심리학의 대부격인 삐아제는 인간의 인지 발달 과정을 4단계로 설명한다. 즉 1단계는 0-2세로 감각 운동기이며 2단계는 2-7세로 전 조작기이다. 3단계인 7-11세는 구체적 조작기라고 부르고 마지막으로 4단계는 11-15세로 형식적 조작기이다. 형식적 조작이란 추상적 사고능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삐아제가 그가4단계 형식적 조작기라고 명명한 단계에서 영유아기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영유아는 환경(자극)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반사운동을 하는 정도의 존재이다. 2-7세의 나이에는 물활론적 사고를 하게 되어 모든 무생물에도 생명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자신의 입장을 남의 입장에서 보지 못하는 미숙한 사고를 하는 존재이다. 영유아가 미숙하게만 보이는 것은 삐아제가 영유아의 독특성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형식적 조작기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다. 글렌 도만이 탁월한 점은 바로 삐아제의 패러다임의 한계를 극복하고 영유아를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고 그들의 잠재력을 개발하는 구체적인 학습법을 개발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지만 패러다임을 전환의 힘은 엄청난 것이다.
    실제로 영유아기의 교육은 정부에서도 사회에서도 터치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다. 오로지 가정에, 그것도 대부분 어머니에게 맡겨져 있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영유아들의 교육을 탁월하게 잘 시킨다면 그것은 분명히 승산이 있는 모험으로 보인다.

    틈새2// 전인교육

    영재교육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은 나라들이 있다. 싱가폴과 일본과 같은 나라이다. 그들은 영재 교육에 있어서 적어도 수 십년 우리나라를 앞서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여러 선진국들도 영재교육과 그들을 위한 다양한 학습법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든 드리이든 재닛 보스, 학습혁명, 해냄.1999). 우리 나라에서도 재빠르게 영재 교육을 위한 사설 학원들이 늘어가는 추세에 있다. 한국 교회가 각성하지 않으면 어쩌면 영유아 교육이라는 틈새시장마저 놓치고 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강력한 틈새시장이 있다. 그것은 사회의 영재교육이 줄 수 없는 비장의 보화를 교회가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관계교육과 신앙교육이다. 실력은 실력 그 자체만으로 고귀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실력이 인격을 갖춘 비전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될 때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행복은 전문적인 실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바르고 친밀하고 풍성한데서 비롯된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총체적으로 줄 수 있는 기관은 이 땅에서는 교회공동체 뿐이다.

    틈새 3// 책과 치료를 연결시키기

    세번째 틈새는 책과 치료를 연결시키는 분야이다. 적절한때에 적절한 한 권의 책은 대단한 치료의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 이미 검증되었다.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문이 독서치료(bibliotherapy)이다. 미국에서는 50여년의 역사를 가진 분야인데 비하여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는 개론서 한 권 번역되지 않은 실정이다. 책은 교육을 하는데 있어서 탁월한 매체일뿐만 아니라 정서적, 사회적 적응의 문제를 풀어가는데도 탁월한 매체이다. 이 분야를 계속 연구하여 목회에 접목한다면 독서학습과 함께 성장과 치료 양면을 효과적으로 통합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21세기에 한국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예전처럼 먹고사는 문제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확신하건데 관계의 문제일 것이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심지어 교회에서도 관계의 문제가 가장 어렵다. 관계의 문제는 심리적 정서적 문제를 수반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상담은 어느세기보다 21세기에 부흥하게 될 것이다. 일반상담은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하고 상담 시간 외에는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힘든 반면 독서치료는 작은 시간에 비해 집에서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이다.

    다시 전병욱 목사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연결 시켜라. 그러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교회 교육과 독서 교육을 연결시켜 우리 아이들을 실력있는 사람으로 기르자. 독서교육을 관계교육과 연결시켜 우리 자녀들을 행복한 사람들로 기르자. 책과 치료를 연결시키자. 독서 교육을 인격이 겸비된 하늘 나라의 비전과 연결시켜 요셉과 같은 사람으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 인도의 마더 테레사 같은 사람으로 기르자. 그리하여 교회가 길러낸 인재들이 21세기 정보화 문명을 바르게 주도하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되도록 하자.

    글쓴이 : 이영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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