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사고로 인한 3도화상으로 예쁜 자신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지선 님입니다. 아래는 이지선 님과 관련된 기사예요. 읽어 보시고 사이트로 들어가 볼까요?? 사이트 가시면 지선님의 모든 것과 옛 추억의 사진도 볼 수 있습니다.
사이트 주소는 http://www.ezsun.net/ 이구요. 당분간 서버를 옮길 예정이라 홈접속시 많은 부분이 에러가 날 거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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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교통사고로 얼굴과 목, 가슴 등 전신에 3도의 중화상을 입은 한 여성의 아름다운 스토리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인터넷상에 자신의 홈페이지 '주바라기'(www.ezsun.net)를 운영하고 있는 이지선씨(24).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0년 7월 사고 를 당해 지금까지 무려 11번의 피부이식 수술을 받은 인물이다. 수술을 거듭하면서 사고 직후의 모습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아!' 소리가 나올 만큼 정상적인 모습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한창 꽃다운 나이인 데다 사고 전엔 어느 누구보다 고운 모습을 지녔던 그였기에 사람들이 느끼는 안타까움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네티즌의 시선을 끌고 있는 것은 단순한 동정의 차원이 아니다. 그의 홈페이지에서 솔솔 피어나오는 향긋하고 따뜻한 감동 때문이다. 그가 올려놓은 많은 이야기는 뭇사람을 숙연하게 하고, 때론 웃음을 주고 있다. 끔찍하고 참담한 고통의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글에는 밝고 맑은, 그러면서도 보석과 같은 진리의 메아리가 울리고 있다. ㅋ컨설팅 회사의 반지연씨(32)는 "처음엔 지선씨가 가엽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어느 누구보다 꿋꿋하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의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하루 홈페이지 방문객만 해도 1만 명 정도. 지난해 4월 만든 후부터 조금씩 입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 이제 유명세를 톡톡히 타고 있다. 하루 한 번 이상씩 들러 메시지를 남기는 열성 팬도 많고, 정성을 담은 선물을 보내는 이도 적지 않다.
그의 홈페이지 '주바라기'는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그는 '덤으로 살게 된 제 이야기를 써간다'며 사고를 당한 날에 대한 기록, 일기 형식으로 쓴 하루 일과, 마음을 담은 산문,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다양한 사진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있다. 물론 사고를 당한 후의 사진도 함께 올라 있다. 홈페이지 이름이 '주바라기'인 것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지선씨의 '하나님 사랑'을 엿보게 한다. 현재 일본에 체류 중인 지선씨에게 취재를 요청했을 때 그가 내건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야기를 넣을 것'과 '절대 소설을 쓰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이야기가 미화되는 것도 싫으며 동정의 대상이 되는 것은 더더욱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전화 인터뷰에서 지선씨는 "눈에 보이는 것처럼 나 자신이 불행하지 않다"며 "내가 결코 대단한 게 아니라 누구라도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헤쳐나가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좋다는 희망으로 지내고 있고 이런 모습이 된 데에도 어떤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인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겨우 스물네 살의 나이에 그가 이같은 성숙하고 건강한 생각을 품을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힘때문인 듯했다. 하나는 종교적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의 따뜻한 사랑이다. 어머니 심정씨(50)는 "지선이는 사고 후 단 한 번도 가족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았다"며 "사고 후에도 가족 앞에서는 한결같이 밝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우리 가족은 희망을 가졌다"고 말했다. 공직에 있는 아버지 이병천씨(54)도 "치료를 받은 후 진통제로 자신의 몸이 안정된 후에야 가족이 들어오게 했다"며 "그만큼 자기로 인해 가족이 고통받을 것을 먼저 염려하는 아이"라고 말했다.
지선씨는 천성이 밝기도 했다. 키가 작아 줄곧 앞자리를 차지한 그가 초등학교 입학해서부터 창덕여고를 졸업할 때까지 반장을 도맡아 했던 것도 그런 성격의 영향이 컸다. 지선씨는 "대학 다닐 때 별명이 TV 만화영화 〈시간탐험대〉에 등장했던 '샬랄라공주'였다"며 "어떤 난리가 나도 전혀 개의치 않고 즐거워하는 샬랄라공주처럼 내기분이 늘 들떠 있음을 친구들이 놀려주려 붙여준 별명"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홈페이지에 쓴 많은 글에서도 그의 이같은 '명랑한' 성향이 자주 드러난다.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난 것은 2000년 7월 30일 밤 11시 30분 무렵이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사고 다음날 KBS 9시 뉴스에서 지선씨가 당한 사고를 보도한 동영상과 사고 이후 전개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그날 지선씨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 뒤 연세대 경영학과 학생인 오빠 정근씨(27-현재 ㅎ증권 근무)와 밤 10시 10분에 만나 소형 승용차로 안양의 집으로 귀가하던 중이었다. 학교가 서로 가까워 남매는 자주 함께 등교하고 귀가했다. 용산쯤에서 신호가 바뀌어 차가 멈추었는데 뒤에서 갑자기 '끼-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신호대기하고 정지해 있던 남매의 차를 만취한 운전자가 몰던 갤로퍼가 들이박았고, 그 충격으로 남매의 차는 앞차를 추돌한 뒤 중앙선 건너편에서 오던 차와 다시 충돌했다. 남매의 차는 그 자리에서 두 바퀴 돌다가 다시 그 갤로퍼에 가서 박혔다. 이때 차의 한쪽이 허물어지고 조수석에 앉아 있던 지선씨가 차 뒷유리창을 깨고 퉁겨져나가 화염에 휩싸인 자동차들 사이에 떨어졌다.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한 정근씨는 조수석에 있어야 할 동생이 보이지 않자 창문을 통해 차 밖으로 나왔다. 그때 불길 속에서 흰 양말을 신은 동생의 다리가 보였다. 본능적으로 달려가 동생을 끄집어낸 뒤 동생 몸의 불길을 잡았지만 이미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 있었다. 안면부와 목-등-가슴 등 몸의 35%가 3도 화상을, 20%가 2도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지선씨는 차에서 퉁겨져나가는 순간 기절했다고 한다. 다른 화상환자와 달리 지선씨가 얼굴을 가장 많이 다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위험한 상황에서 얼굴을 가장 먼저 보호하게 마련인데, 지선씨는 이미 기절한 상태이기 때문에 얼굴이 불길에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던 중 잠시 의식이 돌아온 지선씨는 "너무나 당황스럽고 무서운 기분에 부끄럽지만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죽으려고 했다"고 홈페이지에서 고백했다. 그러나 산소호흡기로 목을 눌러 숨을 끊으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한강성심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그를 두고 의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의사들은 "이미 가망이 없으니,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버지의 설득이 계속된 후에야 겨우 퉁겨져나갈 때 충격으로 찢어진 뒤통수를 꿰매고, 응급치료를 한 후 온 몸을 붕대로 감아주었다.
CT촬영 결과 다행히 뇌는 다치지 않은 상태였고, 눈도 무사했다. 그러나 폐에 가스와 물이 가득 차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가족 외 어느 누구도 지선씨가 살 수 있으리라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지선씨는 소생했다. 눈 주위에 피부가 없어 무려 7개월 동안 눈을 뜬 채 지내야 했지만 그와 가족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희고 투명하던 피부가 다 쓸려나 가고, 손가락 뼈가 절반쯤 녹아버렸으나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얼굴은 두개골에 안구 두 개만 붙어 있는 형국이었다. 놀라운 것은 7개월간 눈을 뜬 채 지내면 상식적으로 실명해야 하는데, 지선씨의 경우 눈이 충혈 한번 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지선씨 표현에 따르면 화상치료실에서의 두 달간 치료는 지옥 같았다. 벌거벗은 채 침상에 누워 소독물로 몸 전체를 씻어내고 약을 바른 다음 붕대로 감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한 번 치료받을 때마다 온 몸을 부들부들 떨 정도의 고통을 느껴야 했지만 감내했다. 붕대를 풀고 지낼 수 있게 된 게 134일 만이다. 얼굴과 가슴에 피부이식을 하지 않은 채로 3개월을 보냈고, 이후에는 고통 중에 자신도 모르게 지르는 비명 소리에 마취가 깨는 수차례의 수술이 이어졌다. 수술시간도 보통 14~18시간, 그동안 수술한 횟수만도 11번에 이른다. 그 중에는 얼굴 부분 재수술을 시도하다가 얼굴에 부분적 염증이 발생한 것을 발견, 4시간 만에 수술을 중단한 일도 있었다. 다행히 국내 수술비용은 모두 보험으로 처리됐다.
지선씨는 현재 일본 도쿄 신주쿠에 머물고 있다. 그가 지난 3월 일본에 건너간 것은 치료 때문이다. 10번째와 11번째 수술을 이곳 후쿠시마현립 의과대학병원에서 했다. 지금도 내년 3월로 예정돼 있는 12번째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일본에서의 치료가 1~2년 만에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아예 유학생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집을 마련해 살고 있다. 요즘처럼 어머니가 한국에 들어간 기간엔 교회 언니와 지낸다. 하루 일과는 보통 집 근처에 있는 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드린 후 학교 (일본어학교)에 간다. 학교가 파한 정오 무렵 한 번 더 교회에 들르고, 아르바이트를하는 회사에 가 근무한 뒤 오후 4시 정도면 집에 돌아온다.
그는 일본에서 상담심리학을 공부할 계획이다. 대학 시절부터 염두에 뒀으나 사고 때문에 미뤄놓은 일이다. 그는 "성경에 내 고난도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된다는 말씀이 있다"며 "머리로 '그럴 수 있겠다' '아프겠다'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이미 내가 거쳐온 일이기 때문에 가슴으로 '그랬지요' '아팠지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눠질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얘기다.
그런 그에게 "지금도 예기치 못한 사고로 불행을 느끼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그는 팔-다리가 절단됐거나 전신 마비된 사람 등 자신이 같은 상황에 처해보지 않은 고통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음을 전제한 뒤 입을 떼었
다. 그는 "본인 스스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기를 바란다"며 "이미 벌어진 일로 인해 자신이나 주위 사람을 괴롭히며 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홈페이지에 그가 남긴 다음의 글은 "사고 후 제일 크게 배운 게 감사하는 법이었고, 난 그 힘으로
고통의 시간을 버텼다"는 지선씨의 생각이 잘 응축돼 있다.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으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고, 1인 10역을 해내는 온전히 남은 엄지손가락으로 생활하고 글을 쓰며 엄지손가락을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눈썹이 없어 무엇이든 여과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며 사람에게 눈썹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또 온전치 못한 오른쪽 귓바퀴 덕분에 귓바퀴란 것이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나님이 정교하게 만들어주신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한 피부가 얼마나 많은 기능을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남겨주신 피부들이 건강하게 움직이는 것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