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으로 성장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영적 성장이 하나님의 뜻이듯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행을 거부하고 행복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행복이란과연 무엇인가? 행복이란, 관계를 통하여 오는 만족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타인과의관계,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사물이나 일과의 관계에 고민이나 갈등이 없이 참 만족과 평안과 감사가 있는 상태가 행복이다. 행복이란 고민하지 않고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행복을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 일곱 가지 단계를 생각해 보자.
첫째, 행복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 인간의 목적은 행복이다.
하나님의 뜻도 행복이다. 구원은 참 행복의 시작이요, 천국은 행복의 극치가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 행복하지 않다면 헛 인생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는데 우리가 인생을 불행하게 산다면 그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극단적인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것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은 우리의 행복을 위함이다. 다시 말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오셨다. 그것이 복된 소식, 곧 복음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것도 행복하기 위함이다. 어떤 구속과 부담이 되어서는 안된다.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도 행복한 헌신이어야 한다. 지나친 사명감 때문에 항상 어둡고 우울하고 심각하기만 하다면 그것은 주님을 위한 헌신의 영적 의미를 한 가지로만 치우쳐서 생각한 결과다.
둘째, 행복하기로 결심해야 한다. 행복은 의지적인 결단의 결과다. 조건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자신이 선택했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반면에 불행의 조건들로 둘러싸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는데 그들은 행복하기로 결단했기 때문이다. 송명희 자매는 뇌성마비로 온몸이 부자연스럽지만 행복한 시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전신마비와 같은 절대 불구자 중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미국 유학시절에 머리가 붙어 있는 쌍둥이 흑인을 본 적이 있다. 이 쌍둥이는 절단수술이 불가능했는지 머리가 붙은 채로 어른이 되도록 자랐다. 그들의 부모는 비참하고 부끄러워 그들을 짐승처럼 집안에 꽁꽁 가두어 길렀다. 학교도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자신들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국민학교에 입학하여 어린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기로 결단했다.
선생님이 형에게 나와서 칠판의 문제를 풀라고 하나 형이 나오는데 머리가 붙어 있으므로 동생도 같이 따라나왔다. 보는 사람은 비참함과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그들은싱글벙글 행복했다. 평생을 머리가 붙은 채로 살아야 하는 절대적 불행의 조건이었지만 절대 행복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행복은 선택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행복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행복한 결단의 중요성에 대해서 데일 카네기가 말한 것을 음미하는 것도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고민의 가장 나쁜 특성은 정신을 집중시키는 능력을 감퇴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고민하고 있을 때 우리 마음은 끊임없이 동요되어 결단력이 흐려진다. 그러나 최악의 사태에 직면하여 그것을 정신적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면 우리는 모든 막연한 부정적 상상을 배제하고 침착한 마음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정신을 집중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