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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시련(2)
    2002-10-16 11:59:23   read : 4522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베드로전서 1:3~9 // 2002-09-01

    시편 34편 19절에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욥기 5장 18~20절에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 권세에서 너를 구속하실 터인즉…」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사도 베드로는 그의 영감 속에서 ‘믿음의 시련’이라고 하는 말을 쓰고 있음을 봅니다. ‘시련의 믿음’이 아니고 ‘믿음의 시련’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을 위한 시련, 믿음에 따라다니는 시련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가진 자는 구원이라고 하는 실로 엄청난 생명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1장 9절에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구원얻는 믿음을 받은 자(엡 2:8)에게 그 믿음을 믿음되도록 연단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을 믿음되게 다듬는 시련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Ⅰ. 시련의 정체는 여러 가지 시험

    베드로전서 1장 6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여러 가지 시험’이 시련의 정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을 기록할 당시, 사도의 이 편지를 받는 소아시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의 경우 여러 가지 시험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여러 가지 시험’을 총체적으로 말할 때 ‘의를 위한 고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벧전 3:14). 여러 유들의 기독교 박해들을 의미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벧전 3:13~16, 4:4, 5:9).
    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실로 무수한 믿음의 시련을 통과한 후에 영화로운 구원에 이르는 사실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시련들을 개괄적으로 종합할 때 몇 가지 경우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육신의 질병을 만난 시련들입니다.
    원래 사람들에게 오는 여러 질병들은 사실상 범죄 이후 받은 ‘죽음의 심판’ 아래 있을 때부터였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질병들은 실로 무수합니다.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들 그리고 부모와 형제들이 예측불허의 질병들을 만나는 일로 인하여 고난을 겪습니다. 문명사회권에 들어오면서부터 인류가 만나는 질병들은 더하여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러한 질병의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적의 손길로 체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러한 질병의 환난을 통하여 육체적 몸의 고통 속에서 자기 죄를 찾는 성결의 은총도 입게 되고, 정말 유한한 인생길을 주님을 의지함으로 내세의 소망을 갖게 되는 유익을 삼게 됩니다. 그래서 욥은 죽음에 이르는 질병 가운데서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 19:26) 하고 내세의 소망을 뽑아내었습니다.

    2. 재물을 잃은 아픔의 시련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받은 사람들은 재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재물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인줄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재물을 사용하는 그 내용과 의미도 알게 됩니다. 주를 위하여, 복음선교를 위하여 여러 가지 사역에 동참할 마음들을 갖게 되고, 또 서원도 합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우리의 서원과는 정반대로 사업의 실패(?)나, 직장의 어려움이나, 아니면 뜻밖에 당하는 도난이나, 화재 같은 재난이나, 사기를 당하여 아파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라도 욥처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라고 하는 적신(赤身) 신앙을 고백하는 성숙의 은총을 받게 됩니다. 결국 이러한 사람에게는 다시 물질의 축복을 다시 받게 되는 제1, 2, 3의 기회가 주어짐을 믿어야 합니다.

    3. 죽음을 만나는 슬픔의 시련들입니다.
    뜻밖에 더 살아 있어야 하는 부모나 자식이나 아내나 남편, 아니면 친구 그리고 사회나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분들의 죽음은 참으로 우리에게 슬픈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캄캄하고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사람의 생명을 주장하는 주권자는 하나님뿐이신 줄로 믿고, 의인들은 죽음에도 소망이 있다는 성경에 위로를 받게 됩니다(잠 14:32). 생존한 자들은 그 분이 못 다한 주의 일을 더 감당해야겠다고 하는 각오를 하게 됩니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하는 재회의 소망을 더 굳게 가지게 됩니다.

    4. 예측을 불허하는 여러 재앙들로 말미암는 시련들입니다.
    전쟁이나 수재, 한재, 충재로 인한 여러 재산의 피해나, 정말 악한 자들의 소행으로 말미암는 테러리스트들의 가공할만한 여러 파괴 행위들은 우리 세기가 만난 세계적인 재앙들입니다. 작년(2001년) 9월 11일에 만난 저 미국의 테러 참사는 일종의 재앙입니다. 실로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일들로 인하여 더욱 기도하게 되고, 주의 오심을 예비하게 됩니다.
    지금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진과 화산폭발 등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 징조들과 직결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마 24:7).


    Ⅱ. 시련을 통한 믿음

    지금 사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여러 가지 시험’ 곧 시련들을 겪는다고 하였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시험은 여러 가지인데 근심은 잠깐이라고 하였습니다. 환난을 당하다가 근심하고, 근심을 하다가 크게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근심과 기쁨, 기쁨과 근심이 서로 교차를 이루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시련입니다. 이런 믿음의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뽑아낸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믿음인가?

    1. 크게 기뻐하는 믿음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6절에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1장 8절 중에는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 시련을 통하여 진실한 믿음을 맛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온갖 위선적이고, 외식적인 불순물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입니다. 마치 제련소의 용광로 속에서 불순물들이 다 떨어져 녹아 버리고 순금이 나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벧전 1:7).
    믿음의 시련을 통하여 인내를 만들어 내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2~3절 중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시련을 통하여 참된 소망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3~4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를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2. 예수를 더욱 사랑하게 되는 믿음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8절에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삶에 주어지는 모든 시련은 결국 이 세상이나,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예수만 사랑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은 예수로만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온갖 시련을 겪는 중에 그 시련들을 이기게 하시는 분이 예수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결국 예수의 사랑이 우리가 겪는 모든 시련들을 이기게 하였기 때문입니다(롬 8:31~37).

    3. 보지 못하고 예수를 믿는 믿음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8절 중에 다시 말하기를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라고 하였습니다.
    수많은 시련을 통하여 예수님이 나의 구주됨을 새롭게 경험하게 됩니다. 왜 시련을 통하여 예수를 보지 못하고 믿는 믿음이 생겼을까? 그것은 성령의 감동을 받는 영적 은총 때문입니다. 성령으로만 예수를 구주로 고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12:3).
    뿐만 아니라 시련을 통하여 성령의 참됨이 믿어집니다. 성령의 약속과 성취를 실제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대로 되고 만다는 사실은 곧 예수님 약속의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의 성취는 우리에게 축복이 됩니다. 그때 믿음이 더 생기고, 기쁨이 더 충만합니다. 예수님은 보고 믿으려고 하는 도마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라고 하였습니다.
    스코틀랜드에 던데(Dondee)라는 성도는 척추환자로 40년 동안 집안에 누워 지냈습니다. 실로 길고도 먼 시련의 여정이었습니다. 무디 선생이 전도집회 인도차 영국으로 갔을 때 그녀를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녀가 무디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하였습니다. 마귀가 그녀에게 와서 시험하기를 “네가 예수를 믿음으로 이렇게 되었구나?”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녀는 마귀에게 대답하기를 “갈보리에 가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라. 그가 나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다. 그것은 그분이 나를 사랑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무디는 그녀의 이러한 말을 그의 설교 중에 간증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은 나무나 동물들에게는 움직임이 없습니다. 죽은 영들에게는 신령한 전쟁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때부터 새로운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것은 사실상 믿음의 시련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시련의 정체입니다. ‘시험’(peirasmo", 페이라스모스)이란 단어는 우리의 신앙을 흔들어 보는 환난을 의미합니다. 그 환난의 정체는 실로 무수합니다. 보이는 정체도 있고, 보이지 않는 정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험(환난)이 우리에게 늘 있는 것은 아니고, 반드시 지나가는 때가 있습니다.
    그 시련들은 결코 우연히 왔다가 우연히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결재를 받고 옵니다. 하나님의 결재를 받고 자기 일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결재를 받고 우리를 떠나게 됩니다. 그 환난들은 우리의 믿음을 단련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즐겨 쓰시는 도구들입니다. 그것들은 결국 우리에게 ‘구원의 믿음’을 확인시켜주고 떠납니다. 그 구원의 믿음이 바로 예수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는 믿음이요, 예수를 더 사랑하는 믿음이요, 예수를 보지 못하고도 본 것처럼 믿는 믿음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단을 통과하며 성장하여 가는 믿음은 언제나 주의 일을 해냅니다. 온갖 시련을 통하여 다져진 믿음이기 때문에 그의 삶이 흔들리지 아니합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오히려 사는 맛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 가지 시련을 만날 때 오히려 여러 가지 하나님의 일을 해냅니다. 그 최악의 기회를 최선을 창조해 내는 전화위복의 경지로 만들어냅니다.

    교회사 중에 살리스베리(Salisbery)라고 하는 감독을 보게 됩니다. 그는 박해자를 피하여 도망하던 중 길을 잃고, 눈길에서 주려 죽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순교자 래티머(Latimer)의 수종자가 그를 발견하고 구원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감독은 길을 잃고 죽을 뻔한 고생을 하였지마는, 후에 알아본즉 그가 원래 생각했던 피난길로 가버렸더라면 오히려 원수들에게 잡힐 뻔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길을 잃게 하고 잘못 가게 하심으로 전화위복의 결과를 맞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통행하는 자들입니다. 실로 시련 충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께서 함께하여 주시는 돌보심의 은총입니다. 기독교 2000년의 역사는 실로 수난의 역사로 점철되었습니다.
    사도들은 핍박과 순교를 당했습니다. 초대 박해 300년 동안에 위대한 지도자 폴리갑, 익나티우스, 유스티노, 키브리안 등이 다 고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중세기의 개혁 전 위클립이나, 요한 허스, 개혁 당시의 루터나, 칼빈, 파렐, 베자, 낙스 등이 예외없이 고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 축복의 땅 미국을 건설한 청교도들이 예외없이 고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들은 예외없이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의 기업을 약속받고, 말세에 나타내시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았던 자들입니다(벧전 1:3~5). 무수한 시련의 불가마 속에서 크게 기뻐하는 믿음, 예수를 더더욱 사랑하는 믿음, 예수를 보지 못하고 믿는 믿음을 체험한 자들입니다.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이 시련의 용광로를 통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이 축복 있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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