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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과일가게 사장님’ 내일은 ‘그림 그리는 화가’로…박요섭 목사의 ‘꿈’ 2021-07-13 02:29:20 read : 29014
오늘은 ‘과일가게 사장님’ 내일은 ‘그림 그리는 화가’로…박요섭 목사의 ‘꿈’
신선한 야채와 당도가 높은 과일을 정직한 맛과 가격에 판매해 마을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가게가 있습니다. 바로 서울 송파구에 자리한 ‘스위트리’ 입니다. 이 가게의 사장은 박요섭 목사입니다. 교회 안에서 사역하던 그가 앞치마를 두르고 과일가게 사장님이 된 이유는 뭘까요.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는 그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서 섬기고 있는 교회와 미혼모 센터에 과일과 야채를 후원해 오고 있습니다. 사장님의 선행에 고객들도 후원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박 목사는 주민과 소통하며 복음의 접촉점이 되는 과일가게가 ‘일상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과일가게를 하면서 취미로 그림도 그려오고 있는 그의 실력은 수준급입니다. 오늘은 ‘과일가게 사장님’이지만 내일은 ‘그림 그리는 화가’가 되길 꿈꾸는 박 목사의 이야기, 신문 지면에 다 담지 못한 뒷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장신대학교 기독교 교육과를 졸업한 뒤 바로 신학대학원에 가지 않고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았다. 2012년에 다시 신학대학원에 들어간 뒤 졸업 후 대광중학교 교목, 종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3년간 청소년 사역을 병행했다. 18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부교역자로 사역하다가 사임 후 19년에 과일가게 사장님이 됐다.
-어떤 계기로 과일가게 사장님이 됐나.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목회자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어릴 때부터 교회 안에서만 성장하고 사역하면서 성도님들의 삶에 대한 이해와 교회사역의 근본적인 한계에 맞닥뜨렸다.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전달하기에는 현실에 대한 인식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교역자의 삶이 다 비슷하지만 반복된 업무 속에서 개인적으로 정리하고, 성찰하고, 앞으로 나아가기에 많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교회 안에서 생각이 갇히는 것 같았다. 40대가 되기 전에 사역이 아닌 다른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
아내에겐 사역에 대한 고민과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내가 기도 후에 흔쾌히 응원해 주면서 “우리 가족 굶겨 죽이지만 말라”고 했다. 걱정이 많은 저랑 달리 성향이 반대인 아내가 적극적으로 지지해 줘서 정말 고마웠다.
전통교회에서 목회하시는 아버지가 충격이 크실 것 같아서 바로 말씀드리지 못했다. 뒤늦게 알게 된 아버지는 많이 황당해하셨다. 다행히 얼마 전부터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네가 주님만 저버리지 않으면, 과일을 팔던, 주님이 인도하시는 게 있겠지. 가장으로 생계도 책임지면서 아이들을 잘 양육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신다. 어머니는 아직도 걱정이 많다. (웃음)
그런 걱정 앞에서 애써 나 자신을 누를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행복하지 않은 곳에서 다른 사람 시선 의식하면서 살 필요 없다’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누가 내 인생 살아 주는 것이 아닌데, 아버지 말씀처럼 ‘하나님을 저버리거나 그분의 품을 떠난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하고 사임을 결심하게 됐다.
-강대상에서 목회자로 설교만 하다가 새로운 직장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사임 준비를 하면서 교회에서 직장을 찾아봤다. 막상 찾아보니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아무리 찾아봐도 갈 곳이 학교랑 교회밖에 없었다.(웃음) 경기도지사 선거캠프에도 있어 봤고, 건강식품 회사에도 다녀봤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만뒀다. 여러 가지를 놓고 고민하던 중에 언론을 통해서 과일가게를 하는 선배 목사님의 기사를 접하게 됐다. 아버지가 목회하는 그 지역이 과일로 유명해 어릴 때부터 맛있는 과일을 많이 먹고 자랐다.
기사를 보고 과일을 좋아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과일가게로 연락을 드리고 무작정 찾아갔다.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한 달 정도 가게에서 일하면서 전반적인 운영에 대해 배웠고, 따로 독립한 뒤에는 트럭도 없이 중고 승용차 트렁크에 과일과 야채를 싣고 노점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트럭이 아닌 승용차 트렁크에서 시작했다니 놀랍다. 매장을 얻었을 때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다.
처음에는 매장을 얻고 싶지 않았다. 월세 등 나가는 비용이 많으면 일을 더 해야 하니까.(웃음) 그런데 노점상도 한계가 있었다. 민원신고가 들어오면 자리도 비켜야 하고, 같은 물건을 파는데도 노점이라고 무시하는 사람들의 시선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매장을 해야 하는 시기가 왔을 때 좋은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었는데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섰다. 손님들 발길이 뚝 끊어졌다. 자본력에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최근에 다시 매장을 옮겼다. 장사하면서 느낀 건 자기만의 색깔을 잘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과일가게 사장님으로 보내는 일과가 궁금하다.
새벽에 5시에 가락시장이나 강서시장으로 간다. 과일을 매입한 뒤 아침을 먹고 매장으로 와서 오전 11시에 가게 문을 열고 장사를 시작한다. 오후에는 온라인으로 주문받은 물품에 대해 배달을 간다. 평일에는 7시 30분까지 장사를 하고 토요일은 “떨이 데이”라고 해서 재고 물품을 싸게 팔고 일찍 가게 문을 닫는다.
-좋은 과일을 매입하는 노하우가 있나.
내 입에 맛있는 것을 고객에게 판다는 원칙을 갖고 가게를 운영해오고 있다. 사실 지금도 새벽시장에 나가서 좋은 제품을 적당한 가격에 흥정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초보 시절엔 뒤통수도 여러 번 얻어맞았다.(웃음) 이제는 상인들도 인정할 만큼 제법 과일도 잘 고르게 됐고, 새벽시장 상인들과 신뢰도 쌓여서 좋은 물건이 있으면 먼저 연락도 오고 도움도 받고 있다.
-과일과 야채로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고 들었다.
친한 목사님이 사역하는 교회에서 2주에 한 번씩 어려운 이웃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서 섬기고 있다. 나도 과일과 야채로 동역하고 있다. 또 집 근처에 미혼모 센터가 있는데, 10여명의 미혼모가 아이들과 생활하고 있는 곳이다. 남는 재고를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좋은 과일을 선별해 정기적으로 섬기고 있다.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는 네이버 밴드에도 홍보하고 있는데 가게 홍보를 위한 목적도 있지만, 고객들이 같이 후원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다. 고객들에게 구매하는 과일을 통해 물질이 좋은 곳으로 흘러간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목회자인 것을 모르는 손님들은 “과일가게 사장님이 좋은 일 한다”면서 응원해 주시면서 선순환이 일어났다. 아이 옷이나 용품을 가게로 갖다주기도하고 재정으로도 후원하시는 분들이 많아졌다.
박요섭 목사가 직접 그린 그림
-매주 월요일은 가게를 휴무하는 이유는.
원래는 월, 수, 금 3일만 매장을 열고 싶었다.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노점상 할 때도 ‘이 정도면 먹고사는데 괜찮을 만큼 돈을 버는데 장사를 더 해야 할까’를 두고 고민했다. 취미로 하는 미술, 아이들 육아, 집안일 등 여러 가지가 다 복합적이었다. 지금은 일요일, 월요일 쉬고 있는데 사실 토요일도 장사하고 싶지 않았다.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는 손님들이 많아서 토요일은 ‘떨이데이’로 남은 재고를 싼 가격에 판매하고 일찍 문을 닫는다. 어떨 때 나 자신을 돌아보면 참 베짱이 사장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은 돈에 대한 욕심이 더 커질까 봐 스스로 가장 두렵기 때문이다.
박요섭 목사가 그린 그림
-취미 생활로 그리는 그림 치고는 너무 잘 그리는 것 같다.
그림은 신대원 다닐 때 우연하게 시작하게 됐다. 그림을 감상하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전공도 아니고 한 번도 그림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 해 본 적이 없어서 감히 그려볼 생각은 못 했다. 그러다 아는 형이 어느 날 자기가 그린 그림을 SNS에 공유했는데 너무 부러웠다. 형에게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됐는지 물어봤고 본인이 배운 선생님을 소개해 줬다. 그분이 좀 독특하게 수업을 했는데 그저 잘 그리는 게 목표가 아니라 내 안에 예술성과 창의성을 끌어내는 작업들을 주로 알려줬는데 크게 도움이 됐다. 그 수업을 계기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혼자 여러 재료를 사서 계속 그리게 됐다.
지금도 전문적으로 배운 게 아니라서 기초도 부족하고 한계를 느끼긴 하지만 그림을 통해 자신에게 솔직하고 남들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또 매장에 그림을 하나씩 걸 때마다 손님들도 신기해하고 좋아한다. 그림을 사시겠다는 분도 있다.(웃음)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개인 공간에서 마음껏 작업을 해보고 싶고 전시회도 열어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 분명히 그런 날이 올거라 믿는다.
-목회자였을 때는 몰랐던, 과일가게를 운영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나.
교회 안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좋은 이미지를 갖고 만난다. 서로 좋은 부분만 보게 되고, 뭔가 서로 안 좋은 일이 있더라도 믿음으로 풀려고 하는 모습들이 있다. 나 역시 인간관계가 교회에서 경험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과일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물건을 살 때 그 사람의 심리나 인격,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다 접하게 된다. 처음엔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을 응대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어느 순간에 ‘저분도 오죽 힘드시면 저러실까?’ 싶었다. 사람을 폭넓게 보게 된 것 같다.
또 하나는 실질적인 경제 활동하게 된 것이다. 돈을 정말 힘들게 벌어서 세금도 낸다. 많이 벌고 적게 버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돈 벌겠다고 이런 이야기까지 들어야 하나?’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내가 그동안 돈을 너무 하찮게 생각했구나’ 생각하게 됐다. 성도님들이 헌금하시는 게 정말 힘들게 땀 흘려 벌어서 내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썼던 예산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후회도 되고 회개도 됐다.
그리고 수련회 때 성도들이 회사에 휴가를 내고 힘들게 온다는 사실이다. 목회자로서 그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못 오는 분들을 정죄하진 않았지만 강요했었는데, 휴가를 내고 오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됐다.
-주변 목회자들, 동기들 반응은 어떤가.
나라는 사람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네가 과일가게를?”이러면서 신기해한다. 적극적이지도 않은 편이고, 엉뚱한 사람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한 번씩 독특한 행보를 할 때마다 주변에선 의외라고 반응한다. 기존 교회 프로세스에 잘 묻어갈 것 같은 그런 사람으로 생각했었는지 많이 놀라기도 하고, 직접 찾아와서 응원도 해준다. (웃음)
-일하는 목회자로 주일은 어떻게 섬기고 있나.
협동 교육 목사로 미와십자가교회를 섬기고 있다. 담임목사님이 굉장히 독특한 예술적인 목회를 한다. 설교 시간에 그림을 그려서 설교하고, 극단도 운영하며 대학로에서 연극도 하고, 장신대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가게 인테리어도 직접 도와줄 만큼 이곳 일터 사역을 많이 지지해주고 있다.
-최근 목사 이중직 확대에 대한 논의가 교단별로 계속되고 있다. 후배 목회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실 이런 질문 받을 때마다 조심스럽고 부끄럽다. 그래도 몇 가지 생각을 나눠보면 앞으로는 목회자가 직업의 영역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일차적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경제적인 것을 교회에 의지하지 않고 헤쳐나갈 수 있는 준비를 지금부터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회 안에 있을 땐 교회를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었다. 공간이 내 사고를 가둬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터가 바뀌었다고 해서 목회자라는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 보지 못했고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이런 부분들 때문에 교회가 힘들구나’ ‘시대에서 뒤처질 수 있겠구나’라고 알게 됐다.
당장 무엇인가를 한꺼번에 바꾸려고 하지 말고, 작게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실행하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새로운 형태의 뭔가가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꼭 교회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기대하는 것은 일상공동체다. ‘일상 안에서 기독신앙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 요즘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시대와 분리되지 않고 구별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다양한 목회를 꿈꾸시길 바란다. 꼭 과일가게가 아니어도 나와 같은 길을 가는 목회자가 많아져서 연대할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 좋겠다.
-앞으로 개인적인 목표와 기도 제목.
인생 키워드 중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재미다. 단순히 어릴 때의 재미가 아니라 나를 신나게 하고, 의미 있게 하고, 더불어 나만의 기쁨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기뻤으면 하는 재미다. 종교적 용어로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의미다. 여전히 세상 사람들은 여유가 없다. 작고 소소한 것 하나에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 같다. 여유를 누리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또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사람은 아니지만 소통하는 화가, 좋은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이를 위해 지켜봐 주고 기도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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