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엡6:1-3/ 참된 효도 / 조용기 목사 2014-09-07 08:42:10 read : 8582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참된 효도"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동양은 공자님의 윤리 도덕관이 우리 모든 생활을 지배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유교가 우리 이씨 조선 이 백년 동안에 한국만 점령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까지고 생활의 윤리 도덕의 근본이 되었는데 유교의 윤리 도덕의 근본은 효에 있습니다.
부모를 잘 존경하고 공양하는 효가 동양윤리의 근본이 되어있습니다. 대게 유교를 열심히 심봉하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비난해서 말하기를 기독교에서는 부모에 대한 공경이 없다. 효가 없다. 그러므로 야만인들이 믿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분은 성경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준 십계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인이면 반드시 지켜야할 계명인 것입니다. 이 십계명중에 네 가지 계명은 사람과 하나님과 관계된 계명인 것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여섯 계명은 인간 사회에게 우리가 지켜야할 계명인데 인간사회에게 지켜야 할 제일 첫째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러면 네가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고 인간관계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고 효를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공자는 효를 다하면 그로써 끝마치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인간관계속에서 효가 가장 중요한 즉 효를 다하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상격까지 약속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효를 특히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효하는 사람에게 세상을 형통하게 하고 건강해서 장수까지 하겠다는 약속을 줄 리가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올바른 효도를 우리는 해야만 하고 그리고 우리는 또 효도를 잘 받을 줄 아는 부모가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철야하고 금식하고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한다고 해도 부모에게 불효하면 우리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습니다. 효가 세상에서 장수하고 잘되는 장수하는 가장 근원적인 바탕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계명에 기록해 놓았는데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자는 하나님의 저버리는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서지 않는 기도는 그 기도 자체에게 가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 위해서 주님께 주야로 부르짖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근본인 하나님이 기록한 대로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모든 기도는 헛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 효도야말로 여러분과 나의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고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될 가장 근원적인 요소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부모에게 효도를 할 수가 있습니까.
첫째로, 부모에게 참 효도란 부모의 마음에 근심을 끼치지 않는 일이 가장 큰 효도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속에 염려 근심이 있습니다. 아무리 호의 호식을 한다고 해도 마음에 행복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행복의 가장 근원적인 조건이 마음에 평안인데 그러므로 부모에게 효도하려면 부모의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 줘야 하는 것입니다.
또 부모는 나이를 많이 잡수시면 육신이 연약해 집니다. 여러분 건강은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마음에 기쁨은 양약이라도 마음의 근심은 뼈로 썩게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마음속에 근심을 가져다 주는 것은 부모의 뼈를 썩게 해서 빨리 세상을 뜨게 하는 무서운 형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부모에게 근심을 끼치지 않는 것이 효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떠한 면에서 근심을 끼치지 말아야 할까요. 우리 예수 믿는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주일날 교회에 와서 주님을 잘 섬기고 예수를 잘 믿는 것이 부모의 마음속에 근심을 끼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를 잘 믿지 아니하고 교회에 출석을 안하고 주일에 등산가든지, 낙시가든지 골프를 가고 그렇지 않으면 들로 놀러를 가고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인데 친구 결혼식 있다. 일가 잔치가 있다고 거기로 가고 이럴 때 부모의 마음속에 크나큰 근심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저도 주야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제게 준 세 자식 예수 잘 믿게 해 달라고 늘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영적으로 건강해야 하고 육신적으로 병들지 말아야 부모에게 근심을 덜어주는 것입니다. 부모야 주야로 자식이 잘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까. 자식이 무서운 병에 들어 자리에 누우면 부모의 마음속에 한시도 평안이 없습니다.
이러므로 건강은 자기를 위해서 있는 것뿐 아니라 부모의 마음속에 근심을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여러분 건강에 유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타락한 생활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식이 도덕적으로 타락해서 도박 광이 된다든지 술주정뱅이가 된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가정을 버리고 음란 방탕 한다든지 이래서 얼굴을 들고 밖에 나갈 수 없는 그러한 자식이 된다면 이야말로 부모의 가슴에 멍이 들게 한 것입니다.
주야로 부모의 마음속에 염려 근심을 끼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삼십 년의 목회생활을 통해서 많이 체험했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어머니가 추운 겨울날 교회 나와서 철야하면서 머리를 숙여 눈물을 흘리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여 방탕한 자식 돌아오게 도와주시옵소서. 저 집안을 버리고 나가서 방탕한 자식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 그 얼마나 큰 불효인 것입니까. 자식이 이 세상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성실하게 자라서 생활에 고생하지 않아야 부모의 마음에 근심을 끼치지 않습니다.
부모는 잘 사는 자식은 염려 안 해도 못사는 자식 집에 가서 같이 고생을 하고 너무 고민을 합니다. 그것은 부모는 못난 자식이 있으면 괴롭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부모에게 근심을 끼치지 아니하려면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살아서 의식주 문제 근심이 없어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젊은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를 해서 좋은 학교에 입학을 하는 것도 부모에게 굉장한 효도입니다. 입학생을 둔 부모들은 사생결단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마음속에 안심을 주고 근심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성실하게 공부하는 것도 부모에게 효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효도란 첫째로 부모의 마음속에 근심을 끼치지 않는 것도 효도요. 둘째로 노후 생활에 부모를 돌봐 주는 것도 효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효도를 한다면서 부모의 의식주 문제를 돌봐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효도인 것입니까. 나이를 많이 잡수시게 도면 경제 활동을 못하게 되고 그리고 수입이 없어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양로원에 던져버리겠습니까. 헐벗고 굶주리게 내버려두겠습니까. 요사이 말세가 되니까 자식들의 마음이 악해져서 이렇게 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나는 미국이나 구랍파를 여행하면서 자식들이 노후에 부모를 양로원에 보내서 일년에 한번쯤 신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양로원에 가보니까 자식들이 한번 왔다고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자랑하는 것을 보았는데 내 가슴이 아팠습니다. 여러분 부모가 늙었다고 해서 외로운 곳으로 던져버리는 것. 이것이 효도인 것입니까. 부모가 나이가 늙으면 여러분 가까이 있어서 부모를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편만 된다면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집 근처에 부모님 따로 있을 마련해 주고 그렇지 못하면 함께 못사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것은 부모와 자식이 떨어져 있어 가까이서 사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여자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찌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서 그 여자와 연합해서 따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은 합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여유가 없으면 부모를 집에 모셔야지요. 여러분 나이를 먹으면 서러움도 잘 타고 그리고 잘 삐지고 그리고 또 어린 아이처럼 됩니다.
모시기가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식된 도리로써 노후에 부모를 모시고 있을 곳을 제공하는 것이 효도요. 부모에게 좋은 옷을 사서 입히시고 좋은 음식을 대접하는 것, 이것은 자식으로써 효도하는 것, 마땅히 해야할 일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안하고 효도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베풀어서 부모님들이 수입이 없으니까 자녀들이 수입이 있을 때 도와주심으로 그것으로 맛있는 것도 사 잡수시고 국내외 여행도 할 수 있게 해 주시면 이야말로 금상 첨화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종교적인 호의 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노인이기 때문에 외롭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듣고 싶고 참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자꾸 노인들이 참견하면 귀찮치요. 제가 불광동에서 목회 할 때 팔십이 다 된 할머니 한 분이 교회 와서 하루종일 우리 집에 와 있습니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나는 집에 가도 외로워."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손주들도 나만 가면 할머니 가라고 하고 아들딸도 나를 싫어하니 나는 교회가 좋아 전도사님은 나를 좋아하니까 나는 교회가 좋아"
그러면서 내 단칸방에 들어와서 예배보려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나는 옷도 갈아입을 수 없어요. 옷을 못 갈아입고 이렇게 하면은 " 나 돌아앉아 있을게 옷 갈아입어" 그래서 할 수 없이 할머니가 돌아앉으면 내가 옷 갈아입으면 내 밥상에 또 같이 잡수십니다.
사실 나도 귀찮았다고. 그러나 주의 종이 어떻게 합니까. 내가 잊을 수 없는 것은 하루는 " 나 늙었다고 싫지" 그럽니다. " 할머니 왜 싫어요. 안 싫어요. " 그러니까 " 나는 늙었어도 마음은 여학생이야" 나이가 늙으면 외롭습니다. 이러므로 호의 인이 필요합니다.
주일 예배드리고 난 다음 여러분 반드시 부모님을 신방 하십니다. 혹은 부모님 모시고 왔으면 식사라도 같이 하고 이야기를 즐기십시오. 서로 교통을 즐기십시오. 저는 이 설교 할 때마다 내 마음속에 찔립니다. 왜냐하면 저는 부모님과 만나서 이야기 할 시간이 너무나 없습니다. 이른 새벽에 나와서 밤늦게 집에 들어가고 주일날은 제가 가장 바쁜 날이 되어서 이 일을 하지 못해서 제 마음속에 늘 불효한다는 생각이 심명 속에 고통을 가져다주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여러분 부모에게 효도를 하기 위해서는 부모에게 즐거움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부모에게 즐거움을 드릴까요. 우리 예수 믿는 부모야 자식이 예수 잘 믿고 건강하면 그것만큼 즐거움이 없습니다. 예수를 잘 믿어야 되요. 부모의 소원은 자식이 예수를 잘 믿고 함께 천국에 가는 것이 부모의 소원인데 그 자식들이 그 소원 들어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이러므로 주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면 그 부모의 마음속에 흐뭇하고 기쁩니다. 그것 뿐 아니라 부모 생전 그 앞에서 형제간에 우애해야 합니다. 여러분 부모 앞에서 형과 아우들이 물고 찢고서 싸우고 서로 고소하고 분쟁하면 그것은 부모의 마음 속을 멍들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열 자녀가 있어도 열 손가락 깨물면 다 아픈 것처럼 다 사랑합니다. 저는 아홉형제 중에 장남으로 자랐는데 우리 할머님이 한번은 농담을 하셔서 저는 그것이 굉장히 정신적으로 고통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할머님께서 "야 추운겨울 날 나가 시장을 갔다 오는데 다리밑에서 애기 우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까 네가 강보에 싸서 버려져 있더라. 그래서 너는 주워온 놈이다.
"이래요. 그때부터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조금만 섭섭하게 해도
"그렇지 나는 주워왔기 때문에 나를 섭섭하게 하고 누나나 동생들은 직접 나았으니까 그렇게 잘 돌 보와 주고 "
이러한 마음이 늘 들어요. 자식들 키울 때 절대로 그런 말해서는 안됩니다.
주워왔다는 소리해서는 안됩니다. 편애하지 말고 공평하게 사랑해 주고 그러고 난 다음 그 자식들은 또 부모 앞에서 형제들이 우애있고 서로 사랑하면 부모가 그것을 볼 때 정말 마음이 좋습니다.
성경에도 말하기를 "형제가 서로 사랑하며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부모 생전에 부모 앞에서 형제간에 물고 찢고 싸우는 이런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상첨화로 자식들이 세상에서 잘 뛰어서 타인에게 칭찬 받고 존경받으면 이 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저희 좋은 친구 선배 가운데 케찹목사라고 있습니다.
이 분은 정말 머리가 좋고 항상 그 마음속에 공대에 들어가서 공학 박사가 되려고 했지만 가정 형편상 그것을 못하고 결국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들 하나만은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서 미국 MIT 공대에 보냈습니다. 그래서 원자 박사학위를 받게되었습니다.
그 박사 학위를 받는 날 자기가 강단에 갔는데 수많은 부모들이 앉아 계시는데 자기도 부부간에 앉아 가지고서 자기 아들이 박사 학위증을 받아서 가슴을 피고 만면의 웃음을 띄고 나오는 것을 볼 때 자기 삶의 보람을 그렇게 느꼈다고 그 자랑을 나 만날 때마다 해서 내 귀에 못이 박혔습니다. 이제 그만 하면 좋겠는데 만날 때마다 그이야기를 합니다.
자식이 잘되는 것이 부모에게 얼마나 즐겁습니까. 부모는 자식이 자기 생명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식이 잘 되는 것 부모가 좋아하고 즐겁습니다. 우리 한국 속담에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형제가 서로 살더라도 형과 아우를 비교해서 누가 잘랐다고 하면 서로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식 잘났다는 소리는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그것은 들으면 좋습니다. 이러므로 자식이 이 세상에서 출세해서 잘 되면 그것이 부모에게 굉장한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고 그것이 또 효가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오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께서 효성스럽게 사는가 불유하게 사는가 이것을 늘 살펴보고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여러분의 기도와 생활에 축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 보면 하나님 앞에서 부모에게 저주해서 무섭게 저주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로 노아가 포도원을 심어서 그 열매를 짜서 술을 만들어 마시고 난 다음 매우 취했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잃고 옷을 다 벗어버리고 방안에서 큰 대자로 누어서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 화안이 아버지 방에 들어 왔다가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벌거벗고 대취해서 주무시는 것을 보고 그만 웃고 밖에 나와서 형제들에게 아버지가 대취해서 벌거벗고 누워있는데 보니 희한하다. 그 말을 듣자 형 샘의 얼굴이 노랗게 되고 야벳도 부들부들 떱니다.
겁을 내었습니다. 아버지가 그런 것을 보고 흉을 봐서는 되겠느냐. 그래서 샘과 야벳은 아버지의 의복을 취해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뒷걸음질 하고 들어가서 뒤로 속옷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술에서 깨어나서 그 속을 듣고 아버지는 대노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바로 이 노아의 입을 통해서 세 아들들에게 그때 예언을 했습니다. 샘의 하나님이 찬송할찌어다. 하나님은 야벳을 창대케 하사 샘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하암은 종 중에 종이 될찌어다.
부모를 흉보고 욕한 결과로 종 중에 종이 되는 저주를 받은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부모에게 효도했다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고 그 행위가 한 책이 되어 기록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룻기인 것입니다.
여러분 룻은 이방 여자였지만 그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습니다.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베들레헴에 큰 흉련이 들어서 먹고 살 수가 없어서 그 아내 나오미와 함께 두 아들을 데리고 먹고 살려고 모압땅으로 갔었습니다.
그래서 모압 땅에 가서 살다가 엘리멜렉은 병들어 죽고 그래서 나오미는 두 아들을 모아미에 있는 오르바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아주고 한 십년정도 살다가 두 아들조차 다 죽었습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이제 신랑을 잃어버려 청산과부가 된 두 며느리를 데리고 그곳에 살수가 없는데 소문을 들으니까 이스라엘에 비가 와서 다시 먹을 것이 가지고서 고향산천에 돌아가기로 결심을 한 것입니다. 두 며느리가 어찌해도 시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하니까 나오미는 강권에서 말했습니다.
나오미는 맏며느리와 둘째 며느리를 보고 이제 나를 따라올 필요가 없다. 따라와도 너희 신랑도 없는데 신랑 없는 청산며느리를 데리고 살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너희는 친정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집가서 자녀를 낳고 잘 살아라. 강권하니까 맏며느리 오르바는 친정으로 떠나고 말았으나 둘째 며느리 룻은 절대로 한사코 결단을 하고 안 떠나겠다고 말을 합니다.
룻기 1장 15절에서 18절에 보면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그래서 이 둘째 며느리는 결사하고 시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와보니 이미 떠날 때 집도 팔았지요. 점토를 다 팔아버렸으니 의지 할 때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룻이 노동을 해서 그 어머니를 공양합니다. 봄철이 가서 추수할 때 가 오니 밀보리 추수할 때 그는 이삭을 주우러 나갑니다.
하루는 우연히 이삭을 주우러 나가는데 나오미의 친척인 보아스의 밭에 이삭을 주우러 갔습니다. 보아스는 굉장한 부자입니다. 나오미의 신랑이신 그 엘리멜릭과의 친척관계였습니다. 그래서 보아스가 보니까 자기 친척인 엘리멜릭의 며느리 룻이 와서 이삭을 주고 있었습니다.
베는 사람들에게 많이 많이 이삭을 남겨주어라. 그래서 충분히 줍게 하라. 그러고 난 다음 룻에게 와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룻기 2장 11절에서 12절에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그러면서 다른데 가서 이삭줍지 말고 우리 밭에 와서 계속 추수할 때 이삭을 주우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룻은 열심히 이삭을 주워서 그것을 가지고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음식을 지어드리고 봉양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보아스가 바로 나오미의 친척인데 이스라엘은 재산 물을 권한이 친척에게 있습니다.
친척이 가난해서 집과 점토를 다 팔았으면 그 가까운 친척이 와서 팔았던 것을 다시 값 주고 살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보아스의 마음에 감화 감동을 해서 그래서 엘리멜릭이 팔아버린 집과 점토를 다 물어줄 각오를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주고 집도 다시 사주고 점토도 다시 사 주었는데 유대인의 습관을 보면은 과부가 된 여자를 보면 과부까지 함께 자기가 책임을 지어야 합니다. 이래서 거부인 보아스는 집과 땅만 물어서 주었을 뿐 아니라 과부의 룻을 물어서 자기 아내를 삼았습니다.
그래서 이방에서 외롭게 지낸 이 룻은 거부인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않고 잘 사며 시어머니를 지극히 공경했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주어서 이 보아스와 결혼한 이후에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 아들 이름이 오벳인데 오벳이 누구가하면 만성천자 다윗의 할아버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 룻이 이스라엘에 와서 시집을 와서 부자집의 부인이 되었을 뿐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효성을 지극히 가상히 여기셔서 그 혈통에서 다윗이 태어나게 하고 그 긴 혈통에서 우리구주 나사렛 예수그리스도가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 효성스러운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얼마나 큰 역사를 이루시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불효하고 부모에게 거역하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기도하고 찬송해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와 찬송을 받아드리지 않습니다.
철야하고 금식한들 그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근본적인 바탕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러면 네가 세상에서 잘 되고 장성하리라는 이것이 기반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부모하나 공경하지 못한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섬긴다는 것은 거짓된 말인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의 부모, 부모의 부모는 즉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를 하나님처럼 섬기면 그를 통해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잘 섬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이 땅에 살면서 반드시 해야 될 두 가지는 육신의 부모를 잘 공경하고 효도함과 동시에 우리를 지어서 이 땅에 살게 하신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영의 아버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육신의 부모 섬기고 저 영원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인간으로써 이 세상에 태어난 의무인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죄악가운데서 멸망받기를 원하지 않으므로 이천년전에 독생자 예수를 육신을 입고 오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맏아들로써 여러분과 나를 구원해서 하늘나라에 들어오게 하시려고 친히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서 그 몸을 찢고 그 피를 흘려서 우리의 죄악을 다 용서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를 통해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여러분과 나에게 사랑과 자비와 용서와 긍률을 베풀어주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받아 드리고 하나님 품에 안겨서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가 경외하고 섬기며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서 사는 것은 우리 인생들이 살아갈 마땅한 의무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끝나는 날에는 우리 부모가 우리 형제가 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모이게 됩니다.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고하는 것이나 앓은 것이나 죽는 것이 없는 천국에 우리 다 함께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잠시 잠깐이면 오시리라 오시리니 지체치 아니하리라고 말씀한대로 그저 주님이 이 땅에 강림하실 날이 우리 눈앞에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우리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모시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나와서 아버지를 섬기고 아버지께 효도를 다 하십시다. 진실로 하나님 아버지를 잘 섬기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가 상달되게 하는 것은 지상에서 나아서 길러주신 우리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다 부모를 모시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자식들을 거느리고 있는 부모인 것입니다. 훌륭한 부모로써 자식들의 효성을 받아드릴 줄도 알아야 됩니다. 또 훌륭하게 부모를 잘 섬기고 효도를 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과 나는 우리의 신앙의 기본이 되는 효를 다 하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효는 우리 신앙의 근본이 되옵니다. 효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고 병도 낳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시여 우리의 기도의 근본이 부모와의 좋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드릴 때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우리 가슴에 손을 얻고 아버지여 생각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만일 우리가 부모에게 불효했으면 오늘 회개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가 이미 하나님 앞에서 부모에게 효를 하려고 해도 부모가 이 세상을 떠난 분도 많습니다.
아버지 그러한 사람 철저히 회개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내 아버지시여. 남의 부모라도 제 부모같이 잘 받들어 섬기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옛 시인의 말에 어버이 살았을 때 섬김을 다하여라. 떠나간 후에 애달타 어찌하리 평생의 고치지 못할 이뿐인가 하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평생에 고치지 못할 한을 부모에게 불효하면 가슴에 맺히게 되는 것이오니 오늘 불효한 우리들은 다 회개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진실로 마음속에 부모에게 효를 하는 것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첫길이라는 것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
|
|
|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 김효자 /사업자번호831-29-0156/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 /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4394-4414 /E-mail:v919@naver.com | | Contact Webmaster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