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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전체리스트)

    창조적인 설교를 위한 방법론(5)
    2015-12-17 09:43:44   read : 1078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야기를 통한 설교 방법: 서사설교(1)1)

    김 운 용 (장신대 교수, 예배/설교학)

    인간 삶과 이야기

    쟌 도미닉 크로산은 “물고기가 물에서 사는 것과 같이 사람은 이야기 속에서 살아간다”고 했다.2) 사실 사람들은 누구나 이야기를 좋아하며, 이야기와 함께, 이야기에 묻혀서 살아간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사건들을 경험하게 되며, 그 이야기를 통해서 개인적인 간격과 시간적 간격을 좁혀 나간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종교적 이야기들과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엮어져 가는 이야기들 속에 뿌리를 두고 살아간다.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를 낳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람들은 함께 연결되어가며, 인간적인 결속을 다져나간다.

    또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며, 오늘에서 그것을 기대하면서 비전으로 공유하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는 인간 삶의 기본적인 양식일 뿐만 아니라 의미를 가져다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야기 속에 나타나는 세계에 대한 경이감과 그 세계와 관련된 존재와의 교감을 가지면서 사람들은 경험하고 어떤 사실을 새롭게 인식해 간다.

    이야기는 추상적인 개념들을 구체화시키며, 인간 삶이 갖는 의미들과 깊은 연결을 지어준다. 이야기에는 뛰어난 수용성과 전달력이 있으며, 기억하는데도 뛰어난 장점을 가진다. 이야기는 청중들로 하여금 말씀을 가장 잘 이해하도록 도와주며, 사람들의 감성적인 부분을 고양시켜 주면서 오래 기억하도록 해주며,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들의 삶은 이야기로 채워져 왔고, 이야기에 의해서 아름답게 채색되어져 왔다. 사람들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살아간다. 그러므로 이야기가 시작될 때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며,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 기대하게 된다.

    이야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단순하게 이야기가 전달해 주는 사실 이상의 무엇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효과적인 이야기는 그것이 끝난 다음에 말하는 사람의 마지막 단어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가슴속에서 새로운 싹이 움터오게 하는 어떤 씨앗을 남기기 마련이다.

    강력한 이야기는 무엇인가가 일어나게 하며(do something), 그것이 일어나게 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effect something). 이야기가 끝났을 때, “아 그래요. 요점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겠어요” 하는 정도로 사람들은 반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야기 속에 빠져들며, 그 이야기를 통해서 어떤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어떤 것이 드러날 때 우리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고,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의 내용에 대해서는 놀라기도 하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이야기는 듣는 사람을 그 장소와 사건 속으로 함께 끌고 들어가서 그것들을 함께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등장 인물(character)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동일시(identification)를 갖게 한다.

    이렇게 이야기는 세계를 형성하고 변혁하는 힘을 갖는데, 기본적으로 개인의 세계관과 생활 방식에 있어서 그것들을 형성하고 변혁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야기는 보다 넓은 자아 인식과 사회 인식을 갖도록 할뿐만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하여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쉽게 전달되지 않는 실재들을 볼 수 있게 하며, 문화적 가치들과 행동 양식들이 이야기를 통해 형성되고 변혁된다. 이렇게 이야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신선한 묘사들, 즉 새로운 관점들이나 새로운 전망들을 소개하면서 새로움”을 더해준다.

    성경, 설교, 그리고 이야기

    이렇게 어떠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이야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단순한 하나의 테크닉 이상의 것이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인간 의사소통의 중요한 양식이며, 문화의 전달 통로이고, 잠재적으로 심오하고 원대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실 때 여러 이야기(비유)를 사용하셨을 것이다. 그분은 개념이나 조직적인 논리를 통해서 어떤 진리의 말씀을 전하려고 하시지 않으시고 늘 이야기를 즐겨 사용하셨다.

    이야기의 효과성(effectiveness)이나 탁월성 때문만이 아니라, 이야기는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복음을 전달하시는 예수님의 방식이었다. 좋은 이웃인 누구인지를 묻는 한 율법사의 질문에 대해, “좋은 이웃이란 첫째..., 둘째... 이다...”와 같이 논리적으로 정의하려 하시거나 논증적으로 증명하려하지 않으시고,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 내려가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로 시작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그 어떤 정의보다도 선명하고 훌륭하게 이웃에 대해 정의를 내리셨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이야기(비유)를 들으면서 청중들은 여리고로 가는 길목에 서게 되며, 그 아픔과 고난의 현장에 동참하게 된다.

    가슴을 파고들 듯이 밀려오는 메시지, 참 이웃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 가슴으로 담게 되며, 느끼게 된다. 그래서 에이모스 윌더(Amos Wilder)는 복음의 바로 핵심적인 본질은 이야기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고 주장한다.3) 예수님이 이야기를 즐겨 사용하신 것은 청중들의 관심만을 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의 본질적인 특성 때문에 그리하셨다는 것이다.

    복음의 구조는 잘 갖추어진 논증을 통해, 즉 일련의 개념(idea)들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다. 정의하고, 삼단논법과 같이 논증하는 것도 아니며, 종교적인 정의를 열거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메시지를 삼단논법이나 지적인 논증, 혹은 정의로 바꾸어서 전한다면 복음 그 자체의 본질적인 특성을 변형시키는 것이 된다. 이런 점에서 크래독은 복음 “메시지의 본질적인 구조는 언제나 이야기(narrative)의 특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4)

    구약의 대부분도 이야기로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다스리시며, 이스라엘이 어떻게 그 다스림 가운데서 살아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시대를 넘어서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현존과 역사를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경험한다.

    기억하고(remembering), 이야기하면서(telling)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건들은 새롭게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이야기(storytelling event)를 통해 현존하신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는 형성되고,5) 거룩한 이야기들을 되뇌면서(retelling)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고, 미래의 사건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의 삶은 그 자체가 이야기의 특성을 가진다”고 말한 웨인 로빈슨(Wayne B. Robinson)의 주장은 옳다.6) 우리는 구약 성경의 중심에서 우리는 그러한 특성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이 제물을 드리기 위하여 성전에 와 엎드렸을 때, 성경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는지에 대한 “이야기”(narrative)를 통해 예배자들에게 들려줄 것을 제사장들에게 부탁하고 있다. “너희를 구원했기 때문에 너희는 나를 잘 섬겨야 한다”는 명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유리 하는 아람의 이야기(신 26:5-9)”를 통해 하나님 구원의 역사를 말하라고 명령하신다.

    왜 성경은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야기를 사용하고 있는가? 복음은 이야기의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며, 복음으로 중심으로 엮어지는 우리의 신앙생활 역시 이야기의 특성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이 그러하듯이 우리의 개인의 신앙여정도 주님이 세례 받으시고, 공생애의 삶을 사시며, 죽음으로, 그리고 부활로 옮겨가는 것과 같은 이야기의 특성(narrative quality)을 가진다. 사람들은 이야기 안에서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설교의 다른 수단을 통해서 일어나지 않은 것도 이야기를 통해서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이야기(narrative)는 하나님과 세상(world)을 드러내는 도구였으며 사람들도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을 노출하고,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나님께서도 이야기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선명하게 노출시키고 계시하시는 장(場)으로 삼으셨다.

    7) 이렇게 복음의 본질적인 특성은 이야기의 형태를 통해서 전달된다. 그래서 부머샤인은 복음은 본래 “이야기로 말하는 전통(storytelling tradition)”이었다고 주장한다.8)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이야기를 사용한 다른 이유는 이야기가 본질적으로 경험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말하고 듣는 것은 우리의 삶의 경험과 같은 구조를 가진다. 경험은 본질적으로 이야기의 특성을 가진다.

    우리 삶은 이야기와 같이 하나의 에피소드 뒤에 다른 에피소드들로 이어지면서 채워진다. 우리가 서로를 알아 가는 방식의 하나도 우리의 이야기들을 말함으로서이다. 이렇게 이야기가 말해질 때 공동체는 형성되게 되며 서로가 서로를 깊이 알아가게 되면서 깊은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복음의 선포인 기독교의 설교도 원칙적으로 이야기의 특성(narrative quality)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 때문에 계몽주의 이후 인간의 이성에 우위를 두는 영향을 받아 기독교의 설교 역시 논증과 명제 중심의 설교의 형태를 가졌으나 1970년대 이후 현대 설교학에서 이야기의 특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들은 새로운 도전과 흐름으로 와 닿고 있다.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설교 방법은 하나의 방법론으로 자리를 잡아갈 뿐만 아니라 설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야기를 통한 설교 방법이 여러 설교 방법들 중에서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거나, 단지 가장 감화력을 주는 방법이기 때문에라기보다는 최소한 설교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설교학에서의 이야기와 설교

    이렇게 “설교의 전달”이라는 측면에 깊이 관심을 가져 온 현대 설교학은 설교에 있어서 이야기의 사용의 중요성을 새롭게 발견하였다. 복음의 선포로서의 설교는 이야기로 되어 있으며, 성경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로서 이야기를 사용하고 있음을 새롭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의 배후에 있는 초대교회의 설교(speech)가 어떠했는지를 추적하였던 윌더는 기독교 설교의 가장 기본적인 모드(the basic speech-mode of Christianity)는 이야기였으며,9) 이야기가 초대교회 생활과 증언의 기초를 이루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있는 곳, 어디에서든지 그들의 믿음을 고백할 수 있다. 그들의 성경이 없어도 이야기를 말함으로, 일련의 구원의 역사 가운데서 나타나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리할 수 있다. 하나님 말씀하시는 것도 이야기를 통해서 이다.

    하늘과 땅이 이야기 안으로 모아진다. 하나님은 역동적이고(active) 인간을 향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인간과 함께, 인간을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는 좋은 이야기와 같이 시작이 있고, 중간이 있으며, 그리고 끝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단순히 비전과 환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꿈의 장면(dream shot)과 같은 것이 아니고, 순례이며, 힘들지만 끝까지 달려가야 하는 경기이며, 간단히 말해 역사(history)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기독교의 설교는 불가피하게 이야기의 형태를 가졌다.10)

    이렇게 이야기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면서―이것은 어떤 점에서 기독교 설교의 기초에 대한 재발견이었다―논리와 명제 중심의 설교, 성경을 설명하는 해설식 설교, 설교의 개념을 전달하는 논증식 설교에서 이야기와 같이 흐름과 전개가 있는 설교의 틀을 발전시켰다.

    특히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설교(preaching-as-storytelling)는 논리적이고 명제 중심적인 전통적인 설교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등장한다. 전통적인 설교는 교리를 중심으로 엮어지며, 명제를 중심으로 한 대지로 구분하여, 논리적이고 논증적인 설교의 형태를 가진다.

    그 동안 설교는 주로 성경의 내용을 강해하고 설명해 주는 형태(an exposition of scripture)를 취하게 되었으며, 설교의 가장 두드러진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 설교는 논리를 통해 성경의 교훈과 교리를 가르치고(teaching), 성경의 내용을 전수해 주는(transmitting)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설교에서는 이야기의 특성(narration)은 사라지고, 논리적인 사고(reflection)가 설교의 기본적인 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야기는 어떤 명제를 설명하고 예증하기 위한 예화(illustration)의 차원에 머무르게 된다.

    설교에 있어 이야기의 중요성을 고려하도록 논의의 방향성을 제시해 준 사람은 그래디 데이비스(H. Grady Davis)였다. 그는 칼 바르트 이후 신정통주의 설교학에서 강조해 온 설교의 내용에 대한 강조로부터 이제 설교의 형식으로 설교학의 핵심적인 관심을 이동시킨 역할을 한다.

    설교자들은 종종 복음서의 대부분이 등장인물, 장소, 사건, 그리고 대화 등으로 되어 있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복음서는 어떤 일반적인 사상을 언어적으로 주해하고 설명해주는 주석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설교의 9/10정도는 언어적 주해나 논쟁으로 채워지고 있다. 사실 복음서에는 주해는 고작 1/10도 안 된다. 복음의 중심 내용은 주로 구연되는 이야기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11)

    이러한 데이비스의 주장은 1960년대와 70년대 북미의 설교학계에서 이야기의 설교와의 상호관계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탐구하도록 촉발하였으며, 논리 중심의 논증적이고 명제 중심적인 설교 형태--계몽주의 영향과 함께 형성되어 지난 300년 동안 중심적으로 사용되던 설교의 틀인--로부터 설교의 새로운 형태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크게 공헌한 사람은 차알스 라이스(Charles Rice)와 프레드 크래독(Fred B. Craddock)이었다.12) 그들은 이야기와 설교에 대한 상호 연관성에 대한 연구를 불러 일으켰으며,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발달, 문학 비평과 같은 새로운 성서연구방법론, 언어신학 이론(linguistic theory), 그리고 이야기신학(narrative theology)과 같은 주변의 연구들이 이러한 흐름의 토대로 작용한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설교의 패러다임은 북미의 설교학계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고, 대중적인 흐름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물론 많은 저자들에 의해 수많은 저작들을 쏟아지는데, 이야기와 설교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주장들은 각기 다르다고 할만큼 다양한 형태와 관점들이 제시되지만 설교에 있어서 이야기의 중요성을 함께 인식해 간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새로운 설교의 형태의 중심에는 이야기를 통한, 이야기와 같이, 이야기에 의한 설교의 형태를 개발하게 되었다. 이러한 설교의 형태는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는데, 이러한 모든 설교 형태의 가장 기본적인 골격은 언제나 이야기에 있었다.

    이제 설교를 “이야기를 말하는 것”(story-telling), 혹은 “이야기 나눔(shared story)”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통한 설교의 틀은 어느 한 가지라기 보다는 커다란 우산과 같이 다양한 형태를 포괄하는 형태로 발전되어 간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설교는 현대 설교학에서는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지는데, 설교에서 실제로 하나의 이야기 혹은 몇 개를 이야기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주장과 이야기와 같은 형태, 혹은 이야기의 형식을 따라서 설교를 구성할 것을 주장하는 관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이러한 설교의 틀이 제시되면서 가져온 긍정적인 공헌이 있다. 먼저 교회로 하여금 이야기에 관심을 유도하면서 결국은 성경에 관심을 갖도록 했다. 설교자는 대체적으로 주제설교를 거부하고 성경본문 자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둘째로는 설교의 형태를 더욱 풍성하게 해 주었는데, 성경 본문의 형식을 중요하게 인식하게 되면서 다양한 설교 형식들을 추구하게 되었다.

    셋째로는 성경이 어떤 영적 실체를 이론적으로 논증 하려거나 설명하려고 하기보다는 그것을 서술하려는 특성(indicative character)을 가지고 있음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넷째로는 설교에 있어서 지성뿐만 아니라 이제는 감성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설교의 전반적인 특성이 새롭게 재편성되었다는 점이다. 논리적 논증 중심의 설교는 이제 지배적인 방법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

    다섯째로는 설교의 언어에 내포된 시적이고 은유적인 측면이 부각되면서 설교에서의 상상력의 역할이 새롭게 강조되게 되었다.13)

    이야기가 가지는 특성

    이제 이야기를 통한 설교의 틀이 가지는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이야기가 가지는 특성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특성을 잘 이해할 때 우리가 논의하려고 하는 서사설교에 대한 기본적인 틀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에는 언제나 그것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와 관련한 “내용”(content)이 있고, 어떤 내용을 전달하는 지와 관련된 형식(form)이 있다. 서사비평(narrative criticism)에 대한 그의 책에서 막 포웰(Mark A. Powell)은 이야기(narrative)에는 그 이야기의 내용으로서의 “스토리”(story)와 그 이야기가 어떻게 말해지느냐에 대한 수사학적인 관점을 말하는 “담론”(discourse)으로 구분한다.14)

    그에 따르면 하나의 스토리는 사건(events), 등장인물(characters), 배경(setting)이라는 요소들로 이루어지며 이 세 요소의 상호 작용을 플랏(plot)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담론은 그 스토리(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을 말하는데, 기본적인 사건, 등장인물, 그리고 배경이 동일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엮어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주로 서사비평은 ‘담론되어진 것으로서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내재된 독자(implied reader)로 하여금 이야기를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재된 저자(implied author)가 어떤 방법을 사용하느냐를 묻는 것이다. 주로 서사비평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어떤 형식을 따라서 말해지는가와 어떤 특성을 갖는가와 관계된 몇 가지 내용을 설교와 관련하여 다루게 된다.

    첫 번째 이야기는 “관점”(point of view)을 가진다. 관점은 서사비평이나 문학비평(literary criticism)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로, 이야기 전체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한다. 서사비평에서는 내재된 저자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한가지 방법은 독자들로 하여금 이야기의 관점과 일치하는 관점을 갖도록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그 이야기를 지배하는 “평가적 관점”(eval uative point of view)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것은 내재된 저자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 세운 규범이나 가치관, 그리고 세계관을 가리킨다. 이것은 “판단 기준”(standards of judgement)이 되며, 이것에 의해서 이야기의 사건, 등장인물, 그리고 이야기의 배경(setting)이 평가된다.15)

    성경의 저자들은 언제나 모든 이야기의 관점을 하나님의 관점에 고정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야기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평가관점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그것이 규범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성경 저자들의 강력한 수사학적인 장치이다.16)

    이렇게 이야기에는 의도된 관점이 있으며, 성경에 나타나는 이야기로 된 본문뿐만 아니라 모든 이야기는 말하는 사람의 관점을 내포한다. 이야기의 관점을 설교와 연결시켜 볼 때, 관점을 바로 이해하는 것은 본문을 해석하는 데에나 설교의 진행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것은 설교의 주제를 잡는 것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설교자가 본문의 관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설교의 내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것은 설교의 진행 방향을 설정하고 장면을 전개해 가는데 필요한 요소이다.

    예를 들어 막 7장의 수로보니게 여인이 딸을 치유를 위해 예수님께 간청하는 내용에서 설교자가 본문이 의도하는 관점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정하느냐에 따라 설교의 내용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우선 “유대인 우선 구원”이나 “선별적인 사랑”이라는 관점을 가질 수 있겠다.

    다른 경우에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은혜 받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 “믿음의 사람으로 서기를 기다리시는 예수님의 인내” 등으로 관점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전자의 관점을 잡았다면 설교자는 본문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한, 즉 성경 본문의 관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 관점을 바로 하지 못했을 때, 설교의 내용은 성경 본문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될 수도 있고, 알레고리나 영해의 수준에 머물 수 있다.

    두 번째 이야기가 가지는 특징은 플랏(plot)이다. 모든 이야기는 플랏을 가진다. 그래서 혹자는 플랏은 이야기의 몸체(body)와 같다고 했다.17) 이것은 사건의 순서적이고 조직적인 배열을 결정짓는데, 상호 연관된 사건들의 의미 있는 연결고리이다.

    이것은 이야기의 구조(structure)를 규정해 주는 원칙이며, 청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감정적인 이입이 가능하게 해주는 방향으로 사건을 조직해 가도록 도와준다. 이야기는 시작이 있고, 중간이 있으며, 끝이 있는 흐름 속에서 전개되어 간다. 이 흐름 혹은 움직임을 지배하는 것이 플랏이다.

    여기에서 플랏은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긴장상태, 혹은 문제 상황으로부터 그것의 해결(resolution)로 향해 움직인다. 유진 라우리는 플랏을 정의하기를 “불평형 상태(disequilibrium)로부터 해결 상황(resolution)으로 움직여 가는 이야기의 지속적인 긴장감(suspense)"이라고 했다.18) 이러한 움직임 가운데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극적인 반전(reversal)을 필요로 한다.

    예수님의 비유를 연구하는 가운데 크로산은 이것을 ”반전의 과격성“(radicality of reversal)이라고 했다. 단순한 전환이 아니라 ”완전히 뒤집어 놓는 반전“(polar reversal)이기 때문이며, 북극이 남극이 되고, 남극이 북극이 되는 것과 같이 될 때를 그는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 것으로 표현한다.19)

    설교에 있어서 플랏의 개념을 가장 잘 정리한 사람은 유진 라우리(Eugene Lowry)이다. 그는 설교를 “이야기와 같은 예술 형태”(narrative art form)로 이해하면서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event-in-time)이라고 정의한다.20) 이 말은 모든 설교는 연속성과 움직임을 가지고 결론을 향해 점점 진행되어 가는, 즉 플랏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설교는 어떤 주제의 해설을 담은 덩어리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이며 진행과정(process)이다. 시작과 마침이 있는 시간 속에서 흐름이며, 그 흐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이것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가 가지는 특성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랑을 주제로 한 드라마라면 “사랑이란 ....하는 것입니다”와 같은 명제를 두서너 개를 선정하여 그것을 논증하듯이 풀어가지 않는다.

    컷과 컷이 연결되고, 사건과 사건이 연결되면서 처음 시작부터 움직임을 통해 스토리가 전개되어 간다. 이러한 이야기의 특성에서 플랏은 이야기의 구조뿐만 아니라 흐름을 규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플랏은 시작에서 불평형 상태 제시, 보다 깊은 모호함이 제시됨, 클라이맥스를 향한 극적인 반전, 그리고 대단원을 향해 움직이는 것과 같은 단계를 거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그가 주장하는 설교 형태(narrative preaching)가 가지는 기본적인 골격이다.

    세 번째 이야기가 가지는 특징은 움직임(movement)이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엮어가면서 클라이맥스에 이르면서 끝나게 된다. 이야기란 이렇게 움직임을 갖는다. 이 사건에서 저 사건으로 지속적으로 진행해 가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야기는 언제나 질서 있게 움직여 가는 연속 장면(ordered sequence)으로 연결된다. 이야기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대화도 이러한 연속된 장면을 가진다. 설교에서 이러한 움직임이라는 이야기의 특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새로운 시도임에 틀림이 없다.

    기본적으로 개념을 설명하고 논증하는 형식의 전통적인 설교가 정지된 화면처럼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면 이야기의 특성을 따라 움직임을 만들어 가는 설교는 정지된 화면이 아니라 움직임을 통해 발전해 가는 화면을 따라 설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론적인 내용은 전략적으로 연기되면서 설교는 연결되는 줄거리(sequence)를 통해 계속적으로 진행되어가다 마지막 부분에서 “아하!”의 탄성이 터져 나올 수 만드는 설교 구성을 꾀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라우리는 “결론의 전략적인 연기”(strategic delay)라고 주장한다.21) 이러한 움직임의 최종적인 목적은 “설교학적인 여행”을 청중들과 함께 해 가면서 말씀을 경험(experience)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이와 같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진리의 세계를 드러내고,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에 있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중요한 자원이다.

    수세기에 걸쳐 이야기는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생성(formation)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proclamation)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요소가 되어왔음을 감안할 때 이야기를 통한 설교의 형태는 설교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전통의 설교 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하나의 장을 여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의 특성을 이해할 때 이야기를 통한 설교의 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야기가 가지는 특성과 같이 서사설교도 이러한 특성을 따라 전개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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