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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전체리스트)

    창조적인 설교를 위한 방법론(9)
    2015-12-16 20:33:48   read : 1187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청중의 의식과 현상을 고려한 설교방법

    : 현상학적 전개식 설교(2)
    김 운 용 (장신대 교수, 예배/설교학)

    현상학적 전개식 설교는 청중들이 어떻게 듣는가를 깊이 고려한 설교 방법이다. 이것은 우리가 설교를 준비하고, 그 설교를 전달할 때 청중들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해 오랫동안 신중하게 생각하게 한다. 어떠한 언어가 사용되어야 함은 물론, 어떤 구조를 따라서 전개해 가면서 이 언어의 모듈을 적절하게 배치할 것인지는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이 방법론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장면”(move)과 “구조”(structure)이다. 즉 어떠한 장면을 만들고 그것을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이것을 수행할 것인가에 대해 버트릭은 풍부한 이론적 지침과 설교학적 이해를 제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법론에 있어서 확정적이고 단정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라우리의 이야기를 통한 설교 방법과 같이 기계적인 구조로 제한하기보다는 사람의 사고가 진전되는 과정을 고려한 설교 형태이기 때문에 상당 부분 개방되어 있고, 설교자의 창조성을 깊이 고려한다는 점이 장점이기도 하면서 현장 설교자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설교자가 이 방법론의 사고의 틀을 잘 이해하고 적용할 수만 있다면 유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지난 호에서 주로 이 방법론의 이론적 측면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설교 준비를 위해 실제 지침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전개식 설교 구성을 위한 지침

    현상학적 전개식 설교 방법은 청중들이 보고, 느끼고, 이해하고, 분명한 영상으로 의식 속에 자리 잡도록 하는 구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설교는 청중들이 어떤 틀을 통해 어떤 사실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에 깊이 관심을 기울인다.

    이렇게 설교가 개별적인 개념이나 요소들로 구성되게 되는데, 이러한 요소들을 순서에 따라 설명해 가기 위해서 배열된 언어의 모듈을 버트릭은 “움직임 혹은 장면”(move)이라고 부른다. 전통적인 설교가 대지를 만들어서 어떤 명제에 대한 논증의 형태로 설교가 구성되었다고 한다면, 전개식 설교는 언어의 움직임 속에서 만들어지는 장면의 “전개”(moves)에 의해 진행된다.

    이런 움직임들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청중들이 구체적으로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련의 언어의 모듈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 메시지의 결론을 향하여 서로 연결성을 가지고 진행해 간다.

    그러므로 청중들 앞에 장면들이 펼쳐지고 그것을 보게 하고, 느끼게 하고,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구조를 따라서 전개해 나가게 된다.

    현상학적 전개식 설교는 설교의 구조와 성경 접근에 있어서 전통적인 설교 방법론과는 차이를 가진다. 그 동안 이성주의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전통적인 설교학은 성경의 구절들을 마치 그것들이 정지되어 있는 그림과 같이 다루고, 논리적이고 교리적인 내용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한 이해는 성경 본문을 설교할 자료나 말할 거리로 가득 차 있는 창고 정도로 고립시킨다. 이러한 이해는 설교 디자인에 있어서 분류하는(categorical) 방법을 따라 대지를 만드는 설교 형식을 주로 따르게 되었다. 종종 전통적인 설교학은 본문으로부터 대지들을 추출해 내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예를 들어 요일 4장을 통해 “사랑”에 대해서 설교하려고 한다면, 주제에 관한 사항들이 대지로 분류되어 설명한다.

    1) 가족들 안에서의 사랑, 2) 교회 안에서의 사랑, 3) 세상 가운데서의 사랑. 이러한 대지들을 설명하고 예증하기 위해 예화를 한편 곁들이게 되면 설교 준비가 완성된다. 이러한 설교 형태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이러한 설교 형태는 정적(static)이며 교훈적(didactic)이다. 그로 인해 지루함을 야기 시킨다는 점이 문제로 다가온다.

    첫째, 둘째, 셋째 하면서 설교자는 쉽게 분류적인 대지를 펼쳐 보인다고 하지만 회중석에 있는 청중들은 설교의 핵심을 밝혀주는 문장을 대하면서 세 개의 대지로 언급될 사항들을 미리 알아차리기 때문에 별 기대를 갖지 못한 채로 설교를 듣게 된다.

    이것이 설교자에게는 수월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청중들은 어떤 기대감이나 말씀에 대한 흥분을 경험하기 어렵다. 명제적인 논리나 교리를 전달하는 데에는 효과가 있다고 하겠으나 청중들의 의식 속에 말씀 사건이 일어나도록 돕는데는 효율적이지 못하다.

    전개식 설교는 성경이 모든 진리를 증거함에 있어서 정체된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움직이는 활동사진이나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한다. 성경 구절들은 객관적인 설명으로 채워놓은 정적(靜的)인 정물화가 아니라, 이야기와 같이 움직임을 가지며, 에피소드와 에피소드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생생한 대화들을 주고받으면서 진행해 가며, 한 개념으로부터 다른 개념으로 계속해서 움직인다. 한편의 시와 같이 이미지들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개식 설교는 이러한 성경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작성되는 설교이며,

    새로운 설교 패러다임에서 제시하는 다른 방법론과 같이 이러한 전통적인 이해로부터 벗어나 시나리오와 같이 준비되는 설교를 표방한다. 이 형태는 처음부터 끝까지 움직임을 통해서 설교의 메시지가 드러나게 하는 설교이다.

    전개식 설교 방법은 청중들이 어떻게 듣느냐에 관심을 두고 작성되는 설교 방법이기 때문에 청중에 의식 속에 일어나게 될 현상들을 고려하면서 일반적으로 4-6개 정도의 “움직임 혹은 장면”들을 통해 설교를 작성한다. 각 움직임들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는 우리가 배워야 하고, 배울 수 있는 기술들이다.

    모든 움직임들은 정교하게 디자인되어야 하며, 또한 다르게 디자인되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설교의 언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와 어떻게 적절한 장면을 만들어(move) 설교를 구성하느냐(structure)가 중요한 관건이 되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설교를 디자인할 수 있을 것인가? 설교의 장면을 디자인함에 있어서 전개식 설교는 관점(point-of-view), 논리(logic), 통일성(unity)과 연속성(sequence)을 갖는다.

    관점은 설교가 지향하는 방향을 향해 선명하게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며, 논리와 통일성은 설교의 메시지의 일관성을 제시해 준다. 연속성은 각 장면들을 연결해 주며, 설교가 가지는 이동과 움직임을 통한 여행과 같은 특성을 유지해 준다. 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은 설교에서 전하려는 중심 주제인데, 성경 본문이 말씀하시는 내용 가운데 전하려는 설교의 주제 혹은 명제가 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다.

    먼저 버트릭이 제시해 주는 방법1)에 대해서 살펴보자. 만약 나사로의 비유(눅 16:19-31)를 통해 설교를 준비한다면, 본문 자체가 어떠한 움직임의 구조 속에서 되어있는 본문임을 알 수 있다. 부자가 나오고, 가난한 사람이 나오며, 두 사람의 위치가 극적으로 전환되는 장면이 나오고, 부자의 애절한 간청이 나오며, 아버지 아브라함의 엄중한 대답이 나온다.

    이 본문 자체가 5개의 움직임(move)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구조를 더 구체적으로 찾기 위하여 설교자는 주석 작업에 들어간다. 주석의 단계를 가지면서 설교자는 몇 가지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여기에서 부자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고, 산해진미와 같은 음식을 먹고 있고, 대궐과 같은 집에서 살고 있지만 그에게는 아직 아무런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남의 집 처마에서 구걸하며 살아가는 거지에게는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이라는 뜻의 나사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비록 부자집 쓰레기통에 음식을 먹고살아야 하는 처지이고 들개들이 그의 상처를 핥을 때에도 그것을 몰아버릴 기력도 없는 사람이었다.

    성경은 이 두 사람에 대해서 대조시키면서 보여주고 있다. 또한 “대문”이라는 상징에 대해서도 관심을 집중하여야 할 것이다. 갑자기 그들의 처지는 역전되어지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안에 있으며, 생전에 그는 부자집 음식찌꺼기로 연명해야 했는데, 이제는 아브라함이 청한 식탁에 앉아 있다. 이렇게 주석작업을 통해 본문을 세밀하게 연구한 후, 이제 설교를 디자인하게 된다.

    설교의 일련의 움직임들 사이에 설교의 서론과 결론이 위치하게 한다. 서론은 이 비유가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내용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이고, 처음 두 움직임들은 부자와 나사로의 상황들을 묘사해주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따라 전개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움직임은 역전을 통해 놀라움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보상하시는가? 부자는 그가 단순하게 부자였기 때문에 그는 지옥에서 영원히 보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질 수 있다. 네 번째 움직임은 부자의 간청을 소개하고, 그는 이제 낮아졌고, 나사로를 우러러보아야 할 상황 가운데 있음을 드러낸다. 부요 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전혀 모르고 지낼 수도 있다. 가난은 이 지구 상 어디에나 있으며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이 있음이 언급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들을 외면했던 부자는 “멀리”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음도 언급되어야 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 움직임에서는 우리는 아브라함의 냉정한 대답을 듣게 된다. 아브라함과 부자 사이에 놓여 있는 “큰 구렁”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이것은 안타깝게도 넘을 수 없는 종말론적인 영구적인 것임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 본문은 비극적으로 끝나버리고 도무지 아무런 희망도 없는 상태를 결과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우리의 대문을 활짝 열어놓을 기회가 주어지고 있으며, 그러한 개방을 위해 경고하시는 말씀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오늘 매일의 삶 속에서의 무관심의 대문은 도무지 되돌이킬 수 없는 구렁을 만들어서 하늘의 대문이 닫혀지게 될 수 있음이 선포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본문이 비유이기 때문에 본문의 움직임을 따라 구성했지만 다른 본문의 경우, 주제와 본문의 중심 메시지를 따라 다른 유형의 움직임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성경의 내용뿐만 아니라, 이야기나 경험, 그리고 설명이나 예증들을 통해 움직임을 형성하여 설교의 시작부터 설교의 종결까지 나아가게 하는 움직임을 통한 전개의 방식으로 구성할 수도 있겠다.

    이와 같이 버트릭의 방법은 우리가 설교할 때, 청중들의 의식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 또 일어나야 하는 것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도록 해주며, 언어가 가지는 힘과 무엇인가가 일어나도록 만들어주는 설교의 형태에 대해서 깊이 관심을 갖도록 해준다.

    전개식 설교의 실제

    이제 보다 실제적인 예를 들어보자. 설교자는 이번 설교를 전개식 설교 방법을 따라 설교를 준비하려고, 삼하 23:13-17을 본문으로 정한다. 본문의 배경은 다윗이 도망 다니던 때로 설정이 되어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삼하 23장은 다윗의 통치 후반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물론 본문은 회상 형식을 빌려서 삽입시키고 있기 때문에 다윗의 노년이 아니라 젊은 날에 이루어진 일이다.

    역대기 사가도 이러한 용사들의 명단을 언급하고 있는데(대상 11장) 이러한 용사들이 다윗을 왕으로 옹립하는데 공헌을 했던 공신들이었으며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대상 11:10). 그래서 본문의 앞의 말씀 1-7절은 ‘다윗의 마지막 말’이 나오고 있고 본문은 그의 용사들에 대해서 열거하는 가운데, 삽입구처럼 포함된 네러티브에 속하는 말씀이다.

    용사들의 명단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제시되는데, 8-17절에는 다윗의 세 용사에 대해서, 18-39절에서는 다른 두 용사와 삼십명의 용사들의 명단이 나온다. 본문의 위치는 첫 부분에서 제시된, 그리고 제시될 용사들에 대한 에피소드로 삽입되고 있는 말씀이다.

    세 명과 30명은 다윗 군대 조직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인물들이며, 이러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전하는 용사들의 명단 중간에 본문이 위치한다. 특별히 이 용사들의 놀라운 충성의 이야기는 다윗의 용사들의 용기와 충성심과 그들의 연합에 대해서 잘 묘사해 주고 있다.

    석의 작업을 통해 본문의 구조와 특성을 이해한 설교자는 설교의 전체적인 주제를 “강한 용사로 인정받았던 그들은 자신들의 가장 귀한 것을 드려서 섬겼던 사람들이었다”로 정한다. 오랜 묵상과 기도를 통해 설교자는 장면의 구성으로 들어간다.

    설교자는 장면을 구성함에 있어서 만남이라는 관점에서 본문의 배경과 세 용사들을 조명하고, 그들이 섬겼던 사실을 다시 구성하여 주는(retelling) 방식을 따라 설명하며, 그들이 어떻게 섬겼기에 강한 용사가 되었는지가 조명되고, 그리고 우리는 왕 되신 주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진행하는 형태를 취하기로 마음을 정한다.

    여기에서 설교자는 6개의 장면을 설정하고, 첫 번 장면은 만남의 축복이라는 관점에서 본문의 배경이자 다윗의 삶의 현장을 묘사하려고 한다. 청중들은 이 장면을 통해 곤경의 삶 속에 하나님의 역사 하심과 인도하심이 있었음을 헤아리게 될 것이다.

    우리 인생은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어떤 만남을 갖느냐에 따라서 삶의 내용과 질이 결정됩니다. 좋은 만남은 복된 삶이 되게 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만남은 인생을 불행으로, 파멸로 이끌고 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저는 늘 좋은 만남을 위해서 기도하고는 합니다.

    새로운 사역의 자리로 나아갈 때 이 만남의 축복을 간구 합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도 “만남의 복”을 주시기를 기도하곤 합니다. “좋은 선생, 좋은 친구, 좋은 신앙의 선배,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복을 주옵소서!” 이것보다 귀한 축복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일찍이 출세하여 정계에도 진출했고, 왕의 사위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성공한 것 때문에 시기와 모함을 받아 대역죄인이 되었습니다. 죽음의 위협을 받으면서 젊은 날의 대부분을 도망자로서 살아야 했습니다. 붙잡히면 죽임을 당할 것이기에 늘 긴장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도망자의 삶이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장래가 없는 그런 삶이었습니다. 그러한 곤고한 삶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에게 놀라운 한가지 복을 주셨는데, 그것은 “만남의 축복”이었습니다. 미래가 없어 보이는 도망자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지혜자들”도 있었고, 의리가 있는 “신실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용맹한 장수들”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참으로 소중한 만남의 축복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설교자는 설교의 시작 부분에서 본문의 배경과 연결시키면서 “만남의 축복”이라는 개념을 통해 지금 다윗이 서있는 자리를 조명해 주고, 이어질 세 용사들에 대한 설명과의 연결을 꽤하였다.

    여기에서 중심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미지는 “만남”이다. 이제 두 번째 장면에서 설교자는 본문의 네러티브를 리텔링(retelling)의 형식을 사용하여 들려줌으로서 본문에로의 나아가고 있다. 여기에서 설교자는 청중들이 이 세 용사들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무대 위로 초대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의 세팅 속에 설 수 있도록 초대하여 그들을 만나게 하면서도 왜 그들을 향하여 강한 용사라고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답변을 유보하고 있다. “남다른 무엇이 있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유보함으로서 그 다음 장면과의 연결을 꽤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설교자의 상상력도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

    오랜 도망 생활 때문에 다윗은 수년동안 고향에를 가지 못하고 있었기에, 나이든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 베들레헴은 언제나 다윗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고향에 가고 싶었지만 오늘 그의 생활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더더군다나 제 정신이 아니었던 사울이 나라 다스리는 일은 관심도 없었을 때 주변의 강대국인 블레셋이 침공해와서 베들레헴과 그 주변을 점령해 버렸습니다. 이제 고향 땅은 적군의 진영이 되었고 영영 갈 수 없는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소년기에 고향을 떠났기에 무엇보다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시간이 갈수록 더했습니다.

    어느 날 다윗의 숙소인 동굴에서 작전 회의를 마치고 굴밖에 나왔습니다. 그날 따라 보름달이 유난히 밝습니다. “오늘밤은 유난히 고향 생각이 많이 나는구만. 어머니는 잘 계시는지... 우리 고향은 이제 갈 수도 없는 땅이 되어 버렸어. 요즘에는 고향집 앞에 우물의 물이라도 한 모금 먹어 보았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단순한 그리움의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의 잃어버린 영토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가 장수들은 자기들의 처소로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날 새벽 아직 동이 트기도 전, 부르는 소리에 다윗은 눈을 떴습니다. 나가보니 지난밤 늦게 돌아간 세 장수들이 밤이슬에 흠뻑 젖어서 돌아왔습니다. 손에는 물 한 잔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지난밤에 무심코 던졌던 자신의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니 그럼 이 사람들이 지난 밤에 그 삼엄한 경비를 뚫고 고향집에 가서 물을 떠왔다는 말인가? 베들레헴은 블레셋 군대의 총사령부가 있는 곳인데 물 한잔 떠오려고 그 삼엄한 경비를 뚫고 어떻게 거기에를 간단 말입니까? 어떻게 물 한잔을 위해 생명을 걸고 적진을 뚫고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입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은 이러한 세 장수들을 가리켜 “강한 용사(mighty men)”라고 말씀합니다.

    자신들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적진을 뚫고 들어가서 왕이 원하는 물 한잔을 떠가지고 와서 건네는 세 장수들은 용사라고 말씀합니다.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섬긴 것입니까?.... 전투에 나가면 반드시 이기고야 마는 승부근성 때문에 그렇게 말합니까?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남다른 무엇이 있었습니다.

    전문을 싣지 못하지만 두 번째 장면에서 설교자는 몇 가지 예를 들어가면서 무엇 때문에 그들을 향해 강한 용사라고 말하는지에 여운을 더해 준다. 완력을 가진 조폭 세계에 대해서, 혹은 입학시험의 경쟁을 뚫고 합격한 머리 좋은 사람들의 예를 들면서 그러한 조건들이 강한 용사가 되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 “남다른 무엇”에 대한 여운을 남기면서 이 장면을 끝내고 있다.

    이 장면을 통해서 청중들의 의식 속에 본문의 배경을 선명하게 보고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세 용사들이 왜 강한 용사일 수 있었는지에 대해 선명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여기에서 사용되는 중심적인 이미지는 “강한 용사”이다.

    이제 세 번째 장면은 월드컵이 한참이던 때였기 때문에 오늘의 현장성을 살려 월드컵 이야기를 중심으로 장면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이 왕을 감동시켰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초점을 맞추었다.

    한국 남자들이 모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을 내는 이야기가 있지요. 군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한국 여성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군대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가 바로 ‘축구 이야기'라고 합니다.

    두 가지가 모두 지금까지는 남성들의 전유 문화였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이것들보다 더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가 있다지요?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 그러나 요즘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특별히 지난 6월 한 달은 남녀 노소의 차이가 없이 축구 이야기 때문에 온 국민의 가슴이 들뜨게 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16강에만 들어도 좋겠다고 했는데, 8강에서, 4강의 고지까지 올랐습니다. 온 국민이 나서서 응원하고 가슴을 졸였던 90분간의 시간이 끝나고 종료를 알리는 호각이 울리면서 승리가 확정되었을 때마다 온 나라가 열광과 환호에 빠졌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거리에 나서서 응원한 사람이 무려 470만이 되었다고 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23명의 태극전사들이 온 나라를 감동시켰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세 용사들도 자신의 왕으로 감격하게 합니다. 물 한잔! 그것이 천금보다 귀한 것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한과 억울함을 풀어줄 어떤 것이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물 한잔을 받아들고 다윗은 감격합니다. 그들은 다윗을 감동시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서슴지 않고 강한 용사들이었다고 말씀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도 예배 드리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예배에, 그들의 섬김에, 뭔가 다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에서 설교자는 태극전사들이 온 국민들을 열광시키는 것을 유비로 하여 그들이 섬기는 왕을 감동시켰던 다윗의 용사들, 그리고 오늘 삶의 현장과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들이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어떻게 감동시키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해답을 유보한다. 여기에서 중심적으로 사용되는 이미지는 “감동”이다. 이제 네 번째 장면은 ‘남다른 무엇’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게 된다.

    그들은 어떻게 자신들이 섬기는 왕을 감동시킨 것입니까? Columbia 신학대학원의 저명한 구약학 교수인 월터 브르그만은 그의 책에서 이 장면을 주석 하면서 그렇게 밝힙니다: “그들에게 남다른 용기와 충성심이 있었다.”2) 그렇습니다. 그들에게는 남다른 “충성심”이 있었고 남다른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명도 내놓을 만큼 충성스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포기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섬기는 왕이 기뻐하는 것은 결단코 포기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피곤한 몸을 누일 단잠도 포기합니다. 심지어는 그들의 생명과 장래도 포기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왕이 원하시는 것은 포기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브르그만은 세 용사들에 대해 그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용기와 충성심의 모델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주님을 섬길 때 이렇게 섬겨야 한다는 것이지요. 왕 되신 주님을 섬길 때 이렇게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도대체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어떻게 섬겼기에 우리의 모델로 제시하는 것입니까?.... 베들레헴으로 잠입해 간 세 용사들에게 왕을 위해서 충성심을 가지고 물길으러 가면 반드시 살아 돌아온다는 보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갑니다.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남다른 용기와 충성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생명을 걸고 자신들의 왕을 섬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 설교자는 이 장면을 통해서 왜 그들을 가리켜서 강한 용사라고 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서서히 보여주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사용된 중심 이미지는 “생명을 건 헌신”이다. 중간 부분을 많이 생략했기 때문에 그 흐름이 차단되고 ‘아 그렇구나’라고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설교자는 여기에서 생명을 걸고 헌신한 사람들의 예를 들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이제 다섯 번째 장면에서는 그러한 헌신이 가능케 했던 이유가 소개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다소 시간적인 차이가 있지만 다윗의 초기의 사건인 본문과 다윗의 통치 후기에 있었던 사건이지만 동일한 용사들이 변함없이 섬겼음을 염두에 두면서 삼하 18장의 사건을 중심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헌신은 그냥 되지 않습니다. 다윗의 세 용사들이 생명을 걸고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한가지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삼하 18:2-3 말씀을 보십시다. 다윗이 전투를 앞두고 군대를 편성하고 지휘관들을 세우고 작전명령을 내립니다.

    가장 어려운 전투에 임하는 군대를 격려하여 보내면서 그 격전의 현장에 나도 함께 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전투에 나가는 장수들이 보인 반응을 보십시오. “왕은 나가시면 안됩니다.... 왕은 우리 만 명보다 중요한 분이시니 성에 남아 계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다스려 주셔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왕 다윗을 너무 사랑했습니다.

    인간 다윗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의 인격, 비전, 넉넉함, 용기. 리더십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충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을 사랑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름 부으셔서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서 사용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인간적으로도 다윗을 좋아했지만 하나님이 오늘 그를 사용하고 계시다는 사실 때문에 다윗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귀한 분이었기에 그분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종이 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헌신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그들이 섬기는 왕이 얼마나 소중한 분인지를 알았을 때 그들은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충성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을 섬깁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놀라우신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이렇게 다섯 번째 장면은 생명을 건 헌신이 사랑의 마음으로부터 나왔음을 그려주었다. ‘아, 정말 나는 내가 섬기는 분을 사랑하는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결론과 같은 단계이다. 그러나 설교의 내용의 특성상 설교자는 한 장면을 더 만들었다.

    본문에서 간과할 수 없는 다윗이 영원한 왕이 아님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본문이 위치한 삼하 23장에는 다윗의 이름이 잠시 서두에서만 언급되고 그의 이름은 빠지면서, 모든 승리의 이유가 다윗에게 돌려지고 있지 않는 본문의 구조 때문이다. 왕조 신학이나 전제 군주 이데올로기에서는 있을 수 없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영원히 섬길 위대한 왕으로 본문뿐만 아니라 다윗의 시편과 생애 기록들은 그가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다스리심을 간절히 소원하였다. 본문도 다윗이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렸다는 장면을 결론으로 담고 있다.

    하나님이 영원한 왕이심을 선언하는 장면이다. 이러한 본문의 특성을 중심으로 설교자는 그의 회중들이 왕이신 하나님을 섬기도록 세움 받은 존재들임을 인식시키면서 그분을 섬기는 삶, 예배와 헌신의 삶으로 초대하는 것으로 마지막 장면을 구성한다.

    그들이 가져온 것은 삶 전부를 담은 핏잔이었습니다. 그 잔을 가져왔을 때 다윗은 그것을 받지 못합니다. 그렇게 소중한 헌신, 생명을 담은 핏잔을 누가 가로챌 수 있단 말입니까? 다윗은 그것을 하나님께 부어 드립니다. 이른 새벽, 이슬 젖은 땅바닥에 무릎 꿇고 그들이 들고 온 핏잔을 하나님께 부어드립니다.

    그날 예배드린 장소는 솔로몬의 성전과 같은 아름다운 곳은 아니었습니다. 수천의 소떼와 양떼를 번제물로 드렸던 대단한 희생 제사도 아니었습니다. 겨우 물 한잔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둘람 굴 앞에서 함께 무릎을 꿇고 드렸던 예배는 가장 귀한 것을 드렸던 최고의 예배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전부였습니다. 피였습니다.

    그들의 땀이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의 눈물이었습니다. 목숨도 아끼지 않고 내놓았던 거룩한 희생이었습니다. 감격하면서 예배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예배가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좋은 예배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해보십시오. 오늘 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입니다. ‘바로 사는 것’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로 남다른 충성심과 용기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얼마 전 월드컵 경기에서 16강이 확정되는 순간 그라운드 한편에서는 세 용사들이 무릎 꿇고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리는 장면이 크로즈업 되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뛴 사람들이 그라운드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듯 삶의 각처에서 이렇게 헌신하고, 가장 귀한 것, 핏잔을 들고 나아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이 되셔야 합니다. 좋은 예배자가 되셔야 합니다.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서부터 승리하셔야 합니다.

    예배의 승리 없이 인생의 승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예배가 있는 곳에서 기적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도망자들로 들과 산을 헤매야 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됩니다. 이슬에 젖은 땅에서 물 한잔 올려드리며 초라하게 예배했지만 그곳에서부터 예배의 기적이 시작되었습니다....

    나가는 말

    보통의 설교자는 마치 기차 차창 밖으로 전봇대가 지나가듯 주일은 빠르게 다가오고, 무엇을 전할까, 어떻게 전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한 주간을 산다. 매주일, 매월, 매년 반복해서 이 위압적인 업무는 설교자를 압박하면서 다가온다. 그냥 감당해서 되는 것도 아니요, 잘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은 이 사역을 더 힘들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주님이 지워주신 짐이요, 잘 감당했을 때 엄청난 결과를 예비해 놓으신 사역임에 틀림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설교를 통하여 그의 백성들을 함께 불러모으시고 세우신다. 설교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데 가장 중심적인 수단이 되어왔으며, 설교가 강력하게 행해지던 시대는 영적으로 충만했고 교회도 건강했다.

    반면 설교가 무기력하게 진행되던 시대에는 교회는 쇠퇴해갔다. 이러한 점 때문에 교회는 설교를 새롭게 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타성적으로 설교하는 설교자들도 있지만 신실한 설교자들은 더 좋은 설교를 위해 방법론적인 훈련을 계속적으로 수행한다.

    이러한 마음에서 시작된 본 연재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제시된 현상학적 전개식 설교에 대해 두 번에 거쳐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이것은 회중들의 의식(consciousness)과 이해를 염두에 두고 구성하며, 언어의 모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제시하는 방법이다.

    기계적인 틀에 맞추기보다는 설교자의 창조성과 설교 구성(structure)을 위한 기치를 요구하지만 설교자에게 개방성과 자유스러움을 부여한다는 점에서도 활용 가능성을 높여 주는 방법이다. 이에 대한 더 깊은 연구는 역시 설교자의 몫이다.

    운동 선수가 우승의 자리에 설 때에 그는 그 자리에 그냥 올라오지 않았음을 안다. 보통 사람들은 그 결과만 보지만 그 배후에는 피나는 노력 때문에 그 자리에 올라 선 것이다. 설교를 창조적이고 새롭게 하기 위한 설교자의 계속적인 노력이 이것들을 유용하고 효과적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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