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은 어디 있느냐? 2002-11-21 10:18:30 read : 5480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11-03 // 누가복음 17장 11~19절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17장 11~19절)
<목회기도>
2002년을 살게 하시고,
오늘 '추수감사주일'예배를 드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 이 시간 세상살이에 너무 힘들어
안타까운 형편에 있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실 줄로 믿고
고통 중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가정과 교회를 멀리 떠나 외국에 나가 있는 이들,
군대에 나가 있는 이들, 입원해 있는 병상의 환자들
저들 모두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3일 남은 수능시험을 준비하고 애쓰는 학생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시험으로 인해 시험에 들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성령께서 주장하여 주실 줄로 믿사옵고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옆의 분들과 "오늘 감사하며 사십시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배나 감사한 마음으로', '사랑의 쌀'과
'배, 감, 사과'를 가져오셨을 것입니다.
그 과일들을 모아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배와 감과 사과를 가져오셨습니까?"라고 인사하십시오.
혹 못 가져오신 분은 저녁예배 시간까지 가져오시면 됩니다.
꽃꽂이회에서 '조, 조롱박, 단호박, 고구마, 치자열매, 호박'등으로
예쁘게 강단을 장식했습니다.
여러분의 범사를 하나님께 감사하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성경에 언급된 감사절
구약 시대에 선민의 삼대 절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무교절입니다(출 23:15).
무교절은 유월절과 연관된 절기로써 애굽을 탈출할 때
수양의 새끼를 잡아 14일간 그 피를 문설주에 발랐고,
고기는 구워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먹고, 해가 질 때까지
24시간 지키다가 다음 15일부터 1주일은 무교절로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무교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먹은
고난의 떡, 곧 누룩 없는 떡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둘째로, 맥추절입니다(출 23:34).
맥추절은 보리 추수기간에 들판에 장막을 치고 살면서
포도와 무화과 등을 가꾸면서 소박하게 산 것을 기념하는 것으로
초막절이라고도 합니다.
셋째로, 수장절입니다(출 23:16).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받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함을 받아 나올 때
오랜 기간동안 광야에서 유리하면서 장막 생활하던 것을 기념하여
축제절로 지켰고(레23:43), 또한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하게 된 것을 감사하면서
추수 감사절로 지켰던 것입니다 (출23:16).
이는 바로 우리가 지키고 있는
추수 감사절 (Thanksgiving Day)이기도 합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
영국의 국교와 교회주의에 반기를 든
청교도들(Pilgrim Fathers)이 제임스 왕의 박해가 심해지자,
1620년 9월 16일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May Flower)호에
남자 78명, 여자 24명 총 102명이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물론 그때는 미국땅이 인디언만 사는 땅이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도시 생활을 해온 지식층이었으므로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땅을 파는 것은 고된 노동이었습니다.
그 해 겨울을 지나는 동안 44명이나 굶어 죽고 얼어죽었습니다.
이듬해 봄이 되자 인디안(Indian)들이 찾아와
옥수수, 밀, 보리, 원두콩 씨를 주고 씨 뿌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을이 되자 피 땀흘려 거둔 첫 수확을 쌓아 놓고
인디안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벌이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감사절의 시작입니다.
그 후 해마다 감사절을 지켜 오다가
죠지 워싱턴이 1789년에 11월 26일을 감사절로 정하였고,
1864년 링컨 대통령은 11월 마지막 목요일로 정하면서
"우리의 경건한 조상들이 이 아메리카 땅에 감사의 씨를 뿌린
그 신앙을 자손만대에 이어주기 위하여
이 날을 국가 축제일로 정한다"라고 선포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1936년에 11월 셋째 목요일로 정하여
오늘까지 공휴일로 지켜 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내왔고
지금도 그때 지키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계절이나 추수하는 상황을 살펴 볼 때
11월 첫째 주일에 '감사절'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되어
우리 기둥교회는 매년 11월 첫째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여러분은 오늘 아침에 눈을 뜬 것에 대해 감사하셨습니까?
교회에 오면서 바람을 느낄 수 있었음에 감사하셨습니까?
꽃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하셨습니까?
우리는 너무 엄청난 조건에서만 감사하려는 생각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주변에는 얼마든지 감사의 조건, 행복의 조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이기 때문에 감사해야 하나보다,
하나님의 뜻이고 명령이니까 그냥 감사해야 하나보다"라고
접어 두지 말고 기쁨으로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범사에 어떤 상황에서도
바르게 살고 최선을 다해 사시기 바랍니다.
그 생활 속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두고
부끄러움 없이 예수 이름으로 당당하게
"하나님 내가 여기 왔습니다."라고 할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도, 사람 앞에도 당당하게 복된 신앙 생활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난 10명의 나병 환자들
오늘 본문 말씀에 10명의 나병환자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에 문둥병이라고 했으나 요즘에는 <한센씨 병> 또는 <나병>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가진 개역 성경은 1956년에 번역 출판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50여년 전의 단어로 쓰여졌기 때문에
한자어와 어려운 말, 요즘에는 쓰지 않는 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보다 쉽게, 현대인들이 쓰는 말로 번역된 성경을
읽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몇몇 학자들과 교단들이 새로운 번역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직접 옮겨 적은 것이 아니고, 번역한 것이며
완벽하게 옮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번역이라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똑같은 문장을 10명의 사람에게 번역하라고 하면 전부 다르게 번역합니다.
그만큼 번역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제는 문둥병을 <나병>이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 기둥교회는 교회 창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나병환자를 돕는 [한국기독교구라회]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여러분이 드리는 헌금 중에 일부가
매달 기독교구라회에 전달되고 있습니다.
<나병>의 특징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감염된다는 것입니다.
나병은 무감각합니다. 나병에 감염되면 고통의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마디(nerve endings)가 죽기 때문에 육체적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꼬집어도, 불에 살갗이 타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나병 환자들의 고통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고통'입니다.
여러분, 아픔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해 보셨습니까?
통증을 느낄 수 있는 것도 감사의 조건입니다.
우리 몸의 질병들 중에 정말 무서운 병은
아픈 줄 모르게 다가오는, 통증 없이 생기는 것들입니다.
그런 나병 환자들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만남의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 모두는 이미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모셨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음을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삽니다.
하나님이 구별하신 주일을 지키고 하나님이 명하신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복된 주일에 예배의 자리에 있지 못합니다.
열 명의 나병 환자들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있는 곳까지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12절에 보세요. 나병 환자들은 '멀리 서서'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당시에 나병에 걸리게 되면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되었고
건강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규정대로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외치며 다녀
다른 이들의 접근을 막아야 했습니다(참조, 레13:45, 46).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율법 규정에 따른 것으로 그 당시 나병 환자들은 그 병이 나았다는 판정을
제사장들에게 받아야만 다시 온전한 사람으로 생활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 하신 것은
그들의 병이 나을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었고
'너희들이 내 말을 믿고 순종해서 제사장들에게 가면 병이 나을 것이다'라는
약속의 뜻도 있었습니다.
깨끗함을 받은 10명의 나병 환자들
그들 모두, 열 명 모두는 믿음으로 순종하며
제사장들을 향해 가는 중에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들은 정상적인 사람들 옆에 가까이 갈 수도, 살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성밖으로 쫓겨나 살면서 사람들이 던져 주는 음식을 먹고 사는
비참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얼마나 흥분되었겠습니까?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아마 가족들을 향해 소리소리 지르며 기뻐 뛰었을 것입니다.
친구들을 향해, 친척들을 향해 달려 갔을 것입니다.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마리아 사람
그런데 그 중에 당시 사람들에게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며
천대받던 사마리아 사람 하나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15절).
15절에 보면 "큰 소리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이 기쁨을 돌려드립니다."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칭찬과 예찬과 찬사를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쉽게 이해하려면 예수 믿는 운동선수들이 좋은 일이 있을 때
골을 넣었을 때, 경기에 이겼을 때 사람들의 찬사와 박수를 받기 전에
먼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호하는 관중들을 향해 손을 듭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운동선수들은 자기가 찬사 받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합니다.
여러분도 범사에 기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모든 일에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함께 찬양합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 모든 영광 하나님께
모든 영광 하나님께 / 나는 자유해">
이 사마리아 사람은 겸손히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17절).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깨끗함을 받은 사람들은 10명인데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그 아홉 명은 요구는 할 줄 알았습니다. 기도는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 몰랐고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그들은 최소한 인간적인 감사의 인사도 할 줄 모르는
예의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더 큰 것을 허락해 주십니다.
19절에 보면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더 큰 것을 주셨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네 병이 나은 것은 너의 믿음 때문이며
네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떄문에 영생의 복까지 얻었다"는
선언을 해 주신 것입니다.
은혜는 똑같이 10명에게 주어졌으나
받은 은혜에 대해 구체적으로 감사한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는
각자 감사할 줄 아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군중에 이끌려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길로 간다고 해서
감사를 소홀히 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한 사람은 예수님 앞에 감사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감사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수의 논리에 따르려는 사람들은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 한 사람, 인정받지 못하고 평범하게 아니 멸시받고 살던 사람
그 사마리아 사람은 해결 받은 기쁨을, 구원의 선물을 받은 은혜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겸손히 엎드렸습니다.
"네가 병 나은 것은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네 병이 나은 것은 너의 믿음 때문이다. 너는 구원을 받은 것이다"라는
이 선언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우리는 바쁜 세상살이에 얽매여…
혹은 세상살이에 정신 없이 바빠서…, 남과 비교하며 불평하고 원망하여…
감사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범죄심리학자인 소퍼(Soper)박사는
형무소에 있는 죄수와 수도원에 사는 수도사의 차이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갇혀서 세상과 단절되어 사는 것 같으나
형무소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불평과 요구만을 말합니다.
'내가 나가기만 해 봐라. 가만 두나 봐라'한다는 것입니다.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는 하루 종일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도 만일 감사의 기도 대신
요구와 불만의 기도만을 드린다면 형무소의 죄수와 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미국 뉴욕에 사시는 [최효섭목사님]께서
'자신이 느끼는 감사'를 책에 발표해 놓으셨습니다.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 되게 틀어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이 반성될 수 있습니다.
아들 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아내와 남편이 미워질 때도 있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인간 된 보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데 힘겨웁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서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허탈하고 허무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영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니까요.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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