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고향집 2002-09-23 16:03:50 read : 3668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요 14:1-6> <2002년 9월 22일>
□ 영원한 고향집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
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
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
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1-6>
지난 주간은 추석 명절인고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아직도 52년 동안 한번도 고향을 다녀올 수 없었습니다.
38선이 생기고, 휴전선의 철책이 세워진 후 한번도 고향을 다녀올 수 없었기 때
문입니다. 같은 이북의 고향을 둔 사람들 중에 미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은
몇 번 다녀왔다는 말도 들었지만 아직 대한민국 여권을 가진 일반 사람들에게
는 불가능한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행이 엊그제는 52년만에 처음으로 남과 북이 끊어진 철길을 다시 잇
기 위하여 동시에 기공식을 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제 고향에 갈 수 있는 가능성
이 점점 다가오고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 보았습니다.
고향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사람들에게는 실향민들이 얼마나 고향이 그리운지
잘 모를 것입니다.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뼈저린 그리
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유행가 노래에도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라는 한탄스러운 노랫
말도 있는 줄 압니다. <꿈에 본 고향>이라는 말처럼 고향의 그리움은 이제는 모
두 고목 나무의 옹치처럼 마음에 화석화 된 상태이지만, 그래도 그리운 곳은 고
향이란 말입니다.
저는 추석이 될 때마다, 고향을 그리면서 글도 써 보았고, 수필도 써 보았지
만, 지금도 그리운 곳은 고향입니다.
1. 이렇게 고향은 모든 사람의 마음의 안식처이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변해도 고향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곳입니다.
객지생활에 지친 몸들이 찾아갈 곳은 고향입니다.
고향에는 늙으신 부모들이 계시는 곳입니다.
자식들은 분주한 생활에서 가끔 잊고 지내지만,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나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고향입니다.
하늘의 별자리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듯이 고향은 우리들 마음 자리에서 그대
로 있습니다. 영원한 마음의 자리! 그것이 고향입니다.
제아무리 출세를 했어도, 제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되었어도,
고향은 변함없이 대해 주는 곳입니다.
고향은 나를 가식으로 꾸며주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맞이해 주는 곳입니다.
더욱이 괴롭고 외로울 때일수록 고향은 그리워집니다.
그러기에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사람들의 슬픔은 아마도 이 세상의 어떤 슬
픔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문에서 수몰지구의 사람들의 고향 그리는 마음도 절절한 것을 보았습니다.
고향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곳인데 물에 잠겨버렸으니, 얼마나 서운하
겠습니까!
고향이 그리운 것은 고향에는 어릴 때 친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향에는 천진난만하게 함께 자란 친구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고향은 자신의 마음이 담긴 추억들이 있는 곳입니다.
고향은 별을 보면서 미래를 꿈꾸었던 추억들이 서려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고향은 방랑자들의 마음의 방향을 정해주는 곳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믿는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영혼의 고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 고향을 다녀온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우리의 영원한
하늘나라 고향의 집을 생각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우리의 영원한 고향집은 하늘의 있는 집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나온 육신의 고향을 생각했다면 그거야 언제나 다시
돌아갈 기회가 있겠지만, 그러나 이제는 그 육신의 고향보다 더 나은 고향이 있
으니, 곧 하늘나라의 있는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추석절이 되면, 그리고 명절이 되면 이 말씀을 속으로 생각하
곤 하였습니다.'그렇지! 육신의 떠나온 고향이야 언젠가는 가볼 날이 오겠지,
하지만 이제는 더 나은 고향이 하늘에 있지 않는가!'라고 생각하면서 위로를 받
았습니다.
주님께서도 친히 말씀하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면서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고향의 집은 하나님이 마련한 집입니다.
우리의 영원토록 거처할 곳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도 집 없는 것처럼 서러운 것은 없습니다.
자기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일입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집을 마련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육신의 고향과 육신의 거할 집은 영원한 집은 못 됩니다.
몇 년간 살다가 모두 떠나야할 집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육신의 삶을 <나그네>와 <행인>에 비유하였습니다.
하룻밤 쉬어 가는 행인(行人)같은 존재들이 <인생>이란 말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아무리 애걸복걸해 가면서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해도 그처
럼 허무한 일도 없습니다. 모두 놓고 가야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낡아지는 것 뿐입니다.
여름날의 녹음이 그처럼 영원할 것 같이 푸르렀지만, 가을이 되니 모두 시들어
낙엽이 되어 떨어져 버리는 것을 보면 우리의 인생들도 모두 자연의 섭리에 순
응할 것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번 이산가족의 상봉하는 장면을 보면서 20
대 초반에 그처럼 싱싱했던 얼굴들이었을 터인데 이제는 모두 쭈그러진 양철통
같이 된 얼굴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있는 것들은 모두 낡아지고 쇠해지고 없어지는 것들이란 말입니
다. 육신의 살던 집들이 이번 폭우에 씻겨내려 형체도 없어진 모습을 보면서 더
더욱 세상의 있는 것들의 무상함을 절감해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마음의 고향, 영혼의 집이 마련되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영원한 집이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근심하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마련되어 있
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또 나
를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영원한 집엘 어떻게 갈 수 있다는 말입니
까?
3. 영원한 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갈 수 있는 곳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은 후에야 천당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합니다.
의식 떨어지면 그 후에는 찔러도 모르고 불태워도 모르는데, 죽으면 그만이지
또 무슨 내세가 있다고 하는가?고 오늘까지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이 이렇게 말
해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자들에게 곡식 알갱이 비유로 설명하였습니다.
알갱이가 땅에 떨어져 묻히면 알갱이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새 생명
이 발아하여 싹이 나고 줄기가 생기고 잎이 돋아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을
어찌 알지 못하느냐고 하면서 죽은 자의 부활도 이렇다고 하였습니다.
'죽을 것으로 심고 죽지 않을 것으로 살며...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죽을 것이란 몸둥이 이 육체를 말하고,
여기서 썩을 것이란 이 고기덩이 육체를 말합니다.
이 육체가 썩으면 영원한 생명의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육의 몸}이 있은 즉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신령한 몸}이 거할 곳이 바로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집입니다.
그 영원한 집엘 어떻게 갈 수 있느냐? 입니다.
세상 이치로 생각해 보아도 이것은 간단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집이 있어도 갈 수 있는 집은 내 집이 있어야 합니다.
서울에 집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내 집이 없으면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늘 나라의 있는 집엘 우리가 어떻게 찾아가겠습니까?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안내를 받아야 합니다.
서울의 그렇게 많은 골목과 아파트가 있는데 안내 없이 어떻게 찾아가겠습니
까?
그래서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내 아버지 집에 올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아니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그 길도 모를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모르면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이 인도하기 때문에 그런 것 걱정할 것 없습니다.
하늘의 있는 집으로 인도해 가는 길이 바로 주님 자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염려도 말고 나를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신의 거처할 집만 장만하려고 온갖 정성 다 거기에 쏟아 붓지만 말고,
<영원한 집>인 하늘나라를 먼저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하늘나라의 집 장만을 하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작은 집에서, 좁은 아파트 집에서 살고 있다 해도,
하늘의 있는 영원한 집을 바라보면서 낙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늘 나라의 시민권 자들임을 자각하고 정정당당하게 이 세상에서 살다가 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예수 잘 믿는 생활입니다.
그것이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 영원한 고향집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서 더욱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 의를 위하여 살다가 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