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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의 모델하우스
    2002-08-13 14:35:05   read : 3963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 8. 4 // 행 10:34-43

    요즘 우리나라에는 많은 외래어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외래어란 외국말이지만 우리말이 되어서 우리가 늘 쓰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 주위에 생각보다 외래어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미국에 가서 외래어의 원어를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많이 쓰는 '오라이, 오라이' '빠꾸, 빠꾸' 이런 말들의 뜻을 처음에 잘 몰랐어요. 뜻은 알죠. '오라이' 하면 오라는 말이고 '가라이' 그러면 가란 말이죠. 오라이는 'All right!' 괜찮다는 말이고, '빠꾸'는 'back'입니다. 뒤로 가라는 말이죠. 일본인들이 발음이 안 되니까 이렇게 사용한 모양입니다. 우리나라는 외래어의 홍수입니다. 그러나 이북은 그렇지 않은데 가능하면 한국말을 쓰려고 합니다. 통일이 되면 참 걱정되는 것이 많습니다. 축구시합 하나만 봐도 우리가 '코너킥'이라고 하는 것을 그 사람들은 '모서리차기'라고 합니다. '드로잉'하면 '머리 위로 던지기' 또 '골키퍼'는 '문지기'라고 합니다.

    요사이 우리가 많이 쓰는 말 가운데 하나가 '모델하우스'입니다.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 혹은 아파트를 사지 않는다고 해도 구경 삼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델하우스에 한두 번은 들어가 보았을 겁니다. 불과 십 수년 전만 해도 모델하우스라는 것이 없었어요. 아파트를 사려고 가면 기껏해야 설계도와 조감도 정도를 그려놓았는데, 이는 당신이 살 집이 이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라고 그림으로 그려놓은 거예요. 그 위에 조금 더 발전해서 아파트 장사하는 사람들이 모형을 만들었어요. 견본으로 성냥갑만 하게, 또는 박스만 하게 만들어서 당신이 살 집의 방이 이렇게 생겼습니다 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아예 그럴 필요 없이 모델하우스를 다 지어 놓았습니다. 이곳에 가보면 자신이 살 미래의 집을 100% 현실로 볼 수 있어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방, 마루, 부엌, 화장실 등등... 자기가 살 집을 그대로 100% 지어 놓은 것이 모델하우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집을 사기 전에 모델하우스에 가보면 환하게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어요. 참 편리한 세상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신앙의 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신앙생활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가 예수 믿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왔는데 어떻게 해야 예수를 제대로 믿을 수 있겠는가? 교회를 꽤 오래 다니고서도 신앙생활에 대한 그림이 분명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도대체 신앙생활을 어떤 자세로 해야 하는가를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저는 그러한 분들을 위해 오늘 본문에 나타난 신앙의 모델하우스로 여러분들을 초대하기 원합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십니까? 분명한 그림을 보시기 원하십니까?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소개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신앙생활을 설명할 때 애매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모델하우스를 보여주듯이 너희들이 이렇게, 이런 태도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라고 두 사람의 간증을 통해 그것을 소개해 주고 계십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도대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하여야 한단 말인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후에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내 신앙이 성숙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한 후, 이 땅에서 신앙생활의 최후 목표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의무가 있단 말인가. 이러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오늘 본문은 망설이지 않고 그 대답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계십니다. 이 시간 모델하우스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천국의 신앙생활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본문은 먼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1.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누가 신앙생활을 올바로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 있는 자입니다. 같은 질문으로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복음을 듣는다고 모두 구원받을까요?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자동적으로 될 수 있을까요? 대답은 아닙니다. 자동적으로, 복음의 말씀을 듣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속에 구원을 갈망해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열망을 가진 자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팔복을 가르치시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이 말은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너희가 참으로 의로 배부르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너희가 먼저 의에 목말라야 한다. 하나님의 의를 간절히 열망하는 자들만이 그 하나님의 의로 배부를 수 있느니라!' 아무리 귀한 복음을 전해도 갈망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설교를 해도 마음속에 듣고 싶어하는 영혼의 갈증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진리를 돼지와 진주의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주지 말라! 왜? 당연하잖아요? 그 당시에 있었던 가장 귀한 보석은 다이아몬드가 아닌 진주였어요. 돼지는 보석을 모릅니다. 그래서 돼지에게는 그것을 던져 줘봐야 허비합니다. 허비할 뿐만 아니라 해를 받는데, 음식인가보다 하고 우지직 씹는 순간 돼지의 이빨이 다 나가는 겁니다. 그러므로 돼지에게 진주를 주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영혼의 갈망이 없는 자에게 복음을 주는 것이 이와 같다는 겁니다. 돼지에게 진주가 소용없듯이, 아니 오히려 해롭듯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전혀 없는 자에게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은 아무 유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여러분이 아무리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여러분의 마음과 영혼 속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없다면 이 설교와 예배와 말씀은 여러분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 경험을 통해서 이것이 오히려 해가 됨을 종종 발견합니다. 차라리 안 들었으면... 어느 날 갈망이 생길 때 그 말씀을 들으면 받아들일 터인데 이미 교회에 나온 지 2년, 5년, 10년이 되어 복음을 머리로 다 압니다. 지식으로 다 압니다. 그러나 영혼의 갈망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다음에 들으면 다 아는 얘기라고 지나쳐 버리는 것입니다.

    누가 신앙생활을 올바로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 그 영혼에 있는 자가 올바른 신앙생활을 시작하며 영위할 수 있다고 본문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진리가 너무나 귀했기 때문에 또 다른 진주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느 진주 상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진주를 수집하기 원했어요. 오직 그의 인생의 목표는 아름다운 진주를 구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팔도를 다 헤맵니다. 아니, 팔도로 되지 않아 중국과 러시아 등 온 땅을 두루 다니며 어디에 가면 내 마음에 합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진주를 만날 수 있을까 하며 고민하며 돌아다닙니다. 수년이 지났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어느 날 그는 한 촌구석에 갔다가 자기가 평생 그토록 원하던 진주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그 진주 상인이 어떻게 하였겠느냐? 저가 곧바로 가서 자기의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그 진주를 반드시 구입하지 않겠느냐? 왜 그가 자기의 재산을 다 팔아서 진주를 구입할까요? 이유는 그가 진주에 대한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진주를 평생동안 갈망해 왔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누가 참으로 주님의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여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그저 복음의 말씀을 들은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복음을 갈망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과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누가 하나님과 매일 아름다운 교제를 나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그저 먼 거리에서 믿는 자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갈망해 보셨습니까? 저는 지난 주간에 침례신학대학에 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수요일에 하루종일 가르치고 설교하였기에 목요일은 피곤했어요. 설교를 마치고 돌아와서 오랜만에 처갓집에 갔습니다. 장인 장모님과 얘기를 나누다가 새벽 1시가 되어서 잠자리에 들었어요. 그런데 누워있으나 잠이 오지 않아요. 하나님이 제게 말씀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피곤했지만 일어나 무릎을 꿇었어요. 제가 정말 하나님을 갈망하고 사모하며 "주여,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제게 무엇을 말씀하시기 원하십니까?" 무릎을 꿇고 10분, 20분 기다리는 동안 그날 하나님이 제게 얼마나 많은 은혜를 주셨는지요. 어느새 눈을 뜨니 동이 트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복 주시려고 그릇에 축복을 가득 담고 계십니다. 그러나 누가 그 축복을 받습니까? 은혜를 갈망하는 자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물이 귀한 것을 압니다. 그러나 한 번 예를 들어보세요.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먹기 싫은 물을 한 3분간 꿀떡꿀떡 마셔 가지고 배가 똥똥하게 나왔어요. 물을 실컷 먹은 사람에게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물드시죠!"라고 하면 당장에 뺨을 칠 것입니다. 그러나 사막에서 너무나 목이 말라 정말 물이 없어 고민하는 자에게 반잔의 물이라도 갖다 줄 때 그 물이 얼마나 달고 귀하겠습니까? 여기에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동일하게 대하십니다. 차별 없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고 싶어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구원을 받고 그 말씀 속에서 자라나는 반면 또 다른 사람은 5년, 10년, 15년을 교회에 나오는데 신앙의 성장이 없을까요? 하나님이 차별했습니까? 하나님 말씀의 능력이 달라서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영혼의 갈망에 따라 우리 신앙이 달라짐을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고넬료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니까 고넬료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어요. 어떤 면에서입니까?
    그가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자를 보내주셨어요. 흰옷을 입은 사자를 보내서 고넬료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또 하나님의 사자만 보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자만 보내서 부족하니까 베드로를 보내주셨어요. 그 당시 하나님이 들어 쓰셨던 성령 충만했던 유일한 사도 베드로, 그를 직접 보내주셨어요. 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이 당신의 사자와 베드로를 고넬료에게 특별하게 보내주셨나요? 그 이유가 3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기억하셨으니' 이 말은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영혼 속에 있는 갈망을 보셨다는 겁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어요.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였어요. 처음에 그저 로마의 군인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위해서 그 나라에 왔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그가 하나님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사모하는 하나님, 그것을 듣는 순간 고넬료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알고 싶은 갈망이 생겼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하면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을까? 그는 노심초사합니다. 내 재산을 털어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면 가능할까? 그래서 그는 구제사업을 해보았습니다.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서 무릎을 꿇고 기도도 해보았는데 하루 이틀 기도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고넬료는 시간을 정해놓고 했습니다. 그 날도 기도하고 있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자가 고넬료에게 나타나셔서 "고넬료야! 네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 앞에 기억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갈망해야 합니다. 4절을 보세요. 똑같은 말씀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하나님 앞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상달하여!' 그가 애쓰고 힘쓸 때에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하늘에서 보고 계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고넬료가 하나님을 만났습니까? 왜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베드로와 천사까지 보내셔서 그를 구원해 주셨나요? 그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목마름이 고넬료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구원받아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던 모든 자들에게 이와 똑같은 영혼의 갈망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삭개오를 아시나요? 그는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모든 사람이 예수님 주위에 몰려들자 그도 너무나 예수님이 보고 싶었습니다. 먼발치에서도 얼마나 예수님을 갈망했던지 그는 어른의 체면도 생각하지 않고 뽕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그 위에서 그저 예수님을 한 번 보기 원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를 것 같은 예수님!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서 그들에게만 관심을 줄 것 같았던 예수님! 그런데 이분이 위를 쳐다보지 않고도 "삭개오야,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너와 함께 너의 집에 유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여러 성을 지나갑니다. 앞 못 보는 소경이 예수님의 오심을 소문으로 들었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너무나 갈망해서 예수님이 지나갈 때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꾸짖었습니다. "소경인 주제에 웬 소리를 내느냐! 조용히 하라!" 이에 본문은 뭐라고 합니까? 그가 더욱 높이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합니다. 이때 예수께서 그 소리를 들으시고 멈춰 서셨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멈춰 서시는 하나님! 우리의 갈망을 보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 안에 왜 신앙의 성장이 없습니까? 왜 교회를 그토록 오래 다니고도 참 구원받은 확신이 우리 안에 거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그 이유는 영혼의 갈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원하십니까? 신앙이 성숙하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이 말씀에 따라 주의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십시오. 하나님을 열망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제가 당신을 사모합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제가 당신을 사모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이 갈망이 불일듯 일어날 때 오늘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수준에까지 성장할 줄 믿습니다.




    2. 하나님을 날마다 배워가야 한다

    하나님을 날마다 배워가야 합니다. 본문에 아주 중요한 단어가 하나 나오는데 34절부터 봅시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누가 깨달았어요? 베드로입니다. 지금 누가 누구에게 전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전도하고 있어요. 그런데 누가 깨달았습니까? 베드로가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베드로가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하나님에 대해 깨달았어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베드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알만큼 아는 자입니다. 예수님과 3년 간 동고동락했습니다. 비록 실수는 많이 했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조용히 베드로를 따로 만나시고 어린양을 부탁하셨어요. 그래서 수제자가 되었어요. 또 오순절 날 베드로가 설교할 때마다 성령이 강하게 임하셨어요. 성령 충만을 자신이 받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 안수할 때도 성령을 주었던 능력의 사람 베드로! 그는 이제 하나님을 알만큼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고넬료에게 전도하는 그 순간 고넬료의 대답을 몇 마디 듣고서 베드로는 하나님에 대해 깨달았다고 본문은 기록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을 배워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깨달아 가는 거예요. 누가 참으로 감격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가? 날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에 대해서 깊이 깨달아 지는 사람입니다. '아,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구나!' 5년을 믿고 10년을 믿었습니다.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수많은 성도들이 5년 전에 알았던 하나님과 지금의 하나님 사이에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그저 그런 하나님, 멀리 계시는 하나님, 한번도 대화해 보지 않은 하나님, 내 삶에 역사하지 않는 하나님, 나와 상관없는 하나님, 그때 그 시절에만 잠깐 있었던 하나님... 하나님을 배워감이 없을 때 우리의 신앙은 자라나지 않습니다.

    오늘 베드로는 그 숱한 하나님을 경험하고서도 하나님에 대해 두 가지를 배웠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34절에서 그는 하나님이 편파적이 아님을 배웠습니다. 또 35절에서 베드로는 누구든 출신과 민족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 영혼을 받으심을 그제야 깨달았어요. 우리는 이 사실을 다 알지만 베드로가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은 너무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아니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왜요? 베드로는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자마자 이방인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배웠어요. 교회의 주일학교에 갔더니 교사들이 우리 유대인에게만 구원이 있는 것이다 라고 가르칩니다. 회당에서 자랍니다. 온갖 사람들이 온갖 사회에서 그 민족 가운데, 가족 가운데 열이면 열이 베드로에게 무엇을 가르쳤는가? 하나님은 유대인만 구원하신다! 이 사실이 그에게는 진리였고 전통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도 믿지 않는 고넬료의 얘기를 들으며 하나님이 보여주신 간단한 말씀을 통해서 베드로는 자기의 모든 고집과 철학과 전통을 하루아침에 버리고 하나님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이러한 깨달음이 없습니다. 입으로만 예수를 믿지 내 생각은 그대로예요. 제가 장례를 집도해 봅니다. 무덤을 파면서 작대기를 들고 와서 동쪽이 맞느냐, 서쪽이 맞느냐, 이쪽으로 조금 옮겨라, 기울어졌다, 들어라... 여러분, 성경 어디에 관을 무슨 방향으로 세우라고 얘기합니까? 베옷을 꼭 입으라고 얘기합니까? 앞으로 우리 교회에서는 베옷을 입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것 낭비 아닙니까? 차라리 그 돈으로 다른 것 사주고 다른 좋은 곳에 쓰고 평소에 입던 옷을 입고 떠났으면 좋겠어요. 이 관습 하나 바꾸기가 이렇게 힘듭니다.

    우리가 과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깨달음이 있는 사람들입니까? 5년 전에 속 좁았던 사람이 10년을 믿고도 속이 그 모양 그대로입니다. 5년 전에 화를 펄펄 내던 사람이 10년 예수 믿고도 그 성격 그대로입니다. 말이 그대로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깨닫지 못한 자입니다. 신앙이 성숙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을 계속 날마다 이루어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어떻게 올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는가?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날마다 하나님에 대해 배워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지식이 있으나 모두가 다 죽이는 지식이에요. 그러나 이 세상에서 우리를 살리는 한 가지 지식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인 줄 믿습니다. 남은 생애 동안 하나님 알기를 사모하십시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랑해도 그 사람에 대해서 음식과 기호와 취미, 모든 것을 다 알기를 원하는데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알기를 소원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오늘 이후 하나님을 알아 가는 놀라운 신앙이 우리 영안교회에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3. 하나님의 명령을 행해야 한다

    42절을 보세요.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우리를 명하사' 누가 명했어요? 예수님이 명하셨어요. 예수님이 명하셨다고 얘기하면 될텐데 베드로는 어떤 예수가 명했는가를 38절부터 41절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저 하늘에 계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친히 우리와 호흡을 같이 하시고 바로 당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고통받으시고 죽으신 예수님! 그러나 사망에 잠기지 않으시고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친히 부활하신 그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을 명령했나요?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어떻게 우리의 신앙이 성장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야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명령은 한마디로 얘기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셨습니까? 우리에게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셨다는 겁니다. 이것만 지키면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거예요. 그러면 무엇을 증거해야 합니까? 여기에 두 가지를 얘기합니다. 첫 번째는 심판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다시 오실 거라는 겁니다.

    이 세상은 예수님에 의해 역사가 이루어져 감을 깨닫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자 B.C.가 지나가고 A.D.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A.D.가 언제 끝납니까? A.D. 후에는 무엇이 오는지 제가 예언해 볼까요? M.D.가 옵니다. M.D.는 '밀레니얼 피어리어드', 즉 천년왕국이 오는 거예요. 그러면 A.D.가 언제 끝나고 M.D.가 언제 시작되는가? 성경은 얘기합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입니다. 첫 번째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약한 모습, 종의 모습으로 오시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얘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초림 때에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다시 언젠가 주님이 오실 터인데 그때 이 지구의 역사는 끝날 것임을. 그때 오시는 주님은 인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종의 모습이 더 이상 아닙니다. 만왕의 왕으로 오십니다. 우리를 심판할 주로 오십니다. 그날 오셔서 예수님이 하실 일은 무엇인가? 다시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고 모든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심판하십니다. 백보좌 위에서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지옥으로 보내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믿는 자들을 모아놓고 예수 믿고 행한 삶에 따라 당신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실을 증거하지 않습니다. 왜? 자신들도 믿지 않으니까요. "목사님, 21세기가 눈앞에 와 있는데 아직도 지옥 얘기합니까?" 많은 신학자들도 지옥을 믿지 않는 이 세대에 우리는 살고 있어요.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얘기합니까? 예수님은 부자와 나사로의 경험을 통해서 그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부자가 이 땅에서는 호의호식했습니다. 그는 전도했는데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죽어서 간 곳은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어느 정도입니까? 나사로가 저기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이여, 나사로를 보내 물 한 방울만 손가락에 찍어서 내 혀를 적시게 해 주세요." 우리는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지 자세히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한마디로 설명해 주셨어요.

    내가 죽고 싶다고 죽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고통과는 비교되지 않을 고통이 계속 되어지는 곳, 그곳이 지옥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을 그곳에 보내기 위해서 이제 예수님이 오십니다. 눈앞에 와 계십니다. 심판의 주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지 이 부자가 자기의 청이 거절당하자 나사로를 보내 가지고 내 형제들을 이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는 요구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부자의 이 두 가지 요청이 다 거절당했다는 사실입니다. 지옥은 두 번의 기회가 없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전파하십시오. 이것을 우리는 증거해야 합니다.

    오늘 여기에 보니까 또 한 가지 증거해야 할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42, 43절을 보세요.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죄 사함 받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목사님, 기독교는 너무 폐쇄적이지 않습니까? 절에 가면 교회에 가도 된다는데 왜 교회에 가면 예수님만 믿어야 구원 얻고 불교 믿으면 지옥 간다고 합니까?" 우리가 폐쇄적인 겁니까? 아니요. 우리는 정답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석가가 누구입니까? 훌륭한 사람입니다. 공자가 누구입니까?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얘기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그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고요. 이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어요. 왜? 우리의 의로 내 자신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깨끗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십니까? 저는 그런 사람을 한 사람 만났습니다. 전도를 하는데 "목사님, 제가 이때까지 살면서 남의 돈 떼어먹은 것 없고 고아원에 얼마를 희사했고..." 부자였던 그는 자기의 한 행적을 쭉 얘기했어요. "내가 이만하면 하나님도 저를 봐주시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저는 분명히 천국 갈 것을 확신합니다. 제가 교회 안 나가고 예수 안 믿어도요." 제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한 예를 들어서 얘기해 주었어요. "선생님, 예전에 촛불 써 보셨습니까?" "써 봤지요. 할아버지가 호롱불을 켜다가 잔치 때 가끔 촛불을 켜면 얼마나 밝은지요." "예, 밝지요. 호롱불에 비해서 촛불은 그렇게 밝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촛불을 가지고 환한 대낮에 밖에 나가보신 적 있나요? 그 촛불이 얼마나 밝습디까?" 하나님 앞에 우리의 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평생을 착하게 살아도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니까 의롭지 거룩하신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그게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의가 더러운 옷과 같다고 했어요. 여기서 더러운 옷이 무엇인가 하면 옛날에 여자가 경수를 할 때 쓰던 천입니다. 문자적으로 이러한 뜻으로 쓰여졌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거룩하게 올바르게 살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그 의는 하나님 앞에 아무 소용없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오셨어요. 예수님이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그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정말 여러분이 이 사실을 믿으신다면 어떻게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심판의 주가 곧 오시는데요.

    우리 인간은 모두, 특히 부모는 자기 인생이 저주스러우면 자식이 그 뒤를 물려받기를 정말 원치 않습니다. 저 강원도 황주에 가면 막장 인생들이 모이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광부촌이지요. 하다가 하다가 안 된 사람들이 막판으로 거기 가서 사는데 시설이 너무 열악합니다. 그들은 간을 꺼내고 규폐증에 걸려서 죽어갑니다. 그 황주에 있는 한 광부의 아들, 초등학생이 쓴 시가 신문에 났는데 제가 읽어보고 너무 눈시울이 뜨거웠어요.

    우리 아버지는 탄을 캐신다
    나는 공부를 못하니까 광부가 되겠지
    아버지는 절대 광부가 되지 말라고 하신다
    거지가 되었으면 되었지
    죽어도 광부는 되지 말라고 하신다

    막장 인생을 사는 아버지의 피맺힌 절규가 그 아들의 시를 통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자기가 살아보니까 아들만은 자신의 일을 시키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정말 심판의 주가 다시 오시는 것을 믿으십니까? 지옥이 정말 끔찍한 곳임을 믿으십니까?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으로 죄 사함을 얻고 우리로 하여금 구원받게 함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이 사실을 우리는 전해야 합니다.

    지난 수년간의 당신의 신앙생활을 돌아보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성숙하셨습니까? 당신은 정말 구원받았습니까? 주님이 오늘 이 땅에 다시 오신다면 당신은 천국에 갈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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