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을 위한 사도신경해설" 2002-08-02 18:16:31 read : 6553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1. 예배의 뜻이 무엇입니까?
성경에 있는 '예배'라는 낱말은 '절하다', '섬기다'는 뜻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사람이 모든 피조물과 함께 경배하며 영광과 감사를 드리는 의식이요 잔치입니다.
십계명은 예배 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으로 우상에게 예배해서는 안되고 오직 당신만을 예배해야 한다고 명하십니다(출애굽기 20:1∼17).
또한 예배하되 하나님을 사랑하고 동시에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도록 명하십니다(마태복음 22:37∼4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삶 전체로 예배해야 합니다.
이웃 사랑 없는 예배는 위선입니다.
그러나 삶으로 드리는 예배는 성도들이 모여 함께 하나님께 경배하는 예배에서 비롯됩니다.
의식을 갖춘 예배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존재하므로 성도들은 정한 날과 장소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인 이레 중 첫날, 즉 일요일을 주의 날(주일)이라고 부르며, 그 날에 일손을 멈추고 함께 모여 예배해 왔습니다(사도행전20:7).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참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특징은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부분과 그 말씀에 응답하여 기도하며 찬송하는 부분입니다.
예배에서 우리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깨달으며 하나님은 우리 사람과 만물을 다스리시는 왕이심을 인식합니다.
우리는 예배에서 창조주요 구원의 주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 기도와 감사와 찬송으로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는 또한 성경 봉독과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말씀에서 우리는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언약을 확인하며 복음 전파와 이웃 사랑의 사명을 받고, 삶으로 예배할 능력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영원토록 예배하는 것, 그것은 구원 얻은 성도의 특권이며 목적입니다.
2. 예배에서 왜 사도신경을 고백합니까?
"사도신경"이란 이름이 처음으로 사용되기는 주후 390년경이었으나, 그 내용은 대다수의 그리스도의 교회가 훨씬 더 일찍부터 예배에서 고백해 왔습니다.
2세기 초반의 속사도 교부이며 안디옥의 감독인 이그나티우스(110년)와 순교자 저스틴(∼165)의 글과 저자 미상의 신앙교육서 [디다케」(100년경)에 이미 "신앙의 척도"에 관한 언급이 있습니다.
2세기부터 교회에서는 예배에서 세례 받는 새 신자에게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까?" 하고 묻는 말에 "예 믿습니다."고 말하면 물에 담그거나 머리에 물을 발라 안수함으로써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고백으로 묻고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교회와 죄사하여 주시는 것..."에 관한 고백으로 고백으로 물어 세례의식을 진행했습니다.
신약 성경 말씀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합니다만, 사도들의 편지에는 당시의 교회가 기도나 찬송으로 신앙을 고백한 구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빌립보 2장 6∼11절의 말씀과 여러 말씀들이 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린도전서 15:3)."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로마서 8:34)."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전한 기독교의 신앙, 즉 복음의 진리를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역사적인 교회의 신앙고백들과 신학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에서 감사하며 감격하는 마음에서 세계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고백을 고백합니다.
3. 사도신경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행위로써가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흔히 믿음생활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그냥 막연히 열심히 믿는 종교적인 믿음이 아니고, 역사적이며 구체적인 내용을 가진 믿음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을 한 마디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성경의 말씀을 따라 좀더 구체적으로 그러면서도 간략하게 고백하는 것이 사도신경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사도신경은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에 관한 신앙고백, 둘째는 아들 하나님과 그분이 우리를 구속하신 일에 관한 신앙고백, 셋째는 성령 하나님과 교회 및 성도의 거룩한 삶과 영원한 삶에 관한 신앙고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사도신경에서 아들에 대한 신앙고백은 비교적 깁니다.
아들은 우리가 신앙하는 대상이시므로 아들의 인격과 그분이 겪은 역사적인 사건을 함께 고백합니다.
그에 반하여 성령에 대한 서술은 짧습니다.
그것은 신약 성경과 교부들의 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지, 정, 의를 감동시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도록 일하시는 영이시므로 그러합니다(요한복음 14:16∼17, 26; 16:7∼14).
"거룩한 공회"는 "거룩한 카톨릭 교회"를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카톨릭"이란 "보편적인" 혹은 "범 세계적인"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교회"는 "거룩한 보편적인 교회" 혹은 "거룩한 범세계적인 교회"라고 번역했어야 합니다.
초기 교회에서는 그냥 "거룩한 교회"라고 말하기도 했으므로 그렇게 번역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그 뜻을 잘 모름에도 불구하고 옳은 번역을 시도하지 않고 방치해 두고 있는 것은 유감스런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이므로 온 세계 교회가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인 교회임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카톨릭"은 "로마 카톨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역사적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틀어 지칭하는 말입니다.
4. '하나님 아버지' 할 때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사도신경에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고백은 비록 짧지만 무한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영원 전에 말씀이신 아들 하나님을 낳으시고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시는 성령과 함께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지으셔서 만물과 함께 우리를 다스리십니다(시편 8:1∼9; 104:1∼35).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희생의 제물로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의 능력으로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지으시고 양자로 삼아주십니다(로마서 8:14∼17).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아들과 함께 이 세상에서와 내세에서 모든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십니다(이사야 42:5)."
산과 들과 바다와 거기서 나오는 모든 산물을 주십니다.
사람들이 가공하여 만든 물건도 다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에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충분히 드리지 못하며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사용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주시고, 재물을, 과학 지식과 기술을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욕망과 명예를 위하여, 자기 성취를 위하여 동원합니다.
우리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하고 고백할 때, 독생자를 영원 전에 낳으신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며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함께 회개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부모를 생각할 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내가 불효함을 느끼듯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면서 우리의 불충을 고백합니다.
5.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입니까?
전능하시고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천지 만물을 친히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며 다스리시는 것을 섭리(providence)라고 합니다(사도행전 17:27∼28; 시편 145:15∼16).
나무 잎새 하나와 풀 한 포기, 비오는 것과 가뭄, 먹고 마시는 것, 건강과 병, 부귀와 빈곤, 민족의 흥망 성쇠 등등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사건이며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과 다스리심에 달려 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공중의 새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하나님께서 입히시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는 더 하시지 않겠느냐고 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열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태복음 6:25∼34)."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성도는 모든 역경 가운데서도 참고 견디며, 순탄할 때와 다름없이 감사하고, 장래의 모든 일을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맡깁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어서 그분의 뜻이 아니면 움직일 수 없으므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믿는 확신에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로마서 8:33∼39).
섭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시인하고 의지하는 사람만이 시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고백하고 찬송합니다(로마서 8:28).
6.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입니까
'예수'는 구원자라는 뜻이고(마태복음 1:21),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히브리어 '메시아'의 헬라어 번역어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는 개인적인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공적인 칭호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에 합하는 자를 택하셔서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백성들의 지도자로, 즉 선지자, 왕, 제사장으로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 베드로가 고백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로 하여금 예언하게 하시고 약속하신 메시아, 즉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복음16:16).
예수께서는 선지자, 왕, 제사장의 세 직분을 한 몸에 구현하시는 분이십니다.
천국의 복음을 전하시고 하나님을 계시하셨으며, 현재도 설교자들을 통하여 천국의 복음을 전하게 하심으로써 선지자의 직분을 다하십니다(누가복음24:19; 요한복음 3:2; 6:68∼69).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친히 희생이 되어 화목제물이 되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며 중재하심으로써 제사장의 직분을 다하십니다(히브리서 4:14∼16; 8:22∼25; 9:12; 로마서 8:34).
예수께서는 또한 왕이시지만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겸손한 평화의 왕이심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누가복음 1:33; 마태복음 21:5; 요한복음 18:36, 37; 19:19).
백성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보전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버리신 왕이시며 섬기는 이로 사셨습니다.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서 만물을 다스리시고 택한 백성을 보전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며, 장차 심판의 주로 오실 분이십니다.
성부와 성령과 함께 당신의 백성들과 모든 피조물에게서 영광과 존귀와 감사와 찬송을 받으시는 만 왕의 왕이십니다(빌립보서 2:10∼11; 마태복음 28:18; 요한계시록 1:13∼18; 19:11 ∼16).
김영재 교수 / 역사신학 /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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