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율법적인 설교를 읽고 수정해 보자. 아래의 설교를 읽어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금새 알게 된다. 즉 II의 주제인 "어떻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느냐" 또는 "어떻게 그 사랑을 할 수 있느냐"의 해답이 없다. 그냥 하라고만 명령했지 어떻게 그런 사랑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핵심인데도 말이다. 그러므로 이 설교의 가장 중요한 초점은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지에 맞추어야 할 것이다.
마 5:43-48 원수를 사랑하라
사랑은 기독교의 핵심 사상이며,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며 가장 큰 은사이며 계명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요 13:34-35; 롬 13:8-10; 고전 13:31, 13:13; 마 22:36-40)
I. 주님이 요구하시는 사랑은 무엇입니까?
사랑의 본체가 되신 예수님은 하나님께 속한 사랑을 실천하심으로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요구하신 사랑은 동족이나 인연으로 연결된 사랑 (스톨제)이나 정욕적 사랑 (에로스)이나 단순한 우호적 사랑 (필리아)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사랑, 영혼을 사랑하는 절대적이며 무조건적 사랑 (아가페)를 말씀하십니다.
이 사랑이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까?
II. 어떻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 5:43-48 눅 6:27에는 구체적으로 이 사랑을 실천하도록 말씀하십니다.
1) 미워하는 자는 선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까닭 없이 미움을 말할 때 사랑으로 선대하므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고전 4:12; 롬 12:9)
2)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하십니다.(롭 12:14; 잠 26:2)
축복과 저주는 메아리와 같음을 알고 열심히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3) 모욕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하십니다
핍박자를 위한 기도는 예수님께서 스데반집사가 바울 사도가 실천한 사랑의 원리입니다.(눅 23:34; 행 7:60; 딤후 4:16; 벧전 3:9)
III. 원수를 사랑하므로
1) 하나님의 아들된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45절)
2) 하나님의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합니다.(45하)
3)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게 합니다.(46-47)
4) 온전한 사람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48)
결론
네 원수가 네게 미움의 권총을 발사하면 너는 사랑의 대포로 응사하며 네 원수가 네게 미움의 독약을 마시우 게 하면 너는 그에게 사랑의 응수로 대항하라.(내촌)
<평>
여기에서 I과 III은 도입부분으로 보내야 한다. 주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든지, 원수를 사랑하면 어떤 유익이 있는지 하는 내용으로 시간을 많이 보내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앞에서 잠시 말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어떻게 하면 그 사랑을 할 수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거나 적용할 지에 사용해야 할 것이다. 본문을 잘 복음적으로 읽어 보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게 해 주신 일이 무엇인지 이 본문에서 찾아내 보라. 해를 악인이나 선인이나 모두에게 비추시고 비를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에게 공평히 내리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부어졌다.(롬 5:5) 마치 그의 죄사함이 부어져서 용서받았고 그의 성령이 부어져서 새사람이 된 것을 믿는 것처럼 그의 사랑이 있음을 믿고 생각하고 움직이면 된다.
마 5:43-48 원수를 사랑하라
도입부분:
본문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명하십니다. 사랑의 본체가 되신 예수님은 하나님께 속한 사랑을 실천하심으로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요구하신 사랑은 동족이나 인연으로 연결된 사랑 (스톨제)이나 정욕적 사랑 (에로스)이나 단순한 우호적 사랑 (필리아)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사랑, 영혼을 사랑하는 절대적이며 무조건적 사랑 (아가페)를 말씀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함으로
1) 하나님의 아들된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45절)
2) 하나님의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합니다.(45하)
3)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게 합니다.(46-47)
4) 온전한 사람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48)
그렇다면 어떻게 이렇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내 힘으로 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신앙은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주신 힘을 의지해야 합니다.
1. 믿는 자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됩니다.(요 1:12)
"믿는자"는 예수를 영접한 자입니다. 그가 내 속에서 자신의 모든 능력으로 나를 도우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자녀의 권세가 흘러나옵니다. 이 권세로 신자들은 세상을 지배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사는 이들은 절대로 신자의 삶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늘 실패하고 넘어집니다. 오래 믿을수록 얼굴은 어두워지고 굳어질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사랑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2. 믿는 자의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졌습니다.(롬 5:5)
"믿는 자"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임을 믿는 사람입니다. 여기 "느끼는 자"라 하지 않았습니다. 또는 "체험하는 자"라고도 아니했습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서 해 주신 일들을 다 자기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비록 내 느낌은 다른 것을 말해서 믿음은 하나님의 아가페가 부어졌다고 말합니다.
3. 믿는 자는 그 사랑을 의지하고 원수를 바라봅니다.
그러면 내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처럼 된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 그를 향해서 축복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통해서 흘러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억지로 하는 게 아닙니다. 믿음으로 그냥 쉽게 하는 것입니다. 그때 나는 원수를 향해서 하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존재가 되었다고 늘 스스로에게 확인을 시키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 성질과 내 노력이 나서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의 마음과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거기 의지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를 연습해야 합니다.
설교의 수정(2)
2024-06-18 06:55:41 read : 1
이제부터는 설교를 복음적으로 고쳐 보겠다. 필자에게 보내진 목사님들의 설교와 평을 여기 보여주겠다. 우선 한 동안 요지와 평과 수정된 요지를 실어본다.
<설교요지>
단 6:10-15 다니엘의 기도
다니엘의 불굴의 믿음과 쉬지않은 기도생활을 본받아야 한다
1) 기도 금지령이 내렸는데도 여전히 쉬지 않고 기도하였다
2) 성전을 사모하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였다
3) 간청보다는 하루 세 번씩 감사의 기도를 하였다
다니엘을 배우자. 그의 백절불굴의 신앙과 기도생활을 배우자. 신앙의 절개를 지키고 나라와 교회를 위하는 열렬한 마음과 좋은 습관을 가지자.
<평>
복음은 하나님이 해 주신 일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내가 열심히 이렇게 저렇게 해서 무엇이 온다하면 율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은 절대로 하늘에 이를만큼 되지 않습니다. 신앙은 마음에 있는 것이라고 루터가 설파했습니다. 우리가 겉으로 여러가지 훌륭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대로 신앙의 증거는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 아무리 훌륭한 행동을 해도 마음까지 그러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만약 외형적인 행동을 내 믿음의 근거로 삼는다면 절대로 확신이 나올 수 없습니다. 기도나 금식이나 선행이나 봉사나 무엇을 해도 양심이 깨끗하고 흡족하게 완전히 할 수 있습니꺄? 하나님 복을 받을만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리해도 마음으로는 여전히 부족한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자신이 없습니다. 자신이 없는데 무슨 확신으로 정확하신 하나님을 향하겠습니까?
다니엘이 이러 저러 해서 복 받았으니 당신들도 그렇게 하라고 말하기는 아주 쉽습니다. 듣는 사람들도 아주 쉽게 알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이 그렇게 마음을 먹고 행동해서 복을 받았으니 그렇게 하자면 기독교의 방법이 세상 종교의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마음의 문제가 해결 않고 억지로라도 힘을 내어 그렇게 한다고 신앙이 제대로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루터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봅시다. 신앙은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티 하나 없이 깨끗하려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을 들려줄 때 우리의 마음은 받느냐 안 받느냐 둘 중의 하나입니다. 죄사함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 자녀가 되었느냐 아니냐? 의로워졌느냐 아니냐? 복을 받았느냐 아니냐? 능력을 받았느냐 아니냐? 둘 중의 하나이지 중간의 경우는 없습니다. 이것은 확신의 근거가 나 자신이 아니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가 부족해도 하나님이 받으셨다. 용서하시고 새로 만드셨다." 이것이 성경이 선포하는 나의 정체입니다. 마음에 확신이 좀 덜 오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구원과 자녀됨과 하나님의 의를 힘입고 있다면 마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겠습니까? 완전한 확신입니다. 외형적인 행동을 통해서 오는 확신과는 비교가 안되는 분명한 것입니다. 행동을 잘해서 얻는 확신은 교만을 동반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얻는 확신은 완벽하면서도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해도 여전히 다니엘의 문제는 남아있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지 않은가? 구약에서 무슨 복음의 말씀을 찾겠는가? 그가 그렇게 해서 복 받은 것은 사실 아닌가? 복음의 교리로 억지 설명하는 게 아닌가?" 물론 다니엘이 그렇게 해서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은 다니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어떤 분으로 나타나셨으며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그래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분석해 주어야 합니다. 신앙은 마음의 문제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분만을 의지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보여주신 분은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언제나 구원의 시발점이요 힘과 확신을 주시는 분이요 완성자이십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반응했을 뿐입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을 버려도 다니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분명하시고 실제적인 은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부터 다니엘의 복된 행동은 나옵니다. 그의 마음이 그렇게 정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점을 반드시 먼저 말해야 합니다. 성경의 인물을 말할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에게 해주신 게 무엇인지, 그래서 그가 어떻게 행동할 수 있는지,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지를 말하십시오. 출발점은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입니다.
이제 앞의 요지를 이러한 맥락에서 고쳐봅니다.
단 6:10-15 다니엘의 기도
다니엘은 하나님을 믿기에 기도하였다
1) 기도 금지령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2) 하나님의 법궤 쪽을 향해 기도하였다
3) 이룰 것을 믿고 감사하였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그는 우리를 돌보는 아버지이시다. 그를 정말로 믿는다면 다니엘처럼 두려움 없이 기도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니엘처럼 사자의 입으로부터도 구원하신다.
설교의 수정(3)
2024-06-18 06:56:53 read : 1
이번에는 설교의 적용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많은 설교들이 듣는 이들과 아무런 연관을 시켜주지 않고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말한다. 그래서 청중들이 믿고 적용할 내용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 다음의 설교를 읽고 어떻게 적용시킬지를 스스로 생각해 본 뒤에 평을 읽어보기 바란다.
요 20:19-23 부활의 복음
1. 부활의 복음은 평강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셨습니다. 평강이란 헬라어로 "에이레네"입니다. "평화," "화평"이라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평화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가 부활하시고 제일성이 평화였습니다.
2. 부활의 복음은 기쁨입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신 날 제잗르이 모여있는 방에 들어오시자 제자들은 얼마나 반갑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때 그들의 기쁨은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기쁨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소유에만 집착한 삶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또 너희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웃음과 기쁨은 창조력이 있습니다. 사람은 기쁨을 따라 가야 합니다. 슬픔을 따라가면 슬픈 인생이 되고 맙니다. 중국속담에 "한가지 기쁨은 백가지 슬픔을 흩어 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시는 한가지 기쁨이 여러분의 모든 근심 걱정 슬픔의 백 가지를 몰아내 주시기 바랍니다.
3. 부활은 복음의 성령입니다.
예수님은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곧 부활의 복음입니다. 이 말씀대로 성령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장면은 마치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창조의 역사와도 같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은 복음증거의 사명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여 년 전 로마 대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이스라엘의 자멸을 기다리고 있을 때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유대교 랍비 벤 샄이였습니다. 그는 패배를 목전에 둔 이스라엘이 승리하는 길은 칼보다 더 강한 무기라고 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옳았습니다. 그들이 수천 년을 나라 없이도 굳굳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무기보다 더 강한 정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정신입니다. 특별히 성령이 하시는 일은 위로입니다. 이 세상 사는 모든 사람들이 위로 받아야 할 것은 상처받은 자와 피해 입은 자입니다. 성령의 위로를 받을 때 상처는 치유되고 소외감은 사라지고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심을 느끼며 살 것입니다.
평> 부활의 복음이 평강이고 기쁨이고 성령이라는데 그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되는지를 말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그들을 누릴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지 않으면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소리가 되고 만다. "성령은 하나님의 정신"이라는 말이 무슨 소리인가? 성령은 하나님 자신이시고 세 번째 위이신 데 정신 수준으로 말하다니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신력으로 이긴다면 왜 하나님을 믿는가? 우리는 정신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 이제 이 내용을 가지고 복음적으로 고쳐보자. 가능하면 이 설교를 고치지 않고 요지만 조금 바꾸어 보려고 한다.
요 20:19-23 부활의 복음
부활은 인간이 저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증거이다. 부활하신 예수는 지옥의 권세를 깨뜨렸다. 그리고 영원히 살아서 통치하신다. 그 부활의 예수를 자기 속에 모신 이는 그의 모든 것을 공유한다. 단지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부활의 복음을 믿고 삶에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
1. 부활의 예수는 지금 평강을 주고 계신다.
2. 부활의 예수는 지금 기쁨을 공급하고 계신다.
3. 부활의 능력은 성령으로 내 속에 살아있다.
그러니 믿으라. 믿고 평안을 외치라. 기뻐하라. 그가 내 속에 계심을 믿고 자신과 가정과 사회를 밝히라. 위로하라. 격려하라. 그들도 이 복음을 받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