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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시작과 마침
    2024-06-18 07:46:53   read : 921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좋은 시작과 마침

    설교에는 반드시 시작과 마침이 있다. 이 둘은 짧지만 가장 중요하다. 시작은 설교자와 설교 전체에 대한 첫 인상을 준다. 거기서 실패하면 설교도 실패로 끝난다. 또한 마침이 잘못되면 설교는 마음속에 강하게 남아있지를 못한다. 전체에서 이 둘처럼 강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없다. 그러면서도 시작에서 실패하면 아예 청취가 중단되니까 무엇보다도 시작은 성공해야 한다.

    첫인상

    설교 시작할 때의 인상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설교자는 언제나 기대가 가득한 얼굴로 강단에 서야 한다. 너무도 좋은 선물을 주려할 때의 설램과 같다고 할까. 청중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시작해야 한다. 험한 인생길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영접하는 자세라고 해도 좋겠다.

    자신 없거나 긴장되고 경직된 모습은 금물이다. 옷차림이나 외모에도 신경을 써야만 한다. 서두를 시작하기 전에 어색하니까 혁대를 잡고 바지를 올리는 설교자들이 많다. 여자들은 옷을 잡아 내리는 이가 많다. 무엇인가 그런 버릇이 된 사람이 많다. 그런 행동은 설익은 인상을 준다. 섰으면 바로 시작을 해야 한다.

    강단에 서기 전에 긴장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청중이 내 설교를 싫어할지도 모른다. 항상 같은 내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좋은 설교가 나올 리 없다. 그들이 기뻐하고 감동받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통해 말씀하심을 깨달으라. 그러면 용기가 생길 것이다.

    설교 시작한 다음 잘 안 풀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무엇인가 막히고 준비가 덜 된 느낌이다. 당연히 더듬거나 헤매게 된다. 그러나 절대로 그것을 겉에 나타내서는 안 된다. 준비가 덜되었다거나 기도가 부족했다고 자책하는 것은 더욱 나쁜 일이다. 그러면 그 설교는 반드시 실패한다. 비참한 느낌으로 내려올 것이다.

    잘 안 풀릴 때는 스스로 생각하라. “나는 잘 할 수 있다. 단지 워밍업이 좀 안되었을 뿐이다.” 준비가 덜 되었어도 기도가 부족했어도 할 수 없다. 그냥 최선을 다해서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준비나 기도를 많이 해도 그런 느낌이 나타날 수가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 계속하면 길이 잡혀간다.

    많은 설교자들이 설교 시작할 때 기도를 한다. 어떤 분은 항상 그렇게 한다. 하지만 설교의 서두는 설교하는 시간이지 기도하는 시간은 아니다. 가장 강한 청취의 순간이 “기도 합시다”하면 사라지고 만다. 집중이 되었으면 바로 시작해야 한다. 설교를 위한 기도는 강단에 올라가기 전에 해야 하지 않을까?

    기도가 필요한 순간도 있다. 설교 시작할 분위기나 준비가 안 되었을 때이다. 설교자나 청중 중 어느 쪽이건 집중이 안 될 경우이다. 하지만 명심하자.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분위기를 잡기 위해서 하는 것은 불경한 행동이다. 설교 시간은 설교시간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은 그냥 설교로 들어갔다.

    옷을 어떻게 입느냐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거울을 보고 완전한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어떤 청중은 가운을 원한다. 또 어떤 청중은 자유스러운 평상복을 원한다. 행복한 표정을 가지라. 자신이 있어야 한다. 청중을 향해서 마음속으로 외치라.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나는 오늘 좋은 말씀을 준비해 왔습니다.”

    설교자는 무엇보다도 지금 자기가 하는 일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 서있는 것이 기뻐야 한다. 마지못해 강단에 올라온 것 같은 표정을 짓지 말라. 설교자가 거기 선 것은 청중을 살리기 위함이다. 불은 불이 살린다. 생명은 생명이 일으킨다. 자신이 살리는 사람임을 명심해야 한다.

    서두

    시작은 설교의 첫인상을 준다. 서두가 설교자에게 강한 힘을 주든가 아니면 어려움을 줄 것이다. 첫 마디를 들어보고 청취자들은 마음을 정한다. 설교자가 자신이 없거나 재미가 없거나 불쾌하거나 준비가 안 되었거나 하다고 생각하면 청취는 중단된다. 불안해 보인다면 설교자로서 부족한 사람이라고 판단될 것이다.

    설교에서 시작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없다. 여기서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설교 전문가들은 말한다. 만약 첫 2분 동안 청중을 잡을 수 없다면 설교를 마칠 때까지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첫 2분 동안을 위해서는 첫 30초가 더 중요하다. 첫 30초에 청중을 잡지 못한다면 설교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 설교자가 올라와서 말한다. “죄송합니다. 저는 여기 설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하도 권하셔서 올라오기는 왔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부족한 사람입니다. 이해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식으로 시작한다고 하자. 청중들이 진실한 분이라고 경청할까? 천만에! 잘못 걸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절대로 변명하지 말라. “오늘은 좀 준비가 덜 된 것 같습니다.” “오늘 저는 몸이 별로 안 좋아서 잘될지 모르겠습니다.” “깜빡 잊고 원고를 안 가져왔습니다.” “어제 저는 너무도 바빴습니다. 도무지 준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이렇게 말하려면 차라리 거기 서지를 않아야 한다.

    아주 상투적인 어조로 “조금 전에 읽어드린 신명기 28장 30절의 말씀을 가지고 ‘복과 저주 중 택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 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는 식으로 말해 보라. 상당히 재미없는 시간이 펼쳐질 것 같은 믿음이 생긴다. 딱딱한 서두는 딱딱한 내용을 예고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시작을 들어보라. “지난 주간에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릴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까 신경을 모을 것이다. “어제 밤늦게 한 사람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런 시작도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왜 왔을까? 변명보다 얼마나 힘이 있는가!

    설교의 서두는 다음의 두 가지를 얻어내야 한다. 주의와 관심이다. 사람들은 누구에게선가 무엇을 기대한다. 무엇보다도 처음에 내 말에 주의를 집중시키게 해야 한다. 그리고는 흥미를 가지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계속 들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자기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면 청취는 중단되고 만다.

    설교자의 문제는 관심을 끄는 게 어렵다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끌기가 너무 쉽다는데 있다. 청중들은 매 주일 온다. 자주 실망하면서도 여전히 온다. 그리고 들을 자세를 가진다. “오늘은 무엇인가 좋은 말씀을 들을 것이다.” 만약 설교자가 정말 말할 내용이 있다면 주의와 관심을 끄느라 고민할 필요도 없다.

    청중은 돌려서 이야기 하는 것보다 직접 핵심을 듣고 싶어 한다. 설교의 내용과 관련이 없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을 한다면 그것을 핵심으로 여겨서 받아들이고 만다. 그리하여 거기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힘들어진다. 청중이 서두에서 준 주제를 따라서 이야기하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못 인도된 주의와 관심은 아무 것도 유익한 게 없다. 서두에서 말한 이야기가 재미있거나 강렬한데 그것이 논지와 다르다면 본론에 들어가지 못한다. 아무리 주의와 관심을 휘어잡아도 반드시 본론과 관련이 되어야 한다. 서론이 전체 내용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본론을 잘 소개한다면 강렬할수록 좋을 것이다.

    서두는 반드시 주제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이야기건 질문이건 인용이건 선언이건 그래야 한다. 주제를 벗어난 모든 단어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옆길로 빠져 버린다. 두 설교가 같은 게 없듯이 같은 서두도 없다. 한 설교의 서두는 거기에만 맞는다. 다른 곳에도 쓸 수 있다면 좋은 서두일 수 없다.

    시작거리들

    청중이 애타는 마음으로 설교자로부터 생명의 말씀을 기대하고 있을까? 천만에! 이미 지루한 마음으로 더 지루하고 상투적인 설교나 듣지 않을까하여 거의 포기한 상태로 앉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 그들이 듣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설교자는 이것에 능통해야 한다.

    청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서두는 설교자 자신의 관심을 끄는 것이면 된다. 얼핏 보면 청중의 입장에서 볼 때 흥미로워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청중의 나이, 문화적 배경에 따라 흥미도 다르다. 그래서 그들의 관심사를 연구하여 접촉점을 찾으려고 하는 게 일반적인 시작의 방법이다.

    그러나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관련되었을 때는 일단 자신이 먼저 흥미로워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강력하게 말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더욱이 그것이 복음의 내용과 관련되어 있다면 힘차게 말할 수 있다. 자기가 흥미없는 부분은 절대로 재미있게 말할 수 없다. 충분히 흥미로워진 다음에 시작하라.

    설교자가 읽은 본문을 반복하면서 거기서 충격적인 무엇을 집어낼 수 있다. “바울이 정말로 이 말대로 하라는 것일까요? 누가 보든가 이 내용은 사실이 아닌 데요.” “이처럼 강력한 표현은 더 없을 것입니다. 여기 우리 인생의 목적이 다 들어있습니다.” “이 단어에 집중해 봅시다. 여기 비밀이 있어요.”

    성경구절이 주의를 끄는 도구일 수 있다. “오늘 말씀이야말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말씀 시작하기 전에 고백할게 있습니다. 오늘 저는 남의 설교를 반복합니다. 그 설교자는 바로 솔로몬입니다. 그는 전도서를 설교로 보았습니다.”

    흥미를 유발하는 말을 던질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시대가 가장 살인을 많이 하는 시대인 것을 아십니까?” 패러독스를 사용해 보라. “왕의 자녀보다 더 복된 게 하나님의 자녀인데 그 대다수는 고아처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돌아가셨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것을 알아차리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신문 방송에 난 사건을 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 모두 지난 주간에 있었던 일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며칠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밤잠을 설쳤는지 모릅니다. 위성중계를 보느라 말입니다.” “어제 아침신문 한 구석에 작은 글이 실렸습니다. 얼핏 보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사실상 엄청난 일입니다.”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도 흔히 쓸 수 있는 방법이다.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때 주의할게 있다. 질문 던지기 전에 질문하겠다고 미리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질문을 기다린다. 물론 질문을 던진 뒤에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대답할 여유를 줘야 한다.

    다른 책의 내용을 인용할 수도 있다. 이때도 미리 인용할 것이라고 말하는 게 좋다. “지난 주간에 읽은 책의 한 구절입니다. ‘바람이 부는데 바람을 거슬려 걷는 이가 있었다’...” “소월의 시 한 구절입니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 꽃 아름따다 가시는 길에 뿌리오리다.’” 시로 바로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부드럽다.

    예화를 할 때도 바로 시작하는 것보다 이야기 하겠다고 미리 예고하는 게 좋다.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거북이와 토끼가 재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읽은 감동적인 이야기 입니다. 한 젊은이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 .” “요즘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돈 많은 부모는 자식이 무섭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질문하거나 인용하거나 예화를 시작할 때 예고를 해야 한다. 그래야 청중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보라.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시 한편 읽겠습니다.” 그러지 않고 바로 질문을 하거나 예화로 들어가면 좀 어리둥절해질 것이다.

    어떤 분은 광고를 한참 하다가 설교로 들어간다.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서두이다. 잡담인지 설교인지 알 수 없다. 이런 경우에는 설교하다가도 광고를 하기도 한다. 차라리 성가대의 찬양의 내용이나 앞의 부른 찬송의 내용으로 시작하는 게 낫다. 찬송을 통해서 서두로 들어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설교의 끝마침

    설교의 끝은 강한 인상을 남겨준다. 모든 부분이 잘되었다가도 여기서 실패하면 우습게 되고 만다. 설교는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별안간 그쳐야 한다. 절대로 끝부분이 늘어지는 느낌이 들면 안 된다. 그러므로 끝마침도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 마치는 부분에는 절대로 새로운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논지를 살려야 한다.

    능력 있는 설교자는 끝부분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 서론은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고 끝은 그림을 선명하게 준다. 경험이 풍부한 유능한 설교자는 결론을 먼저 작성해서 설교 전체가 움직여 가도록 꾸민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 끝부분은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안 그러면 끝에 가서 모든 게 허사로 되고 만다.

    마침의 방법들

    마침에는 공식적 방법이 없다. 좋은 설교들은 마지막 중요한 점을 말하면서 그친다. 전통적으로는 적용이나 권고나 호소 등이 이 마침 부분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논지를 확실하게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내게 해주신 일 즉 복음의 한 부분이 선명하게 마음에 남도록 하면서 마쳐야 한다.

    요약으로 설교를 마칠 수 있다. 많은 설교자들이 요약을 마침 부분에 사용한다. 내용 중 중요한 부분을 짚어주면서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논지를 확실하게 세워준다. 하지만 잘못하면 설교를 다시 한 번 반복하는 게 된다. 그러지 않기 위해 요약은 무조건 간단해야 한다. 신선하게 마치라.

    예화는 설교의 내용을 적용시킬 수 있다. 좋은 예화는 감동을 오래 가슴에 남겨준다. 그러나 결론으로 예화를 사용했을 때는 예화가 마쳤을 때 설교도 마쳐져야 한다. 한 두 문장 덧붙임으로 끝나야 한다. 그러면 선명한 마침이 된다. 하지만 반드시 예화는 논지를 강화시켜주도록 내용을 각색해야 한다.

    인용을 잘 선택해서 설교를 마친다면 강렬한 설교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인용은 짧아야 한다. 몇 줄의 시나 찬송 또는 성경귀절이 극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 대체로 시어는 함축적이면서 핵심을 찌르기 때문이다. 인용한 찬송가를 청중이 함께 부르게 만들면 더욱 효과가 있으리라. 문장백과를 잘 사용하면 좋다.

    질문으로 설교를 마치는 경우도 많다. 질문은 하나만 던질 수 있고 몇 개의 연결된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전도의 설교를 하면서 물을 수 있다. “저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하고 있습니다. 주의 눈물이 당신에게 어떤 느낌을 줍니까? 그 마음을 당신의 형제자매에게도 나눌 수 있습니까?”

    영상화시켜 준다면 오래 남는 설교로 마칠 수 있다. 사람들이 설교의 내용을 마음 눈으로 보도록 만드는 것이다. “자 이제 마음으로 봅시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의 모습을 그려봅시다. 나는 주와 함께 그 모습을 이루어갈 것입니다. 이 모습을 항상 바라봅시다.”

    기타 여러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권고를 하거나 호소할 수 있다. 설교자는 그리스도의 대사요 복음의 전령자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설교의 마치는 부분은 대체로 권고나 호소로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결단을 하게 하는 것이다. 격려나 위로로 마칠 수 있다. 경고는 가끔 사용하되 약속과 함께 주어야 한다.

    초청으로 마칠 수 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초청할 수 있다. 이미 믿은 사람도 다시 한번 헌신하는 초청을 할 수 있다. 죄를 회개하도록, 새로운 결심을 하도록, 직분에 대한 헌신을 다짐하도록 초청할 수 있다. 일으켜 세울 수도 있고 앞으로 나오도록 초청할 수 있다. 무엇인가 자신의 결심을 경험하게 한다.

    끝마침을 축도나 축복의 선언으로 할 수 있다. 기도의 방법으로 그렇게 할 수도 있고 그냥 선포로 할 수 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마칠 수도 있다. 송영을 통해서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세 가지 형태, 즉 축도, 기도, 송영중 하나를 마침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셋을 다 섞어서 하기도 한다.

    스펄젼의 설교, “밤의 노래들”에 보면 긴 결론 부분을 다음 축도로 마친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원합니다. 나의 원하는 것만큼 말씀을 잘 증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말씀들을 가슴에 심어주시기 원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 인생의 밤에도 그윽한 노래를 하게 하소서.”

    마침의 자세

    우리나라에서는 설교가 거의 기도로 끝을 맺는다. 기도 없이 마치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이다. 하지만 기도가 설교를 마치는 공식 방법은 아니다. 공허하고 습관적인 기도는 신앙에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기도가 마치는 보편적인 것으로 이해가 되었다면 오해를 없애기 위해 기도로 마치는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기도에 관해서는 한 마디 경고를 붙여야 하겠다.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 교묘한 방법으로 설교를 반복하면 안 된다. 청중을 감화시키거나 요약시켜주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심리적으로 청중을 움직이려고 기도한다면 불경스러운 행동이다.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기도해야 한다.

    마치는 부분에는 절대로 새로운 내용이 나오면 안 된다. 새로운 생각을 하도록 해서도 안 된다. “마지막으로” 또는 “결론적으로”라는 말을 자주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사실 그런 말을 쓰는 이들은 결론을 잘 맺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 말을 한 뒤에도 여전히 다시 마지막이나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결론은 하다하다 시간이 없어서 마치는 부분이 아니다. 또한 말을 맺는 부분이지 하다가 그만 두는 것도 아니다. 설교자는 분명히 말을 맺어야 하고 청중도 마쳤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결론은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에 대한 분명한 대답이 있어야 한다. 설교가 자기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분명해져야 한다.

    논지는 살아나고 앞에 나왔던 질문들에 대한 답이 나와야 한다. 모든 문제는 해결을 일단 보아야 한다. 모든 불확실함은 사라져야 한다. 모든 두려움은 그치고 영혼은 위로를 받고 확신을 얻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그 말씀은 우리 마음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것이 끝마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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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홍 설교학
    설교의 교정
    설교의 수정(1)
    22. 지도력과 설교
    21. 설교자의 이미지
    20. 설교자의 확신
    19. 설교계획
    18. 예화
    17. 시작과 마침
    16. 귀납법적 설교
    15. 사다리모양 설교
    14, 전통적 대지설교
    13. 원리 증명 적용
    12. 대조적 주제설교
    11. 설교 형태
    10. 주제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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