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3:1~3
안디옥교회 일군들
In the church at Antioch there ministers
본문에서부터 Paul의 본격적인 이방인 선교 사역이 시작된다.
안디옥 교회에서 성령의 명을 따라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안수하여 파송한 것이다.
행11:19-21절에 보면 스데반 집사의 순교사건과 함께 일어난 환난으로 인해 흩어져 간 성도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최초의 교회 개척과 시작한 안디옥 교회가 본장에서부터 사도행전의 주인공이며 중심인물이 베드로에게서 바울로 바뀌고 본격적인 이방 선교가 시작된다.
이제 이방 선교의 중심지로 안디옥 교회가 성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o. 안디옥 교회는 신실하고 열심 있는 충성된 일군들이 있었다.
즉 성령의 은사와 은혜를 충만히 받고 봉사하는 훌륭한 사역자들이
있었다.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몬을 비롯한 일군들이다.
o. 또한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금식하며 주를 섬겼다”
즉 그들은 말과 혀로만 가르치지 않았으며 지식과 학식으로만
가르치지 않고 먼저 모범을 보이는 능력 있는 삶을 가진
성도들이었다.
무엇보다 저들은 남을 가르치기 전에 자신을 가르치고 채찍질 하는데 인색하지 않았으며 게으르지 않았다.
안디옥교회가 이처럼 성장하게 되고 세계 선교의 근거지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선지자들과 교사들과 일군들의 헌신적인 가르침과 모델적인 삶이 있었고 기도와 봉사와 금식의 결과임을 깨달을 수 있다.
아이들이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라는 것처럼 성도들은 교회의 일군의 모습을 보며 자라기 때문이다.
1. 안디옥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습니까?
1) 환난 속에 세워진 교회다.
안디옥 교회의 설립 동기는 행11:19절에 보니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에 의해서 세워졌다.
박해로 인해 흩어졌던 무명의 이방성도들로 인하여 세워졌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따라서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기독교 신앙의 참된 의미를 처음부터 알고 성령의 기름 부음과 성령의 감동을 따라 신앙생활하고 충성의 삶을 살았다는 강점이 있다.
즉 그리스도의 영광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도 동참하는 것이 참된 복인 줄 알았다.
그리스도 때문에 높아지는 것뿐 아니라 그리스도 때문에 낮아지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인 줄 알았다.
이것은 복음에 참여하는 자의 사명자적인 인식이었다.
Paul은 이 의식이 분명했다.
빌1:29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하셨다.
이와 같은 조화로운 안디옥교회 성도들의 신앙의식이 바로 미미했던 안디옥교회 성도로 하여금 당시 죄악이 관영하고 핍박이 극심한 한 시대와 맞서 복음의 선한 싸움을 시작했고,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2) 환난 중에도 협력하여 세운 교회였다.
안디옥 교회는 평신도들의 순수한 신앙의 열정과 바나바의 지혜와 지도력과 덕이 협력하여 세워진 교회다.
또 예루살렘 모교회의 경험과 이방 성도들의 겸손과 순수한 복음의 열정이 조화를 이루어 세워진 교회라는데 커다란 의미가 있다.
오늘날 교회가 개교회주의, 개인주의, 사업주의의 세속풍조에 오염되어 가고 있는 이때에 교회 공동체 의식과 성령의 기름 부음과 Vision을 공유하면서 세계선교를 향한 공교회 의식을 새롭게 할 때이다.
안디옥교회는 성령 안에서 믿음과 수고로 어려운 모교회인 예루살렘교회를 물질로 연보하여 보내고, 밖으로는 모든 이방지역에 교회를 세워가는 “선교사업”에 과감히 나서서 진력했다.
우리는 안디옥교회가 당시 환난 중에 세워진 개척교회였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 안디옥 교회의 충성된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누구입니까?
각양 직업과 출신과 인종이 다르지만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 충성했던 사람들이다.
1) 바나바와 사울이 있었다.
o. 바나바는 본래 구브로성 출신의 레위인으로 그의 이름은
“권위자”, “안위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지었다.
그는 착한 성품에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하나님의 일군이었고
연장자가 아닌가 싶다.
그는 다소에 가서 사울을 안디옥에 데려와 함께 사역함으로
협력할 줄 아는 Partnership이 있는 분이었다.
o. 사울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바리새인으로 학식과 사회적 특권을
확보한 촉망 받던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율법의 근본정신과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깨달음이 없었다.
그리하여 교회를 파괴하고 무너뜨리는데 앞장섰으며 주의 성도들에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해서 해하였던 사람이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는 경험을 한
후 크게 변화를 받고 예수님의 주되심과, 부활신앙에 깊은
깨달음을 갖고 바나바의 부름을 받고 안디옥교회 와서
바나바의 지도를 받아 주님을 섬겨 겸손히 봉사하고 있었다.
2) 시므온과 루기오와 마나엔이 있었다.
안디옥교회는 바나바와 사울 외에도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시므온과 루기오 그리고 마나엔 이었다.
o. 시므온은 “니게르라”고도 불리었다.
니게르는 로마식 이름으로 검다는 뜻이다.
이로 볼 때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은 그 출신지가 아프리카
태생임으로 피부색갈이 검었다.
그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진 구레네 시몬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으나 확실한 고증이 없다.
단지 시므온은 아프리카 흑인 출신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어
안디옥교회서 충성되고 신실히 일하면서 교회를 부흥시킨 일군이었다.
o. 루기오는 “빛”이라는 뜻의 이름이며 아프리카 구레네 사람이다.
그도 안디옥교회서 빼놓을 수 없는 충성되고 신실한 일군이었다.
o. 마나엔은 “위로자”란 뜻의 이름이며 본문에서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이라고 했는데 여기 “젖동생”이란 말은 궁정에서 함께
자란 동갑내기의 왕자를 말한다.
여기 헤롯은 세례요한을 목 베어 죽이고 예수님을 재판한 헤롯
안티파스를 말한다.
마나엔과 헤롯은 같이 자랐지만 한 사람은 초대교회의 영적
지도자적 역할을 감당하면서 안디옥교회를 환난 중에서도
크게 부흥시켜 기독교 역사에 남은 영예를 얻었고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가장 큰 장애가 되었던 자로 불명예를
얻었다.
안디옥교회의 일군들, 선지자들과 교사들은 한결같이 주님을 섬기며 기도하는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을 경배하며 예배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주를 섬겼으며 금식하면서 주를 섬길 때 성령의 감동을 받으며 그의 지시를 따라 살 수 있었다.
이 일로 안디옥 교회가 환난 중에도 크게 성장하였다.
3. 안디옥교회는 뛰어난 덕성이 있었다.
1) 간절히 기도하는 성도였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늘 “주를 섬겨 금식하며 기도”하는 성도였다.
이점이 바로 안디옥교회의 강점이며 힘의 근거이다.
성도가 기도를 많이 한다는 사실은 하나님과 매우 친밀하고 가깝다는 것이요, 겸손하며 그 신앙이 순수하다는 증거이다.
교만한 자, 자기를 믿는자, 세속화된 교인은 기도의 불길이 없다.
모든 예배가 의식화되고, 정형화 되어 사람의 말과 기교가 난무합니다.
어떠한 환난이 있더라도 제단 앞에 나와 무릎 꿇고 기도하는 성도가 있는 교회는 소망이 있고, 은혜가 있으며 주님이 임재 하시므로 능력이 나타난다.
반면 아무리 풍성한 환경과 자원, 여건을 다 갖추었다고 했을지라도 “성령의 주관과 그의 능력”을 소홀히 여기고 외면하면 그 사람은 폐망하게 되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시기와 다툼과 요란함”만 있을 뿐이다.
그런 사람들은 주님께 버림 받으며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되고 교회는 촛대를 옮김으로 폐허가 되고 만다.
안디옥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하는 성도가 많은 덕성이 있는 교회이다.
2) 안디옥교회는 성경을 교육하는 교회로 힘이 있었다.
안디옥교회 성도와 그 일군들은 각양각색의 직업과 학식과 인종, 성격이 다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께로 받은 진리를 깨닫고 성령의 내주하심을 경험한 진리의 내용을 교육하고 가르치는데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 없었으며 그것을 체계화 하는 교회였기에 항상 힘과 질서가 확립되어 있었다.
행11:25-26절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고 하셨다.
교회 교육은 질서가 필요하며 체계화 되어야 한다.
또한 피차 받은바 은사를 귀중히 여기며 존중해 주고 남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간섭하기보다는 협력과 도와주고 섬겨야 한다.
안디옥교회는 진리를 사모하고 또 조그마한 진리라도 잘 수용하며 은사를 적극 활용하며 존중하는 잘 가르치고 섬기는 덕스런 교회였다.
3) 안디옥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덕스런 교회였다.
행11:26절에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바로 안디옥교회 교인들이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처럼 진리를 실천하며 살았다는 증거이다.
아무리 많은 은사와 질 높은 신앙훈련과 교육을 받았다 해도 자기가 배운 대로 살지 않고 실천하지 않으면 쓸모없다.
맛 잃은 소금처럼 밖에 버리워져서 밟힐 뿐이다.
하나님의 교육, 교회교육과 훈련은 실천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한다.
안디옥교회는 언제나 인간의 생각을 앞세우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으며 성령의 감동에 순종했다.
그들이 금식하며 주를 섬길 때 성령이 나타나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안수하고 선교사로 파송하라고 하셨다.
성도가 하는 일은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이루어진다.
선교사역 성령께서 도와 주셔야 이루어진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까지 기다리라고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은 인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로 하는 것이요.
성도가 하는 일은 인간의 수단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움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로부터 이슬같이 내리고, 소나기 같이 내리시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능력 있는 선교사로, 능력 있는 성도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고 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
바나바와 바울을 성령께서 선교사로 보내시는 것은 당사자는 물론 안디옥 교회에 놀라운 축복이다.
하나님께서 세계 선교사역을 이들을 통해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예루살렘교회에 큰 핍박과 환난이 오자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대인들과 헬라파 유대인, 그리고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의 선교사역에 동참했다.
안디옥교회가 크게 부흥되자 바나바는 회개는 했으나 아직도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써주지도 않는 바울을 다소에 까지 가서 데리고 왔다.
그리고 둘이서 협력하여 안디옥 교인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움 받도록 체계적으로 성경교육으로 훈련시키면서 잘 이끌어 나갔다.
그러던 중에 성령님으로부터 바울과 함께 선교명령을 받은 것이다.
안디옥교회가 세계 선교의 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교회의 풍부한 인적 자원 때문이었음을 저자 누가가 밝히고 있다.
이 교회는 주를 섬겨 금식하고 기도하는 많은 성도들과 구별되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다.
이 교회가 목회자이며 담임목사인 바나바와 부목사인 바울을 선교사로 기꺼이 파송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그 큰 자리를 빠져나가도 빈자리를 메워 줄 수 있는 평신도 목자와 영적 아비와 어미들로 꽉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저자 누가는 이렇게 인적 자원이 풍부했지만 선교사를 파송하게 된 동기를 인간에게 돌리지 않고 전적으로 성령의 공로로 돌리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의 탄생과 선교에 관한 모든 공로를 성령에 돌리고 있는 사도행전의 전체적인 사상적 흐름과도 일치하고 있다.
또한 세계 선교가 “거룩한 영” 성령의 활동에 의한 것임을 나타냄으로써 누가는 이미 당시 로마 제국 지배를 받고 있는 여러 국가와 민족들의 정화가 필요하며 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야할 만큼 타락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시대에 우리를 쓰시며 일군으로 세우셨다.
복음이 필요하고 회개가 필요해서 성령께서 한국의 선교사를 세계 각 곳으로 보내시고 계신다.
그것으로 교회가 의무를 다하고 성도가 의무를 다했다고 할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기도로, 물질로, 위로로, 방문으로 격려하며, 도우며, 동참하여 파송하고, 또 파송되어가는 안디옥교회 덕성이 충만한 교회와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