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이런 우화가 전해지고 있다. 새끼 물고기들이 물속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심술이 난 개구리가 골탕을 먹이기로 했다.
“얘 물고기들아, 너희들은 이제 큰일 났다. 왜요?, 물이 없으면 너희들은 한 순간도 살 수 없단다. 빨리 물을 찾아야해”
이 말을 들은 새끼 물고기들은 몹시 걱정하며 엄마 물고기에게 갔다.
“엄마 물이 뭐야? 물이 없으면 우리는 죽는대” 그러나 엄마 물고기도 물이 무엇인지 몰랐다.
물밖에 나가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나가던 강아지에게 묻자 “너희가 사는 곳이 물이 아니냐 이 어리석은 물고기들아!”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고 물어 볼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오고 오늘 여기에 앉아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다.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식사를 하고 전도를 했다는 사실이 예루살렘에 알려지자 할례자들은 그 일로 인해서 베드로를 비난하고 힐난하기 시작했다. 이에 베드로가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과 사역현장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설명하며 그 일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었음을 증언했다.
우리는 항상 어떤 상황과 사건 속에서 무엇이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인가를 볼 수 있는 지혜와 영감을 가져야 한다.
수많은 걱정과 염려, 분쟁과 시기심은 따지고 보면 자신의 본질적인 사명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소한 것으로 시간과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은 사물을 보는 시각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1. 베드로를 비난하는 유대인 할례자를 볼 수 있다.
왜 힐난합니까?
1) 이방인과 교제했기 때문이었다.
베드로가 이방전도를 마치고 예루살렘 교회로 돌아왔을 때 할례자들이 베드로를 비난했다. 그것은 이방인들과 한 자리에서 같이 교제했기 때문이다.
유대교에 입교했던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로 어릴 때 “할례 의식”을 다 행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비난은 이해 할만 했다.
당시에 그들은 이방인들을 “지옥의 땔감”으로 하나님이 만드셨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례 받은 유대인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거나 그들과 식사를 하는 것은 “신앙 타락”의 차원에서 인식했다.
그들은 평소 베드로 사도의 신앙인격을 아는 자들이기에 비난에 앞서 그 이유부터 알아보아야 옳았을 것이다.
사실 우리의 피상적인 안목과 편견, 그리고 잘못된 정보 때문에 진실하게 주님의 사역을 잘 감당하고 복음 전파에 전심을 기울이는 교우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극히 주의해야 할 일이다.
2) 비난에 대한 베드로의 자세는 어떠합니까?
o. 대적들에게 한 치의 용서도 없이 칼을 휘두르던 옛날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그는 온유와 슬기로 대했다.
결코 사도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그와 같은 종교적 편견 앞에서 주님이 당한 고난의 진정한 의미를 비로소 개달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훗날 그는 벧전4:14절에서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라고 까지 변했다.
o. 그는 진실만을 말했다.
4절 “베드로가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였다”고 했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주어졌던 주님의 명령과 이 명령을 순종할 때 그 자리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차례로 설명했다.
여러분 잠근 문을 여는데 황금으로 만든 열쇠가 필요 없다.
오직 거기에 맞는 열쇠만 있으면 된다.
이와 같이 성도의 진실한 신앙적 삶의 자세만 있으면 진리를 비방하는 자들의 입을 막게 되며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 열매가 나타나게 된다.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의 선행을 오해받고 비난을 받을지라도 그 일들을 인해 슬퍼하거나 낙심치 말고 오직 고난의 주님을 새롭게 이해하고 주님의 고난에 기쁘게 참여하는 계기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벧전4: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고 했다.
비난에 대해 베드로는 온유와 슬기로 대했다.
2. 베드로의 증언이 무엇입니까?
1) 자신이 한 모든 일은 위로부터 받은 사명임을 증거 했다.
본문 5절~8절까지의 내용이 그것이다.
9~10절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하늘로부터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올라 가더라”고 했다.
이와 같이 중생한 성도는 오해와 비난을 당할 때 내게 주신 주님의 사명을 체계적으로 증거 할 필요가 있다.
은혜로운 신앙 체험의 간증은 강퍅하고 편견에 치우친 이들의 마음을 녹이고 바르게 할 때 많다.
베드로는 자기에 일어난 일을 체계적으로 증거 했다.
2)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셨음을 증거 했다.
15절 “네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7절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고 했다.
신앙은 논증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으며, 구원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고 신비스런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의 “약속의 말씀” 속에서 믿고 행해진 일이라면 굳이 다른 변명이나 설명이 필요치가 않습니다.
사실이(Fact) 증거 하기 때문이다.
내게 일어난 일과 영적 사역현장에 있었던 것을 그대로 증거 하면 된다.
언젠가 하나님 자신이 어떤 방법으로든지 나의 대한 것과 그 사건에 대해서 해명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게 성령의 나타남과 그분의 하게 하심을 따라 담대히 교회 안팎의 사역을 담당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 베드로의 증언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 자신이 욥바에서 기도할 때 비몽사몽간에 나타났던 환상을 밝히 증언하면서 구약의 율법에 근거한 聖俗의 구별을 하나님 자신이 폐지 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둘째 : 베드로는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듣고자 하는 이방인 고넬료 일가와 그의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도 나에게 임했던 것과 같이 똑같이 임한 사실을 증언 했다.
셋째 : 이 모든 것을 행하신 분이 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증거 하고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능히 막겠느냐?”고 반문했더니 할례자들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고 인정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능히 막겠느냐”하는 주의 권세, 능력,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베드로는 자기에게 나타난 성령이 하시는 일을 진실하게 증언 했다.
3. 잠잠해진 할례자들을 볼 수 있다.
18절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고 했다.
어떻게 해서 그들이 잠잠해졌습니까?
1) 말씀 앞에서 잠잠해졌다.
베드로는 자신의 지식이나 지혜나 직분적 권위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의 하게 하시는 말씀을 담대히 증거 했다.
비몽사몽간에 보았던 환상의 이야기, 자기 집 문 앞에 당도했던 고넬료의 사환이야기, 성령 부어주시는 이야기를 듣던 할례자들은 잠잠하였다.
베드로에게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시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할례자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진실히 듣는 지키는 자에게는 약속된 복이 자기에게 이루어지고 경험되는 사실(Fact)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이 내게 주시는 감동을 아멘으로 받고 순종하여 베드로와 같은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2) 능력 앞에서 잠잠해졌다.
믿음으로 살면서 복음을 전하다 보면 많은 핍박, 환난, 비난이 찾아온다.
그러므로 이 때에 성령의 충만함이 없으면 이 역경을 이길 수가 없다.
성령이 임하면 말씀에 대한 능력과 권세를 얻게 된다.
베드로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능력을 입었으며 계속 기도하면서 그것을 소멸하지 아니하므로 할례자들 앞에 자기에게서 일어났던 일을 증거 할 때 그 말씀에 권세와 능력이 있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딤후1:7)고 하셨다.
베드로가 가졌던 이 능력을 여러분 모두가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3) 믿음 앞에서 잠잠했다.
베드로를 힐난하던 할례자들은 베드로의 그 확신에 찬 믿음, 진솔하고도 보탬이 없는 사실 앞에서 잠잠하였다.
사람에게 미움 받고, 배척당하고, 힐난당해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막을 수도, 중단시킬 수도, 허물수도 없다.
능력에 찬 베드로의 믿음이 이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는 주님의 약속이 성도 여러분 개개인에게 나타나서 여러분의 각가지 현안 문제가 베드로처럼 해결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