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4: Out of range value for column 'readed' at row 1 update tb_news set readed=readed+1 where no='127768'
광복 60주년의 의미 / 출 3:7-12 2005-10-14 11:19:51 read : 6553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출 3:7-12 // 2005.
광복 60주년의 의미
오늘은 광복절 기념주일입니다. 특히 금년은 광복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60이라는 수는 동양 사람들에게는 남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회갑(回甲) 또는 환갑(還甲)이라 하여 육갑의 간지가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뜻한다는 말입니다.
60이라는 수는 사회학자들도 의미 있게 해석을 하는 수입니다. 한 세대가 30년이기 때문에 60이면 두 세대가 지난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60년이라 함은 과거 사건을 체험한 세대는 다 사라지고 과거 사건과 무관한 세대가 역사의 주역이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역시 전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뜻한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광복 60주년이 되는 이 시점을 돌아보면 역사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전혀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제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역사의 뒷면으로 퇴장했고, 그 시대를 모르는 사람들이 역사의 주역의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광복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광복 60주년의 의미를 어떻게 새겨야 할까요?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코젤렉이라는 분은 역사를 이해하는 해석의 도구로 “지나간 미래”라는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지나간 사건 속에서 그들이 가졌던 희망, 다짐, 결단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말입니다. 반면 “지나간 과거”라는 개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나간 사건 속에서 그들이 가졌던 절망과 후회라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 중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나라를 빼앗긴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끝내 찾아오고야 말 저 광복의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 봄이 오면 저 밭에 나가 땀 흘려 일하며 복된 나라를 세워보겠다는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지나간 미래”입니다.
반대로 오늘의 정치권을 바라봅니다. 역사를 정리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웁니다. 그러면서 주제는 역사 청산입니다. 끝없는 정쟁을 일으킵니다. 과거 그 시절의 절망 속으로 국민을 끌고 들어갑니다. 책임 공방만 일삼으면서 과거 역사의 어두운 터널 속을 헤매입니다. 바로 이것이 “지나간 과거”입니다.
광복 60주년의 의미는 바로 이 “지나간 미래”를 찾고 그 연장선상에서 오늘의 미래를 그리는 것입니다. 새로운 희망을 찾고 그 희망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다짐과 결단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지나간 역사의 아픈 과거를 미래를 향한 소중한 유산으로 삼는 나라 중 대표적인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 홀로코스트 추모관이 세웠습니다. 저들은 나찌에 의해 600만이 대학살당한 사건을 “홀로코스트”라고 이름했습니다. 히브리어로 홀로코스트는 “제물을 통째로 태워 바치는 번제”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저들은 이 대학살 사건을 번제로 드려진 것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쳤으나 돌려받은 것처럼 대학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쳐졌으나 되돌려 받게 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망한 것 같으나 다시 일어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추모관에 가면 정말 끔찍한 장면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나찌가 유대인들의 기름을 짜서 만든 비누며, 가스실, 생체실험실, 처참하게 죽어가는 장면들... 유대인들은 이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추모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거기 중요한 메시지를 남겨놓았습니다. “용서는 하지만 망각은 또 다른 방랑으로 가는 길이다.” 히틀러도 독일도 다 용서는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또 다시 이런 수치와 아픔을 당하지 않도록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광복 60주년을 지나면서 우리도 새롭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제 저 쓰라린 세월이 우리 민족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 민족의 앞날을 위해 어떤 의미로 새겨야 하는지?
그리고 이제 용서해야 합니다. 일본도 용서하고, 친일파도 용서하고... 물론 저들이 잘못을 참회할 때 말입니다. 언제까지 원한을 가슴에 묻고 갈 수는 없습니다. 역사도 청산해야 하지만 우리 안에 남아있는 저 원한도 청산해야 합니다. 그래야 홀가분하게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 민족이 나라를 빼앗기게 됐는지? 그리고 그 국난에서도 어떻게 나라를 되찾게 됐는지? 그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동일한 아픔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적 관점에서 이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될 것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이 길잡이 역할을 해 줍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10절 보면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시겠다는 뜻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동안 종살이하다가 저 초강대국 애굽으로부터 해방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셨다면 저들은 꿈에도 애굽으로부터의 해방은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로 저들이 해방의 그 감격스런 날을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한 주축으로 아시아에서 침략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마저도 도무지 일본에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임시정부가 중국 땅에서 활약하고 있었고 독립군이 나름대로 저항운동을 펼치고 있었지만 일본과는 맞설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중국도 국민당의 장개석 정부나 모택동의 공산당 정부가 일본을 대항할 힘이 없었습니다. 필리핀을 위시해 아시아 그 어느 나라도 당시 일본과 맞설 나라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당시 일본의 침략을 받은 나라치고 스스로 일본과 맞서서 독립을 이룰 수 있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이 나섰습니다. 사실 아시아 지역과 일본은 저들과 직접 이해관계가 없던 나라였습니다. 독일과 전쟁하는 일만도 벅찬 상황이었습니다. 연합국은 1945년 7월 포츠담 선언을 통해서 일본에 무조건적 항복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응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그리고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원자폭탄은 당시 개발된 지 얼마 안 된 신무기였습니다. 아직 한 번도 전쟁에 사용된 일이 없던 폭탄이었습니다. 그 위력도 검증이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 피해란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었습니다. 일본 천황이 아무런 조건 없이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의 광복은 정말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을 통해서 주어졌습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던 때에 갑작스럽게 주어졌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우리 민족을 해방시키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아주 특별한 방법을 쓰신 것입니다.
좀 지나친 역사 해석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하필이면 그 때 원자폭탄이 개발됐을까요? 연합군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게 두렵고 힘겨운 상대였던 히틀러에게도 써 보지 않았던 원자폭탄을 하필 일본에게 사용했을까요?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마치 저 바로의 저항을 물리치시기 위해 모세를 통해 10가지 재앙을 내리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10가지 재앙을 내리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일본의 저항을 물리치시기 위해 원자폭탄을 사용하신 것은 아닐까요? 우리를 해방시키시기 위해 원자폭탄을 준비하신 것은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의 광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인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이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 안에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민족의 장래는 하나님의 장중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입니다.
2. 선배들의 수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모세가 처음에는 자기의 자격 없음과 무능함 때문에 사양하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순종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저 가나안 땅으로의 기나긴 여정을 이끌었습니다. 죽도록 충성한 수고가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 역사를 보면 광복 당시 선배들의 죽도록 충성한 수고가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눈부신 헌신이 있었습니다.
우리 역사가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우리 민족 독립투쟁에 기독교인들이 가장 헌신적이었고 큰 공헌을 했다는 점입니다. 그 당시의 역사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독립투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기독교인이었고, 그 핵심 인물들이 대부분 기독교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독립협회를 주도한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서재필, 윤치호, 이상재, 이런 분들은 모두 연동교회를 출석하던 분들이었습니다.
일제가 한일합방을 강행한 1910 이후 본격적인 항일 투쟁운동이 시작되었는데 그 대표적 사건 가운데 하나가 신민회의 105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 신민회는 숭실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비밀조직이었습니다. 이들이 항일운동을 하다가 발각이 되어 체포되었는데 이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이 123명이었는데 그 중 93명이 기독교인이었고 선교사만도 24명이었습니다.
1919년 3.1운동은 범 민족적으로 일어난 항일투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봉에는 기독교인이 있었습니다. 33명의 민족대표 가운데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최남선은 연동교회 교인이었습니다. 당시 기독교인은 0.9% 밖에는 안 되는 정말 미미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3.1운동으로 박해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 절반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전국 교회가 이 일에 분연히 일어나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이 임시정부 수립의 모체는 신한청년단이었습니다. 이 신한청년단은 상해한인교회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신한청년단의 대부분의 인사들이 상해한인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초창기 멤버로 장덕수, 김구, 서병호, 송병조, 여운형, 김규식... 이들이 다 기독교인이었습니다. 후에 임시정부의 요직을 맡았던 대표적인 인사들 대통령 이승만, 안창호, 이동휘, 조소앙, 신익희 이런 분들이 다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제는 상해한인교회를 두고 “기독교를 이용해서 독립운동을 선전하고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경계할 정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당시 미미했지만 독립운동의 무시 못 할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의 핵심 인물들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한 빛나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국교회가 앞으로 조국 통일, 나라의 번영에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선배들의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아 나라 발전에 앞장을 서야 하겠습니다.
3. 구국기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라고 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을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한국 땅에 놀라운 기도의 불길이 일었습니다. 1884년 시작된 한국교회에 본격적인 기도의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903년이었습니다. 원산에서 하디 선교사가 기도에 관해 설교를 했습니다. 그 때 선교사들이 먼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인 신자들에게 그 은혜가 번져서 그 다음 해까지 하디 선교사의 전국 순회 집회로 무려 1만명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더 놀라운 부흥의 역사는 1907년 저 평양에서 일어났습니다. 1907년 정월 첫 주간 북한 전역에서 700명의 신자가 평양 장대현 교회에 부흥회로 모였습니다. 8일 주일저녁 예배 때 일이었습니다. 당시 장대현 교회 길선주 장로가 일어나 회중 앞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1년 전에 자기 친구가 세상 떠나면서 재산 관리를 자기에게 맡겼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당시 미회 100불상당의 금액을 사취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아간과 같은 자가 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집회에 복을 주시지 않는 것이라고 통회했습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그 돈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때 마치 봇물이 터지듯이 은혜의 역사가 물밀 듯 회중에게 밀려들어왔습니다. 무거운 죄책감이 통회로 다 날아가고 성령의 충만한 가운데 저들이 은혜의 사람들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물결이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때 정치적으로 기독교를 이용하려던 무리들은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순수하게 신앙적 열정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저들이 새벽기도회를 시작했고, 철야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기도의 전통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런 기도의 운동이 구국기도가 되어 하나님께 나라와 민족을 위해 부르짖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 민족에게 광복의 축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는 뜨거운 기도의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나라와 만족을 위해 기도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역시 한국교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 바로 이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