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영토 지승룡 소장의 '400배 확장 비결' / 목사가 술마시고 무면허 운전 '구속' 2004-06-16 15:14:20 read : 6535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지친 도시민 위한 '남자마담' 되고싶었다"
2004년 현재 국내 기업 95%가 은행이자 이하의 수익 즉 손실을 보고 있으며 IMF 이후 86만개의 기업이 부도를 내거나 폐업하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 지난 10년 동안 카페 사업 하나로 매장 규모만 400배 이상 성장하고 있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북경에까지 지점을 열고 있다면 놀라운 일이 아닌가?
나는 우연한 기회에 신촌 연세대학교 인근에 있는 카페 '민들레 영토'(민토)를 방문하고 지승룡 사장(민토에선 '소장'으로 불린다)으로부터 그 동안 성장과정과 경영철학을 들을 수 있었다.
도시인에게 건전한 휴식의 공간 마련해 주려 시작
지승룡 사장은 1993년 말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혼자서 종로구 인사동의 조그만 카페를 찾았다. 30분 정도 상념에 잠겨 있는데 종업원이 다가와서 '혼자서 차 한 잔 시키고 이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면 안됩니다'는 말에 계면쩍게 일어서서 나오면서 생각한다.
군중 속에 차츰 외로워지는 도시인들에게는 편안한 휴식공간이 이렇게도 없단 말인가? 대한민국 국민의 92%가 도시에 살고 있다는데 도시의 모든 공간과 사람들이 이토록 장삿속으로만 치달아 있단 말인가?
그러나 카페를 나서는 지 사장에게 번개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외로운 도시인들이 고향의 집이나 어머니의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을 만든다면 이것은 비즈니스로도 분명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옛날 시골의 다방에서 마담들이 손님에게 편안한 대화의 분위기를 제공하였듯이 도시인에게 건전한 휴식의 공간을 마련하고 나는 최초의 남자 마담이 되어야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로서 교회에서 일해 온 지 사장에게는 밑천 마련이 급선무였다. 그는 우선 강남에서 양복차림으로 떡볶이 장사를 시작하였다.
정장 차림의 떡볶이 장사가 신기해서인지 매출액은 하루 20만원에 달하여 6개월 후에는 2000만원의 밑천을 마련할 수 있었으며, 드디어 1994년 4월에 신촌 기차역 인근에 10평 크기의 '민들레 영토' 즉 '민토' 모점을 오픈하였다.
이것이 96년에 100평이 되었고, 97년에는 고려대점, 98년에 대학로 본관 개점 등으로 급속히 확대되어 2004년 현재 카페 공간 4000평으로 10년 전에 비하여 400배가 되었다. 고객의 수는 신촌점에만 하루에 약 3000명에 달하고 전국적으로 1년에 약 400만명의 고객이 찾고 있으며 2008년에는 1000만명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일종의 찻집에 불과한 민토에 왜 이렇게 많은 고객이 몰리는 것일까? 한국인의 문화적 측면이 우선 한몫을 하고 있다고 지사장은 설명한다. 미국의 스타벅스가 국내에도 들어와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넓은 공간의 점포는 한국의 명동점이라고 한다. 땅도 좁고 건물 임대료도 비싼 한국에서 왜 가장 넓은 스타벅스가 세워질 수 있을까? 그것은 한국인의 모이기 문화 때문이다.
개인주의 문화인 미국인들은 한국인들의 동창회나 계모임 등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각종 모임을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면 누구나 찻집을 열면 성공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아니다. 민들레 영토가 성공하게 된 데에는 남다른 비결이 있을 것이다.
다음은 지승룡 사장과의 대화 내용이다.
"고객을 행복하게 만들면 결국 수익으로 돌아온다"
- 비즈니스 컨셉트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인가?
"어머니의 마음이다. 우리들의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항상 먹고 더 먹어라, 이다. 반찬이 부족하면 더 갖다 주시고 항상 자식이 배부르게 먹기를 소원하는 그 정 때문에 우리는 어머니의 정을 끝내 못 잊고 있다고 생각한다. 민토 즉 민들레 영토에서는 모든 손님에게 음식 주문을 받을 때 반드시 '드시고 더 드세요'라고 말한다. 실제로 반찬은 항상 부족함이 없도록 더 갖다 드리며, 민토 차 등 음료도 3회까지 리필을 해 드린다."
- 음식 외에 주요 서비스는 무엇인가?
"우리는 고객이 민토를 방문시에 4000원의 문화비를 받는데 교회의 십일조처럼 고객에게는 10배의 이익을 돌려 드리는 것이 목표이다. 4000원의 문화비에는 음료뿐 아니라 빵과 라면이 무료로 제공되며, 신촌점의 경우를 예로 들면 50개의 크고 작은 세미나 방이 있어 손님이 3시간 동안 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또한 건물의 각 층에는 영화관, 독서실, 연인실, 세미나실, 어린이와 가족실 등 고객들이 원하는 것은 모두 갖췄다고 할 수 있다."
- 음식의 질과 가격은 어느 정도라고 할 수 있는가?
"민토의 음식은 가장 비싼 립 아이(Rib Eye) 쇠고기 스테이크가 1만5000원이다. 대부분이 1만원 이하인데 가장 좋은 재료를 사용하므로 품질은 매우 만족스럽다고 고객들이 평가해 준다."
- 신촌, 혜화동 등 도시 한복판의 건물에서 4000원의 문화비를 받으며 3시간 동안 머무를 수 있게 휴식공간을 제공하면 채산성이 맞는가?
"고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결국은 수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확신한다. 보시다시피 50개의 크고 작은 대화방이 거의 빈 곳이 없다. 뿐만 아니라 입구에는 20~30여명의 대학생들이 빈자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대기하지 않는가? 결론적으로 수익성이 나쁘지 않다."(투자액의 2.5%~3%의 월 수익을 실현하는 듯.)
"고객의 존경심을 일깨워주기 때문에 찾아"
- 고객들이 이곳을 찾는 주된 이유는 무엇인가?
"나도 같은 질문을 고객들에 해 본 적이 있다. 이곳에 오면 편안하다, 마치 고향이나 어머니 집에 온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 과거에 시골 다방에 가면 다방 아가씨가 사장님, 또 오셨군요 하면서 아양을 떠는데 이러한 다방에 손님들이 찾는 이유는 세파에 찌든 서민들의 자존심 또는 자기 존경심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민토의 모든 직원들은 수많은 손님이 오는 중에도 친절하게 다가가서 환영의 인사를 개별적으로 드리고 음식 주문을 받을 때에도 드시고 더 드세요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존중감을 아낌없이 표현한다."
- 복도나 손님들의 룸에 애완견이 다니던데 무슨 연유인가?
"사람이 본능적으로 행복감을 느끼고 맥박이 빨라지는 대상을 5가지 고른다면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1)여성의 미소 (2)강아지 (3)꽃 (4)어린이 (5)책이다. 민토에서는 이 다섯 가지를 모두 활용하고 있다. 여유 공간을 꽃으로 장식하고, 어린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방이 있으며, 손님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각층 휴게실에 책을 비치해 두었다. 질문하신 애완견은 그 중의 하나이다. 처음 오는 여대생 손님들은 그 개를 보고 무서워하지만 차츰 정이 들어 나중에는 서로를 알아보고 반가워한다."
"홈페이지 통해 직원 상호간 공감대 유지"
-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여성의 미소 때문인지, 종업원들이 매우 친절하고 자신의 일에 소명감을 가진 듯한 모습이 예사롭지 않던데….
"신촌점을 예로 들면 20대 중반의 직원들(대학생도 많음)이 약 100명 정도 된다. 민토에서 직원 채용공고를 하면 경쟁률이 매우 높다. 월급도 동종 업종에서 최고 수준으로 대우해주고 있지만, 직원들이 친절한 주된 이유는 직원들의 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신입 직원에 2일간의 친절교육과 민토의 서비스 정신을 교육한다.
뿐만 아니라 채용 후에도 민토 홈페이지를 통하여 전 직원이 서로의 글을 올리고 저의 당부사항을 공유한다. 즉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직원 상호간 공감대를 유지하고 있다. 제가 글을 올리면 보통 직원 400~500명이 답글을 보내주는 정도이다."
- 사업의 아이디어가 참 특이하다고 생각되는데 이런 모든 생각들은 어디서 힌트를 얻었는가?
"일본 등 외국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벤치마킹한 것 아닌가 하는 질문을 자주 받지만 우리의 사업 아이디어는 철저하게 고객의 아이디어로부터 비롯되었다. 보다시피 수많은 내부 장식이나 각 대화방의 명칭 등 기발한 아이디어들은 지난 10여년간 대학생 등 고객들이 주신 아이들을 활용한 것뿐이다. 저희는 심지어 계단 복도의 게시판에 낙서나 제안을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주문서 뒷면에 고객의 코멘트나 건의를 하도록 하고 있다."
열정, 직원, 제품, 개별적 존중감 4P 전략이 400배 성장 원천
지승룡 사장의 말을 통하여 경영상에 몇 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첫째, 고객을 행복하게 하면 반드시 이윤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비즈니스 컨셉트이다. 또한 종업원들에게 종교적이라 할 만큼 고객에 대한 봉사와 친절을 교육함으로써 자기 일에 몰입된(Engaged) 종업원들을 유지하고 있다. 즉 지승룡 사장과 모든 종업원들이 열정 즉 'Passion'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특징이다.
둘째, 종업원들에게 동종업 중에서 최고의 대우를 하면서 서비스 마인드가 확고한 직원들을 채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승룡 대표가 수시로 사내 홈페이지를 통하여 직원들과 광범위한 커뮤니케이션을 함으로써 조직의 전 구성원(People)들이 똘똘 뭉쳐 일을 하고 있다.
셋째, 고객들의 1차 욕구인 음료와 음식의 품질에 있어서 최고의 만족을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필자가 지승룡 대표와 면담하는 날 오이국을 먹었는데 잘게 썬 섬세함이 마치 바늘과 같았다. 평생에 먹어 본 오이국 중에 기억에 남는 오이국이 될 것이다. 즉 서비스업의 가장 핵심인 제품(Product)에서 최고를 제공하고 있다.
넷째, 수많은 고객이 찾아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업원들은 최대한 개별적으로 대화를 시도한다. 친절하게 주문을 받을 뿐 아니라 개인의 애로사항까지도 상담을 해줌으로써 고객의 개인적 자존감을 살려주고 있다. 심지어 애완견까지도 단골손님을 알아보고 반기는 영업전선에 참여하고 있다. 즉 고객의 개개인(Personal)을 소중하게 대우하고 있다.
이상의 4가지 시사점 즉 열정(Passion), 똘똘 뭉친 사장과 종업원(People), 양질의 제품(Producrt), 고객에 대한 개별적(Personal) 존중감 전략이 수많은 기업들이 폐업하는 환경 속에서도 민토가 400배나 확장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고객을 행복하게 해 주면 반드시 수익으로 돌아올 것이다. 비지니스 아이디어는 철저하게 고객의 목소리를 반영하였을 뿐이다"는 지승룡 사장의 경영철학과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카이스트의 현용진 교수는 "많은 기업들의 경영전략을 보면 경쟁사들의 전략을 방어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데 보다 중요한 것은 경쟁사의 전략보다 고객의 욕구가 무엇인지 찾아내고 이를 만족시켜주는 데 두어야 한다, 기업들이 기술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고객의 욕구변화를 추적하거나 심지어 고객 자신들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잠재된 욕구를 파악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민들레영토에 빈 자리가 없이 고객으로 채워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민토 홈페이지 : www.mint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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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술마시고 무면허 운전 '구속'
경기도 용인경찰서는 술을 마시고 무면허로 운전을 한 혐의로 목사 38살 김모씨를 구속했다.
김씨는 지난달 25일 밤 수원시 영통동의 한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신 뒤 혈중 알콜 농도 0.216%인 상태에서 자신의 그레이스 승합차를 몰고 4킬로미터를 운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김씨는 지난 2월과 4월에도 음주운전을 해 면허가 취소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CBS사회부 김태훈기자 swordpe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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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 시대, 이렇게 산다
낙천적인 사고·도시보다는 나무 많은 자연 '가까이'
황화진 hwajin0688@hanmail.net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최근엔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웰빙(Well-being)이란 사전적인 의미로 1)편안하다(Comfortable) 2)건강하다(Healthy) 3)행복하다(Happy)는 뜻이 있다. 요새는 편안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을 한다. 흔히 잘 먹고 잘 살사는 것이 웰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나 그건 부분적인 뜻이다.
웰빙 시대에 건강하기 위하여 운동을 하는 이들이 많이 생겼다. 그 중에 나도 한 사람이다. 운동이라고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산에 가는 거다. 걸을 줄은 아니까. 날씨가 더운 관계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올라가지만 산에 가면 바로 느끼는 것이 맑은 공기다. 요새는 밤꽃 향기가 날리고 산 속 나무에서 뿜어대는 산소가 얼마나 상쾌함을 주는지 모른다.
일주일에 서너 번 시간을 내서 가까운 칠보산을 다녀온다. 소요되는 시간은 한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동행자가 네다섯 명 되는데 재미있다. 매일 똑같은 시간은 아니지만 미리 약속하고 대략 같은 시간대에 짬을 만들어서 갔다 오는 것이다. 일도 건강해야 하는 것이니까 건강을 지키는 것은 건강할 때 그리고 나이 한 살 더 먹기 전에 해야 할 일이다.
산을 오를 때 숨이 가빠 헉헉거리면서도 수다 떠느라 더 헉헉거리게 된다. 강우 모친은 아예 맨발로 등산을 하는데 숙달이 됐는지 신발을 신은 나보다 더 잘 걷는다. 정상에 올라가 앉아서 쉬다 보면 시원한 냉면 생각이 간절하다. 그래서 어떤 날은 내려오다가 식당으로 가기도 한다. 더위가 일찍 찾아와서 샤워까지 싸악 하고 나면 정말 상쾌하다.
웰빙족의 원조는 기원전 341년에 태어난 에피쿠로스이다. 그는 이미 그 시대에 식욕(食慾), 성욕(性慾), 청욕(廳慾), 시욕(視慾)을 누리며 살았다는 것이다. 이 조건이 다 맞으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어느 부분이든 누릴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누리면서 인생을 즐겁게 사는 낙천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한 때다.
니어링 박사는 웰빙 시대에 다음과 같은 생활 습관을 권장하고 있다.
1) 저지방 유기농식품으로 소식을 하라.
2) 주 1회 이상 땀 흘리는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하라.
3) 가족 간의 화합으로 행복 지수를 높이라.
4) 동료 간 경쟁을 피하고 목표를 세워 자신과 싸우라.
5)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독서나 명상, 클래식 음악 듣기, 공연 관람 등 취미 생활을 하라.
6) 정기적인 봉사 활동으로 보람을 찾으라. 그러면 마음의 기쁨과 평화가 있다.
7) 가족들과 함께 주말농장을 가는 등 도시보다는 숲이 많은 자연을 가까이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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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회주의를 비판한 무교회주의자'
김교신… 순수한 '조선산 기독교'를 온 몸으로 살다 간 시대의 단독자
김명곤 Myungkim5459@yahoo.com
김교신 평전이 처음 시중에 나왔을 때(1980년 11월)는 우리의 땅이 군홧발 앞에 짓밟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캄캄하고 숨이 턱턱 막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던 때였다.
복음이 무엇이며, 교회가 무엇인가
5·18을 부끄럽게 비켜서고 난 직후 "우리의 지도자는 어디에 있는가"를 되뇌이며 두리번거리고 있던 사람들, 특히 우리 땅에서 '복음이, 크리스천이, 교회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로 골몰하고 있던 기독인들에게 이 책은 가느다란 한줄기 빛이었다.
그 당시 김교신의 친구들과 제자들에 의해 '무교회주의자를 비판한 무교회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김교신에 관한 조각 글들이 신문, 잡지와 일반대학원·신학대학원의 논문들을 통해서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전모를 단 한권의 책 속에 조망시킨 것은 이 책이 처음으로 알고 있다.
나는 1970년대 중반 제법 '내공'이 깊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던 어느 노인들의 성서 연구 모임에 참석해 지나치듯 몇 차례 김교신이라는 이름을 주어 듣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버릇처럼 청계천 고서점을 뒤적거리다 누렇게 변한 김교신의 구약성서 강해 단편집을 우연히 발견해 읽고 탄성을 내질렀던 기억이 있다.
전 연세대 교수였던 김동길은 한국 근대사에서 존경할만한 두 인물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중 첫 손가락에 김교신을 꼽겠노라고 했다. '두레 공동체 운동'의 김진홍 목사는 그의 여러 편의 설교와 글에서 김교신의 조선산 기독 신앙을 깊이 흠모하는 마음을 토하였고, 어느 미주 집회에서는 한때 그가 주도하여 발간했던 <성서한국>이 김교신이 전력을 다해 발간했던 <성서조선>에 담긴 신앙 유산을 이어받은 것임을 밝혔다.
김교신의 양정학교 제자였던 손기정은 동경 마라톤 예선에서 선두를 달리는 자신을 보고 선도차에서 시종 눈물을 훔치던 스승 김교신의 눈물만 바라보고 뛰어서 끝내는 우승했다고 한다.
이 책은 인물 평전이다. 성품이 강직하다 하여 붙여진 '양칼'이라는 별명과 함께 커닝하는 제자를 부둥켜안고 소리없는 눈물을 흘렸던, 소외당한 소록도인에게 '문둥아!'라는 '연애편지'를 쓰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렸던, 그리고 끝내는 흥남 질소 공장에서 '그리스도의 복음 심장에서' 마지막으로 체험한 '민족'속에 누었던, '한국의 예레미야' 김교신의 신앙 유산과 삶을 정리하고 평한 것이다.
"추수할 때가 왔으나 일꾼이 없습니다. 꼭 갑시다"
1902년 함남 함흥에서 태어난 김교신은 1920년 6월 동경 유학중 그곳 성결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으나, 기성교회 지도자들의 타락과 위선에 회의를 느껴 일본의 반전, 반제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의 문하에 들어가 신앙 수업을 했다. 그는 1927년 귀국하여 함석헌, 송두용, 유석동, 정상훈, 양인성등과 함께 <성서 조선>을 창간, 1930년 주필로 편집, 발행을 책임지면서 심혈을 기울였고 중세기 수도승 같은 경건생활을 계속했다.
이어 김교신은 1924년 <성서조선> 158호에 실린 권두언 '제와' (죽은 개구리를 애도함)라는 글의 마지막 문장에서 살아남은 한 마리의 개구리를 묘사하여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라고 썼는데 이 표현이 민족의 부활을 암시하고 있다 하여 폐간과 함께 피검, 함석헌, 유달영 등 13인과 서대문 형무소에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4년에는 흥남 질소회사에 입사하여 노무자의 복리를 위해 진력하며 발진티프스 환자들을 돌보다가 감염되어 1945년 4월 25일 해방을 4개월 남짓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함께 일했던 외과의사 안상득 앞에서 숨지기 전 힘없이 그가 토한 마지막 말을 적어본다.
"안 의사, 나 언제 퇴원하여 공장으로 갈수 있습니까… 나 40 평생에 처음으로 공장에서 민족을 내 체온 속에서 만나보았소 … 이 백성은 참 착한 백성입니다. 그리고 불쌍한 민족입니다. 그들에게는 빵보다도 따뜻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제 누가 그들을 불쌍한 무리로 만들었냐고 묻기 전에 이제 누가 그들을 도와 줄 수 있느냐가 더 급한 문제로 되었습니다. 안 의사, 나와 함께 가서 일합시다. 추수할 때가 왔으나 일꾼이 없습니다. 꼭 갑시다."
조선 사람의 심장으로 녹아진 '조선산 기독교'
김교신에게서 '조선'을 빼고 그의 신앙과 삶을 이해할 수 없다. 한국교회사를 쓴 민경배는 "김교신의 신앙고백은 진리에 대한 충성과 함께 민족의 얼과 양심의 표현"이었다고 적고 있다.
김교신은 구미 선교사들의 성서 해석과 복음 이해의 유풍을 벗어나서 조선 사람의 다리로 체험되어지고 조선 사람의 심장으로 녹아진 순수한 '조선산 기독교'를 형성하는데 처절한 내적 투쟁을 했던 시대의 단독자였다.
함석헌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우리 민족의 '섭리사적 존재 이유'를 캐내기에 지고의 가치를 부여했고, 결국은 뒤늦게 고난당하는 민중의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 섭리사적 실존으로서의 우리 민족의 '존재이유'를 체험코자 했다.
이 책의 저자 김정환은 김교신의 신앙고백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참새 한마리라도 하나님의 뜻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한다. 그렇다면 몇 천 년에 걸쳐 이 땅에 터 잡고 영고성쇠의 역사를 경영해온 우리 민족의 섭리사적 사명은 무엇인가? 이것을 외국의 신학자가 다듬어 줄 것인가? 또 외국의 역사가가 알려줄 것인가? 그게 아니다고 외친 사람이 김교신이었다."
이 책은 김교신의 삶의 발자취를 통해 기독교 신앙이란 단순한 '말의 전달'과 '깨달음'에 그 궁극이 있는 것이 아니고, 총체적 의미로서의 복음(예수의 말씀과 삶)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창조된 '민족'속에 들어가 영글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개인주의적 이기와 정치적 경박을 벗어나 고난당하는 민족의 삶의 현장에서 깊은 영적, 도덕적 구원을 기원하는 김교신의 민족 구원의 신앙이 절절히 들어나 있다. (김정환 지음·한국신학연구소. 231쪽)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성서와 조선'
사랑하는 자에게 주고 싶은 것은 한두 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하늘의 별이라도 따 주고 싶으나 인력에는 스스로 한계가 있다. 혹자는 음악을 조선에 주며, 혹자는 문학을 주며, 혹자는 예술을 주어 조선에 꽃을 피우며, 옷을 입히며, 관을 씌울 것이나, 오직 우리는 조선에 성서를 주어 그 골절을 세우며, 그 혈액을 만들고자 한다.
같은 기독교도로서는 혹자는 기도생활의 법렬의 경을 주창하며, 혹자는 영적체험의 신비세계를 역설하며, 혹자는 신학지식의 조직적 체계를 애지중지 하나, 우리는 성서를 배워 성서를 조선에 주고자 한다. 더 좋은 것을 조선에 주려는 이는 주라. 우리는 다만 성서를 주고자 미력을 다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조선에. 그러므로 조선을 성서위에 (<성서조선> 창간호 '성조선의 해'에서)
[중앙일보 배노필 기자] 방모씨 부부는 전북 남원에 있는 S교회의 열성 신도였다. 이 교회는 부부 목사인 정모(47).강모(44.여)씨가 1994년에 세웠다.
"큰 차를 하나님께 바치면 축복을 주신다."목사 부부의 말에 방씨 부부는 97년 5월 승합차 두대를 헌납했다. 4000만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다. 방씨 부부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자 목사 부부는 또 다른 '계시'를 내렸다.
"하나님이 물질을 주실 때가 왔으니 상경하라."98년 8월 방씨 부부는 서울로 올라와 수유동에서 족발집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경험도 없는 방씨 부부가 낯선 곳에서 사업을 하기엔 무리였고 장사도 잘 되지 않았다. 그동안 목사 부부에게 갖다 바치느라 꿔다 쓴 돈만도 8000여만원이나 됐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에 올라온 부부 목사는 또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남원으로 내려가 새 출발하라." 결국 방씨 부부는 족발집을 넘겨주었다.
2002년 목사 부부는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 'E치유센터'란 상담 치료소를 만들었다. 가정예배를 하면서 알게 된 신도나 주변 사람들을 상대로 마음의 병을 치유해 준다는 것.
조모씨는 목사 부부에게서 "우울증에 걸린 딸에게 어둠의 세력이 있으니 1000번 제를 드려라"는 말을 듣고 1만원권 지폐를 넣은 봉투 1000개를 준비해 기도를 하기도 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6단독 남기주 판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세워 헌금.헌물을 강요한 혐의(사기 등)로 기소된 부부 목사 가운데 부인에게는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남편은 징역 2년.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남 판사는 판결문에서 "이번 범죄가 가능했던 근본 원인은 하나님과 목회자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일부 피해자들의 맹목적인 신앙태도와 본분을 망각한 피고인들의 잘못된 목회관에 있다"고 지적했다.
배노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