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릿한 생선냄새가 가득한 서울 가락시장.
그러나 그 어느 곳보다 삶의 활력과 늘 그리운 사람의 내음이 느껴지는 그 곳에 위치한 가농소망교회에는 빈민층과의 삶을 매일 다짐하며 살아가는 편추자목사를 만날 수가 있다.
편목사의 목회지는 두 곳. 상인들의 예배처며 상담소가 되고 있는 가농소망교회와 버려지다시피 방치되어 있는 어린이들과 노인들의 안식처 가농소망원이 그 곳이다.
공주교대를 나와 선생님으로의 안정된 생활을 뒤로 한 채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를 시작한 편목사. 그가 가락시장을 터전으로 목회를 한지도 벌써 12년이 흘렀다.
“우연히 이 곳에 상인들을 위한 교회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목회를 시작했어요. 이 곳에서 무엇인가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일을 따라 하나둘씩 벌여가다 보니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죠”
일주일에 두 번 노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무료진료를 하며, 매일저녁 지역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공부를 가르치고 밥을 먹이고, 성경도 가르치고... 대부분 엄마없는 아이들이기에 정서적 안정을 위해 음악을 가르치며 상담을 하느라 바쁘게 돌아가는 가농소망원은 이제 가락시장부근의 없어서는 안될 사회기관이 되었다.
이러한 일을 끊임없이 하는 편목사는 이 모든 이유가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사회복지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죠. 영혼구원으로 시작해서 배고프고 몸이 아프고 사람대접 못받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워주고 인간으로 살 가치를 가르치고, 먹이고, 치료하는 일을 몸소 하셨잖아요. 그러니 저도 해야죠”
교도소에서 나와 사회로의 복귀를 꿈꾸는 아이들을 위한 해바라기 집과 성폭행당할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을 위한 포도나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한 편목사는 “오히려 빈민층과 함께 살면서 성서를 보는 눈이 넓어졌다”며 감사의 삶을 살고 있다.
김혜은 기자 sky@gam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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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없는 모습으로 만난 성도들과 함께
박경자 목사 (이원교회)
충북 옥천. 온갖 실과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이곳 옥천에는 박경자목사가 이원교회와 교인, 그리고 이웃을 섬기며 일하고 있다.
박목사가 이원교회를 개척한지도 15년.
장년 70여명을 포함해 어린이들까지 1백30명 정도가 이원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별다른 목회철학은 없습니다. 다만 정직하게 목회하자라는 마음을 갖고 지금껏 교인들을 대하고 설교했으며, 교회를 이끌어왔죠”라는 박목사의 말처럼 소박한 시골인심에 답하기라도 하듯 꾸밈없이 해온 목회가 이원교회를 성장시킨 요인이었다.
“커다란 목표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이루자는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그저 한사람 한사람에게 솔직한 내 모습을 보이며 조금이나마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고 올바른 기독교인이 되도록 말씀을 전했을 뿐입니다”
교인들에게 “먼저 참 인간이 될 것”을 강조한다는 박목사는 “기독교인이라고 당당히 말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도리를 지키고 타인에게 모범이 되는 참 인간으로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박목사는 이어 “인격을 갖추고 은혜받기를 간구하며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삶이 기독교인의 삶의 모습”이라고 강조한다.
“앞으로 목회생활이 십년 정도 남았습니다.” 15년 전 홀홀단신으로 옥천에 내려와 이원교회를 개척하고 교회와 교인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박목사. 그는 “지금까지는 교회와 교인들을 성장시키는데 집중하느라 기본적인 구제밖에 하지 못했다”며 앞으로의 십년은 선교에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사회구원과 복지에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나의 힘이 되시는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김혜은 기자 sky@gam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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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하심을 따라서
최정자 목사 (대가교회)
“목회를 시작하니 나를 괴롭혔던 지병들이 사라졌습니다.” 최정자목사(대가교회)는 심장병과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중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사명자가 다른 길을 갔느냐. 그래서 남보다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라는 안수하시는 목사님의 말 한마디에 목회를 시작했고 그 뒤로 인생행로가 바뀌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1980년 남편과 어린 3남매와 함께 목회를 위해 찾아간 곳은 총, 대포 소리나는 최전방 강원도 원통. 이미 심장병과 피부병으로 나약해진 몸은 이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힘든 하루하루였지만 전도와 기도로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육체의 병들은 깨끗이 사라져있었다.
“여성이라는 차별이 주어졌지만 성도들에게 친절하고 소신것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어느 목회자보다 더 열심히 새벽기도, 철야기도에 최선을 다했고 여성목회자만이 할 수 있는 일들까지 진실되게 목회를 해 왔다는 최목사. 단양지역으로 옮긴 뒤 세 곳의 교회를 개척할 만큼 누구보다 축복 받은 목회자라 말하고 있다.
최목사는 “예수님이 치라 했기 때문에 내게 맡겨진 양떼들을 치고 이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공부해서 먹이고 양육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분량대로 채워주고 행하시는 하나님 뜻을 믿었던 것이다.
최목사가 교회개척 당시 일곱 살이었던 아들은 올해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만큼 목회를 해왔고 앞으로 은퇴할 그날까지 은혜주시는 데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한다. “목회자에는 남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등한 입장에서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성도를 말씀으로 잘 먹이고 목회에 전념하라”며 여성목회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김혜은 기자 sky@gam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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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빚을 베푸는 사랑으로
김명분 목사 (창대교회)
“가장 평범한 말이 진리잖아요. 그래서 저는 하나님과 교인을 사랑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목회생활을 했습니다.”
올해로 목회생활 38년을 맞은 김명분목사. 그 시간동안 무려 일곱 군데의 교회를 개척한 김목사는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제 사명인가 봅니다”라는 말로 그의 공로를 선뜻 나타내지 않는다. 또한 김목사는 그가 하나님나라 확장에 바쳐온 그의 삶을 “개척교회를 설립하고 이리뛰고 저리뛰다 보니 결혼할 시간이 어디 있었나요”라는 말로 대신한다.
소양감댐으로 수몰지구가 된 용소목교회에서 64년도 첫 목회를 시작해 북산교회, 남부제일교회, 제주도에 월정교회 등을 개척하고 안식관에서 은퇴여교역자를 돌보는 삶을 살았던 김명분목사.
“교회 주변으로 아파트들이 들어설 계획입니다. 이제 제가 할 일을 제 후임자가 더욱 열심히 전도하고 목회할 수 있도록 밑거름을 닦는 일이죠” 은퇴를 5년 남겨둔 김목사는 지난해 교회 옆 대지를 확보하고 본당을 신축할 계획을 밝혔다.
신앙이 전혀 없는 집안에서 신앙을 갖고 신학을 하면서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김목사는 그 은혜의 빚에 보답하며 살기 위해 지금도 노력중이라고 한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후배 여교역자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하자 김목사는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사람 냄새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위로가 되고 쉼이 되며 사랑을 전하라”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듯한 소중한 한마디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