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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기독교 성지를 ‘열차 타고’ 순례합시다 / 얼굴에 히잡 두른 무슬림 여성이 채플엔 무슨일로… 2009-05-26 08:52:37 read : 6553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국내의 기독교 성지를 ‘열차 타고’ 순례합시다
오는 19일부터 정기 운행, 25일 팸투어 시행
▲‘기독교 성지순례 탐방열차’ 홍보 포스터.
국내 최초 ‘기독교 성지순례 탐방열차’가 5월 19일부터 본격 출발한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신안 증도, 영광 수교지, 함평 나비엑스포 등 전남·서해안 지역의 기독교 성지와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기독교 성지순례 탐방열차’를 5월 19일부터 운행한다고 18일 밝혔다.
이 열차는 주민의 90%가 기독교 신자로 천국의 섬으로 불리는 신안군 증도의 故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지를 시작으로, 영광군 염산교회 순교지와 야월교회 순교기념관 등을 방문하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특히, 여행객은 기독교 순례지 뿐 아니라 아시아의 대표 슬로시티 신안군 증도에서 대규모 태평염전과 ‘짱뚱어 다리’ 등지를 둘러보고, 꿈의 휴양지 엘도라도 리조트에서 숙박을 하게 된다. 또, 국내 최고의 지역축제 가운데 하나인 함평 나비엑스포 등을 관람하고, 함평의 대표 특산물인 한우 비빔밥도 맛 볼 수 있다.
기독교 성지순례탐방열차는 5월 19일부터 당일코스와 1박2일 코스로 운행되며, 여행안내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코레일 광주지사(062-605-2168)로 문의하면 된다.
신준호 코레일 광주지사장은 “전남·서해지역의 명물과 조합시킨 ‘기독교 성지순례 탐방열차’를 전라남도의 대표적인 지역탐방여행상품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코레일은 오는 25일부터 1박2일 동안 한국관광공사·신안군과 공동으로 성직자, 언론인, 여행관계자 등 80여명을 초청해 성지순례탐방열차 팸투어를 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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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학 직무대행, 기자회견 갖고 공식업무 시작
기독교대한감리회의 현 난국을 이끌도록 법원으로부터 지명된 이규학 감독회장 직무대행이 25일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이에 본부에 계속 남아 있던 김국도 목사 측 잔류 인원들은 담화문을 내고 전격 철수했다.
“한국교회와 감리교도께 근심 끼쳐 송구스럽다”
감리교 본부 회의실에서 진행된 이규학 직무대행의 기자회견은 직무대행의 인사말에 이은 기자들의 질문에 이 직무대행이 원론적,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듯한 답변으로 일관해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이 직무대행은 먼저 감리교회의 이번 사태와 관련 한국교회와 감리교 성도들에게 사과의 말과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는 “그간 하나의 교회, 단일 교파로 감리교가 잘 해왔는데 한국교회 앞에 많은 근심을 끼쳐드려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송구스럽다”면서 “156만 감리교회 성도들과 본부 직원들에게 성령의 위로와 만지심이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전ㆍ현직 감독 및 주위의 의견을 겸허히 수용하여 직무대행으로서 감독회장의 직무인 ‘교리와장정’을 수호하는 일을 잘 감당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그는 “감독회장 직무대행은 ‘교리와장정’을 수호하는 일”이라면서 “앞으로 나오는 법적 판결의 내용에 따라 방향이 결정되겠지만, 그 모든 과정을 수행하면서 현직 감독들의 물론 해당 위원회와의 협의는 물론, 선배 감독들의 자문과 각계각층의 여론과 조언을 겸허히 듣겠다”고 말했다.
“직무대행의 범위와 한계 법률자문에게 묻겠다”
인사말 후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에 이규학 직무대행은 구체적인 직무 범위를 파악하지 못했다며 차후 따로 시간을 내 구체적인 답변을 하겠다는 기본 입장을 갖고 답변을 했으며, 민감한 한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 직무대행은 자신의 직무 범위와 관련 “법원에서 송달된 내용엔 직무에 대한 규정과 기간에 대한 명시가 없었다”면서 “법률 자문에게 직무의 한계를 묻겠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송사가 계속 진행 중인데 이게 어느 정도 끝나야 계획이 나오겠다”고 덧붙였다.
감리교 재단 이사장, 사회복지법인 이사장 등 다섯 가지 감독회장 당연직 이사장 직무를 맡는 것과 관련해서도 “법률적 자문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감리교회 내에서 일고 있는 ‘교회법 정립’을 요구하는 목소리의 수렴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 그는 “현재의 상태를 봉합하고 가자는 것은 아니다”라며 “대승적 차원에서 큰 것을 하나, 둘, 셋 정도 해야지 시시콜콜한 것까지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직무대행 승낙서 날짜가 추천 날짜보다 앞선 이유 못 밝혀”
이어 그는 ‘교리와장정에 따르면 감독회장 직무대행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담임목사직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주어지자 “아직 거기까지 생각해 보지는 못했다”며 “작은 문제로 파고들면 안 되고, 현재 올 스톱된 감리교 행정이 흘러가게 해야 한다”고만 밝혔다.
하지만 ‘직무대행으로 추천된 것이 지난 19일인데, 제출된 직무대행의 승낙서 서명 날짜가 10일로 돼 있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한 기자의 요청에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처음에 이 직무대행은 “신기식 목사가 처음에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4명의 직무대행 후보를 낼 때 제출한 것”이라고 답했다 .
그러나 ‘이력서는 4월 30일자로 돼 있는데, 승낙서는 5월 10일로 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는 또 다른 기자의 추궁에 그는 “날짜 같은 것은 잘 모르고 신기식 목사와는 전화로 두 번 통화했을 뿐”이라 발을 빼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자 기자회견장에 있던 신기식 목사가 “소송은 내가 다 했고, 이규학 직무대행은 그런 내용 모른다”면서 “그런 것을 내게 물어야지 왜 이 자리에서 묻느냐. 나중에 다 밝히겠다”고 대신 답변하는, 명쾌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한편 기자회견이 끝나자 본부에 남아 있던 김국도 목사 측 잔류자들은 담화문을 내고, 이를 이규학 직무대행에게 전달한 후 본부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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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헌신 백신종 선교사가 권하는 3대원칙
"지난해만 한국교회에서는 25만명이 단기선교에 참가했습니다. 1인당 100만원씩 잡아도 한 해 250억원이 해외 단기선교에 소요되고 있습니다. 적잖은 비용이 들어가는 단기선교에 고효율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전략 개발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캄보디아에서 활동 중인 백신종(SEED선교회·사진) 선교사는 "북미주 교회의 경우 선교비의 3분의 1이 단기선교에 사용되고 있다"며 "이는 장기 선교사를 감소시키고 단기선교팀만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15년 전부터 단기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현장 경험과 이론을 연구해온 백 선교사는 지난해 '한 권으로 끝내는 단기선교 퍼스펙티브스'(두날개)라는 지침서도 펴냈다. 백 선교사는 한국교회가 단기선교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세 가지를 강조했다.
우선 봉사교육과 타문화 훈련 강화다. 단기선교에는 여행 인자와 선교 인자가 함께 존재하는데 첫 참가자일수록 선교보다는 해외여행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 그런데 만약 여행에만 관심이 계속된다면 단기선교를 재고해야 할 요인이 된다.
백 선교사는 봉사교육과 타문화훈련은 여행에 대한 관심을 선교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교육하고 훈련하지 않으면 여행에만 관심을 가지고 단기선교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사전 훈련을 잘 디자인할 수 있다면 선교 관심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백 선교사는 또 단회적 단기선교가 아닌 반복적 단기선교를 강조했다. 단회적 단기선교란 일회성 참여로 교회가 장기적 계획 없이 일년마다 이 나라 저 나라를 한번씩 다녀오는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 반복적 선교는 장기간의 계획 수립 하에 해마다 같은 장소를 방문해 선교를 하는 개념이다. 그는 "한번 다녀오는 것은 참가자들의 유익을 위해서이지만 반복적 방문은 그 지역을 위한 선교 사역에 도움이 되는 전략적 사역과 접목될 수 있다"며 "진정한 의미의 단기선교가 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프로젝트에 협력하고 반복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25일 오전 사랑의교회 소망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는 “이번 가정의 달에는 다문화 가정과 집안의 가장들을 중심으로 한 행사들이 많았다”면서 “앞으로는 행사 위주의 프로그램들에서 그치지 않고 각 가정에서 작은 것부터 실천해나갈 수 있도록 더욱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패밀리는 먼저 가정에서 주기도문을 중심으로 매일 한 소절씩 주제를 가지고 기도할 수 있게 하는 기도 매뉴얼을 각 교회와 성도들에게 보급할 계획이다.
요일별로 △월요일에는 관계-하늘 가족, △화요일에는 속성-삶의 목적, △수요일에는 관심-우선순위, △목요일에는 선물-일터로의 부름, △금요일에는 은총-치유와 회복, △토요일에는 돌보심-시련과 극복, △일요일에는 세계관-하나님 나라 등의 주제를 갖는다.
또한 이 매뉴얼에는 △가정을 위한 기도, △자녀를 위한 기도, △부모를 위한 기도, △부부를 위한 기도, △또 다른 가정(다문화 가정, 장애우 가정 등)을 위한 기도, △새 가정을 위한 기도, △노년을 위한 기도, △하이패밀리를 위한 기도 등 총 80개의 기도제목들이 제시돼 있다.
송길원 목사는 “80개의 기도제목은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라며 “똑같은 기도만 반복해왔던 성도들에게 기도의 폭을 넓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송 목사는 “교회에서는 금요철야 등 기도를 하는 시간이 많고 기도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정작 가정 안에서는 기도를 하는 게 어색한 일이 돼 버렸다”면서 “이번 기도 운동은 가정 안에서 먼저 기도를 회복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늘려가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고 소개했다.
이어 송 목사는 “가정이 한 주일에 한 번 씩 시간을 정해놓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면 기도의 시간만은 가져야 한다”면서 “차츰차츰 아침기도, 개인기도, 중보기도, 취침기도, 부부기도 등의 시간을 늘려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이패밀리는 5월 한 달 간 아버지의 역할을 되돌아보고 아버지의 소중함을 알리는 ‘부(父)라보 파파’ 캠페인을 진행하며 가족들의 아버지를 위한 부(父)라보 10계명, 자녀들의 건강한 아버지가 되기 위한 부(父)라보 10계명, 아내가 실천해야 할 남편을 위한 부(父)라보 10계명 등을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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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의 혁명
내가 한 설교의 동영상을 볼 때가 있다. 얼굴이 굳어져 있는 것을 많이 느낀다. 설교 전에 기분 상한 일이 있었을 때에는 어김없이 얼굴에 나타난다.
얼굴은 얼의 꼴, 즉 정신의 모양새이다. 그러므로 얼굴은 그냥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인격을 그대로 반영하는 간판이다. 현대인들은 얼이 아닌 꼴만 바꾸려고 한다. 먼저 얼이 바뀌어야 꼴도 바뀐다.
미국 목사들의 설교에는 반드시 한두 가지의 조크가 들어간다.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한국 목사들의 경우 나를 비롯해서 너무 경직되고 근엄한 편이다. 라인홀드 니부어는 유머가 신앙으로 인도하는 서곡이요, 웃음은 기도의 시작이라고 했다.
웃을 때 우리의 얼어붙은 마음이 녹으며 하나님과 이웃을 향하여 마음의 문이 열려진다. 양쪽 입술꼬리가 0.5㎝만 살짝 올라가도 얼굴이 달라진다. 진정한 혁명은 영혼이 체화된 얼굴에서부터 시작된다.
김흥규 목사<내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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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히잡 두른 무슬림 여성이 채플엔 무슨일로…
성공회대 신학과 채플에 무슬림 하바 건씨 강사로 초청
▲성공회대 신학과는 22일 채플에 무슬림 여성 하바 건씨를 연사로 초청했다. ⓒ이지수 기자
지난 해부터 개방적인 채플을 시도해 온 성공회대학교 신학과(학과장 권진관 교수)는 22일 채플에 이슬람교도인 하바 건(Havva Gue, 고려대 대학원)씨를 초청해 이슬람교와 이슬람문화에 대해 듣는 시간을 가졌다. 채플에는 신대생 100여 명이 참석했다.
성공회대는 신대생들이 타 종교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지고 사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난 해부터 '종교간 대화'를 주제로 채플을 개최해오고 있다. 1회 때 불교학자인 소은 스님, 2회 때 천도교 이선영 선무사를 초청했으며, 이번 3회를 맞아 이슬람교도를 초청했다.
앳된 얼굴의 하바씨는 나이가 20대 후반으로 이날 참석한 신대생들과 비슷했지만, 어깨부터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정 치마와 얼굴에 두른 히잡이 신대생들과 '전혀 다른' 문화권에 속해있음을 실감케 했다. 터키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한국으로 와 고려대 사범대를 졸업했으며 현재 동대학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한국 유네스코 멤버로도 활동하고 있다.
하바씨는 '이슬람 건축문화를 통해서 본 역사와 전통'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이슬람사원의 건축양식을 설명하며 이슬람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전했다. 하바씨는 이슬람사원에 깔려 있는 카펫은 1명이 1칸에 앉을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으며,
그렇게 앉을 경우 사람들의 어깨가 닿게 된다며, "이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이슬람교의 교리와 맞닿는 부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남성 신도들과 여성 신도들이 따로 예배드릴 수 있도록 장소가 구획된 것은 "예배 중 마음이 분산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이슬람교는 평화를 사랑하고 타 종교에 대해 관용적인 종교"라고 강조했다. '한 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말도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들었다"며 "칼로 사람의 마음에 들어갈 수 없지 않냐"고 했다.
"이슬람도 예수를 믿는다", "'하나님을 뜻하는 단어가 나라마다 다 다르듯이 이슬람에서 말하는 '알라'도 사실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동일한 신", "교회로 사용되었다가 무슬림 사원으로 사용되었던 '성소피아 성당'에 아직도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그림이 남아 있는 것은 무슬림이 타종교를 존중한다는 뜻"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신앙심이 깊은 학생들이라면 이슬람과 기독교를 비교하는 하바씨의 말에 다소 편향적이라고 느낄 법도 한 강의였지만, 학생들은 대체로 '괜찮았다', '신앙에도움이 됐다'는 반응이었다.
최준연 학생(신학과 2년)은 "종교간 대화 채플 1회 때만 해도 신앙이 흔들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었지만 지금은 이런 채플이 신앙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낀다. 타 종교인들의 생각과 마음을 잘알아야 우리 기독교인들도 더 지혜롭게 선교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안영광 학생(신학과 3년)은 "타종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판부터 할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며, "이러한 채플이 신앙을 성숙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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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관점에서 ‘존엄사’는 없다”
교회언론회, 대법원 연명치료 중단 판결 관련 논평
지난 5월 21일 대법원이 “사망의 과정에 진입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에 기한 연명치료 중단을 인정한다”고 판시함에 따라, 소위 ‘존엄사’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 사건은 지난해 11월 28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인공호흡기를 뗄 수 있게 해 달라는 환자 가족들의 요청을 법원이 인정하면서 시작되어, 올해 2월 11일에는 고등법원이, 그리고 5월에 대법원 3심에서 대법관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9:4로 ‘찬성 결정’이 난 것이다. 이 사안은 현재 입법을 위한 과정에도 있는데, 지난 2월 5일 신 모 의원 등 22명이 ‘존엄사 법안’(Death with Dignity Act)을 국회에 발의해 놓고 있는 상태이다.
이같은 추세에 대해 한국교회언론회가 25일 “소위 ‘존엄사’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이라는 제하의 논평을 발표했다. 교회언론회는 우선 “그렇다면 ‘인간으로서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권리’로 포장된 ‘존엄사’가 타당한 것으로 볼 수가 있는가”라고 반문한 뒤 결론은 “‘아니다’이다”라고 단정했다.
교회언론회는 “이제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사회적 기능과 그 활동을 못한다고 하여 생명이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며 “우리 인간은 전기적 생명, 생물학적 생명과, 영적 생명을 가진 존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교회언론회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존엄사’나 ‘안락사’ 또는 ‘자비사’는 인정되지 않는다”며 “인간의 죽음은 ‘자연사’나 또는 ‘타살’이나 ‘자살’만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회언론회는 “그런 측면에서 ‘자기 결정에 따라’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에 맞느냐는 문제가 남는다”며 “그러므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존엄사’의 문제는 환자의 고통이나 소생 가능성에만 기준을 두고 있어, 자칫 생명경시와 생명 주권의 침해를 가져 올 수 있으므로, 분명한 기준과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독교계에서도 국제적 조류와 사회적 시류에 흔들릴 것이 아니라 기독교 윤리에 바탕을 둔, 분명한 입장 정리와 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교회언론회는 밝혔다. 교회언론회는 “그 출발에는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분명한 전제가 있어야 한다”며 “아울러서 환자의 생명을 돌보고, 돕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도 마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한국교회 양대 기구인 한기총과 NCCK도 이 문제에 신중을 기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한기총은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존엄사 법안’에 대해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신성한 것으로서 어떠한 경우에도 존중돼야 하며,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생명의 가치는 실용적인 효용성이나 삶의 질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믿는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NCCK 역시 최근 논평에서 “연명 치료 중단 문제와 존엄사 문제는 여러 경우를 상정하여 우리 사회 각 분야가 다양하게 논의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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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총회, 첫 행보로 도봉교회 담임 취임예배
이에 김용준 목사는 “순복음의 메시지인 5중복음과 3중축복 그리고 4차원의 영성으로 서울 북부지역과 경기 북부지역을 복음화하고, 나아가 세계선교에 이바지하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인사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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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목사 ″노 전 대통령 서거는 우리 모두의 책임″
저는 24일 주일 강변교회에서 설교를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슬픔과 불행에 싸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슬픔과 불행에 싸여 있는 우리 모두에게 긍휼과 자비와 은혜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우리들이 맘몬이즘에 지배를 받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우리들이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지배를 받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들이 당하고 있는 슬픔과 불행이 우리들로 하여금 맘몬이즘과 정치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게 하고 분노와 증오와 대결에서 벗어나게 해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어나아갈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우리의 불행한 사회상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책임질 불행한 사건이다.
어떤 의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지금 우리 사회에 편만하고 있는 맘몬이즘과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빚은 불행한 결과다.
또 하나는 절망적인 상황을 보다 길고 넓은 안목을 지니고 인내와 소망으로 극복하기 보다는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결단으로 자기의 생명을 끊으려고 하는 자살 풍조와도 무관하지 않다.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기도 했지만 사법권의 독립과 선거의 투명성과 한국의 민주화를 이루는데 크게 공헌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기 위해 공헌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경험과 역량에 한계가 있어서 국민 다수를 끌어안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었다.
그리고 그 분은 듣는 귀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내가 2004년 청와대를 두 번 방문해 권양숙 여사를 만나서 정치적 반대파에 대해서 좀 관대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건의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해 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을 들었고, 2005년 국가 조찬 기도회시 자신을 겸손하게 성찰하는 발언을 하며 교회 지도자들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를 부탁했다.
사실 저는 그 자성의 소리를 들은 후 강원용 김창인 조용기 목사님 등을 모시고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회개의 모임을 마련했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서 남북관계의 개선과 화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것을 크게 평가하고 싶다.
우리는 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행한 서거를 대하면서 모든 것을 전적으로 상대방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감정적인 대결로 치닫는 대신 모두가 나의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고 뉘우치면서 서로를 향해 미안함을 표명하고 상대방을 끌어 안는 대승적인 민족의 화해를 도모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제는 극단적인 대립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다 함께 열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슬픔과 아픔을 당한 유족들과 국민 모두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한다.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김진홍 목사는 25일 자신의 이메일 칼럼 ‘아침묵상’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매우, 매우 애석한 일이지만 대단히 잘못한 일”이라며 “국민들과 청소년들의 본보기가 되어 자살하는 사람들을 말려야 할 자리에 있던 분이 자살로 삶을 끝낸다는 것은 심히 무책임한 일이라 생각된다.”고 비판했다.
김 목사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나는 노 전 대통령이 투신자살한 그날, 바쁜 하루를 보내다가 저녁나절에야 소식을 듣게 됐다.”며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언뜻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염려가 있었다. 청소년들의 모방 자살(模倣自殺)이 이어지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고 밝혔다.
이어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지도자들에게 주어지는 책무(責務)가 있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본을 보여야 할 책무”라며 “그런데 비록 전직이라 하지만 대통령직을 거친 분이 그런 죽음을 선택한 것은 무책임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이어 “더러는 오죽이나 억울하였으면 그런 죽음을 택하였을까, 하고 동정적인 발언을 하는 분들도 있는 듯하다.”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을 언급한 그는 “억울한 일로 따지자면 우리 사회에 억울한 경우를 당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억울하고 힘들기 때문에 자살을 한다면 우리 사회에 자살하여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느냐?”고 동정론을 일축했다.
김 목사는 또 ‘지도자가 되려 하지 말라’는 야고보서 3장 1절 성경 구절을 인용해 “감당할 자질이나 능력이 없이는 굳이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려 들지 말라는 권면의 뜻이 담긴 말”이라며 “다시는 이번 같은 슬픈 일이 전직, 현직 지도자들 사이에서 일어나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느끼는 바를 몇 자 적는다.”고 글을 마무리 했다.
다음은 '김진홍 목사의 아침묵상' 전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자살한 다음 날 필자에게 어느 분이 코멘트를 요청하기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매우, 매우 애석한 일이지만 대단히 잘못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에 매년 1만 3000여 명의 청소년들이 자살하고 있습니다. 그 숫자가 날로 늘어나니까 이제는 보도조차 하지 않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국민들과 청소년들의 본보기가 되어 자살하는 사람들을 말려야 할 자리에 있던 분이 자살로 삶을 끝낸다는 것은 심히 무책임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나는 노 전 대통령이 투신자살한 그날, 바쁜 하루를 보내다가 저녁나절에야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언뜻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청소년들의 모방 자살(模倣自殺)이 이어지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였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지도자들에게 주어지는 책무(責務)가 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본을 보여야 할 책무입니다. 그런데 비록 전직이라 하지만 대통령직을 거친 분이 그런 죽음을 선택한 것은 무책임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러는 오죽이나 억울하였으면 그런 죽음을 택하였을까, 하고 동정적인 발언을 하는 분들도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대통령직이 어떤 직입니까? 법을 따라 국민들이 선출한 국가의 수반입니다.
억울하면 억울할수록 법정에서 밝혀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민주 사회, 민주 국가의 힘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법치(法治)에서 나오지요. 억울한 일로 따지자면 우리 사회에 억울한 경우를 당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억울하고 힘들기 때문에 자살을 한다면 우리 사회에 자살하여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야고보서3:1)에서는 “지도자가 되려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감당할 자질이나 능력이 없이는 굳이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려 들지 말라는 권면의 뜻이 담긴 말입니다. 다시는 이번 같은 슬픈 일이 전직, 현직 지도자들 사이에서 일어나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느끼는 바를 몇 자 적습니다.
[미션라이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소식을 듣고 경기도 광명시 계명성교회(오세광 목사)는 대형 추모 현수막을 교회 건물(사진)에 내걸었다.
현수막은 ‘소리를 내어 슬피 운다’는 뜻의 號哭(호곡)이란 말로 시작해 ‘노무현 전대통령의 별세 하늘이 울고 땅도 울고’라고 적혀 있다.
오세광 목사는 “갑작스런 대통령의 서거소식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현수막을 내걸고 교인들과 함께 슬퍼하는 것밖에 없었다”며 “다음달 30일까지 나라와 민족을 위한 특별기도회를 매일 저녁 개최한다”고 밝혔다.
부산 장유중앙교회 황춘득 목사도 “24일 오전에 봉하마을로 조문을 다녀왔다”며 “돌아와 본당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었는데 말할수 없는 주님의 그 십자가 고통이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황 목사는 십자가 고통 속에서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밝혔다.
“얼마나 더 이 땅의 서민들이 아픔을 겪어야 이런 상처가 아물 수 있겠습니까. 목회자인 내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세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총회장 서재일 목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들이다.
이외에도 전국 각지의 목회자들이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애도글을 속속 올리고 있다.
경기도 소재 열린교회 유두영 전도사는 “노무현의 죽음은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참여민주주의와 시민민주주의 죽음을 뜻한다”며 “노무현과 함께 참여민주주의 희망을 버리지 않은 분들이 다시 촛불을 들고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출 때”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고인에 대한 사죄의 글도 눈에 띈다.
제주 들꽃교회 김민수 목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목사로서 당신께 사죄를 고한다”며 “당신을 그렇게 죽음으로 몰아가는 세상에 살면서 행동하지 않고 단지 분노하기만 했던 나의 죄를 사죄한다”고 고백했다.
김 목사는 “개인구원에만 정신이 팔려서 이 나라의 정의를 바로잡는 일에 인색한 교인들에게 ‘회개하라!’고 일갈하지 못한 것을 사죄한다”며 애도를 표했다.
대전 예은교회 임헌준 목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그저 애도로만 끝나서는 안 될 일”이라며 “그 분의 ‘죽음’이 국민들에게 잃어버린 기본권을 찾아주는 계기가 되고 나라의 기본을 바로 세우는 초석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남 함평의 황토와들꽃세상 대표 김요한 목사도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절절한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김 목사는 “너무 슬픕니다”라며 말문을 연 뒤 “벌거숭이 임금님과 같은 벌거벗고도 부끄러움도 모르고 잘사는 전직 대통령들도 많은데 아직도 할 일이 많은 분을 이렇게 추모하는 것이 너무 슬프다”고 밝혔다.
그는 “돌이켜보면 당신은 우리에겐 어울리지 않는 대통령이었다”고 말하고 “작은 땅에서 살면서도 틈만 나면 영남, 호남 편가르기에 열중하는 우리에겐 당신은 너무 큰 사람이었다”며 “셈이 밝아 자신에게 이익이 안 되는 일엔 눈길도 안주는 처세의 달인인 우리에게 당신은 너무 우직한 사람이었다”고 고백했다.
김 목사는 끝으로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떨치지 못하셨을 서운함과 아픔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 역사가 우리의 무지를 가르치고 당신의 아픔을 치유하리라 믿는다”며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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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죽음에 자기 결정권이 있는가?
양봉식 sunyang@amennews.com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은 전국을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유명연애인의 자살과 함께 사회지도층의 자살은 모방 자살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대법원의 존엄사 인정 판결은 생명에 대한 경시풍조를 유발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안락사, 뇌사 판정을 받은 이들에 대한 존엄사의 긍정적인 시각은 기독교계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죽을 권리 있다”
존엄사를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모 일간지의 헤드라인 제목이다. 이 제목만을 두고 보면 여러 가지를 유추하게 된다. 자살을 할 권리가 있다는 말도 되고, 안락사도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독자의 호기심을 끌기위한 자극적 제목이지만 한편으론 너무 무책임한 언론플레이다.
존엄사 판결은 생명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기류가 점점 인간의 생명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경제적 가치와 현실적 문제, 그리고 상황이론이 존엄사 판단의 기준이 돼가고 있다.
대법원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존엄하게 죽을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이 같은 대법원의 존엄사 인정판결은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무의미한 환자를 의료적인 장치로 연장하는 것은 환자가족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환자 당사자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데서 나온 발상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환자의 생명을 조금 더 연장시키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모든 생명을 인간이 주도적이고 주권적으로 다룰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결정권은 더 나아가 안락사와 자살을 정당화시킬 수 있게 만든다. 삶이 의미가 없고 살고 싶지 않을 때 누구든지 죽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 존엄사 인정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서는 모든 생명이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데 자칫 이번 판결이 인간 죽음의 시점을 인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잘못된 판단을 가져 올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또 경제적인 이유를 비롯해 여러 부담으로 인간 생명에 대한 경시를 당연히 여기는 풍조를 가져 올 수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적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는 “연명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자기 결정을 하기까지에는 아직까지 사회적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며 시기상조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존엄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는 점에서 교회협의회의 시각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절대적 가치는 다수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았다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 보다 생명을 어떤 차원에서 보느냐에 대한 세계관의 문제일 수 있다.
사회는 점점 인간의 생명을 도구화하거나 과학적 테이터회된 정보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선 구분해야 할 것은 인간의 생명과 동물의 생명이 절대 다르다는 점이다. 생명의 상태를 생물학적 차원에서 다루면 인간이 생명이나 동물의 생명이 같을 수 있다. 살아 있다는 차원에서 물질 안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생명이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생명은 소멸되지 않는 영원성을 가지고 있다. 동물의 생명은 죽으면 그것으로 소멸되지만, 인간의 생명은 죽으면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다시 말해 죽을 권리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명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존엄사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 지금은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병이 과거에는 불치병이었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의학과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생명을 보다 견고하고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며 선물이다. 인간이 최선을 다해 생명을 지켜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실용적인 효용성이나 경제적 고려에 의해 생명을 다루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환자의 말기 상태에서 존엄사에 대한 법안은 적극적이거나 소극적 개념에서 안락사를 포함할 소지가 다분히 있다. 이것은 생명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언론이 선정적이고 말초적인 제목으로 ‘죽을 권리 있다’라는 헤드라인을 잡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사회 구성원의 많은 이들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말기 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책상머리에서 모두 헤아릴 수는 없다. 그러나 상황적인 문제가 전체 사회의 용인과 묵인으로 간다면 사회의 질서는 무너지게 된다. 상황적 윤리와 논리가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이해, 그리고 생명을 존중할 수 있는 충분하고 성숙된 제도가 세워져야 한다.
흑백논리나 사회적 효용성, 경제적 이유 중심으로 생명을 다뤄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이 사람들을 자살로 몰아가고 있다. 한쪽에서는 생명공학을 다루면서 인간의 생명을 더 연장하려는 시도가 있는 반면 또 다른 한쪽에서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존엄을 이유로 단절하려는 시도가 있다.
타락한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는 욕망이 있다. 그것은 생명을 영원토록 유지하려는 것이든 스스로 포기하려 하는 것이든 양편 모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결과를 낳는다. 인간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고 하는 주장은 생명을 버리는 선택을 인간 스스로 취하겠다는 태도다. 이것은 생명을 존중하거나 존엄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침해하는 행위다. 더구나 정신질환자의 경우 삶의 질이 낮다는 이유로 존엄사로 처리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들이 등장할 수 있다.
생명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다.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 생명이다. 주어진 생명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은 마땅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 존엄사 문제의 핵심은 가족들의 경제적인 고통과 환자 당사자의 견디기 힘든 고통에 대한 판단을 환자가 아닌 제 3자가 하게 되는 이 같은 결정차제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훼손하는 것이다. 또, 환자의 요구가 있더라도 고통 속에서 하는 호소는 환자의 본심이 아닐 수 있다.
더구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면 우울증 환자의 삶을 고통스러워하는 다른 이들의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 역시 존중해야 한다. 경제적인 문제라면 정부나 기타 기관의 개입을 통해 풀어가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면 된다.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차원의 존엄사나 안락사 인정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의 가치를 뛰어 넘을 수 없다.
기독교계의 학계 전문가들은 인간의 품위와 존엄은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위해 교회와 교인들이 해야 하는 일은 그들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 대처할 수 있는 더 좋은 길을 함께 찾는 것이라고 권면한다.
인간은 생명의 관리자이지 생명을 자의적으로 처분할 신분이 아니다. 상황윤리 가운데서 생명연장이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기독교 입장에서 생명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하나님의 생명이다. 이것은 우리의 주권 대상이 아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이 생명청지기의 사명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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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직에 대해
성경적인 목사 이해와 사역을 위해
박창진
바울 사도는 주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베푸신 은사를 부여 받은 사람들과 직무에 대해 말씀합니다. 사도들, 선지자들, 전도자들, 목사들(교사들)입니다(엡 4:11). 개역성경에는 단수로 기록되어 있지만 복수입니다. 이는 은사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은사를 부여 받은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은사 자체라면 사도라는 은사가 여러 개가 됩니다. 사도라는 은사는 하나이지 여러 개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은사를 부여 받은 사람들은 여러 명이기에 복수입니다.
은사는 사역을 위하여 주님께서 각 지체에게 부여하신 것이고 그 은사를 활용하는 사역은 직분으로 주어집니다. 은사를 따라 사역하는 직분자인 것입니다.
개혁주의에서는 교회 직분에 있어서 창설직, 항존직을 말합니다.
창설직은 주님께서 사도적 복음으로 교회의 터를 놓으실 때에 세우신 직분입니다. 사도, 선지자, 전도자입니다. 여기에서 전도자는 오늘날의 선교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사도, 선지자와 함께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의 항존직원을 세우는 사역자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과부들의 구제를 위하여 세운 일곱 사람들도 그에 해당된다고 여겨집니다. 빌립은 전도자였고(행 21:8) 스데반도 동일한 사역자로 보입니다. 바울 사도가 그레데의 교회를 위하여 파송한 디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장로들을 세우기 위하여 파송되었습니다(딛 1:5). 이 직분들은 새 언약의 계시가 완료됨과 함께 종결되었습니다.
오늘날 어떤 이들이 신사도 운동이라며 사도가 오늘날도 가능한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잘못된 것입니다. 바울 사도에 의하면 사도는 모세보다 더 우월한 직분입니다. 모세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구약 정경이 되었습니다. 그의 말은 이스라엘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가졌습니다. 사도들의 말은 사도적 복음으로서 신약 정경이 됩니다. 그들의 말은 교회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가집니다. 오늘날 사도가 있다면 그의 말은 정경으로 인정되어야 하며 전 교회가 그 권위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됩니다.
항존직은 주님의 교회에 계속적으로 존재하는 직분입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동안에 항상 존재하는 직분이라는 뜻입니다. 항존직은 직분을 부여받으면 평생토록 그 직분이 보장된다는 의미(종신직)가 아닙니다. 한번 목사나 장로가 되면 종신토록 그 직분을 소유하게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은사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으며 어떤 때는 바뀌어야 합니다. 사역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을 때에나 종결된 때입니다. 그러한 때에도 여전히 직분명을 소유하려는 것은 직분을 계급으로 인식하고 세상적인 명예욕을 따르는 것일 수가 있습니다.
목사(교사)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목사(교사)만 여기에 해당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교사는 오늘날 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를 뜻하지 않습니다. 목사들과 교사들은 각각 관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한 관사에 두 직분자가 함께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이는 직무에 있어서 어떤 차이를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목사라는 단어가 신약 성경에서 여기에만 쓰였다며 그 직분의 성경적 근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단어의 사용 횟수에 의해 진정성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약 성경을 다함께 가지고 있지만 그 당대에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에베소서만 가지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도나 선지자의 사용 횟수나 목사는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전도자의 경우는 목사와 같이 에베소서에서 한번 쓰였을 뿐입니다. 바울 사도가 다른 직분자들과 함께 목사(교사)를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목사라고 번역된 단어가 성경 전체의 용례에 비추어 목자라고 번역하는 것이 일관성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목사라는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둘 다 가능한데, 일관성에 있어서는 목자가 더 적절하고 교회 역사에서의 용례에 있어서는 목사가 무방하다고 하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 직분자들의 사역에 대해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사역은 일차적으로 기도와 말씀 봉사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구제 문제로 분란이 생겨나자 사도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별도로 세웁니다. 그때에 자신들은 기도와 말씀 봉사에 전무하겠다고 말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온전케 하기 위한 자신들의 사역을 그렇게 규정한 것입니다. 물론 삶에서 본을 보이는 것이 뒤따릅니다. 창설직과 함께 목사(교사)도 같은 사역을 하는 직분자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의 다른 서신에서 교회의 직분에 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로 생각하는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교회의 직분에 대해 말씀합니다. 감독과 집사입니다(딤전 3:1-13). 다른 곳에서는 장로라는 표현이 나타납니다. 감독과 장로는 같은 직분의 다른 표현입니다. 감독(장로)과 집사도 항존직입니다. 감독에 대한 말씀에서는 여자가 없습니다. 집사에 대한 말씀에는 여자가 있습니다(딤전 3:11). 집사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 집사에 대한 것입니다. 로마교회에 편지하면서 언급된 겐그리아의 일군 뵈뵈(롬 16:1)는 일반적으로 여 집사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딤전 5:17)라고 말씀합니다. 감독에 대한 다른 표현인 장로를 말하면서 구분합니다. 다스리는 장로와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장로입니다. 양자가 다 장로이기에 다스리는 직무를 행하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장로는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데, 그는 잘 다스리는 장로보다 더 존경하여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개혁주의에서는 에베소에서 언급된 직분자와 이 경우를 연결하여 생각합니다. 목사와 교사라는 표현과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장로라는 표현이 연결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목사는 다른 성도들을 인도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일차적인 방편이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말씀입니다. 교사는 다른 성도들을 그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말씀과 가르치는 일이란 목사와 교사로 구분하여 표현된 한 직분자의 사역이 됩니다. 바울 사도의 글 내용을 통하여 그렇게 연결시키는 것은 별로 무리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문제는 오늘날의 교회에서 목사가 과연 성경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목사에 부합되는가라는 것입니다.
목사직은 예배에서의 말씀선포와 성례집행, 축도 등의 예배를 인도하고 성도들의 삶을 장로들과 함께 돌아보는 직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말씀에 익숙하여 교회의 인정과 신임을 받아야 합니다. 자의적으로 직분을 이행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섬김이어야 합니다. 목사직은 설교를 통해 자기 역량을 펼치는 통치자나 권력자가 결코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바에 대하여 인식하고 그것을 꿈꾸어야 합니다. 비전입니다. 교회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이 현실이 되도록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 목사직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지도력 발휘도 안내하며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먼저 본이 되면서 성도들을 섬기고 인도하는 것입니다.
비전은 목사가 목회를 잘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한 과정으로서 야욕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게 이야기되는 비전의 많은 경우가 야욕을 분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바와는 무관한 내용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과 가르치는 일이기에 그에 부합되는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그 은사가 확증되고 은사의 사용에 있어서 교회의 인정이 필요합니다. 교회 역사적으로 볼 때에 이 과정을 충족시킴에 있어서 변화가 있었습니다. 사도 시대에는 사도들이나 교회 자체적으로 그 모두를 충족시켰는데, 일정 시점이 지난 이후에는 교회에게 위탁을 받은 기관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신학교입니다. 말씀과 가르치는 일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기관이 신학교입니다.
신학교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신학교가 어떤 모습을 가지는 가에 따라서는 잘못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산재해 있는 신학교만 생각해도 그 폐해는 적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도한 신학생들을 배출시키는 것도 매우 큰 문제입니다. 여기에는 교육을 위탁한 교회의 책임도 적지 않습니다. 교회가 무분별하게 신학교를 만들고 학생들을 받는 것에 대해서 바르게 통제하여야 하는데, 그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기만 하면 목사가 보장되는 현실도 문제입니다. 실제적으로는 그렇지 못하게 제도적 장치가 되어 있는데,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신학교 입학 때에 교회의 추천이 있어야 합니다. 각 학년의 진급에 있어서도 교회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는 때에도 교회의 동의가 있어야만 합니다. 이 장치는 교회를 통하여 검증된 사람을 직분자로 세워야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른 것입니다. 교회와 신학교는 바른 협력을 통하여 제대로 된 목사가 배출되도록 힘을 쏟아야만 합니다.
네덜란드의 개혁교회의 경우는 신학교를 졸업할 때에 그가 목사로서 적합한가에 대해 꼼꼼하게 살핀다고 합니다. 말씀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 성격과 대인 관계 등을 모두 고려하여서 자질을 살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되면 목사가 될 수 없다고 결정하고 그 결정대로 시행되도록 합니다. 교회와 신학교의 협력 관계가 잘 형성되어 가능하다고 합니다.
목사가 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목사가 되고 성경의 원리와는 동떨어진 목회를 함으로 인해 교회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목사직에 대한 반감이 매우 강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목사직은 성경의 가르침에 의해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에 부합되는 목사가 배출되도록 힘을 쏟으면서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21일은 둘이 하나가 된 부부의 소중함을 기리는 부부의 날인데요. 성남지역의 한 교회가 지난 2000년부터 부부의 화목과 가정을 올바르게 세우기 위한 부부학교를 운영하며 크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 곽영식 기자의 보도] 부부의 날을 맞아 남편이 아내에게 장미꽃을 선물하고 사랑과 감사의 말을 하며 포옹을 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 고백에 수줍은 모습을 보이면서도 마냥 행복해 합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쓴 편지를 읽자 아내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아내가 남편에게 쓴 편지를 읽자 남편은 앞으로 아내를 더욱 사랑하겠다고 다짐합니다.
< 서평국 집사/성남 성산교회> "그대는 내 인생의 동반자요 희망이었습니다. 갈길이 막혀 막막하고 주저앉아 좌절할때 내게 앞길을 인도하는 별빛이었습니다."
< 이선화 집사/성남 성산교회> "지면을 통해서 당신을 바라보니 왜 이리 좋은 모습들만 생각나는지 아마도 내가 당신을 더 많이 사랑하나 봐 여보! 사랑해..."
아내는 '내조의 여왕되기 10계'를 발표하고, 남편은 '외조의 고수되기 10계'를 발표하며 서로 배려하고 돕는데 더욱 노력하겠다고 선언합니다.
< 홍은희 집사/ 성남 성산교회> " 1.남편이 하는 일에 간섭모드를 감탄모드로 전환하자 2.남편의 개인 비서가 되자 3.코디네이터가 되어 남편을 베스트 드레스로 만들어 보자"
< 정상진 집사/ 성남 성산교회> "1.아내의 자기 계발을 도와주자 2.아내를 위한 이벤트를 자주 열자 3.아내의 우울증 관리자가 되자"
이 곳은 성남 성산교회가 운영하는 부부성장학교입니다.
이 교회는 올바른 부부관계를 회복해 가정을 바르게 세우기 위해 지난 2000년부터 부부성장학교를 운영해 불신자 남편 50여 명이 신앙생활을 하고 600여 명의 교인이 1000여 명으로 늘었으며 2 개의 교회를 분립 개척하는 등 크게 성장했습니다.
< 현상민 목사/ 성남 성산교회> "이 부부성장학교를 통해서 우리교회가 10년동안 굉장한 부흥과 안정적인 성장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부부성장학교를 중점으로 가정을 깨우는 그런 사역을 계속해서 할려고 합니다."
또 부부성장학교 수강 부부들을 대상으로 앙코르 결혼식을 거행해 부부의 언약을 되새기며 새로운 결심으로 부부생활을 하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5월 21일뿐만 아니라 매달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하고 교회 달력에도 표기해 하나님이 맺어준 부부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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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여든에 나는 사랑에 빠지다
내 삶 가운데 만난 아버지
“유아세례를 받는 이도 있건만, 나는 아들 며느리, 그리고 손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잊지 못할 가슴 벅찬 세례를 받았다”
신정순 / 포에버48다락방
처음 며느리를 따라 교회에 온 것은 나이 여든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젊은 시절에는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틈틈이 이방종교 예배당을 다녔고, 늙어서는 서울 아들집에 살면서 노인정이나 복지관에 가서 시간을 보냈지만 마음은 늘 허전했다.
아들 내외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것을 보고는 나도 따라나섰다. 처음 교회에 들어섰을 때는 무척 생소하고 어색했다. 포에버 다락방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순원들이 차례대로 성경을 읽을 때는 떠듬떠듬 읽어 부끄러웠고, 성경을 찾을 때는 옆에서 찾아주기 일쑤였다.
집사님, 권사님들은 말씀을 줄줄 읽고 잘 아는 것이 놀라웠고, 또 무척 부러웠다. 그러면서 자꾸 주눅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성경을 잘 알 수 있을까. 순장님은 알기 쉬운 성경과 시편을 주었다. 매일 성경을 읽고 다락방에서 순장님에게 설명을 듣는 동안 조금씩 말씀에 눈이 떠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서서히 나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었다. 지난 가을, 정확히 여든한 살에 세례를 받는 기쁨을 누렸다. 세례를 받는 날은 하나님의 딸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 하여 목욕으로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고 단장했다. 남들은 태어나 바로 유아세례를 받는 이도 있건만,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