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4: Out of range value for column 'readed' at row 1 update tb_news set readed=readed+1 where no='150194'
릭 워렌 목사: 새신자를 일어나게 하지 말라 / 실버목회’가 성장 좌우한다 2009-01-31 11:11:55 read : 6553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릭 워렌 목사 “새신자를 일어나게 하지 말라”
남다른 교회 성장포인트 언급… ‘12분이면 첫인상 결정’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교회 성장을 하려면 새신자의 이름을 호명하지 말라”. 이 말은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가 최근 밝힌 교회 성장 포인트 중 하나다. 릭 워렌 목사는 “교회를 처음 방문한 신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이 성장의 주요 포인트”라고 지적했다.
그는 “방문객들은 교회를 들어온 후 12분이면 그 교회를 다시 찾을지 아닐지를 결정하게 되며 이 때문에 첫번째 만남에서 확실한 인상을 만들지 못하면 두번째 기회는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워렌 목사가 꼽은 교회성장 비결로는
▷가장 좋은 주차장 자리를 게스트를 위해 비워두라
▷건물 밖까지 마중 나가 인사하라
▷교회에 들어설 때 음악이 들릴 수 있게 하라
▷예배시간에 새신자의 이름을 호명하지 말라 ▷편안한 마음이 들게 대하지만 따뜻하고 평범한 환영의 뜻을 전하라 ▷예배의 시작과 끝에 주변인들과 자연스러운 인사를 나누게 하라 등이 있었다.
특히 “절대 새신자를 일어서게 만들지 말라”고 언급한 워렌 목사는 “방문자들이 두려워 하는 세 가지가 대중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것,
낯선 사람들 모임에 끼는 것, 공공장소에서 개인적 질문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덧붙여 그는 “대신 늦은 밤 TV를 시청하는 것 같은 편안함을 주라. ‘오늘 처음 교회에 나오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크게 숨을 내쉬고 편안하게 예배를 즐기십시오’ 등의 말을 하라”고 권했다.
SF=권문정 기자 moonjung@chdaily.com
--------------------------------------------------
실버목회’가 성장 좌우한다… 2019년 한국 교회 풍경
경기도 양평의 한 실버타운. 백발의 남녀 노인 30여명이 다목적실에 모여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다.
설교자는 인근 교회 담임목사. 그는 주변 지역 교회 목회자들과 매주 번갈아가면서 이곳을 찾아 노인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심방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 지역 교회 성도들은 요일별로 팀을 나눠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가상으로 그려본 2019년 어느 주일 풍경이다.
10년 후쯤 한국 사회는 이전까지 겪지 못했던 삶과 맞닥뜨리게 될 전망이다.
인구는 감소하기 시작하고, 고령사회 문턱에 서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향후 10년간 사회변화 요인 분석 및 시사점'은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의 선교 방향과 목회 패턴, 성도들의 생활상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변화를 예고하면서 동시에 대비책을 요구하고 있다.
◇'노인'이 교회 성장의 관건=통계청 예측에 따르면 2019년쯤에는 현재 10% 정도인 65세 이상의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선다.
이른바 고령사회로 접어드는 것이다.
교회성장연구소 이장석 선임국장은 "교회도 이 같은 변화에 따라 노인 목회와 노인 복지 분야 쪽으로 자연스럽게 방향을 틀게 될 것"이라며 "노인과 관련된 정책이나 프로그램이 교회 성장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인선교 단체 등에 따르면 노인학교 프로그램이 한층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또 지난해 7월부터 정부가 시행 중인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확대되면서 교회 성도들의 요양보호사 등을 통한 봉사와 전도 활동도 늘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 세대를 위한 맞춤형 목회 필요성도 떠오르고 있다.
10년 후 노령인구로 편입되는 세대는 이른바 '희생 세대'로 꼽힌다.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 초반에 IMF 위기를 겪은데다 자녀 사교육비와 경제 저성장을 경험하면서 자산 축적이 미흡해 이들 세대 가운데 빈곤층 양산이 우려된다는 것.
한국 교회 노인학교연합회 강채은 사무국장은 "이들이 한국 사회뿐 아니라 한국 교회의 부흥을 이끈 주역이라는 점을 한국 교회가 간과해선 안될 것"이라며 "교회가 정부의 노인정책과 연계한 노인복지 프로그램(생활 및 정서적 안정 분야)에도 적극적인 개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목회·선교 패턴 다양화=국내 총인구 수는 본격 감소세로 진입하지만 1인가구 및 부부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목회·선교 유형도 현재보다 세심하고 다양해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월간 '교회성장' 신성준 편집장은 "핵가족화가 확산된다면 혈연 중심이었던 기존 가정사역이 점점 대안가정 내지는 대안 커뮤니티 쪽으로 사역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지역교회 연합이나 소규모 신앙공동체들의 연합 모임이 신앙 활동에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높아진 고학력 현상은 교회 학교 커리큘럼이나 교사의 지적 수준도 함께 높일 것으로 기대되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여성 인력의 교계 활동 폭도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교회 내 고령인구 증가에 따른 갈등 유발에 대처키 위한 갈등치유 프로그램이나 노년층을 위한 새로운 사역 분야 발굴도 시급한 과제로 제시됐다.
--------------------------------------------------
감리교, 감독 11명 중 1명만 감독회의 소집에 응해
김국도 목사 지지 임영훈 감독, 불법으로 감독회의 소집 ‘물의’
기독교대한감리회 고수철 감독회장이 소집한 감독회의에 11명의 연회 감독 중 1명만 소집에 응해, 고수철 감독회장의 행보가 평탄치 않을 것임을 잘 보여줬다. 하지만 감독회의는 진행됐다.
교단 내부의 권력다툼 문제로 지난 10월 이후 후임 총장을 내지 못하고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 교단 신학교인 총신대학교(총장 직무대행 김상봉) 운영이사회가 오늘(29일) 오후 1시 서울 역삼동 총회본부에서 개최된다.
이번 운영이사회는 지난 22일 총신대학교 세미나실에서 모일 예정이었으나, 한 주간 연기돼 소집됐다. 이번 이사회에는 각 노회에서 새로 선출된 이사들이 참석 △운영이사회 임원선거 △졸업사정 △예결산 편성 △총회결의사항 이행건 △총장선출 등의 안건을 다룬다.
이 중 임원 선출, 졸업사정, 예결산 편성건은 그대로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운영이사회는 당연직인 부이사장 1인과 부서기, 회계를 제외한 부이사장 1인, 서기 1인, 부회계 1인을 선출한다.
그러나 총회결의사항 이행건과 총장선출은 불투명하다. 법리적 적법성에 때한 논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즉 운영이사회의 당연직인 재단이사회의 이사가 아직 법적으로 보장된 상황에서 총회 결의에 따라 ‘재단이사가 해임되었다’며 재단이사들을 빼고 이사회를 진행하는 것에 대한 적법성 문제로 논쟁과 다툼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교권 다툼적 성격이 강한 법리적 해석 문제로 총장을 선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총신대학교 교수들과 학생들의 반발 또한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인바, 오늘의 운영이사회가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을 모은다.
아신대, 다음달 5일 이사회 예정
이사회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2년째 이사회 소집이 되지 않고 있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총장 고세진, 이하 아신대) 이사회는 다음달 5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팔레스호텔에서 열린다.
아신대 이사회는 2007년 3월 1일 104회 이사회 이후 105회 이사회가 수차 소집됐으나 회의가 성립되지 않아, 그간 임기가 만료된 8명의 교수들이 재임용되지 못했다.
이번 이사회는 이사장 길자연 목사를 포함, 7인의 이사가 다음달 9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데다 다음달 28일엔 전임교수 1명, 계약직 교수 8명의 계약이 만료되므로 반드시 성사돼야만 하는 중요한 모임이다. 따라서 이번 이사회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때보다 높다.
이와 관련 교수협의회에 소속된 한 교수는 “학내 사태를 정상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이사회”라며 “이사들의 불참으로 마지막 기회마저 날아가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편, 같은 날 오후 5시 종로구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는 아신대교수협, 총동창회, 신대원 동문회, 원우회 등이 참여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정상화협의회 발족식’이 거행도리 예정이다.
------------------------------------------
"참 괴짜다, 미국은 스님도 천당 갑니까"
장경동 목사, LA 집회서 한인 사회 비하 발언
박지호 기자
▲ 장경동 목사의 LA 지역 신년축복성회는 1월 19일부터 28일까지 진행한다. 사진은 신년축복성회 포스터에 나온 장경동 목사.
작년 8월, 뉴욕 부흥 집회에서 했던 불교 비하 발언이 <미주뉴스앤조이>를 통해 국내에도 알려져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던 장경동 목사(대전 중문침례교회)가 올해 1월 19일부터 열린 LA 지역 부흥 집회에서 작년 일을 언급하며 그 책임을 이민 사회와 교회에 떠넘겼다.
"스님도 천당 가면 뭐 하러 목사 해, 스님 하지"
장 목사는 파사데나에 있는 사랑의빛선교교회(김재문 목사)에서 열린 부흥집회에서 "어떻게 목사가 스님도 천당 간다고 얘기하나", "미국은 스님도 천당 가냐"고 되물으면서 "미국은 참 희한하다"고 말했다.
"가만히 보니까 미국은 웃기더만. 내가 진짜 놀란 게 뭐냐면, 어떻게 목사가 스님도 천당 간다고 얘기하나 말이야. '스님도 예수 믿어야 구원 받는다' 그거 맞는 말 아녀? 아니 그걸 얘기했다고 인터넷에 띄워가지고, 한국에 가서 한참 동안 어려웠다니까. 그래서 내가 솔직하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미국은 스님도 천당 갑니까. 그럼 뭐 하러 목사 해, 스님 하지. 아이고, 미국이 희한하다. 참 괴짜다."
이쯤에서 장 목사가 지난 뉴욕 집회에서 했던 발언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장 목사가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은 것은 '스님은 천당 못 간다'고 얘기해서라기보다 불교를 조롱하는 무례한 태도 때문이었다.
당시 장 목사는 "스님들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예수를 믿어야 한다", "석가모니를 믿는다. 그것도 무식이 충만한 소리다", "불교가 들어간 나라는 다 못산다", "108 번뇌를 없애도 어떻게 먹고살 거야. 겨우 얻어먹고 사는 거야. 시주 자루 들고. 그러니까 불교는 아무리 훌륭해야 얻어먹고 살아" 등의 발언을 했다.
"미국 사회가 흠집을 잡아서 죽이려는 건 아닌지"
작년에 벌어진 논란의 배경에 대해서 장 목사는 "미국이라는 사회가 어떻게든지 흠집을 잡아서 죽이려고 하는 건 아닌가"라며 한인 사회를 탓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미국을 분석해봤어. 뜨는 것도 미국에 와서 뜨고 죽는 것도 미국에 와서 죽더라. 미국에 와서 부흥회를 오랫동안 잘 하고 있는 강사가 있나 봐라. 그 사람이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미국이라는 사회가 어떻게든지 흠집을 잡아서 죽이려고 하는 배경이 좀 있는 건 아닌가."
장 목사는 "수많은 목사들이 미국에서 떴지만, 숱하게 많은 목사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표현하면서 미국 한인 교회를 사형장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통용되는 것도 여기선 안 통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강사가 욕을 좀 하고, 반말을 하고, 헌금을 쥐어짜도 통한다. 그런데 여기는 얄짤 없다. 감싸고 덮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이상하면 까발려서 사정없이 난도질하려고 한다."
한인 교회 교인들이 환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건강한 사람은 몸을 좀 건드려도 괜찮지만 상처 난 사람은 살짝만 건드려도 아프다고 소리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장 목사는 돌아온 탕자 비유와 예수님의 발을 씻은 마리아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그들(탕자와 마리아)도 미국에 있었으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홉 가지를 못해도, 한 가지를 잘하면 성경은 잘했다고 한다. 탕자가 뭘 잘했나. 재산 다 날리고, 술 먹고 노름하고. 그래도 한 가지 잘했다.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거. 그런데 미국 사회에서 그 사람(탕자)이 살아남겠나. 마리아가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다.
미국 사회에서 (예수님과 마리아가) 살아남겠나. '예수 드디어 타락하다', '발 한 번 씻는데 3,000만 원', '마리아와는 무슨 관계인가' 하고 신문에 안 나겠나."
장 목사는 미국 사회가 어떻게든 흠집을 잡아서 죽이려 하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졌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문제가 된 건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서였다. 당시 <미주뉴스앤조이>에 보도된 기사를 보면 댓글은 고작 3개에, 조회 수도 1,500여 건에 그쳤다. 장 목사의 발언을 한국의 몇몇 언론사들이 인용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후 불교계에서 거세게 반발했고, 장 목사가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장 목사를 비판하는 댓글이 닷새 만에 800여 개가 달리기도 했다. 급기야 장 목사는 9월 4일 어느 조찬 모임에서 불교 비하 발언에 대해서 해명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장 목사는 "특정 구절만 소개되니 오해가 증폭된 것 같다. 자리에 따라 할 수 있는 말이 있다고 혼자 아쉬워서 그렇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 목사는 <미주뉴스앤조이>를 비롯한 일부 언론사를 겨냥한 듯, "언론 띄우겠다고 희한한 짓거리를 했을 때 하나님이 다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한 뒤, "하도 깔아뭉개기에 잘난 체 좀 해봤다"며 집회를 이어갔다.
박지호 / <미주뉴스앤조이> 기자
----------------------------------------
건강한 교회 첫 단추 '건물 없는 교회'
이 글은 개혁교회네트워크가 1월 18일 개최한 '이런 교회 다니고 싶다'라는 세미나에서 발표된 안해용 목사(너머서교회)의 발제문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우리는 흔히 "저쪽 건물 뒤로 200미터 가면 교회가 있습니다"라든지 "교회가 낡아서 큰일이야"라는 말을 한다. 저변에는 교회를 하나의 장소나 건물로 여긴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성경은 단 한 번도 교회를 장소나 건물로 묘사하지 않았다. 교회라는 단어의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원래 모인 무리나 민회(民會)등을 가리켰고, 기독교적인 용법에서는 '믿는 무리', '회중', '신앙 공동체'를 지칭했다.
이렇게 교회를 사람들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장소나 건물로 여길 때 나타나는 폐해는 두 가지다.
첫째, 우리가 모이는 장소나 건물을 신성시하는 경향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성도들의 모임 장소 혹은 모이는 건물을 '거룩하다'고 여기면서, 장소나 건물 중심의 신앙이 발전한다. 우리의 예배 처소를 구약의 성전과 동일시하는 모습이 바로 구체적인 예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부르고 그 곳을 모든 신앙 활동의 중심으로 삼는다. 우리의 거룩성은 그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에 참여하는 정도에 따라 측정된다.
예를 들어 주일예배를 드리러 가는 그리스도인을 상상해 보라. 예배당 건물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는 거룩해진다. 그 건물에 들어가 주일예배를 드리고 여러 활동을 하는 동안 그는 거룩한 기분을 느낀다. 그러다가 오후에 예배당을 나서서 세상으로 진입하는 순간 그는 거룩성과 멀어진다. 점점 세상 적이 되고,
결국 세상 한가운데서 매우 세속적인 존재로 살아간다. 그가 유일하게 거룩해질 수 있는 길은 예배당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그 안에서 활동에 몰입하는 것이다. 이것은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비성경적인 정신을 나타내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교회를 사람들로 생각하지 않고 장소나 건물로 간주할 때 야기되는 또 다른 폐해는 기독신앙의 비인격화다. 우리는 '교회봉사'라는 말을 할 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일정한 장소나 건물에 와서 주일학교든 성가대든 초신자 양육이든 자기가 맡은 책임을 다하는 정도로 여긴다.
그러기에 특정 장소 안에서 하지 않는 일은 '교회봉사' 즉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교회가 사람들이고 봉사가 섬김이라면 '교회봉사'라는 것은 마땅히 어떤 사람들을 섬기는 것을 말하게 된다. 이렇게 될 때 '교회봉사'라는 영역은 우리의 삶의 전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정리하면 교회를 사람들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교회, ○○교회 하면 우리 머리에는 금방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떠올라야 한다. 허름한 상가 2층이든 무슨 공원의 구석이든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면 그것이 교회임을 자각해야 한다.
"에클레시아"란 많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공식문서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바울사도가 데살로니가에 보낸 첫 번째 편지(살전1:1)에서이다. 본래 이 말은 성서적 의미로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내용을 내포한 교회로 사용되기 전에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사용되어졌던 용어를 바울이 전용하였던 것이다.
그리스 도시국가에서는 군주를 선택하고, 정치적인 결정을 추인하거나 사법적 차원의 탄원을 듣기 위해 모인 시민전체의 회합을 지칭할 때, "에클레시아"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런 유래를 거쳐 이 용어는 '집회'의 의미로 또는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의미로 쓰이면서 신약교회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낱말로 자리 잡았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이란 은유적 표현으로 교회의 본질을 나타내었다. 그리스도 안에(살전1:1), 그리스도와 함께(롬6:1-11), 그리스도와 연합하는(갈3:27), 그리스도의 지체(고전6:15) 등등의 표현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가 있다.
이러한 용어와 표현이 의미하는 교회의 본질은 주로 교회의 통일성과 조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고전12:27에 잘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많은 지체들이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음을 주장한다.(고전12:13) 따라서 지체는 하나이다. 하지만 모두가 동일한 획일적 구조가 아니라, 다양한 은사를 통한 조화로운 통일성을 말하고 있다.
다양한 은사가 전체의 몸과 조화를 이루어 상호봉사를 함으로 일체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지체에게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머리에 있다. 즉, 그리스도의 몸이지, 몸의 그리스도가 아니다. 머리인 그리스도가 몸의 다른 지체들에게 생명과 의지를 부여하며, 하나의 유기체로서 모든 지체를 연합시킨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그리스도의 몸이란 개념을 더 확대하여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가 보이는 형태로 나타났다고 보아 현재 지상에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를 존재론적으로 연결시키는 도식이다. 이것은 인간으로 구성된 지체를 그리스도의 신적인 몸과 동일시하는 관점으로 교회를 절대시하는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바람직한 것은 교회의 중심이 지체가 아닌 오직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어야 하며, 지체는 머리에게서 생명력을 부여받아 다양한 은사를 통하여 봉사하는 구조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성서의 기자들은 예수를 중심으로 일어난 모든 사건을 구약시대에 야훼 하나님이 약속한 언약의 성취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예수로 말미암아 새 백성, 곧 독특한 임무와 주체성을 가진 새 공동체가 되었고, 예수도 추종자들은 새 이스라엘로 생각하도록 가르쳤다. 그는 의도적으로 열두 제자를 택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상징적으로 대표하기 위해서였다. 뿐만 아니라 이 제자들과 새 언약을 맺고, 모세의 언약과 율법을 토대로 새 계명을 주었다.
이러한 의도는 예수 부활 사건과 성령강림 사건을 기점으로 낡은 율법시대는 지나고, 복음의 시대가 왔음을 알려 준다. 이들은 새 시대에 적합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새 공동체가 곧 새 이스라엘 백성으로 자격을 가진 사람으로 믿었다.
이 새 이스라엘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로마인 이방인 할 것 없이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새 생명을 얻어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이면 누구든지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이스라엘, 곧 새 이스라엘이다. 새 이스라엘은 외면적 유대인이 아닌 내면적 유대인으로 혈통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의 테두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따라서 할례는 육신적인 문제가 아니라, 내면의 문제다.
교회가 참된 이스라엘, 곧 새로운 이스라엘이 된다는 것은 교회가 새로운 계약백성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콘첼만은 초대교회와 관련하여 교회가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존재'로 인식하는 동시에 '세상 안의 존재'로 이해했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세상 안에 존재하고 있는 교회는 예수께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부탁하신 말씀을 받들어야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할 때에 거룩한 자들, 선택된 자들, 하나님의 교회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태도, 즉 신앙에 의하여 결정되며,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이 될 때에 진정으로 새 이스라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경에 나타난 바른 교회관을 확립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현실적으로 교회는 건물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더 높은 건물을 짓고 더 화려한 건물을 짓는 것을 통하여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그런 의미로 건강한 교회로 나아가는 첫 단추가 건물 없는 교회를 지향함에 있다.
건물을 소유하지 않는 것은 성서적인 본래의 의미를 찾아가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교회의 정의를 사람으로 본다면 건물이 주인 되는 교회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회론적인 본래의 의미를 찾아가기 위해 조금은 극단적인 방법이지만 건물을 소유하지 않으므로 이루어 질 수 있다.
인간은 작은 건물을 소유하게 되면 더 큰 건물과 안락함을 추구하게 된다. 그러기에 처음부터 분명히 선언함으로 분명한 본질적인 교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건물 없는 교회를 통하여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병폐인 이원론적인 신앙에서 놓여 날 수 있다. 교회가 사람들이라는 의식을 가질 수 있으려면 건물이 없기에 이런 의식을 가지는데 도움이 된다.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일을 할 수 있고 건물과 장소 안에 가두어 버린 신앙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아가는 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머무는 곳이 교회이고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주님의 일이라는 의식을 갖게 한다. 그러기에 건물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본질을 찾아가는 교회로 나아갈 수 있다.
건물이 없음을 통하여 사회로 나아감에 집중할 수 있다. 주님은 우리들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우리들의 빛이 교회 안에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건물이 없기에 사회에 나아가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이 사용하지 않는 건물을 활용할 수 있다. 효율적인 입장에서도 훨씬 알차게 진행될 수 있다.
본 교회는 고등학교 음악실을 이용하고 있다. 음악실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모든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그래서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공간을 사용하고 있고, 저희 교회는 학교에 일정한 사용료를 내고 있고, 공간을 청소하고 관리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학교를 위해 기도하게 되고 학생들의 장학금을 전달하므로 교회와 사회가 소통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고 있다.
건물 없는 교회를 통하여 건강한 교회 재정을 운영할 수 있다. 대부분 많은 교회들이 나눔과 섬김의 많은 예산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건물을 유지하기 위한 많은 예산을 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물을 소유하지 않으므로 교회의 많은 예산을 사회를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저희 교회는 적은 인원으로 개척했지만, 건물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선교와 구제를 위해 전체 예산의 30%에 이르는 비용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건물에 자유로우면 봉사사역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질 수 있다.
건물 없는 교회를 통하여 다양한 교회의 모습을 가질 수 있다. 교회하면 십자가 종탑이 있고, 예배당 중앙에 십자가가 놓여 있고, 높은 천장에 들어가면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곳을 생각한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들이라면 우리가 모이는 그 곳이 교회가 될 수 있다. 그러기에 다양한 교회의 모습이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찻집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이고, 가정집에서도 가정교회가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학원에서도 예배를 드림으로 그곳이 교회가 될 것이다. 그러기에 다양한 교회의 모습이 나타나고 건강한 교회를 향하여 나아가는 새로운 시도들이 많아 질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건물을 짓고 그 건물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성도들을 모으는 일에 집중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가지고 있다. 건물에 자유로우면 교회의 본질을 추구할 수 있고 건강한 교회로 나아가는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유럽의 화려한 성당들이 텅텅 비어가고 술집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국교회도 몇 십 년이 지나 유럽 교회처럼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기에 본질을 찾아가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건물이 없는 교회로 나아갈 때 이루어 질 것이다. 사회와 소통하고, 건물에 사용되는 예산을 가지고 선교와 구제를 위하여 사용된다면 잃어버린 교회의 영향력이 회복될 것이다.
안해용 / 너머서교회 목사
-----------------------------------------
교회 스타마케팅, ‘진정성’ 이 가장 중요
유명 인사를 활용한 ‘스타 마케팅’이 교회에도 보편화 되고 있다. 브랜드가 된 한 대형교회의 전도집회에는 인기연예인들이 나와 간증하고 그것이 이슈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기인을 이용한 간증이나 전도활동은 일시적인 홍보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강마에가 전도를 한다면?
최근 ‘300만 성도운동’을 전국교회로 확산하고 있는 예장통합은 지난 23일 서울 잠실 한 호텔에서 ‘300교회 목회자 홍보대사 위촉 초청예배’를 열고, 전국 300교회 목회자들을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당초 이 자리에서는 지난해 열풍을 일으켰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인공 김명민씨가 참석해 명예홍보대사로 위촉장을 받기로 돼 있었지만 불참했다.
김명민씨 홍보대사 위촉 사실이 포털사이트에 공개되면서 소속사측이 부담을 느꼈고 결국 무산된 것이라고 한다.
예장통합측은 유명연예인 홍보대사 위촉으로 교회 성장 운동의 기치를 높이고 홍보를 강화하고자 했지만 백지화 되고 말았다.
값싼 믿음, 흔한 간증 방지해야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들의 간증은 파급력이 크다. 그렇다 보니 이런 점을 이용한 교회들도 많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되다 보니 유명 인사들의 신앙고백이나 신앙심의 발로로 수락한 활동들이 값싼 홍보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NGO단체가 홍보대사 위촉시 충분히 검증하 듯 교회에서 간증할때도 이런 자세가 요청된다. (사진은 월드비전에서 봉사하고 있는 탤런트 정애리씨)
이런 문제는 연예인들 자신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탤런트 정선일씨는 “간증이나 과도한 사역으로 부담을 느끼는 연예인들이 상당수”라면서 “유명인사도 신앙이 성숙해야 할 성도 중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과도한 관심으로 신앙을 잃는 경우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교회에서도 연예인을 연예인 취급하면 안 돼
이런 일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유명인이나 목회자 모두 바른 시각을 가지고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그 자신이 연예인이자 목회자로서 사역을 하고 있는 극단 예맥 대표 임동진 목사는 “대중예술인의 간증 및 교회활동은 대중에게 빨리 공감을 얻고, 심리적 신뢰를 받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분명히 있다”면서도 “자칫 교회에서조차 이들을 연예인 취급을 하게 된다면 신앙은 얼마든지 포장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임 목사는 “교회에서도 연예인의 출석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이면의 부분을 채워줄 수 있어야 하고, 교회가 어떤 활동을 요청하게 된다면 충분히 기도하고 살펴보면서 교회 목적에 맞는 간증이나 활동을 구체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회에서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의 활동은 한 사람의 잘 알려진 성도로서의 나눔과 간증이어야지 교회에서조차 이들을 연예인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임 목사의 조언은 연예인의 홍보 활동이 잦아진 한국교회가 한번쯤 기억해야 봐야할 메시지다.
--------------------------------------------------
설교 잘 하는 열 가지 방법
교회건강연구원 이효상 목사가 말하는 ‘목회본질’
예수님 목회의 본질적인 사역에서 첫 번째 기둥이 기도목회이다. 기도목회는 기도, 영성사역을 구체화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새벽기도와 철야기도, 심야기도, 산기도 등 다양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 이를 특화시켜야 한다.
두 번째 기둥은 제자를 불러 모아서 이르신 말씀목회이다. 말씀목회는 성경공부식 제자 양육과 설교계획으로 나눌 수 있다. 양육을 위한 멘토링 시스템과 핵심일꾼 훈련을 위한 제직훈련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특별히 말씀목회에서 중요한 것이 설교이다. 교인들이 공감하는 설교를 해야 한다. 밥허스틀러 목사의 10가지 설교법이 주는 유익이 많다.
교회에는 오래된 정통과 음악 상징 등이 있다. 그래서 빌 하이벨스 목사님의 윌로우크릭과 같은 교회는 새로운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설교할 때 생활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을 소재로 하고 딱딱하고 지루한 이야기는 되도록 피한다. 또한 교회 내부의 세대 차를 극복하기 위해 중간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시대를 넘어서 교회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요소는 설교자가 설교를 하고 사람들은 설교자의 설교를 듣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이 설교를 통해 무엇을 듣기 원하는지 알아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사항들은 본인의 여러 목회 경험에서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개인적 설교는 삼가… 너무 많은 말 하지 말라
설교에 감동 감화력 있고, 실천적 내용 담겨야
설교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1) 설교 시작과 거의 동시에 청중의 관심을 사로 잡아야한다. 유명한 설교자들은 바로 이점을 잊지 않았다. 설교를 시작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지 못하면 사람들은 전체의 설교에 흥미를 가지지 못한다. 흥미 있는 이야기나 질문 등으로 설교를 시작하면서 청중의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
2) 사람들은 설교에서 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듣기 원하고 배우기 원한다라는 것이다. 배우기 원한다. 생각해보라. 만약 설교자가 대중에게 자신의 설교를 받아 적도록 강요한다면 대중은 설교 자체에 벌써 흥미를 잃게 되고 말 것이다. 사람들은 설교자가 직접 수저로 음식을 가져다가 입에 넣어 주는 것보다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찾고 알아가기를 원한다. 청중이 몰랐던 사실로 새로운 안목을 갖게 하는 설교가 필요한 것이다.
3)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가에 관심이 있지 설교자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이는 초신자들 마찬가지다. 좋은 설교는 성경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4) 대중이 성경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투의 말을 설교 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말은 새신자나 교회를 오래 다닌 신자 모두에게 좋지 않다. 사람들이 하박국이나 학개를 빨리 못 찾는다고 책망하지 말라.
5) 성도들은 설교를 통해 목사님이나 설교자의 간증, 신앙의 경험 등을 듣기원한다. 설교 내용과 연관이 있고 필요한 이야기라면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시 하는 것도 무관하다라는 것이다. 성도들은 설교를 들을 때 설교자의 개인적 신앙 생활을 통해 은혜받기를 원한다.
6) 유머가 필요하다. 설교자가 유머스럽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이야기로 긴장을 풀어 줄 때 성도들은 평안한 마음으로 설교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결점이나 단점을 털어 놓고 이야기하는 것도 공감대를 형성해주는 좋은 효과가 있다.
7)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말라. 중요하고 알아야할 포인트 몇 가지만 강조해 이야기해도 충분하다. 소화하기 힘든 너무 많은 이야기나 소재를 가지고 설교를 하지 말아야 한다. 사소한 사항에 대해 상세한 내용을 말할 필요도 없다. 때로는 설교자보다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한 사람이 청중 속에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 질병으로 고난당하는 사람, 자식을 잃은 부모 등 여러 가지 고난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치 그 경험을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단지 삶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간단한 이야기나 모두가 겪고 경험하는 이야기정도를 나누는 것이 좋다.
8) 설교에 감동과 감화력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설교를 통해 감동 받기를 원한다. 설교를 통해 마음 속에 무엇인가 느낌을 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가공된 인위적 이야기보다 신선한 감동이 있는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원한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이성적 이야기보다 감동적이고 소박하며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원한다. 이것은 중요한 설교의 요소이며 이러한 점이 설교에서 부족하면 설교로서 낙제라고도 할 수 있다.
9) 성도들의 필요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나는 학생들이나 설교자들에게 ‘왜, 또는, 그래서’ 라는 질문을 항상 해 보라고 한다. 이러한 질문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을 점검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설교를 듣는 사람에게 설교의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결론에 이르는지 맥락이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식구들과 오랜만에 외출을 할 경우 스케줄을 미리 짜고 맛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까지 예약을 한다면 여러분의 아내나 자녀들은 감동하고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설교자는 마치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안내하듯이 설교를 듣는 청중들을 처음의 시작 포인트에서부터 마지막 결론까지 잘 안내를 해야 합니다.
10) 초신자들이나 신앙생활을 오래한 성도들이 공통적으로 설교를 들을 때 관심을 갖는 사항은 자신의 삶에 설교 말씀을 어떻게 적용 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이다. 이번 주에 들은 말씀을 어떻게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 말이다. 나는 주일날 설교할 때 설교를 듣는 성도님들은 모두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를 소망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설교 내용에 실제적으로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고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방법과 구체적 사항들을 포함시킨다. 때로는 말씀을 들은 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적어보도록 하기도 한다. 그 동안 교회 출석을 정기적으로 하다가 나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편지나 카드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렇게 실천 사항을 적는 것은 말씀을 자신의 삶에 구체화하게 하는 과정이다.
전도의 목적은 교회 성장 아닌 영혼 구원
다시 예수님의 목회로 돌아가자. 예수님 목회의 세 번째 기둥은, 각 마을과 회당으로 두루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파하신 전도목회이다. 우리는 전도를 체질화시켜야 한다. 실제적으로 많은 교회가 부흥하기를 원하면서도 전도 현장을 외면하고 있다는데 오늘의 문제가 있다. 일반적 교회의 경우 해마다 반복되는 것이지만, 1월부터 6월까지는 열심히 전도하다가 7, 8월에는 전도를 쉰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 조금하는 것 같다가 그냥 한해가 지나간다. 쉬었다가 전도하려고 하면 상당한 힘이 든다. 전도의 열기가 식어져서 다시 회복하는데만 1~2달이 걸린다. 그러다 보면 추수감사절이 오고 성탄절이 오고 연말연시가 되면 교회행사에 밀려서 그냥 쉬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전도가 생활화되지 못했다는 증거다. 전도는 교회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또한 시대가 분명히 바뀌었기에 이 시대에 맞는 전도법을 개발해 전도 잘하는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교회가 전도형 교회로 시스템이 전환돼야 한다. 전도목회에 있어 중요한 것은 교회가 교회성장에 관심을 갖지 말고 영혼구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도는 영혼구원이지 교회성장 프로그램이 아니다.
예수님 목회의 네 번째 기둥은, 각색 병든 자들을 고치신 치유목회이다. 성령의 위로하심과 만져주심을 사모하는 치유목회는 가정사역, 상담과 복지 ,그리고 성경적 치유 등으로 구체화 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예수님 목회의 본질적 네 기둥을 구체화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교회 자체의 매뉴얼을 구체화해야 한다. 또한 평신도들을 훈련시킬 때 교회는 변화하고 부흥한다. 훈련을 통해서만 준비된 일꾼이 생겨나고 사역의 열매가 맺힌다. 예수님이 처음에 12명을 보낼 때는 사역의 보고가 없었지만 그 다음 70명을 보낼 때는 귀신도 내어 쫓는 이적도 경험하며 기쁨으로 보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훈련 이론과 경험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훈련 받은 교인은 담대함이 있다. 또 분명한 사역의 열매도 있다. 잠자는 교인들을 일깨워야 한다. 철저하게 훈련을 시켜서 내보내야 한다. 적어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개인 전도와 대중 전도의 훈련을 받았다. 이런 점에서 목회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릭워렌 목사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파도를 탈 준비가 되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파도를 보내 주신다”라고 했다. 모든 교회의 사역은 신앙성숙과 교회부흥에 있다. 프로그램 자체에만 몰두하다보면 이를 뒷받침하는 영성적 기능(기도, 예배 등)과 실천적 기능(제자의 삶)을 소홀히 할 때가 있다.
궁극적으로 이 부분을 강화하고 성장하도록 꾸준히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교회는 순교적 영성을 지닌 목회자를 통해 만들어지며 거기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남은 시간을 통해 나의 목회는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가를 돌아보고 2009년 새해의 목회를 준비, 기획할 수 있어야겠다.
한국기독교통일교대책협의회(대표회장 최재우목사) 사무총장 이영선 목사는 “통일교 측은 구순을 맞이하는 문교주의 생애는 하나님 뜻을 향한 집념의 외길이었다며 지금도 평화세계 구현을 위해 최일선에서 열정을 쏟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왕권을 상징하는 왕관을 머리위에 수여받으므로써 왕위에 오르는 의식인 대관식을 통해 종적인 만왕의 왕되신 하나님의 실체로 만인류를 통치할 횡적 만왕의 왕이라고 자칭하는 문선명 교주를 기독교 목사와 성도들은 경계해야 된다고” 전했다.
이 목사는 이어서 “전국의 기독교 성도들과 목사들 가운데 통일교의 무료관광에 참여한 사람과 평화대사들은 이번 행사에 초청장이 오더라도 절대로 참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은 31일로 90회 생일을 맞은 창시자 문선명 교주는 평화의 발자취와 독특한 건강관리법, 구순축하행사 등을 언론에 공개했다.
문 교주의 구순 행사로 경기도 가평 청평 수련원에서 30일 국내외인사 1천여명을 초청해 구순 기념식과 오찬 행사를 가졌다.
31일에는 천정궁 박물관에서 하나님 해방권 대관식을 마치고 출국해 2월 1일 미국의 뉴욕 맨해튼호텔에서 세계 주요국가 지도자 초청 오찬과 국제합동결혼식을 집전했다.
문 교주의 구순을 기념해 700쪽 분량의 화보집과 특별강연 선집, 자녀의 서한 모음집 등 20여권의 각종 기념 서적도 출간됐다.
서울 청파동 가정연합 본부 1, 2층 전시실에선 문 교주 생애전시회가 열리고 전국 교구단위로 다문화가정을 위한 축제와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 활동도 펼친다.
----------------------------------------------
그도 영혼이 있을까
군포 살해범 강호순, 여성 7명 연쇄살인 자백
범인“넷째 아내 잃은후 여성 보면 살인 충동”
유영철과 70년생 동갑… 경찰 조롱도 빼닮아
조정훈 기자 donju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사진 속에서 그는 선하게 웃고 있다. 그 얼굴에서 7명의 부녀자를 살해하고 암매장한 연쇄살인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동안 이웃사람들이 입을 모아 "친절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증언했던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그는 매력적이라 할 만큼 준수한 외모와 선량한 미소로 여자들을 차례차례 차로 유인해 짐승의 욕구를 채웠다. 그리고는 모조리 목을 졸라 죽였다. 시체는 자기 집 근처 벌판과 야산 이곳저곳에 파묻었다. 살인극이 끝나면 그는 다시 싹싹한 30대 동네 청년으로 돌아가 태연하게 트럭을 몰고, 가축을 기르고, 스포츠마사지사 일을 했다. 그는 인간의 몸을 빌린 사악한 악마였다.
경기 군포시 20대 여성 살해 혐의로 지난 24일 붙잡힌 강호순(39)이 30일 오전 경찰에서 지난 2006년 12월 이후 지금까지 경기 서남부 일대에서 실종된 부녀자 7명을 모두 자신이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지난 2004년 7월, 20명을 살해하고 붙잡힌 유영철(39), 2006년 13명을 살해한 정남규(40) 이후 또다시 터진 연쇄살인사건이다.
경찰은 "강의 리베로 트럭에 있던 점퍼에서 찾아낸 혈흔이 작년 말 수원에서 실종된 주부 김모(당시 48세)씨의 DNA와 일치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유전자 감식 결과를 토대로 강을 추궁해 자백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피해여성 7명 가운데 6명의 시신을 수습하거나 암매장 현장을 확인했다. 강이 2007년 1월 살해한 노래방 도우미 김모(당시 37세)씨를 묻었다고 진술한 공터에는 현재 퍼블릭골프장이 들어서 있다.
◆전형적인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피해자들을 스타킹 등으로 목 졸라 살해하고 옷을 벗긴 뒤 암매장했다. 강은 2007년 1월 3~7일 불과 닷새 사이에 3명을 살해하기도 했다. 노래방에서 3명, 한적한 버스정류장에서 4명을 유인했다. 번듯한 외모와 말솜씨로 피해자들을 유인한 것은 1970년대 미국에서 30여 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Bundy)를 연상케 한다.
연쇄살인범(serial killer)이라는 말은 1975년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심리분석관 로버트 레슬러(Ressler)가 처음 사용했다. 연쇄살인범들의 특징은 반항할 힘이 없는 여성과 어린이,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강호순 역시 약한 여성들만 공격했다.
강은 경찰에서 "2005년 화재로 네 번째 아내를 잃은 뒤 1년여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전국을 방황한 뒤 여자들을 보면 살인 충동을 느꼈다"며 "1차 범행을 한 뒤에는 자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은 "믿을 수 없는 주장"이라는 의견이다. 죄의식 없이 잇단 살인 행각을 벌인 것은 '사이코패스(psychopath)' 즉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스포츠마사지사로 일한 강은 자신이 일하던 사우나에서 붙잡혔다. 최근 2년간 살인행각을 벌이는 동안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강이 살던 집에는 '부동산 경매 컨설팅'을 비롯한 부동산 경매 관련 책자가 여러 권 있었다. 공인중개사나 부동산 관련 업종에 도전하기 위해 준비했던 흔적으로 보인다. '교통사고의 법률 지식'이라는 책도 있었다.
◆어떻게 살아왔나
강호순은 1970년 충남 서천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5남매 중 셋째다. 서천에서 초·중등학교를 다닌 뒤 1989년 충남 부여의 모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강의 고교 생활기록부에는 "용모가 단정하고 성실하다"고 적혀 있었다. 학업 성적은 중상위권이었다. 부사관으로 군에 입대했던 강은 휴가 기간에 소를 훔치다 붙잡혀 불명예 제대했다.
강은 1992~2005년 사이 네 번 결혼을 했다. 아들 셋이 있다. 22살 때 결혼한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 16살과 14살 난 두 아들을 얻었고, 두 번째 부인이 낳은 막내(8살)가 있다.
강은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 2년여 트럭 운전을 했고, 순대국집을 운영하다가 불이 나서 문을 닫기도 했다. 네 번째 부인과는 마사지업소를 직접 운영했다. 강은 한때 안산 반월저수지 인근에서 개와 닭을 키웠다. 강은 주위사람들에게 "개를 직접 잡아서 내다 팔았는데, 그러다 보니(살생을 계속 하다 보니) 내 눈동자가 이상해지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2006년부터는 수원 당수동에 축사를 빌려 형과 함께 소와 돼지 30여 마리를 키웠고, 양봉(養蜂)도 했다.
-----------------------------------------
이만희 씨의 'New' Vs 기독교 목사의 'Old'
장운철 목사의 신천지 교리서 <요한계시록의 실상> 분석 27
장운철 kofkings@amennews.com
▲ 이만희 씨(pd수첩 촬영)
이만희 씨는 요한계시록 12장의 해설에서 정통교회의 해석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자신이 ‘진짜’이고 정통교회의 것이 ‘가짜’라고 한 것이다. 기독교 목사들과 정면대결까지도 언급한다(이 씨의 책, p.259). 누가 진짜인지 가려보자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있다’는 말로 들린다.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도 목회자이니 이만희 씨와 재미난 경기가 될 듯하다. 그럼 계 12장 해설을 통해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직접 살펴보자. 그리고 하나씩 분석해보자.
먼저 요한계시록 12장은 ‘여자’와 ‘붉은 용’과의 적대관계가 주된 이야기다. 제 6인과 제 7인 사이에 하나님의 백성이 인 맞는 사건이 막간으로 계 7장이 기록된 것처럼, 제 6나팔과 제 7나팔 사이에 인봉된 7우뢰(10장), 두 증인(11장-지난 분석)과 함께 사탄과 여인의 충돌(12장)이 막간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 충돌은 13-14장까지 이어진다.
이만희 씨도 그의 책 <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도서출판 신천지, 2005)을 통해서 계 12장을 여인과 붉은 용의 대립관계로 설명을 했다. 큰 틀에서 보면 이 씨의 해설과 정통교회의 성경해석이 같아 보인다. 그러나 ‘여인은 누구?’, ‘붉은 용은 누구?’ 등 한 걸음만 들어가면 그 결과가 매우 달라진다. 심지어 이 씨는 자신의 새로운(New) 주장이 옳다며 정통교회의 전통(Old) 해석을 반박하기도 했다. 그의 적극성이 흥미롭기도 하다.
이젠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교계 일부 목자들은 본장의 여자를 교회라 하고 그에게 난 아이를 예수님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거짓임이 드러난다. 첫째, 교회(여자)가 어찌 예수님(아이)을 낳은 후 본문 6절과 같이 광야로 도망가서 1,260일 동안 양육 받을 수 있는가? 둘째, 계시록 2장 26-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고 철장을 준다고 하셨다. 본문의 아이가 예수님이라면 어찌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에게 다스리는 철장 권세를 주겠는가?”(이 씨의 책, p.255).
무슨 말인가. 이 씨는 정통교회가 해석한 ‘여자=교회’, ‘아이=예수님’이라는 논리가 틀렸다고 하는 것이다.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먼저는 교회가 어떻게 광야로 도망가서 1,260일 동안 양육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그 다음은 아이가 예수님이면 예수님이 자기 자신에게 철장권세를 주는 식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통교회의 주장이 틀렸다는 말이다.
이 씨의 비판 논리가 명쾌하지 않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예를 들어 ‘1+1=2라는 주장은 틀렸다. 2+3=5이기 때문에 그것은 틀린 것이다’는 식이다. ‘여자=교회, 아이=예수님’이라는 주장이 틀렸다며 내세운 논리가 ‘교회가 어떻게 광야로 도망갈 수 있느냐’는 것과 ‘그곳에서 1,260일 동안 양육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기록된 문장 그대로만 받아들여보자. 교회가 광야로 못가나? 그곳에서 1,260일 아니라 12,600이라도 양육을 받지 못하는가? 모두 가능하지 않은가? 이 씨는 교회가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마도 ‘교회=건물’이라고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건물도 옮겨질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예수님이 자신에게 철장권세를 주는 식이라는 것은 기독교의 주장 자체를 잘 모르고 한 소리다.
'아이'는 누구?
그럼 이만희 씨가 주장하고 싶은 ‘여자’와 ‘아이’의 의미는 무엇인가? 먼저 ‘아이’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 씨의 주장이다.
“본문의 여자가 낳은 아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고 한다(5절). 계시록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이 남자는 과연 누구인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는 예수님께서 ‘계시록 2, 3장에 약속한 이긴 자’이다”(이 씨의 책, p. 254).
여자가 낳은 아이가 ‘이긴 자’라고 한다. 계 2-3장에서 이만희 씨는 ‘이긴자=이만희’라는 논리를 편 바 있다. 그럼 어떻게 되는가. ‘아이=이만희’라는 꼴이 된다. 결국 만국을 다스릴 남자는 이만희 자신이라는 주장이다.
이 씨는 계 12:5절의 ‘만국을 다스릴 남자’가 왜 느닷없이 계 2-3장의 ‘이긴 자’와 연결이 되는지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같은 단어가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논리상 연결 고리를 찾기도 어렵다. 이 씨는 자신의 주장을 펼칠 때마다 수시로 신구약 성경구절을 인용했다. 그 인용 문구가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두 번째로 놓더라도 성경구절 자체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주장이 성경을 통해 입증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정작 필요할 때는 성경구절이 없다. 그냥 ‘내가 그렇다고 하니 그렇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라’는 막무가내 식이다.
오히려 이 씨는 계12장 본문의 여러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려준다면서 “이 모든 답은 사건의 현장을 본 자만이 알 것이다”며 ‘경험이 최고’라는 방식으로 해설해 간다(이 씨의 책, pp. 266-267). 이 씨의 성경 해설은 결국 ‘체험담’에 불과한 것이라는 말인가? ‘아이=이만희’라는 등식도 그렇게 밖에 주장할 수 없는 것인가?
이 씨가 말하고 싶은 여자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씨는 그 의미를 계 14장에서 설명한다며 미루었다. 그 설명을 찾아가보자.
“<여자의 정체>. 육적인 여자를 비유한 본문의 여자는 영의 씨를 받아 성도를 전도하고 양육하는 목자를 말한다. 그중에서도 마귀 씨를 받아 마귀의 자식을 생육하는 거짓 목사를 의미한다. ···본문의 여자는 일곱 금촛대 교회뿐 아니라 세상 교회들까지도 이방 귀신을 섬기게 한 거짓 목자요 멸망자이다”(이 씨의 책, 303).
계 14장에서 ‘여자’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한다고 해서 살펴보았는데 윗 문장이 대표적이다. <여자의 정체>라는 소제목으로 설명을 해 놓았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여자의 의미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거짓 목자’라고 한다. 이때 이 씨는 친절하게도 성경구절 두 개를 인용했다. 계 2:20과 계 17:1-5이다. 그 인용문을 통해 본문(12장)의 여자를 ‘자칭 선지자’, ‘음녀 바벨론’과 동일한 인물로 소개했다. ‘여자’라는 단어의 글자 모양이 똑같으니 그렇게 판단을 한 모양이다.
틀렸다. 완전히 빗나갔다. 이게 이만희 씨의 성경해설의 한계다. 단어가 같으면 의미가 같은가? 계 12장의 여자가 계 2장과 계 17장의 여자와 동일한 인물인가? 마치 ‘눈’(eye)과 ‘눈’(snow)이 같다고 주장하는 바와 무엇이 다른가?
계 12장의 여자가 음녀요, 바벨론이요, 거짓 목자라면, 엄청난 결과가 뒤따른다. 그 여자에게서 철장권세를 가진 그 ‘아이’가 나온다는 말인가? 음녀에게서 만국을 다스리는 남자가 태어난다는 것인가? 그 아이의 뜻이 예수님이 아니라 이만희 씨의 논리대로 이만희 자신이라고 해 보자. 그러면 이만희 씨는 음녀요, 바벨론이라 불리는 여인에게서 태어났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가?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의 논리가 지나친가? 정말 우스운 결과다. 어두움의 세상을 물리치기 위해서 그 속에서 태어난 것이라는 등의 의미 부여가 있을 수는 있을지라도 ‘음녀 자녀’인 것만은 부인 못하게 되는 셈이다. ‘기본’이 정말 필요하다.
'여인'은 누구?
여인과 아이를 상징어로 본 것은 이만희 씨와 정통교회가 동일하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여인은 누구를 뜻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