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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회는 ‘사춘기’ / 유비쿼터스는 교회 성장의 핵폭탄’
    2005-11-17 22:04:16   read : 6169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에릭슨의 생애주기이론으로 보는 교회의 성장
    서은하 기자 sarah@googood.com

    ▲ '에릭슨의 생애주기이론의 응용을 통한 교회 진단 및 목회자의 목회 방법론과 영성 개발'을 주제로 한 포럼 ©구굿닷컴

    ‘한국 교회를 한 개인으로 본다면 현재 사춘기를 지나고 있으며, 목회자들은 아직 청소년기에 접어들지 못했다’는 독창적인 분석이 나왔다.

    장신대 실천실학 오규훈 교수는 16일 장신대에서 열린 포럼에서 심리학자 에릭슨의 발달이론을 적용해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그는 한국 교회의 현실에 대해 “양적으로는 침체에 접어들었고 사회적으로도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질적 성장이라는 개념에 대해 ‘양적 성장의 패배감을 감추기 위한 가면’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양적, 질적 성장의 균형을 강조하는 ‘교회 발달(development)’이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오 교수는 교회를 단순한 조직이 아닌 살아있는 유기체로 봐, 인간발달 이론에 따라 일정한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 개념을 설명했다.

    발달 초기, 신뢰와 자율성 형성
    사춘기,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정체성 확립

    오규훈 교수가 적용한 에릭슨의 이론은 ‘인간의 발달 과정을 총 8단계로 나누고, 한 개인이 각 단계에 따라 반드시 성취해야 하는 과업을 통해서 성숙해 간다’는 내용이다.

    초기 4단계까지는 교회의 유년기며 이때는 기본적으로 목회자와 성도간의 신뢰 형성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시기 교회 안에서 성도는 설교나 성경 공부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신뢰감’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또 목회자의 돌봄과 인정을 통해서는 ‘자율성’이 형성된다는 내용이다.

    그는 “인간의 유년기와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도 이 시기는 가장 중요하다”며, “이 단계의 목회자는 부모와 같은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오규훈 교수, 교회의 '성장' 대신 '발달' 주장 ©구굿닷컴

    이날 오 교수는 특히 다섯 번째 단계를 ‘사춘기’로 표현하며 강조해, “이 단계에서 교회는 비로소 교회 안의 관계에서 벗어나 세상과의 관계성을 형성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인간이 유년기에 대부분의 물리적 성장이 이뤄지고 그 이후에는 정체성 형성이라는 과제에 도달하는 것처럼, 교회도 이 시기에 외부와 자신을 통합하고 정체성을 세워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는 폭발적으로 부흥했던 시기에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형성해주지 못한 것을 한국 교회의 목회·신학적으로 실패한 부분으로 평가했다.

    오 교수는 “발달 초기 단계에 충분히 갈등을 겪으며 정체성을 형성해야 했다”며, “이에 실패해 현재 교회가 사회적 역할을 감당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평가했다.

    이는 그동안 교회가 성도 개인의 ‘구원의 확신’에만 주목해, 그가 마땅히 가져야 할 ‘사회에 대한 윤리적 책임’은 부차적인 것으로 미뤄놨다는 주장이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요구되는 많은 덕목들과 교회에서 배워 온 성경 지식이나 신앙의 경험을 통합시키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교회가 양적으로 부흥하기 시작할 때, 목회자는 정체성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목회를 구상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이와 관련 논찬자로 참가한 류현웅 목사는 “이는 정체·감소 추세에 놓인 한국 교회의 성장둔화를 어느 한 요인때문이라기보다 유기적 공동체 차원에서 이해한 창조적 시각”이라며 오 교수의 이론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교회를 발달이라는 측면에서 재조명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각 단계마다 목회자의 역할을 제시한 점이 한국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시의적절했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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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질을 알면 목회가 보인다

    성도 자아발견과 교회공동체 연합에 ‘도움’
    서은하 기자 sarah@googood.com

    최근 한국에서 B형 남자들의 입지는 좁았다. 각종 대중매체가 이들을 ‘제멋대로인 바람둥이’로 규정한 까닭이다. 과학적 근거가 희박하다해도 ‘성격유형론’은 젊은 세대를 사로잡는 힘이 있다.

    이런 현상은 기독교계 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다만 목회 현장에선 혈액형 대신 ‘기질론’이나 MBTI같은 심리학적 성격유형론이 각광받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특히 사람의 기질을 4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기질론’은 설교나 소그룹 자료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당신은 다혈질?

    히포크라테스가 ‘사람의 체액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고 했던 분류체계를 근대에 와서 심리학적으로 연결시킨 것이 기질론이다.

    기질론에선 사람의 기질을 크게 활달한 다혈질과 감성적인 우울질, 능동적인 담즙질, 태평한 점액질로 나눈다. 경우에 따라 이 네가지를 조합해 12가지 유형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많은 기독교적 심리학자들은 ‘베드로’를 대표적인 다혈질로 분류한다. 그는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며, 열정은 많지만 끈기 없는 다혈질의 기질을 잘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우울질의 대표 인물은 ‘모세’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모세는 이상주의에 완벽주의인 우울질의 모습으로 성경에서 그려진다는 견해이다.



    ▲ 예수의 12제자 중 베드로는 '다혈질'의 대명사

    앞의 두 기질이 감정적인 성향이라면 담즙질은 일 중심적인 기질이다. 바울이 담즙질이라고 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목표지향적이며 때론 잔혹하기도 한 담즙질은 타고난 지도자로 설명된다.

    마지막으로 점액질은 ‘바나바’나 ‘디모데’ 같은 인물이 거론되는데, 이들은 모두 관계중심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 이 네 기질은 ‘어떤 것이 우월하거나 열등하다’는 개념이 아니며 각각의 기질 안에 고유한 장단점이 있다고 말해진다.

    사역 현장에서 적극 활용하기

    이런 기질론은 ‘자신의 기질을 알면 자기 자신을 이해해 그에 어울리는 삶의 양식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다. 더 나아가 자신과는 다른 타인에 대한 이해를 도와 건전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실제 목회 현장에서 기질론이 갖는 매력은 상당한 것으로 보여진다.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는 지난 8월부터 지금까지 매주 저녁예배때 기질에 관한 설교를 하고 있다. 이런 기질 설교는 이미 4차례 이상 진행되고 있다.

    청년 부흥의 대표주자로 인정받는 그는 기질 설교의 이유를 ‘자신과 타인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강점으로 일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또 지구촌 교회의 이동원 목사도 2003년 ‘기질을 알면 행복이 보인다’는 기질을 주제로 한 세미나를 열어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여기에 여러 교회 소그룹별로 이뤄지는 기질테스트나 세미나까지 합하면 교회 안의 기질론의 영향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교회 내 기질론에 대한 선호는 현재 기질에 대한 출판물 중 80%가 기독교 관련 서적이라는 점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이 이론의 대부격인 탐 라헤이의 ‘성령과 기질’을 비롯해 이 분야 베스트셀러인 플로렌스 리타우에의 ‘기질플러스’와 손경구 목사의 ‘기질학습과 영적 성숙’ 등의 책을 원한다면, 누구나 손쉽게 접할 수 있다.

    기질론의 부상은 ‘하나님이 만드신 나를 이해해 인생을 설계하기 원하는 개인적 욕구충족’과 ‘너무도 이질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공동체의 연합을 꾀한다’는 점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기질론적 접근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라’는 결론으로 압축된다. 즉 어떤 기질이든 ‘성령에 붙들린 바 되어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최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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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시험 과목은 신본주의가 아니다
    예수는 신보다 사람을 먼저 사랑하는 인본주의 종교 제도와 사랑의 조직을 만들었다
    오승기(shindoll)

    예수가 받은 시험에서 빵 문제는 겉으로 드러난 시험 유형은 될 수 있으나, 내면적으로 사탄이 시험한 과목은 될 수 없다. 부자들에게 빵 문제는 시험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탄은 예수의 40일간 금식 후에 빵 문제(마 4:3~4), 종교 문제(마 4:5~7), 정치 문제(마 4:8~10)유형을 가지고 예수의 신본주의를 시험한 것이다. "만약 네가 신의 아들이라면" 신이니 신처럼 행동하여 보라는 유혹이다. 이런 유혹에서도 신의 아들 예수는 신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악한 천사들은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신본주의를 시험하고 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신본주의 마술에 넘어가서 독선(獨善)자와 이단시하는 자가 되었다. 신본주의 신앙생활에서는 자신이 권력의 신·재물의 신·정보의 신에게 굴복한 상태를 모른다. 신본주의에 의해서 남을 이단시하느라 자신이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도 모른다. 신본주의에 의해서 권력 지상주의·재물 만능주의·정보 제일주의가 발생한 것을 기독교인들은 모르고 있다. 한 마디로 기독교인들은 신본주의로 마냥 신이 난 상태이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이 신이 되는 신본주의를 버리고 사람의 입장에서 "사람은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신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하셨다. "주 너의 신을 시험하지 말라. 주 너의 신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고 대답하여 사탄의 유혹을 물리친 내용을 가지고 신본주의 신앙이 옳은 신앙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

    왜냐하면 "요나스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말은 "네가 신의 아들이라면" 신처럼 해봐라는 사탄의 시험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냐?"라는 뜻으로 예수가 베드로의 인본주의를 시험하여 물어보신 것이다.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줄 당신께서 아십니다"라고 말하자, 예수께서 " 내 양들을 먹이라"고 말씀하셨다.(요 21:15~17)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십계명 중 신본주의 계명을 폐기하여 그 자리에 새 계명을 대신 세웠다. 이 새 계명이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인본주의 계명이다. 예수에 의해서 새 계명을 반포하시기 전까지는 인류는 "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신본주의 정신으로 살았다. 그 결과 사람에 대한 인본주의 계명은 우리의 생활에서 뒷전으로 밀려 소홀히 취급되었다. 이런 신본주의 종교를 인본주의 종교로 바꾸기 위해서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예수는 인간보다 신을 먼저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유태인들에게 경고하셨다.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도록 유도하는 사람은 연자맷돌을 목에 매달고 스스로 바다에 빠져서 죽는 것이 낫다고 하셨다. 여기서 작은 것이란 율법 중에 '작은 계명'이라는 둘째 계명이다. 이 말은 지금까지 둘째로 홀대한 이웃에 대한 인본주의 계명이다. 구약시대에 모세를 통해서 유태인들에게 이교도의 자식까지 모조리 신의 이름으로 죽이도록 명령한 계명(율법)이 바로 신본주의 계명이다.

    이 신본주의 계명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를 더하기 위해서 한시적으로 유태인들에게 허락된 모세의 계명이었다. 신본주의 계명의 입법자인 예수가 자신이 만든 신본주의 계명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거나 사도시대에는 또 다른 예수, 또 다른 복음, 수구화(율법·십계명·신본주의로의 회귀), 오늘날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극단주의, 원리주의, 근본주의의 폐해가 유태교의 정경에 있는 신본주의 계명을 받아들인 데서 비롯된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 기독교의 목사·신학자들은 자신들의 비리와 타락을 마녀 사냥·이단 논쟁으로 교회개혁의 초점을 흐려 놓고, 교회개혁자들 역시 동일한 이단 논쟁으로 더 많은 분열과 미움으로 형제사이에 치명적인 상처만을 남겼던 종교개혁자들의 내면에 있었던 사상이 신본주의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남을 이단시하는 자들의 주요 사상은 신본주의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이 신본주의야말로 가장 경계해야할 이단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과연 새 계명을 역설한 사랑의 사도의 이단 논쟁이 오늘날의 이단 논쟁과 동일한가? 결코 아니다.

    주 예수나 사도 요한은 오늘날의 교회개혁자들처럼 신본주의자가 아니라, 인본주의자였기에 신본주의자(바리새파·영지주의자)들로부터 적반하장의 공격을 받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 40일 동안 광야에서 사탄으로부터의 예수의 시험도 인간 예수의 내면에 있는 신본주의 사용 여부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동안 종교개혁자들이나 오늘날의 교회개혁자들에게는 충격이 될 것이다.

    "네가 신의 아들이거든 해보아라"

    이런 신본주의 시험에서 예수께서 경배하고 섬기라는 신은 예수의 아버지 곧 인본주의 신이다. 즉 자유·평등·박애의 민주주의 신이다. 사탄의 시험을 인본주의로 이기신 예수께서는 신보다 사람을 먼저 사랑하는 인본주의 종교 제도와 사랑의 조직을 만들었다.

    이런 내용이 에베소서 4장 15절과 산상수훈이다. 사도 바울은 "사랑 안에서" 진리라는 교리를 말하고 있으며, 예수의 산상수훈에는 신을 먼저 사랑하라는 내용이 한 구절도 없다. 예수의 새 계명과 사도 바울의 사랑 안에서의 진리가 무엇인지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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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비쿼터스는 교회 성장의 핵폭탄’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 함께
    류남주 기자 edinburgh@googood.com

    목회자 안동영씨의 하루는 PDA의 전원을 켜며 시작된다. 매일 아침 스케줄 표를 보며 설교내용을 검토하고, 심방 갈 성도의 집 위치도 미리 검색해 저장시켜 놓는다. 또한 이동 중에는 PDA를 이용해 메일을 체크하거나, 뉴스를 듣는 등 그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자유롭게 이용한다.

    안동영 목사의 경우처럼 유비쿼터스 환경은 우리가 매일 옷을 입듯 이미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을 처음 접했던 소극적인 태도와 같이 ‘유비쿼터스’ 혹은 ‘유비쿼터스 환경’이라는 말에 일단 거부감부터 나타내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학자들은 만약 이러한 현실이 계속된다면 ‘한국교회가 또 다른 퇴보를 맞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학자들은 과거 인터넷 발달이 한국교회에 ‘사이버 선교’라는 새로운 장을 열었듯, 유비쿼터스도 한국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는 새로운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한세대학교 안종배 교수는 “유비쿼터스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로운 창조의 기회를 주신 ‘에덴으로의 회귀’와 같다”며 “유비쿼터스를 바탕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희대학교 권오병 교수도 “유비쿼터스는 매순간 선교적 삶을 살기 원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심을 느끼게 하는 모티브”라며 “인터넷이 선교적 삶에 있어 수류탄과 같은 파급효과를 보였다면, 유비쿼터스는 핵폭탄과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비쿼터스는 ‘에덴으로의 회귀’

    ‘유비쿼터스’는 물이나 공기처럼 시공을 초월해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뜻의 라틴어이다. 오늘날에는 사용자가 컴퓨터나 네트워크를 의식하지 않고, 장소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컴퓨터환경을 말한다.

    한세대학교 안종배 교수는 “유비쿼터스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인간의 욕구를 언제 어디서나 실현할 수 있는 ‘에덴으로의 회귀’”라며 “조물주가 우리에게 새로운 창조의 기회를 부여한 것과 다름없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인간과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끼리도 보이지 않은 네트워크를 구성해 상호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사회가 곧 유비쿼터스 사회”라며 “유비쿼터스의 특징을 교회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안 교수는 유비쿼터스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상호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교회에 접목시켜 설명했다.

    그는 “많은 교회와 기독교관련 미디어들이 경쟁적인 컨텐츠만을 생산해낸다면 서로의 에너지만을 더욱 소모할 뿐”이라며 “교회의 에큐메니칼운동을 통해 양질의 교회 컨텐츠를 생산한 다음,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체제로 전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안 교수는 “유비쿼터스는 로마서 5장 19절 말씀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와 같다”며 “선이 선을 이루듯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많은 크리스천들이 건전한 기독교 문화를 세상에 널리 전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비쿼터스로 ‘선교적 삶’ 넓혀 갈 수 있어

    경희대학교 권오병 교수는 “유비쿼터스는 교회 내에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교회 밖에서 더욱 그 진가를 발휘한다”며 “성도들의 영성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교회의 기능’을 지원해줄 수 있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유비쿼터스의 특징 중 하나인 ‘언제 어디서나’가 매순간 선교적 삶을 살기 원하는 성도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며 “성도들이 몸담고 있는 가정 혹은 직장 등에서 교회공동체가 바로 곁에 있듯이 느끼게 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권 교수는 “유비쿼터스로 인해 많은 크리스천들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며 “유비쿼터스를 통해 셀 모임을 구성하거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등 성도들간 아름다운 교제의 장을 이어갈 수 있게 해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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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는 사랑할 의무밖에 없습니다
    평양 봉수교회 진위 논란을 보면서
    박예영(gjswi)

    조심스럽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신이 아닌 창조주의 피조물인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기뻐하시는 그 분의 자녀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 분의 딸이며 제자이며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죽을 때까지 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지만 알고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 최선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내게 명하신 그것,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2, 13).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그 '사랑'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임을 우리는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우리를 흥분시키고 떨리게 만드는 그 '십자가 사랑'의 사건은 우리를 전율케 하고 숙연해지게 합니다. 그런데 그 주님이 우리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라고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너희도 사랑하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 진정한 사랑은
    최근 북한의 봉수교회가 가짜라는 것에 대한 내용은 삽시간에 한국의 전역을 휩쓸며 장내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럼 나는 내게도 묻고 싶고 내 주변에 있는 이들 누구에게나 묻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가짜를 처음 보았느냐고. 이 세상엔 가짜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 가짜라는 것이 들어앉은 자리는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습니다. 그 자리를 만들어준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요, 나의 죄악, 우리의 죄악이 만든 자리일 뿐입니다.

    1000만 명이 넘는 기독교인이 있다는 한국도 허다한 가짜로 인해 수습이 안 되고 있는 이 마당에, 종교의 자유도 인권의 자유도 없는 북한의 교회가 가짜인 것에 대해 우리는 떠들고 있습니다. 마치도 오랜 시간을 굶어 자식이 동물로 보여 먹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당신 제 정신이야, 어떻게 그런 짓(살인죄)을 할 수 있어' 하고 질책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상황만 다를 뿐입니다.

    봉수교회는 가짜일 수밖에 없습니다. 독재주의가 오랜 세월 집권해온 나라에서 기독교를 청산한 시기가 언젠데, 그것을 지금에 와서 정정당당하게 인정한다면 오히려 그게 더 웃길 일이 아닐까요.

    300만 명이라는 내 부모 같고 내 자식 같은 이들이 그 속에서 굶어죽은 것은 우리의 죄악입니다. 북한당국과 김정일을 욕하기 전에, 인간의 욕심으로 잉태한 6.25 전쟁의 동기부터 돌아가 우리는 동일시하는 마음으로 회개해야 하며, 신사참배 사건으로 돌아가 마음을 찢고 회개해도 모자랄 판국입니다.

    마귀, 사탄에게 자리를 내어준 것은 우리의 죄악입니다. 동일시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리에 서려고 하지 않는가 자문해봅니다.

    2. 우리의 몫
    우리의 몫은 주님이 부탁하신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를 실천하는 것 외에 더 다른 자격이 없지 않을까요.

    봉수교회, 칠골교회는 그 내막이 어떻게 되었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우리가 믿고 신뢰하는 것은 주님의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에서 선포되어지는 말씀과 찬양을 통해 운행하시고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당신의 자녀들을 만나주시려는) 만지심입니다. 우리의 몫은 그 성령님의 역사를 믿고 기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감히 우리가 옳으니 틀리니 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제대로 살고 있다고 함부로 양심에 파편 맞은 사람들마냥 떠들수 있단 말인가요. 더더욱 가슴 아픈 것은 그 당국에 있는 사람이든 백성이든, 모두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영혼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들만 빼놓고 북한의 백성들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지금도 그들이 주님을 믿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한다면 품에 안아주시는 것이 우리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이데올로기와 체제가 빚어낸 북한의 오늘의 결과는, 모두 마귀와 어둠의 영에 붙들려 이용 당한 불쌍한 우리와 똑같은 구원받을 권리가 있고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제발 우리 이웃을 미워하지 맙시다. 우리 눈을 혈과 육에 초점 두지 말고 그 사회와 당국을 잡고 있는 정사와 권세들에게 두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들은 꼭 그것을 사탄, 마귀의 조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눈꼽치만큼 아는 성경이지만 말하고 싶습니다. 성경을 잘 아는 대한민국이 저지르고 있는 현재의 이 어마어마한 죄악의 홍수는 그럼 뭐냐고? 그럼 하나님을 알고 사랑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품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마당에 그럼 하나님의 '하' 자도 못들어 보는 북한의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한가요.

    내가 북한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해봅니다. 내가 북한당국의 자녀로 태어났다고 생각해봅니다. 보는 것이 제한되어 있고 받아온 체제의 문화의 틀에서 우리가 과연 지금 여기서 쉽게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똑똑한' 발언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나요?

    하나님이 없는 나라는 어둠의 지배 밑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어둠의 지배 밑에 있는 곳으로 가서 우리는 복음의 씨를 심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닌가요.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 주님이 심심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할 말이 없으셔서...

    우리는 마음을 모아 그 땅에 남아 있는 그루터기들을 위해, 그리고 사방으로 흘러들어가는 복음의 건강한 전달과 그 통로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할 의무만 있습니다. 감정 대 감정으로, 나의 관점과 사상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모든 것을 이김을 알고 있는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진리로, 생명으로 어둠을 제압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려드려야 할 것입니다.

    나나 그 나라 당국자들이나 백성들이나 할것없이 똑같은 피조물이고, 똑같이 죄를 짓고 있는 죄성을 가진 인간이며, 하나님 앞에 나는 100% 청결하다, 나는 부끄럼없다고 감히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분 앞에서 우리는 똑같은 죄인입니다. 같은 죄인이 누구를 힐문하고 질책하겠습니까. 질책하고 징벌하고 축복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3. 분별력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강구해야 함을 또 깨달아야만 합니다. 북한당국의 정책과 전략이 어떻게 되었든, 사랑은 무조건 퍼주는 주님의 사랑이지만 어떤 방법과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기도하면서 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좋은 생각, 좋은 방안도 좋지만, 첫째도 둘째도 중요한 것은 기도함으로 그 분의 지혜를 얻어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분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와 마음을 드릴 수 있지 않은가요?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우리와 아버지는 교통할 수 있고, 그래서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셨고, 그분은 오늘날도 동일하게 쉬지 않고 우리를 위해 우리 곁에서 도우시고 일하십니다.

    오늘날 성령님의 인도하심 없이 내 마음대로 내 멋대로 움직이고 사고하는 크리스천이 혹시 있는지요? 크리스천의 눈은 하나님이 마음이 있는 곳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100퍼센트 적중하게 맞출 수는 없겠지만 내가 간구함으로 내 마음과 영을 다하여 기도하면 그분은 가르쳐주심을 저는 확신합니다.

    지금은 기도해야 할 때, 울며 마음을 찢고 찢어도 모자랄 만큼 황폐화된 시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나라에 소망이 있음을 확실히 믿는 성도입니다. 너무나도 귀한 하나님이 종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귀하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내 것을 조금만 포기하고 양보하고, 주님의 사랑이 깊이 들어가서 나의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을 때 내가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 그 위대한 능력의 에너지를 경험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것은 결코 언젠가는 바닥이 나게 되어 있고 한탄할 일만 있지만, 내 힘이 아닌 정말 하나님이 하도록 내어드릴 때 그분은 역사하시고 그 힘은 무한대로 솟아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해야만 하고 사랑해야만 하고 품어주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북한이든, 그 어느 나라든 말입니다. 그 어떤 사람이 말도 안 되는 망발을 하더라도, 그리고 나를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사랑해야만 합니다. 왜? 주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나는 사랑할 의무밖에 없습니다.

    4. 사랑의 실천
    사도 바울이 말한 사랑이 내 삶에 바닥에 깔려있지 않다면, 그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된 것일 것입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
    사랑은 가실 줄을 모릅니다. 말씀을 받아 전하는 특권도 사라지고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도 끊어지고 지식도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도 불완전하고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도 불완전하지만 완전한 것이 오면 불완전한 것은 사라집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이의 말을 하고 어린이의 생각을 하고 어린이의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의 것들을 버렸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 뿐이지만 그 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공동번역: 고전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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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도 세상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세울 수 있다
    아무개 목사가 없으면 안 될 것처럼 두려워한다면, 믿음 없음을 보여주는 것
    김형희(amuna2003)

    세상 권세를 부여 받은 사단은 세상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세울 수가 있습니다. (말세에는 예수님처럼 광명한 천사로 위장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현혹하여 참된 교회와 거짓교회의 분별이 인간의 능력으로는 알 수 없는 처지가 된다.) 하느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하는 신앙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큰 교회를 이제껏 세워 왔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 줍니다.

    역사라는 단어 앞에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휼륭한 교회들은 언제나 불의로 가득찬 거짓 교회로 판명나지요. 콘스탄틴 대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큰 교회를 처음으로 세웠습니다. 그 때부터 기독교인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서 그 나라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교인이 되기 시작한 순간부터 믿음의 능력을 자랑하고 보여주는 뜻에서 세상에서 제일 큰 교회를 세우기 위한 열띤 각축전이 벌어졌습니다. 하느님의 전적인 도우심이 있었기에 이런 커다란 교회를 세웠다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멋지고 훌륭한 교회들이 종국에는 결국 악마의 교회였음이 종교개혁가들에 의해 드러납니다. 예수님 대신 교회 건물을 신성시하는 순간, 그런 거대한 교회에 모여 들어가 수만금을 투자하여 이룩해낸 교회, 내가 쏟아 부은 헌금이 들어가고 내 땀과 눈물이 들어간 교회, 거대하고 멋지고 훌륭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세우는데 내 힘이 보태졌구나 하는 생각으로 두 눈을 들어 쳐다보는 순간, 악마가 마음 속에 들어와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멋지게 찬양하고 기도하고 설교하는 하모니를 쳐다보면서 배설물만도 못한 죄인 중의 괴수라는 사실은 알지도 못한 채 나는 하느님을 위해 큰일을 해내었구나 하는 자부심이 들어차는 것입니다. 수천억 원을 들여 세운 교회가 가장 악마적인 속성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교회라는 건물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교회란 내것 네것이 따로 없는, 오직 주님만이 세우신 것을 인정하려면, 대형교회라느니 소형교회라느니 하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이 세운 교회는 하나입니다. 결단코 나누어지지 아니했으며, 큰 교회가 있고 작은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교회일망정, 그 속에는 수많은 가라지가 있을 수 있으며, 작은 교회라 한들 대다수가 주님이 세운 참된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형교회라는 것이 있을 수 없으며 작은 교회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교회는 왜 악마적 기질과 속성이 자연발생적으로 넘쳐나는 위험한 것인지, 지난 교회의 역사가 증명해 줍니다.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없는 교인들로 이루어진 혼란스런 체계, 누가 가라지인지 참된 것인지 분별할 수 없는 복잡한 시스템, 세상 권세의 직분과 맘몬의 양에 따라 능력을 인정해줄 수밖에 없는 검증 없는 시스템, 따라서 거짓 선지자나 거짓 신앙인들을 교회에서 내쫓을 수도 없는 교회, 거짓과 참이 어우러져 잡탕밥이 되는 인간들의 사교잔치장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요즘 이런 대형교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사실 대형교회 유명 목사의 일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그들의 일이 사건화되어 내가 즐겨 찾아가는 곳에서 논란이 벌어지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소경 삯꾼 목사들에 의해 소경이 되어 아무것도 모른 채 목사의 지시에 따라 자유 없는 꼭두각시처럼 행동하는 교인들이 눈앞에 보이기에 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유명 대형교회 목사가 우상화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 원인은 바로 교인들의 행동 때문입니다. 하나같이 모 목사가 없으면 교회가 문을 닫기라도 하는지 무너지기라도 하는지 산산히 조각나기라도 하는지, 하는 염려 속에 목사를 부여잡는 모습이 결단코 예수님을 의지하지 못하는 것이며, 믿음 없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세우신 교회라면 바울이 사라져도 끄덕없으며 베드로가 죽어버려도 미동도 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인간을 선택하여 교회를 세워가시는 예수님에 의해 언제나 똑같은 복음만을 외치는 교회를 유지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대형교회 교인들이 참된 교인들이라면, 문제가 된 목사가 있든지 없든지 "우리는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지요! 라는 고백을 하여야 하는데, 전혀 믿음 없는 행동들을 거의 대부분 교인들이 하고 있습니다.

    유명 모 목사 외에는 그 교회에는 주님이 세우신 목사가 없는 것처럼, 모 목사와 똑같은 장성한 신앙인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처럼, 주님이 세운 현명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없는 것처럼 믿음 없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같이 믿음 없는 교인들의 행동에 대해 질책을 가하는 것입니다.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배운 것도 아니요,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도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을 모르느냐. 예수님의 계시 외에 다른 모든 것은 다른 복음이며 저주를 받을 것이다. 언제까지 목사의 젖을 먹으며 무능력한 신앙생활을 하려느냐"(갈라디아서 1:6-12)라는 말로 갈라디아 교회에 질책을 가한 바울의 심정으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그것 때문에 할 말을 하는 것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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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직자는 연금술사가 아니다
    개혁 기독교 만들기(6) 포도 없이 포도주 만들기
    조영해(y-post21)

    흔히 연금술사를 화학적 방식을 통해 금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과학자 내지는 마법사라고 알고 있다. 과학자라고 부르는 것은 그래도 양호한 칭호다. 사실 '연금술사', 그러면 요술을 부리는 요상한 마법사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중세의 종교적 도그마에서는 인간의 힘으로 금을 만들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악마 내지는 마녀가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생명공학의 신기원을 이룬 황우석 박사가, 모르긴 몰라도 중세라면 분명 연금술사 또는 마법사라는 불명예를 안고 숨어 다녀야 했을 것이다.

    이성과 과학이 하나님을 불경(?)하게 만드는 것으로 취급당하는 분위기에서 금의 성분을 연구하고 분석하려는 지적 호기심을 가진 연금술사들이 정상적인 대우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불명예를 안고도 연금술사들을 왜 그토록 금을 만들려고 노력했을까? 아니 금을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 금의 성분과 금의 생성과정을 연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금을 만들기 위해선 금의 성분과 그 생성과정부터 연구하는 게 순서가 맞을 것이다. 과학의 발전은 바로 이러한 오명과 불명예를 감당하는 자들의 노력에 의해서 오늘까지 발전했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럼 과연 인간의 노력으로 금을 만들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금의 원소기호를 분석하고 금이 생성되는 과정을 동일하게 재현하면 금을 생산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성되는 과정이다. 온도, 환경 등등의 조건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딱 맞아 떨어져야만 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불가능한 것이다. 생성과정을 현대의 과학으로는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먼 미래에는 가능할까? 알 수 없다고 답하는 게 정답일 것이다.

    이렇게 주어진 원소기호를 가지고 화학적 혼합을 해도 환경과 시간 등등의 조건으로 인해 불가능한데, 그러한 기본적인 재료도 없이 무엇을 단시간에 만들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것도 과학자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연금술사?

    지금부터 그를 만나러 성서의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가나의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모자라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에게 어머니가 포도주가 없다고 말하자 예수는 포도주가 없는 것 하고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예수가 무엇을 시키든지 그대로 순종하라고 일러준다. 예수는 잠시 후 하인들에게 유대인의 결례(손님들을 위해 준비해 놓는 손과 발을 씻는 물을 담아놓은 항아리)를 따라 준비해둔 여섯 개의 돌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명한다. 그리고 그것을 떠서 연회장에 갖다 주라고 한다. 그리고 그 물로 된 포도주를 마신 손님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좋은 포도주는 먼저 가져오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는 낮은 포도주를 가져오는 게 상식인데 참 좋은 포도주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 요한복음2:1-11.

    본문 내용을 보면 예수가 한 일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명한 것뿐이다. 물만 가지고 최상의 포도주를 만들었다? 황당하지 않은가?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마법사라면 예수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 어떤 화학적 원소기호를 혼합을 한다고 해도 물만 가지고 포도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지, 말한다면 그럼 하나님의 아들이니 십자가의 고통은 더더욱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었겠네, 라고 응대한다면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예수의 신성이 설명하는데 유리하면 신성을 강조하고, 인성이 설명하는데 유리하면 인성을 더 강조하는 식으로 얼마나 많은 의문과 물음들을 대충대충 요리조리 피하면서 넘어갔는가. 이젠 그러지 말자. 예수의 신성과 인성은 우리의 능력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임을 솔직하게 전제하고 시작해야 한다. 요즘 청년들이 성직자들보다 더 많은 정보와 논리를 가지고 있다. 괜히 무리하게 설명하려다가 오히려 모순에 빠져 청년들에게 망신(?)당하지 말고 말이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도대체 요한 기자는 예수의 공생애의 많은 사건 중에 유독 가나의 혼인잔치를 기록했을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여기서 필자가 하인들의 모습을 통해서 오늘날 성직자의 모습을 봤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주일마다 대형교회 작은교회 구분 없이 많은 성도들이 영적인 양식을 먹으러 간다. 그럼 성직자는 그 성도들을 위해서 질 좋은 영적 포도주를 아낌없이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포도주는커녕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물 한 잔도 먹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성도들의 입이 까탈스러워서 아무리 질 좋은 영적 포도주를 내놓아도 먹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성직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잔치 집에 갔는데 음식 맛이 없어 굶고 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것은 영적 양식이 필요한 성도들이 까탈스러운 것이 아니라 성직자들이 성도들의 영적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육적 양식은 어디서나 어떻게든 먹는다. 문제는 영적 양식이다. 영적 양식을 먹고 싶어 하는 성도들에게 자꾸 육적인 양식을 내놓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주일마다 성도들에게 내놓은 영적 말씀이 과연 주님이 물항아리에 물만 담아서 그냥 갖다 주어라고 하인들에게 명하신 그 물항아리가 맞느냐 하는 것이다. 그 물항아리 그대로 불순물을 섞지 않은 그 자체로 가져와서 성도들에게 주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맹물이라서 자기만의 기술로 포도주를 만들어보겠다는 만용(?)으로 불순물을 첨가해서 성도들에게, 잔치에 온 손님들에게 가져다주지는 않았는지 자문해보기를 바란다.

    성직자는 과학자가 아니다. 성직자는 연금술사가 아니다. 어느 누구도 성직자에게 과도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인에게 손님이 맹물을 가져왔다고 화를 내지 않는다. 주인에게 화를 낸다. 그런데 오늘날 성직자는 스스로 부담감 때문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착각 때문인지 주님의 영적 말씀에 불순물(?)을 첨가하려고 무진 노력을 하는 것 같다. 항아리 물이 맹물이든 검은 물이든 주님이 심부름한 것이면 그것을 그대로 전달하면 된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보려고 연금술사가 되어 인위적으로 영적 양식을 만들어 보려고 온갖 인공적인 방법을 동원하니 오늘날 기독교가 영적 파워가 없어지고 인간적인 냄새만 풍기는 곳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주님이 명하신 물항아리를 놓아둔 채 대형할인매장에 가서 질 좋은 포도주를 인위적으로 구입해서 주님이 주신 물항아리의 물 대신 성직자 자신의 이름으로 영적 포도주를 나누어 주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 연금술사가 되어 포도주를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또는 질 좋은 포도주를 돈으로 구입하려고 뛰어다니는 이런 부질없는 짓을 하는 동안 손님들은, 성도들은 매번 영적 양식을 먹지 못하고 헛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위적인 색소를 첨가한 기술적인 포도주를 먹고 싶어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다. 성직자의 웅변을 듣고 싶어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다. 성직자의 멋진 설교를 듣고 싶어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다. 멋지고 웅장한 성전을 구경하러 교회 가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가는 것은 주님의 영적인 포도주를 먹고 싶어 가는 것이다. 불순물이 첨가된 육적인 입맛에 딱 맞는 것은 교회 말고도 언제든지 먹고 마실 수 있는 것들이다. 성도들이 먹고 싶어 하는 것은 물만으로 만들어진 주님의 그 영적 포도주다.

    성직자는 연금술사가 아니다. 스스로 만들 수 없는 것을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하인은 주님이 명하신 항아리의 물을 떠서 손님들에게 갖다 주는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인이 그 심부름을 망각하고 스스로 주님이 되려고 하는 만용 내지는 객기로 인해 오늘날 기독교가 비판과 비난을 받는 것이다. 그 부질없는 짓을 하려면 돈이 든다. 그 돈은 결국 또 부정과 비리로 연결된다. 하인이 항아리 물만 잘 전달하면 되지 그 무엇이 더 필요한가? 명예, 부귀영화, 권력, 이런 게 필요하면 성직자의 길을 포기해야 한다. 성직자는 주님의 충실한 하인이 되고자 결단한 자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하인의 역할만 충실하게 하면 된다.

    하인은 주님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주님이 주신 물이 맹물이라서 걱정하는 것은 하인의 몫이 아니다. 하인은 주님이 아니다. 성직자는 주님이 명하신 항아리의 물을 그 자체로 불순물 첨가하지 말고 손님들에게 성도들에게 주기만 하면 된다. 그 이후의 문제는 주님의 몫이다. 주님의 몫을 하인인 성직자가 고민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제발 부탁이다. 성직자는 항아리의 물만 잘 떠서 손님들에게 무사히 전해만 주시길 바란다. 괜히 맹물이라서 혹시라도 손님들이 화를 내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연금술사가 되어서 포도주를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보려고 덤비지 말기를 바란다.

    맹물이 포도주 되기 위해선 연금술사 같은 성직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충실한 하인 같은 성직자가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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