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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시대의 설교와 교회 세우기 설교 어떻게할것인가
    2015-12-15 22:37:21   read : 2960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사도시대의 설교와 교회 세우기

    1. 서론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전이다. 그래서 사도행전에는 전반적으로 사도들의 활동 (활약)이 묘사된다. 물론 사도행전에서 가장 크게 부각되는 인물은 사도 바울이다 (행 9장과 13장-28장). 사도들의 활동은 주로 섬김, 치병, 설교로 구성된다. 그 가운데서 설교 (연설)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의 설교는 상당한 양을 차지한다.

    이렇게 볼 때 사도행전은 설교자의 행전 (Acts of Preachers)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교회가 견고하게 서게 된 배후에는 사도들의 설교가 중대한 역할이 있다. 사실상 사도행전에는 사도들의 설교 뿐 아니라 다음과 같이 다른 인물들의 설교들도 들어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설교 (행 1:4-5,7-8)
    천사들의 설교 (행 1:11)
    가말리엘의 연설 (행 5:35-39)
    갈리오의 연설 (행 18:14-15)
    데메드리오의 연설 (행 19:25-27)
    에베소 서기장의 연설 (행 19:35-40)
    아가보의 설교 (행 21:11)
    유대인들의 연설 (행 21:28)
    더둘로의 연설 (24:2-8)
    베스도의 연설 (25:14-21,24-27)

    이것은 사도행전이 설교 (연설)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누가가 사도행전에 사도들의 설교를 기록한 것은 역사적인 신빙성을 가지고 있다. 초대교회에서는 사도들의 설교가 잘 알려졌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의 설교는 교회 뿐 만 아니라 심지어 대적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다.

    교회는 바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 (살전 2:13). 또한 바울의 대적자들은 그의 말이 시원치 않다고 지적하였다 (고후 10:10). 틀림없이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설교를 잘 보존하였을 것이다. 초대교회에 의하여 사도들의 설교가 보존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교회에 유익하고 대적자들에게 대답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2. 사도들의 설교의 분류

    사도들의 설교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종류를 가진다.

    선교설교 (행 2:14-41; 3:11-26; 4:8-12; 5:29-33; 10:34-43; 13:16-41),
    교회설교 (행 1:16-25; 6:2-4; 11:5-17; 15:6-11,13-21; 20:16-35; 21:20-25),
    논쟁설교 (행 14:14-18; 17:22-31; 28:17-20; 28:25-28),
    변증설교 (행 7:2-53; 22:1-21; 23:1-6; 24:10-21; 26:2-23)이다.

    교회설교 (Gemeindereden)에서 대표적인 설교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지고 있다.

    베드로의 설교: 사도보충 (행 1:16-25)
    열두 사도의 설교: 일군선정 (행 6:2-4)
    베드로의 설교: 할례당 (행 11:5-17)
    베드로의 설교: 사도회의 (행 15:7-11)
    야고보의 설교: 사도회의 (행 15:13-21)
    바울의 설교: 에베소 장로 (행 20:18-35)
    야고보의 설교: 예루살렘 교회 (행 21:20-25)

    교회설교에서 설교자들은 주로 베드로, 야고보, 바울, 그리고 열두 사도들이다. 교회설교는 지역적으로 살펴보자면 예루살렘 교회설교와 선교지 교회설교로 나누어볼 수 있다.


    1) 예루살렘 교회에서의 설교
    베드로의 설교: 사도보충 (행 1:16-25)
    열두 사도의 설교: 일군선정 (6:2-4)
    베드로의 설교: 할례당 (행 11:5-17)
    베드로의 설교: 사도회의 (행 15:7-11)
    야고보의 설교: 사도회의 (행 15:13-21)
    야고보의 설교: 예루살렘 교회 (행 21:20-25)

    2) 선교지에서의 설교
    바울의 설교: 에베소 장로 (행 20:18-35)


    3. 사도들의 교회설교 사례 분석

    사도행전은 초대교회가 처해 있던 상황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초대교회는 무엇보다도 핍박과 이단이라는 두 가지 극심한 위험에 위협을 당하였다. 초대교회가 이와 같은 위협 앞에서도 견고하게 되었던 것은 바로 사도들의 설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사도행전에 나오는 교회설교가운데 두 가지 대표적인 설교를 분석함으로써 사도들이 설교를 통하여 어떻게 교회를 세웠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1) 베드로의 설교: 사도회의 (행 15:6-11)
    첫째로 살펴볼 것은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의 사도회의에서 행한 설교이다. 우선 이 설교를 분석한 후에 이 설교에 담겨있는 신학을 고찰함으로써 교회의 설립에 준 영향을 생각해보자.

    (1) 분석
    7. 형제들아
    7. 너희는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너희가운데서 택하셨다
    나의 입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도록.
    8.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증거하셨다.
    성령을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주심으로써.

    9.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구분하지 않으셨다
    우리와 그들 사이에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신 후에.
    10. 그러므로 이제 왜 너희가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는 우리 조상들과 우리도 멜 수 없었던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것을 믿는다

    이것은 이방인 구원을 확증하는 설교이다. 이 설교는 "형제들아"라는 부름으로 시작하고, 중간에 "그러므로 이제"라는 말이 사용되어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이 설교는 전반부와 후반부가 다같이 "너희" (7,10)를 주어로 삼으면서도 앞에서는 진술문으로 ("너희는 알고 있다"),

    뒤에서는 의문문으로 ("왜 너희가 시험하느냐") 되어있다는 점에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내용적으로 볼 때 이 설교의 전반부는 교리이며 (7-9), 후반부는 적용이다 (10-11).

    (2) 신학

    A. 교리 (7-9)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의 베드로의 설교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신학 (신론)이 중점을 차지하고 있다. 이 사실은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베드로의 책망에서 드러난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10). 따라서 베드로는 그의 설교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알고 있는 ("너희도 알거니와" 7절) 세 가지 하나님의 일을 진술하였다: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증거, 하나님의 무별.

    A) 하나님의 선택 (7)

    첫째로 베드로는 이방인 구원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선택을 말한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7). 이것은 구원을 위한 선택보다는 구원사역을 위한 선택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선택은 시간적으로 볼 때 "오래 전부터" 이루어진 것이며, 관계적으로 볼 때 "너희가운데서" 되어진 것이며, 내용적으로 볼 때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이방인들의 구원은 베드로의 입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나의 입으로 말미암아").

    여기에서 특히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베드로가 이방인의 사도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베드로의 설교는 구원이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사도행전 신학에서 중요한 내용이다. 예를 들면, 고넬료에게 천사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구원의 역사는 베드로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행 10장). 게다가 이 설교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구원이 말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설교언어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롬 10장).

    B) 하나님의 증거 (8)

    둘째로 베드로는 이방인 구원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증거를 말한다. "하나님이 증거하시고" (8).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으로서 증거하신다. 여기에서 먼저 하나님은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으로 묘사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신다 (살전 2:4 참조).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이 부패하다는 것을 아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이 부패하다는 것을 증거하신다. 인간의 마음이 부패하다는 것을 아시기에 하나님께서 증거하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은 스스로 정결케 될 수 없다는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증거하신다. 하나님의 증거는 구원의 외적 근원 (extra nos)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주심으로써 증거하신다. 하나님의 증거는 성령을 통한 증거이다. "성령을 주어". 이것은 내적 증거이다. 성령의 증거이다. 이것은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신자에게 누구나 주시는 선물이다.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이방인이 구원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증거가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C) 하나님의 무별

    셋째로 베드로는 이방인 구원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무별을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것도 구분하지 않으셨다 (개역: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하나님은 구원에 있어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시지 않는다. 구원에 있어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차별이 없다 (행 10:38; 롬 1:16; 3:22; 롬 10:11-12).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아무것도 구분하지 않은 것은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신 후에" (개역: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되어진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방인이 유대인과 아무런 차별이 없게 된 이유는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이 깨끗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이방인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나서 비로소 그들을 유대인과 차별이 없게 하셨다.

    이방인이 믿음으로 마음이 깨끗하게 되는 것이 유대인과 무차별의 조건이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믿음으로만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신다. 마음이 깨끗하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된다. 믿음은 마음의 청결을 위한 방편이다. 믿음이 없이는 마음이 깨끗하게 될 수 없다. 이것은 믿음의 위력이다.

    B. 적용 (10-11)

    베드로는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설교하면서 적용을 말한다.

    A) 질문 (10)

    첫째로 사도 베드로는 질문한다. "그러므로 이제 왜 너희가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들과 우리도 멜 수 없었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0). 이 설교에서 중요한 것은 위의 교리에 제시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구원사역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하나님을 시험하여".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방해하는 것은 바리새파 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 (행 15:5)이다.

    이것은 "우리 조상들과 우리도 멜 수 없었던 멍에"이다. 율법은 멍에이다. 이것은 율법 자체가 멍에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에게 율법을 지킬 능력이 없기 때문에 멍에라는 의미이다. 문제는 율법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우리 조상들과 우리")에게 있다. 율법이 멍에인 이유는 율법의 본질 때문이 아니라 율법의 대상 때문이다. 율법은 대상의 연약성 때문에 멍에가 된다.

    B) 확신 (11)

    둘째로 사도 베드로는 확신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믿는다" (11). 구원은 주 예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진다. 우리 안에서가 아니라 우리 밖에서. 예수는 주님이시다. 그 분의 은혜 아니고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은혜 구원은 유대인에게도 이방인에게도 모두 해당된다. 구원에 관한 한 사람에게는 차별이 없다.

    2) 바울의 설교: 에베소 장로 (행 20:18-35)

    이것은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 여행을 앞두고 에베소 장로들을 초청하여 행한 유언적인 고별설교이다. 우선 이 설교의 내용을 분석하고, 이어 이 설교의 신학을 정리하자.

    (1) 분석

    에베소 장로들에 대한 설교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정리하고 미래의 일을 예고하면서 교회의 일군들에게 권면을 준다. 이 설교는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먼저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을 증거한다 (18-21). 여기에서 사도 바울의 삶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로 섬긴 것 (19)과 둘째로 증거한 것 (21)이다.

    그 다음에 사도 바울은 "보라 이제 나는" (22), "보라 지금은 내가" (25)이라는 동일한 어투를 두 번 사용하여 예루살렘 여행 (22-24)과 자신의 삶 (25-27)에 관하여 설명한다. 그 후에 사도 바울은 명령형을 사용하여 교회의 일군들을 권면하고 (29-32),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자신의 삶에 관하여 증거한다 (33-35).

    바울의 삶 (18-21)
    1) 서론 (18) 2) 섬김 (19-20) 3) 증거 (21)
    예루살렘 여행 (22-24)
    1) 여행의 불안 (22) 2) 성령의 증거 (23) 3) 바울의 진심 (24)
    바울의 삶 (25-27)

    1) 전파 (25) 2) 깨끗함 (26) 3) 거리낌 없음 (27)
    사역자 권면 (28-32)
    1) 사역자 (28)
    2) 이단 (29-32)
    (1) 생성 (29-30): 들어옴 (29), 일어남 (30)
    (2) 방비 (31-32): 훈계기억 (31), 말씀의탁 (32)

    바울의 삶 (33-35)
    1) 탐심없음 (33)
    2) 노동 (34-35)
    (1) 약자를 도움 (35a) (2) 말씀을 기억 (35b)
    A. 바울의 과거

    사도 바울은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보여주었다. 요약적 설명. "너희는 ... 내가 모든 기간동안 너희와 함께 어떻게 되었는지 안다" (18). 바울의 삶은 두 가지 측면으로 설명된다.

    첫째로 내면성. 이것은 주님을 섬긴 것이다 (19). 사도 바울은 주님을 섬길 때 겸손과 눈물과 시험으로 섬겼다. 사도 바울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였다 (31). 주님에 대한 섬김은 성도를 위한 목회이다 (18: "너희 가운데서", 20: "너희에게", "너희를"). 목회는 두 가지로 표현되었다.

    전파와 교훈이다 (20). 사도 바울은 전파와 교훈을 거리낌없이 행했다. 사도 바울이 전파하고 가르친 것은 "유익한 것들" (20)이었다. 그런데 이 일은 "공중 앞에서나 집에서나" 행해졌다 (20). "공중 앞에서"는 아마도 전체집회를 의미하는 것이며, "집에서"는 가정집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로 외면성. 이것은 복음을 증거한 것이다 (21). 복음 증거의 대상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었다. 사도 바울의 복음증거는 두 가지 내용을 가진다. 하나는 "하나님에게로의 회개" (21a)이며, 하나는 "우리 주 예수께 대한 신앙" (21b)이다. 복음증거에는 회개에 대한 요청과 신앙에 대한 요청이 병행되어야 한다. 회개없는 믿음은 뿌리가 없는 것이며, 믿음없는 회개는 열매가 없는 것이다.

    복음증거에는 하나님에 대한 증거와 예수에 대한 증거가 병행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가르치지만 예수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범신론 (pantheism)이 되며, 예수를 가르치지만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이신론 (deism)이 된다.

    삶에 대한 사도 바울의 솔직한 고백이 교회를 견고하게 세웠다. 그러면 사도 바울의 사역의 핵심은 무엇인가. 사도 바울의 사역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이며 (25),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이다 (27).

    사도 바울의 사역의 자세는 무엇인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6). 이것은 두 가지로 표현되었다. 첫째로 청렴이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3). 둘째로 노동이다. "나의 손이 나의 필요와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섬겼다" (34).

    B. 바울의 미래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어떤 일을 만나게 될지 예상할 수 없다. 단지 성령께서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주셨다 (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여행한다.

    그는 강요당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22). 사도 바울은 이렇게 불안한 여행을 시도하면서 사명감을 망각하지 않았다. 그의 설교에는 사명을 완수하려는 결연한 의지가 표현되어 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4).

    C. 바울의 권면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여행을 앞두고 에베소 장로들에게 설교하면서 사역자와 이단에 대하여 설명한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자신들과 교회를 돌볼 것을 권면한다 (28).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로서 하나님이 자신의 피로 사신 것이다 (28). 에베소 장로들은 감독자들로서 교회를 위하여 일하는 목양자들이다. 따라서 교회는 목양의 대상인 양떼이다 (28,29).

    둘째로 사도 바울은 이단이 등장할 것을 예고하면서 방비를 시킨다 (29-32). 그들은 두 가지 방면에서 생성된다 (29-30). 우선 그들은 교회 밖에서 들어온다 (29). 사도 바울은 이들을 가리켜 흉악한 이리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한다. 또한 이단들은 교회 안에서 ("너희 자신들 중에서도") 일어난다 (30). 이 사람들은 어그러진 것을 말함으로써 제자들을 유인하여 추종하게 한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내외의 이단을 방비시키기 위하여 두 가지 방도를 제시한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삼 년 동안 훈계한 것을 기억시킨다 (31).
    둘째로 사도 바울은 교회를 주님과 말씀에 맡긴다 (32). 주님의 말씀은 교회를 든든히 건설하고, 성도들에게 기업을 제공한다. 사도 바울은 설교의 끝에서 예수의 말씀의 일례를 소개한다 (35).

    (2) 신학
    에베소 장로들에 대한 사도 바울의 설교에는 몇 가지 중요한 요점들이 들어있다.

    A. 삼위일체
    무엇보다도 사도 바울의 설교에는 삼위일체 도식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하나님과 예수가 동등한 위치에서 설명되는 것은 물론이고 (21: "하나님에게로의 회개와 우리 주 예수에 대한 믿음"), 성령이 인격적인 분으로 묘사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23: "증거하다"; 28: "감독자를 삼다").

    A) 하나님
    삼위일체 도식에서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회개하고 돌아가야 할 대상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로의 회개를 증거했다 (21).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귀해야 할 대상이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인생의 소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회개를 위하여 전도에 전력하였다. 이 설교에는 사도 바울의 유언적인 말이 세 가지 나온다.

    (1)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4).

    (2)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25).

    (3) "이는 내가 거리끼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27).
    이 세가지 유언적인 말을 정리하면,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24), 둘째로 하나님의 나라 전파 (25), 셋째로 하나님의 뜻 선포 (27)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였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증거한 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24)이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복음을 주셨다. 복음의 기원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에게서 복음이 나온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기반을 두고 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발로이다. 그러므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있고, 하나님의 은혜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나타난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동안 전한 복음을 요약하면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다"(25)고 말한다.

    사도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에게 속한 나라이다. 이것은 사람의 나라와 다르다 (행 1:6).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요구되는 것은 회개와 신앙이다 (21).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로의 회개와 예수에 대한 신앙이 필요하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으로 선포되는 하나님의 은혜의 나라이다 (24).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다.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나라의 상황이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표현되고 실현되는 나라이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거리끼지 않고 "하나님의 모든 뜻"을 전하였던 것이다 (27).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성품에서 나오는 모든 뜻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며 가장 성실하게 이루어진다. 이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에게 주어지는 "기업"이다 (32).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영원한 기업으로 받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백성은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깨끗한 삶을 산다 (26,33).

    교회는 이런 백성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자신의 피로 사셨다 (28). 그러므로 하나님은 교회의 주인이시다. 이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께 맡겨질 때 가장 안전하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까닭에 자신이 떠난 후에 생성될 이단들 앞에서 교회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하여 "지금 내가 너희를 하나님께 맡긴다" (32)고 말하였던 것이다.

    B) 예수

    사도 바울은 삼위일체 도식에서 예수의 위치를 "주"로 부각시킨다. 사도 바울의 설교에서 예수는 주님으로 묘사된다 이 설교에서 "주"가 네 번 (또는 여섯 번) 사용되었는데 (19,21,24, [28 v.l., 32 v.1.], 35), 그 중에 세 번 분명하게 예수께 적용되었다 (21: "우리 주 예수"; 24: "주 예수"; 35: "주 예수"). 그렇다면 19절의 "주"도 역시 예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자료를 면밀히 검토할 때 사도 바울의 설교에는 다음과 같은 기독론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로 주 예수는 섬김의 대상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의 생활을 요약하면서 (18) 두 가지를 말하는데 그 중에 첫째가 "주를 섬긴 것"이라고 말한다 (19). 여기에 "주"라는 개념이 명확하게 서술된다. 그것은 종의 반대개념이다. 주는 종이 섬겨야 할 분이다. 예수와 바울의 관계에서 예수는 주이며 바울은 종이다. 이 때문에 사도 바울은 여러 서신의 도입부에 자주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예수는 사도 바울과 같이 영적인 면에서 가장 특출난 인물까지도 종이 되어 섬겨야 할 주이시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섬기되 "모든 겸손과 눈물과 시험으로" (19) 섬겼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모든 겸손으로" 섬긴다. 예수는 사도 바울이 자아적인 면에서 자신을 완전히 낮추어 섬겨야 할 분이다. 예수 앞에서 사도 바울은 아무것도 주장할 것이 없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눈물로" 섬긴다. "눈물"은 사도 바울에게 때로 교회를 위한 수고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32: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참조. 고후 2:4).

    예수는 사도 바울이 교회적인 면에서 마음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섬겨야 할 분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시험으로" 섬긴다. 사도 바울은 이 시험이 "유대인들의 간계로 나에게 닥친" (19) 것이라고 덧붙인다. 예수는 사도 바울이 외부적인 시련에도 불구하고 섬겨야 할 분이다. 시련이 닥친다고 해서 예수를 섬기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는 사도 바울이 어떤 상황에서든지 절대적으로 굴복하고 순종해야 할 주이시다.

    둘째로 주 예수는 신앙의 대상이시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증거한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하나님께로의 회개"이며, 하나는 "우리 주 예수에 대한 신앙"이다 (21). 예수는 주이시기에 신앙의 대상이다.

    주 예수는 유대인만 믿거나 헬라인만 믿거나 하는 선택적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예수는 주로서 유대인과 헬라인, 다시 말해서 모든 사람이 믿어야 할 대상이다. 예수는 만민의 신앙의 대상이 되는 주이시다. 오직 주 예수를 믿는 신앙으로만 구원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행 16:31).

    셋째로 주 예수는 사명의 수여자이시다. 사도 바울은 달려갈 길을 마치려고 하는 시간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확인한다. 그의 사명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 (24)이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주 예수께 받은 사명"24)이라고 부른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명 (또는 직분)이 누구에게서 왔는지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다. 사도 바울에게는 사명의 기원이 누구에게 있는지 불확실할 수가 없다.

    그가 인생의 마지막 부분에서조차도 미동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것이 누구에게서 유래하였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의 사명은 출처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 예수에게서" 온 것이다. 이것은 확신의 표현이다. 이 때문에 사도 바울은 여러 서신들에서 이 사실을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주 예수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수여하신다.

    주 예수는 사명의 수여자이시다. 주 예수는 직분의 기원자이시다. 주 예수의 사명으로 사도 바울의 인생은 시작되고 종결된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인생을 결정하였다. 그는 예수로부터 살며, 예수에게로 산다. 따라서 그의 인생은 정결하고 (26) 청렴하며 (33), 열정적이고 (31) 모범적이다 (35).

    넷째로 주 예수는 말씀의 주이시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 대한 설교를 끝맺으면서 예수의 말씀가운데 한 구절을 인용한다: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35). 사도 바울이 인용하는 예수의 말씀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35)는 것인데, 이것은 복음서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설교를 마치면서 예수의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설교의 권위를 확립한다. 바울의 설교의 권위는 예수의 말씀에 근거한다는 사실에 있다. 바울의 설교는 주이신 예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기에 권위가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말씀의 주이심을 천명한다. 주 예수는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말씀하시는 주 예수 앞에서 모든 논쟁과 토론은 정지한다. 연약한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주는 것은 더 이상 사람들의 의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 예수의 요구에 의한 것이다. 예수의 말씀 앞에서 사람의 언어는 침묵한다. 이것이 주 예수의 말씀의 권위이며, 말씀의 주이신 예수의 권위이다. 주 예수는 말씀의 주이시다.

    C) 성령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삼위일체 도식에서 성령의 활동을 설명한다. 무엇보다도 사도 바울은 자신이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는 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은 "성령에 매임을 받아" 가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22). 사도 바울의 예루살렘 여행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타의적인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러한 타의는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주 성령에 의하여 강요된 사역을 하였다. 물론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여행을 계획하였다 (행 19:21,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결심에 매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초자연적인 매임이다. 신적인 필연이 여행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은 사도 바울의 사역을 주관하시며 결정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사도 바울은 비록 예루살렘 여행에서 당할 일은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결박과 환난이 그를 기다린다고 증거하시는 성령의 말씀은 알고 있다.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신다" (23). 이것은 사도시대에 성령께서 사도들의 활동에 관하여 증거하신 직접적인 말씀을 의미한다. 성령은 증거의 영이시다. (우리에게도 이런 성령의 증거가 가능한가).

    사도 바울은 이 설교에서 성령의 활동가운데 대단히 중요한 것을 진술한다. 그것은 교회의 직분을 위한 성령의 활동이다. "성령이 너희를 감독자로 삼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28). 성령이 교회를 목양하는 감독자들을 세우신다. 감독자들은 성령에 의하여 세움을 받는다. 감독자는 자발적으로 되는 것도 아니며,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열두 사도를 보궐하기 위하여 맛디아를 제비뽑아 얻고 (행 1:26), 일곱 일군을 선택한 (행 6:3,5) 사건들에서조차도 사실은 배후에 성령께서 계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된다. 일군을 세우는 것은 사람이 행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직분은 영적인 기원을 가진다. 교회의 직분은 성령께서 세우셨다는 영적인 권위에 기초한다. 성령은 직분의 영이시다.

    B. 교회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 대한 설교에서 삼위일체 도식에 근거하여 교회를 설명하고 있다. 삼위일체의 활동이 가장 잘 표현되는 것이 바로 교회이다. 사도 바울의 설교에는 교회관이 뚜렷하게 엿보인다.

    A) 하나님과 교회

    무엇보다도 사도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 (28)라고 부른다. 교회는 철저하게 하나님께 소속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셨다"고 표현한다 (참조. 고전 6:19f.; 7:22; 벧전 2:9). 이 말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계속해서 책임지시며 소유하시고 보존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교회와 완전하게 관계하시는 이유는 "자기 피로" 사셨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을 최고로 확증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교회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실체인지 드러난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를 값으로 치르고 사신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영광스러운 실체이다. 따라서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양떼로서 (28,29)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32)의 영광을 가진다.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이다.

    B) 예수와 교회

    이렇게 영광스러운 교회에서 예수의 말씀이 선포되고 실천된다. 예수의 말씀이 선포되고 실천될 때 하나님의 교회는 그 영광을 가장 분명하게 뿜어낸다. 예수의 말씀이 교회의 영광을 확증한다. 이 때문에 과거적으로 볼 때 사도 바울은 교회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교육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였던 것이다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고 가르치고"). 사도 바울은 말씀을 가르치기 위하여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였다 (31).

    또한 이 때문에 미래적으로 볼 때 사도 바울은 교회를 "은혜의 말씀에 부탁" (32)하였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은혜의 말씀만이 교회를 힘있게 든든히 건설하고, 교회에 영원한 기업을 수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32). 말씀이 교회를 보존하며 확립한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께서 하신 한 마디의 말씀이라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

    (35: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종이 주인의 말에 의하여 살 듯이 교회는 예수의 말씀에 의하여 산다. 예수의 말씀은 교회의 생명이며 동력이다. 교회의 영광은 예수의 말씀이 선포될 때만 주어진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씀의 신학을 발견한다. 교회는 예수의 선포이다.

    C) 성령과 교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가 예수의 말씀을 받아 그 영광을 뿜어내도록 성령께서는 직분자를 세우신다 (28: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를 감독자로 삼고"). 성령께서는 직분자를 세워 교회를 조직하신다. 성령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조직체가 된다. 성령에 의하여 세움을 받은 말씀의 사역자는 하나님의 양떼를 목양한다 (28).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는 성령께서 세우신 사역자들이 전하는 예수의 말씀으로 목양된다.

    여기에서 사역자들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발견한다. 사역자들은 항상 사역자의 의식을 분명하게 가져야 한다. 자신의 경건을 힘쓰며, 성령의 위임을 깨닫고, 교회의 목양에 전념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해야 한다.

    성령은 말씀의 사역자들을 사용하여 교회에서 일하신다. 이것은 교회를 위하여 말씀의 사역자들로 말미암아 이루시는 성령의 성육신이다. 성령은 말씀의 사역자들을 통하여 교회에 성육신하신다. 바로 여기에 교회의 신비와 영광이 있다. 교회는 성령의 적응이다.

    4. 결론

    사도행전에 의하면 초대교회에는 다양한 설교가 있었다. 외향적으로는 선교설교와 논쟁설교와 변증설교가 있었고, 내향적으로는 교회설교가 있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이방인 교회에서도 교회설교를 행하였다. 사도들의 교회설교는 교회를 바로 세우는 일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교회설교가 교회를 바로 세우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1) 상황을 고려한 설교

    첫째로 사도들의 교회설교는 상황을 고려한 설교였다. 사도들은 교회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설교를 하였다. 사도들의 설교는 교회현장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설교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사도들은 일군을 선출하는 일과 관련하여 (행 1:16-25; 6:2-4), 이방인 구원 문제를 해결하는 일과 관련하여 (11:5-17; 15:6-11,13-21), 이단을 방지하는 일과 관련하여 (행 20:16-35) 설교를 하였다.

    사도들의 교회설교는 교회의 현실적인 문제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것은 청중이 관심을 북돋아 들을 수밖에 없는 설교였다. 초대교회는 이런 사도들의 교회설교의 도움을 받아 당시에 직면했던 다양한 문제를 정리하고 견고해졌다. 현실을 고려한 설교가 교회를 바로 세웠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설교는 반드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설교자가 교회의 현실에 관한 정확한 분석을 기초로 하여 설교할 때 교회는 문제를 해결하고 견실하게 세워진다.

    2) 논리가 있는 설교

    둘째로 사도들의 교회설교는 논리가 있는 설교였다. 사도들은 논리적인 짜임새를 가지고 설교를 하였다. 교회설교의 논리는 무엇보다도 잘 갖추어진 구조에 기반을 두었다. 예를 들면, 이런 점은 설교의 구조를 교리와 적용으로 구분하거나 (베드로의 예루살렘 사도회의 설교), 실천과 권면으로 조합하는 것에서 (에베소 장로에 대한 바울의 설교)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이런 구조는 문단을 구분하는 어법에서 분명하게 발견된다. 사도들은 문법와 변화와 어투의 반복과 같은 방식을 사용하여 단락을 구분지었다. 더 나아가서 사도들은 논리적인 설교를 하기 위하여 다양한 문학적인 기교를 사용하였다. 사도들의 교회설교에서 때로는 주제단어가 열거되기도 하고, 중요단어가 반복되기도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설교에서는 핵심적인 내용이 여러 차례 강조적으로 진술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수사학이 교회설교의 논리를 이끌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초대교회는 이런 논리적인 설교에 의하여 굳게 섰다. 오늘날도 설교는 선명한 논리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때 성도들은 설교에 빨려들어 집중하게 된다. 이런 설교는 교회를 견고하게 세운다.

    3) 신학이 있는 설교

    셋째로 사도들의 설교는 신학이 있는 설교였다. 사도들은 설교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구원에 관하여, 교회에 관하여 언급한다. 사도들의 설교에는 넓고 깊은 신학이 자리잡고 있다. 넓다는 것은 사도들이 신학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의미이며, 깊다는 것은 사도들이 신학의 세밀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사도들의 설교에는 신학이 녹아져 있고, 교리가 깃들어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신학과 교리가 사도들의 설교에서 비타민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교리가 없는 설교는 병든 설교이며, 신학이 없는 설교는 죽은 설교이다. 사도들의 설교는 단순히 당면한 문제해결과 능란한 논리전개로서의 설교가 아니라 신학과 교리의 근본을 깨우치는 설교였다. 이런 설교를 하기 위하여 사도들이 신학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설교는 신앙고백적 (confessional) 설교이며, 이런 설교를 통하여 사도들이 교회에 신학을 가르쳤다는 점에서 그들의 설교는 신앙교육적 (catechetical) 설교이다.

    바로 여기에 초대교회가 핍박과 이단이라는 두 가지 위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된 이유가 있다. 설교자는 끊임없이 신학과 교리를 공부해야 한다. 설교자에게 교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신학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이런 설교자로부터 교회는 신학과 교리를 원동력있는 양분으로 흡수하여 성장한다. 따라서 신학이 녹아져 있고, 교리가 깃들어 있는 설교가 교회를 바로 세운다.

    4) 신앙을 담은 설교

    넷째로 사도들의 설교는 신앙이 담긴 설교였다. 사도들의 설교에는 자신들이 믿는 대상과 내용에 대한 확신이 표현되었다. 그들은 설교 중에 자신들의 인생이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자신들의 사역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자신들의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말한다.

    예를 들면 이런 확신은 사도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행한 설교에서 중요한 단면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행 17:28). 이 한 마디의 말속에 존재와 인생과 활동 모두가 하나님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도 바울의 강한 확신이 충분하게 드러난다.

    사도들의 설교는 하나님께 삶을 바친 자들의 설교이며, 하나님께 생명을 드린 자들의 설교이다. 이것은 뜨거운 설교이며, 열정적인 설교이다. 이것은 불을 뿜는 설교이며, 피를 토하는 설교이다. 이런 설교를 가리켜 영적 설교라고 부를 수 있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영적 설교에 기초하여 든든하게 섰다.

    지금도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영적 설교이다. 영적 설교는 교회에 도전과 충격을 준다.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설교자의 설교, 교회를 위하여 생명을 내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설교자의 설교, 이런 영적 설교는 이 세상에 있는 교회를 견고하게 만들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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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클레시아 신학회, 조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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