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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성교회, 아들 목사 교회와 합병고려,,,/ 신원그룹 박성철 회장 선처’ 탄원
    2015-11-06 10:58:20   read : 4654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청빙위원회, 예장통합 ‘세습방지’ 피해 합병 고려.....

    명성교회, 아들 목사 교회와 합병하나
    news M/미주

    ▲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의 정년을 앞두고 명성교회 담임목사 청빙위원회(이하 청빙위)가 아들인 김하나 목사가 시무중인 새노래명성교회와의 합병을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의 언론에 따르면 명성교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김하나 목사 교회와의 합병과 다른 후임 목사 영입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며 “만일 두 교회가 합병한다면, 11월말, 늦어도 12월 둘째 주까지는 결론이 날 것이다”고 보도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예장통합의 ‘세습방지 규정’으로 인해 김하나 목사가 직접 승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합병'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대해 김삼환 목사는 본인의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경우 자칫 대규모 파장이 예상되기에 (김목사도) 신중을 기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교회세습에 대한 여론 등을 잘 알고 있기에 교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며 “하지만, 다른 교회가 후임 목사를 청빙한 후 법정싸움 등 분규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이다”고 전했다.

    예장통합의 정관상 청빙위에 의해 결정된 후임목사는 공동의회 의결을 통해 후임 당회장으로 정식 취임하게 된다.

    명성교회는 지난 9월 27일 교회 주보를 통해 후임 담임목사 청빙을 위한 청빙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밝혔으며, 청빙위원은 김성태 장로를 위원장으로, 이원희 박용복 장중웅 김영환 곽동한 권효기 장세혁 정철주 이종순 김병호 노병인 정진화 김익희(이상 장로) 고인옥 신정심(이상 권사)씨 등 16인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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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환 목사 퇴임까지 두 달, 명성교회 청빙위는 기도만?

    소문만 무성…하마평 오른 아들 김하나 목사, "아직 확정된 것 없어"
    이용필 기자

    ▲ 김삼환 목사의 퇴임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명성교회는 지난 9월, 후임 목사를 뽑기 위해 청빙위원회를 꾸렸지만, 아직까지 특별한 움직임은 없다. 교회 안팎으로 후임 목사에 대한 소문만 무성해지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는 교단 법에 따라 오는 12월 말 정년 퇴임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은 담임목사의 정년을 만 70세가 되는 당해 연도 말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명성교회는 지난 9월 27일, 청빙위원회(청빙위)를 꾸리고 김삼환 목사 후임 찾기에 들어갔다.

    등록 교인 6만 명이 넘는 초대형 교회의 후임 목사가 누가 될지 사람들의 관심은 높지만, 정작 청빙위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지난 한 달간 매일 새벽에 모여 기도만 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청빙 작업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청빙위는 김성태 수석장로를 포함 장로 17명과 권사 2명으로 이뤄져 있다. 청빙위원은 당회와 각 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뽑았다.

    6~12개월 전에 청빙위를 꾸리고 후임 목사 선정 작업을 하는 다른 교회들의 사례에 비추어 봤을 때, 명성교회 행보는 더딘 편이다. 두 달 만에 청빙 작업을 끝내야 하는 다소 촉박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보통 대형 교회 같은 경우 담임목사가 물러나기 몇 년 전에 후임 목사를 뽑아 같이 사역을 하기도 한다. 몸집이 큰 교회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명성교회 청빙위는 조용하기만 하다.



    ▲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는 올해 12월 말 담임목사직에서 물러난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이런 와중에 교회 안팎으로 후임 목사에 대한 하마평만 무성하다. 특히 김삼환 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새노래명성교회)의 청빙설이 또다시 제기됐다. 현직 신학대 총장을 잠시 세운 다음 김하나 목사로 교체할 것이란 이야기를 비롯해 아예 명성교회와 새노래명성교회의 통합을 거쳐 김하나 목사를 담임목사로 세운다는 설도 있다.

    <뉴스앤조이> 기자는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명성교회 장로들과 김하나 목사 그리고 예장통합 중견 목회자에게 물었다. 이들은 "확정된 것은 없고, 들리는 이야기는 소문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았다.

    11월 1일 일요일 명성교회에서 만난 한 장로는 "소문에 나오는 목사님들을 더하면 10명이 넘는다. 그런 이야기는 전부 바깥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청빙위원에 소속된 장로들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았다. 한 청빙위원은 "두 번 정도 모인 게 전부이고, 구체적으로 논의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빙위원도 아직 말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이 없다면서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평소 명성교회 행보를 지켜봐 왔다는 정성진 목사(거룩한빛광성교회)도 아직까지 확정된 게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정 목사는 11월 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삼환 목사님뿐만 아니라 청빙위원들의 고심이 크다고 들었다. 청빙을 단순히 명성교회 개교회 문제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공교회 문제로 접근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하나 목사 후임설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지난 2013년 예장통합 총회가 세습금지법을 제정하면서 주춤했다. 여기에 김하나 목사가 직접 나서 "세습하지 않겠다", "변칙이나 술수도 없을 것"이라고 밝혀 논란은 가라앉는 듯했다. (관련 기사: 김삼환 목사 아들, "세습 안 한다" / [통합6] 세습금지법 담은 헌법 개정안 통과)

    그러나 김하나 목사는 2014년 3월, 경기도 하남에 새노래명성교회를 개척했다. 명성교회는 교회 건축비 등 재정을 지원하고, 하남 지역에 사는 교인들이 새노래명성교회로 나갈 수 있게 했다. 아버지 교회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김하나 목사는 변칙 세습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관련 기사: 김삼환 목사 아들의 '화려한' 분가)



    ▲ 김삼환 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가 명성교회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 2013년 11월, 장신대 신대원 학우회와 청어람ARMC가 공동 개최한 종교개혁 기념 세미나에서 김하나 목사는 세습을 금지하기로 한 총회 결의를 따르겠다고 말했다. 2014년 3월 8일, 새노래명성교회 창립 예배에서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가 아들 김하나 목사를 껴안고 있는 모습.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또다시 불붙은 명성교회 후임 내정설에 대해 당사자인 김하나 목사는 뭐라고 말할까. 김 목사는 10월 31일 <뉴스앤조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솔직히 나도 아는 게 없어서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다. 남몰래 (청빙) 작전을 짜고 있다는 둥 소설만 무성하다. 지금까지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기자는 세습하지 않겠다고 한 말이 지금도 유효한지 물었으나, 김 목사는 확답하지 않았다.

    "그때 내가 한 말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또다시 확인해 주기는 좀 그렇다. 당시 내가 그렇게 이야기했으니 (한 말을) 지키겠다거나 지키지 않겠다고 하기 어렵다. 최대한 좋은 길을 가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 달라. 이 정도로밖에 말 못하는 점 이해해 달라."

    명성교회 한 장로는, 청빙위는 11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할 예정이라면서 12월이 되기 전에 후임 목사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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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대 전 침례교 총회장, 여교인 성추행, 과다 은퇴 예우로 구설수

    20대 청년부터 60대 권사까지 피해 주장…80세에 은퇴하며 월 500만 원 이상 요구
    최승현 기자

    지난 8월, <머니투데이>가 80대 원로목사의 성추행 의혹을 보도했다. 노목사가 여성 교인들을 끌어안거나 입을 맞추는 등 여러 명을 상대로 성추행을 저질러 왔다는 내용이다. 피해를 당했다는 교인 4명은 올해 7월 그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뉴스앤조이> 확인 결과, 이 목사는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장을 역임한 ㅅ교회 ㅈ 원로목사였다. 그는 80세가 넘었지만 지금까지도 교단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ㅈ 목사는 지난 9월 열린 교단 총회에서도 순서를 맡아 단상에 올랐다. 교단장까지 지낸 80대 원로목사가 성 추문에 휩싸인 전말은 무엇일까.

    피해 교인만 10여 명 주장…이전에도 조카 성폭행 의혹



    ▲ 서울 ㅅ교회는 1971년 ㅈ 목사가 개척해 40년 넘게 목회한 곳이다. 교인들은 교회 규모가 한때 400명을 넘어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는 10월 19일, ㅈ 목사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ㅅ교회 교인 7명을 만났다. 이 중에는 성추행 혐의로 ㅈ 목사를 고소한 교인들도 있었고, 성추행을 당했지만 외부에 알려질까 두려워 고소인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교인들도 있었다. 이들은 ㅈ 목사에게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경찰서에서 진술한 내용을 기자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ㅇ 권사(56세) / 2006년, 한 호텔 식당에서 ㅈ 목사를 만났다. 교회 이야기, 성가대 이야기 등을 나누다가 갑자기 ㅈ 목사가 "지금까지 연애를 한 번도 못 해 봤다"고 했다. 그러더니 나를 꽃에 비유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분위기가 어색해져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가만히 있어"라고 하며 뒤에서 껴안고 입술을 들이댔다. 너무 놀라 울면서 집에 왔는데, ㅈ 목사에게 괜찮은지 묻는 전화가 왔다.

    교회에서 2010년에 22살 여성 솔리스트를 성가대에 초빙했다. 초빙 한 달 후부터 솔리스트가 "ㅈ 목사에게 전화가 자주 온다"며 나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너무 화가 나 ㅈ 목사를 찾아가서 "나에게 한 행동은 죽도록 수치스럽고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손 치고 넘어간다. 그런데 이 아이는 손녀뻘 되는 학생이지 않는가. 솔리스트와 함께 성가대 그만 두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ㅈ 목사가 돈 봉투를 내밀었다. 뿌리치고 나왔다.

    2013년, 성가대 지휘 일로 목양실로 갔다. 도움을 요청할 게 있어 얘기했더니 200만 원을 지원해 주겠다며 전도사에게 차를 대기시키라고 하고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나오려는 문 앞에서 갑자기 끌어안더니 키스를 했다.

    ㅈ 권사(53세) / 올해 3월, 예배 10분 전에 화장실 가려고 내려가다가 ㅈ 목사를 만났다. ㅈ 목사는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있었는데, 갑자기 왼손으로 어깨를 확 잡아당기면서 볼을 확 비볐다. 그러더니 "ㅈ 권사 몸은 괜찮아?"라고 했다. 너무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워서 화장실로 뛰쳐 갔다.

    ㄱ 권사(61세) / 2008년, ㅈ 목사 며느리의 아파트에 물건을 빌리러 갔다. ㅈ 목사와 교회 차에서 함께 내려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데, 갑자기 ㅈ 목사가 자신들 돌려세우더니 가슴으로 꽉 껴안았다.

    ㅇ 집사(59세) / 2011년 1월, 주일예배 후 목양실에서 "ㅇ 집사 애쓰지?"라고 말하며 악수를 하는데,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긁고 음흉하게 쳐다봤다. 같은 해 9월에도 똑같은 형태로 당했고, 그때 이전에 있던 조카 성폭행 사건 생각이 났다. 너무 수치스럽고 당황스러워서 그 주 구역예배 시간에 다른 집사와 상담했다.

    피해자들은 2008년부터 2015년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ㅈ 목사가 성추행을 해 왔다고 말했다. 오래된 일을 이제 와서 공개한 이유를 묻자, 2014년 12월 한 권사가 피해 사실을 공개하면서 그동안 쉬쉬하고 지내던 교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한 것이라고 했다.

    고소한 사람은 4명이지만, 실제로는 피해자가 더 많다고 했다. 당장 확신할 수 있는 건만 합해도 피해자가 10명이고, 전해 듣거나 정황상 파악되는 건 수십 명에 달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기자가 만난 교인들 중에는 성추행을 당했지만, 남편과의 관계 때문에 공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교인들은, 자리에 나오지 못한 한 권사도 성폭행 직전 상황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담임목사실을 빠져나온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역시 피해 사실이 집안에 알려질까 두려워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ㅈ 목사의 성 추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6년, 처조카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조카 A 씨는 30년 전 10대일 때 ㅈ 목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이를 숨겨 오다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과 이혼하게 되면서 가족들에게 30년 만에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이에 A 씨의 가족들은 ㅈ 목사가 시무하던 ㅅ교회 앞에서 시위를 했다. (관련 기사: 모 교단 전직 총회장, 조카 성추행 의혹)

    당시 ㅈ 목사는 "돈 뜯어내려 하는 것이다. 피해자 가족들이 내게 10억 원을 요구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관련 기사: "돈 뜯어내기 위한 술수다") 이후 사건이 어떻게 해결됐는지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ㅅ교회 교인들은 "30년 전 오래된 일이어서 소송으로 가지는 못했다. 당시 ㅈ 목사가 합의금을 주는 선에서 끝낸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기자가 만난 피해 교인들은 "처음에는 (목사님이 조카를 성폭행했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에게 하는 걸 보자 '그 일이 사실이었을 수도 있겠구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교인들은 ㅈ 목사에게 사과를 요구했으나, ㅈ 목사는 혐의를 부인했다고 말했다. 결국 피해자 4명이 지난 7월 ㅈ 목사를 고소했다. 4건 중 2건은 성범죄 친고죄가 폐지되기 전인 2013년 이전 사건이라 시효가 만료됐고, 시효가 남은 나머지 두 건만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교인들은 ㅈ 목사와의 통화 녹음 내역, ㅈ 목사가 특정 교인에게 지속적으로 전화를 걸었던 통화 목록 등을 증거 자료로 제출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양측을 소환 조사했으나, ㅈ 목사와 피해 교인 간 진술 차이가 워낙 커, 12월 초 거짓말 탐지기를 통해 정밀 수사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 ㅈ목사는 성 문제 말고도 교회 재정 문제로 교인들의 항의를 받았다. ㅈ 목사가 80세의 나이로 은퇴하기 직전인 2013년 12월, 그는 각종 상여금을 포함해 1,000만 원이 넘는 사례를 받았다. 교회는 건축 재정에서 5,000만 원을 차입해서 썼는데, 이를 제외하면 교회 재정은 -6,000만 원이 넘게 된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내가 교회에 헌신한 것 계산하니 32억"…매달 500만 원 이상 요구

    성추행도 문제지만, 교인들을 분노하게 한 데는 ㅈ 목사의 재정 문제도 있었다. ㅈ 목사는 80세가 될 때까지 은퇴하지 않고 ㅅ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1971년 교회를 개척해서 2013년 은퇴할 때까지 42년 동안 자리를 지킨 셈이다.

    ㅈ 목사는 68세가 되던 해에 "10년 정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사이 ㅈ 목사의 사위 ㅅ 목사가 부목사, 동역목사 등을 거치면서 담임목사직을 이어 받는 수순을 밟았다. 2013년 11월, ㅈ 목사는 "목회는 올해까지만 하고 ㅅ 목사가 내년부터 담임목사직을 잇는다"고 공표했다.

    ㅈ 목사가 80세가 되도록 시무하고, 사위에게 교회 담임목사 자리를 물려줘도 반발하지 않던 교인들이 들고일어난 것은 ㅈ 목사의 은퇴 예우 때문이었다. 1971년 ㅅ교회를 개척해 40년 넘게 목회해 온 ㅈ 목사는 평소 "나는 퇴직금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퇴직금 대신 다른 것들을 요구했다.

    당시 교회에 구성된 'ㅈ 목사 은퇴준비위원회' 한 위원에 따르면, ㅈ 목사는 "내가 주택 팔아서 교회 개척했다. 지금까지 내가 교회에 헌신한 것과, 앞으로 받을 돈을 계산해 보니 32억 원 정도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을 테니 매달 돈을 달라"고 말했다.

    ㅈ 목사가 가져온 '은퇴 협약서'라는 종이에 자신을 어떻게 예우해야 하는지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했다. 여기에는 △매월 400만 원 지급 △목회비 명목으로 3년간 매월 100만 원 별도 지급 △매월 사택비 70만 원 지급 △내가 죽으면 나에게 주던 돈의 70%를 아내에게 지급 △교회에서 매달 지출하는 선교비의 재량권 △운전기사 고용 △해외여행 시 비용은 교회가 부담 △다음 해(2014년) 예산 편성권 △매월 1회 설교 등이 담겨 있었다.

    <뉴스앤조이>가 입수한 ㅅ교회 재정 지출 내역에 따르면, ㅈ 목사는 2013년 은퇴 전까지 본봉 495만 원, 사택 유지비 80만 원, 목회비 100만 원과 연 4회 본봉에 해당하는 495만 원 등 월평균 800만 원이 넘는 사례를 받았다. 교회는 ㅈ 목사 은퇴 이후를 위한 퇴직 적립금도 매월 본봉의 10%씩 별도 지출해 적립했다.



    ▲ 매월 400만 원, 목회비 100만 원, 사택비 70만 원 등을 달라고 한 '은퇴 협약서'의 내용은 대부분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ㅅ교회 2014년 결산 자료를 보면, 실제로 ㅈ 목사에게 상당 부분이 지급됐다. 교인들의 항의로 2014년 6월에 목회비 지급이 중단됐지만, 여전히 한 달에 500만 원 가까운 사례를 받아 갔다. 그동안 교회는 100여 명 미만으로 줄어들었고, 두 패로 나뉘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ㅅ교회 헌금 규모는 2012년 4억 1,000만 원대에서 2014년 3억 3,000만 원대로 감소했지만, ㅈ 목사에 대한 사례는 큰 변동이 없었다. 2014년부터 원로목사 예우를 받은 ㅈ 목사에게 지출된 금액은 본봉 405만 원, 목회비 100만 원, 사택 유지비 70만 원 등 총 570만 원이 넘는다. '은퇴 협약서'의 내용과 비슷하다.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에게 매달 지출되는 비용만 매달 1,000만 원이 넘어가니 교회로서는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재정을 담당하는 교인이 "돈이 없어 못 드린다"고 하고, 일부 교인들도 거세게 반발했다. 이에 2014년 6월부터는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에게 지급되던 목회비 100만 원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교인들은 그래도 지출이 과다하다며 "목사님 욕심 그만 부리시라", "교회는 사업장이 아니다"고 했다. 결국 올해 상반기 몇 차례의 충돌 끝에, 은퇴 협약서는 없던 것으로 하고 ㅈ 목사에게 본봉의 70%만 매월 지급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한때 400여 명까지 출석하던 ㅅ교회는 ㅈ 목사의 성 문제와 재정 문제 등이 겹치며 지금은 8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교회도 두 갈래로 쪼개졌다. ㅈ 목사는 1남 3녀를 두었는데, 사위 ㅅ 목사를 포함해 일가족 20여 명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나머지 40~50여 명의 교인들은 따로 기도 모임을 하고 있다.

    교인들이 누명 씌운다는 ㅈ 목사, 제보자 알려 달라는 ㅅ 목사

    <뉴스앤조이>는 이와 관련해 ㅈ 목사와 ㅅ 목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이들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ㅈ 목사는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면 그때 얘기하자"고 했으나, 며칠 후에는 "머리가 아파 얘기하기 어렵다"며 전화를 끊었다. ㅅ 목사는 "제보한 교인이 누군지 말하면 취재에 응하겠다"고만 하고, 이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만 ㅈ 목사와 교인들 간 통화 내용을 통해 그의 입장을 알 수 있었다. ㅈ 목사는 성 문제도 재정 문제도, 교인들이 혐의를 뒤집어씌운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교인들과의 통화에서 "장로들이 거짓말하고 누명을 씌운다. ㄱ 권사가 자꾸 거짓말로 자기를 뒤집어씌운다"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 문제와 관련해서도 "내가 교회에 다 바쳤다. 교회에서 사택을 해 줬나, 자녀들 등록금을 대 줬나. 내가 생활비밖에 더 받았느냐"고 했다. 오히려 "교회가 원로목사에게 해야 할 일을 해야지, 교회에서 나에게 생활비 이외에 해 준 게 뭐가 있느냐. 나보고 10원도 받지 말라는 건가"라며 자신이 희생하고 있다는 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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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히 목사, 실형 유력하자 아내에게 목사 안수

    리더십 공백 불가피…아내 선호가 교회 이끌 것으로 예상돼

    이은혜 기자



    ▲ 콩히 목사(오른쪽)는 아내 선호에게 목사 안수를 주며 성경책을 건넸다. 그는 40년 전 예수를 믿기 시작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성경책이라며 "당신에게 건네는 권위의 상징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콩히 목사 페이스북 갈무리)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강력한 법치국가인 싱가포르는 종교 범죄를 엄격하게 다룬다. 조용기 목사를 영적 아버지로 모신다는 콩히 목사가 실형을 살지 않을까 하는 것도 싱가포르라는 나라의 특성 때문이다. 2013년 그의 부정이 드러나자 싱가포르 자선감독관은 그에게 목사 면직 처분을 내린 적이 있다. (관련 기사: 싱가포르 정부, 시티하베스트교회 콩히 목사 면직 결정)

    싱가포르 법원은 지난 10월 26일, 콩히 목사가 교회 돈 약 400억 원을 가수였던 아내 선호의 미국 진출 비용으로 썼다는 혐의를 인정했다. 콩히를 비롯한 교회 리더 5명은 선호의 미국 진출은 문화 사역의 일환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죄를 인정받은 콩히 목사와 5명은 11월 중으로 형량 선고 공판을 기다리고 있다. (관련 기사: 법원, '싱가포르 조용기' 콩히 목사 교회 돈 200억 횡령 인정) 다수의 언론은 콩히 목사가 최소 10년은 감옥에서 보내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콩히 목사가 실형을 살게 된다면 시티하베스트교회(CHC)의 리더십 공백이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초대형 교회인 CHC와 콩히 목사는 이미 후임 목사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최종 선고 재판이 있기 일주일 전, 그는 가수였던 아내 선호에게 목사 안수를 줬다.

    10월 19일, 콩히 목사는 CHC에서 열린 안수식 동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선고 재판을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콩히는 세계 각지에서 온 오순절파 목사들과 함께 아내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동영상의 말미에는 콩히 목사가 아내 선호에게 성경을 전달하는 장면도 있었다.

    "나는 40년 전에 예수를 믿었습니다. 이 성경은 내가 처음 읽었던 성경입니다. 모든 목사 안수식에서는 안수를 주는 사람이 성경을 선물합니다.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건네는 권위의 상징이 되길 바랍니다. 선호, 이것은 내 성경이고 이제 당신 손에 있습니다."

    CHC는 성령 운동을 강조하는 초교파 교회로 특정 교단 소속이 아니다. 교회는 직영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콩미니스트리'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직영 신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기본이다.

    선호가 직영 신학교 출신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선호는 그동안 콩히 목사가 설교할 때 옆에 서서 지켜보거나, 설교 전에 찬양 예배를 인도해 왔다. 2013년, 남편이 정부로부터 면직 처분을 받았을 때는 '행정감독(Executive Director)'이라는 직책을 맡아 교회 사역 전면에 등장했다. 하지만 행정감독은 목사가 아니었다.

    목사 안수까지 받은 선호는 콩미니스트리에 소속된 125명의 목사 중 한 명이 됐다. 빠르면 11월 20일, 콩히 목사의 최종 형량이 선고된다. 다수의 싱가포르 언론은, 콩히 목사에게 실형이 선고된다면 아내 선호 '목사'가 CHC를 이끌어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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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無敎 대학 신입생 89% “종교 갖고 싶지 않다”는데…

    공감 우선·인내 필수 전도는 천천히

    학원복음화협 ‘캠퍼스 사역 콘퍼런스’



    ▲한 선교단체 대학생이 같은 대학 학생에게 영상을 보여주며 복음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대학생선교회 제공

    “한때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던 세대가 이젠 취업·연애·결혼·출산·내집마련·대인관계·꿈을 포기한 ‘N포 세대’가 됐다.”

    학원복음화협의회(학복협)가 지난 26일 서울 성동구 행당로 무학교회에서 개최한 ‘제8회 2015 캠퍼스 사역 콘퍼런스’ 발제자 윤용호 한국대학생선교회(CCC) 학원사역연구소장이 강의 중 한 말이다. 1980년대 중후반까지 민주화를 이끌고 90년대엔 대중문화의 주도세력이던 청년세대가 어느 새 끝없이 포기만 하는 ‘좌절의 아이콘’이 됐다. 꿈꿀 자격조차 박탈당한 이들에게 기독교는 어떤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

    ◇종교에 관심 없는 세대…최대 관심사는 ‘전공’ ‘취업’ = ‘캠퍼스 생태계 변화에 따른 선교전략’을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윤 소장은 CCC 학원사역연구소가 조사한 ‘2013∼2015년 대학 신입생들의 종교의식’ 내용을 공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대학 새내기의 최대 관심사는 ‘전공 공부’(53.2%)다. 그 뒤로 ‘대인관계’(39.7%) ‘여행’(30.8%) ‘취업준비’(17.1%)가 이어졌다. 기독 대학생들의 관심사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CCC 수련회에 참가한 대학생 절반 이상이 최대 관심사로 ‘취업’(34%)과 ‘진로’(24%)를 꼽았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답한 학생은 14%에 그쳤다.

    청년들의 관심이 취업을 위한 이른바 ‘스펙 쌓기’에 집중되면서 종교 관심도는 매해 떨어지고 있다. 종교가 없는 올해 대학 신입생에게 향후 어떤 종교를 택하고 싶은지를 묻자 ‘갖고 싶지 않다’(88.6%)고 응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2014년(78.5%), 2013년(71.8%)보다 더 높아진 수치다.

    이번 콘퍼런스에서 ‘대학의 역사와 정체성에서 본 캠퍼스 선교’를 발제한 김유준 연세차세대연구소장은 90년대 중반 기존 학생운동권의 붕괴와 외환위기가 대학생들의 ‘무교 성향’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김 소장은 “대학생들이 거대 담론보다 개인적 상황을 중시하고, 경제위기로 구직난이 심화되면서 대학이 ‘취업·고시학원’으로 전락했다”며 “대학 생태계 변화에 따라 대학 내 선교활동도 90년대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대폭 인원이 줄었다”고 지적했다.

    윤 소장은 “최근 3년간 CCC 설문조사에 따르면 무교인 대학생들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유로 ‘흥미가 떨어져서’란 답변을 가장 많이 꼽았다”며 “학원사역단체는 앞으로 종교에 무관심한 이들이 복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선교방법을 더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독선적 포교 벗고 진정성 있는 친구 돼야 = 종교 자체에 관심이 없다 보니 캠퍼스 전도에 대해서도 대부분 관심이 없다거나 부정적 견해를 보인 경우가 많다. 올해 대학 새내기들은 전도에 대해 ‘관심이 없다’(40.5%)고 답한 학생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거부감이 들었다’(28.8%)고 응답했다.

    거부감이 든 이유는 ‘전도 방법이 싫어서’(35.9%) ‘종교를 권유하는 행동이 싫어서’(34.8%) ‘전하는 내용에 동의가 안 돼서’(20.4%) 등이었다. 한 선교단체 간사는 “캠퍼스에서 전도를 하다 보면 ‘왜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와 종교를 권하느냐. 쉬고 싶으니 방해하지 말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며 “개인주의 성향이 높아져서 그런지 이전 같은 방식으론 전도는커녕 대화를 나누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무한경쟁에 내몰린 청춘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선 전도에 앞서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누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게 캠퍼스 사역자들의 중론이다.

    윤 소장은 “‘N포세대’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이들 눈높이에서 공감하고 소통하는 ‘전도 이전의 전도’가 중요하다”며 “이들의 문제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기도하며 인내한 뒤 기회가 주어질 때 복음을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세대와 소통하는 캠퍼스 선교’를 위해 지역교회와 선교단체가 더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 소장은 “대학은 군대에 비해 5∼6배나 많은 청년이 모인 진정한 ‘영적 황금어장’이지만 한국교회는 심각할 정도로 캠퍼스 선교에 관심이 없는 편”이라며 “지역교회가 학원선교단체 사역과 사역자를 장기적으로 지원할수록 진리에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자녀’란 정체성을 회복하는 청년들이 캠퍼스에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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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원그룹 박성철 회장 선처’ 탄원 잇따라…

    한기총·한교연 등 교계와 섬유·패션업계 구명 나서


    1만9000여명 서명

    탈세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신원그룹 박성철 회장에 대해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가 잇따르고 있다.

    신원과 개성공업지구 입주기업 임직원들은 박 회장 구명운동에 가장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 등 기독교계, 한국섬유산업연합회를 비롯한 섬유·패션업계 단체장들도 박 회장 구명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이들은 탄원서에서 박 회장이 기업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했고, 국가의 경제발전과 섬유·패션 산업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점을 들었다. 북한과의 경협사업인 개성공장의 성공적인 운영으로 남북한 평화에 이바지했고, 해외선교 활동에 큰 공을 세운 점 등을 강조하고 있다.

    박 회장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전남 목포의 아동복지시설 공생원재단은 “지금까지 후원을 해온 박 회장의 배려를 기억하고 있다. 이곳 어린이들의 롤모델인 박 회장은 꿋꿋하게 자기 일을 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도왔던 분”이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한기총과 한교연 등 기독교계는 “박 회장은 개성에 교회를 세워 평화통일을 위해 힘썼고 특히 네팔 등에 130여 교회를 개척하고 건축을 지원해왔다”며 “그는 40여년간 신앙생활을 해오는 동안 새벽기도를 빠진 적이 없고 복음전도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인물”이라고 밝혔다.

    신원 해외법인에 근무하는 임직원들도 각 나라 일자리 창출과 국가 경제에 기여한 부분 등을 언급하며 탄원서를 작성했다. 이들은 “우리나라 국가기간 산업이고 영원한 미래성장 동력인 섬유·패션 산업을 선도하며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한 박 회장의 헌신적인 봉사와 탁월한 지도력을 참작해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고 호소했다. 지금까지 1만9000여명이 박 회장 탄원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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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기 목사 처남 김성광 목사, 모욕죄로 벌금형

    조 목사 일가 재정 비리 의혹 제기한 장로들에게 '종북 좌파', '사탄 마귀'
    이용필 기자



    ▲ 조용기 원로목사의 처남 김성광 목사는 교회 개혁을 요구하는 장로들에게 종북 좌파, 사탄 마귀라는 표현이 담긴 광고를 일간지에 게재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조용기 원로목사 일가 재정 비리 의혹 등을 제기한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들을 '종북 좌파', '사탄 마귀'라고 비난한 김성광 목사(강남순복음교회)가 항소심에서도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김성광 목사는 조용기 목사의 처남이다.

    11월 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부(임동규 재판장)는 김성광 목사에게 원심과 똑같은 액수인 벌금 7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목사가 일간지 광고를 통해 여의도순복음교회 교회바로세우기장로기도모임(장로기도모임)을 종북 좌파, 사탄 마귀로 지칭했다.

    장로기도모임 단체 구성원들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린 것으로 볼 수 있고, 모욕죄에 해당한다"고 했다. 앞서 원심에서도, 김 목사가 광고를 낸 동기·내용·문구 등을 봤을 때 모욕 행위에 해당한다며 벌금형을 선고했다.

    장로기도모임은 지난 2011년부터 조용기 목사와 장남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등 재정 비리 의혹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2013년 11월에도, 조 목사 일가의 재정 비리 의혹을 제기하고, 조 목사의 불륜 증거도 공개했다. (관련 기사 : 조용기 목사, 더 큰 비리 의혹에 불륜 증거까지 공개돼) 당시 장로기도모임은 조 목사의 특별 선교비 600억 지출 내역, 영산조용기자선재단 사유화, 재단법인 순복음선교회의 부채 의혹 등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당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꾸리고 자체 조사를 벌였다. 특조위 조사 결과, 4건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 기사: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일가 비리 확인) 여의도순복음교회도 사실상 조 목사 일가의 비리를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김성광 목사는 오히려 장로기도모임을 문제 삼았다. 김 목사는 2013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일간지 세 곳에 "조용기 목사님 고소 건은 진상 조사 결과 허위사실 유포, 가짜 서류임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한국교회 부흥을 방해하며 분열시키려는 종북 좌파, 사탄 마귀 세력의 계략이므로 기도로 승리합시다"고 광고했다.

    장로기도모임에 나오는 한 장로는 11월 3일, <뉴스앤조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조용기 목사 일가의 비리 의혹을 제기한 게 종북 좌파와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교회를 개혁하려는 우리를 사탄 마귀로 지칭한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이번 재판과 관련해 김성광 목사는 "변호사와 의논해 대법원에 상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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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착화된 새벽 기도회의 유래와 본질

    길선주 장로와 그 친구들의 도교 수행에서 시작돼…불교나 무교와는 관계 없어
    옥성득 sungoak@hotmail.com

    새벽 기도회는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의례다. 지금 50대 중반을 넘은 분들은 젊었을 때 새벽을 깨우는 종소리를 듣고 일어나 교회에 나간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새벽 기도회가 무교(여성의 새벽 치성)나 불교(남녀 승려들의 새벽 예불)에서 유래되었다는 통설을 비판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새벽 기도회가 남자들의 선도(仙道) 수련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새벽 기도회의 기독교화 과정이 어땠는지도 서술할 생각이다. 유래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초기 새벽 기도회에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는 초월성,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한 역사성이 결합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새벽 기도회는 불교나 무교에서 유래된 게 아냐

    여러 글이나 책을 보면 초기 한국교회의 새벽 기도회가 불교 사찰 승려들의 새벽 예불에서 유래했다고 적혀 있다. 민간 무속에서 여성들이 새벽에 정화수를 떠 놓고 샛별(계명성)이나 칠성신에게 빌던 성수(星宿) 신앙이나 고목 앞에서 빌던 신목(神木) 신앙, 혹은 조왕신(부엌 음식신)에게 빌던 데서 왔다고 서술하기도 한다.

    새벽 미명은 신령한 존재와 영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여인들은 남편과 자식을 위해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간절하게 빌고 치성을 드렸다. 그 기복적 가족 기도가 그대로 기독교로 넘어와서 새벽마다 교회에서 가족의 건강과 사업의 번창을 위해서 기도하는 '무교적 기독교인'이 많다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필자는 초대 한국교회에 관한 기록에서 새벽 기도회가 그런 연관성을 가졌다고 언급한 자료를 아직 본 적이 없다. 1970년대 이후에 급성장한 한국교회의 기복 신앙을 비판하는 글들이 피상적으로 그 연결성을 유추하고 짐작한 것뿐이다. 구체적인 역사적 증거나 1차 사료를 가지고 쓴 것은 아니다.



    ▲ 1894년 동대문. 당시에는 성 밖 주민이 성 안 주민보다 더 많았다.

    도시의 파루와 사찰의 새벽종

    대개 초대 한국교회의 새벽 기도회는 4시 30분이나 5시에 드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새벽 4시 30분이라는 시간은 도성의 새벽 파루와 관련되어 있었다.

    조선 시대 큰 도시는 4대 문과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세종 때 만든 자격루와 물시계로 정확한 시간을 알았다. 따라서 같은 시각에 종을 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했다. 새벽 4시에는 파루(罷漏)로 33번 종을 쳐서 성문을 열고 통행을 시작했다. 밤 10시에는 인정(人定, 인경)으로 28번 타종하여 우주의 일월성신, 28개 별자리를 쉬게 하고 성문을 닫고 통행금지를 실시했다. 파루 때 했던 33번 타종은 불교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 수미산(須彌山) 정상에 있는 33개의 하늘을 깨우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사찰처럼 새벽 3시나 5시가 아니라, 도성에서 4시에 파루를 친 것은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노동을 해야 했던 농경시대의 산물이었다. 수천년간 그때 일어나 일하던 인간의 생체리듬에 맞춘 것이었다. 새벽 기도회를 4시 30분이나 5시에 시작한 것은 4시에 통행이 시작되던 습관을 따라 한 것이다. 도성의 종각에서 타종하지 않아도 4시에 일어나 예배당에 오면 4시 30분이 되었고, 먼 곳에서 오는 자들이 많으면 5시에 모여 기도할 수 있었다. 즉 파루와 연관한 하루 일상의 시작 시간에 일어나 교회로 와서 새벽 기도회로 모였다.

    절에서는 하루에 다섯 번 범종을 울리고 예불을 드렸다. 초경(저녁 8시), 이경(10시), 삼경(자정, 108번), 사경(새벽 3시, 5번), 오경(새벽 5시, 28번 타종으로 28세계가 깨달음을 얻기를 기원) 등이었다. 사찰의 상가 공동체는 성 안에 있지 않고 산속에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새벽 3시에 예불, 다시 새벽 5시에 운판(나무판)을 치고 목어(목탁)를 울리고, 법고(북)를 울린 다음에 범종(梵鍾)을 28번 치고 승려들이 함께 모여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중생들이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기를 구했다.

    성무 일과에 따라 기도했던 중세 유럽의 수도원들처럼, 수도 승려끼리 생체리듬에 반하는 시간에 일어나 묵상하고 잠과 욕망을 끊는 행위로 드린 염불이었다. 즉 사찰의 새벽종은 세속 도시의 하루를 시작하는 파루 종소리와 전혀 다른 성격의 종으로, 속세를 떠난 수도승의 정좌와 묵상과 예불을 위한 시공간을 만들었다. 그 피안의 공간에서, 매일 자정과 새벽 3시에도 일어나 육체성을 거부하고, 전문종교인 집단의 집회를 만들었다. 따라서 새벽 기도회와 달랐고, 따라서 둘 사이의 연관성은 적었다.

    정리하자면, 새벽 기도회는 불교 사찰의 범종이나 전문 종교인들이 드린 피안적 예불과 상관이 없다. 오히려 세속 도성의 새벽 파루와 함께했던 하루 일상의 시작과 연관된다. 그와 같은 세속성 안에서 거룩성을 회복하고 경건하게 살려고 했던 신자들이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던 데서 창출되었다. 긴장감이 있는 성속의 경계에서, 밤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문지방과 같은 틈새 시간에 새롭게 넣은 기도 시간이었다.

    새벽 기도회가 여성들의 무교적 민속신앙에서 유래했을까

    1905년 초 송도(개성)에서 열린 남감리회 부인사경회 때 캐롤(A. Carroll)이 경험한 내용을 보자.

    "아침 여섯 시가 되자 마치 아침을 알리는 시계처럼 건너에 있던 [여자]교인들이 일어나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하는 바람에 나도 일어나야 했다. 그런데 다음 날에는 새로 몇 사람이 오더니 새벽 4시에 사람들을 깨워 무려 한 시간 반 동안이나 그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이덕주 교수는 이 글을 해석하면서, 과거 새벽에 정화수를 떠놓고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조왕신에게 빌던 여자들의 습관이 사경회 기간 중에 새벽 기도회로 모습을 바꾸었다고 보았다[이덕주, <한국 토착교회 형성사 연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0) 348~350쪽]. 그런데 이 자료를 가지고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부엌에서 조왕신에게 노래로 찬양을 드렸던가? 아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치성을 드릴 때 옆 사람들과 한 시간 반 동안 대화를 나누었던가? 아니다. 자료에 나오는 일시적인 새벽 기도회와 무속의 조왕신 치성 사이에는 시공간·성격·의례 모든 면에서 연속성을 찾기 어렵다.

    새벽 기도회는 선도에서 개종한 길선주와 평양 교인들이 시작했다

    새벽 기도회의 유래에 대해서는 필자가 발표한 논문이 있다. 자세한 논의는 "평양대부흥과 길선주 영성의 도교적 영향", <한국기독교와 역사> 25호 (2006년 9월) 7~35쪽을 보라. 필자는 이 논문에서 선도(민간 도교) 수행자였던 평양의 길선주와 그의 동료들이 청일전쟁 후에 개종하고, 평소 수행하던 새벽 기도·통성기도·철야 기도 등을 1905년 전후 사경회에 도입했으며, 1909년 전후에 교회 프로그램인 기도회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새벽 기도회가 길선주와 그 친구들의 도교 수행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에 아직 반론을 들은 적이 없다. 필자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길선주가 중심이 되어 선도에서 기독교로 토착화한 새벽 기도와 통성기도는 1910년 전후부터 한국교회에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사적인 소원을 빌었던 도교의 기도와 비교하면, 개신교의 기도는 민족적 위기에 교회와 민족 공동체를 위한 공공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또한 집단적인 '새벽 기도회'는 장로교회의 사경회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1898년 2월, 황해도 강진교회 사경회에서 일반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새벽 기도회를 시작했으며, 황해도의 다른 사경회(1901년 2월)에서도 교인들이 새벽 기도회를 시작한 것을 처음 소개했다. 이와 같이 사경회 때 소규모로 일시적으로 모이던 새벽 기도회가 1905년 평양 도사경회 때 정식 프로그램으로 채택되었으며, 1909년에 개교회의 프로그램으로 전환되었다고 정리했다.

    1890~1905년, 사경회에서 시작한 새벽 기도

    선교사들은 1892년 10명 정도의 한국인 남자 지도자들과 조사를 모아 한 달 정도 집중적으로 성경, 교리, 전도법, 설교법, 교회를 다스리는 법 등을 가르치는 사경회를 조직했다. 1891년 채택한 네비어스의 방법에 따라 본토인 목회자와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1892년 11월 28일부터 12월 24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첫 신학반에 참석한 백홍준, 한석진, 참석자들이 새벽에 일어나 자발적인 기도회로 모였다. 이후 이 조사 사경회에서 새벽에 일어나 찬송하고 기도하는 모임이 계속되었다. 조사 사경회의 새벽 기도회가 황해도에서 일반 사경회 새벽 기도회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말테의 논문 "한국 개신교회의 새벽 기도의 초기에 대한 연구", <신학과 실천> 31호 (2012년 5월) 183~225쪽에는 1892년 조사 사경회 전 백홍준, 마포삼열, 한석진 등의 새벽 기도 사례를 소개한 후, 여러 사경회에서 행해진 새벽 기도(회) 사례를 잘 정리해 놓았다. 후자는 필자가 소개한 황해도 강진교회 사경회 새벽 기도(1898년 2월)와 다른 황해도 사경회 새벽 기도(1901년 2월)에 이어, 평북 초산(1901), 원산(1903), 평양(1904), 서울 이화학당(1904), 송도(1905) 등의 사경회에서 이루어진 새벽 기도 사례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이어서 필자가 정리한 1909년, 길선주 목사와 박치록 장로가 주도한 평양 장대현교회의 새벽 기도회를 마지막으로 언급했다. 이 가운데 1909년 새벽 기도회만 교회에서 광고한 후 일반 신도들이 모인 기도회였고, 나머지는 사경회 때 이루어진 일주일 정도의 한시적인 기도회였다.

    이말테는 새벽 기도를 대부분 남성들이 시작한 것에 주목했다. 여성들의 무속적 새벽 치성에서 새벽 기도가 유래했다는 통설을 비판했다. 또한 1893년 평양 지부를 개척하던 마페트(S. A. Moffett) 목사와 조사 한석진의 가정 새벽 기도를 근거로, 선교사 마페트가 새벽 기도 창시에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페트가 새벽 기도를 시작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주장은 더 검토되어야 한다. 만일 그가 새벽 기도에 관심이 많았다면, 1895년 이후 가정에서 새벽 기도회를 꾸준히 드리거나, 평양 널다리교회 혹은 장대현교회가 준공된 1900년에 새벽 기도회를 창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페트가 남긴 글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또한 개인적으로 잠시 드린 새벽 기도를 교회의 '새벽 기도회'의 유래로 보기는 어렵다.

    길선주의 첫 장대현교회 새벽 기도회 모임, 1906년 아닌 1909년

    많은 책이나 온라인 블로그에 보면 다음과 같은 잘못된 글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새벽 기도는 1906년 가을, '길선주'장로의 주도로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하였다. 이 새벽 기도회는 1907년 평양에서 촉발된 한국 기독교 부흥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길선주 장로는 국가가 어려운 상황(당시 일제강점기)에 놓여 있는 것을 걱정하여 새벽에 교회에 나가 기도하였고, 많은 교인들이 같이 기도하기 시작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300~500명에 이르는 교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길선주의 새벽 기도회가 1906년 가을에 시작했다 △길선주의 새벽 기도회가 1907년 부흥의 시발점이 되었다 △당시는 일제강점기였다는 세 가지 주장은 오류다. 1906년으로 알려진 것은 김인서가 1930년대 <신앙생활>에 길선주 소전을 쓰면서 그렇게 잘못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 새벽 기도회는 부흥 운동이 끝난 후 열기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냉랭해졌을 때 다시 부흥의 불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1909년에 시작한 새로운 부흥회 방법이었다. 또한 아직 한국이 일제의 완전한 식민지가 되기 이전이었다.

    새벽 기도회가 정착한 것은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반

    1907년 대부흥 이후 1910년대에 새벽 기도회가 한국교회에 널리 시행되고 매일 새벽에 모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런 기록은 없다. 이덕주 교수가 일찍 지적한 대로 1914년에 시작한 강화도 마리산 부흥회 때나 여러 사경회 때의 새벽 기도회 모두 1주일을 사경회와 부흥회 때 드린 것이다. 개교회 차원에서 정착된 것은 아니었다. 또 교회에 홀로 새벽에 나가 30일이나 100일 개인 기도를 드린 예들이나 3·1 운동이 일어나기 전, 신석구 목사의 개인 새벽 기도 등에서 보듯이 1919년 이전에는 매일 새벽 기도회로 모이는 교회가 없었다.

    1920년대 후반에 정착하는 새벽 기도회 자료는 더 수집해서 정리해야 할 주제다. 이때 새벽 기도회가 매일 드리는 일상의 기도로 거의 모든 교회에서 자리 잡은 것은 식민지 치하에서 더욱 기도가 간절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하루하루가 종말인 가난한 교인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새벽 시간의 기독교화, 파루를 대신한 교회의 새벽 종소리

    1910년대 사경회 때의 새벽 기도회는 도시의 새벽 시간을 기독교화하기 시작했다. 1910년 전후 일제 총독부는 '문명' 발전, 도로 확장과 '신작로' 개설이라는 명목으로 서울과 다른 도시들의 성벽을 허물었다. 4대 문을 지키는 일본 순경의 호각 소리와 칼 소리가 새벽 소리가 되었다. 성벽이 없는 경성에 보신각은 무용지물이라 폐쇄되었다. 서울은 영혼의 종소리를 잃어버렸다. 성(城)이 없는 경성(京城)은 보신각 종소리(聲)가 사라진 경성이었고, 종소리 없는 도시는 성스러움(聖)이 사라진 식민지의 경성이었다.

    도시와 시민들에게 다시 종소리를 준 것이 교회와 성당이었다. 명동성당에서는 아침 6시, 정오 12시, 저녁 6시 종을 3번 쳤다. 주일마다 각 도시의 교회에서, 그리고 점차 교회마다 사경회를 다른 기간에 하면서 새벽에 타종했다. 여러 교회에서 퍼져 나간 종소리는 다시 새벽 시간을 구별하고, 도시의 새벽을 살리는 영성(靈聲)이 되었다. 도시의 혼이 살아나는 소리였다. 성수주일이 일주일을 시작하는 안식일의 성화였다면, 새벽 기도회는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의 성화였다.



    ▲ 1909년 전주교회에서 종을 설치하기 위해 소달구지로 나르고 있다. 수직성을 확보한 종탑에서 나오는 종소리로 전주 시의 시간이 성화하기 시작했다.
    새벽 기도회는 세속 성자들이 확보한 경계적 시공간

    성 안에 사는 시민들은 새벽 4시에 성문이 열리면 일어나던 습관을 따라, 성의 종소리가 사라진 후에도 대개 4시에 거동을 시작했다. 그래서 교회에 도착하는 4시 30분이나 5시에 새벽 기도회로 모이고, 이어서 일하러 가면 시간이 적절했다. 따라서 4시 30분이나 5시에 시작한 교회의 새벽 기도회는, 격리된 산속에 있는 사찰에서 새벽 3시나 5시에 승려들끼리 모여 조용하고 엄숙하게 예불을 드리는 것과 달랐다.


    세속 도시 속에서 거룩성을 느끼고 영성을 유지하려는 노동자와 주부들의 기도회였다. 그 예배는 곧 다가올 일상의 무거움 앞에 하늘의 도움을 구하는 시간이었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넘어가는 하루의 문지방과 같은 경계선의 시간의 사이(時間), 그래서 긴장이 팽팽한 틈새 시간, 변혁을 품고 있는 전이의 시공간에, 새벽을 깨우는 자들이 모여 하나님을 구했다. 새벽에 일어나야 생존할 수 있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동자들과 밤낮 쉼 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공간이었다.

    따라서 잠자는 하늘을 깨우거나 중생을 계몽하려는 사찰의 예불과 달랐으며, 여성들이 홀로 칠성신에게 비는 민간신앙의 치성과 달랐다. 전자에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 없었고, 후자에는 남녀가 함께 하는 공동체성이 없었다. 양자 모두 공적 기도가 없었다. 새벽 기도회가 한국 개신교를 상징하는 의례가 된 것은 피안의 기도나 사적 기복인 기도와 달리 세속 안에서 일반 교인들이 함께 모여 드리는 공적인 기도회로 기독교화했기 때문이다.

    소리가 세상을 구한다. 거룩한 영혼의 종소리가 사라진 한국교회에 다시 종을 치는 종지기들이 필요하다. 남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새벽마다 종을 치던 사찰집사님의 매일의 헌신이 있던 교회, 어릴 때 들었던 교회 종소리가 그립다.

    기도가 세상을 구한다. 새벽 미명에 무릎 꿇고 자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던 어머니들의 눈물로 지금 청년과 장년들이 그나마 살고 교회가 살아 있다.

    진정한 새벽 기도회가 세상을 구한다. 한 손에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수직성을 담고, 다른 한 손에는 세속 성자로서 민족을 위해 도고하는 수평성을 담아 두 손을 모아 함께 드리는 새벽의 기도로 교회가 산다.


    옥성득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 임동순·임미자 석좌 부교수(한국기독교)이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국사학과를 졸업한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대학원을 거쳐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와 보스턴대학교에서 기독교 역사를 공부했다. 2002년부터 UCLA에서 한국근대사와 한국종교사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 <한반도 대부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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