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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더우드가 뿌린 씨앗 / 소래노회, 77년 만에 신사참배 회개
    2015-10-16 11:18:33   read : 4974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언더우드가 뿌린 씨앗, ‘과학 한국’ 큰 열매로…

    ‘한국 첫 자연과학 학과’ 연세대 수물과 설립 100주년

    우민화 정책으로 설립 불허한 조선총독부 맞서 승인 얻어내

    ▲연세대 교직원과 학생들이 13일 설립자 언더우드 선교사 동상 앞에서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의부흥과 발전을 위해 기도드리고 있다. 작은 사진은 언더우드 선교사 생전 모습.
    강민석 선임기자


    오는 17일 오후 6시30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동문회관에 한국 물리학계 거두들이 모인다. ‘1915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2015 100주년 기념 동문의 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함이다. 올해는 호레이스 G 언더우드(1859∼1916) 선교사가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이과인 수물과(수학 및 물리학과)를 세운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연세대 물리학과 동문회와 연세대 물리학과 100주년기념사업회는 이날 언더우드의 선교 정신을 기리고 ‘물리학과 100년사’를 USB 메모리에 담아 나눠준다. 이들 단체는 물리학과 100년사를 수정·보완한 뒤 책으로 제작해 도서관과 학회, 교계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연세대 물리학과 동문회장 김철성 국민대 교수는 13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언더우드 선교사는 이 나라가 강대국의 침략으로 고통 받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며 “대한민국 자연과학의 시작은 언더우드 선교사가 노력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당시 조선총독부에 연희전문 설립을 신청하면서 이과인 수물과 개설 승인을 요청했다. 그런데 조선총독부는 이과 설립을 불허했다. 식민지 백성들이 과학을 배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위 일본의 ‘식민지 우민화 정책’이었다.

    하지만 언더우드 선교사는 과학자를 육성해야만 조선의 미래가 있다는 점을 확신했다. 그래서 끈질기게 조선총독부와 협상한 끝에 수물과 개설을 관철시켰다.

    당시 연희전문은 문과 상과 농과 신과 수물과 화학과 등 6개 학과를 허가받았으나, 실제 개교 때에는 문과 상과 수물과 3과로 출발했다. 이 수물과가 바로 한국 역사 최초의 대학 자연과학 학과인 셈이다.

    연희전문과 연세대 수물과는 과학 리더들을 다수 배출했다. 한국 최초의 천문학 박사로 초대 관상대장을 지낸 이원철 박사, 한국 최초의 물리학 박사로 서울대 총장과 문교부 장관을 지낸 최규남 박사, 물리학계 원로로서 과학발전에 공헌한 안세희 연세대 전 총장 등이 수물과 출신이다.

    김 교수는 “세계를 주름잡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현대와 기아의 자동차도 물리학 지식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며 “그런데 교계는 기독교가 한국과학 발달의 시작에 기여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초과학이 발달해야 한국경제가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다”며 자라나는 세대들이 물리학을 공부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이웃나라 일본은 노벨물리학상을 11차례나 탔다”며 “하지만 한국에서는 물리학은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해 물리학을 전공하는 이들이 갈수록 줄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길원평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도 “노벨물리학상을 타고 대한민국이 기술 강국이 되려면 물리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더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재국 연세대 교목실장은 “언더우드는 한국 최초의 선교사로서 여러 방면에서 한국교회의 기초를 놓았을 뿐 아니라 근대 한국의 기초까지 닦아 놓고 떠났다”며 “그가 인천부두에 상륙한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이 근대 한국과 한국교회 역사의 첫 장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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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좌담] 장로교 주요 교단 새 총회장에게 듣는다

    “기득권 버리고 십자가 정신으로 교단 통합 계속 이어가야”



    ▲서울 강동구 C채널 스튜디오에서 지난 7일 진행된 ‘특집좌담 교단 총회장에게 듣는다’에서 참석자들은 동성애·이단·통일 문제 등에 대해 한국교회 연합을 통한 공동대응을 강조했다. 왼쪽부터장종현(예장대신) 박무용(예장합동) 총회장, 소강석(새에덴교회) 목사, 채영남(예장통합) 신상현(예장고신) 총회장. 강민석 선임기자

    국민일보와 C채널이 지난 7일 서울 강동구 C채널 스튜디오에서 개최한 ‘특집좌담 교단 총회장에게 듣는다’에 참석한 신임 총회장들은 교계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진솔한 의견을 개진했다.

    일부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견 차이를 보였지만 한국교회가 하나 돼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데는 뜻을 같이했다. 특히 통일 준비와 관련해서는 한국교회가 연합해 통일기금을 조성하거나 통일준비기구를 설립하자는 등 구체적인 제안들을 내놓았다.

    <참석자>

    ● 예장합동 박무용 총회장 ● 예장통합 채영남 총회장
    ● 예장대신 장종현 총회장 ● 예장고신 신상현 총회장

    <사회=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

    -올해 총회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것이 교단 통합이었다.

    △장종현 총회장=교단 통합은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다. 통합할 때는 기득권을 버리는 게 성경적이다. 예장백석과 대신은 조건 없이 대화했고 결국 통합을 이뤄냈다. 내 것을 버려야 함께 일할 수 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이다.

    △신상현 총회장=하나의 뿌리였던 예장고신과 고려는 39년 전의 분열을 털어내고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 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인격적으로 깊은 대화를 나눴다. 세심하게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다른 장로교단들이 이러한 통합 분위기를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박무용 총회장=예장합동도 과거 예장개혁과 통합했다. 그 과정 속에서 진통도 있었다. 10여년을 지나오면서 안정적으로 화합해가고 있다. 통합하려면 상대방의 신학과 신앙을 존중해야 한다.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에 통합을 이룬 교단들도 향후 좋은 통합의 모델이자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채영남 총회장=고슴도치가 서로 안기 위해서는 가시를 뽑아야 한다. 그 가시가 바로 기득권이 아닐까 싶다. 서로 가지고 있는 신학과 신앙, 교리는 유지하되 공통분모를 찾아 연합한다면 얼마든지 통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지난 8월 9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한국교회평화통일기도회’를 통해 교파를 초월한 결집의 힘을 볼 수 있었다. 통일을 위해 실천 가능한 구체적 방안은.

    △박 총회장=100회 총회에서 통일준비위원회가 상설로 가동됐다. 보다 적극적으로 민족의 숙원이자 한국교회가 주도해야 할 통일 문제에 나설 수 있게 됐다. 각 교회마다 통일의 당위성과 간절함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통일기금을 조성하는 일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장 총회장=통일을 위한 가장 큰 준비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이해하는 십자가 정신이다. 장로교뿐 아니라 기독교 전체가 참여하는 기구를 만들어 함께 추진해 나갔으면 좋겠다.


    -연합기관들과의 개혁과 연합도 중요한 시점이다. 예장합동이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의 관계 개선을 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박 총회장=예민한 문제다. 총회 차원에서 한기총 참여와 관련해 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있다. 예장합동이 중심에 서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텐데, 이단 문제가 선결돼야 할 것이다.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다수의 교단들이 탈퇴한 상황인데 한기총을 중심으로 한 교단의 연합활동이 가능하겠는가.

    △채 총회장=한기총이 ‘교단 순번제’ ‘1년 단임제’ 등의 도입을 담은 ‘7·7 정관’ 을 회복하고 이단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야 한다. 그 이후에 한국교회연합(한교연)과 한기총이 통합한다면 교단들 연합활동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로선 합동과 통합이 모두 속해 있는 한국장로교총연합회(한장총)를 건강하게 세워가는 것이 우선과제라고 본다.

    △장 총회장=조건을 붙일 것이 아니라 장자교단이 희생하고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본다. (한기총을) 개혁해야 들어간다는 것은 보수정신이 아니다. 들어가서 썩은 것을 도려내야 한다.


    -제3의 연합기구가 아닌 교단장 중심으로의 연합이 대안이라고 생각하는가.

    △채 총회장=2009년 이후 활동을 중단한 ‘교단장협의회’가 ‘교단장회의’라는 이름으로 재출범했다. 25개 교단의 교단장들이 공동의 증언을 사회에 선포하기 위함이다. 교단장회의는 제3의 연합기구가 아니다. 연합사역을 돕기 위한 것이다.

    △박 총회장=최근 열린 교단장회의 총회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교단장회의는 연합기관이 아닌 협의체로 활동해야 한다.

    △장 총회장=합동과 통합 교단이 교단장회의를 통해 더 협력하고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는 발판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한국교회를 방어해주는 좋은 방패가 돼 주었으면 한다.


    -동성애 이슈에 대해 교단 결의로 공감대를 이뤄냈는데 분위기는 어떠한가.

    △장 총회장=예장대신에서는 세미나를 열고 책자를 배포해 각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동성애 문제는 기독교가 목숨 걸고 나서야 할 일이다. 초교파적으로 기금을 모아 국민일보를 비롯한 교계 언론을 통해 동성애 확산을 막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뒷받침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 총회장=예장고신은 지난 9월 총회에서 동성애 조장, 퀴어문화축제, 동성애 차별금지법 입법 등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도록 결의했고 준비 과정에 있다. 또 성적 취향에 불과한 동성애가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연구한 책자를 발간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채 총회장=동성애자들도 선교의 대상으로 삼아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동을 주는 사역을 동시에 펼쳐야 한다.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가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한 교단장들의 입장이 궁금하다.

    △박 총회장=국정교과서로 가야 한다고 본다. 이승만 대통령이나 조만식 장로 등 우리나라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기독교 인물들이 많다. 그럼에도 교과서에 기독교적 영향력들이 배제된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장 총회장=교과서 논란은 이념의 문제도 있지만 누가 만드느냐의 주도권 싸움이란 측면도 있다. 다음세대들이 배우고 익히는 기본적인 책인 만큼 국가가 주도적으로 바른 국가관과 역사의식을 심어줄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해야 한다.

    △채 총회장=국가 주도의 시스템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다각화된 시각이 필요하다. 기독교 역사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도록 교회가 전문가 양성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이슬람 확산에 대비한 한국교회의 준비 상황은 어느 정도인가.

    △박 총회장=할랄식품 판매 활성화 등 경제적인 면만 보고 여론을 몰아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슬람이 공격적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각하게 인식하고 한국교회가 연합해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채 총회장=지난해부터 총회에서 이슬람대책위를 만들어 무슬림권 사역자를 활용한 연구 활동, 세미나 개최 등을 적극 펼치고 있다. 다만 이슬람에 대해서 적대적인 의식을 갖는 것은 위험하다고 본다.

    △신 총회장=국내로 유입되는 무슬림들을 제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에 들어오는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선교를 펼치는 게 중요하다.


    -이단 대처에 대한 활동과 계획은.

    △장 총회장=적극적으로 이단을 물리칠 수 있는 기구가 한국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 이단 정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도 문제다. 소소한 교리적인 입장 차이를 두고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신 총회장=이단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각 교단마다 이단대책위원회가 있는데 이대위가 연합해 공동으로 대응해나가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한국교회에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신 총회장=현재의 한국교회 모습은 과거 본질로부터 많이 떨어져 나와 있다고 본다. 철저하게 회개하고 각성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말씀과 성령, 기도로 철저히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채 총회장=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중심에 서는 건강한 교회로의 회복이 시급하다.

    △박 총회장=말씀 중심, 예배 중심, 전도 중심, 선교 중심으로 회복하는 데 힘써야 한다. 오늘 함께한 교단장들부터 힘을 모은다면 다른 교단들도 연합해서 새로운 부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장 총회장=자존심을 내려놓고 통합으로 가는 모습이 필요하다. 군소교단들도 아울러서 함께 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봉사와 희생의 정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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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장합동 소래노회, 77년 만에 신사참배 회개

    1938년 무장경관에 둘러싸여 참배 결의한 비극적 역사 참회… 결의 취소안 만장일치 채택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소래노회가 15일 서울 구로구 21세기드림교회에서 열린 정기노회에서 77년 전의 신사참배 결의를 취소하고 성찬식을 하고 있다. 전호광 인턴기자

    조선예수교장로회는 1938년 9월 10일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열린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차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당시는 장로교의 교파가 갈라지기 전이었다. 무장경관들이 예배당을 에워싼 가운데 여러 선교사들이 일어나 “불법결의”라고 외쳤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장로교회가 일본 태양신의 우상 앞에 무릎을 꿇은 비극적인 순간이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소래노회(노회장 김경철 목사)는 15일 서울 구로구 오리로 21세기드림교회(이성용 목사)에서 정기노회를 갖고 77년 전의 신사참배 결의를 취소했다. 1938년 장로교 총회가 열리기 두 달 전에 장로교 8개 노회가 신사참배 결의에 앞장선 것에 대해 회개한 것이다.

    소래노회는 지난해 3월 신사참배 회개 등을 주장하며 황해노회에서 분립한 신설 노회다. 노회 차원의 공식적인 신사참배 결의 취소는 처음인 만큼 다른 노회나 교단 전체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이날 참석자들은 ‘신사참배 결의 취소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또 신사참배의 죄를 통회 자복하는 취소선언문을 낭독했다. 경건하게 성찬식이 진행되자 눈시울이 붉어지는 목회자들이 잇따랐다.


    소래노회 신사참배 취소 및 회개위원장 박세환(백승교회) 목사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섬겨야 할 우리 노회가 일제의 강요에 무릎을 꿇고 신사참배를 받아들였다”면서 “장로교회는 일제 군국주의 이념을 선전하는 나팔수가 됐고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아 고귀한 생명들이 희생당하게 했다”고 고백했다.

    소래노회는 오는 20일 경기도 용인 총신대 신학대학원 소래교회에서 열리는 ‘소래노회의 날’ 행사에서도 신사참배를 회개하고 일본 야스쿠니 신사의 문제점 등을 담은 소책자를 발간·배포한다. 12월 8일에는 소래교회 앞마당에 ‘신사참배 취소 및 회개 표지석’도 설치할 계획이다.

    한국교회의 신사참배 참회는 2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2년 6월 18일 한국교회 지도자 한경직(1902∼2000) 목사의 고백은 한국교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을 축하받는 자리에서 그는 “일제 때 신사참배를 행했으나 여태껏 참회하지 않았다”면서 “반세기 전에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참회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노(老) 목회자의 죄책고백은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의 가슴속에 각인됐다. 2006년 1월에는 기독교대한복음교회가 “초대 감독이었던 최태용 목사가 창씨개명을 하고 친일 잡지에 친일 논설을 기고했다”며 교단 중 처음으로 친일행적을 반성했다

    . 2007년에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가 신사참배에 대해 사과했다. 2008년 예장합동과 통합, 합신, 기장 등 4개 교단은 장로교단분열 60년 만에 처음으로 제주에서 연합예배를 갖고 신사참배 참회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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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교회 운동, 시대 요청이자 부름"

    생명과 평화 일구는 교회들의 축제…연대를 통해 진정한 자유·광복 이뤄야
    이용필 기자



    ▲ 10월 9일 서울 이화여고에서 제3회 작은 교회 박람회가 열렸다. 박람회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은 높았다. 1,000여 명이 박람회장을 다녀갔다. 사진은 참석자들이 다짐 예배를 하고 있는 모습. ⓒ뉴스앤조이 최승현

    탈성장·탈성직·탈성별을 추구하는 작은 교회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사역을 공유하고 함께 예배하는 시간을 보냈다. 10월 9일, 서울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에서 '생명과 평화를 일구는 2015 작은 교회 박람회'가 열린 것이다. '해방 70년, 생명과 평화를 일구는 작은 교회 운동'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박람회에는 교회·단체 70여 곳이 참여했다.

    교회와 단체를 소개하기 위한 부스는 유관순기념관(기념관) 로비에 마련했다. 입구를 중심으로 좌측에 25개, 우측에 30개 부스가 자리했다. 기념관 앞마당에도 20개가 넘는 천막이 설치됐다. 이날 참여 교회 및 단체들은 일찍부터 행사 준비를 했다. 교회를 알리는 안내 책자, 포스터, 사진, 동영상 등을 보기 좋게 정리했다.

    박람회 개막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람들로 북적였다. 교회·가족 단위로 참여한 이들이 많았다. 원주 새동네교회(이예원 목사)는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왔다. 신학생들의 모습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오전 10시 30분, 300여 명이 기념관 앞마당에 모였다. 생명평화마당 공동대표 이정배 교수(감신대)의 기도로 박람회의 서막이 올랐다. 이 교수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따르는 작은 교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땅의 작은 교회들이, 무너져 가는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길 바란다"고 기도했다. 또, 화창한 가을 날씨 속에서 축제같은 분위기로 행사가 치러지길 바랐다.



    ▲ 작은 교회와 단체를 소개하는 부스가 마련된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 내부 모습. 행사 시작부터 끝까지 사람들로 북적였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작은 교회 박람회 준비위원장 방인성 목사는 "해방 70주년을 맞았지만, 진정한 해방이 이뤄지지 않았다. 일제시대, 분단의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작은 교회 운동으로 진정한 자유와 광복을 이루자"고 선언했다. 방 목사는 이번 박람회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을 초대했다면서 응원의 박수를 쳐 주자고 말했다.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치자, 세월호 유가족들과 정대협 관계자들도 박수와 웃음으로 화답했다. 유가족과 정대협 부스는 사람들의 이동이 가장 많은 기념관 입구 왼편과 오른편에 배정했다.

    행사 시작부터 끝까지 '북적북적'…볼거리·먹거리 풍성

    기념관 로비는, 행사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사람들로 가득 찼다. 1년 만에 다시 만난 작은 교회 목회자들은 서로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눴다. 참가자들에게는 홍보 물품을 건네며 사역 내용을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지난 2006년, 창립한 겨자씨교회는 '탈성직' 교회다. 담임목사가 없고, 30여 명의 평신도가 교회를 이끌어 나간다. 중요한 결정은 모든 교인이 참여하는 총회에서 하고, 나머지는 운영위원회에서 처리한다. 1년 예산의 40%를 선교비로 지출한다. 교인들은 매월 한 번씩 돌아가며 설교한다.

    30년 넘게 목회한 목사가 겨자씨교회 부스를 찾았다. 그는 목회자 없이도 교회가 제대로 운영이 되는지 물었다. 겨자씨교회 교인은 매달 한 번씩 운영위원회가 열리고, 다수결에 따라 일을 진행한다며 운영상의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평신도 중심의 교회로서 '평등'을 중요하게 여기고, 서열로 이어질 수 있는 서리집사·안수집사·권사·장로 등 직책도 없다고 설명했다. 대신 모두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면서 지난 10년간 잡음 없이 지내고 있다고 했다.


    '어질고 착하다'는 의미를 지닌 이든교회(한희준 목사)는 '청년 사역'을 한다. 한희준 목사는 청년들에게 "예수를 잘 믿으라"가 아닌 "예수 가치(방식)대로 살라"고 강조한다. 예수 가치는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청년들의 주거·출산·육아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공동체를 만드는 중이다.

    한 목사의 롤모델은 가향공동체의 양진일 목사. 한 목사는 3년 전부터, 12명의 청년과 의기투합해 오고 있다. 설명을 듣던 한 신학생은 경제적 부담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목사는 "건물이 없어서 재정 부담이 없다. 오히려 여러 교계 단체도 후원하고 있다. 필요하면 다른 직업도 가질 생각이다"고 답했다.

    어린이와 장년이 함께 '통합 예배'를 하는 과천영광교회(우진성 목사)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1년 전부터 통합 예배를 해 오고 있다. 예배는 10~20분 정도 진행하며, 아이들도 의전에 참여한다. 촛불을 켜고, 성경을 교독한다. 전도사가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설교를 하고, 교회학교 찬양도 함께 부른다. 황미숙 교육목사는 "오히려 아이들이 예배를 재밌게 생각한다. 단순히 어른들만의 예배가 아닌 '우리' 예배로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통합 예배가 끝난 뒤 교육관으로 이동하고, 어른들은 다시 예배를 이어 간다.

    천안 단비교회(정훈영 목사)는 메마른 땅을 적시는 반가운 비와 같은 교회가 되길 꿈꾼다. 1992년 정훈영 목사는 천안의 한 시골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농사를 짓고 마을 할아버지·할머니들과 부대끼며 살아왔다. "교회에 나오라"는 말보다 항상 "필요한 것, 아픈 데 없느냐"는 물었다. 정 목사의 진정성을 확인한 마을 어른들은 닫혀 있던 마음을 열었다. 단비교회는 마을에서 직접 만든 쌀, 김치, 된장 등을 도시 회원들에게 공급하는 등 마을의 중심이 됐다.

    단비교회 부스는 감신대 학생 4명이 지키고 있었다. 단비교회에서 목회 현장 실습을 한 학생들은, 정 목사가 10년간 손수 한옥 교회를 지은 사실과 단비교회가 펼치는 사역 등을 설명했다. 최근 지역 주민들과 함께 '도란도란'이라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농촌 노인복지 사역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정훈영 목사는 "실습 학생들이 농사도 돕고, 마을 아이들을 위해 공부방까지 했다. 오늘 박람회도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 이번 박람회는 볼거리가 풍성했다. 원주 새동네교회 학생들이 바이올린과 기타, 첼로 등으로 연주하고 있는 모습. ⓒ뉴스앤조이 최승현

    박람회는 작은 교회들의 축제였다. 부대 행사가 곳곳에서 열렸다. 원주새동네교회 초·중·고생 10여 명은 기념관 앞마당에서 우쿨레레·통기타·바이올린·오카리나 등의 악기로 오케스트라를 선보였다. '하나님은 사랑이에요', '살아계신 주', '예수 사랑하심은', '에델바이스' 등 10곡을 연주했다. 흔들림 없는 연주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지켜보던 이들은 연주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쳤다. 오케스트라가 끝난 후에는 장구, 북, 꽹과리 등을 통한 국악도 선보였다.

    전시·체험 행사도 열렸다. 송병구 목사(색동교회)가 전 세계에서 수집한 십자가 100여 점을 전시하고, 향린교회(조헌정 목사)는 희망자를 대상으로 국악 체험 교실을 열었다. 비블리오드라마 교육센터가 주관한 비블리오드라마 체험도 진행됐다. 비블리오드라마는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연극 방식으로 재현해 자신과 타인, 성서를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점심은 앞마당에 설치한 식탁에서 함께했다. 팔당마실교회(조언정 목사)는 앉은뱅이 밀 비빔밥과 무항생제 수제 돈가스, 미나리 부침개 등을 팔았다. 감신대·연세대 학생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 중인 '도시락&톡'(박인성 목사)은 김밥, 떡볶이, 어묵 등을 팔았다. 판매 수익금 중 일부는 정대협에 후원하기로 했다.

    시끌벅적한 박람회는 오후 4시, 징소리와 함께 마무리에 들어갔다. 찬양 사역팀 '브라운워십'이 1시간 동안 다짐 예배를 인도했다. 예배 중간에는 정대협 김동희 사무처장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47명의 할머니가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만일 배상금을 받게 되면 전쟁터에서 성폭력당하는 여성들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생명평화마당도 이날 식사·기부 판매 수익금과 헌금을 더한 195만 6,000원을 정대협에 후원하기로 했다.

    갈 길 잃은 한국교회, 작은 교회가 대안

    다짐 예배에 참석한 300여 명은 찬송 '어둔 밤 마음에 잠겨'를 부른 뒤 집으로 돌아갔다. 작은 교회 박람회를 찾은 이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한신대 신대원에 재학 중인 한철희 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박람회를 찾았다. 평소 마을과 지역을 섬기는 공동체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 직접 설명을 듣고 싶었다. 아름다운마을공동체 부스에서 설명을 듣고, 도전 의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학부생 김호현 씨는 "솔직히 '작은 교회'를 규모가 작은 교회 정도로만 이해했다. 이렇게 다양한 목회 방식이 존재하는 줄 몰랐다. 소수의 교인이 모여 공동생활하는 목회를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분당의 한 대형 교회 장로로 지내다가, 몇 년 전 작은 교회로 옮긴 교인도 만날 수 있었다. 박람회에 처음 참석한 한창천 장로(아름다운주님의교회)는 작은 교회들이 이렇게까지 열심히 사는지 몰랐다고 했다. 크지 않으려는 대신 내실을 다지고, 목회자가 직접 먹고살기 위해 발로 뛰는 게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한 장로는 이런 박람회에는 대형 교회 부목사들이 와야 한다고 말했다. 때가 되면 나가야 하는 막막한 처지인데, 박람회에 와서 배워 가면 좋지 않겠냐고 했다.

    행사에 초청을 받은 세월호 유가족들은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단원고 고 이창현 군의 어머니 최순화 씨는 "함께 간 어머니들이 지원군을 만난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고 했다. 마당교회에서는 옐로·민트·핑크 세 가지 색깔로 된 팔찌를 만들어 줬고, 희생된 아이들 304명의 이름도 써 줬다"고 말했다.

    이번 박람회는 본격적인 작은 교회 운동을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3년 연속 박람회를 준비해 온 방인성 목사는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방 목사는 "오늘 느낀 것은 작은 교회들이 의무가 아닌 '기쁨'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제 운동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본다. 작은 교회 운동은 시대의 흐름이자 부름이다. 성장이 아닌 성숙을 지향하는 작은 교회들 간의 연대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이제는 작은 교회 대안이다"고 말했다.




    ▲ 송병구 목사(색동교회)는 전 세계에서 수집한 십자가 100여 점을 이번 박람회에서 선보였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먹거리도 풍성했다. 김밥과 떡볶이, 어묵 등을 준비 중인 '도시락&톡'(박인성 목사). 매주 감신대와 연세대 학생들에게 밥을 무료로 제공하고, 말씀도 전한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점심시간 기념관 앞마당에 식탁이 길게 놓였다. 참가자들은 여기서 비빔밥과 돈가스, 김밥 등을 먹으며, 교제를 나눴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향린교회(조헌정 목사) 교우들이 국악 강습을 하고 있는 모습. ⓒ뉴스앤조이 최승현



    ▲ 이화교회 로비에서는 박람회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블리오드라마가 진행됐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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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황불로 멸망한 소돔으로 추정되는 유적지 요르단서 발견



    ▲데일리메일 홈페이지

    성경에 유황과 불에 의해 멸망한 것으로 기록된 도시 ‘소돔’으로 추정되는 유적이 요르단에서 발견됐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은 최근 요르단강 동쪽 ‘탈 엘-하맘’ 지역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기원전 3500년~1540년)의 거대한 도시 유적이 성서에 묘사된 소돔에 관한 내용과 일치한다고 전했다.

    2005년부터 발굴 작업을 이끌어온 미국 뉴멕시코 주 트리니티 사우스웨스턴대학 스티븐 콜린스 박사는 5.2m 두께의 흙벽돌로 쌓은 10m 높이의 방어용 성벽 유적을 발견했으며 성벽은 여러 개의 출입문과 망루, 최소한 한 개의 통로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팀은 올해 탑과 성문을 추가 발견했다.

    조사팀은 탈 엘-하맘에서 발굴된 유적은 성서에 언급된 것처럼 요르단강 주위의 중요 교역로에 위치해 번영을 누렸던 소돔임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콜린스 박사는 “탈 엘-하맘에서 후기 청동기시대 유물이 발견되지 않는데 이는 청동기 중기 말엽에 갑자기 황폐화된 것을 의미한다”며 “이곳이 소돔이 위치했던 곳임을 뒷받침해주는 증거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탈 엘-하맘을 소돔이 위치했던 곳으로 선택해 발굴한 이유는 이 지역이 청동기 시대 다른 유적지보다 규모가 5~10배 크기 때문”이라면서 “요르단강 계곡 남쪽의 청동기 시대는 고고학계 지도에서 빈 공간으로 남아있었으며 우리가 발견한 것은 중요한 도시국가로 발굴 작업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곳”이라고 덧붙였다.

    탈 엘-하맘 지역은 700여년 간 사람이 살지 않고 버려졌다가 다시 번영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도시로 진입하는 거대한 철문을 비롯한 철기시대(기원전 1천년~332년)의 유적에서 드러났다.

    콜린스 박사는 소돔이 황폐화된 이유는 지진이 발생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고 다른 전문가들은 소행성 충돌 가능성도 제기했다고 데일리메일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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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디는 21세기 한국교회에 뭐라고 말할까

    김진의 <간디와의 대화 어떻게 살 것인가>(스타북스)
    최유리 기자



    ▲ <간디와의 대화 어떻게 살 것인가> / 김진 지음 / 스타북스 펴냄 / 448쪽 / 1만 6,000원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책 표지에 간디가 인자하게 웃고 있다. 삶의 푯대를 찾지 못하는 자에게 답을 말해 줄 것만 같다. 그 표정에 매혹돼 손을 뻗어 볼까 싶지만 500쪽에 육박하는 분량은 책 읽기를 망설이게 한다. 그러나 인생‧종교‧섹스‧노동‧건강에 대해 명쾌하게 대답하는 간디를 보고 있으면 분량의 부담은 사라져 버린다.

    <간디와의 대화 어떻게 살 것인가>는 진행 방식이 특이하다. '세계 최초로 시도한 간디와의 가상 대화'. 저자는 간디의 사상과 삶을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한다. 저자 김진 목사는 총신대 종교교육과와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유학 당시 그는 교환학생으로 인도에 가서 인도 사상과 영성, 인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2004년에는 인도로 건너가 8년간 공동체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인도에 관심이 깊은 저자는 간디에게 질문을 던진다. 1948년 사망한 간디가 들려주는 사상과 삶 이야기는 21세기를 사는 독자들의 고민과 맞물려 있다.

    '참‧나'를 실현하는 브라마차랴

    여러 챕터 중 독자들이 관심을 둘 만한 몇 가지 주제에 대해 언급하려 한다. 먼저 '성'이다. 간디는 결혼 이후에 '브라마차랴'를 시작했다. 브라마차랴는 남녀 간의 섹스에 대한 금욕을 강조하는 것이다. 간디는 37세 이후 성적인 관계를 포기하면서 오히려 결혼의 축복을 맛볼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의 논리를 설핏 보면, 브라마차랴 운동은 현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고리타분하게 느껴진다. 이런 오해에 그는 답한다.

    "먼저 분명하게 말씀드리는데, 나는 성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섹스는 신이 인간에게 주신 좋고 고귀한 것이기 때문에 전혀 부끄러워할 것이 없어요. 내가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은 욕정을 위해서 섹스를 남발하는 것입니다." (179쪽)

    간디에게 브라마차랴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이는 신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그는 '참‧나'(眞我)의 실현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간디는 감각을 완전하게 통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런 측면에서 그가 말한 금욕, 욕정을 다스리는 것은 섹스를 절제하는 것을 넘어 신을 추구하고 참‧나를 실현하는 방법이자 길이 된다.

    "내가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성적인 에너지가 뿜어내는 힘은 모든 감각 능력의 '자기 절제'에서 비롯된다는 점입니다. 그 힘은 끝없는 성적 욕구의 탐닉이나 섹스 행위를 통해서 결코 드러나지 않습니다. 또한 브라마차랴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삶의 자세입니다. 다시 말해 진리가 궁극적이며 변할 수 없는 목적이고, 비폭력이 그 목적에 도달하는 길이라면 브라마차랴는 그 길을 따라 걸어가기에 적합한 자신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반드시 브라마차랴를 기반으로 해서 진리와 비폭력을 동시에 추구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84쪽)

    섹스는 브라마차랴의 일부일 뿐이다. 간디는 성욕을 절제하며 동시에 평생 단식과 채식을 했다. 그는 먹을거리를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보지 않았다. 간디는 채식이 우리의 감정이나 욕망을 절제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동물성 식품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오히려 불필요한 에너지를 발산시키고 사람에 따라서는 욕망의 분출을 조장한다고도 언급한다. 우리가 먹는 것이 영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말이다.

    그는 사회적인 차원으로 단식을 해석하기도 했다. 단식의 사전적 의미는 '음식을 끊는다'지만 산스크리트어로는 본래 '신 옆에 머무르다, 신과 가까이에 있다'는 뜻이다. 단식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잊고 있었던 가난한 자들의 배고픔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고 그들에 대한 긍휼이 생겨난다고 한다.

    비폭력은 인간의 견고한 마음도 녹인다

    '간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비폭력 운동'이다. 간디는 영국인이 인도인을 인종차별 할 때나 인도가 종교적 분쟁에 시달릴 때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물레를 돌리고 단힐하는 등의 모습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펼쳤다. 그에게 비폭력이란 어떤 의미일까?

    "비폭력 운동을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비폭력 사상에 대한 바른 이해와 헌신이 요구됩니다. 그것이 출발점입니다. 비폭력 사상의 출발은 힌두교의 오랜 생명 사상인 아힘사 정신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폭력은 아힘사의 총체적 실현의 길입니다." (383쪽)

    '아힘사'는 '죽이지 않음'이라는 뜻으로 생물을 해치지 않고, 모든 사악한 생각‧불합리함‧서두름‧거짓‧증오‧악의 등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가 말하는 비폭력에서는 사랑을 강조한다. 상대에게 드러나는 행동만 비폭력적인 방식이고 그 마음에 미움이 들끓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상대에게 친구라는 것을 느끼도록 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간디는 이 모든 것이 쉽지 않지만 신의 은총으로, 또 신의 진리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다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증오는 사랑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고 보았다. 금속도 열에 녹듯이 가장 견고한 인간 마음도 비폭력이라는 열기 앞에 녹을 수 밖에 없다는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한다.

    철저하게 '신 중심'이었던 간디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그동안 간디를 '평화주의자'나 '인도를 위했던 운동가'로만 치부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철저히 이 모든 행위의 기반을 신과의 관계에서 찾았다. 또 이 모든 일의 원동력을 기도와 신으로부터의 은총에 두었다.

    "삶은 결코 환락이 아닙니다.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삶의 내용이 아니에요. 삶은 신을 찾아가고, 신을 노래하고, 신을 사랑하고, 또 그 신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건 우리의 삶 전체가 신에게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신을 실현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집착에서 자유로운 상태를 합니다. 구체적으로 그 길은 우리가 인류와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것입니다. 봉사는 창조 세계에서 신을 보고, 살아 있는 생명체와 하나가 되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62~63쪽)

    신의 존재에 집중하고 그 결과로 이웃을 돌보며 사는 삶을 실현한 간디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친 예수의 가르침과 닮아 있다. 간디는 예수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을까? 저자가 예수에 대해 묻자 간디는 한때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일까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다. 한쪽 뺨을 맞았을 때 보복하지 말고 다른 뺨을 돌려 대라고 한 예수의 가르침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예수는 하느님의 뜻을, 누구도 그리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에 잘 드러내셨지요. 그분은 당대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의심할 바 없이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유일한 아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를 하느님의 아들로 받아들입니다." (335쪽)

    그는 예수의 가르침에 동의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았다. 특히 산상수훈을 통해 예수를 더욱 사랑하게 됐다는 간디는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침을 놓는다.

    "단언컨대 정통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메시지를 왜곡시켰습니다. 그리고 서구 그리스도교는 실제로 그리스도가 원했던 본래 모습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의 그리스도교를 반대합니다. 그리스도교인들이 산상수훈을 제대로 따르기만 해도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일은 없을 텐데 아쉽습니다. 또 각자의 내면의 빛을 따르면서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알았더라면 조직과 공예배, 성직에 그리 안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략) 좀 심하게 말하면, 현실 그리스도교를 보면 대부분 사람들이 오직 이름뿐인 그리스도교인들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맘몬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말했는데 추종자들은 소유한 물질의 정도에 따라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리스도교로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실상은 산상설교의 뜻과 반대입니다. 사탄은 '하느님의 이름'을 입에 담고 나타날 때 가장 크게 성공합니다." (361~362쪽)

    마지막으로 그가 남긴 말은 21세기의 한국교회를 부끄럽게 한다.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삶을 자신의 자리로 여겼던 예수와 달리 예수의 이름만 빌려다 쓰는 한국교회를 향해 '제발 너희들이 섬기는 신의 모습대로 살아 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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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착화된 새벽 기도회의 유래와 본질

    길선주 장로와 그 친구들의 도교 수행에서 시작돼…

    불교나 무교와는 관계 없어
    옥성득 sungoak@hotmail.com

    새벽 기도회는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의례다. 지금 50대 중반을 넘은 분들은 젊었을 때 새벽을 깨우는 종소리를 듣고 일어나 교회에 나간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새벽 기도회가 무교(여성의 새벽 치성)나 불교(남녀 승려들의 새벽 예불)에서 유래되었다는 통설을 비판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새벽 기도회가 남자들의 선도(仙道) 수련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새벽 기도회의 기독교화 과정이 어땠는지도 서술할 생각이다. 유래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초기 새벽 기도회에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는 초월성,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한 역사성이 결합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새벽 기도회는 불교나 무교에서 유래된 게 아냐

    여러 글이나 책을 보면 초기 한국교회의 새벽 기도회가 불교 사찰 승려들의 새벽 예불에서 유래했다고 적혀 있다. 민간 무속에서 여성들이 새벽에 정화수를 떠 놓고 샛별(계명성)이나 칠성신에게 빌던 성수(星宿) 신앙이나 고목 앞에서 빌던 신목(神木) 신앙, 혹은 조왕신(부엌 음식신)에게 빌던 데서 왔다고 서술하기도 한다. 새벽 미명은 신령한 존재와 영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여인들은 남편과 자식을 위해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간절하게 빌고 치성을 드렸다. 그 기복적 가족 기도가 그대로 기독교로 넘어와서 새벽마다 교회에서 가족의 건강과 사업의 번창을 위해서 기도하는 '무교적 기독교인'이 많다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필자는 초대 한국교회에 관한 기록에서 새벽 기도회가 그런 연관성을 가졌다고 언급한 자료를 아직 본 적이 없다. 1970년대 이후에 급성장한 한국교회의 기복 신앙을 비판하는 글들이 피상적으로 그 연결성을 유추하고 짐작한 것뿐이다. 구체적인 역사적 증거나 1차 사료를 가지고 쓴 것은 아니다.



    ▲ 1894년 동대문. 당시에는 성 밖 주민이 성 안 주민보다 더 많았다.

    도시의 파루와 사찰의 새벽종

    대개 초대 한국교회의 새벽 기도회는 4시 30분이나 5시에 드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새벽 4시 30분이라는 시간은 도성의 새벽 파루와 관련되어 있었다.

    조선 시대 큰 도시는 4대 문과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세종 때 만든 자격루와 물시계로 정확한 시간을 알았다. 따라서 같은 시각에 종을 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했다. 새벽 4시에는 파루(罷漏)로 33번 종을 쳐서 성문을 열고 통행을 시작했다. 밤 10시에는 인정(人定, 인경)으로 28번 타종하여 우주의 일월성신, 28개 별자리를 쉬게 하고 성문을 닫고 통행금지를 실시했다. 파루 때 했던 33번 타종은 불교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 수미산(須彌山) 정상에 있는 33개의 하늘을 깨우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사찰처럼 새벽 3시나 5시가 아니라, 도성에서 4시에 파루를 친 것은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노동을 해야 했던 농경시대의 산물이었다. 수천년간 그때 일어나 일하던 인간의 생체리듬에 맞춘 것이었다. 새벽 기도회를 4시 30분이나 5시에 시작한 것은 4시에 통행이 시작되던 습관을 따라 한 것이다. 도성의 종각에서 타종하지 않아도 4시에 일어나 예배당에 오면 4시 30분이 되었고, 먼 곳에서 오는 자들이 많으면 5시에 모여 기도할 수 있었다. 즉 파루와 연관한 하루 일상의 시작 시간에 일어나 교회로 와서 새벽 기도회로 모였다.

    절에서는 하루에 다섯 번 범종을 울리고 예불을 드렸다. 초경(저녁 8시), 이경(10시), 삼경(자정, 108번), 사경(새벽 3시, 5번), 오경(새벽 5시, 28번 타종으로 28세계가 깨달음을 얻기를 기원) 등이었다. 사찰의 상가 공동체는 성 안에 있지 않고 산속에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새벽 3시에 예불, 다시 새벽 5시에 운판(나무판)을 치고 목어(목탁)를 울리고, 법고(북)를 울린 다음에 범종(梵鍾)을 28번 치고 승려들이 함께 모여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중생들이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기를 구했다.

    성무 일과에 따라 기도했던 중세 유럽의 수도원들처럼, 수도 승려끼리 생체리듬에 반하는 시간에 일어나 묵상하고 잠과 욕망을 끊는 행위로 드린 염불이었다. 즉 사찰의 새벽종은 세속 도시의 하루를 시작하는 파루 종소리와 전혀 다른 성격의 종으로, 속세를 떠난 수도승의 정좌와 묵상과 예불을 위한 시공간을 만들었다. 그 피안의 공간에서, 매일 자정과 새벽 3시에도 일어나 육체성을 거부하고, 전문종교인 집단의 집회를 만들었다. 따라서 새벽 기도회와 달랐고, 따라서 둘 사이의 연관성은 적었다.

    정리하자면, 새벽 기도회는 불교 사찰의 범종이나 전문 종교인들이 드린 피안적 예불과 상관이 없다. 오히려 세속 도성의 새벽 파루와 함께했던 하루 일상의 시작과 연관된다. 그와 같은 세속성 안에서 거룩성을 회복하고 경건하게 살려고 했던 신자들이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던 데서 창출되었다. 긴장감이 있는 성속의 경계에서, 밤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문지방과 같은 틈새 시간에 새롭게 넣은 기도 시간이었다.

    새벽 기도회가 여성들의 무교적 민속신앙에서 유래했을까

    1905년 초 송도(개성)에서 열린 남감리회 부인사경회 때 캐롤(A. Carroll)이 경험한 내용을 보자.

    "아침 여섯 시가 되자 마치 아침을 알리는 시계처럼 건너에 있던 [여자]교인들이 일어나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하는 바람에 나도 일어나야 했다. 그런데 다음 날에는 새로 몇 사람이 오더니 새벽 4시에 사람들을 깨워 무려 한 시간 반 동안이나 그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이덕주 교수는 이 글을 해석하면서, 과거 새벽에 정화수를 떠놓고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조왕신에게 빌던 여자들의 습관이 사경회 기간 중에 새벽 기도회로 모습을 바꾸었다고 보았다[이덕주, <한국 토착교회 형성사 연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0) 348~350쪽]. 그런데 이 자료를 가지고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부엌에서 조왕신에게 노래로 찬양을 드렸던가? 아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치성을 드릴 때 옆 사람들과 한 시간 반 동안 대화를 나누었던가? 아니다. 자료에 나오는 일시적인 새벽 기도회와 무속의 조왕신 치성 사이에는 시공간·성격·의례 모든 면에서 연속성을 찾기 어렵다.

    새벽 기도회는 선도에서 개종한 길선주와 평양 교인들이 시작했다

    새벽 기도회의 유래에 대해서는 필자가 발표한 논문이 있다. 자세한 논의는 "평양대부흥과 길선주 영성의 도교적 영향", <한국기독교와 역사> 25호 (2006년 9월) 7~35쪽을 보라. 필자는 이 논문에서 선도(민간 도교) 수행자였던 평양의 길선주와 그의 동료들이 청일전쟁 후에 개종하고, 평소 수행하던 새벽 기도·통성기도·철야 기도 등을 1905년 전후 사경회에 도입했으며, 1909년 전후에 교회 프로그램인 기도회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새벽 기도회가 길선주와 그 친구들의 도교 수행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에 아직 반론을 들은 적이 없다. 필자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길선주가 중심이 되어 선도에서 기독교로 토착화한 새벽 기도와 통성기도는 1910년 전후부터 한국교회에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사적인 소원을 빌었던 도교의 기도와 비교하면, 개신교의 기도는 민족적 위기에 교회와 민족 공동체를 위한 공공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또한 집단적인 '새벽 기도회'는 장로교회의 사경회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1898년 2월, 황해도 강진교회 사경회에서 일반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새벽 기도회를 시작했으며, 황해도의 다른 사경회(1901년 2월)에서도 교인들이 새벽 기도회를 시작한 것을 처음 소개했다. 이와 같이 사경회 때 소규모로 일시적으로 모이던 새벽 기도회가 1905년 평양 도사경회 때 정식 프로그램으로 채택되었으며, 1909년에 개교회의 프로그램으로 전환되었다고 정리했다.

    1890~1905년, 사경회에서 시작한 새벽 기도

    선교사들은 1892년 10명 정도의 한국인 남자 지도자들과 조사를 모아 한 달 정도 집중적으로 성경, 교리, 전도법, 설교법, 교회를 다스리는 법 등을 가르치는 사경회를 조직했다. 1891년 채택한 네비어스의 방법에 따라 본토인 목회자와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1892년 11월 28일부터 12월 24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첫 신학반에 참석한 백홍준, 한석진, 참석자들이 새벽에 일어나 자발적인 기도회로 모였다. 이후 이 조사 사경회에서 새벽에 일어나 찬송하고 기도하는 모임이 계속되었다. 조사 사경회의 새벽 기도회가 황해도에서 일반 사경회 새벽 기도회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말테의 논문 "한국 개신교회의 새벽 기도의 초기에 대한 연구", <신학과 실천> 31호 (2012년 5월) 183~225쪽에는 1892년 조사 사경회 전 백홍준, 마포삼열, 한석진 등의 새벽 기도 사례를 소개한 후, 여러 사경회에서 행해진 새벽 기도(회) 사례를 잘 정리해 놓았다.

    후자는 필자가 소개한 황해도 강진교회 사경회 새벽 기도(1898년 2월)와 다른 황해도 사경회 새벽 기도(1901년 2월)에 이어, 평북 초산(1901), 원산(1903), 평양(1904), 서울 이화학당(1904), 송도(1905) 등의 사경회에서 이루어진 새벽 기도 사례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이어서 필자가 정리한 1909년, 길선주 목사와 박치록 장로가 주도한 평양 장대현교회의 새벽 기도회를 마지막으로 언급했다. 이 가운데 1909년 새벽 기도회만 교회에서 광고한 후 일반 신도들이 모인 기도회였고, 나머지는 사경회 때 이루어진 일주일 정도의 한시적인 기도회였다.

    이말테는 새벽 기도를 대부분 남성들이 시작한 것에 주목했다. 여성들의 무속적 새벽 치성에서 새벽 기도가 유래했다는 통설을 비판했다. 또한 1893년 평양 지부를 개척하던 마페트(S. A. Moffett) 목사와 조사 한석진의 가정 새벽 기도를 근거로, 선교사 마페트가 새벽 기도 창시에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페트가 새벽 기도를 시작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주장은 더 검토되어야 한다. 만일 그가 새벽 기도에 관심이 많았다면, 1895년 이후 가정에서 새벽 기도회를 꾸준히 드리거나, 평양 널다리교회 혹은 장대현교회가 준공된 1900년에 새벽 기도회를 창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페트가 남긴 글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또한 개인적으로 잠시 드린 새벽 기도를 교회의 '새벽 기도회'의 유래로 보기는 어렵다.

    길선주의 첫 장대현교회 새벽 기도회 모임, 1906년 아닌 1909년

    많은 책이나 온라인 블로그에 보면 다음과 같은 잘못된 글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새벽 기도는 1906년 가을, '길선주'장로의 주도로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하였다. 이 새벽 기도회는 1907년 평양에서 촉발된 한국 기독교 부흥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길선주 장로는 국가가 어려운 상황(당시 일제강점기)에 놓여 있는 것을 걱정하여 새벽에 교회에 나가 기도하였고, 많은 교인들이 같이 기도하기 시작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300~500명에 이르는 교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길선주의 새벽 기도회가 1906년 가을에 시작했다 △길선주의 새벽 기도회가 1907년 부흥의 시발점이 되었다 △당시는 일제강점기였다는 세 가지 주장은 오류다. 1906년으로 알려진 것은 김인서가 1930년대 <신앙생활>에 길선주 소전을 쓰면서 그렇게 잘못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 새벽 기도회는 부흥 운동이 끝난 후 열기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냉랭해졌을 때 다시 부흥의 불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1909년에 시작한 새로운 부흥회 방법이었다. 또한 아직 한국이 일제의 완전한 식민지가 되기 이전이었다.

    새벽 기도회가 정착한 것은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반

    1907년 대부흥 이후 1910년대에 새벽 기도회가 한국교회에 널리 시행되고 매일 새벽에 모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런 기록은 없다. 이덕주 교수가 일찍 지적한 대로 1914년에 시작한 강화도 마리산 부흥회 때나 여러 사경회 때의 새벽 기도회 모두 1주일을 사경회와 부흥회 때 드린 것이다. 개교회 차원에서 정착된 것은 아니었다. 또 교회에 홀로 새벽에 나가 30일이나 100일 개인 기도를 드린 예들이나 3·1 운동이 일어나기 전, 신석구 목사의 개인 새벽 기도 등에서 보듯이 1919년 이전에는 매일 새벽 기도회로 모이는 교회가 없었다.

    1920년대 후반에 정착하는 새벽 기도회 자료는 더 수집해서 정리해야 할 주제다. 이때 새벽 기도회가 매일 드리는 일상의 기도로 거의 모든 교회에서 자리 잡은 것은 식민지 치하에서 더욱 기도가 간절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하루하루가 종말인 가난한 교인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새벽 시간의 기독교화, 파루를 대신한 교회의 새벽 종소리

    1910년대 사경회 때의 새벽 기도회는 도시의 새벽 시간을 기독교화하기 시작했다. 1910년 전후 일제 총독부는 '문명' 발전, 도로 확장과 '신작로' 개설이라는 명목으로 서울과 다른 도시들의 성벽을 허물었다. 4대 문을 지키는 일본 순경의 호각 소리와 칼 소리가 새벽 소리가 되었다. 성벽이 없는 경성에 보신각은 무용지물이라 폐쇄되었다. 서울은 영혼의 종소리를 잃어버렸다. 성(城)이 없는 경성(京城)은 보신각 종소리(聲)가 사라진 경성이었고, 종소리 없는 도시는 성스러움(聖)이 사라진 식민지의 경성이었다.

    도시와 시민들에게 다시 종소리를 준 것이 교회와 성당이었다. 명동성당에서는 아침 6시, 정오 12시, 저녁 6시 종을 3번 쳤다. 주일마다 각 도시의 교회에서, 그리고 점차 교회마다 사경회를 다른 기간에 하면서 새벽에 타종했다. 여러 교회에서 퍼져 나간 종소리는 다시 새벽 시간을 구별하고, 도시의 새벽을 살리는 영성(靈聲)이 되었다. 도시의 혼이 살아나는 소리였다. 성수주일이 일주일을 시작하는 안식일의 성화였다면, 새벽 기도회는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의 성화였다.



    ▲ 1909년 전주교회에서 종을 설치하기 위해 소달구지로 나르고 있다. 수직성을 확보한 종탑에서 나오는 종소리로 전주 시의 시간이 성화하기 시작했다.

    새벽 기도회는 세속 성자들이 확보한 경계적 시공간

    성 안에 사는 시민들은 새벽 4시에 성문이 열리면 일어나던 습관을 따라, 성의 종소리가 사라진 후에도 대개 4시에 거동을 시작했다. 그래서 교회에 도착하는 4시 30분이나 5시에 새벽 기도회로 모이고, 이어서 일하러 가면 시간이 적절했다. 따라서 4시 30분이나 5시에 시작한 교회의 새벽 기도회는, 격리된 산속에 있는 사찰에서 새벽 3시나 5시에 승려들끼리 모여 조용하고 엄숙하게 예불을 드리는 것과 달랐다.

    세속 도시 속에서 거룩성을 느끼고 영성을 유지하려는 노동자와 주부들의 기도회였다. 그 예배는 곧 다가올 일상의 무거움 앞에 하늘의 도움을 구하는 시간이었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넘어가는 하루의 문지방과 같은 경계선의 시간의 사이(時間), 그래서 긴장이 팽팽한 틈새 시간, 변혁을 품고 있는 전이의 시공간에, 새벽을 깨우는 자들이 모여 하나님을 구했다. 새벽에 일어나야 생존할 수 있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동자들과 밤낮 쉼 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공간이었다.

    따라서 잠자는 하늘을 깨우거나 중생을 계몽하려는 사찰의 예불과 달랐으며, 여성들이 홀로 칠성신에게 비는 민간신앙의 치성과 달랐다. 전자에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 없었고, 후자에는 남녀가 함께 하는 공동체성이 없었다. 양자 모두 공적 기도가 없었다. 새벽 기도회가 한국 개신교를 상징하는 의례가 된 것은 피안의 기도나 사적 기복인 기도와 달리 세속 안에서 일반 교인들이 함께 모여 드리는 공적인 기도회로 기독교화했기 때문이다.

    소리가 세상을 구한다. 거룩한 영혼의 종소리가 사라진 한국교회에 다시 종을 치는 종지기들이 필요하다. 남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새벽마다 종을 치던 사찰집사님의 매일의 헌신이 있던 교회, 어릴 때 들었던 교회 종소리가 그립다.

    기도가 세상을 구한다. 새벽 미명에 무릎 꿇고 자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던 어머니들의 눈물로 지금 청년과 장년들이 그나마 살고 교회가 살아 있다.

    진정한 새벽 기도회가 세상을 구한다. 한 손에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수직성을 담고, 다른 한 손에는 세속 성자로서 민족을 위해 도고하는 수평성을 담아 두 손을 모아 함께 드리는 새벽의 기도로 교회가 산다.

    옥성득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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