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가 손대는 일마다 잘 안 될까? 선교사역이나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골로새서1:15-23 2015-06-12 11:34:25 read : 6491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왜 내가 손대는 일마다 잘 안 될까요?
여러분, 제가 만든 이야기입니다, 한 번 들어보세요.
어떤 사람이 유럽여행을 가서 독일에 들렀습니다.
자기가 묵는 숙소 근처에서 아름답게 생긴 병을 하나 발견합니다.
병에 라벨이 붙어서 설명이 적혀있는데, 독일어를 모르니까 그 내용을 알지 못해요.
궁금해서 쭉 훑어보다보니까, 낯이 익은 단어가 하나 눈에 띱니다.
“Gift” 기프트라는 단어에요. 이 기프트를 모르는 사람은 없잖아요,
우리나라에도 Gift shop이 많으니까.
‘선물’, 혹은 내게 주어져 있는 ‘재능, 은사’를 뜻하는 영어 단어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gift’라는 단어가 딱 들어오니까
이 병에 든 내용물이 분명히 좋을 것이라고 확신을 합니다.
그리고 마시고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제가 만든 이야기입니다)
독일에서의 Gift는 영어에서의 Gift와 뜻이 같지 않습니다,
스펠링은 똑같은데요, 독일어로 gift는 ‘독약’이란 뜻입니다.
영어의 gift, 즉 ‘선물’이나 내가 받은 ‘재능’이라고 하는 의미를 갖는 독일어의 단어는
‘가베’입니다, gabe.
그러나 스펠링이 같은 독일어 gift는 독극물이라는 뜻입니다.
만약에 독일어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제가 함께 여행을 갔는데,
그 사람이 그 병을 열고 들이키려고 했다면, 제가 목숨을 걸고 말렸을 것입니다.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큰일 난다고.. 죽는다고..
▲그러면 왜 내가 손대는 일마다 잘 안 되는 겁니까?
선교사역이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독극물’을 ‘선물’인줄 알고, 좋다고 취하게 되니까.. 하나님이 말리시는 겁니다.
사업부터 작은 일 큰일,
그리고 자식 기르는 것도 정말 내 마음대로 되지 않잖아요?
잘 안 되는 일, 자꾸 막히는 일, 그 어느 것도
절대로 우연이 아니라는 걸 우리가 알아야 돼요.
현실적으로 볼 때 이런저런 ‘내 잘못 때문’이라고 보이지만,
사실 깊게 보면, 다 하나님아버지께서
우리가 손대는 일을 막고 계시기 때문에 안 되는 겁니다.
내가 자기계발서적을 덜 읽어서도 아니고,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을 몸에 익히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고,
전문지식이 없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막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막으십니까?
그 이유는, 내가 손대서 하는 일이 다 그대로 이루어지면
그게 내게, 영어의 Gift 선물이 아니라, 독일어의 Gift, 독극물이 되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그렇게 사사건건 우리가 손을 대서 이루고자 하는 일마다 막으시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이 보실 때 분명히 독극물인데, 우리는 너무너무 무식하고 용감하게도,
그걸 죽을힘을 다해서 이루려고만 하는 겁니다.
이 일이 잘되면 내게 크게 유익해서
분명히 내가 만족하고 기쁘고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 거예요.
독극물 병에서 Gift를 보고, 이건 분명히 선물이고 좋은 것이라고 믿는 것과
똑같은 거라는 얘깁니다.
▲좀 더 확대해서 본질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에서 내가, 내 뜻대로, 내 손을 대서 추진하는 일은,
무조건 안 되는 게 유익합니다.
내가 ‘내 뜻대로’ 내 손을 댄다는 것 자체가, 독이 발생하고 있는 상태기 때문에,
손대는 게 이루어졌다면.. 그건 독을 마신 게 돼버립니다.
돈 벌어 부자 되는 일, 승진하는 일,
사업하는 일, 일류대학 들어가는 일,
명품을 사는 이런 일들을, 좋아하고 소원하고 있는 이런 마음상태,
내 마음이 이 세상을 향하고 있는 이 상태에서.. 독이 발생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자기 뜻대로, 주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서,
스스로 손을 대서 추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거예요.
원래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면,
이 세상 속에서 세상에 손을 대지 않고 살아가는 게
원래 인간으로 지음 받은 존재의 모습입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시겠지요?
분명히 모르실 거예요.
그걸 제가 지금부터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본론
본문 골1:15~23절을 요약하면,
‘만물이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만들어졌고,
예수그리스도의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1:16
게티즈버그에서 링컨 대통령이, 민주주의에 대해 얘기한 것과 똑같은 거예요.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의 것인 것이
이 세상만물이고,
그 만물 중에는 우리의 가정도 내 사업도 내 인생도 다 들어가 있는 겁니다.
(오늘 본문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로서 만물 위에 계신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건 다음 시간에 할 거예요.)
▲내가 손대는 모든 일은, 이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 만물은, 그리스도에 의해/위해 창조되었다고 했지요? :16
다시 말하면 이 세상만물들 중에 속해있는 것들이에요.
만물이 창조되기 전, 만물 안에는
오늘날 내가 추구하는 모든 일이 다 들어있는 거예요,
내 모든 인생의 일들이 다 포함되어있는
그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존재하고 있는 분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셨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아들에게 전적으로 흘러가고,
아들의 사랑이 아버지에게 전적으로 흘러들어옵니다.
이 사랑의 교류가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의 시선은
단 한 순간도 아들 예수님에게서 다른 대상으로 갈 수도 없고,
다른 대상이 없으니까, 또 대상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십니다.
예수님도 아버지에 대해서 마찬가지세요.
영원 전부터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시니까.
이렇게 해서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보고 계시는데,
창조란 그러면 어떻게 생겼느냐?
창조는 예수님 말고 다른 대상 아닙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보고 계시고
예수님께 시선과 사랑을 주고 계시던 것을 잠깐 멈추시고,
만들어질 대상과 만들어질 대상이 놓일 그 영역으로 시선을 돌리셨을까요?
아니라는 얘깁니다.
예수님께 시선이 고정되고 한 순간도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시는 거예요.
그런 가운데서, 만물이 창조된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더불어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경험을 해요.
열렬하게 사랑하는 남녀에게는
자신의 애인과 무관한 일에 대해서는, 의미부여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의 시선이 애인에게 24시간 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일이 내 마음에 의미 있는 일로 여겨지려면
애인과 관계되는 일이여야 됩니다.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도대체 창조는 어떻게 이루어진 것이냐?
예수님을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향하시던 시선을 멈추시고
예수님 말고 다른 영역의 피조물들을 만드신 게 아니라,
예수님을 향해서, 계속 시선과 사랑이 가고 있는 동안에,
만들어놓으신 게 바로 이 세상만물이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예수님은 만물이 나타나게 되는 프리즘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뜻입니다.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일곱 가지 색깔로 나타나듯이,
하나님의 예수님에 대한 시선과 사랑이 흘러들어가서,
예수님을 통과하면서 나타난 게.. 이 세상만물이고,
내가 지금 그렇게 이루고 싶어 하는 사업, 돈, 승진, 예술, 학문, 모든 게
다 예수님 뒤에 생긴 프리즘의 결과라는 얘깁니다.
이 상태에서, 우리가 사도바울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만물이 예수님을 통해서 만들어졌다는 거예요. 골1:16
그리고 예수님이 없으면, 만물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아기가 태어날 것을 대비해서 아기 방을 만들어놓고
아기가 쓸 모든 물건을 다 장만해놓았습니다.
그러면 그 방에 있는 모든 물건은 아기를 향한
아빠의 사랑을 통해서 다 나타난 거예요.
불행한 일입니다만, 만약에 아기가 잘못돼서 사산을 했다면,
그 방에 있는 모든 물건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겁니다.
내 사업, 내 가정, 이런 게 예수그리스도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거라는 얘기에요.
▲자, 그러면 이 순간에 아들 하나님(예수님)의 입장에서
이 창조의 순간을 어떻게 대하고 계실까요?
지금 당신을 바라보고 계시는 아버지의 시선과 사랑 가운데,
만물을 만들어내고(창조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근데 주님은,
아버지가 그 시선을 예수님에게서 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님도, 아버지에게서 떼지 못하는 거예요.
빛을 바라보시면서 아버지께서 ‘참 좋다’라고 말씀하시면
주님은 ‘아, 빛이 참 좋은 거구나’ 이렇게 생각하십니다.
이런 삶의 태도가 공생애 때도 그대로 유지되었던 거예요.
그래서 주님이 요한복음에 ‘내가 너희를 보면서 판단할 것이 많지만
아버지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만 듣고 보면서, 그것을 말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말씀을 행하시고 기적을 행하신 다음에도
‘내가 행한 것은 내가 행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아버지께서 행하신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만물에 대해서 등을 돌리신 겁니다.
아버지를 (프리즘을 통과하듯이) 통해서,
만물을 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본능을 따라,
내 사업/ 내 가정/ 내 인생행로를하나님, 예수님의 프리즘을 먼저 통과하지 않고,
그냥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고, 밀어부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은, 자꾸 내가 손 대는 일을, 태클 거시고, 막으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은 왜 만드셨을까?
예수님과 하나님이 이렇게 관계를 맺다보니
예수님의 마음에, 아버지 때문에 너무 기쁘고,
아버지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너무 기뻐요.
그래서 이 기쁨에 동참하는 인격자들을 만드신 게.. 바로 인간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도 똑같이,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만물 중에 좋은 게 너무나 많지만,
그 만물이 왜 존재하는가 하면,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나에 의해서, 나를 위해서 창조된 게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그래서 우리는, 만물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리스도께 영광 돌리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정을 주신 것은 가정을 향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가정을 통해서, 가정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고 주신 것이고,
자식을 주신 것도, 자식을 향하라고 주신 게 아니라,
자식을 통해서, 자식보다도 아버지를 더 사랑하라고 주신 겁니다.
큰 사업을 주신 것은, 그것을 통해서 자기 자아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위하라고, 주신 겁니다.
▲근데 인간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예요.
예수님의 자리에서, 예수님처럼,
세상 만물을, 가정을, 사업을.. 자기를 위해 경영해 버립니다.
자기가 영광을 받으려 합니다.
이게 골1:21절에 ‘악한 행실로 하나님을 떠나서 원수가 되었다’고 나오는 거예요.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만물을 향한 거예요.
자기 본성을 따라서, 세상만물을, 사랑한다는 얘깁니다.
근데 이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데,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은 부르지만
마음이 첫 번째로 좋아하고 우선적으로 좋아하고
내 마음의 기쁨과 우울함과 불안을 결정짓는 일들이.. 다 세상일들인 거예요.
◑적용
내가 손대는 일들이 안 되면.. 걱정이 되고 불안합니다.
손대는 일이 되면.. 조금 기뻐합니다.
완전히 하나님을 등져버린 겁니다.
자기가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된 겁니다.
이 상태에서부터 내 인생에 불행을 가져다주고 망하게 해주는
독극물이 발생하는 겁니다. 내가 생산하는 겁니다. 창3장의 아담처럼요.
이렇게 발생된 독극물들을
우리가 손대면서 일을 잘 될 때.. 꿀꺽꿀꺽 마시는 거예요.
그건 하나님의 선물은, 선물(영어 gift)이 아니라 독(독일어 gift)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능gift을 주신 것은,
그 재능을 ‘만물이 그로 말미암은’ 예수님을 위해서 쓰여질 때에만,
‘재능gift’이 되는 겁니다.
그것이, 자기 영광을 위해서 사용된다면
그건 gift(독)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돈 대는 일을, 족족 막으시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마음이 사업을 향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되는 줄 아는 거예요.
사업이 자기 우상이고,
하나님은, 그 자기 우상이 잘 되도록 도와주는
시녀나 하인 취급을 하는 것이지요.
이런 신자들은, 믿지 않는 불신자들보다 더 가증한 거예요.
애인을 사랑하면, 주인을 멀리해야지..
애인을 사랑하는데, 주인을 이용해 먹습니다.
그래서 더 가증스러운 겁니다.
▲그래서 이왕에 지금 현재, 이 죄의 습성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세상을 향하고 있고 이 세상 것을 좋아하고 있는 상태라면,
하나님이 내게 베푸실 수 있는 차선책은 뭐냐?
그 일이 안 되게 하시는 겁니다.
내가 손대는 일들이 안 이루어지게 하는 게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실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은 아직도 죄의 습성에 의해서
이 세상 것을 향하고 있고, 손대고 있더라도,
그것이 안 이루어질 때, 내 마음은 기분 나쁘지만,
생각으로라도 감사를 하는 겁니다.
‘안 이루어진 것이 다행이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하는 겁니다.
▲어떤 분이 회교권에서, 물밑에서 선교를 합니다.
그 분은 2년 3년 선교해도.. 전혀 열매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한 5년 지나서, 열매가 두 세 명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곧 배신해서, 떠나고 말았습니다.
한 7년 지나서, 또 열매가 두 세 명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친척, 마을의 핍박 때문에.. 다른 나라로 피신을 떠났습니다.
선교사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자기의 소중한 청춘이.. 마구 지나가는데도.. 아무런 가시적 열매가 없습니다.
‘내가 이 일을 하도록 부름 받은 것이 맞나?’ 하는 회의도 듭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에,
그 부르심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 분명하고,
주님이 그 일을 수행하도록, 날마다, 때마다 감동을 주셨다면,
그는 ‘성공한 사역자’입니다.
그가 했던 모든 선교사역은,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골1:16
그 하나님의 주권 속에, 반드시 포함된 사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영웅 이야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교회나 선교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 역사를 보면, 또 서점에 팔리는 책자를 보면,
누가 어느 나라에 가서 선교를 했더니, 몇 천 명, 몇 만 명이 주께로 돌아오고,
그 나라가 기독교 국가로 바뀌고.. 이런 놀라운 이야기가 주류(일색)입니다.
그런데 현실은요, 몇 천 명, 몇 만 명은 커녕
한 사람도, 회심하고 주께로 돌아오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습니다.
과거에 몇 백 년 전에,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나라가/부족이 전체가 기독교화 되는 것과
한 개인이 회심하는 사건은.. 어쩌면 전혀 별개의 사건일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선교는, ‘개개인의 회심’이라는 뜻입니다.)
내 사역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역자는,
자기 사역의 10년 수고 후에, 아무런 가시적 열매가 안 보인다 하더라도,
크게 당황하지 않습니다.
그는 과거 10년 동안 ‘그리스도의 주되심, 주권, Lordship’에 순종해왔기 때문입니다.
그 순종한 그 자체가.. 이미 성공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역을 내려놓을 때에도, 하루아침에 아무런 미련없이 내려놓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과거 20년 동안, 그 사역의 주권이
늘 주님께 있음을.. 매일 고백해 왔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그 일은 ‘자기 명예, 자기 일, 자기 업적’과 무관했던 일이었습니다.
선교사역이나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사역한 서서평 선교사 Elizabeth Johanna Shepping 도
그가 종종 묵상했던, 자신의 어록 가운데
“주님의 부르심은, 성공으로의 부르심이 아니라, 순종으로의 부르심이다”고 했습니다.
▲나의 재능 gift 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재능과 은사로, 자기의 사역과 부르심에 매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으로 자꾸 성공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내 재능으로, 내가 성공하려고 할 때.. 그건 독 gift이 되고 맙니다.
반드시 그 독(재능)이, 나를 죽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재능으로, 그리스도의 주권에 순종하려고 할 때,
나는, 만세전부터 만물을 그리스도를 위해서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 속에, 한 퍼즐로서 맞춰질 것입니다. (1000조각 맞추기 같은 퍼즐요)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왜 손대는 일마다 안 이루어지는가, 그 이유를 기억하게 하시고,
내가 지금 현재 하나님을 세컨드로 여기고, 세상을 향해 있다면,
손대는 일마다 안 이루어짐을 통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이제는 하나님을 퍼스트로 향하고, 세상을 세컨드로 등질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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