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강동·송파·강남·서초구가 포함된 강남권(동남권)은 개신교인의 비율이 평균 29.2%로 서울시 5개 권역(동남·동북·도심·서북·서남) 중 가장 높았다. 이 지역은 명성교회 사랑의교회 소망교회 오륜교회 등 한국의 대표적 대형교회들이 위치한 곳이다.
강남권의 개신교인은 6∼11%에 그친 불교인에 비해 3배가량 많았다. 무교인이 가장 많은 곳은 광진구(64.7%)였고 동대문구(63.6%) 관악구(62.1%) 중구(58.1%)가 뒤를 이었다.
개신교인은 성별, 학력, 결혼여부, 소득, 계층, 직업에 관계없이 가장 많았다. 남성의 23.8%, 여성의 28.8%가 개신교인이었다. 개신교인은 젊은층에서도 타 종교인보다 월등히 많았다. 10대, 20대 개신교인의 비율은 각각 25.0%, 26.9%로 3∼4%에 그친 불교인이나 8∼9%인 천주교인을 크게 앞질렀다. 불교는 50대 이상에서만 10%를 넘었다. 천주교는 전 연령 대에서 8∼10% 수준을 유지했다. 학력별로 보면 개신교는 대졸 이하까지 25∼26% 정도였고, 대학원 이상에서는 35.8%로 높았다.
서울시는 2007년부터 종교인구를 조사했는데 개신교인은 그동안 25∼27% 수준을 유지하며 1위를 지켰다. 가장 높은 해는 2007년(27.2%)이었으며, 2011년 25.6%로 내려갔다가 2012년부터 26% 이상으로 다시 올라섰다.
반면 불교인은 2007년 16.2%를 기록한 뒤 계속 하향곡선을 그려 2013년 10.4%, 지난해 10.6%로 내려앉았다. 천주교인은 2007년 9.6%로 불교에 비해 6.6% 포인트 뒤졌지만 이후 격차가 점차 줄어들다 2013년에는 0.7% 포인트 앞섰다. 지난해 불교인이 다시 천주교인을 1.2% 포인트 앞서는 등 서울시 2위 종교를 둘러싼 경쟁은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 종교사회학 교수는 “목회현장에서 체감하는 것과 달리 개신교인의 비율이 높게 나온 것은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떠도는 ‘가나안 성도’들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명목상 성도만 많으면 예배 출석이나 헌금 등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번 조사에서 인간의 신념, 기본적인 소속감에 해당되는 종교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한국교회는 가나안 성도들이 교회에 등을 돌린 이유를 철저하게 되돌아보고 이들을 다시 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서울시민 4만5496명을 표본 추출해 방문면접조사를 실시한 뒤 구별 인구수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해 조사결과를 확정했다. 표본오차는 ±4.09%이며 신뢰수준은 95%다.
‘서울시민의 26.3%가 개신교인이며, 불교인(10.6%)과 천주교인(9.4%)을 크게 앞질렀다’ 국민일보 보도(5월 21일자 25면 참조) 이후 한국교계의 반응이 뜨겁다. 교계 인사들은 한국교회가 자신감 있게 ‘반기독교 프레임’을 깨고 본연의 사역에 집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자신감 갖고 공적 신뢰 회복에 주력해야 = 서울시 통계를 적용하면 서울시민 1009만4800여명 중 개신교인은 265만4930여명이며, 불교인은 107만여명, 천주교인은 94만8910여명이다. 심만섭 한국교회언론회 사무국장은 “서울시민의 26.3%가 개신교인이라는 국민일보 보도는 무척 고무적이며 놀랍다.
한국교회에 적잖은 희망을 줬다”면서 “이제는 겸손하게 한국교회의 좋은 이미지를 구축할 때”라고 말했다. 박정식 서울 북아현성결교회 사모도 “병원이나 아파트 전도를 나가면 개신교인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불교인이 개신교인보다 많다는 소문에 의문이 있었는데 국민일보 보도로 궁금증이 풀렸다”고 반겼다.
신학자와 전문가들은 서울시 개신교인이 2007년부터 8년 간 25∼27%를 유지하며 종교분포에서 1위를 고수한 만큼 자신감을 갖고 공적 신뢰를 회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명수 서울신대 한국교회사 교수는 “개신교인의 이동이 크게 없었다는 것은 소속 교회만큼은 신뢰했다는 뜻”이라며 “이제는 한국교회라는 거대 공동체의 공적 신뢰를 회복할 때”라고 강조했다.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 종교사회학 교수도 “사회적으로 한국교회가 ‘무조건 잘못한 집단’으로 매도당하고 있는 와중에 교계 일부 인사들이 ‘무조건 우리 잘못’이라며 불필요한 저자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서울시민의 다수가 개신교인으로 밝혀진 만큼 반기독교 여론을 바로잡는데 힘써야 한다”고 충고했다.
◇위기감 바로잡고 젊은층 안아야 = 한국교회 안에 잘못 형성된 위기감을 바로잡고 신앙전수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상진 장신대 기독교교육학 교수는 “한국교회는 그동안 학령인구 감소를 교회학교 학생수 감소로 잘못 인식했으며, 위기감과 패배감에 빠졌다”면서 “이런 패배의식을 털어내고 한 생명을 살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통계 수치상 젊은층이 많다고 하더라도 탈종교화라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 청소년, 청년층의 교회 이탈과 ‘가나안 성도’가 늘어나는 현상은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면서 “지금이야말로 내실 있는 신앙전수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신현욱 신천지대책전국연합 대표는 “성도들은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등 이단세력이 인터넷팀을 운영하며 교회와 목회자를 비방하는 댓글을 조직적으로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와 강남구청의 종교편향적 행정을 바로잡고 타 종교의 공격을 지혜롭게 막아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윤성원 서울 삼성제일교회 목사는 “신연희 강남구청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은 10%에 불과한 불교 표를 생각해서인지 26%의 개신교인 정서를 무시한 채 봉은사역명 제정을 강행했다”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신 구청장과 박 시장의 정치 생명은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병희 한국교회연합 대표회장은 “통계자료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불교계가 강남의 대형교회 건축 반대운동을 주도하고 미션스쿨의 신앙교육을 반대했던 이유를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교회는 이제 비판의 본질을 꿰뚫고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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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동성혼 지지 케이크’ 제작 거부한 기독교인에 벌금형
법원 “기업으로서 모두에게 서비스 제공해야”
▲버트와 어니.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버트와 어니 케이크’(Bert and Ernie ‘support gay marriage’ cake) 제작을 거부한 영국의 빵집에 최근 벌금형이 내려졌다.
기독교인이 운영하고 있는 ‘애셔 베이커리’는, “세서미스트리트의 캐릭터인 버트와 어니가 동성결혼을 하면서 ‘동성결혼을 지지합니다’라는 그림을 들고 있는 케이크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거절했다. 그러자 벨파스트카운티법원 소벨 브라운리(Isobel Brownlie) 판사는 “동성애자 고객을 차별했다”며 이 같이 판결했다고 벨패스트텔레그래프가 1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 빵집은 지난 2014년 고소를 당했다. 애셔 베이커리 운영자 다니엘 맥아더(Daniel McArthur)는 “우리는 고객들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려고 하고 있으나,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라는 종교적 신념에 위배되는 일까지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맥아더는 B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모든 이들을 섬기기 원하지만, 성경이 결혼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에 반하는 것을 하도록 할 수는 없다”며 “우리는 우리의 기독교 신앙에 기초해 행동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브라운니 판사는 이들이 진정으로 헌신된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애셔 베이커리는 종교적 기관이 아닌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으로서, 모두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헌법이 명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종교적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편 세서미 측은 캐릭터들이 어떤 성적 지향성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버트와 어니는 친구라고 2011년 밝혔다.
세서미 측은 “버트와 어니는 프리스쿨 학생들이 다른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도록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면서 “남성 캐릭터로 만들어졌고 사람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인형일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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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 아내 한혜진, 국내 시설 20곳 아동들에게 영·유아용품 1000개 기부
▲탄자니아 아동과 함께한 한혜진 홍보대사. 월드비전 제공 콩고 아동과 함께한 한혜진 홍보대사. 월드비전 제공
오는 9월 출산을 앞둔 배우 한혜진(사진)이 국내 소외 아동을 위해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회장 양호승)에 영·유아용품 1000개를 기부했다.
월드비전은 곧 어머니가 되는 월드비전 홍보대사 한씨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소외 어린이를 위해 영·유아용품을 기부하는 뜻깊은 나눔을 실천했다고 21일 밝혔다. 그가 기부한 젖병, 이유식기 등 영·유아용품들은 서울 등 전국 각지 월드비전 지원 시설 20곳의 아동들에게 전달된다.
양호승 회장은 “국내 아동들에게 꾸준한 관심과 나눔을 전하는 한혜진 홍보대사에게 감사하다”며 “모든 소외 아동이 더욱 건강하게 자라는 환경을 만들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한씨는 2008년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위촉된 뒤 국내 결식 아동을 위한 ‘사랑의 도시락 봉사’에 참여하는 등 국내외 빈곤 아동을 위한 나눔 활동에 적극 동참해왔다. 2013년에는 남편인 축구 국가대표 기성용과 함께 희귀성 급성 백혈병, 소뇌종양·조혈모이식 등 급히 수술이 필요한 12가정의 의료비를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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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욱 목사 면직하라" 목회자 서명운동 전개
홍정길·강경민 목사, 김세윤 교수 등 10명 공동 제안…
범교단 목회자 1,000명 서명 페이지 개설
▲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전병욱 목사의 면직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한다. 서명을 위한 사이트가 새로 열렸다. 목회자 1,000명의 참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서명하러 바로 가기) 전병욱 목사 성범죄와 관련해 예장합동 총회에 징계를 요청하는 '장로교 합동 총회에 드리는 호소문'에는 홍정길 목사, 강경민 목사, 김세윤 교수 등 교단을 망라한 교계 인사들이 공동 제안자로 이름을 올렸다. (전병욱 목사 면직 청원서 서명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백남선 총회장)에 전병욱 목사 치리를 촉구하는 목회자들의 서명운동이 시작했다. 구교형 목사(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 총무)가 페이스북 '전병욱 목사 면직 청원서 서명 페이지'에 '장로교 합동 총회에 드리는 호소문'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서명운동을 알렸다.
구 목사는 호소문에서 △전병욱 목사는 목사직을 내려놓고, 치료에 전념하며 자숙할 것 △예장합동 총회는 전병욱 목사를 면직해 거룩한 공교회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 △각 교단은 가을 총회에서 성범죄에 대한 처벌 조항을 담은 윤리 강령을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호소문에는 교계 주요 인사들이 공동 제안자로 이름을 올렸다.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원로·예장합신)를 비롯해 강경민 목사(일산은혜교회·예장합신), 김세윤 교수(풀러신학교), 김정명 목사(여수은현교회 원로·기하성), 박철수 목사(성서한국 이사·예장합동), 신경하 목사(감리회 전 감독회장), 유경재 목사(안동교회 원로·예장통합), 이승장 목사(예수마을교회 원로), 장희종 목사(명덕교회·예장고신), 전병금 목사(강남교회·기장)가 공동 제안자로 참여했다.
구교형 목사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한국교회가 전병욱과 함께 망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전 목사 치리는 꼭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는 목회자들이 나설 때"라고 말했다.
서명운동은 SNS를 통해 진행한다. 서명운동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이들은 페이스북 '전병욱 목사 면직 청원서 서명 페이지'에 소속 교단과 교회, 그리고 이름을 댓글로 달면 된다. 모인 서명은 예장합동 총회에 전달한다. 목회자들은 서명운동 외에도 기자회견과 광고를 통해 전 목사 치리를 요구할 계획이다. (서명 페이지 바로 가기)
다음은 호소문 전문.
[장로교 합동 총회에 드리는 호소문]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고전 5:1, 2)
"형제의 아픈 심정으로 예장합동 교단에 전병욱 씨의 목사 면직을 호소합니다."
1. 전병욱 목사는 믿고 따르던 성도를 배신하고, 하나님과 교회를 욕보였습니다.
한국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은커녕 정녕 자기 문제조차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까? 우리가 이런 모습이라면 하나님나라의 수고와 전도의 말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사건과 그것을 처리해 나가는 우리 한국교회의 대응과 그 과정을 살펴보면 무책임과 무능력에 빠진 현주소를 그대로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전병욱 목사는 한국교회 다음 세대 리더라고까지 인정받고 있던 그 순간에도, 10년여 동안 전 목사를 굳게 믿고 따랐던 청년들에게 교회와 선교지 등을 가리지 않고 수차례 상습적으로 성추행했습니다.
누군들 쉽게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2010년 문제가 일부 드러났을 때만 해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를 믿기 힘들어했고, 해당 교회도 퇴직금을 줘 그저 조용히 끝내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해도, 진실은 결국 드러나고야 마는 법입니다. 마침내 전 목사는 사임해야 했고, 교회는 성 중독 치료비까지 지원하며 사건의 실체를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전병욱 목사는 이러한 죄악들이 다 드러나고서도 다시 5년이 흐르는 동안 이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자숙하기는커녕 교회와의 약속도 저버린 채 서울 중심가에 서둘러 개척을 재개했고, 죄악에 대해서는 변명으로 일관해 왔으며, 도리어 이를 바로잡으려는 성도들에게까지 고소를 일삼는 등 더욱더 큰 죄악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2. 한국교회는 거룩한 공교회로서의 책임을 스스로 내버렸습니다.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것은 소속 교회와 목회자들을 올바로 지도, 감찰해야 할 거룩한 공교회의 기관인 노회와 총회마저 이를 방치·무시하며, 변명만으로 일관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여론에 밀린 해당 노회에서 작년 말 전병욱 목사에 대한 정식 재판이 시작되어 일말의 기대를 갖게 하였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로잡지 못한 채 무책임하게 물러앉아 상위 기관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총회로 넘겨 버렸고, 합동 총회마저 해당 교회의 상소를 어설픈 변명만 내세우며 문제 삼지 않을 뜻을 보이고 있습니다.
더구나 노회와 총회 주변에서는 세상에서도 손가락질받을 온갖 정치 논리와 이해관계가 얽혀, 교회의 거룩성과 피해자들의 아픔, 진실의 규명 등의 본질에는 전혀 관심도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의 교회를 욕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이렇게 무책임한 죄악을 반복하는 동안 사회 각계 모든 영역들은 이미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성추행 혐의로 저명한 서울대 교수가 구속되는가 하면, 70세가 넘은 전직 국회의장도 실형을 피하지 못했고, 인권 사각지대라고 지탄받아 왔던 군대마저 성폭력만큼은 더 이상 관대하지 않고 가해자 처벌이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보다 더욱 깨끗하고, 모범적이어야 할 한국교회와 합동 교단은 숨겨진 죄악을 찾아내는 것은 고사하고, 이미 확인된 범죄마저 전혀 인정하지 않고, 바로잡으려는 의지조차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교단의 존재 이유마저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3. 이것은 누구랄 것 없이 먼저 우리 목사들의 큰 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병욱 목사, 해당 교회와 노회, 총회를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비난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전병욱 목사 사건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침묵하여 한국교회의 몰락에 일조했으며, 어쩌면 지금도 '뭐, 그럴 수도 있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동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우리는 전병욱 씨와 똑같은 목사입니다. 우리는 최소한 전병욱 씨의 동료이며, 공범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고백하며, 참회하며, 뉘우칩니다. 우리는 같은 목사로서 하나님과 세상 앞에 큰 부끄러움을 느끼며, 무엇보다 피해를 당한 여성 성도들께 마음 깊이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것은 그저 어느 한두 사람들의 문제나 잘못이 아니라, 먼저 우리 목사들 자신의 일차적인 죄악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전병욱 목사 문제의 바른 해결은 도덕이나 윤리 또는 보수나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와 목사들이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 진정 거듭나려는 몸부림의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이렇게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그러나 그저 제 자리에 앉아 한없이 자책만 되풀이 하는 것은 가장 쉽고도, 가장 무책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예장합동 교단은 아픔을 무릅쓰고 확인된 죄악을 공교회 앞에 드러내고, 그에 합당한 공적 처벌을 단행하며, 다시는 이 같은 죄악이 공교회를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재발을 방지하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먼저 합동 교단이 가장 큰 교단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으로 한국교회의 명예를 바로 세워 주십시오.
그러나 어떤 교회, 어느 교단인들 이와는 무관하겠으며, 이보다 나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동시에 모든 형제 교회 및 교단들 역시 그와 같은 결단과 발걸음에 맞춰 한국교회의 거듭남에 함께 나설 때, 우리 사회도 한국교회의 진정성을 한 번 더 믿어 줄 것이며,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기도도 하나님께 응답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도 어느 대형 교회 한 목사가 지하철에서 여성들을 몰래 촬영하다가 발각돼 한국 사회에 다시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지금도 혹은 드러나고, 혹은 드러나지 않은 교회 안팎의 성범죄 문제들은 너무 많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바로 잡지 않으면 제2, 제3의 전병욱 사태는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참회와 거듭남의 각오를 다음과 같은 주장에 담아 한국교회 전체와 예장합동 교단에 간곡히 권고드립니다.
- 첫째, 전병욱 목사는 목사 이전에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더 이상 비겁한 변명을 멈추고, 무책임한 목회를 중단하고, 이제라도 목사직을 내려놓고, 치료에 전념하며 깊이 자숙해 주기를 충심으로 권고합니다.
- 둘째, 그러나 전병욱 목사가 끝끝내 참회하지 않는다면 예장합동 총회는 거룩한 교회의 공적 책임 기관으로서 목양할 성도를 크게 배신한 전병욱 씨의 목사직을 9월 정기총회 전후로 반드시 면직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 셋째, 한국교회 책임 있는 각 교단들은 가을총회에 심각한 위반 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을 담은 목회자 윤리 강령을 제정해 주시고, 특히 성범죄 사실이 확인되었을 경우에는 반드시 처벌하고, 바로잡는 조항을 명시해 줄 것을 강력히 권고 드립니다.
- 넷째, 한국교회 내 성범죄 문제는 더 이상 덮어 둘 수만은 없습니다. 한국교회 책임 있는 교단 및 연합 기구들은 올해 내에 교회 성범죄 대책 기구 마련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은 교단과 책임 기관들의 존재 목적이며, 근거입니다.
- 다섯째, 한국교회 모든 목사들은 이러한 죄악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깊이 통감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목회의 초심을 회복하고, 책임 있고, 투명한 목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합시다.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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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신학교를 다니며 전도사 활동'황교안 총리 내정자
검사 시절 야간 신학교를 다니며 전도사 활동
"서민 위한 정책 펼쳐주길".."청문회 제대로 이루어져야"
CBS노컷뉴스 이승규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황교안 법무부장관을 국무총리 내정자로 지명했습니다.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교회연합의 반응도 엇갈렸는데요,
이승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청와대가 이완구 전 총리 후임으로 황교안 법무부장관을 지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은 부디 초심을 잃지 말고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펼쳐주길 희망했습니다.
[인터뷰] 박종순 / 68세
"민생도 살피고 서민들을 위해서 해주면 좋겠죠."
[인터뷰] 김태원 / 25세
"부정부패를 없애겠다고 하셨는데, 꼭 해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교회연합은 황교안 총리 내정자에 대한 입장이 엇갈렸습니다.
우선 교회협은 환영보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보였습니다. 황교안 국무총리 내정자가 법무부장관으로서 보여준 태도와 과도한 변호사 수임료 등이 이전 총리 지명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우려가 된다는 겁니다.
때문에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 우려스러운 점들을 보다 정확하고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인터뷰] 김영주 총무국장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사 청문회 과정이 정확하고 제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우리 한국교회는 끝까지 그 과정을 잘 주시해서 지켜볼 생각입니다."
한국교회연합의 반응은 이와 달랐습니다. 전도사 경력이 있는 총리 내정자를 적극 환영하는 분위깁니다. 한교연은 황 내정자가 박근혜 대통령을 돕고 부정부패를 척결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뷰] 최귀수 목사 / 한국교회연합
"청렴결백하고 부패를 척결할 수 있고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깨끗한 정치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그러한 적임자로 여겨집니다."
한편 황교안 국무총리 내정자는 검사 시절 야간 신학교를 다니며 전도사 활동을 하는 등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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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감방에 가는 목사 최헌국
부당한 벌금 거부하고 20일 구류...
약자들의 설움에 함께한 그를 지지한다
김응교
"내가 술을 먹나, 담배를 피우나."
여기저기 강연 다니고 인세에 월급 받으면서도 돈에 쪼들리는 나에게 아내가 뭐라 해서 한 말이다. 담배를 안 피우지만 내 주량은 1년에 맥주 세 병 정도, 소주는 반 병 정도다. 1년에 말이다. 귀국하자마자 십일조를 용산 철거민에게 보내겠다고 했을 때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모른 척하던 김 권사님이 요즘 궁해서 쩔쩔매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당신은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곳에는 돈 다 보내겠지요."
사실 그렇지도 않은데.
다만 오늘 헌금할 곳이 생겼다.
1.
세월호 참사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방송하고 글로 남기는 일이다. 시청 광장에 수십만 명이 모였던 뜨거운 흥분이 언제 그랬냐며 식어 가는 이때에 기록해 둬야겠다. 한 명 한 명 내가 만났던 사람들을 기록해 두어야겠다. 특별한 일 아니다. 그냥 모두 내 이웃, 내 가족이니까. 오늘은 앞서 썼던 미수습인 가족 '다윤이 엄마' 이야기에 이어 한 종교인에 대해 써야겠다.
최헌국 목사님, 그의 친구 양민철 목사님과 1년 이상 광화문에서 지내고 있다. 최 목사님은 내가 진행했던 방송에도 두 번 출연하셨다. 한 번은 '쌍용차 해고자와 함께하는 촛불교회'를 설명하기 위해 나오셨고, 다음은 '송전탑 1박 2일' 울산 송전탑 로케에 함께 갔다.
울산에 로케 갔을 때 한 방에서 여러 명이 잤는데 최 목사님이 내 옆에서 주무셨다. 그날 그가 숨을 고르게 쉬지 못하고 가끔 숨을 멈춰 내가 깜짝 놀라 몇 번을 깼었다. 무호흡증이라고 하나. 그의 건강 상태가 아주 나쁘다는 걸 알았다. 여기다 밝히면 실례인 줄 알지만 병은 자랑해야 낫는다고, 당뇨병 증세가 심한 몸으로 그는 이 나라 아픈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목요일 밤 촛불 예배를 인도해 왔다.
그의 꿈은 농사짓는 것이다.
오늘 보니 광화문 상황실 바로 앞에 꽃을 가꾸고 있었다. 이름 모를 들꽃과 마치 대화하듯 따사롭게 물을 부어 주었다. 물을 주는 저 짧은 순간에 그의 꿈이 설핏 엿보였다. 누가 그를 투사로 만들었는가. 지칠 대로 지쳐 있는 그는, 이제 촛불교회를 그만두고 농사지으며 공동체를 일구는 것을 꿈꾼다. 그러나 그 꿈은 용산, 쌍용차, 세월호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결될 때 조금 벗어날 기회가 생길 것이다. 오늘도 유족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끊임없이 자기를 반성하는 사람을 보라.
"용산참사대책위에 있을 때 돌아가셔서 냉동고에 계신 다섯 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304명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어요. 까마득합니다. 그래도 영향력 있는 분들이 여기에 관심을 가지시면, 경찰의 대책 자체가 달라져요. 용산 때는 그래도 계획이 있었는데, 제가 보수적인 교회에 더 찾아갔어야 했는데 게을렀습니다. 게을렀어요."
2.
그가 곧 감옥에 끌려간다.
목사란 직업의 업무는 본래 슬픔 곁에 가는 것이다. 입으로만 설교하기 전에 발과 몸이 먼저 가야 진짜 목사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 따라, 설움 곁을 온종일 찾아가 발로 손으로 몸으로 설교하는 그가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는가.
▲ 오늘 헌금할 곳이 생겼다. 용산 철거민, 쌍용차 해직자, 세월호 등 모든 현안에 참여해 온 촛불교회 최헌국 목사에게 벌금 1,500만 원이 떨어졌다. 설움 곁에 함께했다는 이유로 매겨진 벌금이다. 그의 활동이 조금이라도 여유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돈을 보낸다. (사진 제공 김응교)
용산 철거민 문제, 쌍용차 해직자 문제, 세월호 문제 등 모든 문제에 참여했던 최헌국 목사에게 누적된 벌금 1,500만 원이 떨어졌다. 집시법은 한 번에 50만 원 벌금인데, 도로교통방해법은 액수가 많아 도로교통방해범으로 갇힌다고 한다. 그래도 감해져 남은 금액이 200만 원인데 그 돈을 거부하고 싶어, 20일간 구류를 살겠단다.
그래도 돕는 손길이 있어 새물결플러스 대표 김요한 목사님께서, 감방 갔다 오는 최헌국 목사님이 제주도에서 쉬실 수 있도록 비용을 전달하셨다고 한다. 그래도 지금이 뭐 흥부 시대도 아니고 벌충하러 감방까지 가면 되겠는가. 그래서 오늘 유족분들과 식사 마치고, 내가 "200만 원 구해 드릴 테니 감옥에 가지 마세요" 하니까. 최 목사님은 그냥 씨익 웃으신다. 헛된 돈 내기 싫다는 표정이다. 까짓 것 바울이든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감빵'을 제 집 드나들 듯 다니지 않았던가.
국민은행 533301-01-127067 최헌국 (촛불교회)
안해님께 늘 죄송한 나는 10만 원을 송금하려 한다. 김 권사님은 아셔도 화내지 않고 모른 척하실 분이다. 나는 김 권사님을 믿는다. 내 안해는 그런 분이시다.
담배값 커피값 한 번 아껴서 우리 대신에 험한 곳을 찾아가 위로하는 촛불교회에 1만 원이라도 헌금하시면 좋겠다. 큰 돈 보내면 교만해질 수 있다. 10만 원 이하로, 1만 원이라도 헌금해서, 최헌국 목사님과 촛불교회 활동하시는 분들이 조금 여유 있게 활동하실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좋겠다.
그가 곧 감옥에 끌려간다.
나는 그를 감옥에서 농토로 보내 드리고 싶다.
물론 그에게는 감옥이든 농토든 광장이든
그가 존재하는 모든 곳이 이미 교회다.
(2015. 5. 21.)
※최헌국 목사는 21일 저녁 촛불 기도회를 마치고 종로경찰서로 자진 출두했습니다. 출두에 앞서 그가 쓴 글을 보시려면 '이곳'을 클릭하세요. - 편집자 주
김응교 / 시인·문학평론가·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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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 그림 같던 양동교회 종탑이 낮아진 까닭은
양동교회(정효도 목사·사진)는 이즈음 교회 앞에 낮은 종탑을 세웠다가 시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전통가옥 마을에 교회는 ‘미운 오리 새끼’인 경우가 많다.
당초 교회는 마을 한복판에 그림처럼 서 있었다. 그러나 민속마을 사업이 가속화되면서 교회는 마을 입구 하천 변으로 밀려 났다.
이동헌 장로는 “이마저도 설계 허가가 쉽게 나지 않고 네댓 번 반려됐다. 그 과정에서 설계비만 몇 천만원을 썼다”고 말했다. 2007년 손수혁 장로와 함께 ‘민속마을 교회가 살아남기 위한 교회 이전 프로젝트’를 눈물의 기도 끝에 마쳤다.
지금 양동교회는 마치 맨땅에 지붕만 얹은 모양으로 낮게 자리했다. 이마저도 교회 주변에 그루당 300만원짜리 나무 수십 그루를 심어 관광객에게 예배당이 보이는 것을 봉쇄해 버렸다.
교회 안내판은 아예 없다. 주일 40∼50명의 교인은 카타콤을 찾는 이들처럼 조용한 발걸음이다. 반가 마을 교회는 초기 한국교회처럼 조심스럽다.
“1950년대 마을 한복판에 아담하게 서 있는 작은 예배당은 역사가 아닌지 참 묻고 싶어요. 저는 언젠가 하나님이 그 아름답던 교회도 복원시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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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앞 남대문경찰서 정문에
국민세금으로 ‘주술적인 해치상’ 좌우 배치가 웬말
서울 남대문경찰서 정문 좌우에 있는 2m 높이의 ‘해치(해태)상’이 논란을 빚고 있다. 받침대 위에 웅크려 앉은 채 웃고 있는 모습의 해치상은 액운(厄運)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2010년 6월 서울시가 기증해 남대문경찰서 앞에 설치됐다.
교계에서는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해치를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 경찰서 앞에 전시한 것은 미신을 조장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심만섭 한국교회언론회 사무국장은 1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과학수사를 표방하는 경찰이 이런 상징물을 마치 믿기라도 하는 듯 국민 세금으로 세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미신적 상징물을 즉각 치워 국민에게 경찰의 위상을 높이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서재생 서울대현교회 목사는 “경찰서에 해치상을 설치한 것은 한국역사와 문화의식이 얼마나 부재한지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기도파주기독교총연합회장 신용호 목사는 “민중의 지팡이로 불리는 경찰들이 미신을 부추기는 상징물을 설치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고 말했다.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해치상은 서울시가 기증한 것”이라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정의와 청렴의 상징물로서 경찰에 어울린다고만 여겼을 뿐 그 속에서 주술적인 의미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해치는 중국 문헌 ‘이물지(異物紙)’에 나오는 상상의 이미지로 선과 악을 간파해 정의를 지키며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동물로 묘사돼 있다.
이 때문에 조선 시대에는 경복궁의 광화문 앞과 근정전의 처마 마루 등 궁궐 곳곳에 해치를 설치했다.
해치는 현재 서울시의 상징물로 부각되고 있다. 해치상을 부착한 ‘해치택시’를 비롯해 광화문광장에 해치공원을 만드는 등 서울시 곳곳에 해치상이 들어서고 있다.
성경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출 20:4)라고 말하고 있다.
이승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옛날 조각품이라면 문화재 보호차원에서 그냥 둘 수 있지만 굳이 새롭게 액운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경찰서에 해치상을 설치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만난 서울시민 박주섭(47)씨는 “아무리 옛것이라고 하더라도 장소와 분위기가 어울려야 효과를 볼 것”이라며 “해치상은 문화적 친근함보다 토테미즘적인 흉물스러운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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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교회 다니세요? 작은 교회 다니세요?"
잘되는 교회 다닌다는 자부심 속에 숨겨진 허상
이국진
미국에서 목회할 때였다. 한국에서 필라델피아로 이런저런 이유로 오게 되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방문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때 사람들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발견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한국에서 꽤나 유명한 교회를 다니다 온 사람은 자신이 어느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왔노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반면, 별로 유명하지 못한 조그마한 동네교회를 다니다 온 사람은 자기 교회 이름조차 말하지 않고 그저 '조그만 교회' 다니다 왔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그렇다. 신앙인들에게는 자기가 어떤 교회를 다니는가 하는 것도 하나의 명예나 계급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능하면 크고 이름이 있는 교회로 몰려드는가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뒤에는 소위 큰 교회를 다니다 왔다는 사람들의 민낯을 경험하곤 했다. 소위 큰 교회를 다니다 왔다는 사람의 신앙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할 것은 없었다. 물론 경험들은 많아서 아는 체는 많이 했지만, 자신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의 신앙 인격의 성숙의 모습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정작 나 자신의 믿음은 하나도 없으면서, 정작 나 자신의 신앙적인 인격은 아직 어린아이의 유치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내가 큰 교회를 다니고 있고 내가 속한 공동체가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얼마 전에 읽은 뉴스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이젠 3만 불대에 거의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해서일까? 우리나라 경제인들이 열심히 뛴 까닭일까? 예전에는 정말 어렵게 살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3만 불대에 거의 진입하게 되었다니 놀라움을 감출 수 없고, 뿌듯한 마음까지 든다.
그런데 이런 뉴스를 들으면서 계산을 해 보니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4인 가족이라면 1년에 12만 불 정도의 소득을 올려야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우리 주변에서 1년에 가계소득이 1억 2,000만 원 정도 되는 가정, 다시 말하면 매달 1,000만 원의 수익을 올리는 가정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이 다 되어 간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실제 우리나라 국민들의 지갑은 그 기준에 한참 모자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지만 국가가 G20에 속했다며 자부심만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국가의 경쟁력이 더 올라간다 한들 정작 나 자신은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아무 의미가 없듯이, 우리의 신앙이 성숙한 단계로 올라가지 않는다면 내가 어느 교회를 다니고 있고 내가 다니는 교회가 어떤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번 새 생명 축제에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찾아오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정착하게 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게 되더라도, 정작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점에서 새 생명 축제의 성공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가에 있다기보다는 얼마나 많은 우리 교우들이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더 많이 가지게 되었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사모하게 되었는가에 달려 있다.
이번에 우리는 지진 피해를 당한 네팔을 위하여 구제 헌금을 하게 되었는데, 평상시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 헌금되었다. 그런 우리 교회의 모습이 자랑스럽기는 하지만, 정작 그런 대열에 참여하지 않고 방관자의 모습으로 내가 남아 있다면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교회가 잘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우리 교회가 잘되는 일이 자동적으로 나의 신앙도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실 하나님은 나를 1:1로 바라보신다. 우리 교회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 우리 교회가 얼마나 선교를 많이 했는가? 이런 문제로 나를 평가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있느냐? 내가 얼마나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느냐? 이런 문제로 나를 판단하실 것이다.
지난 2010년 SBS ‘스타킹’ 출연을 계기로 ‘야식배달부’에서 ‘성악가’로 데뷔해 화제를 모았던 테너 김승일 씨가, 최근 국내외를 누비며 성악 공연을 펼치는 동시에 자신의 간증을 전하고 있다.
인생의 벼랑 끝에까지 몰렸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연단 속에 마침내 역경의 열매를 맺고 있는 그의 이야기는,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테너 김승일 씨.
김승일 씨의 어린 시절은 순탄했다. 목수인 아버지 슬하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비록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뿐만 아니라 김승일 씨는 좋은 목소리까지 타고나
교회와 학교에서 음악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당시 최고의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던 이문세 씨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후 대중음악의 길로 접어들어 시·도 지역별 경연대회에서 1등을 놓치지 않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던 중 입시를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우연히 알게 된 ‘카루소’란 성악곡의 매력에 빠져 클래식의 길로 접어들었다. 준비 기간이 짧았을 뿐 아니라 성악 레슨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기에 주변에서는 우려의 시선을 보냈지만, 그는 예상을 뒤엎고 당당하게 한양대 성악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고, 이후로도 장학생에 선발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대학생으로 생활하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음악 세계를 접하게 됐고, 저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음악에 대해, 그리고 저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재능으로 점점 더 높은 세계를 향해 발돋움하려는 욕망이 커지는 것을 저 스스로도 느낄 정도였어요. 많은 질투의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부푼 꿈에 가득 차 있었고, 앞으로 제 앞길에는 성공만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시련은 갑자기 찾아왔다.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게 된 것. 가뜩이나 가난한 형편 때문에 김승일 씨의 형들도 우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었는데, 김 씨가 학비가 비싼 음대에 진학하면서 그의 어머니가 어쩔 수 없이 학비를 대기 위해 과로하다가 건강이 악화된 것이었다.
불안함과 초조함, 그리고 미안함 속에 김승일 씨는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사회생활 경험이 전무했기에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택배, 음료수 도매, 노점상, 부동산, 대리운전, 야식배달까지 약 15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 하루에 20시간이나 일을 하는 등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이상하게도 하는 일마다 사고와 악재가 겹치면서 점점 빚은 쌓여만 갔다. 현실의 벽은 높았다.
그 와중에 사랑하는 어머니마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삶의 모든 의지가 꺾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가 잘했고 좋아했던 음악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었다.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시는가? 지금 나를 보고 계시기는 한 것인가?” 원망의 마음만 들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귓전에 생생한 음성이 들려왔다. 바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는 말씀이었다.
“4대째 기독교 집안이었지만 이전까지 신앙적 체험은 별로 없었는데, 그때 두려움도 불안함도 아닌, 세상에서는 느껴 본 적 없는 편안함이 느껴졌습니다. 알 수 없는 자신감과 평안함이 생겼고, 희망과 기쁨이 저의 마음속에 자리잡았습니다. 일어나는 모드 일들에 대해 불만과 불평에서 감사함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같은 체험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여전히 힘겨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일에도 쉬지 못하고 야식배달을 하는 것이 그의 직업이었다. 가끔 교회를 기웃거리며 과거와 같은 교회생활과 노래를 다시 시작해 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다니던 야식집 사장이 그의 노래를 우연히 듣고 SBS 스타킹에 사연을 보내, 방송국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테너 김승일 씨.
“갑자기 그 동안 잠자고 있었던 심장이 뛰기 시작하여, 주체할 수 없이 제 가슴속에 무언가가 꿈틀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새 그 마음은 희망으로 저의 마음 한쪽에 자리잡았습니다. 두려웠고, 괴로웠고, 힘들었지만,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도전했고, 그 이후는 잘 알려진 대로 새 삶을 얻었다. 지금껏 해외 공연 50여 회, 교회 공연 200여 회, 대중 행사 300여 회을 소화했고, 노래와 간증을 통해 희망을 선사하고 있다. 2014년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에서도 솔로 공연을 하고 미국 메트로폴리탄 공연에서는 줄리어드음대 교수에게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오랜 시련을 경험케 하신 후에, 하나님의 준비된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려 하셨음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피할 수 없음을 확신합니다.
그 동안 저 자신만을 의지하면서 살았던 시간을 뒤로하고, 이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고난도 복도 그분의 뜻 안에서 감당하며, 하나님을 높이며 살겠습니다.”
‘산 기도를 가서 어린 소나무를 붙잡고 기도를 시작했는데 끝내고 보니 그게 뽑혔더라. 기도는 그렇게 간절히 해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젊은 시절 부흥회의 설교에서 이 같은 내용의 말을 몇 번인가 들은 적이 있다. 그런 말을 하는 부흥강사가 부럽기도 하고 한편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런 필자가 그와는 정반대 스타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일단 기도를 시작하면 불편을 완화하려고 몸을 움직이는 것 말고는 가만히 앉아 미동도 하지 않고 기도를 한다. 입술조차 딸싹이지 않고 묵언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어떤 사람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렘33:3) 했으니 기도는 큰소리로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입술만 딸싹거릴 뿐 소리가 들리지 않는 한나의 마음속 기도를 들으시고 닫혔던 태를 열어 잉태케 하셨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기도는 붙잡고 시작한 어린 소나무가 뽑히도록 몸부림을 친다고 간절한 것이 되는 게 아니며, 목청껏 소리를 질러야만 간절한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조용조용 속삭이듯 하는 것도 간절한 기도가 될 수 있고, 입술조차 딸싹이지 않고 묵언으로 해도 간절한 기도가 될 수 있다. 목소리를 높여 소리치는 게 부르짖는 것이 맞지만, 기도에서 더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부르짖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받아내기 위해 목이라도 조르듯이 하나님을 압박하는 것을 간절한 기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니다.
옛날 필자가 평신도로 출석했던 어느 교회의 목사님께선 기도는 되도록 큰소리로 하라고 하셨다. 따라서 새벽기도라든가 심야기도 때면 기도소리로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조그마한 상가 2층에 자리한 교회의 도로 반대편 바로 옆에는 가정집이 하나 있었는데, 새벽기도 때면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찾아와 항의를 하는 일도 몇 번인가 있었다. 그러나 목사님께서는 요지부동이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그런 것에 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필자가 큰소리의 기도는 다른 사람의 기도를 방해하기도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러면 자기가 더 큰소리로 하면 된다 하였다.
전북 진안에는 말귀를 닮았대서 마이산이라고 하는 거대한 바위산이 있고, 그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밑에는 돌탑으로 유명한 탑사(塔寺)가 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필자가 가끔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 번은 그 탑사 입구 길가 공터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물콧물을 흘리는 가운데 돌을 쥔 주먹으로 땅을 치며 큰소리로 울부짖어 기도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흘끗흘끗 바라보며 이맛살을 찌푸리고 지나갔다. 관광객들이 많이 오가는 길가였던 것이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고 사랑의 첫 단계는 타에 대한 배려인데, 새벽기도로 곤히 잠든 사람들을 깨우고, 사람들이 빈번하게 왕래하는 길옆에서, 그것도 사찰 근처에서 추태에 가까운 모습으로 울부짖어 기도하는 것을 보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마음이 되실까 싶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6)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골방은 장소로서의 공간을 의미하진 않는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음을 하나님께로만 모아 기도드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골방이 된다. 시장 복판도, 만원 버스 안도 골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어두컴컴한 진짜 골방이라 할지라도 기도할 때 마음이 분산된다면 기도의 골방은 되지 못한다.
‘은밀’이라 함도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가운데’라는 의미가 아니다. 누군가가 봐도 상관없다. 백 명이 봐도 천 명이 봐도 상관없다. 기도하는 사람이 그에 대해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행해 하면 은밀한 기도가 된다.
죽음보다 가혹한 고통의 쓴잔을 면하기 위한 기도
필자는 오래된 일이기는 하지만 만약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죽음보다도 더 가혹한 형벌을 받는 것 같은 삶을 살아야할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 그러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 해 추석날이었다. 시내에서 좀 떨어진 높은 산 밑에 있는 기도원으로 갔다. 날은 저물어 가는데 바람에 구름이 필자를 스치며 휙휙 지나갔다. 마음이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그래도 기도는 해야 했다.
그러나 가방을 방에 내려놓고도 산으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필자에게는 영적으로 커다란 결점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대낮의 예배당 안에서조차 안에 사람이 없으면 기도를 할 수 없었다. 기도하기 위해 눈을 감으면 등 뒤에서 누군가가 몽둥이로 머리를 내리치는 것 같아서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산기도 같은 것은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으면 죽는 것이 나을 정도로 큰 위기가 자신을 덮치고 있었으니. 필자는 죽으면 죽는다는 각오로 산으로 갔다. 그런데도 멀리는 올라가지 못하고 교회당 종탑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기도를 마칠 수가 있었다.
다음날 오전에는 길이 없어질 때까지 골짜기를 타고 높이 올라가 평평한 바위에 자리를 잡고 기도를 했다. 밤이면 일부러 늦은 시간이 되어서 올라갔다. 그게 긴장감을 더해 기도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분 나쁜 짐승소리와 나뭇잎에 맺힌 찬이슬이 맨살 위로 떨어질 때면 선뜩하여 싫었지만 기도에 지장은 되지 않았다.
그 후로는 거기가 오전, 오후, 밤의 하루에 세 차례씩 하는 기도의 자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의 기도는 며칠인가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 밤도 당연히 다른 날과 다름없이 그리로 갔다.
그리고 기도 속으로 들어가 한참을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기도를 접고 일어나라. 네 앞의 잔을 피하지 마라’ 하는 음성이 가슴으로 들렸다. 실제의 음성은 아니었지만 귀로 듣는 것보다 더 선명하게 가슴으로 들렸다. 자신의 의지로 거역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무엇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음성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그대로 일어나 손전등 불빛에 의지하여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의 마음은 마치 진공상태와도 같았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 같은 것도 일지 않았다. ‘기도를 좀 이루어 주시지’ 하는 약간의 섭섭한 마음이 그냥 허허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마음이 파랗게 느껴졌다.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달빛의 푸르름처럼 시각적으로 푸르게 보였다.
그날 밤으로 집에 돌아온 필자는 그런 허허한 마음으로 얼마간을 보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필자의 머리에 성경의 한 장면이 생각나고 있었다. 떠오르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인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백세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 했고, 아브라함은 순종했다. 그러나 진짜 번제물은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 두시고 순종만 받으셨다. 여호와 이레(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다)였던 것이다.
순간, 필자의 가슴은 기쁨으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산 기도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순종만을 받으셨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잔을 들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커다란 장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기도를 할 수 없게 되고만 것이다. 기도를 하려고 자리에 앉기만 하면 잠이 쏟아져서 단 30초도 집중해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하루에 10시간씩을 잠을 자도 마찬가지였고, 벽면에 이불을 쌓아 놓고 물구나무를 선채로 그에 기대서 기도를 시도해 봐도 잠이 쏟아졌다.
그런데 어쩌랴. 죽음의 형벌보다 더 무서운 잔을 마시지 않고 벗어날 수 있는 길이 기도밖에 없는데. 그날부터 필자는 잠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아니 사단과의 전쟁이었다. 필자는 기도만 하려 하면 그토록 잠이 쏟아지는 현상을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단의 방해가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기를 쓰고 기도에 매달리려 했다. 그러나 그럴 수조차 없었다. 눈꺼풀이 내려앉아 30초도 이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매달릴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시도하고 또 시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기도 아니면 죽음보다 가혹한 형벌 같은 잔을 마시며 살아야 하기에 포기할 수가 없었고 포기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기를 며칠이나 계속했을까.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기도를 시작했는데도 졸지 않고 계속할 수가 있었다. 배가 고파야 밥을 많이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상당히 오랜 시간을 기도에 빠져 들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일단 기도를 시작하면 두어 시간씩 하는 것이 보통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그런 것을 성령체험이라고 하는지 어떤지 모르지만 신비스러운 체험도 다양하게 했다.
고통의 쓴 잔을 마시며 살지 않게 해 주시라고 하는 기도는 필자만 드린 것이 아니다. 필자의 아내도, 아니 아내는 더욱 열심히, 그리고 많이 기도했다. 밤 11시가 되면 교회당에 가서 기도를 시작하여 새벽기도가 끝나서야 돌아오기를 3년간이나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했다. 잠은 초저녁과 집안일을 하는 틈틈이 조금씩 잤다. TV는 있어도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는 동안 아내도 성령체험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로 많이 했다.
하지만 필자나 아내나 그 성령체험이라는 것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그런 것을 더 체험하기를 바리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거부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는 싸인 정도로 생각하려 했다. 다만 그런 체험을 하게 되면 기도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어 좋았고, 자신들의 연약한 믿음에 확신을 더해 주어 좋았다.
그렇게 한 기도 덕분에 필자 부부는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신앙이 조금은 성장할 수가 있었다. 욕심도 조금이기는 하지만 덜어낼 수가 있었다.
죽음보다 가혹하게 쓴 잔이 필자에게 닥쳐 온 처음의 두어 달 동안, 크지 않은 편의 체구인데도 필자는 심적 고통으로 체중이 9k가 줄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 쓴잔을 주신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를 드리며 즐겁고 행복하게 노후를 보내고 있다. 주신 쓴잔을 순종함으로 받았기에, 그리고 기도했기에 누릴 수 있는 은총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쓴잔도 순종으로 마시면 신앙의 자양분 풍부한 은총의 잔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사, 또 감사한 일이다.
기도는 육적 필요를 채우기 위한 도구인가
기도하라는 권면은 많지만, 무엇을 어떻게 구하라고 말하는 사람은 적다. 구할 것을 말한다 해도 육적 필요를 채워 달라고 하는 구복신앙적인 것들뿐이다. 예수께서 기도의 본까지 제시하시며(마6:9-13 주기도) 기도에 관해 가르쳐 주셨는데도, 그것은 그냥 성경에 쓰여 있는 말일뿐, 자신이 하는 기도와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무시하는 일이 많다.
예수께서는,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기 전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그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에 더하여 육적 필요까지도 채워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인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육적 소용을 기도하지 않아도 다 아신다고도 말씀하신다. (마6:31-33) 그런데도 왜 죽자 살자 육적이어서 구복신앙적인 것들에 목을 매는지 모를 일이다.
문제는 일용할 양식을 너무 하찮은 것으로 여긴다는 데에 있다. 물론 현대는 옛날의 농경사회와 달라 의식주만으로는 삶다운 삶을 영위할 수가 없다. 자식들 교육도 시켜야 하고 취미생활도 해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최소한의 것으로도 부요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의 일용할 양식이다. 빠듯한 살림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