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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많이 부르는 찬송가 / 동성결혼식에 빵판매 거부한 부부 유죄
    2015-02-06 12:02:58   read : 5768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가장 많이 부른 찬송 ‘성도여 다 함께’… 299곡은 사용 全無

    국민일보, 2014년 전국 중·대형교회 11곳 ‘찬송가’ 분석

    ‘성도여 다 함께 할렐루야 아멘 주 찬양하여라∼’

    국내 주요 교회에서 지난해 주일 예배 때 부른 찬송 가운데 가장 많이 애창한 곡은 ‘성도여 다 함께’(새찬송가 29장)인 것으로 집계됐다. 또 새찬송가 645곡 가운데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찬송가는 299곡(46.4%)으로 절반에 가까웠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31일부터 2일까지 주요 교단 및 지역별 중·대형 교회 11곳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실린 교회 주보를 통해 지난해 주일예배 때 사용된 찬송가를 분석했다. 조사 대상 교회는 광주동명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대구제일교회(통합), 대전 새로남교회(합동), 명성교회(통합), 부산 제일감리교회(기독교대한감리회), 분당한신교회(한국기독교장로회), 사랑의교회(합동), 신촌성결교회(기독교대한성결교회), 아현감리교회(기감), 여의도순복음교회(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지구촌교회(기독교한국침례회) 등이다.


    ◇ 예배 때 평균 3곡 불러, ‘경배·찬양곡’ 많아 = 조사 대상 교회들은 지난해 주일 예배 때 총 1729차례 찬송을 했다. 한 교회당 매주 3곡가량 부른 셈이다. 새찬송가에 수록된 645곡 가운데 한 번이라도 사용된 곡은 346곡(53.6%)이었다.

    가장 많이 불린 곡은 ‘성도여 다 함께’(사진)로 총 72회 사용됐다. 11개 교회를 기준으로 2개월에 한 번씩 예배 때마다 이 찬송이 울려 퍼진 것이다. 영국 베이트만(1813∼1889) 목사가 작사한 이 곡은 1843년 아동성가집에 처음 실렸으나 ‘어린이’를 ‘크리스천’으로 개사하면서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찬송이 됐다.

    작곡자인 에반스(1874∼1948)가 스페인 민요곡을 편곡한 곡조가 지금의 찬송가에 실렸다. 교회음악 전문가들은 “곡조가 밝고 힘찬데다 비교적 부르기 쉽고,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가사 내용이 이 찬송가를 선호하게 만든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57회 사용된 ‘시온성과 같은 교회’(210장)가 뒤를 이었다. 시편 87편 3절을 토대로 한 가사에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의 현악 4중주곡의 곡조가 사용된 찬송으로 독일에서는 이 곡에 다른 가사를 붙여 국가로 부르고 있다.

    가스펠송으로 1990년에 만들어진 ‘여기에 모인 우리’(620장)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15장) ‘전능왕 오셔서’(10장) 등도 많이 불렸다. 10차례 이상 사용된 28곡 가운데 ‘경배·찬양’을 주제로 한 찬송이 12곡(42.9%)으로 가장 많았다.

    예배를 시작할 때 주로 부르는 송영·입례송 중에서는 ‘성부 성자와 성령’(3장)과 ‘만복의 근원 하나님’(1장)이 각각 61회, 60회씩을 기록했다. 예배를 마칠 때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하는 ‘하늘에 계신’(주기도문·635장)이 103회로 가장 많이 사용됐다.

    ◇ “‘단골 찬송’ 탈피해 다양한 찬송가 시도해야” = 새찬송가 작곡에 참여한 이문승 서울신학대(교회음악과) 교수는 2일 주요 교회들의 찬송가 사용 현황에 대해 “예전만 해도 ‘지금까지 지내온 것’(301장)이나 ‘나의 갈 길 다가도록’(384장)처럼 과거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곡을 많이 불렀다”면서 “최근 선호 곡들을 보면 ‘예배’와 더불어 ‘교회 공동체’를 강조하는 특징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익숙한 곡에서 벗어나 새로운 찬송가를 배우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이 교수는 “구 찬송가(통일찬송가)에 비해 새찬송가에 새로 수록된 찬송가가 120곡이 넘는다”면서 “예배 찬송의 보급과 찬송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교회마다 새로운 곡을 배우는데 적극적이면 좋겠다”고 권고했다. 교회음악 전문가인 김철륜 안양대 부총장은 “찬송 전문가를 양성하고 예배 찬송을 배우는데 신학교와 교회 성가대 등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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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결혼식에 판매 거부한 빵집 부부, 끝내 ‘유죄’

    차별금지법 위반한 혐의… 약 20만 달러의 벌금 물 듯



    ▲신앙을 이유로 동성결혼식에 빵 판매를 거부한, 오레곤의 빵집 주인 멜리사와 아론 클레인 씨. 뒤로는 자녀들이 보인다.

    미국에서 빵집을 운영 중이던 멜리사 클레인과 아론 클레인이 차별금지법을 위반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고 폭스뉴스가 4일(이하 현지시각) 전했다.

    2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결국 판사는 원고인 동성커플의 손을 들어주었다. 클레인이 성적 정체성을 이유로 이들을 차별했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기독교인인 클레인 부부는 ‘스위트 케이크 바이 멜리사’(Sweet Cakes by Melisa)라는 빵집을 운영하던 중, 지난 2013년 레즈비언 동성커플의 결혼 케이크 제작 주문을 거절했다.

    법정에서 레즈비언 커플의 변호를 맡은 폴 톰슨(Paul Thompson)은 오레고니안과의 인터뷰에서 “성적 정체성을 기준으로 사람을 차별할 수는 없다. 소송을 하는 내내, 법이 우리 편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법은 흑백논리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클레인은 서비스를 거부한 것으로 인해 20만 달러의 벌금을 물게 됐다. 오는 3월 10일 열리는 공판에서 정확한 벌금 액수가 결정될 예정이다. 크리스천뉴스네트워크는 지난 10월 “벌금이 많아서 이들이 파산을 신청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론 클레인은 토드스타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믿는 바에 있어서 잘못된 것은 전혀 없다. 이것(동성결혼 반대)은 성경적인 관점이다. 이것은 나의 신앙과 신념”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동성결혼식 케이크 제작을 거부한 이후, 동성결혼 지지자들에게서 음성변조 전화 및 이메일을 통한 협박을 받았다. 그 중에는 총으로 쏴버리겠다거나 강간하겠다는 내용과, “멍청한 성경 옹호자들아, 자식들이 다 병들고 사업은 망해라”는 저주도 있었다.

    동성결혼 지지자들은 고객들에게도 협박 등으로 정신적인 피해를 입혀 이 빵집을 멀리하도록 했다. 한 주일에는 누군가 이들의 빵집 트럭에 침입해 뒤지는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은 경찰에 신고됐으나, 누구도 체포되지 않았다.

    한편 오레곤 주에서는 2005년 주 대법원이 동성결혼은 무효라고 결정한 데 이어, 지금까지 근 10년 동안 동성결혼과 관련된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돼 왔다. 2013년에는 주민투표를 통해 근소한 차이로 동성결혼금지법은 위헌이 아니라는 결과를 얻어냈기도 했으나, 지난해 연방법원의 판결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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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 돌보던 '거지 목사', 횡령·유기·사기로 징역 8년

    5억 8,470여만 원 횡령...시설 기부금·원생 기초생활수급비를 유흥비로



    ▲ 한 씨는 자신을 목사로 소개하고 다녔지만, 모두 거짓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취재진들이 한 씨가 나왔다는 총신대학교와 예장합동에 학적과 소속을 조회했지만, 한 씨의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후원금 모집을 위해 목사라는 직함을 이용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장애인의 아버지', '거지 목사'로 불리던 실로암연못의집(실로암) 한 아무개 씨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춘천지방법원 형사2부(강성수 부장)는 1월 30일, 횡령·사기·감금·유기 등 8가지 혐의로 구속 기소된 한 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자신도 장애인이면서 그보다 더 약한 장애인을 이용해 영리를 채우려 했다. 입소인의 인권을 유린하고 장기간 고통을 주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등 죄질이 나쁘다"고 밝혔다.

    실로암의 처참한 실상은 지난 2013년 9월 14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관련 기사 : 거지 목사의 추악한 이중생활) 40여 명의 실로암 원생은 수년간 곰팡이가 핀 침구류 속에서 살았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중증 장애인들은 사망하기도 했다.

    원생은 40명이 넘었지만, 관리 직원은 3명에 불과했다. 지난 2001년 시설장으로 부임한 한 씨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를 들며 장애가 경미한 원생에게 일을 시켰다. 원생들은 스스로 청소와 빨래를 하거나 다른 원생들의 식사와 목욕, 치료 등을 도왔다.

    하지만 예산이 없다는 주장은 거짓말이었다. 한 씨는 시설 내 장애인 36명의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인 연금 등 5억 8,470여만 원을 횡령했다. 유흥가와 고급 음식점을 들락거리면서 시설 후원금과 국가 보조금 등을 유흥비로 썼다.

    한 씨는 모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 직후 한 씨 가족은 <강원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소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만큼 항소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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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근대교육 선구자, 아펜젤러

    조선 정부 금교령과 한국 선교

    정부 금교령에 일단 순응… 한국 민심 얻기 노력



    ▲서울 서대문 근처의 ‘영은문’으로 중국의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지어졌으나 이후 헐렸고 독립문이 세워졌다. 아펜젤러가 이북 내지선교를 향해 가는 도중 촬영했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 제공

    언더우드 선교사의 부인은 한국의 일상을 기록한 ‘Fifteen Years among the Top-Knots’에서 영아소동에 대한 내용을 언급했다. 소요한 교수 제공

    이북 지방 전도여행을 떠났던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는 조선 정부의 금교령이 내려진 후 바로 서울로 돌아왔다. 가톨릭 선교사와 다르게 개신교 선교사의 이 같은 순응은 조선 정부에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선교가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펜젤러는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무렵 배재학당에서는 가장 우수한 학생 4명이 자발적으로 친구들을 전도하기 시작했다. 이들 중 한 학생은 4명의 친구를 전도했다. 다른 학생은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경험을 겪기도 했다. 나머지 학생은 마을에서 전도하다 여관에 들러 머물고 있었는데 포교를 한다는 이유로 갑자기 수령의 병사들이 들이 닥쳐 이들을 잡아가고자 하였으나 여관 주인이 병사들에게 이들을 고발하지 않고 대신 매를 맞고 돈을 주어 무마시켰다.

    이러한 학생들의 신앙 체험은 아펜젤러에게 크나큰 감동을 주었다. 조선 정부의 금교령으로 선교가 금지되었던 상황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고, 미약하게만 보였던 한국 학생들이 직접 복음을 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아펜젤러는 이들의 행동을 자신의 일기에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선교하여 매우 고무적이었다”고 기록했다.

    조선 정부의 금교령 결과

    1888년 5월 금교령 시행 후, 베델 예배당은 폐쇄됐고 이후 예배당을 다시 사용할 수 없었다. 사정이 좋지 않은 가운데 예배당 사용을 강행한다는 것은 선교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의 민심을 누구보다 잘 파악했던 아펜젤러는 개신교 예배당이 금교령의 주된 표적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가톨릭 선교사의 명동성당 건축처럼 무리수를 두어 한국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대신 임시 예배 장소로 그의 주택과 외국인 연합교회를 이용하였다. 그리고 여신도들은 이화학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눈에 보이는 베델 예배당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음 선교가 아펜젤러에게는 무엇보다 우선 순위였던 것이다.

    아펜젤러의 판단은 오늘 우리에게 적잖은 교훈을 주고 있다. 아펜젤러는 교회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예배당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는 예배당 밖의 한국 민심이 곧 선교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점은 오늘 한국교회와 해외 선교사들이 귀담아 들을 부분이다.

    영아소동

    아펜젤러가 동역자들과 선교의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며 한국의 민심을 살피고 있을 무렵 개신교 선교는 또 한 번의 위기를 맞는다. 그것은 1888년 6월에 있었던 영아소동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수구파였던 사람들이 기독교의 정착과 근대화를 염려하여 퍼뜨린 소문이었다. 영아소동은 서양의 선교사들이 어린 아이를 잡아먹고 눈은 사진기 렌즈로 쓴다는 해괴한 소문이었다.

    우스운 소리 같지만 당시 한국 사회는 서양인을 ‘양이(攘夷)’라고 생각하였던 터라 민중에게 의심을 살 수 밖에 없었고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민중들은 아펜젤러의 배재학당, 스크랜턴 대부인의 이화학당, 스크랜턴의 시병원 등 외국 선교사들의 건물로 몰려가 아기를 내놓으라고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은 시위대의 손에 이끌려 나와야 했다.

    상황은 매우 심각하게 변해 해외 선교사들과 외교관들은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 자국 공사관에 보호를 요청하였고 조선 정부는 선교사와 외국인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적극적인 도움을 주었다. 조선 정부는 “이러한 소문은 거짓이며 근거 없는 소문을 내는 자는 잡아들일 것” 라는 방까지 붙여 사태를 수습해 나갔다. 하지만 소문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조선에 전염병이 돌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됐다. 선교사들과 한국 기독교인은 외면하지 않았고 민중에게 다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병을 치료했다. 민중들은 이들이 몸을 아끼지 않고 진료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게 되었고 영아소동으로 격앙됐던 감정도 누그러졌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예수님의 정신이 실현되어 외국의 선교사와 민중들은 이전보다 더욱 깊은 신뢰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한반도 순회 선교의 시작

    중단되었던 내지 순회선교는 재개되었다. 1888년 10월부터 이북 지역을 시작으로 1889년 3월까지 내지 선교를 위해 한반도 전체를 순회하였다. 순회 거리는 대략 2945㎞. 거리만으로도 선교를 위해 얼마나 헌신하였는지 짐작이 간다.

    10월부터 시작된 순회선교는 해주를 비롯한 이북 지역뿐만 아니라 이남 지역까지 거쳤는데 1889년 2월에는 공주, 8월에는 대구를 거쳐 부산을 방문하였는데 전국 8도 가운데 6도를 방문하였다. 순회 선교의 결과는 27명에게 세례를 주어 결신자를 양성하였고 예비 신자는 29명이었다. 예비 신자 가운데서 2명의 정교인을 받았다.

    당시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마을 공동체의 전통과 관습 중 상당 부분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크리스천들은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박해를 각오해야 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남들보다 부지런히 일을 하더라도 손해를 감수해야 했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남들보다 더 바르게 살아야 되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44명이나 되었다. 사망이나 이주 등 불가피한 사항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처럼 신앙의 선조들이 일구었던 수많은 희생은 오늘 우리가 마땅히 기억해야 될 신앙의 유산이며 계승해야 될 귀한 가치이다. 교회의 역사를 통해 주는 교훈을 기억하며 우리가 누구인지 정체성을 발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소요한 명지대 객원교수·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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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성공회 유명 女 복음주의자 ‘커밍아웃’

    “교회가 내적 싸움 끝내고 더 막중한 이슈로 초점 옮겨야”



    ▲제인 오잔느. ⓒ영국 크리스천투데이

    영국성공회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복음주의자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고 영국 크리스천투데이가 2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제인 오잔느(Jayne Ozanne·46)는 교회 운영에 있어 중심 역할을 하는 내각제 형태 기구인 대주교협의회의 설립자다. 그녀는 조지 칼리 전 캔터베리 대주교, 저스틴 웰비 현 캔터베리 대주교 등의 지도자들과 함께 기도와 봉사의 직무를 감당하며, 훌륭한 경력을 쌓아왔다.

    2일 제인 오잔느는 ‘Accepting Evangelicals’의 새 대표로 선임됐다. Accepting Evangelicals는 동성 간 결합을 지지하는 모임으로 침례교 목회자 스티브 초키, 유명한 찬양 인도자 비키 비칭 등이 이를 후원하고 있다. 비키 비칭도 지난해 동성애자임을 밝히면서 교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오잔느는 성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시각을 지닌 정통파 출신이다. 그녀는 이미 2009년 가족과 친지 및 일부 교회 지도자들에게 개인적인 편지를 보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렸다. 그리고 동성연인과 교제도 했다. 그러나 편지를 받은 이들 가운데 아무도 이를 외부로 알리지 않았다.

    당시 편지에서 그녀는 성 정체성과의 싸움이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기록했다. 그녀는 “불행히도 나는, 가끔씩 나의 성적인 정체성과 영성 사이에서 커다란 분쟁을 겪어왔다. 또한 동성 친구들을 향하여 내가 원하지 않는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했다”고 했다.

    그녀는 영국 크리스천투데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기로 했다. 자신이 믿는 바가 최근 동성애 문제로 분열된 교회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또한 성에 대한 더 나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보았다며 “교회가 내적인 싸움을 끝내고 선교나 사회적 정의와 같은 더욱 막중한 이슈로 초점을 옮겨가야 한다”고 했다.

    오잔느는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것이다. 내게 있어서 이 모든 이슈는, 솔직히 말해 성경의 이해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이다. 우리 앞에 어떠한 미래가 펼쳐질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두운 시간들을 아름다운 것으로 전환시키기를 항상 바라고 계신다는 점은 알고 있다. 교회로서 우리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한 때에, ‘Accepting Evangelicals’를 섬길 수 있게 되어 개인적으로 매우 흥분이 된다”고 전했다.

    1999년 대주교협의회에 소속된 오잔느는 해외에서도 임원 자리를 유지해왔다. 그녀는 총회(시노드)에도 깊이 연관돼 있으며, 특별히 선교와 전도의 영역을 맡았다. 그녀에 따르면, 당시 성에 대한 그녀의 관점은 극도로 흑백논리였으며, 동성애자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과 동성애 관계성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일반적인 보수적 복음주의자의 생각에서 두 가지가 상호 배타적이라고 믿었다. 동성애자가 되는 것과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양립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협의회를 섬기기 전 그녀는 국제 마케팅 시장에서 매우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또한 많은 유명한 복음주의 교회에서 중직자로 활동해 왔다. 자신의 임기 동안에는 2개의 국제 자선단체를 설립했다. 그녀는 왕족들과도 친밀하게 일했으며,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신앙종교재단’ 책임자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또한 BBC TV 마케팅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성적인 정체성을 고민하며, 치유나 변화를 위해 오랜 기간 상담을 받아왔다. 크리스천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모든 종류의 ‘축사사역’(deliverance ministry)을 경험해 보았다고 밝혔다. 유명 목회자나 사제들의 거듭된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이 ‘사단적’이라고 여긴 성적 정체성을 성공적으로 쫓아내지 못했다.

    그녀의 심리상담사에게서 종교를 바꾸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다. 그녀는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셨다고 생각될 때 죽고 싶다고 소리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수 없을 때 느끼는 절망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내가 총회에서 동성애과 관련된 한 기록물을 읽었던 것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욕망과 싸우지만 그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금지된 과일’을 먹는 것임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기록한 것이었다. 바로 나의 기록이었다. 내가 고통의 순간에 기록한 것이며, 창조주를 향한 창조물의 외침이자, 왜 이 같이 끔찍하게 분열된 존재로 창조하셨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앞으로 베니 해즐허스트(Benny Hazlehurst)를 대신해 ‘Accepting Evangelicals’를 이끌어갈 예정이다. 해즐허스트는 “제인이 AE에 동참하여 이를 이끌게 된 것이 매우 기쁘다. 그녀는 매우 열정적이고 헌신된 기독교인이며, 복음주의 진영에서 많은 경험을 해왔다. 또한 교회 내 주요 목회자들과도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 그녀와 함께 일하는 것은 매우 큰 기쁨이 될 것이며, 적합한 때에 적합한 사람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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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유학 언어연수 INC 주의보

    “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Iglesia Ni Cristo) 만 참된 교회”

    필리핀에 유학이나 언어연수 갈 때는 INC의 접근을 주의해야 한다. INC는 Iglesia Ni Cristo(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는 약자로 ‘Church of Christ’(그리스도의 교회)를 뜻하며 자기들만이 성경에 예언된 참된 교회라고 한다.



    ▲ INC(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 본부교회 Ⓒ월간<현대종교> 캡쳐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퀘존 시의 필리핀 국립대학교 뒤편에 본부를 두고 있는 INC는 펠릭스 Y. 마날로에 의해 1914년 7월 27일 필리핀 정부에 등록된 종교단체이며, 2010년 필리핀 인구 조사 통계에 따르면 국민의 2.45%가 이곳에 속해 있다. 아로요 전 대통령이 매년 7월 27일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고 2014년을 ‘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의 해’로 지정해 주었을 정도로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이 있다. 참고로 한 통계에 의하면 2000년에 필리핀 INC 신도는 1,762,845명(전체인구의 2.31%)이었다.

    규모나 겉은 정통교회 같아 보이나 “INC는 자기들만이 성경에 예언된 참된 교회이며 다른 모든 교회는 ‘배교의 아이들’로 보고 있다.”며 월간<현대종교>가 임장순 선교사의 ‘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Iglesia Ni Cristo)’라는 글을 2015년 2월호에 실어 “필리핀에 와서 필리핀 사람과 결혼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기독교와 같은 종교인 줄 알고 INC의 교육을 받고 빠져 나오지 못하는 등의 피해가 보고되고 있다.”며 “한국의 청소년들이 필리핀에서 유학을 하거나 언어 연수를 오게 되는데 부모가 필리핀에 자녀를 보낼 때는 INC에는 접근하지 않도록 미리 교육하기를 권한다.”는 INC 주의보를 발령했다.

    INC는 2014년 3월 통계로 약 102개의 국가 및 지역에 5,545개의 교회가 세워져 있으며 미국 등 해외에도 지속적으로 세워가고 있으나 전체 교인이 몇 명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한국의 집회나 예배처소는 서울 한남동, 경기도 부천 여월동과 광주시 역동, 대구 달성동, 부산 덕포2동, 광주 송정동 등에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나 구체적인 활동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임장순 선교사에 따르면 INC는 “성경이 그들의 믿음과 실천의 유일한 기준임을 믿으며,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들의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기독교인들이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거부한다. 펠릭스 마날로에 의해 세워진 INC만이 참된 교회이며 전통적 교회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잘못 가르친 결과라고 가르친다. 성경에는 삼위일체라는 말이 나오지 않고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며 1~4세기에 잘못 가르쳤다고 주장한다.”는 것.



    ▲ INC(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의 독특한 건물에는 심볼(우측)이 박혀 있다. Ⓒ INC 홈페이지 캡쳐

    특히 INC는 이사야 43장 5절이 자기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 구절의 ‘제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의 ‘동쪽’이 자기들 교회인 INC가 세워진 ‘필리핀’이라고 믿는다고 한다.

    또 로마서 16장 16절의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All the Churches of Christ)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에서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INC이며, 사도행전 20장 28절의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to feed the church of Christ which he has purchased with his blood)”의 구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단어가 자기들을 지목한다고 해석한다. ‘동방 한국론’ 또는 ‘하나님의 교회’로부터 이미 익숙하게 들어 본 해석과 주장이기도 하다.

    임장순 선교사는 “INC는 하나의 참된 교회를 표방하며 가톨릭교회를 포함한 다른 모든 교회는 모두 배교자이며, 자기들만이 예수님에 의해 세워진 초대교회를 다시 세운다는 기치 아래 성경의 일곱 번째 인봉을 떼는 펠릭스 마날료가 마지막 하나님의 메신저라고 한다.”고 소개하고, “1대 교주 펠릭스 Y. 마날로는 1886년 5월 10일 필리핀 따귁 시에서 태어나 가톨릭에서 영세를 받았으나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필리핀 독립교회 아그립바얀(Aglipayan) 교회의 영향을 받았고 이후 1904년 감리교 성공회 신학교를 들어가 전도사로 사역하기도 하였다.

    이후 장로교, 선교단체를 거쳐 1911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으나 2년 후 파사이 시(Pasay city)에 있는 친구의 집에서 새로운 교리를 만들고 스스로 독립하여 설교하고 다녔다. 따르는 자들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1914년 7월 27일 필리핀 정부에 종교단체 등록을 마치고 스스로 교주의 자리에 앉았으며, 1919년 처음으로 3명에게 목사 안수를 주었다.”고 밝혔다.



    ▲ INC 역대 교주들 Ⓒ월간<현대종교> 캡쳐 / INC 홈페이지 등

    1대 교주인 펠릭스 마날로가 1963년 사망하자 그의 아들인 에라뇨 마날로가 2대 교주가 되었다. 2009년 8월 31일 2대 교주가 사망하자 첫 교주의 손자이며 2대 교주의 아들인 에두아르도 V. 마날로가 3대 교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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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자 윤리 강령

    목회 윤리를 제정하자

    목회자는 교회에서 선생도, 아비도 그리고 지도자도 아닌 주의 종이다. 사도바울에 따르면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몸이며 동시에 그 몸의 머리이다(엡 1:22-23). 그리고 그 몸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 얻은 신자들로 구성된다(고전 12:12).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유일한 주인이며 교회의 지체들인 신자들은 직분과 기능 면에서 다를 뿐 모두 동등하다. 이 덕분에 교회는 다양성과 아울러 통일성을 동시에 보여 준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교회론과 목회학이다.

    사도바울의 지체 이론(고전 12장)은 이를 잘 지지한다. 지체 이론에 따르면 목회자도 지체들 중의 하나이며 교회에서 특별하지 않다. 놀랍게도 예수님이 이를 확인했다. 공생애 말기를 맞아 예수님은 곧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나 부활을 통해 예수님은 만유의 주(主: Lord)가 될 것이다(눅 19:11-15). 이를 모르는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갈릴리 출신 예수님을 배척했고 그를 죽이기로 결정했다(마 26:1-5). 예루살렘 성에 입성한 예수님은 성전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마 21:23-25). 성전 강화이다.

    이때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고 지적하며 이렇게 그들을 비평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마 23:3-7)

    곧이어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렇게 경고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 23:8-12)

    그리고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7번이나 반복해서 저주했다(마 23:13, 15, 16, 23, 25, 27, 29). 왜 그래야 했을까? 예수님은 곧 죽지만 부활함으로 만유의 주(主)라는 영광스런 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스승 예수님 덕분에 제자들도 세상에서 영광, 존귀, 칭찬과 명예를 얻을 것이다. 이 영광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누리는 영광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일 것이다. 3년 넘게 스승 예수님을 따르며 배웠다지만 '제자들이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다를 것이다'라는 보장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7번씩이나 저주함으로 간접적으로 제자들을 심각하게 경고했다. 그들을 종교적 또는 영적 부패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다(요 13:1, 17:12 참조). ​ ​예수님의 가르침과 저주는 오늘날 목회자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이다. 이미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로 만유의 주가 되었다. 그리고 목양 명령(요 21:15-17)과 선교 명령(마 28:18-20) 덕분에 사도들과 목회자들은 이 세상의 어느 것으로도 비교될 수 없는 영광, 명예와 존귀를 얻는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목회자들은 구약시대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처럼 예수님의 영광을 이용하여 세상의 부귀영화를 탐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경고하기 위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도와 목회자는 교회에서 선생도, 아비도 그리고 지도자도 아니다." 목회자가 선생일 수 없음은 교회에서 예수님만이 유일한 스승이며 목회자를 포함한 모든 신자들은 동등한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아비일 수 없음은 하늘의 하나님만이 유일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회자가 지도자가 아님은 부활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교회론과 목회학은 유교의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가부장적 권위를 완전히 부정한다. 교회의 직분을 유교의 높은 직위 개념으로 이해하지 말라고 경고한다(마 20:20-25). 교회의 직분은 섬김, 헌신과 봉사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26-27). ​그러나 많은 목회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감추어진 경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 결과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전혀 다르지 않다.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이 누구인지를 제자들에게 이미 설명했다.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느니라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저희가 말하되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마 21:33-41)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당시의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함께 하나님의 종임을 잊고 주인의 것을 약탈한 도적이었다. 신약시대의 목회자들이 이를 피하려면 선생, 아비나 지도자라는 의식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그 대신 종이라는 의식에 철저해야 한다. 목회자는 자신을 낮추어 신자들을 자신의 형제로 생각하며 처신해야 한다. ​스승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늘 이런 본을 보였다.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 요 13:12-17 참조)

    스승 예수님은 부활 후 승천할 것이다. 지상에 남은 제자들이 예수님 대신 교회를 섬겨야 할 것이다. 이것은 사도들과 목회자에게 크나 큰 영광일 것이다. 그러나 그 영광은 섬김이라는 사역을 통해서만 인정될 것이다. 그리고 섬김의 사역을 위해 목회자에게 자기부정(自己否定: self-denial)은 절대적이다. 영광이 클수록 그 만큼 자기부정 노력도 커야 한다. ​

    이를 잘 이해한 사도바울이 목회자를 유모로 비유한 이유이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살전 2:7-9)

    장창수 / 러시아 시베리아 주재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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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목회는 사랑이다

    십자가에서 죽기 전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예언하며 제자들에게 이렇게 계시했다. ​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마 26:31-35)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한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마 28:10, 참조 눅 24:6)

    제자들은 예수님이 명한 갈릴리의 한 산에 올라 부활한 스승을 만났다. 짐작컨대 이 산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자마자 산상수훈(마 5~7장)을 가르친 곳이리라. 이곳에서 제자들은 선교 명령(마 28:18-20)을 받았다. ​

    ​​그러나 요한복음은 갈릴리의 디베랴 바다에서 제자들이 부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기록한다. 디베랴 바다는 갈릴리 호수를 뜻한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불렀다(마 4:18-22). 이로 보아 갈릴리라는 지명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모두 의미 있는 곳이었다.

    부활 후 예수님은 이곳에서 제자들을 만나길 원했다. ​예수님이 명한대로 제자들은 갈릴리에 모였다. 무료함을 달래려고 디베랴 바다로 나가 밤새도록 수고했으나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새벽 피곤을 느끼며 철수하려 할 때 예수님이 나타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라고 명했다. 그대로 하니 제자들은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았다. 이 때야 비로소 제자들은 명하신 분이 부활한 예수님임을 알았다. ​

    서늘한 아침 해변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제공하는 따뜻한 조반을 먹었다. 스승 예수님의 사랑으로 제자들의 마음과 몸이 따뜻해졌다. 이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3번 물었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 16, 17) 왜 이런 질문을 예수님은 해야 했을까?

    당시 제자들은 스승 예수님을 부인한 후 그를 버리고 떠났다는 양심의 소리에 가책을 느끼며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좌절감으로 어쩔 바를 몰랐다. 이때 부활한 예수님은 먼저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제자들에게 제안했다. 그리고 부활한 예수님은 만난 제자들을 책망하기는커녕 오히려 따듯한 조반을 제공함으로 자신의 사랑을 다시 확증해 주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변함없는 사랑에 감격하며 기뻤지만 다른 한편 마음의 송구함 때문에 그저 묵묵히 식사를 하며 감히 스승을 쳐다보지 못했다.

    이때 한 예수님의 질문은 "나는 아직도 너희들을 사랑하는데 너희들도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묻는 듯했다. 이 덕분에 제자들은 이미 영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회복되었다. 그들의 마음은 은혜, 기쁨, 평안과 감사로 넘쳤다. 예수님도 제자들의 자신에 대한 사랑과 그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잘 알았다.

    이때 한 예수님의 질문은 그들의 마음 상태를 입술로 고백하도록 유도했다. ​왜 예수님은 사랑을 물었을까? 부활 이전과 이후 스승 예수님의 신분은 완전히 달라졌다. 부활 전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입술로 분명히 고백했다(마 16:16). 그러나 이들의 신앙고백은 죽음과 부활 후 인류의 구원자와 만유의 주가 된 예수 그리스도와는 전혀 무관했다(롬 1:4). 제자들은 부활한 예수님을 새롭게 신앙고백해야 했다.

    예수님의 질문은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의미했다. "이젠 내가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해야 했는지를 이해했는가?", "죽음 후 부활한 내가 만인의 구원자와 만유의 주가 되었음을 믿는가?", "영광스런 구세주인 내가 나를 버린 너희를 여전히 사랑함을 이젠 아는가?", "부활 전이나 후나 변함없이 내가 너희를 사랑함을 확신하는가?" 이런 의미를 갖는 질문에 베드로는 감격해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요 21:15,16,17).

    물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대답했다. 그의 대답은 바로 신앙고백 자체였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 10:9) ​예전처럼 베드로는 자신 있게 답하지 못했다(마 26:32-35).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예수님을 위해 얼마든지 죽을 수도 있다는 헌신의 결단이 이미 있었다. ​

    이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양을 치라고 3번씩이나 명했다. 이로써 3번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는 완전히 용서받았다.​ ​예수님의 질문과 베드로의 대답, 그리고 예수님의 목양 명령, 이들은 중요한 가르침을 남긴다. 누가 목양 자격을 얻는가? 십자가에서 죽고 사흘 만에 부활한 예수님을 만인의 구원자와 만유의 주로 진실로 신앙을 고백한 제자이다. 그런 신자만이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이 사랑으로 그는 예수님의 양들을 잘 목양할 것이다.

    신앙고백만으론 부족하다. 부활한 예수님이 누구임을 알고 진정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은 양들을 사랑함으로 목양하는 목회로 증명되어야 한다. 목양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한 신앙고백과 그의 사랑에 대한 진정한 확신에 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목양은 예수님과 그의 양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능하다. 다시 줄인다면 목회자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그의 양들에 대한 사랑으로 증명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에 대한 본을 이미 보여 주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해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1-15)

    하나님은 사랑이다. 아들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보여 주었다. 이 사랑을 받은 자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양들인 신자들도 진실로 사랑한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은 목양이라는 실천적 목회를 염두에 두었다. 사랑은 이론이 아니기에 반드시 실천적 결과를 가져온다. 목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주님의 양들을 인격적으로 상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기록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공관복음서는 공생애 초기 갈릴리의 한 산에서 행해진 산상수훈과 말기 이 산에서 주어진 선교 명령을 기록한다. 그러나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에서 제자들을 처음 부르셨음과 부활한 예수님이 제자들을 그곳에서 다시 불러 그들에게 주어진 목양 명령을 기록한다. 그리고 공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신자)를 인자 예수로 소개하면서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 사역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기록한다. 반면 요한복음은 갈릴리 출신 예수(인자)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신자)로 소개하며 스승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 사랑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기록한다. ​

    이 둘을 모두 취합한다면 예수님의 사역은 그의 제자들에 대한 사랑에 근거를 두고 수행되었음을 본다. 다시 말해 사랑이 사역의 근거이다. 목양 명령의 수행은 선교 명령의 수행을 가능하게 한다. 다시 말해 목양 명령은 어떻게 선교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은 사랑이 예수님에 대한 성경적 신앙고백에서 나와야 하며, 그의 계명을 지킴으로 증명되고 그리고 사랑의 목회로 실천된다. 목회는 종교 비즈니스나 자선 사업이 아니다. 이로써 누가 참 또는 거짓 목회자인지를 구별할 수 있다.

    장창수 / 러시아 시베리아 주재 선교사


    =======================================
    목사 의존 신앙과 신도 교조화평생 걸음마 신앙

    개가 사람을 물었습니다. 걱정이 많이 되긴 하지만 그리 크게 놀랄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반대로 사람이 개를 물면 이 때는 좀 놀라운 이야기가 됩니다. 똑같은 행동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집니다. 어린 아이가 걸음마로 걷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걸음마로 걷는다면 이는 아주 황당한 일이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새신자나 초신자가 신앙적으로 목사님의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장성한 신앙인이 평생 자립적인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고 만사에 목사님을 의존하려 한다면 이건 다분히 문제가 됩니다.

    목사직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장로'의 역활을 하는 매우 중요한 직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일반적으로 교인들이 지나치게 담임목사에게 의존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목사의 고유 영역이 아닌 교회 사업, 조직, 관리, 재정, 행사, 건축 등 모든 사역에 목사를 깊숙히 개입시킵니다. 목사가 무슨 초인이나 만능연기자도 아니건만 매사에 목사님을 찾습니다.

    교회에선 본래 그런가 보다?

    이는 비단 교회 일뿐만이 아닙니다. 극히 개인적인 일에도 걸핏하면 목사님을 찾습니다. 많은 교인들은 돌, 생일, 승진, 입학, 취업, 개업, 그리고 이사 등의 크고작은 일에 자주 목사님을 초대합니다. 심지어 가벼운 접촉의 교통 사고가 나도 목사님을 부르는 분이 있습니다. 물론 이를 무조건 나쁘게 볼 일은 아닙니다. 그만큼 목사님을 가깝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사 의존 신앙생활이 정녕 심각한 것은 목회자가 정도를 떠나 은근히 사심을 품고 있을 경우에 발생합니다. 일부 그릇된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순진한 무속적 심리를 이용하여 자신의 종교적 야망과 사욕을 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상의 삶보다 예배를 우선적으로 강조하여 교인들의 생활 영역을 가능한 교회 안에 가둡니다. 신약 교회에서는 먼저 삶이 제사가 되고 예배가 되어야 옳건만, 도리어 '예배의 제사화'에 힘을 쏟습니다. 제물을 열심히 바치고 복을 받으라고 합니다. 거룩한 예배가 교묘히 변질하여 신도 동원과 돈 모으기에 이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번에 제사를 이루셨건만, 오늘날 어떤 교회들은 매주 '기복적 제사'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주일 성수를 명분으로 하여 '교회 중심' 신앙 생활을 유도합니다. 성경을 인용하여 "죽도록 충성하라" 말하고 신도들 위에 왕처럼 군림합니다. 공교회를 담임목사 맘대로 주무르는 것이지요. 결국 겸비한 종의 모습은 간 데 없고 아주 교활하고 교만한 상전으로 변신합니다. 아마 한국교회 내의 변절한 목사들보다 더 방자하고 위선적인 직분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 교회에서의 이와 같은 바리새적 제사장 행세는 그저 '무당 영업'을 의미할 뿐입니다. 이른바 '성직의 권력화', '신도의 무속화', 그리고 '교회의 사유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일들이 가능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교인들의 신앙이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성경과 신학과 교회 역사를 깊히 알지 못 합니다. 따라서 담임목사를 가톨릭의 사제처럼 생각하거나 교회의 최고 경영자라고 크게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희안하게도 영적인 문제로만 오면 인생들이 한결같이 우둔해져서 그 똑똑하던 대학교수나 판사나 장관들도 다 '그 나물에 그 밥'이 됩니다. 교회당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상식적인 사고와 정상적인 판단이 '종교라는 틀'의 강력한 마약 앞에서 갑자기 마비라도 되나 봅니다. 아무튼 그 덕분에 변질된 목회자들이 신도들을 우민화하고 교조화하기란 실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본래 '교조화'란 전제국가에서 독재자가 세운 사상이나 원리 원칙을 국민들의 여론이나 논리적 비판없이 무조건 따르도록 통제하는 기만적 통치 행위를 말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고루한 수법을 일부 개신교 목사들이 아주 맛있게 애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담임목사에게 독점적으로 주어진 막강한 설교권이 이런 세뇌를 가능케 해주는 주범입니다. 물론 이는 필자가 늘 중대형 교회의 '공동 목회제'를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목회자들의 설교권을 분산하여 목회 독재를 차단하고 신앙적 편식과 독단을 피하며 건강한 균형을 이루자는 말이지요.

    하여튼 어떤 교인들은 목사가 무슨 억지를 부려도 "교회에선 그게 본래 그런가 보다~" 하고 쉽게 넘어갑니다. 마치 무당에게 굿을 하거나 점을 치면 돈을 내야 하고, 사원에 가면 돈을 바치는 것이 일반적 절차인 것처럼 교회에 가면 목사의 말을 따르고 돈을 바쳐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 결과 심한 경우 어느 목사가 교인들 몰래 교회돈을 제 마음대로 써도 그게 불법이며 큰 범죄인 사실을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오늘날 교회 부패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많은 교인들의 이런 종교적 무지와 무속적 의존 심리에 기인합니다. 매사에 목사를 찾고 목사를 앞세우다 보니 그게 그만 권력이 되고 우상이 된 것입니다.

    평생 걸음마 신앙

    얼마 전 근처 교회의 나이드신 권사님 한 분이 필자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집 주변을 한바퀴 둘러보시고 하시는 말씀이 "저 구석에 있는 큰 나무는 즉시 자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첨에는 그저 환경학적 관점에서 하신 말씀으로 생각했습니다. 헌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 나무의 기세가 너무 강해서 집안이 그 기운에 눌려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게 교회 생활을 오래하신 권사님이 하실 말씀일까요. 비단 이분만이 아닙니다. 예수도 믿고 미신도 꾸준히 믿는 분들이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아주 많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예수님도 그저 여러 좋은 신앙 대상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반 교인들 중에는 성경이나 기독교 진리를 정확히 알지 못 하는 경우가 흔하고, 설사 알더라도 그 지식을 실제 삶에 흡수하고 적용하는 능력이 크게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극단적인 경우 복을 주기만 한다면 공자든, 무당이든, 점쟁이든, 부처든, 마호멧이든, 그리고 예수든 그다지 가리지 않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점치러 오는 사람들 중에 약 삼분의 일이 기독교인이다"라는 어느 점술가의 증언이 그리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바른 목사라면 이런 무속적 신도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바르게 교정하고 고쳐주어야 옳건만, 도리어 이를 이용하고 부추겨 개신교를 온통 '돈 내고 복 받는 무당 종교'로 만드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저 목사 말 잘 듣고 만사형통하여 고작 헌금 잘하는 교인이 되라는 것이지요.

    필자가 하고 하고 싶은 말의 요지는 단순합니다. '교인들 중에는 성경과 진리에는 어두운 반면 무속적이며 기복적인 분들이 제법 많고, 상당수 개신교 목회자들은 이를 악용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단과 사이비 교회의 지도자들은 거의 다 이런 부류들이고, 요즘은 많은 주류 교회들마저 그 길을 열심히 따르고 있습니다. 특히 선교와 전도와 교회당 건축과 복음의 확장을 명분으로 교회를 대형화한 목사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방언과 입신과 치유를 미끼로 하여 큰 교회를 세운 자들도 많습니다. 정말 특이한 점은 그동안 '은사 운동' 또는 '성령 운동'을 빙자하여 크게 성공(?)한 목사들 중에 그 사역의 순수성을 끝까지 제대로 유지한 자가 아주 드물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 대부분이 교회를 크게 키운 후에는 거의 예외없이 교회돈을 유용하거나 횡령하여 수십 억 또는 수백 억 자산의 '종교 귀족'들이 되었습니다.

    콩 심은 데에 팥이 날 리가 없는 법입니다. 근자에 이들의 밑천이 갈수록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누가 보아도 도적이 분명한 일부 유명 목사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겉으로는 설교를 청산유수로 잘 하지만, 뒤로는 거짓과 기만과 위선과 탐욕이 가득한 인생들입니다. 상식대로 한다면 모두 감방으로 직행해야 할 군상들이 '도적질한 교권'과 '명예훼손법'과 '맹신도'들의 비호 뒤에 숨어서 도리어 교인들에게 호령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참담한 현실입니다.

    뒤로는 횡령, 표절, 성추행, 세습, 그리고 성직매매 등 온갖 부정을 다 저지르고도 돈과 권력을 동원하여 세상 법정에서 '무죄 판결'이나 '집행 유예'가 나왔다고 환호하며 즐거워하는 대형 교회의 비리 목회자들, 이게 바로 한국교회의 적나라한 민낯이 아닌가요. 세상을 심판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의 알량한 심판을 받고 나서 아주 좋다고 희희덕거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문제를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사실 그 저변에는 근본적으로 '성도의 미성숙'이란 난제가 깔려 있습니다. 한 평생 교회를 오락가락하며 직분만 쌓아가면 뭘 합니까. 삶이 변하지 않는데요. 겉모습은 장로요 집사이지만 여전히 기복적이고, 이기적이며, 무병장수와 만수무강만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기독교가 부자들을 위한 안일한 종교로 변질하고 있습니다. 귀족 목사들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돕기는 커녕 항상 부와 권력을 추구하며 기득권층에 줄을 대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교회당의 장식일 뿐이고 돈이 좋고, 명예가 좋고, 권력이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웃을 위한 사랑과 세상을 향한 제자된 사역은 늘상 표류하고 있습니다. 정작 초신자 시절이나 장로나 집사가 된 지금이나 그저 돈과 세속적 복을 갈망하며 자기 치장과 자기 만족에만 바쁜 '걸음마 신앙'에 머물고 있으니 그게 정말 한심하고 난감한 일이지요. 이는 마치 성인이 되어서도 해마다 돌잔치만 반복하고 있는 모습과 유사합니다.

    영혼이 없는 시계추

    하지만 성숙한 신자라면 '독립적인 신앙 인격'을 세워가야 마땅합니다. 옆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든지 그것을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스스로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 말씀의 조명에 따라 목사님의 설교도 검증하고, 장로님의 처신도 검증하고, 교회의 사역도 검증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깊은 내면 속에 있는 믿음의 본질을 수시로 검증해야 옳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요즘같이 혼탁한 시대에는 어느 목사나 장로가 한마디했다고 무조건 따르는 것은 뜨거운 '순종'이 아니라 그저 경박한 '맹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숙한 신자는 매사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민감하게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내 멋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없는 시계추처럼 교회당만 반복적으로 왕복하지 말고, 자신의 신앙 양심과 판단에 따라 스스로 거룩한 삶을 실천해보자는 말씀입니다.

    이는 결코 진실한 목사님들의 귀한 수고와 헌신을 폄하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또는 독불장군이 되어 성도의 교제와 교회 공동체를 경시하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필요시 목사님이나 장로님 등 교회 지도자의 신앙적 도움을 받고 조언을 구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 절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세 교회가 그 전형적인 예입니다. 당시에는 교황이나 사제만이 성경을 해석하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신도들은 그 뜻도 모르는 원어나 라틴어를 그저 매주 맹목적으로 반복해서 따라 읊었을 뿐입니다. 그 결과 수많은 영혼들이 부패한 성직자들과 함께 나란히 지옥행 완행열차에 탑승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개혁 교회의 목사는 교회의 지도자이지 지배자가 아닙니다. 목사는 설교자이지 제사장이 아닙니다. 목사는 사역자이지 사장이 아닙니다. 목사는 종이지 상전이 아닙니다. 목사는 가르치는 교사이지 굿하고 점치는 무당이 아닙니다.

    목사의 도움을 받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사님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필히 금해야 할 일입니다. 누구도 우리 신앙의 주관자나 지배자가 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설사 선지자나 사도는 물론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도 안 됩니다. 견실한 신앙인이라면 그 어떤 여건 속에서라도 우리 신앙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님만을 따르는 신앙적 자립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교계에 그 이름이 쟁쟁한 조용기, 김홍도, 김삼환, 곽선희, 길자연, 전광훈, 홍재철, 장효희, 석원태, 김성관, 전병욱, 정삼지, 이문장, 최종천, 황형택, 윤대영, 방수성, 김규동, 그리고 오정현 등 그 어느 목사라도 함부로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신앙적 자립과 성숙에 힘쓰라는 말입니다. 아울러 유명과 오명과 악명이 혼재된 어떤 목사들의 현란한 설교에 쉽게 정신줄을 놓지 말고, 그들의 모순적인 호화 생활과 종교적 사기 행각도 좀 주의깊게 관찰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소중한 신앙을 그 누구에게라도 함부로 내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결론은 성경입니다. 신도의 우민화와 교조화는 언제나 성경을 왜곡하는 설교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적 신앙을 이루려면 결국은 성경을 옳게 이해하고 바르게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신학자나 목회자만의 전유물은 결단코 아닙니다. 세리와 어부와 기생도 변화시킨 그 말씀을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이해 못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스스로 성경을 읽고 소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맹신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혼탁한 시대에는 남이 던져주는 떡만 마냥 받아 먹으려 하면 곤란합니다. 이런 습성이 체질화하면 맹목적으로 돈을 바치고 몸을 바치는 '영적 노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광야에서도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성숙한 제자들은 교회 안에서 성경이 말하지 않는 잡된 사상을 감히 퍼트리고 가르치는 자들을 엄히 응징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우리에게 '특별계시'인 성경을 주신 이유는 매우 명백합니다. 세상 권력을 가진 자나 도울 힘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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