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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광장 퀴어축제 허가 시, 시장 퇴진운동 전개하겠다/ 죽음 앞둔 아버지 병상 앞 결혼식 '감동'
    2016-03-18 11:52:56   read : 4203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지난해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모습.

    “서울광장 퀴어축제 허가 시, 시장 퇴진운동 전개하겠다”

    바성연, 동성애 단체들에 장소 사용 불허할 것 촉구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대표 안용운 목사, 이하 바성연)은 17일 '서울시는 17회 동성애 퀴어축제 장소 사용을 허락하지 말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바성연은 "동성애 단체들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서울시청 앞에서 동성애 퀴어축제를 위한 장소 사용 허락을 서울시에 신청한 것으로 알려진다"며 "동성애 단체들은 지난해에도 메르스로 온 국민이 떨면서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음에도, 외국 대사들까지 초청하여 동성애 행사를 강행한 바 있다"고 언급했다.

    이들은 "동성애가 그들의 말대로 '성소수자'라면 그대로 '성소수자'로 살면 되지, 굳이 대한민국의 수도요 수도 서울의 상징적 건물인 시청 앞에서 동성애 축제와 퍼레이드를 하겠다는 것이 온당한가"라며 "어느 나라도 퀴어축제를 자기들 수도와 시청광장에서 허용한 사례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성연은 "재작년과 작년, 서울 신촌과 서울시청 앞에서 강행한 동성애 퀴어축제는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던 대로 '알몸 과다 노출'과 '알몸 퍼레이드'였는데, 이런 행위에 대하여 검찰에서는 '경범죄처벌법 위반'으로 규정한다"며 "이런 행사를 서울시가 다시 허락한다면 이는 시민과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와 양식에 반하는 것이고, 그 책임은 박원순 시장과 관계자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서울시는 전 국민의 79%가 '정상적 사랑으로 보지 않는' 동성애 퀴어축제 장소 사용을 허락하지 말라 △서울시 스스로 만든 서울시청 광장 관련 조례를 어기지 말라 △동성애 확산은 결국 시민들이 낸 세금에서 대가가 지불되므로 피해를 자초하지 말라 등을 주장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에이즈 환자의 치료비 100%를 국민들의 세금에서 지원, 결국 동성애와 에이즈로 인한 피해는 국민들의 지갑에서 모두 지불해야 하는 고약한 일이 된다"며 "사정이 이러한데도 동성애 퀴어축제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서울광장에서 허락한다면, 궁극적으로 청소년들과 국민들을 동성애로 유도하는 국민 배반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서울시는 올해 동성애 퀴어축제를 서울광장뿐 아니라 서울시내 어떤 곳에서도 개최하지 못하도록 조치해야 한다"며 "성은 그야말로 개인의 사생활인 동시에, 밖으로 노출시켜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 없는 사안 아닌가"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바성연은 "박원순 서울시장님과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허재완 위원장, 김숙경 부위원장, 박신의, 조숙현, 강희영, 김전승, 이현찬, 김인호, 강태웅 위원)는 '서울광장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라 올바르고 현명한 결정을 내려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동성애 퀴어축제의 서울시청 광장 개최를 강행할 경우, 박원순 시장 퇴진운동과 관계자 문책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성명서 발표에는 바성연 외 68개 단체가 동참했다.



    퀴어문화축제 동성애

    ▲2014년 서울 신촌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당시 반나체로 거리를 활보하던 이들의 모습. ⓒ크리스천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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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광장, 동성애 축제의 성지로 전락하나

    퀴어축제 측, 올해 6월 사용 신청… 한동위, 불허 요청 및 시장 면담 추진

    동성애 축제가 올해도 서울광장에서 개최 추진돼 우려를 낳고 있다.

    제17회 퀴어문화축제 측이 지난 10일 서울시에 오는 6월 8~11일 서울광장 사용 신청서를 제출함에 따라,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이하 한동위)는 15일 긴급회의를 열고 서울시장 앞으로 서울광장 사용 불허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한동위는 아울러 서울시장 면담도 신청했다.

    한동위는 "퀴어문화축제 측은 지난해 6월에 이어 올해 6월에도 축제와 퍼레이드를 서울광장에서 진행, 서울광장을 아시아 퀴어문화축제 센터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제17회 퀴어문화축제 측은 오는 6월 8일(수)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퀴어축제 개막식을 진행하고, 6월 9일(목)에서 10일(금)까지 이틀간 오전 9시~오후 8시 동성애에 관한 예술작가 사진전을 연다. 또 6월 11일(토)에는 오전 9시~오후 7시 본행사에 이어 퍼레이드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한동위는 박원순 서울시장 앞으로 발송한 긴급 공문을 통해 지난해 퀴어축제의 폐해와 심각성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이는 서울광장 사용 조례에 전적으로 위배됨을 강조했다. 아울러 근거 자료를 제출하고,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하도록 요청했다.

    한동위는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면담이 성사되면 상세한 문제들을 제기해, 서울광장 사용 신청을 반려하도록 부탁할 예정이다.



    올해 6월 퀴어문화축제에 반대하기 위해 서울광장에 운집했던 교인들.

    ▲지난해 6월 퀴어문화축제에 반대하기 위해 서울광장에 운집했던 교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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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앞둔 아버지 병상 앞 결혼식 '감동'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병상 앞에서 결혼식을 올린 한 미국 여성의 사연이 감동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여성은 아버지가 자신의 결혼식을 놓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 아버지는 결혼식 이틀 후 편안히 눈을 감았다.

    10일(현지시간) 지역매체 WHO-TV에 따르면 아이오와주에 사는 닉칼레나 베드웰은 지난 7일 아버지 톰이 투병 중인 병실에서 약혼자와 평생가약을 맺었다.

    닉칼레나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남편 톰은 그녀와 오는 6월 화촉을 밝힐 계획이었지만 결혼식을 조금 앞당기기로 했다. 닉칼레나의 아버지를 위해서다.

    닉칼레나의 아버지는 합병증으로 병원에 입원한 뒤 오랫 동안 생명유지 장치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견뎠다. 하지만 건강은 호전되지 않았고 가족들은 이제 그를 놓아줄 때가 됐음을 직감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남달랐던 닉칼레나는 아버지 없이 치르는 결혼식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는 "나는 아빠의 사랑스러운 딸"이라며 "그래서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닉칼레나와 톰은 결국 가족들과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의 병상 옆에에 결혼 반지를 교환했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닉칼레나는 결혼식장 대신 병원 복도를 따라 '특별한' 식장에 입장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 앞에서 톰과 평생 사랑하며 살겠다고 맹세했다. 병실 밖에서 간소하게 부케를 던지는 일도 빼먹지 않았다.

    화려한 장식도 많은 하객도 없었지만 결혼식은 완벽했다. 참석자들은 간단한 음료수를 마련해 함께 건배하며 부부의 행복을 빌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닉칼레나와 함께 있었다.

    남편 톰은 "슬픈 상황이지만 분명 행복한 순간이었다"며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울음소리나 슬픔이 모두 사라진 날이었다"고 회고했다.

    닉칼레아는 결혼식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위한 행사였다며 "삶을 축하하고, 사랑을 축하하고, 아버지의 존재를 축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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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에 교회 앞에서 전도지 살포…기재된 홈피 주소는 ‘신천지’



    ▲신천지로 추정되는 이들이 나눠 준 ‘전도지’. ⓒ독자 제공

    최근 신천지 신도로 보이는 사람들이 주일 교회 인근에서 예배를 오가는 교인들을 대상으로 '전도지'를 나눠 주고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특히 교회 앞에서 버젓이 활동하고, 홈페이지 주소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를 공개하는 등 한층 대담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일이었던 지난 13일, 서울의 한 중대형교회 길목 세 지점에 이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예수교와 칼빈교 그 씨와 뿌리', '두 가지 씨, 하나님의 씨와 마귀의 씨'라는 제목의 문서를 나눠 주는 모습이 목격됐다.

    '예수교와 칼빈교…' 문건에는 "예수교는 예수님이 교주이시고, 칼빈교(장로교)는 칼빈이 교주"라며 "지구촌에 장로교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그 수가 적다. 계시록에서 말한 바벨론은 영적 바벨론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옛 바벨론의 신이 들어간 교단"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이 문건에는 '각종 교단의 집결지, 바벨론 한기총의 신학 교리', '한기총 소속 신학 교수의 144,000(계 7, 14장) 해설법' 등을 기재하고 있다.

    다른 문건인 '두 가지 씨...'에는 "초림 예수님 때부터 세상에는 두 가지 씨가 뿌려졌고(하나님의 씨와 마귀의 씨), 추수 때는 세상 끝이며 추수되어 가는 자는 하나님의 씨로 난 자이고 추수되지 못한 자는 자기 밭(교회)에 남은 자이며 가라지 씨로 난 자라고 하셨다(마 13:37-40)"고 적혀 있었다.

    이 두 문건에는 뒤편 연락처에 나란히 '성경에 입각하여 빛과 비와 공기처럼 만물에게 동일하게 전하는 진리의 말씀 성경 해설!'이라는 소개와 함께 홈페이지 주소를 'www.scjschool.com'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홈페이지로 들어가면 각 포털사이트의 ‘진짜 바로 알자 성경과 신천지’ 카페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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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저수지 한가운데 세워진 건물…16세기 교회의 비밀





    ▲배 위의 어부가 노를 저으며 저수지를 지나는데 멀리 큰 교회의 모습이 보인다. 유튜브 영상 캡처

    커다란 저수지 한 가운데 교회가 우뚝 서 있습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12일(현지시간)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보면 넘실대는 물결 속에서 꽤 큰 규모의 교회가 서 있습니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이 교회는 16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멕시코를 침략했던 스페인 정복자들이 남긴 유산이라네요.

    하지만 이 교회는 1962년 사라졌습니다. 멕시코 정부가 큰 댐을 만들면서 이 교회가 서 있던 지역이 수몰지구가 된 것이죠. 당시 이 교회를 비롯해 주변 지역 전체가 그대로 물에 잠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물에 잠겼던 이 교회가 어떻게 다시 솟아난 것일까요? 인근에 사는 어부의 얘기에 따르면 이 교회는 다시 솟아난 게 아니라 댐 수위가 낮아지면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합니다. 어부는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들어 아직 한 번도 비가 오지 않는 등 가뭄이 극심한 상황”이라며 “댐 수위가 낮아지면서 교회가 다시 나타났다”고 말했습니다.

    1962년 댐 건설 이후 교회가 모습을 드러낸 건 이번이 3번째라고 하네요. 아주 극심한 가뭄이 들 때마다 교회가 물결이 일렁이는 호수 가운데서 우뚝 솟아오른 것처럼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댐 건설 당시 인근 지역이 모두 물에 잠겼다고 하는데 유독 교회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회 외에도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건물이 있었을 텐데 다른 건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퍽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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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랑 끝으로 몰지 말아 주세요

    동성애치유상담학교 개소한 이요나 목사…동성애 '반대'보다 '치유' 강조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2016.03.15 14:13:33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교회가 '동성애 반대'를 외칠 때 꿋꿋이 '탈동성애'를 외친 목사가 있다. 젊은 날을 게이로 보내며 이태원에서 이름을 날렸던 이요나 목사(홀리라이프 대표). 그는 하나님 안에서 동성애를 '치유'받았다고 주장한다. 탈동성애에 성공한 산증인 입장에서, 한국교회가 동성애 반대에만 열을 올리지 말고 동성애자를 이해하고 그들을 벼랑 끝으로 몰지 말아 달라고 주문한다.

    이요나 목사는 얼마 전 '동성애치유상담학교'를 개소했다. 한국교회가 동성애 반대 운동에는 앞장섰지만 동성애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판단에서다. 동성애자가 이요나 목사를 찾아와 상담받는 것과 별개로 동성애에 무지한 목사들을 깨우고 싶기도 했다.

    동성애치유상담학교 개소식 다음 날 서울 논현동 갈보리채플서울교회에서 이요나 목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작 전 30분이 주어졌지만 주제에 주제를 타고 인터뷰는 1시간 30분 정도 계속됐다. 그는 한국교회가 동성애를 대하는 방법부터 치유상담학교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냈다.

    이요나 목사는 지금까지 자신이 상담한 기독교 동성애자들에 대한 통계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상담한 기독교인 동성애자가 1,500명 가까이 된다고 했다. 상담한 사람들 중 38%가 모태 신앙인이고 17%가 신학교를 다니거나 목사 자녀 등 사역 관련자라고 했다. 동성애치유상담학교 개소식에도 한 목사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참석했다. 탈동성애를 꿈꾸기 때문이었다.



    ▲ 교회 안 동성애자들이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한국교회는 동성애자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혐오 발언이 난무하고 '동성애 반대' 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벼랑 끝에서 자살 택한 교회 안 동성애자들

    교회 내 동성애자는 분명히 있지만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교회는 찾기 힘들다. 교회는 동성애자들을 없는 듯 여기며 저주와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많은 목사가 동성애는 악하고 더럽다고 묘사하며 동성애자를 매도한다. 바로 앞에 앉아서 설교를 듣는 사람이 동성애자일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 한다.


    "나를 찾아온 사람 중에 목사 자녀도 많다. 이 친구들이 똑똑하고 재능이 많아 교회에서 교사로 봉사하고 리더로 헌신한다. 그런데 교회에서 매주 동성애자는 죽일 놈, 더러운 놈이라고 말하니까, 듣고 있으면 미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털어놓을 수도 없고…그러다 결국 자살을 택한다.

    얼마 전 자살했던 청년도 기독교 대학 다니던 모태 신앙 친구였다. 2년 전 전화해서 상담받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로 오라 했는데 그 뒤로 연결이 안 됐다. 지난 1월 집회 때문에 중국에 있었는데 새벽 두 시에 연락이 왔다. '목사님 죽을 것 같아요. 잠을 못 자요. 숨 막혀 못 살겠어요. 살려 주세요'라고. 그때 바로 전화를 했었어야 하는 건데…"

    말을 이어 가던 이 목사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 목사는 지금 해외에 있으니 서울 가면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그는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뒤 청년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이요나 목사는 청년이 세상을 떠나고 2주 후 우연히 그의 어머니와 통화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동성애자면 어떠냐, 목사님을 만났으면 내 아들 살 수 있었을 텐데'하며 통곡했다. 그날 밤 이 목사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2년 전 일이다. 또 다른 이야기다. 광주에서 가장 큰 ㄱ교회 A 청년도 기독교인 부모와 갈등 속에 스스로 삶을 등졌다. 2년 전 광주·호남 지역에서 반동성애 운동이 거세게 일 때다. 교회에서는 매주 반동성애 서명을 받았다. 교회 가면 동성애자는 저주받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게 싫어 교회에 안 나갔다. 이번에는 부모가 아들에게 폭언을 했다. '동성애가 그렇게 좋으면 차라리 나가 죽어라.'


    "교회 내 동성애자 자살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 부모는 화가 나서 한 말인데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아들은 나가서 자살을 택했다. 교회가 이들의 등을 떠밀었다. 내가 모르는, 상담하지 못한 사람은 또 얼마나 많겠나. 죽은 A 생일이 5월이었는데 그날만 되면 엄마가 통곡하면서 전화를 한다."



    ▲ '나는 더 이상 게이가 아닙니다'는 동성애를 주제로 한 다큐 영화다. 이요나 목사는 이 영화 제작 과정 전반에 참여했다. 그는 이 영화와 관련해 할 말이 많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동성애 강의가 아니라 에이즈 강의?

    이요나 목사는 현재 '탈동성애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한국교회가 '동성애 반대'만 외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동성애 반대 진영의 일부 인사들이 너무 극단적인 발언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에이즈에만 집중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실제로 에이즈 감염자들을 교회에서 내쫓는 결과를 낳는다고 했다.

    "에이즈 감염인을 돌본다고 말하는 한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은 원래 암 환자들을 위한 요양 병원이었다. 그러다가 에이즈 감염인을 받기 시작했다. 현재 병원에 입원하는 감염인은 이전보다 많지 않다. 교회를 돌면서 강연하는 주요 강사들이 동성애 이야기를 한다며 에이즈에만 집중한다. 이런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 예수님 믿는 에이즈 감염자들이 교회를 떠난다. 내 경우만 해도 3년을 돌봤던 에이즈 감염 교인 두 명이 출석했다가 작년부터 잠적했다. 에이즈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감염자들을 더럽고 악하다고 묘사하는데 듣는 사람들 심정은 오죽하겠나."

    동성애자 괴롭힌 탈동성애 다큐

    이요나 목사는 얼마 전 교계에 소개된 '나는 더 이상 게이가 아닙니다'라는 다큐 영화에 출연했다. 출연한 것만이 아니라 제작 과정 전반에 참여했다. 영화에 나오는 탈동성애자도 다 이요나 목사가 소개해 준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요나 목사는 이 영화도 너무 동성애자를 비참하게만 묘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촬영 마치고 완성됐다고 해서 영화를 봤는데 내용이 너무 지나쳤다. 나오는 사람들 얼굴 모자이크도 엉성하고 자극적인 내용으로만 이야기를 꾸몄다. 그대로 나갈 수가 없어 나와 스폰서들이 미국에 모여 장면 하나하나 고치고 수정했다. 그렇게 해서 함께 완성한 영화다.

    이렇게 만든 것까지는 좋은데 원래 이 영화는 한국에서 공개적인 장소에서 상영할 계획이 없었다. 그런데 완성본 수정 과정에서 김광진 PD를 배제해 자존심이 상했던지 그후 일체 나에게 연락도 없이 일방적으로 시사회를 하고 다닌다. 뿐만 아니라 대형 교회를 돌면서 영화를 상영하고 자기 후속작 제작비를 모금하고 있다. 같이 만든 영화인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이런 과정에서 철저히 나를 배제했다."

    영화를 앞장서서 만든 것은 이요나 목사지만 정작 이득은 다른 사람이 얻고 있다. 한국에 공개될 줄 몰랐다가 영화에 묘사된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나 이 목사에 항의한 경우도 많았다. 대형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상영한 후 갈보리채플서울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하던 이 목사의 제자들은 교회를 떠났다. 영화에 출연했던 심여호수아 목사도 지난 1월 아내와 함께 일본으로 떠났다. 교회에서 영화는 보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는 '금지어'가 돼 버렸다.



    ▲ 탈동성애 운동을 하면서 '이요나 목사는 동성애 반대 운동을 싫어한다'는 오해도 받았다. 이 목사는 성경을 기반으로 한 성경적 상담이 탈동성애에 중요한 열쇠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동성애 반대'와 '탈동성애'는 달라

    '동성애 반대'만 치중하는 한국교회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뭘까. 이요나 목사는 지금 한국교회가 하는 동성애 반대 운동은 복음적이지 않다고 본다. 그는 동성애는 예수님의 능력 안에서 치유 가능한 죄라고 본다.

    "교회는 복음적으로 가야한다. 성 중독자나 동성애자들과 술집과 클럽에 드나들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같다. 왜 그런 것은 파헤치지 않는가. 간통죄 폐지될 때 왜 교회는 침묵했나. 청소년 10명 중 9명은 자위·스마트폰 등 온갖 중독에 빠져 있다.

    그런데 왜 동성애만 저주받은 인간으로 묘사하나. 동성애자들은 정말 자기 몸에 '보응'을 받았다고 할 정도로 충분히 괴롭다. 동성애라는 굴레에 빠진 것으로 인해 이미 충분히 괴로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는 것으로 위안 삼는 사람들인데 교회는 계속 동성애만 반대하고 저주받은 애들이라고 몰아가지 않나."

    이요나 목사는 한국 교계에 '이요나 목사는 동성애 반대 운동을 못 하게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고 했다. 그는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과거 동성애 반대 운동에 앞장서던 시절, 탈동성애자가 쓴 '동성애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글이 나갈 때 이요나 목사 전화번호가 공개됐다.

    이후 그는 동성애자들의 협박 전화에 시달렸다. 이 목사가 사는 곳을 콕 집어 말하면서 "내가 너 어디 사는지 다 알아"라는 전화가 오는가 하면, "나 에이즈 환자인데 너 하나쯤은 간단하게 에이즈에 감염시킬 수 있어"라는 전화도 많이 받았다. 이후 이 목사는 동성애 반대 운동을 정리했다. 그때부터 "이요나 목사는 동성애 반대 운동을 싫어한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주장했다.

    "동성애, 분명히 치유될 수 있다"

    그 뒤로 이요나 목사는 '반대' 보다 '치유'에 중점을 두고 상담 사역을 시작했다. 위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그가 여태껏 상담한 동성애자는 1,500명이 넘는다. 일주일에 많으면 열 명, 적을 때는 네댓 명이다. 동성애자를 상담하는 것 자체도 폭력이라고 보는 시각에 이 목사는 이렇게 답했다.

    "상담도 폭력이라는 주장은 잘못됐다. 의학적으로 보면 동성애는 성 중독의 일부다. 질병이 아니라고 밝혀졌으면 타고났다는 것도 잘못된 주장이다. 친동성애 진영은 아예 타고났다고 주장하지 않나. 타고났으면 생물학적으로 DNA를 제시해 주던가 해야 한다. 질병이 아니라고 한 것은 미국심리학협회가 질병 코드에서 삭제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봐서 약물·전기 등 각종 치료를 했는데 이것은 의학적인 치료를 말하는 것이다."



    ▲ 교계에서 이요나 목사는 '탈동성애 운동'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탈동성애 운동은 '전환 치료'와 전혀 다른 것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이요나 목사는 '치유'와 '치료'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만약 동성애를 고칠 수 없다면, 자기 자신부터 동성애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이 목사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약 80여 명의 미국 탈동성애자들도 마찬가지다. 이 목사는 분명하게 "동성애는 고칠 수 있다"고 말한다.

    탈동성애가 가능하다고 해서 동성애에서 벗어나는 게 쉽다는 말은 아니다. 이요나 목사가 상담한 1,500명 가운데 완전히 이성애로 돌아선 사람은 7명이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더욱 오랜 시간을 들여 성경에 기반을 둔 상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목사는 얼마 전 진주사랑의교회 사건처럼 동성애를 귀신 들렸다고 생각하면서 축사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건 오히려 동성애자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예수를 믿으면 죄를 정리해야 한다. 동성애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동성애를 끊어 내기 힘든 이유는 성(性)이 내부 요인이기 때문이다. 담배나 술은 외부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성은 아니다. 혼자서도 섹스를 하지 않나.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다. 예수 이름을 믿어야 하고 성령 안에서 씻음이 나타나야 한다. 성령은 말씀 안에서만 역사한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거룩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가 성경 가르치는 것을 소홀히 하고 밤낮 옳고 그른 것, 선과 악만 말한다. 성경을 못 가르치니까 성경적 상담을 배제한다.

    심리 분석은 통계다. 인간의 영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인데 이 영은 오직 하나님만이 감찰하실 수 있다. 심리학자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으면 예수님이 뭐하러 이 땅에 오셨나. 혼은 내 정신력이다. 정신은 항상 죄성에 의해 좌우된다. 예수를 믿으면 죄에서 벗어나 의인의 토대에 이른다.

    동성애자가 예수를 믿으면 영이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나지만 지식이 없으면 변하지 않는다. 동성애에 대한 지식과 느낌을 그대로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성경적 상담과 자기 대면 원리를 강조한다. 진리를 배우면 반드시 회개가 일어난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성령 안에서 씻음이 일어난다. 이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말씀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면 되는데 일부 몰지각한 목사들이 '동성애 귀신아 나가라' 이런 거나 하고 있다."



    ▲ 이요나 목사는 얼마 전 '동성애치유상담학교'를 개소했다. 그는 이 학교가 동성애 반대 일변도인 한국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길 기대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목사들 깨우고 싶은 '동성애치유상담학교'

    이요나 목사가 대표로 있는 홀리라이프 동성애치유상담학교는 다섯 종류의 상담 과정을 운영한다. 평신도와 목회자를 주요 대상으로 하는 과정이 있다. '성경적 상담사 전문가 과정'은 목회자들이 동성애에 대해 더 잘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시작한 과정이다. 물론 탈동성애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오는 치유 과정도 있다.

    그는 다시 한 번 한국교회에 '동성애 반대'에만 집중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동성애 반대'를 기조로 하는 당이 나오고 목사들의 혐오 발언이 난무하지만, 그것보다 동성애자들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이요나 목사는 얼마 전 <리애마마>(키네마인)라는 자전 수필도 펴냈다. 동성애자로 살았던 과거를 회상하고 탈동성애를 이루기까지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요나 목사는 영화 '나는 더 이상 게이가 아닙니다'를 세상에 나오게 하기까지 겪은 분노와 고통 때문에 치유 사역을 정리하고 외국으로 떠나려 했다. 동성애 반대 운동에 몰두하는 한국교회와 부딪히는 것은 어떤 면으로도 유익하지 않은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계에 동성애자를 이해하고 그들을 상담하려는 이 목사의 역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한국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교회가 탈동성애자들을 최종병기로 사용했으면 좋겠다.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하나님 안에서 치유될 수만 있다면 나는 모퉁잇돌처럼 쓰고 버려져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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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안에 부활의 예수가 없다

    하나님나라 복음이 사라진 한국교회에 고함

    한완상

    이 글은 평신도 교회인 새길교회에서 신학위원으로 있는 한완상 박사가 2016년 3월 6일 '새길교회 창립 29주년 기념 주일예배' 때 나눈 설교문(설교 제목: '해방자 예수, 바보 그리스도', 설교 본문: 마태복음 6장 9-13절, 요한복음 21장 15-18절)입니다. 새길교회의 허락을 받아 <뉴스앤조이>에 싣습니다. 설교자 메시지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문단을 나누거나, 띄어쓰기와 오자를 바로잡는 것 외에 수정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 편집자 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며,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십시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마태복음 6장 9-13절)

    "그들이 아침을 먹은 뒤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 예수께서 두 번째로 그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쳐라.'

    예수께서 세 번째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때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이나 물으시므로, 불안해서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먹여라.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요한복음 21장 15-18절)

    1.

    오늘날 기독교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저는 그것이 바로 <예수 없는 기독교>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를 믿고 따르기에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는 크리스천들이 실은 예수 그리스도가 안 계신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기야 이런 슬픈 현실은 한국 기독교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최고의 성서신학자 톰 라이트(N.T. Wright)는 복음서에서 잊혀진 얘기라는 부제를 달고 매우 날카로운 신학적 성찰을 해낸 문제작 <하나님은 어떻게 왕이 되셨나>(2012)를 최근에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네 복음서 모두가 감동적으로 증언한 갈릴리 예수가 실종되어 버린 사도신경의 문제를 새삼 기독교의 심각한 문제로 신랄하게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 지도자들이나 신학자들 중에 이 같은 예수 실종을 그렇게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거의 없는 듯하여 저는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2008년 <예수 없는 예수 교회>라는 책을 부끄럽고 답답한 심경으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오늘 저는 한국교회에서 역사적 예수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부활의 예수, 곧 그리스도도 안 계신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세상으로부터 온갖 비난과 조롱을 받고 있는 한국교회를 흔들어 깨우고 싶습니다. 역사의 예수도, 부활의 그리스도도 부재(不在)하신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나라 운동, 하나님나라 선교, 그리고 하나님나라 복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 한완상 박사.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기독교가 이른바 개독교로 변질된 것도 참으로 걱정스럽지만, 보다 저를 슬프게 하는 것은 예수도, 그리스도도 교회 안에 계시지 않고 하나님나라 복음도 한국 기독교와 교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나라 운동 실천에서 새길 신앙고백이 나왔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악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여 새 사람으로 일으켜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는 우리의 신앙고백은 우리의 주님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 질서, 새 구조를 만들어 가겠다는 결단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새길 신학의 핵심인데, 이 복음의 핵심과 본질을 다시 새롭게 깨닫기 위해 먼저 우리들은 한국교회에서 왜 예수와 그리스도가 안 계신지, 그리고 왜 하나님나라 운동이 실종되어 버렸는지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성찰해야 합니다.

    2.

    먼저 예수와 그리스도 간의 단절이 가져온 신학적, 신앙적 문제점부터 간단히 살펴봐야 합니다. 하기야 이 단절은 예수와 바울 간의 단절과도 연관되고, 하늘과 땅 간의 분리와도 연관되며, 하나님나라와 죽어서야 간다고 믿는 천당 간의 괴리와도 연관이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예수가 그리스도에서 분리되고, 그리스도가 예수로부터 단절된 것이 오늘 기독교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먼저 한국교회의 역사와 현실에서 이 단절의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세기 말 주로 미국 선교사들로부터 전승된 기독교 복음에는 예수와 그리스도 간의 단절이라는 문제보다는 일종의 '몽매한 일치'가 두드러졌습니다. 소박하게 말하자면 예수는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성으로 인식한 듯합니다. 이런 소박하고 몽매한 동일성은 초기 선교사들의 근본주의적 신학과 신앙에서 비롯된 듯합니다.

    그들은 대체로 19세기에 풍미했던 자유주의 신학을 거부했습니다. 하기야 19세기 서구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과 반발에는 근본주의 신학 이외에도 성서비평(고등비평)에 의한 고차원의 진보적 비판도 있었습니다. 특히 20세기 초 실존주의적 성서 해석은 역사의 예수에 대한 역사 탐구를 단절시켰습니다. 진보적인 성서비평도 희한하게 근본주의 신학과 함께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를 포기하게 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게 했습니다.

    불트만(Bultmann)은 실물 예수의 말씀과 삶, 그의 성품과 의식 등을 과학적으로, 객관적으로 재구성해 낼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네 복음서가 증언하는 예수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위기에 봉착했던 초대교회가 삶의 자리에서 조명해 본 부활 예수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가 체험했던 부활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복음서를 해석한 것이지요.

    이런 신앙고백(케리그마)을 객관적 역사 사실로 환치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 결과 반세기 동안 서구 성서신학의 역사적 예수 탐구는 중단된 셈입니다. 이런 역사 예수 탐구의 중단이 가져온 심각한 역사적 후유증으로 우리는 히틀러와 같은 구조적 악 앞에서 교회가 무력했다는 사실에 새삼 주목해야 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초대 한국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성서비평은 위험한 반신앙적 접근으로 보아 배격했습니다. 근본주의 신학과 신앙의 관점에서 복음서는 일점일획도 틀릴 수 없는 객관적 역사적 진실로 확신했습니다. 곧 예수와 그리스도가 동일하다고 문자주의 신앙으로 수용했지요. 역사와 신앙고백을 몽매하게 혼돈시켰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이해는 하나님나라 운동이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역사적 변혁성을 부적절한 것으로 무시했습니다. 예수와 그리스도 모두가 탈역사화되고, 사사화(私事化)되고 말았습니다. 이 같은 몽매한 미분화 인식에서는 감동적인 역사 변혁 실천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러한 몽매함과 연관해서 우리는 한국교회 분열사(分裂史)에서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음을 눈여겨보고 반성해야 합니다.

    갈릴리 예수의 역사 실천 동력과 그리스도의 차원 높은 실천적 역동성을 모른 채, 교단 분열과정에서 예수와 그리스도는 분열되고, 가슴 아프게도 예수와 그리스도 간에 반(反)복음적 증오와 투쟁이 펼쳐졌지요. 분열 과정에서 예수 이름을 먼저 차지한 교단에 대항하여 분열된 다른 반쪽은 그리스도 이름을 독점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었지요.

    1953년 6·25 전쟁의 참화 속에서 가슴 아프게도 예수교 장로교와 기독교 장로교는 분열될 수 없고 되어서는 안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반반씩 잘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성결교단도 장로교 분열의 그 위선적 길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더 보수적 장로교단이 역사적 예수를 가져가고, 상대적으로 더욱 진보적인 교단이 부활의 그리스도를 가져갔습니다.

    하기야 저는 예수와 그리스도 간에는 그 역사적 진보성과 실천적 변혁성에 있어 본질적 차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식적으로는 많은 분들이 갈릴리 예수는 진보적 실천에 앞섰다고 보고, 부활의 그리스도는 보다 신비하고 영적인 존재로 봅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총체적으로 하나님나라 운동의 실천적 관점에서 보면 부활의 그리스도가 갈릴리 예수 못지않게, 아니 더욱 더 감동적 실천의 동력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부활의 그리스도는 보다 더 따뜻하고, 보다 더 품어 인도해 주시고, 보다 더 인간적인 점이 넘치는 사랑의 메시아이심을 복음서는 증언해 줍니다. 부활 예수의 영성이 얼마나 더 공공적이고, 더 감동적이고, 더 변혁적인가를 증언하고 싶습니다. 오늘 저는 이 점을 좀 더 부각시켜 보고 싶습니다.



    ▲ 노엘 쿠아펠(Noël Coypel)의 '예수의 부활'(La Résurrection, 1700년 作.)

    3.

    예수 복음이 본질적으로 갖는 공공성과 감동성 그리고 변혁성에 주목하면서 복음서를 읽어 보면, 갈릴리 예수의 메시지와 그의 실천이 십자가 고난과 처형을 거치면서 더 강열하게 그 공공성과 변혁성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처형 후 사흘 만에 부활한 그리스도의 현현에서는 놀랍게도 이 같은 공공적 변혁의 동력이 더욱 감동적으로 나타남을 확인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갈릴리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의 감동적 동력이 실체로 부활한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를 그리스도에서, 그리스도를 예수에서 추상적으로, 신학적으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이 점을 확인해 보기 위해 갈릴리 예수의 대표적인 하나님나라 비전(또는 메시지) 하나와 부활의 그리스도 메시지를 하나를 특별히 부각시켜 보겠습니다.

    먼저 예수의 기도, 즉 주기도문은 그의 하나님나라 운동의 핵심을 짧게 그러나 강열하게 드러내 보입니다. 예수 메시지가 갖는 전복적인 진보성(또는 급진성)이 이 기도에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예수의 이 전복적 비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반부는 하나님과 인간 간의 바람직한 관계를 드러내기 위해 먼저 당시 유대인들의 잘못된 하나님 인식과 그 오용을 지적합니다. 여기도 크게 두 가지 메시지를 던지고 있지요.

    첫째는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예수의 미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바(Abba)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기에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마땅한데도 실제로는 하나님의 이름이 정치 종교적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어 버린 당시 종교 상황을 예수는 개탄하셨습니다. 신의 이름이 이데올로기로 변질되면, 한마디로 오웰(Orwell)의 소설 <1984>에 나타나는 극심한 언어의 도착이 일상화됩니다.

    끔찍한 구조 악의 위선적 자기 치장의 추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거짓과 진실을 분별해 주는 이성적 능력이 구조적으로, 문화적으로 마비되어 버립니다. 이를테면 사랑성(省)이라는 국가기구가 고문이라는 폭력을 제도적으로 전담하게 되지요. 진리성(省)이라는 국가 이데올로기 기구가 뻔뻔스럽게 거짓을 날로 유포하게 됩니다. 풍요성(省)이라는 국가 경제기구가 노동 착취를 합리화하게 되지요.

    이 같은 위선적 전체주의적 억압과 착취 구조 아래에서 밑바닥 인생은 빅브라더가 지시하는 대로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듯 열망하게 되고 마침내 그들은 가축화되고 말지요. 바로 이 같은 비극이 하나님 이름이 불경스럽게 오용되는 현실이기에 갈릴리 예수님은 그의 기도문에서 하나님 이름의 이데올로기적 변질을 극복하라고 당부하셨지요.

    하나님 이름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결단코 이데올로기적 왜곡되어 변질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의 이름은 실천의 본질입니다. 허위의식의 겉치레가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도 시편(23편)에서에서 "그의 이름을 위하여 의(義)의 길로 인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했지요. 하나님은 이름이면서도 바로 공의와 샬롬의 변혁으로 이끄는 실천적 동력이지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 이름이 그토록 소중한 것입니다.

    전반부 주기도문에서 또 다른 소중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이름이 바로 변혁의 동력이 된다는 위의 메시지와 긴밀히 연결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뜻이 반드시 우리의 땅, 우리의 역사 현실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당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 지배(Love-dom)가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역사 현실 속에서 이뤄져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힘써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 이름의 실천적 동력은 언어 도착이 정치적으로 심각하게 제도화되어 있는 우리 현실에서는 이 도착을 바로잡는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선교로 이어져야 합니다. 민주주의 이름으로 민주주의가 죽어 가고, 정의의 이름으로 정의가 짓밟히고, 평화의 이름으로 잔인한 전쟁을 부추기는 우리의 현실에서 하나님 이름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같은 구조 악의 지배를 극복해 내야 합니다.

    예수 이름과 부활의 그리스도 이름이 함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될 때, 그 이름이 뿜어내는 변혁 에너지는 엄청납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베드로가 회당 입구에서 구걸하고 있던 지체장애자 걸인에게 준 메시지가 무엇이었습니까? 사도들에게 알량한 돈 몇 푼 받고 싶어 했던 그 장애자 걸인에게 베드로는 사랑의 눈빛으로 그를 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던가요.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사도행전 3장 6절)

    자본주의 체제에 깊이 동화되어 있는 저희들로서는 베드로의 이 같은 변혁의 감동적 명령을 이해하기 참으로 힘들 것입니다. 금과 은의 힘으로 태연하게 자본주의적 갑질에 익숙하게 살아온 크리스천들은 이 이름, 곧 역사적 예수인 나사렛 예수의 이름의 힘으로 이 장애자를 총체적으로 변화시킨 사실의 참뜻을 우리 상황에서 항상 곱씹어 봐야 할 것입니다.

    금과 은 부스러기를 받고 평생 장애인으로 구걸하는 처지를 근본적으로, 급진적으로 바꿔 버린 이 총체적 변혁의 감동이 바로 주기도문의 핵심적 메시지입니다. 이때, 베드로는 이미 부활의 그리스도를 체험했기에, 나사렛 예수가 곧 부활의 그리스도임을 온몸으로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예수는 곧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이 주는 역사 변혁의 힘을 그는 기쁘게 복음 사역으로 실천했던 것입니다.

    주기도문의 후반부는 인간과 인간 간의 바람직한 관계를 중심으로 아바(Abba)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구체적 실천 프로그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는 프로그램이지요. 이 권고에는 깊은 뜻이 숨어 있습니다. 광야 40년의 고난 순례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만나를 얻어먹었습니다.

    만나는 일용할 양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루 이상 쌓아둘 수 없었습니다. 축척하는 순간 그것은 썩게 되어 있었습니다. 축척을 미덕으로 삼는 자본주의 본질의 빛 아래서 보면 이 권면은 참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메시지입니다. 축척 탐욕이 인간을 근원적으로 비인간화시킨다는 진실에 우리는 새삼 주목해야 합니다.

    다음 메시지는 또한 엄청난 메타노이아를 우리들에게 촉구하는 예수의 메시지입니다. 채권자가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 주듯이 하나님께서 저희들의 죄와 빚을 용서해 주시고 탕감해 달라는 청원 메시지입니다. 크리스천들이 채권자인 갑으로 채무자인 을들에게 갑질하는 한 주기도문을 입에 담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경제적 갑질을 뉘우치고 버리지 않는 한 우리의 기도는 무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려면 먼저 우리는 우리의 을들에게 하고 있는 온갖 갑질을 그만두는 결단부터 내리고 당장 실천해야 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끼리의 공의와 평화를 소중히 여기시지요. 그래야 하나님나라가 우리 안에서 비로소 펼쳐지게 됩니다.

    주기도문에서 드러나는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은 또한 유혹의 극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유혹은 예수님을 광야에서 유혹했던 사탄의 유혹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세상에서 지도자가 되려는 크리스천들에게 이 유혹 극복은 참으로 적절하고 절박한 메시지입니다. 교만과 독선과 힘에 의한 제압으로 세상을 이끌려는 지도자는 결코 하나님나라를 세울 수 없음을 주기도문은 명확하게 강조합니다.

    그 흔한 돌로 값진 빵(재화)을 만들고 싶은 물량제일주의나, 세상을 높은 곳에서 호령하여 천하를 자기 앞에 무릎 꿇게 하고 싶은 지배제일주의나, 하나님의 카리스마를 빙자한 종교 주술적 지배욕에 함몰하게 되면, 마침내 사탄 지배 질서에 항복하게 되고 맙니다. 이 진리를 장엄하게 주기도문은 깨우쳐 줍니다.

    그런데 이 사탄의 유혹은 바로 구조 악의 유혹이기도 하지요. 악의 구조적 민낯을 예수 따르미들은 항상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복음에 보면(8장 26절에서 39절), 예수께서 거라사 지방 무덤가에서 참으로 비참했던 정신 질환자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다가가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왜 물으셨을까요? 그저 그를 고쳐 주면 되지, 왜 이름을 물으셨을까요?

    역사의 예수는 인간을 괴롭히는 사탄의 구조적 본질임을 드러내 보이시기 위해서 짐짓 물으셨습니다. 그 정신 질환자는 자기 이름이 바로 로마 군단이라고 대답합니다. 당시 천하를 폭력적 승리주의로 지배했던 팍스로마나의 민낯, 그것도 그 제도화된 구조적 폭력 지배의 정체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 지배, 공의 지배, 그리고 평화 지배와 선명하게 대조되는 사탄의 군사적 폭력 지배임을 폭로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구조적 악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는 예수님의 선교는 결단코 관념적, 명상적, 신학적 탐구활동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축사치유행위는 개인적 정신 질환의 치유만이 아닙니다. 그 질환의 뿌리에 스며 있는 사탄의 구조 악을 제거하는 총체적 치유였습니다.

    이렇게 역사의 예수가 추진했던 하나님나라 운동은 구조적 악에서 개인만 일으켜 세워주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의 세력을 무력화시키는 놀라운 힘을 드러내는 공공적, 감동적, 변혁적 운동입니다. 그렇다면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셨는데, 부활의 예수, 곧 그리스도로 격상된 부활 예수도 이 하나님나라 운동을 계승하고 지속하셨던가요? 부활의 그리스도는 영적인 존재이신데, 구태여 세상의 구조 악을 축출하는 이른바 하나님나라 운동에 얽매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4.

    이제 오늘의 말씀 증거의 핵심으로 들어가 봅시다. 우선 부활 예수의 존재는 과연 몸의 실체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라는 문제부터 잠시 살펴봅시다. 과연 예수 제자들과 초대교회는 예수의 부활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새삼 주목해야 합니다. 지난 2천 년 가까이 제도 교회는 예수 부활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면이 있다고 지적하는 신학자들이 많습니다.

    톰 라이트(N.T. Wright)가 이 점을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대표적 성서신학자입니다. (2008년 그가 출간한 는 좋은 길잡이가 됩니다.) 초대교회에서도 부활 예수를 실체에서 분리된(disembodied) 영의 존재로 잘못 보았던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처음부터 영적 존재로 보았던 분들이 있었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은 예수는 신적인 영성의 존재이기에 육체의 아픔에서 완전 자유롭다고 믿었지요. 이것이 가현설(Docetism)의 예수입니다. 이런 예수는 이미 탈역사화되고, 탈실체화된 예수 인식이지요. 이들에게는 십자가 고난은 아무 의미 없는 사건이지요. 일종의 쇼(Show)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고난의 의미가 우리 가슴에 와 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변혁의 감동적 동력이 될 수 없습니다.

    이 같은 예수의 탈실체화 움직임은 역사 속에서 악을 변혁시키는 일을 과소평가하거나 아예 기피하는 움직임으로 쉽게 연결됩니다. 여기에 영지주의 영향이 작동하게 됩니다. 세상은 악하기에 이 세상을 떠나 천당에 가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구원의 종착이라고 믿게 됩니다.

    구원은 여기 역사 속에서 만물을 새롭게 재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일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피난하여 피안으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믿는 믿음은 영혼불멸설을 강조했던 플라톤 사상과도 상통합니다. 그래서 신플라톤주의 사상과 영지주의 사상이 초대교회를 혼란시킨 것도 사실이지요. 그렇다면 복음서가 증거하는 부활 예수 곧 그리스도는 과연 육체를 떠난 탈실체화된 영적 존재였을까요? 그리고 부활예수는 하나님나라 운동에 전혀 무관심했을까요?

    여기서 초대 예수 따르미들이 가졌던 몸의 부활에 대한 신앙적 판단을 우리는 제대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대체 몸의 부활 또는 부활 예수의 몸은 어떤 것일까요? 무엇보다 먼저 부활 예수의 몸은 실체(physicality)입니다. 그렇다고 썩어 없어지는 우리 육체의 몸은 결단코 아닙니다. 그러기에 부활인 resurrection은 몸의 재생을 뜻하는 resuscitation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나사로의 부활은 썩어질 몸이 잠시 소생했으나 결국 또다시 죽어 썩어질 몸이었지요. 그런데 예수 부활은 몸의 부활이지만 이 몸은 썩지 않은 몸입니다. 썩지 않는다는 뜻으로 또는 죽지 않는다는 뜻으로 영의 몸 또는 영의 실체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이 플라톤적인 영혼불멸의 영과는 다릅니다. 가현설적인 영과도 전적으로 다르지요.

    ▲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의 '나사로의 부활'(The raising of Lazarus, 1630년 作)

    부활의 몸은 썩지 않기에 썩을 우리의 육체의 몸보다 더 견실한 실체(physicality)를 지니고 있습니다. 실체성, 공간 점유성, 실천성, 감동성, 공공성, 그리고 변혁성을 모두 지니고 있지요. 그러니까 역사 변혁성은 부활 이전의 예수 삶에서 보다 더 강렬하게 작동합니다. 바로 이 점을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6절에서 29절을 보면 참으로 흥미로운 증언이 나옵니다. 부활 예수의 모습이 부활 이전 예수(역사 예수)의 모습보다 더 따뜻하고, 더 바로 보살피시고(바보스럽고) 더 품어 인도하시는 엄마와 아빠 같은 모습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제자들 중 도마는 어느 누구보다 계몽주의 이후 시대의 지식인다운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모더니스트(modernist) 제자였습니다. 합리적 비판의식을 지닌 제자였지요.

    톰 라이트(N.T. Wright)는 그를 역사 탐구적 태도를 가졌다고 했습니다. 25절에 그는 이렇게 정직하게 말했습니다. 내 손가락으로 그 못 자국과 옆구리를 만져 보지 않고는 부활 예수를 믿을 수 없다고 했지요. 이때 제자들은 예수를 십자가형으로 죽인 공안 당국의 체포가 두려워 한곳에 모여 숨죽여 숨어있었습니다. 매우 불안한 상황이었지요. 바로 이때 문이 꽉 닫쳐 있었는데, 부활의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유령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놀랍게도 부활의 그리스도는 유령처럼 결코 행동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매우 자상한 스승이나 엄마, 아빠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바란다"라고 하셨지요. 유령이 평화를 선포하고 엄마처럼 격려해 주나요?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도마에게 직접 다가오셨습니다. 부활의 예수를 믿지 않았던 그의 합리적 의심을 결코 나무라지 않으셨지요. 오히려 도마에게 예수의 손바닥 못 자국과 옆구리 상처를 손으로 만져보라고 하셨습니다.

    갈릴리 때보다 더 인자하고, 더 부드럽고, 더 따듯하게 그의 부활의 몸을 만져보라고 했지요. 부활의 몸이 결코 유령의 영이나, 환상에 나오는 실체 없는 유령이 아님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확인하라고 말씀하셨지요. 도마는 썩지 않는 예수 부활의 몸이 썩을 수 있는 부활 이전의 몸과 겉으로는 다를 바 없음을 이 순간 만지지 않고도 알 수 있었습니다. 부활의 몸이 육체의 몸 보다 더 실체적으로 따듯하고, 친절한 몸임을 깨달았지요.

    그리고 도마는 참으로 놀라운 신앙적, 영적 탄성을 발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은 허무주의를 뛰어넘는 역동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신앙고백이라 할 수 있지요. 일찍 베드로가 뜻도 모른 채 예수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한 고백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이 두 고백 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도마의 고백은 직접 자기 손으로 만질 필요 없이 부활 예수는 그리스도요, 메시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임을 깨달았던 진정한 고백이며, 도마는 자기 고백의 의미를 스스로 감동적으로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고백의 뜻을 깨닫지 못했기에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거짓말했습니다.

    도마의 응답에 대해 부활의 몸이 되신 예수는 이렇게 그때나 오늘이나 저희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시며 깨우쳐 주십니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복이 있다." 이 말씀 듣고 보니까 역사의 예수 모습도, 부활의 예수 몸도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우리들이 2천 년 전의 예수 제자들보다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지금 저희들이 진정 도마보다 더 큰 축복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으려면 적어도 도마처럼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역사의 예수를 볼 수 있고, 또 역사의 예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럽고 더 품어 보살펴 주시는 사랑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공동체에서 혹시나 역사적 예수에게는 부활의 따듯한 영이 없고, 부활의 예수는 순전히 영적 존재이기에 역사 변혁에는 관심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자매, 형제가 있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하나님나라 펼침의 기쁨을 우리 현실 속에서 온 몸으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지요. 부활의 예수께서 이 하나님나라 펼침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를 이제 마지막 메시지로 여러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예수가 승천하시기 전 수제자 베드로에게 당부한 지엄한 권면의 뜻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요한복음 마지막 장인 21장에 주목해 봅시다. 놀랍게도 부활 예수와 제자들이 함께 마치 지난날처럼 아침을 먹었습니다. 식사 후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게 참으로 진지하게 세 번씩이나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부활 예수가 실체가 없는 유령이 아님을 주님께서 친히 차려주신 아침밥을 먹고 확인한 뒤라 제자들은 예수님을 진짜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새삼 깨닫고 기뻐하고 있는 중에 예수 그리스도가 수제자에게 세 번씩이나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불과 얼마 전에 예수를 세 번 모른다고 비겁하게 부인했던 터라 베드로는 매우 민망하고 송구스러웠겠지요. 세 번 모두 베드로는 자기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물론, 그 사실을 부활의 주님께서 친히 알고 계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대답할 때마다, 부활의 주님은 이렇게 권면하셨습니다. "내 양 떼를 먹여라."

    도대체 이 명령의 뜻이 무엇일까요? 이 명령이 하나님나라 펼침과 세움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이 권고가 2천년이 지난 오늘 기독교 공동체에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명령이 오늘 분단된 조국 땅에서 한국교회에게 주는 선교적 의미가 무엇일까요? 특히 30세 생일을 앞두고 있는 새길공동체에게 부활의 주님과 이 명령은 어떤 의미를 던져 줄까요?

    5.

    여기 "내 양 떼"는 무엇을 뜻할까를 예수 당시 상황과 오늘 우리 상황에서 심각하게 성찰해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특히 부활의 몸이 되는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대답을 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래, 그래야지. 나를 정말 사랑해야지. 너는 나를 세 번씩이나 부인했으니, 이제부터는 정말 나를 사랑해야지."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고 세 번씩이나 내 양 떼를 정말 돌보고, 먹이고,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역사의 예수나, 부활의 예수는 자신을 항상 이 양 떼와 동일시하시고, 그들과 공감하셨고 동고하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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