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설교가 요구하는 시간 2015-12-16 14:13:45 read : 3238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정장복 총장
한 편의 설교가 완성되기까지 필요한 준비의 시간이 어느 정도가 가장 이상적인지에 대한 질문을 수없이 받는다. 이러한 질문은 우리의 개혁교회가 설교 중심으로 나아갈 때부터 발생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1870년에 출판돼 20세기 중반까지 설교학 교재로 널리 사용된 ‘설교의 준비와 전달’의 저자 존 브로더스(John Broadus)로부터 듣게 된다. 그는 설교의 준비와 그 소요 시간에 대하여 묻는 설교의 초년병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한 바 있다.
“정확한 대답이란 있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목사로서 쌓아 올린 지난 세월의 모든 학문과 현재 진행 중인 연구와 명상과 기도와 목회, 그리고 설교자의 눈으로 보는 모든 사람과 사물들이 설교의 초석이 되고 상부 구조가 되는 데 공헌을 하기 때문이다.”
브로더스의 말대로 설교의 준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고 말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실질적으로 설교의 준비란 위에서 본 대로 한 설교자의 삶 자체가 요구되어지기 때문에 그 준비의 한계를 분명히 그을 수 없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기 위하여 자나깨나 명령을 기다리고 생각하며 자료를 찾아 헤매는 것이 그들 생활의 전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브로더스의 이상과 같은 대답은 설교를 위한 설교자의 기본 자세를 논한 것이기에 여기서는 그 원론적인 바탕 위에 한 편의 설교를 해당 주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하고, 그 소요 시간은 어느 정도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현대 설교학자들은 한 편의 설교를 완성시키기 위하여 직접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이 대체적으로 설교 길이에 따라 달라진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러나 대부분이 30분의 설교는 30시간을, 25분의 설교는 25시간을 직접 준비의 시간으로 책정한다.
이 시간의 산출은 주일 낮 예배의 설교를 위하여 소요된 시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설교자는 매일 4시간 이상씩 설교를 위하여 준비해야 한다. 한국의 설교자들은 한 편의 설교를 위하여 20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새벽기도회가 끝난 다음에 바로 서재로 들어가 정기적으로 하루에 4시간씩만 앉아 설교를 준비한다면 일주일에 20시간 이상을 내놓기가 고통스러운 일만은 아니다.
일찍부터 글을 좋아하고 글을 읽는 사람을 존경해 온 한국의 문화이기에 설교자가 선비적 자세로 서재 속에 파묻히고 책을 가까이 하는 모습을 오늘의 교인들은 어느 때보다 간절히 원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설교 사역을 감당하는 한국의 설교자들은 한 편의 설교 준비를 위하여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느냐를 묻기 전에 매일의 설교 준비를 습관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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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를 깨운 종교개혁 설교
종교개혁은 학문적 부흥과 신대륙의 발견, 그리고 과학의 발달과 사회, 정치적인 면에서의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다. 이 시기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인본주의자 에라스무스가 헬라어 신약성경을 편저하였고 당시에 실시되었던 설교의 원리를 요약적으로 설명한 ‘복음 설교자(Gospel Preacher)를 저술했다는 사실이다.
종교개혁의 주역들로 루터, 츠빙글리, 칼빈, 그리고 낙스와 같은 설교자들을 들 수 있다. 그들은 오늘의 개신교가 있도록 하는데 자신의 생명을 다한 설교자들이었으며 개혁자들이었다. 이들은 일차적으로 설교를 통하여 회중과의 만남을 가졌으며 그 설교를 지속하다가 이 땅을 떠난 사람들이었다.
이 개혁자들의 설교는 중세의 잠에 취해 있던 성직자들을 일깨웠고, 제도와 형식에 짓눌려 생기를 잃은 교회에 새로운 활력의 기운을 불어넣어 준 각성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입을 모아 허황한 미사의 진풍경을 배격하면서 믿음의 핵심을 찾아 지속하는 길은 말씀의 회복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츠빙글리는 에라스무스가 편집한 헬라어 신약성경에 큰 도움을 받아 1519년 1월 당시에는 금시 초문인 마태복음 주해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외에도 사도행전, 갈라디아서, 디모데전후서를 가지고 설교했다. 그는 무원고 설교를 했고, 출판을 위한 원고를 작성하지 않았기에 그의 설교문 중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는 로마 가톨릭의 중요한 오류를 거의 파헤치고 지적했다.
루터는 설교를 통해 독일 국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자 했다.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국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설교를 했다. 주로 주해 설교 형태를 바탕으로 생활에 직접 관계되면서도 성경본문에 충실한 설교를 행했다. 형식적인 방법보다는 아주 강한 설득과 논쟁, 비유, 상상력, 응용에 치중했다.
장 칼빈은 주석가요 신학자로서 명성이 높았다. 그는 성경에 중점을 두고 연속적으로 주해 설교를 하였고, 단순하고 직접적인, 그리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설교했다. 그는 루터보다는 적은 횟수의 비유와 상상력이 담긴 설교를 하면서 수사학적인 면보다 성경적인 면을 취하는 무게가 있는 설교를 행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 개혁자들이 설교의 특성을 살펴보자. 이들이 어떤 정신과 내용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의 설교 앞에 언제나 구름 떼처럼 많은 인파가 모여들었고 세계를 호령하던 교황청이 새로운 역사의 출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는지 그 설교의 현장을 살펴보자.
첫째,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미사를 지적하면서 초대교회처럼 말씀과 성례전이 동반된 교회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렇지 못할 경우 예전 의식이란 단순히 마술적 연기에 불과함을 공격하면서 말씀이 선포되는 예전을 강조하였다. 이로 인해 설교가 예배의 중심으로 회복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 결과 설교는 정기적으로 행해졌고, 회중은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만나는 감격을 맞이하게 되었다.
둘째, 그들의 설교는 사도들의 설교 내용과 같이 하나님의 은총과 그 사랑의 복음으로 오신 예수님을 내용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들은 그 수난과 부활의 의미와 교훈을 받아들인 사람에게만 구원이 주어진다는 지극히 단순한 복음의 전달에 전심을 다하였다. 그들이 이렇게 한 이유는 복음의 본래적 사명 완수라는 지상 명령에 그 근거를 둘 수 있으나, 교회의 제도와 성직의 절대권에 의하여 감추어진 복음의 진수를 시급히 알려야 한다는 급박한 상황에서 설교를 행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셋째, 개혁자들은 설교 사역을 목사의 가장 일차적인 사명으로 강조하였다. 그 이유는 목사라는 직분이 무엇보다 ‘하나님의 진실된 입이다’라는 개혁자들의 확신 때문이었다. 이 때부터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자로서 또는 말씀의 대언자로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말씀의 전달자로서 오늘의 회중 앞에 서야 한다는 사명의 확신을 재다짐 하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설교의 절대 권위는 확보되었고, 회중이 설교를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역사가 발생하였다.
넷째, 개혁자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지속적으로 은총을 전달해 주시기 위해 말씀과 성례전과 성령님의 3대 방편을 사용하셨으며, 하나님은 그것을 오늘의 역사 가운데서도 계속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그들은 설교가 단순히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의 발로가 아님을 가르치면서 설교자의 소명의 필연성을 재다짐하였고, 설교자의 사역은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이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다섯째, 개혁기의 설교자들은 설교를 결코 사변적이거나 수사학적인 능변에 의존하지 않았고 지극히 평범하고 직선적인 형태를 취하면서 삶의 현장에 있는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씀 전달에 노력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지금까지 라틴어의 그늘 속에 가려져 있던 성경 말씀을 회중의 모국어로 옮겨 놓은 열심에서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이 말씀을 그들의 언어로 해석해 주고 이 말씀이 삶의 현장에서 실현되도록 하려는 뜨거운 열정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으로 이 땅에 정착되었으며, 그 결실은 신속하게 맺혀질 수 있었다.
끝으로 설교의 역사에 개혁자들이 남긴 유산은 설교의 바른 정신과 그 방향을 정립했다는 사실이다. 개혁자들이 남긴 설교의 형태와 내용과 전개는 후대 설교자들의 살아 있는 귀감으로서, 설교의 본질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므로 오늘의 설교는 언제나 개혁자들의 설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계속 변화되는 역사 속에서도 어떠한 변질도 허용되지 않는다. 다간(E.C. Dargan)의 말대로 분명히 개혁자들이 복구한 설교의 방법과 내용과 이해는 오늘의 설교가 현대를 직면하는 데 있어서 흔들리지 않는 초석으로서 작용할 것이며 보호의 벽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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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그린빌신학교 총장이 말하는 설교정론
한국개혁주의 설교연구원 세미나서 조셉 파이파 총장 발표
21일부터 어제 23일까지 성복중앙교회(담임 나성균 목사)에서 '중생과 설교에서의 성령의 역사'라는 제하에 열린 한국개혁주의 설교연구원 19기 정기 세미나에서 그린빌 신학교 조셉 파이파(Joseph. Pipa) 총장은
"설교는 무엇보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며, 존 스토트의 말을 인용, "설교가 개발되는 원칙은 방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설교에 대한 성경적 신학을 배우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조셉 총장은 우선 '설교'의 개념을 '은혜로운 메세지의 수단인데, 이는 단순한 가르침과는 구별되는 공식적이며 독특한 교리 전달방식'이라고 정의했다.
또 설교의 권위와 기능에 대해서는 각각, "설교는 교회를 통해서 제정하여 따로 세운 사람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권위적이요 공적인 일이며, 구음으로 하나님의 메세지를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특별한 방식으로 임재하셔서 초자연적으로 말씀하신다", "설교는 죄인을 계몽시키고 그들에게 은혜를 주시어 구원을 유효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설교의 기능에 관해 설명할 때 조셉 총장이 인용한 모온스(Mounce) 박사의 '설교'에 대한 이해는 다음과 같다.
"설교란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적 행위와 그에 대한 인간의 이해 사이의 영원한 연결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나타내신 자기계시이며 그 일에 대하여 사람들이 믿음으로 반응하도록 제공하시는 매개체이다"
한편 효과적인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조셉 총장은 '우선 설교내용이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의 내용을 다루어야만 할 것"을 힘주어 강조했다.
이와관련 "설교의 목적은 성경의 진리를 가장 명확하게 만드는 것이어야만 하는 것, 모든 기독교 설교는 몇몇 중대한 성경적 진리를 구체화해야만 한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아울러 주제별 설교, 본문 설교, 연속적인 강해설교 등의 설교유형의 장단점을 설명, "설교유형의 적용은 교회의 현재의 필요성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되어질 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설교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반드시 독특한 방식으로 역사하셔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따라서, 설교자는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매일 성령께 호소해서 원고를 작성하고 주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모든 사역은 우리 자신의 불충분함과 그래서 전적으로 그리스도 의존되어 있다는 깊은 이해에서 비롯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빛과 생명을 향해 나아가야 하며 그 임무를 위해 우리를 보내신 주님께 힘을 얻어야 한다(리차드 박스터, '참 목자상'에서)"
또 "성령이 설교에 임할 때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듣는 청중들의 영혼에 적합한 언어로 말씀하신다"면서, 토마스 보스톤 목사가 설교 전 하는 기도제목 목록을 소개, "성령의 부음받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설교자가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직 성령의 개입하심만이 그 말씀을 강의나 암송, 담론 및 웅변 혹은 묵상으로 만들지 않고 성령의 활력 안에서 발설되는 설교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설교되어진 것이다. 만일 성령이 임재하지 않으면 거기에는 말하는 방식에 있어서 설교문만 있을 뿐 진정한 설교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셉 총장은 "설교는 하나님의 성령의 음성이 들려져 토해내는 즉흥적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자유롭게 설파하는 것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제정하신 것이 감추어져는 안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설교는 "여러 말보다 행동이 더욱 가슴에 남는 법"이라며, 설교자는 성도를 사랑하는 면에서 그리고 도덕적인 면에서 세상과 하나님 앞에 흠없는 거룩한 삶을 살아갈 것을 주의시켰다.
조셉 총장은 "설교의 말의 표시나 제스처 등은 자연스럽게 마음에서부터 우러 나와야 하는 것으로 적절치 못한 문구, 소리, 말들의 운율들의 사용을 자제할 것, 설교가 유창하지 않다 할지라도 수사학적이고 인위적인 연구와 도움을 피할 것" 등에 대한 내용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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