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총 신임 대표회장에 엄기호 목사 당선/ 또 불거진 청소년 사역자 성적 타락 2017-08-25 14:16:04 read : 3741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한기총 신임 대표회장에 엄기호 목사 당선
24일 임시총회에서 2차 투표 끝 서대천 목사 제쳐
▲엄기호 신임 대표회장(왼쪽)이 이용규 선거관리위원장으로부터 당선증을 전달받고 있다. ⓒ이대웅 기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에서 엄기호 목사가 당선됐다.
한기총은 24일 오전 서울 대학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28-2차 임시총회에서 대표회장 선거를 진행했다.
1차 투표는 277명 중 엄기호 후보가 127표, 서대천 후보가 78표, 김노아 후보가 70표를 얻으면서 누구도 과반수를 얻지 못한 가운데 2차 투표가 진행됐다.
2차 투표에서는 엄기호 후보가 144표, 서대천 후보 110표, 무효 4표를 얻어 엄기호 목사가 최종 당선됐다.
엄기호 신임 대표회장은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 대표회장에 당선됐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린다"며 "함께 출마하신 후보들의 좋은 정책도 적극 반영하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폐회에 앞서 곽종훈 대표회장 직무대행은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함께해 주셔서 모든 과정을 주장해 주셨음을 깊이 깨닫게 된다"며 "선거관리 전 과정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마무리됐고, 기도로 시작해 서로 아끼는 가장 모범적인 선거가 됐다"고 축하했다.
한기총 임시총회
▲임시총회에서 곽종훈 직무대행이 발언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투표에 앞서 각 후보들은 마지막 소견발표를 시작했다. 먼저 기호 1번 엄기호 목사는 "한기총에는 조직과 업무를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4개월 동안 직무를 맡기 때문에, 시행착오로 낭비할 시간이 없다"며 "한기총 위상 회복을 위해 연합을 도모하고, 진정한 내실화를 위해 공동회장 및 총무단들과 적극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기호 2번 서대천 목사는 "이 나라와 교계가 무너진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으로, 경험 많고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돼야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대각성 기도회를 열어 하나님을 찾고, 12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페스티벌을 열겠다. 기독교 보호 입법도 추진하고, 대한민국 사랑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전했다.
기호 3번 김노아 목사는 "저는 이단 소리를 들어가면서 후보에 출마했기에, 다른 후보들과는 좀 다르다. 대표회장 출마를 꿈도 꾸지 않았다. 한기총을 떠나 있었는데, 명예회장을 준다고 다시 들어오라고 했다. 신천지 박멸의 길이 열린다면 다시 들어가겠다고 했다"며 "제 강의를 한 번만 듣는다면, 신천지에 들어갈 맛이 생기지 않도록 돌이키게 할 자신이 있다"고 밝혔다.
신임 대표회장에 당선된 엄기호 목사는 1947년생으로 한세대 신학과, 리버티 신학대학교 목회학 박사,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지도자 과정 수료, 한세대 명예신학 박사 학위 등을 취득했다. 기하성 36대 총회장, 순복음부흥사회 대표회장, 한세대 이사장, 한기총 공동회장 2회, 21·22회기 한기총 남북협력 위원장, 세계복음화중앙협의회 대표회장, 한기부 대표회장, 한국오순절교회협의회 대표회장, 교경협의회 대표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양평금식기도원 원장, 사단법인 굿피플 이사, 한국기독교복음주의총연맹 총재, 세계복음화중앙협의회 상임부총재, 성령교회 담임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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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식 목사 성범죄, 믿기 어려웠다
그를 비호하는 이들이 남 같지 않았던 이유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 문대식 목사 성범죄 피해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드러난 사실과 추가 제보 등을 종합하면, 그의 파렴치한 행동은 상습적이었고 오래 지속됐다. 몇 명이나 피해를 입었을지 가늠이 안 된다.
문대식 목사 성범죄 소식을 들었을 때, 취재기자에게 여러 번 사실 관계를 되물었다. 믿기지 않았다. 그를 조금이나마 괜찮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탓이다. 기사 원고를 교정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성범죄 사실은 확실했다. 첫 기사를 내보낸 뒤, 그의 연락 두절이 구속 수감 때문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나는 <영의 사람이 되라>(꿈꾸는사람들)를 읽고 문대식 목사를 처음 알게 됐다. 그때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나는 오순절파에서 말하는 방언 은사를 체험하면서 회심했기 때문에, 방언에 관심이 많았다. 은사주의 관점에서 방언을 정리하고, 성령 사역이나 은사에 대해 설명해 주는 책을 찾고 있었다. 당시 나에게 <영의 사람이 되라>는 맞춤한 책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문대식 목사 설교를 종종 찾아 듣기 시작한 것은. 지금까지 인터넷 주소를 외울 정도로 그의 미니홈피에도 곧잘 들어갔다. 나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는 보수 신앙인이었고, 신비 체험에 경도돼 있었다. 성경을 바탕으로 '성령 사역자'로서 상담한 경험을 내세우며 거침없이 설교하는 문 목사 말은 모두 옳아 보였다. 대학교에 입학한 해, 지방에서 올라온 뒤 바로 늘기쁜교회 수요 예배에 참석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문대식 목사에게 안수 기도를 여러 번 받았고 수요 예배에 대여섯 번 참석했다. 그가 예배 전 진행했던 '상담'과 '예언 기도'도 받았다. 내 성격과 앞으로 진로에 대해 넓게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견 거만해 보이지만 자신 있는 말투, 성경 자구를 통한 명확한 자기주장으로 설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상담할 때는 따뜻한 말투와 선량한 미소로 일관해 그에 대한 신뢰는 커졌다.
시간이 꽤 지나 신앙 노선이 많이 달라졌는데도, 결별 의식처럼 수요 예배에서 그에게 기도를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이제 문 목사가 말하는 '성령 사역'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적어도 그가 이 분야에서만큼은 문제없이 사역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판단했다. 여성 청년·청소년을 1,000번 넘게 상담했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크리스천의 연애, 혼전 순결, 낙태 문제를 이야기하며 가슴 아파하는 그의 모습도 한편으로 절절해 보였다.
문대식 목사가 왜곡된 성 인식 등 큰 한계를 안고 있었고 이단성 문제가 제기됐어도, 성(性) 문제만큼은 깨끗하리라 생각했던 것은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일이 터지고서야 문 목사에 대한 여러 생각이 확증편향에 불과한 편견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그래서인지 첫 기사가 나가고 나서 "그럴 리 없다"며 <뉴스앤조이>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해 사실관계를 묻는 이들이 남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적어도 내가 기도를 받았던 그 순간만큼은 문대식 목사가 순수했다고 믿고 싶었다. 그런데 그의 성범죄가 꽤 오래전, 2009년 언저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황망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성령 사역자로 어느 정도 유명했던 그였기에, 그와 직접적으로 관계했던 사람들은 그의 성범죄를 얼마나 큰 충격으로 받아들였을지 짐작되지 않는다.
후속 기사가 나간 뒤, 성범죄가 사실이 아니라고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는 잠잠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피해 사실이 과장돼 있다며 피해자를 비난하고 문 목사를 추종하는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피해자가 다수라는 사실이 명백한 이 시점에 와서까지 이런 이야기가 들리는 게 가슴 아프다. 피해자들의 개인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이점을 이용해 범죄를 저질러 온 문대식 목사를 편들어서는 안 된다.
문 목사는 교단 치리와 재판을 앞두고 있다.
감리회가 어떤 식으로 이 문제를 치리할지 걱정스러운 것은, 성범죄를 저지른 목회자 안위를 챙기며 '성직'을 운운하는 '꾼'이 많은 탓이다. 문대식 목사가 범죄를 저지른 대상이 미성년자가 아니었다면, 지난한 싸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항상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왜 교회는 어렵게 목소리를 내는 피해자들에게 더 상처를 주는가 하는 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목회자가 성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며 문대식 목사가 강한 어조로 인용했던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마 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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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를 배달하는 ‘달동네 교회’의 아름다운 이야기
[인터뷰] 옥수중앙교회 호용한 목사 “주는 게 더 행복”
▲옥수중앙교회 호용한 목사가 ‘작은 이들의 벗’이라고 적힌 액자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옥수중앙교회가 있는 서울 금호동 주변은 소위 '달동네'였다. 여러 아파트가 들어선 지금이야 그런 흔적이 많이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아주 달라진 건 아니다. 그 만큼 상대적으로 낙후된 곳이었다. 이 교회 담임인 호용한 목사가 지난 2001년 처음 부임할 때만 해도 그 정도는 더 심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교회가 가난한 주민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하고. 그런데 교회 사정도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옥수중앙교회 교인들도 알고 보면 다 이 지역 주민들이니까.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호 목사에게 목돈이 생겼다. 공금은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돈이었다. 그냥 써버려도 누구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호 목사는 그 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이것이 지난 약 16년 동안 옥수중앙교회로 하여금 기적을 체험하게 한 출발점이었다. 바로 비우면 채워진다는 기적, 그리고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무더웠던 8월의 어느날, 교회 인근 카페에서 직접 아이스 커피를 사, 웃으며 기자 앞에 내미는 호 목사와 마주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옥수중앙교회는 지역 사회를 잘 섬기는 교회로 유명하다. 계기가 있었나?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달동네이기도 한 이 지역 주민들이 과연 무얼 필요로 할지에 관심을 갖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지역을 섬기는 건, 지역교회가 해야 할 사명이기도 하다.
다만, 부임 첫해 우연히 큰 돈을 손에 쥐게 된 게 본격적으로 나눔을 실천하게 된 계기라면 계기였다. 그 돈을 받아들고 처음 들었던 생각이, 이걸 교회에 내어놓고 지역을 위해 쓰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웃들을 돕고 싶어도 교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선뜻 하지 못했는데, 담임목사인 내가 솔선수범하면 그런 나눔의 정신이 혹시 교인들에게 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조금 있었다.
역시나 교인들이 감동했다. 그들이 조금씩 더 내어놓으면서 '씨드머니'가 생겼다. 그걸로 쌀과 라면 등을 사서 배고픈 이웃들에게 나눠주었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겐 장학금을 줬다."
-그렇게 일회성으로 끝난 건가?
"아니다. 그 때 교인 150명이 작정을 해서 매월 350만 원의 구제헌금을 했다. 1년에 약 4천만 원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헌금을 작정한 교인들이 주변에 그 사실을 알리면서 동참을 호소하자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들까지 좋은 곳에 써 달라며 돈을 보내 왔다. 그렇게 매년 1억에 가까운 돈이 모였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돈으로 지역 사회 이곳 저곳을 섬기고 있다. 장학회도 만들어서 매년 대학생 20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왔다. 그 수가 350명 쯤 된다."
-옥수중앙교회 하면 '우유 배달'이 마치 연관검색어처럼 따라 온다.
"사실 우유 배달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야 말로 우연이었다. 지난 2003년, 사업을 하는 처남이, 자기는 비록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고 싶다며 무얼 하면 좋겠는지 물었다. 가만히 생각하다가, 마침 동네에 골다공증을 앓는 어르신들이 많다는 사실이 떠올라 우유 배달을 제안했다. 흔쾌히 수락한 처남이 100가정에 배달할 수 있는 우윳값 200만 원을, 3년 동안 헌금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됐다."
-그럼 3년 후엔 어떻게 했나?
"물론 처남은 더 이상 우윳값을 대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유 배달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더 많은 이들에게 우유를 주진 못할 망정, 하던 것을 그만 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결국 교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취지를 설명하고, 유윳값을 정기적으로 헌금할 교인을 모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딱 원했던 만큼의 액수를 교인들이 헌금하겠다고 약속했다. 참 감사했다.
그렇게 2011년까지 교인들의 도움으로 지역 사회 어려운 이웃들에게 우유를 배달했다. 그러다 2012년, 교인 중 한 명이 자기가 우윳값을 대신 내겠다며 불쑥 나를 찾아왔다. 그가 바로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다. 그 때만 해도 지금처럼 사업이 번창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적자를 내고 있을 때였는데, 그런데도 매월 5백만 원이나 되는 우윳값을 내겠다고 내게 약속을 한 것이다. 그가 지금처럼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아마 어려운 중에도 그렇게 내어놓을 수 있는 그의 신앙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참 고마운 일이었다.
놀라운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봉진 대표의 도움으로 우유 배달을 이어가던 2015년 어느날, 미국의 거대한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직원들이 교회로 나를 찾아왔다. 왠일인가 싶었다. 이유인즉, 골드만삭스가 배달의 민족에 투자를 했는데, 김봉진 대표가 우리 교회에 정기적으로 기부를 하니, 정말 그런지 확인차 왔던 거였다.
그래서 교회가 김 대표에게 받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썼고, 왜 그렇게 했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줬다. 그 얘기를 듣고 그들은 다시 돌아갔다. 그런데 얼마 후 골드만삭스 측이 교회로 거액의 기부금을 보내왔다. 교회의 사역에 감동을 받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신기하기도 하고 어떨떨 했다.
교회는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섬김 사역을 펼치기 위해 그 돈으로 별도의 법인을 설립했다. 그랬더니 여러 기업에서 기부금을 보내왔다. 정말이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었다. 100가정을 대상으로 시작했던 우유 배달은 지금 서울시 내 9개 구 약 1,300가정 규모로 커졌다. 앞으로 25개 구 전부로 그 대상을 넓히는 게 목표다."
▲언덕 위에 있는 옥수중앙교회. 그곳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크고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여러 아파트가 들어서고 많이 개발됐지만 여전히 ‘달동네’의 흔적을 갖고 있다. ⓒ김진영 기자
-우유를 각 가정에 배달하면서 고독사 한 독거노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들었다.
"교회 주변이 달동네이다보니 자식 없이 홀로 사는 노인들이 많다. 그들이 쓸쓸하게 생을 마감해도 가족이 없어 금새 발견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한때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우유가 하나의 사인(sign)이 됐다. 그날 배달했던 우유가 다음 날에도 그대로 있으면, 그 집에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는 신호였다. 실제 고독사한 노인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 수가 1년에 5명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럼 바로 구청에 신고를 한다.
그저 골다공증으로 힘들어하시는 어르신들이 조금이라도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우유 배달이 의도치 않게 고독사한 노인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도구가 된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이 다 알 수도, 짐작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우유 배달도 그렇고 여러 구제 사업을 펼치며 이젠 교회 이름도 지역을 넘어 많이 알려졌다. 처음부터 이렇게 되리라 예상했었나?
"전혀 아니다. 말했다시피, 그저 지역 주민들의 필요를 채워주려고 했을 뿐이다. 그게 지역교회로서 옥수중앙교회가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사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지만, 결코 분리돼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지역을 섬겨 상생하려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
그렇게 교회가 지역의 일원으로 자리잡을 때, 전도도 가능하다고 본다. 거리에서 한 영혼을 만나 복음을 전하려는 구령의 열정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과 함께 보다 거시적이고 전략적인 방법도 필요한 때다.
그리고 반드시 '우리교회'에 나와야만 그게 전도라는 의식도 바꿔야 한다. 복음이 전해지고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면 그가 설사 다른 교회에 나간다 해도 우리가 여기에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우리 교회가 한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 것이 됐다면,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 어떤 모양으로든 결실할 것이라 믿는다."
-끝으로 못다한 말이 있다면?
"간혹 우리 교회가 가진 게 많아서 그 만큼 많이 나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사실 우리 교회는 넉넉하지 못하다. 그 흔한 사찰집사도 없고 행정 사무원 하나 따로 두지 않는다. 다 우리 교인들이 스스로 교회를 돌본다. 그렇게 아끼고 또 아껴서 돕는 것이다.
나눔이란 가진 것이 많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제 아무리 부자라도 나누려는 마음,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못하는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2001년 이 교회에 부임한 뒤 약 16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여러 모양으로 몸부림쳐 왔다. 하나님께서 그런 순종을 기뻐하셔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 것 같다. 한때 떠났던 교인들이 소문을 듣고 돌아왔고, 교회의 것을 나눴더니 교회 밖에서 더 많은 기부금이 들어오기도 했다.
하나님을, 그리고 이웃을 기쁘게 하기 위해 나눔을 시작했는데, 돌아보니 누구보다 나와 우리 교인들이 가장 기뻤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행복하다는 걸, 그리고 비우면 채워진다는 걸 비로소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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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불거진 청소년 사역자 성적 타락]
유명세 누리던 스타 강사들, 범죄 후에도 계속 활동
유명 청소년 사역자들의 반복되는 성적 타락으로 한국교회 청소년 사역 현장이 병들고 있다. 비슷한 패턴으로 청소년 사역자들의 성범죄가 이어지면서, 이에 대한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국민일보는 3회에 걸쳐 실태를 점검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촉망받던 청소년 사역자 A목사는 지난 14일 미성년자를 강제 추행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구속 기소됐다. 그의 범죄는 우발적인 일회성 범죄가 아니었다. 이미 지난해 6월 자신이 담임목사로 있던 교회의 여고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던 것이다. 집행유예 기간에 범죄를 저지른 것도 충격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목회는 물론 청소년 사역을 계속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달 초에도 지방에서 개최된 청소년 수련회에 강사로 나섰던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청소년 사역자의 성범죄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난해 8월 청소년 사역단체 ‘라이즈업무브먼트(라이즈업)’ 대표 이동현 목사의 추락은 교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알려졌고, 이 목사는 1주일 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의 소속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고신 수도남노회는 사건이 공개된 지 20여일 만에 이 목사에게 면직 및 수찬정지라는 강력 처분을 내렸다.
이들의 성추문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 목사와 A목사 둘 다 이른바 스타 강사였다. 그들은 교회 청소년들이 참석하는 대규모 전국 수련회와 집회 등에 앞다퉈 초청받았다.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24일 “청소년 사역 분야에서 뛰어난 인기 사역자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며 “교회나 단체들이 청소년 집회에 얼마나 많은 인원을 동원할 수 있느냐에만 관심을 쏟는 게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중소 규모의 교회나 단체들이 힘들더라도 자체적으로 청소년을 교육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목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청소년을 성적 만족의 대상으로 삼았다. A목사는 밤늦게 심방을 빌미로 찾아가 강제추행을 저질렀다.
정병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는 “이는 하나님이 목회자에게 주신 영적 권위를 악용한 심각한 범죄”라며 “‘영적 아버지’인 목회자의 성범죄는 친족 간 성범죄만큼 피해자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법원은 통상 목회자의 성범죄에 대해 “교역자는 영적 지도자로서 일반 교인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책임이 요구된다”는 문구를 판결문에 넣을 정도로 엄정한 잣대를 적용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 없이 청소년 사역을 이어갔다는 점이다. 이 목사의 경우 피해자의 폭로가 있기 전까지 10년의 세월 동안 문제없이 청소년 사역으로 승승장구했다. A목사는 심지어 유죄 판결을 받고 난 다음에도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최근까지 청소년 사역을 진행했다. 채수지 기독교여성상담소장은 “한 명의 피해자 뒤에 수많은 피해자가 숨어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한 번의 실수라고 생각하고 눈감아 줘선 안 된다”며 “성범죄를 저지른 목사는 사역을 그만두게 하고 치유를 받도록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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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성가 가수’ 출신 김영수 목사, 미국 한인교회 담임 취임
시애틀 훼드럴웨이 벧엘침례교회
▲교인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김영수 목사(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미주 기독일보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있는 훼드럴웨이 벧엘침례교회는 현지시간 지난 20일, 김영수 담임 목사(50)의 취임식을 갖고 복음의 본질을 회복해 지역 복음화에 힘쓰는 교회로 나아갈 것을 다짐했다.
김영수 목사는 취임사에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교회인 훼드럴웨이 벧엘침례교회를 섬기고 봉사할 수 있는 은혜에 감사드린다"며 "벧엘침례교회 모든 성도와 목회자 모두가 말씀과 복음의 본질 회복에 앞장서는 교회로 나아가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이날 취임식은 최창우 집사의 사회로 윤흥남 목사(서북부 한인침례교회 협의회 부회장)가 대표기도를 했으며, 이모세 목사(서북부 한인침례교회 협의회 회장)가 "삽겹줄의 능력"이란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이모세 목사는 "교회 사역은 목회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목회자와 더불어 온 교회 공동체가 함께 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드러나게 된다"며 "주님 안에서 동역과 협력으로 복음 전파에 힘쓰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영수 목사, 김진희 사모는 설교에 이어 "어찌하여라"란 특송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간증했다. 이날 취임식은 이모세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김영수 목사는 침례신학대학교 기독교 교육학 학사,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를 마치고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교 박사 과정에 있다. 21세에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했으며, 찬양의 은사가 있어 1987년 제6회 전국 복음 성가제 입상, 극동방송(FEBC) 복음성가 가수, 방송, 예배와 찬양 사역 등을 담당했다.
1997년도에 도미한 김영수 목사는 북가주 새누리침례교회에서 예배 사역을 하고 북가주 하나님이기뻐하는교회를 개척해 7년간 시무했다. 박사 학위 공부로 텍사스로 이주해 텍사스 포트워스에서 세워지는교회를 개척해 6년간 시무했다. 이어 남침례교단 소속 교회 개척을 위해 지난 6월 워싱턴에 도착했다. 이후 벧엘침례교회의 요청으로 6월 말부터 새벽설교와 주일설교를 전해오다 담임 목사의 부재와 성도들의 요청으로 청빙 과정을 걸쳐 담임 목사로 취임하게 됐다.
김영수 목사는 훼드럴웨이 벧엘침례교회 부임 후 새벽기도회와 수요예배를 재개하고 웹사이트를 보수하는 등 활발한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