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훌륭한 사람 8월 5일 2001-12-10 18:47:33 read : 1568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가장 훌륭한 사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4-35)
1. 사람들은 모두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을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관행적으로 하는 말들 가운데 제일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는 '훌륭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훌륭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분명히 모르면서도 그저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모든 부모들이 자식에게 거는 기대와 하는 말도 "너는 이 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도대체 훌륭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훌륭하다'는 개념을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남보다 앞서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남들로부터 선망의 대상, 즉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제일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하고, 외국 유학도 보내고, 그래서 많은 사람보다 앞서가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기준에서 보면 '훌륭하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기 자신을 위하여 쌓은 공(功)들이고, 자기의 이름을 빛내보려는 마음에서 하는 노력들입니다.
그래서 밤잠도 자지 않고 건강까지도 해치면서 머리를 싸매고 공부, 공부, 공부들을 합니다.
한편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재물을 많이 벌어 물질
적으로 남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훌륭하다고 생각하여 그것에 의미를 두려고 합니다.
즉 부자가 되면 그것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자로 살면 그것을 잘 산다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공부를 많이 했거나, 부자가 되었거나, 아니면 높은 벼슬에 오른 사람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와 같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또 그런 사람들이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라고 하는지?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가르쳐 주셨는지 그것을 말씀을 통하여 분명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훌륭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0:26-27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는 정 반대의 생각입니다.
지금껏 사람들이 훌륭한 사람이라면 으뜸이 될 수 있을 때, 그리고 남보다 크게 될 때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섬기는 사람이 훌륭하다고 하고,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완전히 반대의 생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이러한 가르침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갈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면 남들에게 대접을 받고, 남들이 따라올 수 없도록 남보다 돋보이게 되기를 바랬고, 남보다 월등하기를 바랬는데 도리어 섬기는 자가 되고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으니, 얼마나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고 있었는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지금껏 기도한 것은 모두 주님의 가르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 아닌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 믿고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2. 훌륭한 사람이란 '어떻게 사는 사람' 이어야 할까?
오늘 본문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로부터 받은 계명은 옛 계명이라면, 이제 주님께로부터 받은 계명은 새 계명입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새 계명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야 훌륭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새 계명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새 계명의 핵심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즉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란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어떤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남을 시기하고 미워하면서 자기만 잘 되기를 바라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세상 일반적인 사회 현상입니다.
남이 어려움을 당해도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그렇게 무관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남보다 앞서기를 바랍니다.
경쟁 사회에서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말하면서도 주님의 가르침대로는 살려고 안합니다.
여기에 오늘의 우리를 실망케 하는 스스로의 부끄러움(自愧心)이 있습니다.
저는 요즘 목사이면서 이 말씀 앞에 매우 곤욕스러움을 느낍니다.
그것은 나 자신이 자신에 대한 자책이요, 힐책입니다.
내가 교회에서 얼마나 섬기는 자세로 일하고 있는가? 교인들 앞에서 얼마나 종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
도리어 주님의 종이라는 그것 때문에 오히려 대접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는 않았는가? 등등.... 참으로 요즘 스스로의 반성이 깊어집니다.
이것은 저 뿐이 아닐 것입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진지함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내가 정말 예수를 주(主)라고 고백하면서, 그분이 내게 맡기신 직분을 감당함에 있어 그의 가르침대로 얼마나 살려고 하고 있는가? 깊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갈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완성이란 있을 수 없고, 항상 갈등의 연속이란 말입니다.
고민하며, 갈등하며, 절망하는 가운데서 더 높은 차원으로의 비약이 신앙생활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갈등이 없이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천치 바보이거나 아니면 저능아일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이렇게 자기와의 싸움의 연속인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그러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한, 훌륭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말은 누구든지 으뜸이 되기 위하여 섬기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벌써 그 사람은 안 될 것이란 말입니다. 섬김 자체가 생활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남보다 앞서기 위하여 사랑을 베푼다면 그런 사랑은 주님이 가르쳐 준 사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랑은 벌써 자기 중심적이 될 경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란, 한 꺼풀 벗겨보면 모두가 '자기'라는 알맹이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의 사랑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자기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그럼 우리 결혼해...." 이런 관계일 뿐입니다.
내게 잘해 주니까, 내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가 나를 좋다고 하니까, 내가 그에게 끌리니까 하는 그런 사랑입니다.
여기에는 모두 나라는 알맹이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사랑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아무나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참 사랑'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아무나 못하는 사랑!
그런 사랑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야말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나의 제자인줄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귀하고 귀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위해 한 사랑이 어떤 사랑입니까?
"내가 너"(I am you)라고 한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일 것입니다.
금년 7월호 월간목회에 실린 글을 보는 중에 순천 중앙교회 담임목사인 임화식 목사님의 글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가 음성에 있는 꽃동네를 방문했는데 안내를 하는 수녀가 꽃동네 인사법을 소개하면서 여기서 인사는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인사라고 하더랍니다. 사랑한다는 말처럼 흔한 말도 없는데 그 흔한 사랑을 누구든지 할 수 있건만, 그러나 아무도 못하는 것이 또한 사랑이라고 하더랍니다.
저는 이 말을 되새겨 보면서 과연 그렇다고 수긍했습니다.
꽃동네는 언뜻 보기에 인간 쓰레기장과 같은 곳입니다. 지능장애, 지체장애, 치매노인, 미혼모들이 낳고 버린 유기된 아이들 이렇게 온통 이 사회에서 버려진 사람들의 집합소란 말입니다.
수녀의 말에 의하면 처음 이곳에 올 때는 모두 마음을 닫고 경계하면서 증오심으로 대하지만,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과 같이 하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비로소 참 사랑이 무엇이며, 용서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침 흘리고, 배설하고, 냄새를 풍기는 그들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그들은 참 사랑에 감염된다고 합니다.
I love you 의 사랑이 아니라, I am you 의 사랑이야말로 기적을 낳게 하는 참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은 이제 나보다 더 못한 너를 사랑하면서 살게 되는데, 이것이 기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양팔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발가락에 수저를 꽂아서 밥을 먹여 주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겨웠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분들이 대부분 죽을 때에는 자신의 장기를 남에게 기증하겠다고 서약했다고 합니다.
김목사는 이 글에서 그동안 스스로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게 여겨졌는지 몰랐다고 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생각해 볼수록 우리의 가슴을 찌르는 말들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사랑처럼 흔한 말도 없지만 이렇게 참 사랑은 또한 아무나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모두 이기적인 사랑, 자기 중심적인 사랑, 자기만을 위해 달라는 사랑뿐이란 말입니다.
얼마나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건강한 우리들이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어떤 생각으로 이 자리에 나와 앉아 있습니까?
무슨 불만족이나, 짜증나는 일이나, 원망스러운 마음이나, 돈 때문에 서로 미워하는 마음들을 가지고 나와 있지는 아니합니까?
꽃동네를 생각하면서, 그곳에서 참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한번쯤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누가 참 훌륭한 사람이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아무나 못하는 참 사랑의 실천자들이 되기 위하여 힘쓰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아니고 누구이겠습니까?
내가 소유하고 있는 부,
내가 소유하고 있는 지식,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명예,
그것이 남보다 더 많다고 훌륭한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이 남보다 풍부하고 여유 있다고 잘 사는 사람들이 아닐 것입니다.
내가 남이 따라 올 수 없는 기술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가 훌륭한 사람이라고는 못할 것입니다.
'내가 너라고' (I am you)하는 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죽어서 까지 묘지가 아무리 크고 화려하면 무엇하겠습니까?
나보다 더 못한 너를, 너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보살펴 주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런 삶의 실천자들이 가장 훌륭한 사람일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찌라도 변치 아니하며,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시15:1-5).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