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더욱 큰 은혜I 2001-12-13 19:07:28 read : 1822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날짜 2001. 7.15
본문 약 4:6∼8
내용
야고보 4:6을 보면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라고 했습니다. 이미 다양한 은혜를 주셨습니다만 더 큰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33을 보면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라고 했습니다.
큰 은혜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은혜의 차별성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은혜는 어려울 때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은혜인데 반해 하나님의 은혜는 독생자를 주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입니다. 그 은혜야말로 사람이 베푼 은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더욱 큰 은혜인 것입니다.
둘째는 이미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지만 보다 더 큰 은혜를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주신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변덕스럽습니다. 기분과 감정을 따라 생각과 태도가 변합니다. 돕고 사랑 하는것도 변덕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가면 갈수록 더 깊어지고 풍성해 집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큰 은혜인 것입니다.
오늘 더욱 큰 은혜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몇차례 나누어 더욱 큰 은혜를 받는 비결과 자세를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가 더 큰 은혜를 받으려면 맨 먼저 겸손해야 합니다.
6절을 보면 "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아침인사를 Good morning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샬롬이라고 인사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진지 잡수셨습니까? 라고 인사합니다. 헬라 사람들은 은혜( )라고 인사했습니다.
인사말은 그 민족의 생활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변, 난리, 당파싸움전쟁으로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자고 나면 사약을 받거나 귀양을 가거나 죽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만나면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라고 인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뿐입니까? 보릿고개, 흉년, 기근, 찌든 가난이 수천년 계속되는 동안 유일한 희망은 배부르게 먹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특수계층을 뺀 일반대중들은 제때 밥을 찾아 먹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만날 때마다 "진지 잡수셨습니까 "라는 인사를 해야 했습니다.
"좋은 아침! 은혜! 샬롬! "이라는 인사말에 비하면 밤새 안죽고 살아남았느냐? 라든지 아침밥이나 먹고 나왔느냐라는 우리네 인사말은 서글픈 정서가 서립니다.
본문은 교만한 자는 은혜를 받을 수 없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은혜는 좋은 것, 평안한 것, 행복한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모든 것이 좋고 행복하고 평안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지 못하면 그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교만이란 자신만만한 것, 머리를 치켜드는 것, 남을 얕잡아 보는 일련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주고받는 행위는 정해진 법칙이 있습니다. 언제나 상을 받는 사람은 상을 주는 사람 아래에 서야 합니다. 그것이 세계공통의 공식입니다. 상을 받는 사람은 의자에 앉아서 받고 주는 사람은 땅바닥에 엎드려 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은혜를 받으려면 자세를 낮추고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고 받아야 합니다. 교만은 은혜를 가로막는 가시와 같습니다.
성경에는 교만 때문에 망했거나 손해 본 사람들에 관한 기사가 많습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초대 민선 왕이었습니다. 백성의 절대지지로 뽑힌 왕이었기에 그의 인기는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백성의 지지나 인기만 믿고 신앙을 소홀히 하고 하나님을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뻔했습니다. 사울 왕조는 완전히 붕괴되었고, 단 한명도 그 후손이 왕이 되거나 출세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윗 왕도 집권말기 요압이라는 신복 장군을 시켜 이스라엘 중에 칼을 빼어 전쟁에 나갈수 있는 사람의 숫자를 세도록 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인구와 국력을 평가하는 센서스를 한 것입니다. 역대상 21:7을 보면 "하나님이 이 일을 괘씸히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셨다고 했습니다. 나라가 잘 되고 부흥하고 발전하는 것은 왕이나 대통령의 인기 때문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정치인 XXX개 씨는 신문이나 잡지, 여론조사기구 등이 실시하는 인기조사에서 언제나 1위를 차지하곤 했습니다. 그 결과를 놓고 언론이나 시민들은 보나마나 그 사람이 차기 대통령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그 사람은 대통령이 된 일이 없었습니다.
국가도, 지도자도, 교회도, 회사도, 가정도, 나도 너도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가로막고 차단하는 것이 바로 교만인 것입니다. 다윗도 교만했다가 무시무시한 진노를 받았습니다. 전염병으로 7만명 죽었습니다(대상 21:14).
사무엘하 6장을 보면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길 때 그 감격과 기쁨을 참지 못한 다윗이 힘을 다해 춤을 추었습니다(6:14). 그 모습을 창문을 열고 바라보던 다윗의 아내 미갈이 심중에 다윗을 업신여겼습니다(6:16). 미갈은 사울왕의 둘째딸로서 왕가의 예절과 법도를 익히며 자랐기 때문에 자기 딴으로는 고상하고 격조 높고 품위를 지닌 여자라고 목에 힘을 주며 사는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며 제대로 씻지도 않고 흙바닥에서 뒹굴고 들판을 쏘다니던 베드윈 출신이었습니다. 자연히 미갈은 자기 남편 다윗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이 그 날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미갈은 다윗에게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라고 비아냥대며 남편을 멸시했습니다(6:20).
사무엘하 6:23을 보면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으니라 "고 했습니다.
주경학자들은 이 구절을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미갈, 남편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미갈의 태를 닫으셔서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해석하는가하면, 정떨어진 다윗이 그날 이후 미갈과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식을 낳을수 없게 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둘다 일리있는 해석이라고 봅니다.
에스더서 1장을 보면 BC483년경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과 그의 왕비 와스디에 관한 기사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당시 페르시아는 세계 최강국이었습니다. 동쪽으로는 인더스 강, 서쪽으론 애굽을 지나 에디오피아, 북쪽으론 헬라의 일부를 점령한 대제국이었고, 페르시아 문명 역시 황금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아하수에로왕은 왕이 된지 3년째 되는 어느 날 왕궁에서 대연회를 열었습니다. 180일간 계속된 연회에 초청된 연인원수는 총 15,000명이었습니다. 왕이 국력을 과시하는 축제를 열고 있는 동안 왕비 와스디도 따로 부녀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잔치가 끝나갈 무렵 어느날 왕비에게 사람을 보내 연회장으로 오라는 전갈을 보냈습니다.
왕은 와스디의 미모를 모든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었습니다(에1:11).
그러나 와스디는 왕명을 거역하고 "갈 수 없다고 여쭈어라 " 했습니다(1:12). 왕비로서는 남자들의 주흥이 고조되고 있는 자리에 자기를 오라가라는 것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미모 때문에 늘 와스디는 목에 힘을 주고 사는 여자였습니다. 그래서 "못 간다고 여쭈어라 "고 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사건이 불씨가 되어 와스디는 퇴출당하고 에스더가 왕비가 된 것입니다. 와스디는 교만 때문에 왕비의 자리를 빼앗기고 내쫓긴 것입니다.
교만은 은혜를 무너뜨립니다.
교만은 성공을 무너뜨립니다.
교만은 행복을 무너뜨립니다.
돈을 벌었더라도, 공부를 많이 했더라도, 성공했더라도, 얼굴이 예쁘더라도, 행복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교만에 빠지면 안됩니다.
본문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겸손한 사람은 말씀을 통해 임하는 은혜도 받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은혜가 무엇인가를 깨닫고 은혜를 확인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말씀을 바라보기만 할 뿐 마음을 받아들이질 않습니다.
구경꾼이 있고 감동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은혜 역시 받아야지 구경하면 안 됩니다.
어느 주일아침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설교가 어스킨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스칼렛이라는 여자가 설교를 듣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여자는 그 다음 주일도 어스킨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그 교회 예배에 참석해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일은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어스킨 목사를 만나 스칼렛이 물었습니다. "지난 주일엔 제가 큰 은혜를 받았는데 오늘은 왜 은혜를 받지 못했을까요? "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난 주일엔 당신이 예수님을 만나러 왔기 때문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즉 주님을 예배하기 위해 왔기 때문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나를 만나기 위해, 내 설교를 들으러 왔기 때문에 은혜를 못 받았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교만은 말씀을 가로막고, 축복을 가로막고, 성공을 가로막고, 은혜를 가로 막아버립니다. 교만을 물리쳐야 합니다.
요한 세바스챤 바흐는 1,100여곡 이상을 작곡한 작곡자로 유명합니다. 그는 죽기 몇 달 전까지 그리고 실명상태로 악보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작곡을 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코랄은 "주여 당신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 라는 것입니다. 이 곡을 끝으로 그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는 "음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 "하나님은 경건한 음악과 함께 하신다 "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1,100여 곡이 넘는 작품 끝에 그는 항상 S.G.D라는 서명을 남겼습니다. 그것은 Soli Gloria Deo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바로 이러한 정신과 신앙과 삶이 은혜 받은 사람의 생활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Soli Gloria Deo!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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