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진정한 영광과 그리스도의 면류관 2001-12-24 21:05:00 read : 2258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2:10下-11)
들어가는 말
고난이 없는 신앙은 어떤 의미에선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으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람들에게만 고난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고 정직하게 믿음을 좇아서 살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교회와 백성들을 정결케하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정결해지지 않고서는 교회가 세상에 그리스도 예수를 보여줄 수 없습니다. 정결한 곳에서만 신령한 하나님의 은혜의 빛이 비추어 지고, 순결하고 도덕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만 하나님 아버지의 정결한 사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탐욕과 죄악에 물들어 있는 땅에서 불법과 불의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많이 사랑하시는 백성일수록, 특별히 선택하셔서 특별히 은혜를 많이 준 백성일수록 하나님께서는 더 완전에 가까울 정도로 순결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고난의 이유
서머나교회가 그런 교회였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에는 아무런 내 놓을 것이 없는, 세상에 버림받은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이 서머나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생명이 있었습니다. 고난을 받으면서 믿음을 지켜온 이 서머나교회에게 다시 한번 십일 동안 커다란 환난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고해 주신 것은 서머나교회에게 가혹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셨기에 충성을 다하며 살아온 이 교회를 더 정결하게 하시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신실하게 의뢰하며 살려고 할 때 더 큰 고난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고 너 예수 믿어서 잘된 일이 무엇이냐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으며, 예수 믿은 것이 네 인생에 무슨 도움을 주었느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앞에서 변론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놀라운 증거들을 우리의 신앙 생활 속에서 보여주고 계시는 한, 환난은 환난이 아닙니다.
가끔 정말 바르게 살려고 애를 쓰는데 고난과 시련이 그치지 않는 지체들을 볼 때 눈물이 흐르는 것은 단지 목사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나면 마음속에 그런 확신이 옵니다. "하나님이 저 지체를 얼마나 훌륭한 곳에 쓰시려고 저렇게 더 순결해지도록 어떻게 보면 가혹할 정도로 시련 속에서 연단하시고 정결케 하시는가" 저는 그런 지체들의 인생이 앞으로 하나님께 얼마나 영광을 돌릴지 기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정결케 하시기에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좌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인격이 고매한 몇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많은 학식을 가진 것도, 남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고난을 많이 겪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은 평안해도 이전에 남이 알지 못하는 고난을 많이 겪은 사람들입니다. 고난만 많이 겪었을 뿐 아니라 그 고난을 믿음으로 이기며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향기를 드러내는 고매한 인품과 인격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난이 올 때 오히려 우리는 자신의 밑바닥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도 세탁되지 못했던 우리의 불결한 죄와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으로 살지 않으려고 애쓰는 우리 자신의 부패한 자아를 보고, 하나님이 우리를 정결케 해 주시는 기회로 삼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유익
뿐만 아니라 고난은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대한 소망을 주십니다. 그러니까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고난을 이길 힘을 미래의 소망만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 생활을 인정해 주시고 또 우리에게 은혜주시는 놀라운 증거들을 하나님께서 수시로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고난이 넘치지만 위로는 더 넘치고 시련은 크지만 시련 속에서 오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쁨이 더 큽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이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시련의 벽,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많은 어려움들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믿음으로 견디는 사람들은 남들이 고난이라고 말하지 스스로 그것을 고난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고난이 있지만 고난 속에서 맛보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인생을 얼마 안되지만 이렇게 돌아보면 주님을 믿고 난 이후로 가장 넘치는 기쁨이 있을 때는 고난이 함께 있을 때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한 인격 안에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기 쉽지 않습니다. 슬픔이 인격이란 그릇에 담겨 있는 곳에는 기쁨이 와도 기쁨이 기쁨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인격 속에는 참다운 기쁨과 말할 수 없는 슬픔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고난만 있고 이를 악 무는 결심밖에 없다면 우리는 강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를 강해지게 하는 것은 인간의 결심이나 아집이 아닙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강해지게 하는 것은 고난 속에서도 피어나는 기쁨의 꽃, 시련의 먹구름을 가르고 우리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고난을 능가하고 시련을 넘어서기 때문에 우리는 환난과 시련 속에서도 오히려 인내를 배우고 하나님의 사랑을 배웁니다.
평탄한 길에서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없었던 사람들이 고난의 역경의 파도를 헤치면서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흔들 수 없는 놀라운 기쁨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거기서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늘의 신령한 위로를 받고 한 맺혀서 고난을 받으며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오히려 사람들을 권면하고 고난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는지 하나님께서는 모두 고난의 학교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셨기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서머나교회를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를 더 정결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드러내는 그러한 교회로 쓰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세상이 부패하고 어두울수록 더 순결한 교회가 필요합니다. 세상이 꽁꽁 얼어붙어 미움으로 가득 찬 세상일수록 교회는 불길같이 타오르는 사랑을 가진 그런 교회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연단하시고 정결하게 하셔서 하나님 앞에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도록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고난 당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서머나교회의 소원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들의 소원은 나라를 무너뜨리고 나라를 전복시켜서 국권을 손에 쥐는 것이 아닙니다. 서머나교회는 모든 재산을 잃어버리고 궁하게 되었는데도 그것 때문에 마음 쓰지 않았습니다. 환난과 시련을 당할 때에도 마음 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마음껏 섬기고, 자기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마음껏 높이고, 경배하는 삶을 마음껏 살 수 있도록 내버려 달라는 소박한 소원 한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생명의 면류관
고난을 받으며 주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 이외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소망을 가질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나는 여러분들을 포함해서 한국 교회에 있는 교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정말 내세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부르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 고난받는 것이 없던 시대에는 언제나 그러했습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향한 소망을 갖게 만들어 줍니다. 믿음을 따라 살고 신앙으로 살려고 애를 쓸 때, 그때마다 우리는 세상에는 영원한 안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오늘 자연스럽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고난을 이기고 믿음으로 산 사람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생명의 면류관은 순교를 한 사람들만이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생명의 면류관은 믿음으로 주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예비된 것입니다.
그가 언제 신앙을 시작했든 그가 어떤 사람이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정말 하나님 앞에 주를 위하여 살고 주를 위해 고난을 당하고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킨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면류관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이 생명의 면류관이 무엇인지 알 것입니다. 아마도 이 생명의 면류관은 그 면류관을 쓰고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또한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그 놀라운 생명적인 교제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든지 하여튼 이 생명의 면류관은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좋은 상급이 되는 면류관을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따라서 고난을 이기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하신 말씀에 위로를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사망
또 성경은 오늘 이렇게 믿음으로 고난을 이기는 성도들에게 두 번째 약속을 주는데 그것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두 번 죽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이 겉 사람이 있고 속 사람이 있듯이 겉 사람의 죽음이 있고 속 사람의 죽음이 있습니다. 한번 태어난 자는 두 번 죽고, 두 번 태어난 자는 한번 죽습니다. 다시 말하면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육체의 사망뿐 아니라 마지막에 영혼이 불 못에 던져지는 지옥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사망을 또 한번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거듭 태어난 사람은 오직 한번의 죽음만을 경험할 뿐입니다.
전자의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서 죽는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슬픔과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작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즐거움의 종식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이 육체의 죽음은 비로소 영혼이 자유를 얻는 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죽음을 통해서 당신의 백성들과 이제는 영원히 완전하게 함께 사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육체의 죽음이 죄에 대한 형벌이지만 그러나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이 육체의 죽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한 방법입니다.
죽고 나면 먼저 가서 기다리고 그리고 후에 다시 만나면 거기는 다시 이별도 없고 헤어짐의 눈물도 없고 보고 싶어 마음 아파서 가슴앓이를 하는 그런 슬픈 일도 하나님의 나라에는 없습니다. 이런 모든 축복을 가져다주는 방법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죽음인 것입니다. 안식으로 들어가는 문이요, 평화로 들어가는 입구이며, 죄와 결별할 수 없는 이 세상의 육신을 벗어버리는 거룩해지는 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우리 모두 죽음에 대해서 담대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라, 언제든지 주가 정하신 때에 네가 오라. 내가 너를 밟고 거룩하고 순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몸소 뵈오리라. 이런 소망을 가지고 우리는 죽음의 두려움을 뛰어넘고 오히려 죽음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담대한 소망을 믿음으로 산 이 서머나교회에게 주셨습니다. 서머나교회뿐 아니라 오늘도 서머나교회의 그리스도인들처럼 믿음으로 주님을 위해서 살고 싶어하고 고난 속에서도 어찌하든지 고난의 파도에 떠밀리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튼튼히 붙잡고 살려고 몸부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약속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지만 주께서 당신의 교회들에게 약속하신 이 놀라운 생명의 면류관의 약속과 죽음 너머에서 두 번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하는 안식과 축복의 약속들을 실현 시킬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고난의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방법은 죽도록 충성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상심하고 고난이 닥쳐오고 있습니까? 그때 여러분들은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맡겨주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십시오. 그까짓 세상에 아부하기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러분들에게 맡겨주신 일에 충성을 다하며 하나님께 잘 보이는 여러분 되십시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들이 지극히 큰일에도 충성을 다하는 법입니다. 작은 일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살고 싶어했던 사람들이 커다란 일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사는 사람들이 됩니다. 매 순간 순간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충성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맺는 말
우리에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주님이 여러분들을 어떠한 어두움 속에서 어떠한 인생의 고난 속에서 건져내어 주셨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충성하라고 말씀하신 이분이 충성하셨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들이 이처럼 죄 많은 인간들임에도 불구하고 주님 앞에 용서를 빌면서 다시 한번 하나님께 사죄의 은총을 힘입고자 나온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위로와 사랑을 더해 주시는 성실한 사람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 이 세상에 돈 많고 라오디게아교회처럼 타락하는 교회 되기를 원하십니까? 가난하고 굶주리고 환난이 많아도 믿음을 지키며 산 교회요, 그리고 정말 처음과 나중이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붙들어 주시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개인의 삶도 그렇게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이 되도록 고난 속에서 시련 속에서 더 찬란한 충성스런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