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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스러운 주의 장막
    2001-12-24 20:51:18   read : 2028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84:1-2)

    들어가는 말
    신앙생활을 하면서 비록 열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앙생활을 하는 원리가 바른 원리를 찾아서 하지 않으면 지금은 열심이 있고 생기가 있는 것 같으나 곧 마르고 쇠약해집니다. 그러나 바른 원리를 찾아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그리고 그 원리에 충실하려고 애를 쓰면 우리가 훨씬 더 쉽게 회복될 수 있고 그릇된 신앙의 자리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견고함들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나타나는 신앙생활의 어려운 모습 가운데 하나는 견고함이 너무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해가면서 신앙이 자라는 것과 함께 우리는 견고해져 갑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해가면서 그 견고함을 유지하는 사람은 너무 소수입니다.
    신앙은 한 순간에 헌신을 맹세하는 다짐으로 평가되거나 척도 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다 산 다음에 얼마나 그가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하나님을 추구해 왔느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견고하지 못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좋은 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 견고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붙잡아 주시지 않는 하나님을 핑계댈 지 모르지만 그러나 성경은 견고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켜서 "마음에 정함이 없는 자"라고 말합니다. 마음에 정함이 없는 자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이 우리를 견고케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이 아니면 이길 수도 없고 살수도 없고 승리할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향해서 성경이 말할 때는 마치 신앙의 모든 문제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촉구하는 것입니다. "견고하라. 강하라. 승리하라"
    그 비유를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 사건에서 보자면,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셨습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렇게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은 이미 주신 모든 것을 "가서 싸워라 쟁취하라 그리고 빼앗으라"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오늘날의 자녀들에게 수많은 약속과 은혜들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은혜와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들을 누리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해 주셨지만 그 승리를 쟁취하고 누리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견고하게 싸워서 이기지 못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견고해져야 할 필요를 느끼면서도 그 견고함을 얻는 신앙의 원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견고함들이 자꾸 무너지고 쉽게 그 견고함들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많은 것들이 있겠습니다만 오늘은 이 84편 2절과 관련해서 그 견고함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랑스러운 장막
    이 시를 지은 사람은 고라의 자손입니다. 시편42편과 마찬가지로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받아서 요단강 건너편으로 도망갈 때 그 다윗과 동행했던 그 42편 기자와 동일한 사람인지 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분명히 그 시기에 쓰여졌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에 대한 사모함과 사랑을 말하고 그것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서가 42편하고 아주 유사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84편을 보면서 우리들이 깨닫는 바는 견고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갔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신앙이 하나님의 교회와 깊이 연결되어 있고 그 성전과 떨어지지 아니하였던 사실입니다.
    본 시편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교회를 향한 그리움으로 표현되고 있고 교회를 향한 그리움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읽고 있습니다. 이 시인이 여러 가지 많은 직책을 누리고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집에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집이 여호와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 집에 계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그 집 문지기로 있는 것이 내게는 좋사오니'라고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시인은 '장막'이라고 말합니다. 성전이 지어지기 전에는 장막이었습니다.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텐트 식으로 되어있는 장막이었습니다. 장막은 사랑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장막의 겉은 하얀 천이 둘러쳐 있고 그 가운데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장막이 쳐있습니다. 바람을 맞고 햇빛을 맞고 비를 맞고 하며 오랜 세월을 지나왔습니다. 외모로 볼 때는 전혀 영광스럽고 화려해 보이지를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인은 그 장막을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라고 합니다.
    시인은 다윗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왕궁도 보았고 부자 집들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 건축물들에 비하면 이 장막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라고 말하고 있는 이유는 그 안에 주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교회 사랑
    하나님과 불화한 관계 속에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회심한 이후로 이십여 년을 돌아보면 교회를 뜨겁게 사랑한 그래프와 내가 은혜 충만했던 그래프는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신자들 가운데 가장 불행한 사람은 사랑할 수 있는 교회를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이 교회 저 교회 떠돌아다니면서 여기 가서 한 술 얻어먹고 저기 가서 한 술 얻어먹는 소위 영적인 거지의 삶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정말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부잣집 잔치할 때 가면 고기 한점 얻어먹고 가난한 집에 가면 된장찌개에다 밥 말아서 한 그릇 먹고 나오고 이런 삶을 계속해서 사는 것, 이것은 정상적인 신앙생활일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상적인 영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느 한 교회를 깊이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한 교회를 깊이 사랑하고 거기에 애정을 가지고 거기에 소속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가정과 같습니다. 오늘 내가 우리 부모님이 계신 그 집에 태어나서 자랐는데 어느 날 부모님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호적 파 가지고 다른 집에 가겠다고 다른 집에 가 이름 올려놓고 거기 가서 살아보니까 애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애들 쫓아내고 그렇게 살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주님이 떠나라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자주 떠나라 하시는지 저는 신뢰가 안 갑니다.
    그 동안 열린 교회에 있으면서 여러분들 기쁘고 즐거운 일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또 말씀을 들으면서 한없는 은혜를 받고 펑펑 운 적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스럽고 정말 힘든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저 때문에도 그랬고 다른 사람들 때문에도 그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들을 만나게 되는데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여기에 나를 보내셨다고 생각을 하면 그런 고통들이 문제로는 다가와도 나를 쓰러트리거나 넘어트리지는 못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최고의 자산은 하나님이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내가 여기에서 순종하며 있는 동안에는 적어도 우리는 뿌리까지 흔들리는 침체에는 빠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여기서 느끼는 모든 불만족과 여기서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가?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 하는 데까지는 데려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결혼하라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교회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가정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교회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그 교회에 붙어있으려고 하는 모든 풍조들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교회에 대한 생각들을 바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등록을 할 때는 심각하게, 혼인신고서를 쓰는 기분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도 등록을 하겠다는 사람에게 잘 생각하고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교회는 우리교회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혼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금 동거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모든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분별하지 못하는 교회생활이 우리로 하여금 교회를 전심으로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실 지도 모른다라고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 교회를 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인간에게 매이는 사람들도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떠나라 하시면 결단하고 떠나야 합니다. 저는 한 교회에서 오래 있었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면서 안 힘든 적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 있던 교회를 떠날 때는 물론 하나님이 평강을 주셨지만 인간적인 사랑이 너무나 깊어서 살을 에이는 것 같았습니다. 오죽했으면 제가 "하나님 제가 다시는 그 교회를 위해서나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면 자꾸 애정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잊어버리려고 연락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인간적인 것들도 우리는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원하셨기 때문에 만난,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기에 있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하는 그런 확신 속에서 신앙생활을 해야합니다. 그래야만 교회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주의 장막
    그 다음에 우리들이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는 성경이 장막을 '주의 장막'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그 장막 안에 주님이 계실 때 우리는 그 장막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 저는 늘 같은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고 기도했기 때문에 그 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납니다. 거기에서 여름이면 땀을 흘리고 겨울이면 눈물을 흘리고 그러면서 주님을 섬기고 예배했는데, 한 곳에서 8년을 예배드렸고 새벽기도를 매일 했으니까 사백 곱하기 팔을 하면 삼천 이백 번 이상 드렸고 그 중에서 삼분의 이 이상은 같은 자리에서 예배드렸으니 추억이 없겠습니까? 그러면서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향한 추억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추억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깊이 사랑한 추억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한 추억이 없다는 것입니다. 연단 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한 때 생명까지 내어줄 정도로 뜨겁게 교회를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교회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런 관계를 누린 사람들이면 언제나 교회를 사랑하는 관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심방 가서도 늘 교회 가까이 이사 오라고 강권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부분에서 부담을 느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곤고할 때도 교회 문 열고 들어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힘이 없을 때도 나와서 기도하고, 건강이 나빠서 고통할 때도 나와서 기도하고,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러면서 하나님 곁에 늘 가까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집과 다름없이 늘 찾을 수 있는 곳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성도들의 최대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생명을 바치고 싶을 정도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누렸던 모든 성도들은 한결같이 자기의 있는 것을 아낌없이 다 주어도 조금도 아깝지 않은 교회를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정말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교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정말 교회를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거기 있는 것은 하나님이 보내셨기 때문이고 그가 그 곳을 사랑하는 것은 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곳에서 하나님이 말씀해주시기 때문에 그렇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재정적인 필요를 느끼고 선교와 구제를 하기 위해서 헌금을 하자고 교인들에게 그렇게 안타깝게 호소함에 있어서 마치 보험회사가 보험상품을 선전하듯이 알록달록한 카타록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현혹해야만 헌금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다 교회를 향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모든 것들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점점 처음 말씀드린 원리적으로 올바른 신앙생활에서 이탈되어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올바르다 하는 것은 내가 있고 사랑하는 교회가 있고 그 사랑하는 교회를 섬기는 동기가 나의 사랑이신 하나님 때문인 이 세 가지가 충족되는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생활을 해야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 교회에 출석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입니다. 정말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교회에 자기가 나와주는 것을 마치 보험에 가입해 주는 것같이 그렇게 교회에서 대접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부 원리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신앙생활입니다.
    교역자도 하나님이 보내셔서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교역자들도 하나님이 보내셨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사님을 내년에 가라 하시면 갈 것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떠나라 하시면 입 싹 씻고 옛날 김남준 목사하고의 추억은 가슴에 간직하지도 않은 채 떠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인도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나 많은 미래를 기약하는 데 신경을 쓰기보다는 오늘을 충실히 사는 데 신경 써야 합니다.
    제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목회를 하고있고 그 부르심 속에서 교회를 섬기고 있는 한 여러분들이 다 떠나고 다섯명 밖에 남지 않아도 저는 낙망하거나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동기가 되어서 교회를 사랑했다면 나중에 여러분들이 교회를 떠날 때 목회자에게 와서 내가 얼마나 교회에 헌신했는지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사람 때문에 실망해서 교회를 떠나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튼튼하고 올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을 하나님의 장막에 들여보내실 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 속에서 오늘 이 고라의 자손과 같은 고백을 받아내기를 원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사랑스러운지요" 그런 고백을 받아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이러한 사랑의 고백을 늘 가슴속에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모든 것이 다 형식으로 이루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데 교회의 상처에 대해서 아파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한 것입니다. 사랑해야만 상처로 인하여서 아파하고 사랑하니까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중보의 기도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맺는 말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보이지 않게 감추어 둘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하는 그 삶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교회 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라고 하는 고백을 하나님께서 받아내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모두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금년 한해동안 깊이 체험하고, 그렇게 주님을 깊이 사랑하는 것이 교회 속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달라는 이런 간구로 나아가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나, 내가 뜨겁게 사랑하는 교회, 그리고 그 교회를 사랑하게 만드시는 하나님, 이러한 관계 속에서 충만한 신앙의 생활을 하셔서 많은 열매들을 맺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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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어진 마음과 기도
    순종과 거룩한 영혼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할 때
    부활하신 몸에 남은 고난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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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긍휼
    기이한 은혜에 감사하라
    염려와 기도(빌4:6-7)
    내게 나아와 들으라(사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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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미각(味覺)이 사라졌습니까?(시119:
    복음을 위하여(행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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