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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모든 사람을 위하여
    2001-12-26 17:00:22   read : 1758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딤전 2:1∼7



    조금 전에 봉독한 디모데전서 2장 1절에서 7절까지에서 제일 중요한 말은 기도
    입니다. 1절에 기도가 네 가지 말로 나옵니다.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 즉
    감사의 기도입니다. 이렇게 네 가지 단어를 쓴 것은 "기도에는 이런 종류가 있
    습니다. 간구는 이런 것이고 기도는 이런 것이고 도고는 중보기도입니다" 이것
    을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강조하다보니 비슷한 말을 반복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역시 네 번 반복해서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설교 제목
    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1절, 2절, 3절, 6절에 나옵니다.
    "모든 사람"이라는 말은 바울 서신 여러 군데에 나오는데 특별히 로마서 10장
    12절 뒷부분에는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반복해서 이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어 살피는 가운데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여기 나오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라는 말은 성도의 기본적인 사명들과 관련된
    질문들을 다시 한 번 갖게 해 줍니다.

    1절에서 바울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까?
    내 기도의 범위는 얼마나 넓습니까?

    설교자들은 때때로 자신이 한 설교를 돌아보면서 내가 주로 어떤 주제를 가지
    고 설교했나, 본문을 어디에서 택했나,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재탕이 심하지
    않나?' 하는 것도 점검해야합니다.
    시월 마지막 주일을 보내고 나서 저는 목록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주
    일낮예배 설교에서 본문을 택하지 않은 성경 목록"입니다. 그때까지 설흔다섯
    권의 성경에서는 주일낮예배설교의 본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11월부터는 거기
    에서 본문을 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컴퓨터가 있어서 이
    런 일을 하기가 아주 편합니다.

    우리는 기도문을 작성해서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는 이런 식으로 정리하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한 번 '내가 주로 무엇을 가지고 기도했나?' 돌아보는 것이
    기도생활 진보에 도움을 줍니다.
    나는 나만을 위해서 기도하지는 않았나?
    우리 가족을 위해서만 기도하지 않았나?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나?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
    고와 감사를 하되'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하
    시오' 하는 간곡한 권면입니다.
    '모든 사람', 이 말에는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 모든 인종이 다 포함되고 잘 사
    는 사람, 못 사는 사람, 모든 계층이 다 포함됩니다.
    기도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고 형식적인 것이 되기 쉽습니
    다. 바울은 그것을 막기 위해 간구, 기도, 도고, 감사의 기도, 여러 말을 쓰고 있
    습니다.
    이것을 기도의 보편타당성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갖는 관심의 대상이 얼마나 넓으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윤리적으로
    얼마나 성숙한 사람이냐 하는 것을 재는 자가 됩니다.
    기도의 범위가 얼마나 넓으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성숙한 기도를 하는
    사람이냐, 그 사람이 얼마나 믿음의 진보를 이루고 있느냐 하는 것을 보여주는
    창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4절).
    진리 가운데 진리는 '예수님은 구세주이시다. 예수님만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의 진리요 영원한 진리입니
    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
    하시느니라' 이 말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고 합할 수 있습니다.
    아까 기도의 보편타당성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이것은 구원의 보편타당성
    입니다.

    디모데전서가 기록될 당시에 유대교는 아주 강했고 기독교는 신생종교였습니다.
    유대교는 유대인들만 구원받는다는 것을 기본적인 주장으로 하고 있습니다.
    신생종교인 기독교 안에 영지주의라는 이단이 넓게 퍼져 있었는데 영지주의자
    들 역시 어느 특정한 계층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일부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안과 밖에 있는 가운데 바울은 "아
    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까는 기도의 사명을 생각했는데 이 말은 선교의 사명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줍니다.
    선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이루어 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
    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느니라'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다시 말해 전도를 얼마
    나 열심히 하고 있나?' 하는 것을 한 번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일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기 위해서는 나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합니다. 자녀들이 그냥 용돈 달라고 하면 "없어!" 하지만 구두 닦아놓
    고 손내밀면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Give and Take"라는 말이 있지요. 직역하면 "주어라, 그리고 뺏아라"인데 "받
    기 위해서는 먼저 주어라"라는 뜻입니다. 기도에도 "Give and Take"의 기법이
    필요합니다. 전도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면서 기도해 보세요. 응답이
    훨씬 빠를 것입니다.
    은행에서도 그 은행에 예금을 하는 사람에게 대출의 우선권을 줍니다.

    6절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이 귀한 존재이며 따라서 우리는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제가 고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을 때 체험한 일입니다. 저희 교회에 선생님들이
    여러분 계신데 교사생활, 솔직히 말하면 좀 권태롭지 않습니까? 지금은 고등학
    교들이 평준화되어 있는데 그 때는 학교 차이가 심했습니다. 제가 두 번째 간
    학교는 수준이 낮았습니다. 짜증날 때가 많았습니다.
    그 학교에 있을 때 첫째 아이를 낳았습니다. 예정했던 날보다 좀 일찍 낳았기
    때문에 준비가 없어서 이주 당황했고 진통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알았습
    니다.
    그 다음에는 교실에 들어가면 교실이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저 학생 하
    나 하나가 모두 어머니가 그 무서운 진통을 겪고 태어난 존재들이다' 이렇게 생
    각하니까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성적이 꼴찌인 학생도 귀하게 여겨졌고 늘 말썽
    만 부리는 학생도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모든 학생이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진통 정도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무서운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모든 사람 한 분, 한 분, 얼마나 귀한 존재입니까?

    교회에는 구걸하러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은 아주 전문적이고 또 당당
    합니다. '저쪽 교회는 이 교회보다도 적은데 더 많이 주었다. 왜 이것만 주느
    냐?' '이 교회는 왜 이렇게 사랑이 메말랐느냐?' 하는 분도 있습니다.
    다른 교회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한 번은 목발을 짚고 몹시 힘들게 사무실에
    들어와서 손을 내미는 분이 있어서 조금 많이 드렸습니다. 그 분이 나간 다음에
    밖에서 일하던 사찰 집사님이 사무실에 들어와서 하는 말이 "그 사람, 들어올
    때는 목발을 짚고서 절뚝거리며 들어오더니 나갈 때는 목발을 옆에 끼고 아주
    잘 걸어나가던 데요", 입맛이 쓰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분을 위해서도 돌아
    가셨습니다. 귀한 존재입니다.

    오늘은 대림절 둘째 주일이며 성서주일입니다. 동시에 인권주일입니다. 인권의
    중요성을 아는 것은 바로 이것, '예수님은 그 사람을 위해서도 돌아가셨다' 하는
    깨닫는 데서 출발합니다.

    본문에 네 번 나오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라는 말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
    에서 평등하다"라는 교훈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점에서 평등합니다.
    저희 교회에서 수원구치소에 종종 집회를 갑니다. 부목사님들이 설교하러 가실
    때 잊지 않고 당부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서 '여러분은 죄인이고 나는 아니다'
    이런 식으로 설교해서는 안 됩니다", 부목사님들도 그런 것 다 알지만 노파심에
    서 당부합니다. 설교를 할 때 왔다 갔다 하면서 설교하지 말고 한 자리에 서서
    설교하도록 당부합니다. 거기 나와 있는 분들은 교도관들의 감시를 받아가면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20여 년 전에 돌아가신 황광은(黃光恩)이라는 목사님의 이야기를 꼭
    합니다. 이 목사님은 교도소에 가서 설교할 때(그때는 감옥소라고 했습니다) 첫
    마디를 꼭 이렇게 했습니다. "담밖에 있는 죄인이 담안에 있는 죄인들에게 와서
    인사 드립니다", 그러면 재소자들이 참 좋아하면서 마음 문을 열고 설교를 듣습
    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죄인이라는 점에서 하나님 앞에서 다 같습니다. 평등합니
    다.

    모든 사람은 우리의 기도 대상이라는 점에서 평등합니다.
    모든 사람은 선교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복음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평등합니다.
    모든 사람은 귀하다는 점에서 평등합니다.
    모든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평등합니다.

    2절을 봅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고 말하
    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잘못하면 '바울도 임금들과 높은 사람들을 무척
    좋아했나 보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13장1절에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말한 것과 연결해서 그런 생각을 더욱 강하
    게 갖기 쉽습니다. '바울은 평등사상이 부족한 사람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피라미드 전도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 대통령에게 전도하면 장관들에게 전도
    하기 쉽다. 군대에서 사단장에게 전도하면 연대장들에게 전도하기 쉽다. 대대장
    에게 전도하면 중대장들에게 전도하기 쉽다.' 이런 전도법입니다. 바울은 지금
    피라미드 전도법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전도법은 일리도 있지만 문제도 많은 방법입니다. 1,400년 전 쯤에 기독교의
    한 파인 경교(景敎)가 중국에 들어가서 이와 비슷한 전도법을 썼는데 결국은 완
    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정말 임금들과 높은 사람들을 무척 좋아하고 보통 사람들보다 그들을
    귀하게 여겨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반대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왕들과 높은 사람들은 빼놓기 쉽습니다. 그들을 비난하는 일
    은 많아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여러분, 대통령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십니까?
    또 '왕과 높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기도하겠지!' 생각하면
    서 나는 빼놓는 일도 있습니다.
    왕들과 높은 사람들은 기도의 기갈 들린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높은 사람들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들은 기도에서 소외되기 쉬운 불쌍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생각해 보세요. 이 때의 임금은 네로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 로마의 방
    화범이라는 누명을 씌어 무자비하게 박해한 임금입니다. 바로 그 왕을 위해 기
    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
    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는 예수님의 말씀을 구체적
    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로마로부터 무서운 박해를 받던 초대교회 시절의 기도문들이 여럿 전해지고 있
    는데 그 가운데는 왕들을 위한 기도문들이 여럿 있습니다.
    클레맨트(Clement)라는 교부가 있었는데 이 교부가 남긴 기도문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왕들과 권세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저들이 우리를 평화스럽게 다스리도록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조용하고 경건하고 정직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


    바질(Basil)이라는 교부가 있었는데 이 교부는 이런 기도문을 남겼습니다.

    주님이시여! 우리들의 가장 충실하고도 경건한 왕들을 기억하소서
    저들의 평화 속에서 우리들도 평화롭고 조용하고 경건하고 근엄한 생활을
    영위하게 하
    소서.
    오 주님이시어! 모든 통치자들과 권세 있는 자들을 기억하소서
    궁전에 있는 우리의 모든 형제들을 기억하소서.

    이 교부들은 모두 로마의 박해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분들인데 박해하는 이들
    을 위해서 이런 기도문을 남겼습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기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평등한 존재들
    입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참 감동적인 교훈을 주
    는 말씀입니다.

    거꾸로 바울은 7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 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그 당시에는 이방인이라고 하면 멸시받는 사람들, 구
    원받지 못할 사람들, 장차 지옥의 불쏘시개 감이 될 사람들, 이렇게 여기고 있
    는데 '나는 그들의 스승이 되었소' 하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도 구원의 대상이고, 기도의 대상이고, 예수님은 이방인을 위해서도 돌
    아가셨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다 평등하기 때문에
    바울은 거리낌없이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고 말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고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합니다.

    지난 주간에 여선교회 주최 간증성회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이런 체험을 했습
    니다.
    강사를 모실 때 길을 안내해야 합니다. 강사들이 "약도를 팩스로 보내주세요"
    합니다. "약도 필요 없어요. 설명만 잘 들으면 되요" 하고 설명해 드리면 그 설
    명 듣고 잘 찾아옵니다.
    저희 교회가 수지로 와서 지금까지 수많은 강사를 모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강
    사들을 모셨습니까? 그런데 길 못 찾아서 문제가 된 경우는 그저 두어 번 기억
    납니다. 강사들이 대개 조찬기도회나 밤 집회에 오시는데 어둠 속에서도 잘들
    찾아오십니다.
    찾아와서는 공통으로 하는 말이 둘 있습니다. "생각보다 가깝네요" 하는 것과
    "찾기 쉽네요"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희 교회 소개할 때 이 점을 강조하시기 바랍니다. "생각보다 가까워
    요" "찾기 쉬워요"

    그런데 이번에 둘째 날 강사가 오시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도착할 시간이 되어
    도 안 오시기에 전화를 해 보니 분당 시범단지 쪽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운전하
    는 분에게 어떻게, 어떻게 해서 미금역 쪽으로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거기 와서
    는 운전하는 분이 '이젠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하기에 곧 올 줄 알았더니 한참
    지나도 안 옵니다. 다시 핸드폰을 해보니까 멋대로 죽전 쪽에 가서 한참 헤매고
    있습니다. 식당에 저녁 차려놓은 것은 식고, 집회 시간은 다가오고, 당황하고 화
    가 났습니다. 운전하는 분에게 "선생님 가지고는 찾아오기 힘들겠습니다. 다시
    미금역으로 오셔서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말고 기다리십시오"하고는 나가서 모
    셔왔습니다.
    그런데 강사인 김경희 장로님이 차에서 내리면서 운전하는 분에게 "목사님, 수
    고하셨습니다!" 합니다. 상계동에서 도시 빈민들을 위해 같이 일하는데 특히 노
    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경로식당을 책임지고 있는 목사님이라고 합니다. 목
    사님에게 "선생님 가지고는 안 되겠습니다" 했으니 얼마나 미안하고 무안합니
    까? 더구나 제가 여러 신학교에 강사로 나가서 선교와 기독교문학을 가르쳤는
    데 그 가운데 한 신학교에서 저에게 배운 목사님이라고 합니다. 어느 경우나 말
    은 조심해야합니다. 그날 "선생님 가지고는 안 되겠습니다" 했으니까 그나마 다
    행이지 '당신 가지고는 안 되겠소!' 했었다면 어디로 도망쳤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 강사의 간증을 들으면서 또 다른 회개를 했습니다. 그 강사는 일
    찍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분입니다. 편안한 생활을 하려면 얼마든지 편안한 생
    활을 할 수 있는 분인데 도시 빈민 가운데 들어가서 살면서 그들을 위해 일하
    고 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그 간증을 들으면서 '운전기사에게는 말을 함부로 해도 되고 목사에게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 잘못된 것이로구나!' 회개했습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대하시기 바랍니다.

    아까 선교에 대한 말씀을 드렸는데 선교와 평등을 연결해서, 특히 북한선교와
    연결해서 말씀 드립니다.

    예전에 조선 왕조가 세워지면서 서북 사람들을 푸대접했습니다. 홍경래라는 사
    람이 여기에 항의해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들어갔습
    니다. 서북지방은 주로 장로교가 맡았는데 가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
    십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평등합니다" 하니까 서북 사람들이 얼마나 좋
    아했겠습니까? 물밀 듯이 교회로 몰려왔습니다. 서북지방이 한국교회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제가 매주 월요일 새벽에 극동방송에서 "북한의 여기에 예전에 이런 교회가 있
    었습니다. 그 마을에 사는 분들, 제가 지금 말씀드린 자리에 좀 뾰족하고 오래
    된 건물이 아직도 남이 있으면 '그것이 그 교회였구나!'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서울에 가면 '여기는 훈련도감이 있었던 자리'
    '여기는 아무개의 집이 있던 자리' 이런 비석을 많이 볼 수 있는데 통일된 다음
    에 북한에 가서 교회가 있던 자리에 그런 비석 하나씩 세우게 해 달라는 것이
    오래된 기도 제목이고 또 준비해 놓은 일입니다. 아마도 목양교회가 맡아야 할
    일일 것입니다.
    그런 자료들을 모아서 「무너진 제단을 다시 세운다」라는 두꺼운 책으로 냈습
    니다. 원래는 「무너진 제단을 찾아서」인데 출판사에서 고쳤습니다. 요즘 이찬
    영(李贊英)이라는 황해도 출신 장로교 원로목사님이 보완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예전 평안북도의 일부였던 자강도(慈江道)에 들어와서 한 주일에 군 하나
    씩을 찾아보고 있는데 교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원래 한 번에 5분
    정도 방송하기로 했는데 요즘은 10분, 12분, 막 넘어갑니다. 그렇게 교회가 많았
    습니다. 장로교의 경우는 신학교도 서울에 두지 않고 평양에 두었습니다.

    지금 북한 사회의 큰 문제가 위로 하나, 밑으로 하나 있습니다.
    위의 문제는 의견이 잘 통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강경파와 개방파의
    의견이 맞지 않아서 남북대화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밑으로 문제가 더 큰 문제인데 평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잘 사는 사
    람들은 얼마나 잘 삽니까?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굶주리고 있습니까? 또 성
    분이 나쁘다고 판정된 사람들은 얼마나 푸대접을 받고 있습니까?
    그런 사회에 멀지 않은 장래에 복음이 들어가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다 평등
    합니다" 하면 예전과 같은 역사가 다시 한 번 일어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반복해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간하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는 것을 원한다고 했습
    니다. 선교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대속의 제물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이 권면과 가르침에 따라서 기도를 하되 모든 사람을 위해서 하고, 선교 열심히
    하고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기기 위해 힘쓰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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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축하며 다시 세우는 자
    아름다운 초대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은혜에서 은혜로
    준비가 시작이다
    그날에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사람들
    어린 양의 피
    니느웨도 아끼신 하나님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요시야가 지킨 유월절
    성숙한 자유
    떡을 물 위에 던지는 마음으로
    평등하게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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