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 중에 얻은 보화 2002-01-06 22:01:15 read : 2223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1. 11. 18. 마13:44, 사45:1-3, 말3:7-12
진주는 인어의 눈물, 달의 눈물이라고 하는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아픔과 고통의 눈물 속에 만들어지는 보석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보석은 모양 빛깔에 따라 어울리는 곳이 있고 어울리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만은 진주는 어디에 두어도 잘 어울리는 보석입니다. 다른 보석은 사람이 가공해서 덧붙여 그 아름다움이 만들어지지만 진주는 사람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그 찬란한 빛깔을 만들어 내는 유일한 보석입니다. 그러므로 보석중에 보석이라 일컬어집니다.
한 마리 진주 조개가 잠깐 입을 벌리고 먹이를 찾는 동안 날카로운 모래알이 조갯살로 파고 듭니다. 모래는 부드러운 조갯살을 찢게 되고 그때마다 조개는 자기 몸속에 들어온 이물질을 감싸기 위해 조개의 피라고 할 수 있는 탄화칼슘을 분비시킵니다. 수천 수만 번 이 이물질을 감싸는 동안에 영롱한 하나의 진주가 탄생되어집니다.
그러나 모든 조개가 다 진주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바다에는 103,000종류의 조개가 있다고 합니다. 그중 진주가 생길 수 있는 조개는 15,000종류, 보석으로 가치 있는 진주를 만드는 조개는 1,300종류, 약 1%정도 입니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아픔과 고난의 순간이 있지요. 이 고난 때문에 망하는 사람이 있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패의 순간 고난과 고통의 순간 때문에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되고 인격이 찌그러지고 자학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고난의 순간에 아픔의 순간에 자신의 인생을 역전시켜서 영롱한 진주로 보석처럼 자신의 삶을 가꾸어 살아가는 걸작품 인생들도 있습니다.
가을 타작마당에 가보면 타작이 끝난다음 태산처럼 북대기를 쌓아놓습니다. 북대기를 처리하는 방법을 보니까 두 종류가 있더라구요. ① 키질하는 방법과 ② 채질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① 키에다 북대기를 담아서 흔들어 키질을 하면 북대기는 다 날라가고 알곡만 가득히 남습니다. ② 채에다가 북대기를 담아서 잘잘잘 흔들면 알곡이 톡톡톡 떨어지고 북대기만 가득히 남습니다. 인생이 고난과 아픔을 겪었을 때에 키질당하는 사람들은 게으름과 나태함과 잘못된 삶을 다 날려보내고 하나님 앞에 순결한 영성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채질 당하는 사람이 있어서 - 기도해도 소용없대, 정직해도 소용없대, 순종해도 소용없대, 찬송해도 소용없대, 불평만 가슴에 끌어안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고난의 밤은 심판입니다. 우리가 아픔을 겪었다. 고통과 실패를 만났다. 우리는 심판을 만난 것입니다.
인류역사는 지금 막 마지막 추수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추수 때는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지는 때입니다. 두 줄기 분명한 물줄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보더라도 21세기의 무한한 기회를 창출해 가는 민족들이 있고, 모든 기회를 박탈당하는 기회들도 있습니다.
이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고의 추수 때를 보내는 교회가 있는가하면 영적인 위기에서 허덕이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커다란 부흥의 물결속에 자신의 인생을 채워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영적인 피폐함 속에서 허덕이는 개인들이 있습니다. 마지막 때는 쓰임받는 사람과 버림받는 사람, 쓰임받는 공동체와 버림받는 공동체가 나누어 지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의 때, 비젼이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 꿈꿀 수 없는 공동체는 불행한 공동체입니다.
바로 이때 우리교회 - 꿈꾸는 공동체가 되고 싶습니다. 목사는 교인들에게 꿈을 주어야 합니다. 이 강단은 꿈을 파는 곳입니다. 교인들은 목사에게 꿈 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청년들과 청소년들에게 꿈을 나누어주고 꿈 꿀 수 있는 장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교회나 개인이나 꿈을 꾸며 그 꿈과 함께 내일을 준비할 때에 하나님이 쓰는 영향력 있는 인물이나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이 좋은 교회가 있고 10년 20년 후가 더 좋은 교회가 있는 법입니다.
70세의 노 사진작가가 50년동안 사진만 찍어오다가 평생을 모은 작품을 모아놓고 전시회를 했습니다. 수많은 작품들을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기자가 물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작품이군요. 이 수많은 작품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 가장 자랑스러운 작품,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작품이 어떤 작품입니까?” 70세 노 작가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을 했습니다. “내일 아침 찍을 겝니다.” 50평생 사진만 찍어 왔지만 가장 아름다운 작품은 내일 또 찍을 수 있다. 이 얼마나 희망찬 인생입니까?
최초로 시간을 만들어 내는 창세기의 시간관을 보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이는 첫째 날이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라.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양적인 시간관으로 보면 하루를 계산할 때에 아침으로 출발하여 저녁으로 마치게 됩니다. 지금은 아침인데 저녁이 오면 어떡하나? 부정적이고 비관적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시간관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라 - 지금은 저녁이지만 찬란한 아침은 밝아오고야 말 것이니라. 지금은 넘어졌지만 일어날 것이다. 오늘은 실패했지만 내일은 승리하고야 말 것이다. 지금은 어두운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찬란한 아침햇살은 나를 찾아오고야 말 것이다. 희망적입니다. 진취적입니다. 창조적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이 쓰는 사람은 오늘의 어둠속에서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두운 밤일수록 별빛이 더욱 빛난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흑암속에서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보화를 찾아냅니다. 어두운 시대에 더욱 크게 쓰는 사람이 나타나는 법이지요. 영적으로 침체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크게 쓰는 교회가 등장합니다. 오늘은 한밤중 시리즈 그 6번째 시간 "한 밤 중에 얻는 보화" 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칠흑같은 이스라엘의 암담한 상황속에서 오히려 소망을 가지라는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사야는 170년 후에 고레스라는 한 인물이 나타나 하나님의 도움으로 천하를 손에 넣게 될 것이고, 고레스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은 해방되고 무너진 성전을 수축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고레스는 메대의 속국 안산이라는 조그만한 나라에 감비세스 임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고레스가 임금이 되자 메대를 격파하고 바사를 건설합니다. 전 소아시아와 바벨론까지 정복하게 되지요.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유다 백성이 포로로 고생을 했음을 오히려 긍휼히 여기고 해방을 선포합니다. 많은 보화를 실어보내 성전을 수축하도록 도와준 임금입니다.
예언의 내용을 살펴보십시다.
이사야 45장 1절입니다. "나의 기름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하나님이 연약한 나라에, 작은 임금하나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 보잘 것 없는 한 임금을 선택하여 천지를 창조한 능력 있는 손으로 그를 붙들어 주었습니다. 세상이 능히 그를 당할 자가 없게 된 것이지요.
고레스 왕이 행차만 하면 소아시아에 모든 왕들이 제 손으로 허리띠를 풀어 왕복을 벗어 던지고 왕복을 벗어 놓고 달려나와 항복을 합니다. 전 소아시아를 정복하는 3년동안 싸움 한번 하지 아니하고 차례대로 나라를 접수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오늘이라도 기름을 부어 쓰시면 오른 손으로 붙들어 사용하시면 모세의 지팡이 앞에 홍해가 갈라지듯이 우리가 아무리 연약하고 힘없는 자라고 할지라도 쓰시면 이 땅에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 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이 그림은 하나님께서 새 역사를 펼쳐가심으로 고레스가 왕이 된지 10년만에 바벨론을 정복하는 그림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당시 바벨론은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나는 새가 아니면 닫혀진 바벨론의 땅을 밟을 수가 없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금성철벽이었습니다. 고레스의 두 장수가 바벨론 정벌에 나섰을 때에 바벨론의 벨사살 왕은 신하 천여명과 함께 궁중에서 술을 마시고 쾌쎄라쎄라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이때 성안의 장수들이 더 이상 바벨론에 희망이 없음을 알고 성문을 열어놓고 고레스 장수들과 대군들을 영접합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쓰시기 위해 그렇게 역사하셨다는 겁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3절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줄 알게 하리라" 소아시아 제국들과 바벨론을 정벌하고 실어간 은금보화가 얼마나 많은지 바사의 창고들이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역사의 창조자이십니다. 우리 아버지되신 하나님은 역사의 구경꾼이 아닙니다. 역사의 운행자가 되시고 주관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시대가 잘못된 방향으로만 흘러가도록 버려 두거나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하나님이 쓰시는 인물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시대의 고레스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자, 하나님께서 한번만 붙들어 쓰시면 영향력 있는 강력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모든 힘 있는 사람들이 매달려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 가장 어려운 문제도 하나님이 한번만 도와주시면 일순간에 해결되어질 수가 있습니다.
이 시대에 쓰임 받는 사람, 교회, 민족을 보고 싶었습니다.
4-5년전 미국의 새들백 교회를 찾아갔을 때에 거대한 영적인 물결을 보았습니다. 찬양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한국교회에서도 이 거대한 성령의 물결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새들백 교회 마당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윌로우클릭 소그룹 공동체들을 보았을 때 이런 아름다운 공동체와 헌신이 한국 땅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올 여름 싱가폴 FCBC CHC 교회를 방문했을 때에 예배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셀교회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성령의 거대한 토네이도 속에 빨려 들어갔다가 뛰쳐나온 충격을 받았습니다. 날마다 체험되어지는 기도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시대를 이끌어가고 정복하기 위해서 빛나는 젊은이들의 눈동자를 보았습니다.
비행기 트랙을 오르며 한국 땅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 내 조국 한국 땅에서 성령을 거두지 마시옵소서. 촛대를 옮겨가지 마시옵소서.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한 해만 더 참으시옵소서. 종이 목회를 잘못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잘못 섬겼습니다. 하나님 앞에 성실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내 민족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저기 북녘땅에 있는 내 동포들을 아직 주님 앞으로 인도하지 못했는데 10억 중국과 인도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지 못했는데 모슬람 땅을 그대로 버려둔채로 그대로 바라만 보고 있는데 이 민족을 한국교회를 버리시겠습니까? 울며 비행기 트랙을 내려왔습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밤이 되면 역사는 하나님이 기름부어 사용하시는 고레스를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교회에서 기도의 고레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복음전도의 고레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셀교회 부흥에 헌신하는 고레스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불신자를 전도하는데 헌신하는 고레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흑암 중에 보화와 은밀한 중에 있는 재물을 얻어서 하나님 나라에 영광을 위하여 물질을 사용하는 위대한 기업가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1세기의 고레스를 보내주십시오. 하나님 연약한 나를 쓰시겠습니까? 부족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겠습니까? 천지를 운행하시는 당신의 손으로 나를 붙들어 이 시대에 고레스로 쓰시겠습니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주소서. 오늘 여러분들이 주님 앞에 결단하는 아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벨론을 정복한 고레스, 각 나라에서 실고 온 은금보화를 창고에 쌓아두지 아니했습니다. 고레스왕은 유다 민족을 귀환시킬 때에 수레마다 은금보화을 실어보내 성전을 수축하도록 한 것입니다.
사막을 오가며 장사하는 한 아라비아 상인이 있었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방황하다가 오아시스 하나를 만났고 그 길이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료 상인들에게 지름길을 가르쳐주지도, 오아시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도 않고 혼자만 그 길을 즐겼고 큰 야자수 그늘 밑에 행장을 풀어놓고 생수를 마시며 즐기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큰 야자수 그늘아래 짐을 풀어놓고 쉬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큰 야자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오아시스를 발견하면 어떡하지? 그 사람들이 이 물을 퍼 마시면 물이 마를지도 몰라. 아니 아예 이 큰 야자수 나무가 오아시스 물을 다 빨아 드리면 나는 뭘 마시지. 이걸 짤라 버려야 되겠다.’ 그래서 나무를 짤라 버렸습니다. 얼마후에 그 길을 지나다 보니까 오아시스가 감쪽같이 말라버렸습니다. 야자수 나무가 있어야 만이 오아시스가 그대로 살아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까마득히 몰랐던 것이지요. 오아시스는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마실 때에 생수가 더욱 풍성하게 나온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준 보화의 신비요 신앙의 신비입니다.
고레스의 도움으로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고레스가 실어준 보화를 싣고와 성전을 수축했습니다. 이제 역사의 어두운 밤이 찬란한 아침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는 점점 더 어두워져만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에 상황이 바로 말라기서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이사야서가 예언의 내용이라고 하면 말라기서는 그것이 실현된 상황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수축했습니다.
말라기 3장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돌아오라 돌아오라 애절하게 반복적으로 부르는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묻지요. 우리가 어떻게 돌아갈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어두운 밤을 아침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까?
신앙적인 상식으로 보면 말씀을 깊이 묵상해라. 무릎이 닳도록 기도해라. 부지런히 전도해라 그럴 것 같은데 본문 3장 8절에 보면 "너희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도다" 십일조 떼어 먹은 죄를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재물 앞에 성실하고 정직해라. 이 순간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은 참으로 엉뚱해 보입니다. 영적인 부흥, 역사적인 부흥, 민족적인 부흥을 기다리는 백성들에게 십일조 앞에 정직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소중한 비밀이 있습니다. 영적인 부흥과 물질 사용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얻은 보화는 하나님이 주셨다. 이것을 인정해야 또 다른 보화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말라기서를 통해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은 돈에는 영적인 비밀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돈은 영적인 문제였습니다. 돈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하느냐 여하에 따라 인격이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돈은 가치관의 문제였습니다. 신앙터전의 문제였습니다. 구원과 침체의 갈림길이 되었던 것입니다.
한국 땅이 새로운 부흥을 보기를 원하느냐? 경제적인 부흥을 보기를 원하느냐? 위정자들과 공무원들이 물질 앞에 진실해야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깨끗하고 성결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영적인 지도자들이 물질 앞에서 깨끗하고 순결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물질 앞에 정직하고 성실하고 하나님 앞에 진실할 때에 영적인 부흥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돈을 버는 것은 재주만 있으면 됩니다. 부지런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물질을 쓰는 것은 물질만 쓰는 것 가지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인격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문제입니다.
영성신학자 리차드 포스터의 책 가운데 「돈 섹스 권력」 란 책이 있습니다. 돈에는 영적인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돈은 마귀가 될 수도 있고 천사가 될 수도 있다는 거지요.
창세기에 보면 인간이 따먹지 말아야 될 선악과 한 그루가 나옵니다. 이것은 축복의 나무였습니다. 잘 지키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시고 사람들은 복을 받아 살아가게끔 되어있는 것이고 물질은 모자람이 없도록 되어있는 축복의 나무였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 먹으면 그 순간 선악과는 인간을 저주하는 저주의 나무로 바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선악과입니다. 주일이 선악과입니다. 십자가가 선악과라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소중히 여기고 가슴에 새기면 우리가 구원을 받지만 십자가를 무시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어떤 길도 없습니다. 주일날 예배를 잘 드리고 일주일동안 살아가면 우리가 어떤 삶을 살든지 간에 구속받은 시간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야될 예물을 하나님 앞에 정성껏 드리고 살아가면 우리가 쓰는 모든 물질은 구속받은 물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살아가면 아무리 착한데 돈을 쓰더라도 저주받은 돈이라는 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십일조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이스라엘이 암울했을 때 이사야 선지자들 통해 희망을 예언합니다. 한 연약한 자에게 기름을 부어 내가 오른 손으로 붙들어서 크게 크게 쓸 것이다. 그를 통해 유다 민족은 포로에서 해방될 것이다. 그가 많은 보화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서 성전을 수축하게 될 것이다. 성전이 수축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앙의 고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모두 다 하나님이 한 일이다.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그 고백이 십일조를 통해 고백되어지길 원하는 것입니다.
시대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오히려 물질에 사명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는 사람들 가운데 흑암 중에 보화와 은밀한 중에 숨은 재물을 얻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지요. 인생의 어두운 밤은 보화를 얻는 밤입니다. 천천이 쓰러지고 만만이 넘어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쓰는 사람들 가운데 결정적인 구원을 체험하는 사람들, 하늘의 한 없는 복을 받아 누린 사람들이 나오게 될 것이라 약속입니다. 오늘 바로 이 메시지의 주인공 고레스가 여러분이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인생의 깊은 밤에 얻어야 할 보화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무엇을 보화로 여기느냐 여하에 따라 인생의 값어치가 결정되어집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보화는 무엇입니까? 고레스가 얻은 보화가 무엇입니까? 물론 바벨론 창고에서 얻어온 수많은 은금보화가 보화일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 소중한 보화가 고레스에게 있었습니다. 고레스에게 부어주신 "여호와의 기름"이 보화였습니다. 하나님이 붙들어준 능력 있는 오른손이 보화였습니다. 앞장 서 가시며 놋 문을 쳐 부수며 쇠 빗장을 꺾고 승리하게 도와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 보화였습니다.
이사야 45장 3절에 보면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이어지는 4절입니다.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찌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5절입니다.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6절입니다. "해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마지막 7절 말씀입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이 하십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인간의 생사화복, 역사의 흥망성쇠가 우리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예수가 보화요 하나님 나라가 보화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하나님이 나를 쓰신다는 이 사실이 보화였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 보화를 얻는 농부 얘기가 나옵니다. 보화는 하나님 나라 복음이요 예수였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로 시작하여 예수로 마치는 종교였습니다. 예수안에 모든 보화의 신비가 숨어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정권교체입니다. 지금까지는 세상적인 가치관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물러가고 하나님 나라 가치관이 나를 다스리고 지배하는 것, 이것이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나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제는 내 왕좌에서 내려앉고 예수가 내 마음 중심에 오셔서 나를 다스려주시고 지배해 주시고 통치해 주시는 것 이것이 하나님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것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들에겐 이 보화가 영원히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고난이 찾아옵니다. 믿었던 세상이 나를 배신합니다. 사랑했던 사람이 내 곁을 떠나갑니다. 눈 앞에 캄캄해져 옵니다. 세상에서 어둠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눈을 뜨고도 보이지 않던 보화가 어두운 밤에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 보이지 않던 보화가 고난 가운데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밝은 날에 보이지 않던 보화가 캄캄한 한 밤 중에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큰 풍파 일어나는 것 세상 줄 끊음일세. 그때 비로소 보화가 내 눈에 들어옵니다. 하나님이 보입니다. 예수의 음성이 보입니다.
이전에 세상이 그립더니 하나님의 집이 그리워집니다. 말씀이 그리워집니다. 은혜가 그리워집니다. 예배가 그리워집니다. 기도의 목이 말라집니다. 찬송시간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보화가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눈에 비늘이 벗겨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기 농부는 보화를 직접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보화를 사기 위해 밭을 사야 했습니다. 비싼 댓가를 지불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샀습니다. 예수를 얻고자 하는 자 교회생활을 사야합니다. 복은 받고 싶고 예수는 얻고 싶은데 교회생활 상처받는 것 싫다. 교회 생활 버리면 예수도 떠나갑니다. 헌신과 봉사를 사야합니다. 시간을 내고 기도하고 말씀 듣는 자리를 사야합니다. 상처받아도 소그룹에 나아가 함께 교제를 사야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목숨까지라도 내어놓는 것입니다. 살고자 하는 자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 산 생명의 신비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가진 것 다 잃고 난 다음에도 콧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이 절로 흘러나오게 됩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손에 있는 부귀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이슬 같은 목숨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주를 사랑하는 마음 금보다도 귀하다~ 찬송의 주인공들이 되어져 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두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침 여러분들을 만나주셨습니까? 위로의 주님으로 찾아오셨습니까? 그분을 붙드십시오. 오늘 아침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결단을 요구하십니까? 두 주먹을 움켜쥐고 결단하십시오. 성령이 주신 마음입니다. "나는 이 시대의 고레스가 되리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약속의 음성으로 찾아오셨습니까? "하나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나를 영향력 있는 이 시대의 고레스로 사용하여 주십시오."
오늘 주신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주를 사랑하는가
손에 있는 부귀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이슬 같은 목숨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사랑의 빛 잃어 가면 주님 만날 수 없어
헛된 영화 바라보면 사랑할 수가 없어
잠시 머물 이 세상은 헛된 것들 뿐이니
주를 사랑하는 마음 금보다도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