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의 깊은 의미 2002-01-15 10:50:46 read : 2008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마태 3:13-17
오늘 주님의 수세 주일 본문은 예수님의 세례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실천신학자 정 장복 교수는『예배학 개론』이란 책에서 세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즉 "세례란, 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결정적 사건이며, ②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과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예전이며, ③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탄생을 의미하며, ④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하는 의식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세례의 의미는 매우 깊고 오묘한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미 세례 받은 사람은 자신이 받은 세례의 의미를 오늘 다시 되새겨 보아야 하며, 앞으로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세례의 의미를 바로 깨닫고, 세례 받을 준비를 잘 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 감리교회에서는 주님의 수세 주일에 세례를 베푸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례를 베풀기 전에 집례 목사는 청솔 가지에 세례 수를 찍어 회중(會衆)을 향해 뿌리면서 "여러분이 받은 세례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런 의식을 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례가 무엇인지를 새롭게 알고, 세례를 통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봅시다.
먼저, "그에게 하늘이 열렸다"고 했습니다.
16절 앞부분에 보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라고 했습니다. 이걸 표준 새번역으로 보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 때에 그에게 하늘이 열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 오셨습니다. 요단강에서 예수님이 세례 받기 위해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신 것을 말합니다. 침례교회에서는 문자 그대로 볼 때 예수님이 침례(浸禮)를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나, 물을 뿌리는 것이나, 물을 묻히는 것이나, 그 의미는 다 같은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그에게 하늘이 열렸습니다. 하늘이 그에게 열렸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늘'은 '영적인 영역'(spiritual realm) 또는 '영적인 세계'를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예수님이 '영적인 세계'와 통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여기서 교부(敎父) 암브로스(Ambrose)는 이것을 복음서에 나오는 '에바다'(Ephphetha)라는 말로 설명을 했습니다. 즉 눈과 귀와 코가 영적으로 열리는 것(막 7:34)을 의미하는 신앙 의식이 곧 세례라는 겁니다. 대단히 의미 있는 해석입니다. 세례 받고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새 하늘이 열려, 즉 새로운 영적인 세계가 열려, 새로운 것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또 은총의 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새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또한 세례를 받음으로 해서,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교통(交通)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을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라고 하셨고, 로마 8:15에서는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갈라디아 4:6에서는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아주 가까이 느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아바, 곧 아빠로 부르는 겁니다. 공동번역에는 아바를 '아빠'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아바, 또는 아빠(Abba)라는 말은 아람어인데, 신기하게도 우리말과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자기 아버지를 친밀하게 부를 때 '아빠'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신 후부터,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 또는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을 죄인인 우리가 아버지로 모실 수 있음은 너무나 큰 은혜인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느끼십니까? 여러분이 이것을 느껴야 됩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할 수 있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세례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그 물은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기 위해서 흘린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고 복음서는 기록합니다. 그것은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고 했습니다(막 15:38). 여기서 성소 휘장은 예수님의 육체(肉體)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20). 저에겐 휘장이 예수님의 육체를 가리킨다는 이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예수께서 고난 당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고,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막혔던 담이 헐어진 것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대속(代贖)의 죽음으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의미입니다. 세례란 죽고 다시 사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나에게 하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통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너무 감사합니다." 이런 고백이 여러분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터져 나올 때, 여러분은 비로소 세례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고, 그리스도인, 혹은 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릴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16절 뒷부분에 보면,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라고 했습니다. 옛날 교부들은 세례를 베푼 다음에 흔히 기름을 부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마치 아론이 제사장 직(職)에 들어갈 때에 모세가 기름을 부었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기름을 부은 것은 성령이 임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원래 왕이나 제사장이나, 예언자를 세울 때 하는 예식입니다.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을 여러분이 기억하시면 될 겁니다. 그리스도란 말은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성령이 그 위에 임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 곧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시작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순간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 인(印)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즉, 세상의 소유에서 하나님의 것으로 변화되는 순간이 바로 그런 순간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 광야로 가셔서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난 후, 갈릴리에서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그때 나사렛에 있는 어떤 회당에 들어가서 다음과 같은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주의 영[성령]이 내게 내리셨다.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눈먼 사람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눅 4:17-19). 이게 바로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하실 일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가 세례 받고 하나님의 소유(백성)가 된 것은 우리 각자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하시려는 목적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걸 잊어선 안 됩니다. 이걸 아는 사람은 절대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딴 소리를 안 합니다.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 즉 성령 세례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삽니다. 얼굴이 늘 환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에 보면, <느낌!>이라는 면(面)이 있어서 저는 꼭 그걸 읽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기사가 많은데, 특히 정치나 경제, 사회면을 읽다보면 답답한 마음이 많이 드는데, 이 느낌 란을 보면 기분이 썩 좋아집니다. 아마 거기에 감성적(感性的)인 내용이 풍부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중·노년, 새 인생, 공연·예술, 영화·비디오, 학예·출판, 미술·전시, 건강·의학, 종교, TV·미디어, 바둑, 음식남녀(예: 안동 찜닭 서울 상륙 1년) 등에 관한 것이 쭉∼ 나옵니다.
예수를 믿는 것도 '느낌'이 있어야 합니다. 즉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 믿는 게 재미있고, 신이 납니다. 이렇게 되려면, 우리가 성령(聖靈)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받는 것을 특이한 걸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게 성령 받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느끼는 게 성령 받는 겁니다. 성령 받으면, 주님의 일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불평이 사라집니다. 교회 오는 게 즐겁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가슴에 와 닿고, 은혜가 됩니다. 그래서 더욱 은혜를 사모하게 됩니다.
여선 교회 일을 열심히 하시는 권사님이 있습니다. 권사님은 세상적인 안목(眼目)으로 보면, 행복하게 살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생활 조건을 보면, 피곤하고 고달프게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얼굴을 보면, 그분에겐 기쁨이 배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얼굴이 환합니다. 알고 보니 거기엔 비결이 있었습니다. 지난 송구영신 예배 때 교인들을 축복하는 자리에서 꼭 나와 기도 받고 싶은 사람만 나오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잠깐 머리에 안수하며 축복해 주었습니다. 권사님은 그 날 꼭 나와 안수 받고 싶어 나왔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안수 받는 순간, 2∼3분밖에 안되는 순간, 놀라운 평안을 맛보았습니다. 마음이 너무 편했다고 합니다.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예수님 품이 이런 것이겠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그 권사님은 "목사님, 전 그 순간을 진짜 잊을 수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마치도 날아갈 것 같았고, 정말 너무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올해는 뭔가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그 권사님은 '은혜의 기적'을 체험한 겁니다. 성령이 그 권사님에게 조용히 임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고 했는데, 권사님이 바로 이런 체험을 한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는 것을 체험한 사람은 활기(活氣)있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을 해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는 것을 체험하면, 교회 나오는 게 즐겁고, 주님의 일 하는 것이 기쁘고, 사는 것이 힘들어도 잘 이겨 나가면서, 늘 "주님, 감사합니다"하는 고백을 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셋째로,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렸다"고 했습니다.
17절에 보면,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소리가 하늘에서 들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가 예수님을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세례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항상 아이들을 축복하면서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주님, 이 아이가 지혜가 자라고 키가 자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워 지게 하옵소서. 이 아이가 성장하여 우리 교회의 자랑이 되게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다른 표현으로는, 주님이 사랑하는 자,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 주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빌립보서 2장 8절에 보면, 예수님을 가리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분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바치셨습니다. 이런 예수를 하나님께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부르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런 자를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사도행전 5장 31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참 좋습니다. 불순종하면 마귀의 자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순종하는 자에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그 영혼이 아주 건강해 집니다. 순종하면, 성령 받고, 성령 받으면 신바람 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깨닫고, 더욱 순종하는 삶을 사십시오.
②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 생활이라고 봅니다. 폴 훈(Paul W. Hoon) 교수는 예배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시(啓示)와 그에 대한 인간의 응답(應答)"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예배드리는 사람의 자세는 이런 것이어야 합니다. 즉, 믿음으로 정성을 다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요한 4장 24절을 공동번역으로 보면,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적으로 참 되게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로마 12잘 1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참된 예배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禮拜)라는 말은 영어로 'service'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예배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섬김'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인지를 알려면, 예배드리는 태도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성도는 예배를 올바로 드리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적어도 예배시간 10분전에 와서 미리 기도로 준비하고, 그 날 본문을 미리 찾아 놓으십시오. 예배 때 일찍 온 사람은 앞자리, 안쪽부터 앉으십시오. 무엇보다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신자의 바른 자세이며, 이것이 바로 주님이 기뻐하는 자, 사랑하는 자로 사는 길이요, 또한 주님이 예비하신 은혜와 복을 받는 길입니다. 올해는 무엇보다도 예배드리는 자세가 완전히 달라져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