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 정 적 인 믿 음 2002-01-11 06:57:48 read : 1943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누가복음 17:5-10
일생을 행복하게 살고 성공적인 삶을 누린 사람들의 공통적인 삶의 자세가 있습니다. 그것은 긍정적인 믿음과 긍정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사람들은 어떤 경우나 희망적입니다. 잘 될 것을 기대하고 생각하고 인간관계도 좋은점을 보고 자신에 대하여 낙심하지 않는 삶의 자세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매사에 원망하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자기 자신에 대하여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성공하기 힘들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합니다. 안된다는 말을 먼저하고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실패를 예견하고 나쁜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가정생활도 원만치 못하고 사회생활도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천성적인 성격에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또한 부정적인 사람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성장환경에서 오는 부모의 영향으로 형성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은 긍정적인 자세로 바꾸어야 합니다. 할 수 없다는 말은 입을 다물고 나쁜 것이 보일 때는 눈을 감고 안된다는 생각은 잘 될 것이다로 그 생각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조선일보 칼럼란에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유근일 논설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우리의 현실을 정확하게 분석하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금융에 전혀 미래와 출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적인 사고요, 사회를 어둡게 할 뿐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세상을 보면서도 밝고 아름다운 것을 보는 사람이 있고 어둡고 추한 면을 보면서 탄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운명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희망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고 나에게 대한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다 잘 되고 보다 행복하고 보다 성공적으로 살기를 바란다면 긍정적인 인생관을 갖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가족들, 남편이나 자녀들, 그리고 친구, 이웃들에게도 긍정적인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격려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생각을 바꾸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병든 자들의 병을 낫게 만들었고 죄지은 사람을 용서해 주고 배고픈 자에게 빵을 먹이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는 믿음을 심어 주셨습니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 17:5-6)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 13:31-32)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의 원리를 가르쳤습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양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엄청난 사건을 이룹니다.
여기 말하는 믿음은 구원받는 믿음이 아닙니다. 인생을 성공시키는 긍정적인 믿음을 말합니다.
겨자씨는 지극히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겨자씨가 싹이 나고 자라게 되면 큰 나무가 되고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이고 사람들이 그 그늘 아래 쉬게 됩니다.
겨자씨 한 알은 살아있는 씨입니다. 생명이 있는 종자입니다. 겨자씨는 생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적은 없이 바람에 날라버릴 수 있으나 땅속에 심어지면 싹이 나고 자라면 기적이 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자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7-10)
겨자씨 할만한 믿음과 이 종의 비유는 무슨 관계입니까? 우리는 믿음 하면 허황한 기적을 먼저 생각합니다. 밭에 있는 뽕나무가 바다에 심어지는 환상만 생각합니다. 여기서 믿음이 좋은 믿음이 되고 생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다가 밭이 되고 뽕나무가 심어지는 기적을 보려면 자기 할 일을 다하는 종이 될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일반적으로 믿음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이 다 이루어주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불신 자보다 더 무능한 그리스도인이 더 많습니다.
믿음은 기적을 일으키지만 그 기적은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결과입니다. 종은 하루종일 일하는 자입니다. 밭에서 뽕나무를 뽑기도 하고 심기도 합니다. 종은 바다를 흙으로 매우기도 합니다. 바다를 평생 매우면 큰 밭이 됩니다.
첫째, 긍정적인 믿음은 자기 부족을 압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기 부족한 것을 안 사람들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남 부족한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가정에 돌아가면 남편이나 자식을 볼 때 좀 모자란 단점이나 부족한 면을 보는 똑똑한 똑순이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불평이 시작이 됩니다. 회사(직장)에 가면 사장, 계장이 모자란 사람이라고 비판하는 똑소리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항상 불평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를 보면서 잘못만 탓하는 똑똑한 시민이 많습니다. 신문 보면서 열내면서 죽일 놈들이라고 소리치면서 담배 꽁초 길거리에 버리고 아무데나 쓰레기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에 오면 목사 부족한 점을 보고 설교의 허물만 보이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의 부족한 점을 보고 그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의 부족한 것을 보고 비판하면서 만족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부족한 것을 아는 사람은 발전이 있고 변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 부족한 것만 탓하는 사람은 항상 불평이요, 세상 살기도 힘이 듭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 힘든 사람들이 종들입니다. 당시 중등지역의 종들은 여러 종류가 있었습니다. 조상적부터 종이 되어 종의 자식으로 종이 되어 일생동안 살았습니다.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잡혀오면 종이 되었고, 또 가난해서 종으로 팔려가면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종은 자기 소유가 없습니다. 종들은 생명도, 재산도, 자식도 주인의 것입니다. 주인에게 절대 순종해야 하고 반항하면 죽습니다.
종은 수고에 대한 보상이 없습니다. 종은 명예도, 영광도, 자유도 없습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습니다. 주인이 가라고 하면 가고, 서라고 하면 서고, 일하라 하면 일할 뿐입니다. 만약에 이유가 있으면 대가는 채찍일 뿐입니다.
종은 보상이 없습니다. 일꾼은 삯을 받지만 종은 삯을 받지 못합니다. 자기 한 일에 아무런 대가가 없습니다. 칭찬이 없고 주인의 감사가 없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종들에게 있다면 불평이요, 불만, 탄식 뿐이요, 주인에 대한 원망일 뿐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종살이 하면서 주인에게 "부족한 종입니다. 보잘 것 없는 종입니다. 무익한 종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의 그 믿음은 겨자씨 같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삶의 자세를 가질 수 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억울하게 살아가는 종들의 할 말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옛날 세상에서 태어나 종살이로 죽어간 사람들을 상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도 그 종살이 보다는 낫습니다. 불평하고 불만할 수 있는 말 대신에 "부족한 종입니다. 제가 부족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을 품은 마음입니다.
저는 사도훈련 시간에 눈물겨운 감동을 받는 때가 많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승리하는 믿음이 끝까지 자기 부족을 느끼며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기 주장이나 보상을 포기하고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참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위대한 노력입니다.
하나님께 충성을 다한 후에 "부족한 종입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은 겸손한 삶의 자세입니다. 부모님께 효도를 다 한 후에 "부족한 자식입니다." 할 때 참 효자가 됩니다.
얼마전에 어떤 성도가 제가 평양 봉수교회에 설교하는데 북한헌금을 가지고 왔어요. 제가 보니까 큰 헌금이었습니다. 한마디가 감동적이었습니다. "너무 부족해요. 앞으로 많이 할께요."
저는 소년시절 예수를 믿고 감동받은 성경구절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말씀입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이 세상의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누구에게든지 이런 심정으로 산다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의 자세는 긍정적인 인생을 살아가며 서로를 이해하며 기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사도 바울은 당시 노예생활의 참상을 잘 알면서도 주인을 보면서 주님께 하듯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주님에게는 부족하듯이 그런 심정으로 주인에게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긍정적인 믿음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종들은 일을 하고 또 해도 수고의 대가가 없습니다. 보상이 없습니다. 칭찬도 없고 상급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기 할 일을 다 한다는 것은 위대한 것입니다. 여기에 겨자씨의 기적이 있고 생명력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자기에게 유익이 있으면 하고 자기에게 유익이 없으면 이것이 좋은 일인 줄 알면서도 아무것도 안합니다. 우리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한국 근대화의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한 정주영 회장이 며칠 전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1915년 11월 25일 출생했습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학력은 겨우 소학교를 졸업한 것 뿐이었습니다.
그는 서울로 도망쳐 막노동판을 전전하면서 자기 할 일을 다 했습니다. 그의 생활 철학은 "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신념으로 살았습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사는 사람은 빈대만도 못한 놈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인천의 부둣가에서 노동 일을 할 때였습니다. 밤이면 합숙소 빈대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정주영씨 운명을 바꾼 일은 인천 쌀가게 부흥성회에서 신의와 성실로 성공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나는 무슨 일이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최고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 평생을 언제나 최고의 노력을 쏟아 부으며 살아왔다. 요만큼이나 요정도만 된다는 것은 내게 있을 수 없었다. 더 할래야 더 할게 없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다하는 최선, 이것이 내 인생을 엮어온 나의 삶의 철학이다."
몇 사람이 빈대를 피하는 방법을 연구해서 밥상 위로 올라가 잤는데 빈대는 밥상 다리를 타고 기어올라와 사람을 물었습니다. 그는 머리를 짜내어 밥상에 다리에 물을 담은 양재기를 하나씩 받쳐놓고 잤습니다.
그런데 편안한 잠은 이틀만에 끝나고 여전히 빈대가 괴롭혔습니다. 빈대들이 무슨 방법으로 물어뜯나 불을 켜고 살펴보니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밥상 다리를 타고 올라가는게 불가능해진 빈대들이 벽을 타고 까맣게 천장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천장에서 사람 몸을 향해 낙하산식으로 툭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평생 그때 일을 소름 끼치는 놀라움으로 잊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빈대도 목적을 위해서는 저토록 머리를 쓰고 저토록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서 성공하지 않는가 빈대한테 배울 것은 배우자 빈대만치 배워도 성공 못할 일은 없다. 나의 오늘의 현대 신화를 이룬 성공철학을 묻는다면 나는 빈대한테 배운 최선의 결과라고 대답하고 싶다"고 자서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주영씨의 자서전을 일독하면서 그의 성공과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의 긍정적 인생관에서 된 결과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셋째, 긍정적인 믿음은 기적을 낳는다.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는 것은 살아있기 때문이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겨자씨 속에 큰 나무가 미래에 자랄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자신 속에 있는 놀라운 자화상입니다. 예수님은 "너희에게 겨자씨 알만한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긍정적인 믿음은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져야 합니다. 기적은 남이 이루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역사상 기도하다가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 나를 도왔다든지 신비한 세계로 이끌었다든지 하는 것은 기념할만한 것이 못됩니다.
겨자씨 같은 존재에게서 최선을 다해서 일어난 일들이 하나님의 영광스런 사건으로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대개 사람에게는 두 종류의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입니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과소평가를 하며 '나는 못났어, 부족해' 언제나 열등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반대로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라는 긍지와 자부심,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성공적인 사람이 됩니다. 자기 운명을 바꾸는 일은 행복하고 성공적인 자화상을 갖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면 성자가 됩니다. 착실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면 착실한 사람이 됩니다. 위인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면 위인이 됩니다. 신사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면 부자가 됩니다. 그러나 거지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면 거지가 됩니다. 환자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면 환자가 됩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에 있는 것 아닙니다. 다 자기 자신에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인정하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눈으로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유태영 박사는 건국대학교 교수입니다. 이분은 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나 통신 강의록을 가지고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한 분입니다. 이 분은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농촌을 위해서 농촌을 공부하러 덴마크로 유학하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는 덴마크 말을 모릅니다. 다만 강의록으로 배운 영어 실력으로 덴마크 왕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를 받아 본 왕은 내무부 장관에게 처리하라고 지시하였고 그 내무장관은 한국의 농촌 청년의 뜻을 살려 장학금을 대주자고 제시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박사는 유학이 허락되었다는 편지를 받게 되었는데 그는 비행기표 살 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편지를 내었습니다. 결국 그쪽에서 비행기 표까지 보내왔고 유학을 떠났습니다.
막상 덴마크에 도착하긴 했지만 덴마크어를 전혀 몰랐습니다. 그는 하루 20단어씩 외우기로 결정하고 실천하여 나갔습니다. 1년후 그는 덴마크어를 유창하게 잘 할 수 있었습니다. 덴마크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또 이스라엘로 유학을 갔습니다. 또 하루에 20자씩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5년만에 사회학 박사 학위를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