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목사 집회논란, 박정희 대통령 40주기 추모식/ 목사의 가장 큰 죄? 설교 지루하게 하는 것 2019-11-02 03:36:20 read : 3145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전광훈 목사, 박정희 대통령 40주기 추모식
"대한민국 잘되려면 이승만·박정희 부활시켜야…문재인 내려올 때까지 집회 계속"
전광훈 목사가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40주기 추도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추도식은 전 목사가 주도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문재인 대통령 퇴진 운동을 이끄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정희 대통령 40주기 추도식'을 열었다. 10월 25일 오후 3시부터 26일 새벽 5시까지 '문재인 퇴진 집회 및 기도회'를 하고, 잠시 쉬었다가 오전 9시부터 추도식을 진행했다.
수만 명이 참석했던 집회 및 기도회와 달리 추도식은 비교적 조촐한 분위기였다. 추도식은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됐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사회를 봤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은 제일 깨끗한 대통령이다. 나보다 더 깨끗한 분인데, 억울한 재판으로 감옥에 가 계신다. 1570만 표를 받아 당선된 분을 국회의원들이 탄핵했다. 그들은 벼락 맞을 것이다. 헌법재판관들은 촛불을 의식해 탄핵했다. 재판관들도 벼락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광훈 목사를 향해 거듭 감사를 전했다. 김 전 지사는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 의장이신 전광훈 목사님이 이번 추도식을 주최해 주셨다. 광화문광장에서는 40년 만에 처음으로 추도식이 열린다. 전 목사님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단상에 오른 전광훈 목사는 종북 좌파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두 번 죽이고 있다며,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발전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과 관련 있다고 했다. 전 목사는 "우리나라 국민은 박정희 대통령 설득에 일단 먹고살고 보기로 했다. 그 후 민주화를 하자고 해서 이렇게 (발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 목사는 "주사파가 철저히 두 번 죽여 놓은 박정희 대통령을 빨리 부활시켜야 한다. 그런 다음 문재인 날강도 같은 놈이 사기를 쳐 가져간 대한민국을 되살려야 한다. 내년에는 범국민적으로 박정희 대통령 추도식이 이뤄지길 바란다. 대한민국이 잘되는 길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부활시키는 데 있다는 걸 잘 알아 달라"고 당부했다. 참석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환호했다.
우파 인사들이 연달아 단상에 올라 지지 발언을 했다. "위안부 성노예화는 없었다", "일제가 쌀을 수탈한 게 아니라 수출한 것"이라고 주장한 이영훈 전 교수(서울대)도 참석해 박정희 대통령의 유업을 이어 가야 한다고 했다.
5·16군사정변은 혁명이며, 역사의 정체와 타락에 대한 한국 민중의 분노 폭발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반일 종족주의자들이 나라를 장악하고, 일본 분쟁을 의도로 극대화하고 있다. 지하에 잠복해 있던 반국가 공산 세력이 나라의 권세를 장악했다"고 말했다.
국가전략포럼 이강호 연구위원은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출애굽시켰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했다. 그런데 불법 선동으로 정권을 탈취한 문재인이 대한민국의 번영과 위업에 칼을 꽂았다. 이 나라를 북쪽 돼지에게 상납하려고 한다. 반역자다. 끌어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행사 말미 전광훈 목사가 다시 단상에 올랐다. 전 목사가 "문재인이 내려올 때까지 집회를 하겠다. 다음 주 토요일에도 초대형 집회를 하겠다"고 말하자, 참가자들은 소리 지르며 환호했다. 일부 참가자는 "빨갱이 개자식", "죽여야 돼 죽여"라고 소리를 질렀다.
추도식은 1시간 만에 끝났다. 참가자는 집회를 시작할 때보다 3~4배 늘어나 있었다. 전광훈 목사와 참가자들은 '대한민국 만세'를 삼창한 다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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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인 80%, 전광훈 목사 막말에 비판적
전광훈 목사의 주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10명 중 6명은 전광훈 목사가 한국교회를 대표하지 않는다고 응답했습니다.
개신교인 10명 중 8명은 막말 행보를 보여온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전광훈 목사에 대해 비판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기독교인 대부분은 기독교 정당을 만들어 정치에 참여하는 일에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전광훈 목사가 한국교회를 대표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교회의 위상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응답은 64.4%로 나타났습니다.
한국교회와 기독교가 폐쇄적이고 독단적으로 비춰질 것 같아서 우려가 된다는 응답도 22.2%로 뒤를 이었습니다.
10.1%는 전광훈 목사의 언행은 다소 지나치지만 주장에는 동의한다고 응답했으며, 전 목사를 적극 지지한다는 응답은 3.3%에 그쳤습니다.
결과를 분석한 크리스챤아카데미 이상철 원장은 비록 대다수 개신교인이 전광훈 목사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전 목사를 옹호하는 세력도 13.4%가 나왔다는 점에서 교회가 극우정치에 휘말릴 수 있다는 충분한 잠재적 위험성과 가능성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상철 원장 / 크리스챤아카데미
"전광훈 목사는 한기총 대표회장이라는 명함을 지닌채 매우 극우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이에 대해 3분의 2가량의 개신교인들은 반감을 보이고 있으나, 전광훈 목사를 옹호하는 13.4%라는 애매한 숫자죠. 13.4%라는 무시 못할 존재가 있긴 있는 거예요."
기독교인이 정당을 만들어 정치에 참여하는 일도 대다수 개신교인은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개신교인의 49.9%는 교회의 정치 참여에 적극 반대한다고 응답했고, 29.7%는 반대하는 편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찬성하는 편과 적극 찬성한다는 응답은 각각 3.2%와 2.1%로 나타나 찬성률은 매우 적었습니다.
한국교회를 들끓게 만들었던 난민과 동성애 문제에 대해 개신교인과 비개신교인은 어떻게 바라볼까.
난민에 대한 가장 많은 의견은 임시로 보호한 뒤 다른 나라로 가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응답이었습니다.
뒤를 이어 개신교인의 25.7% 비개신교인의 24.7%가 인권 보호 차원에서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난민은 이슬람 등 불온한 문화를 전파하기 때문에 임시로라도 보호하면 안 된다는 응답은 개신교인의 경우 23.0%, 비개신교인은 18.1%로 나타났습니다.
개신교인과 비개신교의 인식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부분은 바로 동성애입니다.
동성애가 죄냐고 묻는 질문에 개신교인 58.4%는 그렇다고 응답했으며, 비개신교인은 25%가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응답했습니다.
비개신교인의 48.2%, 개신교인의 23%는 동성애가 죄라는 인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송진순 박사 / 이화여자대학교
"혐오에 내제된 우월감이나 계몽의식을 떠나서 인간을 한 존재로 보고 하나님의 자녀로 환대하는 것. 이것이 개신교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가치를 어쩌면 외부인이고 개신교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무종교인이나 비기독교인들이 훨씬 더 적확하게 보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이번 조사는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과 크리스챤아카데미 대한기독교서회가 지앤컴리서치를 통해 실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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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조 목사 “국민가수 김건모가 사위라니 너무 좋아”
장욱조의 생명나눔 홈페이지 캡쳐
김건모(왼쪽 사진)과 장지연. 뉴시스, 장지연 앨범 커버.
가수 김건모(51)가 내년 1월 30일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장지연(38)과 결혼식을 올린다.
김건모의 예비 장인어른이자 작곡가 겸 목사 장욱조씨는 31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딸의 결혼 소감을 밝혔다.
장 목사는 “우리 딸 지연이와 건모가 만난다고 하니 감사할 따름”이라며 “국민가수이자 후배 가수인 김건모가 사위가 된다는게 기쁘다. 우리 건모 너무 좋다”고 전했다.
그는 “딸이 선배 소개로 건모를 만났다더라. 나도 두 사람의 교제를 최근에야 알았다. 당시엔 놀랐지만 바로 ‘난 좋다’고 했다”며 “상견례에서 이선미 여사님도 만났는데 생각도 잘 맞고 좋으시더라. 양가가 모두 기독교 집안이다. 이선미 여사님도 권사님이고 작고하신 건모 아버님도 장로님이셨다”고 말했다.
앞으로 사위 김건모와 무엇을 해보고 싶냐는 질문에 “같이 하고 싶은 게 많다”며 “콘서트에서 같은 무대에 서고 싶다. 앞으로 가족이 될 사람과 한 무대에 서면 행복할 것 같다”고 전했다. 또 “세계 여행도 하며 소외된 사람들에게 위로도 해주고 싶다. 가족들과 함께 노래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장 목사님 가족이 포털 사이트 실검에 오른 것에 대해 “대중들의 관심이 놀랍고 신기하다”며 “딸에 이어 아들까지 온 가족이 실검에 오른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 그동안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는데 하늘이 알아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건모를 아들처럼 생각하려고 한다. 우리 지연이와 건모의 만남을 축복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비난과 질책보다는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해달라”고 마무리했다.
김건모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신앙심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장 목사가 찬양 콘서트를 하는 성남 교회에도 자주 방문했으며 지난 5월 부친상을 당했을 때 장 목사는 김건모를 ‘우리 아들’이라며 한참 동안 안아줬다고 한다.
한편 장지연은 미국 버클리 음대에서 실용음악을 공부한 재원으로 이화여자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을 나온 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활동 중이다.
장욱조 목사는 중장년 사이에서 잘 알려진 작곡가다. 조용필의 ‘상처’, 나훈아의 ‘꽃당신’,‘태진아의 ‘떠나가지 마’ 등을 작곡했다. 특히 이미자의 50주년 앨범에 실린 곡 ‘내 삶의 이유 있음은’을 딸 장지연과 공동 작곡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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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들어온 신천지 때문에 가정 파탄”
중국 신천지 민간 피해자 대책위원회 국내 이단 관련 단체와 합동 기자회견
박형택 목사(무대 앞 탁자 맨 오른쪽)가 31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열린 중국 신천지 민간 피해자 기자회견에서 중국 내 한국 이단 피해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중국인 펑레이제씨는 아내 쭈리쥔씨가 한국에서 넘어온 이단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에 빠져 고통당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효심도 깊었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도 앞장섰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 후 고향을 떠나 중국 장쑤성 양저우에 거주한 지 3년이 흐른 2017년 말, 한 신천지 신도가 그의 아내에게 접근하면서 가정은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는 신천지 신도를 따라 기독교 모임이라 소개받은 친교 모임에 몇 차례 참석했다. 이후 회사 야근 등을 핑계로 신천지 모임에 참석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성격도 변했다. 사소한 일로 펑씨와 자주 다퉜고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적도 많았다.
아내의 월급 역시 각종 헌금과 활동비 명목으로 빠져나가 은행 잔액이 바닥 난 적도 있었다. 결국 그의 아내는 지난 5월 사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아내가 구속되면서 펑씨는 그동안 아내가 신천지의 각종 세뇌교육과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펑씨의 이 같은 사연은 31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열린 ‘중국 신천지 민간 피해자 기자회견’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날 기자회견은 중국 신천지 민간 피해자 대책위원회가 주최하고 기독교이단대책협회(박형택 목사)와 한국기독교이단상담연구소가 후원해 열렸다. 다만 펑씨는 기자회견에 참석하지는 않았다.
펑씨는 한국교회에 전하는 피해 경위서를 통해 “신천지에 빠진 아내는 아이까지 버린 채 가족들의 절규를 모른 척하고 있다”면서 “아내를 구해 달라. 파괴된 가정을 회복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또 “중국에 침투한 신천지는 개인과 가정에 너무나 위험하다”며 신천지의 해악성을 고발했다.
박형택 목사는 “현재 신천지 JMS 통일교 등 많은 한국 이단들이 중국에서 활동 중”이라면서 “이들이 중국에서 어떻게 포교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어떤 상황인지를 알리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밝혔다. 이바울(가명) 목사도 “신천지가 중국 현지에서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 가정을 해체하는 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문근 목사(인천기독교총연합회 이단대책위원장)는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의 신천지 활동 현황을 소개했다. 현 목사는 “신천지 본부는 2016년부터 한족뿐 아니라 다롄시 내 조선족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포교 활동을 해왔다”면서 “그 결과 다롄시는 베이징 다음으로 신천지의 큰 거점이 됐다”고 폭로했다.
박 목사 등 한·중 목회자들은 지난 7월 랴오닝성 종교국 위원들과 만나 신천지 등 현지 이단 문제를 놓고 논의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9월 신천지를 사교(邪敎) 및 불법 사회단체로 규정하고 포교금지 조처를 내렸다. 현재 다롄시 신천지교회는 해체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목사는 “다롄시의 이번 결의가 중국 내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국교회가 중국 현지에 이단 상담사를 양육해 이단에 빠진 이들이 회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중국 내 이단 문제에도 적극 대처하고 피해자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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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가장 큰 죄? 설교 지루하게 하는 것
“목사님, 목사님들의 죄 중에서 가장 큰 죄가 뭔지 아십니까?”
“설교를 지루하게 하는 것입니다.”
최근, 어떤 모임에서 설교를 했다. 설교를 마친 뒤 식사 시간으로 이어졌다. 식사 도중 집사님께서 한 질문이었다.
목사의 가장 큰 죄가 설교를 지루하게 한 죄라는 것이다. 이 질문을 듣는 순간, 심히 당황스러웠다. 처음엔 모 대형교회 세습을 다시 언급하는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목사의 가장 큰 죄는 사회나 교계를 떠들썩하게 한 것이 아니었다. 십계명 중 7계명도 아니었다. 설교를 지루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제가 평상시 종종 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집사님으로부터 이런 말이 나올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집사는 한 마디 덧붙였다. “목회자들을 가르치신다니, 최소한 지루한 설교는 하지 않는 설교자들이 되도록 가르쳐 주세요.”
같이 식사하던 권사님도 한 마디 거들었다. “대부분의 교회의 문제는 설교 때문에 생기더라구요.”
결국 이어진 대화의 주제가 ‘일상’에서 ‘설교’로 바뀌었다.
집사님의 질문과 답변에 대해, 설교자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며칠 뒤 한 회원 목사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자신이 로이드 존스 목사와 관련된 책을 읽고 있는데 로이드 존스 목사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설교에 목숨을 걸라.”
로이드 존스 목사는 설교에 목숨을 걸라는 말을 첫 번째로 했다고 한다.
설교는 청중에게 가장 중요하다. 이는 설교를 통해 자신의 영혼과 인생이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루하지 않은 설교, 타개법이 있는가?
‘설교가 지루하지 않아야 한다!’
지루하지 않은 설교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주 어렵다. 그러니 해결책 또한 마땅치 않다.
강해 설교에 관련된 책을 읽을 때마다, 눈에 띄는 말이 있다.
“강해 설교는 지루하지 않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강해설교가 ‘지루하다’는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신학교 때 최고의 설교 방법은 강해 설교라고 배웠다. 친구들도 강해 설교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설교자에게 강해설교는 최고이자 최선의 방법이라고 알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설교 글을 연구하고, 설교 글쓰기와 설교를 가르치는 저는 지루하지 않은 설교의 대안을 수많은 설교 방법에서 찾지 않는다. 글쓰기에서 찾는다. 글쓰기가 되면 지루한 설교는 해결되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설교 글쓰기 가르칠수록 지루한 설교의 답이 글쓰기에 있다고 확신이 더욱 강해진다.
강원국은 《강원국의 글쓰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글은 어휘와 개념으로 쓴다. 개념이 내용물이라면, 어휘는 운반수단이다.”
글을 쓸 때, 어휘와 개념이 중요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글은 어휘와 개념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루하지 않은 설교를 하려면 글을 개념으로 써야 한다. 설교를 개념을 활용해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 지루한 설교가 아니라 들려지는 설교를 할 수 있다.
수사학의 특징 중 하나가 ‘개념’을 활용한 글쓰기다
수사학도 개념으로 글쓰기를 강조한다. KBS 아나운서이자 휴먼커뮤니케이션 1호 박사인 김은성은 그의 책 《인류 최고의 설득술, 프렙》에서 수사학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첫째, 키워드 중심이다.사람들에게 들려줄 말을 압축하고 적절히 반복하는 것이다.
둘째, 스토리텔링이다.스토리텔링은 구어체적 요소와 이야기가 들어 있는 서사적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셋째, 표현력이다.수사학에서는 연기를 이용할 정도로 내용을 어떻게 전달하는지에 중점을 둔다.
넷째, 철저한 준비와 분석 그리고 실전으로 이러지는 선순환 구조이다.
수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개념을 활용해 글을 쓰는 것이다. 네 가지 중 첫째인 ‘키워드 중심이다’가 개념으로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김은성은 목사이자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의 연설도 수사학의 특징에 따른 글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명확한 의제 설정, 키워드 반복, 탁월한 표현력이 돋보인다는 것이다. 즉 키워드를 활용한 글 때문에 청종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설교, 개념을 활용해야 한다
설교는 개념을 활용해서 해야 한다. 필자는 아트설교연구원 모임을 인도 하면서, 회원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설교의 마지막 단계는 개념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왜 설교의 마지막 단계가 개념을 활용한 설교를 해야 하는가? 개념을 활용할 때 설교가 들려지기 때문이다.
20세기 설교는 본문에 근거한 설교인가? 아니면 본문과 상관 없는 설교인가가 관건이었다.
21세기 설교 역시 본문에 근거한 것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본문에 근거로 한 설교가 청중에게 들려지는가? 청중에게 들려지지 않는가가 관건이다.
청중에게 들려지는 설교를 하려면 개념을 활용한 글쓰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개념을 활용한 설교 글쓰기는. 고도의 지식사회에서 설교의 돌파구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문학문화주의 시대의 작가들이 개념을 활용해 글을 쓰기 때문이다.
오늘 수업 중에 한 회원이 세 가지 논증을 했다. 세 개의 이야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한 가지 개념으로 꿰뚫었다면 잘 들려지는 글이었다.
세 개의 글을 한 개의 개념으로 말해주니, 모두가 동의했다. 이와 같이 들려지는 설교를 하려면, 개념을 활용한 설교 글쓰기를 해야 한다.
21세기를 설교하는 설교자는 설교를 단순하고 선명하게 해야 한다. 단순함과 선명함, 그리고 낯설게 하기를 모두 해결해 주려면, 개념을 활용해야 한다. 청중들은 개념을 활용할 때 친근함을 경험한다.
청중들은 세상에 익숙하다. 개념 활용에 익숙하다. 그렇다면 개념을 활용한 설교를 해야 함이 마땅하다.
김도인 목사/아트설교연구원 대표(https://cafe.naver.com/judam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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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칼럼]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
1226년 10월 3일, 기독교 2천 년 역사상 가장 그리스도를 많이 닮았다고 상찬받는 성 프란체스코가 세상을 떠난 날이다. 세속적인 권력까지 손에 쥔 교권주의자들이 주님의 교회를 망가뜨려 놓고 있을 때, 그는 기독교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가난의 영성'을 주창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성자 프란체스코'에서 프란체스코가 아직 세속적인 생활에 몰두하던 어느 날 꿈에 다미아노 성자를 만났던 일화를 들려준다.
성인은 누더기를 걸친 채 맨발로 지팡이에 의지한 채 울고 있었다. 깜짝 놀란 프란체스코가 성인에게 천국에 계신 것 아니냐고, 천국에도 눈물이 있냐고 물었다. 다미아노는 천국에도 눈물이 있다면서 그 눈물은 아직도 지상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라고 말한다.
성인은 이어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위험에 처했다면서 속히 잠에서 깨어나라면서 말한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여.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고 있네. 그리스도께서 위험에 처해 있으니 어서 일어나게. 세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자네의 등으로 떠받치게. 온 교회가 나의 작은 예배당처럼 퇴락하고 무너져 내려 폐허가 되고 있다네. 교회를 일으켜 세우게!"
프란체스코는 그것을 하늘의 부름으로 받아들였고 이후의 그의 삶은 무너진 교회를 바로 세우는 일에 바쳐졌다. 하나님을 위해 철저히 자신을 비웠기에 그는 자유로웠다. 앎에 대한 천박한 호기심과 남보다 크게 보이고 싶은 허영심을 버리자 신적 사랑이 그의 속을 가득 채웠다.
하나님은 상한 갈대 같은 그의 속에 숨결을 불어넣어 하늘의 소리를 발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마음에 접속된 채 바라본 세상은 신비 그 자체였다. 그는 태양을 형님으로 달을 누님으로 부른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심지어 무정물까지도 하나님을 찬미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오늘 새삼 그가 그리워지는 것은 '가난의 영성'을 잃어버린 한국교회의 현실이 암담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교회됨은 규모에 있지 않다.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고, 사용 가능한 재정이 넉넉할 때 사람들은 자기를 과대평가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크기의 신화에 속절없이 굴복한다. 하지만 크기와 영성이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교회가 세상의 추문거리가 된 것은 사람들이 저마다 교회성장 신화에 몰두하면서부터이다. '성장'이 암암리에 지상과제가 되는 순간 예수 정신은 스러지기 십상이다. 본(本)과 말(末)이 뒤집힐 때 그것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리는 것은 교회 밖 사람들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각 교단의 총회가 열리는 가을이 참 괴로운 계절이 되었다. 교회는 욕망을 중심으로 맴도는 세상 사람들에게 초월의 빛을 비추어 마땅히 가야 할 방향을 가리켜야 한다. 따라서 각 교단 최고 의결기관에서는 그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역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가장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 심도 있게 논의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람들 사이를 가르는 장벽을 쌓는 일에 몰두하거나, 자신들이 제정한 헌법을 특정한 교회와 개인의 편의를 위해 왜곡한다. 토라는 재판할 때에 가난한 사람이라 하여 편을 들지도, 힘 있는 사람이라 하여 두둔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친다.
공의와 정의의 토대가 무너지는 순간 공동체 전체가 무너지기 쉽기 때문이다. 성찰적 지성보다 감정이 앞설 때 사람들은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다. 스스로 정화할 능력을 상실할 때 종교는 쇠락기에 접어든다.
얼마 전 신문에서 본 한 장의 사진이 몹시 충격적이었다. 스위스 북동부 알프스 산맥에 속한 해발 2700미터의 피졸산 정상 밑자락에 검은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그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사라지는 빙하를 애도하는 장례 의식을 치르기 위해 모였던 것이다.
기후변화의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온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고백하는 이들이라면 피조물들의 신음소리에 어떻게든 응답해야 한다.
세상이 점점 위험한 곳으로 변하고 있다. 경쟁이 심화되면서 혐오와 적대감의 언어가 늘어나고, 공감의 능력이 줄어들고 있다. 땅 끝에 서 있는 이들이 많다. 교회는 그들의 설 땅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자족하는 신앙을 넘어서야 한다.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 교회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믿는자들에게 성령강림절은 기독교의 그 어떤 절기보다 더욱더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이날은 예수 부활 후 50일째 되는 날로 <사도행전>에서는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기 전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 전하고 있다. 그렇게 50일이 지나 그 약속대로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는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이 오셨다. 이날부터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을 증거하는 성지가 되었다.
이 같은 의미를 가진 성령강림절에 우리는 한 단어를 떠올려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전도’다. 성령이 임해 예수를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된 우리는 그 약속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전해야 할 사명을 가진다. 그러나 요즘 전도하는 사람도 보기 힘들거니와 그 방법도 2019년이나 2009년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을 볼 수 있다.
오렌지카운티 지역에서 20년간 마켓 앞에서 전도지를 나누어 주고 있는 A 권사는 해가 갈수록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이 있다. 오늘도 전도지를 내민 손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기도가 부족한 모양이야”라고 말한다. A 권사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를 알게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더 일찍 나오고 전도지를 나눠주는 지역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푯말을 들면서 전도를 하는 C 집사 역시 10년 전과 바로 1년 전 반응이 다 다르다며 무엇보다 사람들의 외면이 시간이 갈수록 더 크게 다가온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 원인을 외적인 부분보다는 내적인 부족함을 말한다. 지금 들고 있는 배너나 마이크 음량이 조금 더 커진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기도가 부족하고, 들고 있는 푯대가 낮아서 전도가 안 되는 것일까? 물론 그런 생각들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살펴볼 부분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패러다임의 변화다. 기독교계에서는 지난 20년간 교회 커뮤니티의 변화에 주목했다. 그것은 교회수가 늘지만 교인이 준다는 현상이다. 지난해 한 기독언론이 발표한 한국 교단 통계에 따르면 예장통합은 1년 새 교인이 약 6만명이 줄고 목회자는 오히려 590명이 늘었다. 감리교의 경우는 8년 연속 교인이 줄었지만, 교회는 오히려 79개가 늘어났다. 대체로 다른 교단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한때 크리스천이지만 교회를 나가지 않는 성도를 가리켜 ‘안 나가’를 거꾸로 읽는 ‘가나안 성도’라는 시대적 풍자는 지금도 별반 다름이 없다.
이것은 곧 지금 시대에 실천하는 ‘전도’가 과연 효과가 있는 것이냐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교회의 성장은 곧 전도의 전략과 수행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여기서 전략이란 대상, 훈련, 방법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 요소는 항상 시대적 흐름과 패러다임의 변화와 직면하게 된다. 인원과 대대적 행사가 수반되는 대규모 전도 프로그램이 효과를 냈던 시대가 있었다. 70년대를 경험한 성도들이라면 한국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전도 집회를 기억할 것이다. 1973년 5월 31일부터 열린 전도 집회는 마지막 날인 6월 3일 약 110만명의 성도가 결집해 전 세계 크리스천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이 같은 시대의 전도는 어떻게든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게 하는 것에 집중된 경향이 짙었다. 이로 인해 일선에 서는 전도자들에게 교회는 그야말로 전쟁과 같은 각오를 심어주게 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전도폭발’, ‘특공대’, ‘전도 총동원’ 등과 같은 군사용어들이 전도의 현장에서 선호되기 시작했다.
2000년 중반 이후 교계 일부에서 이 같은 표현의 순화를 요청하고 나서기도 했지만 2019년인 지금도 이런 표현을 쓰는 교회들이 적지 않다. 이는 곧 교회의 방향과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그룹에서 여전히 ‘규모의 전도’나 획일적인 프로그램을 통과한 잘 훈련된 병사를 내세워 현장에서 전도 특공대로서 활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또한 “과거에 해보니 그게 먹히더라”라는 생각도 깨지기 힘든 것 같다.
한국교회는 케리그마적 전도에 몰두
김남식 박사(서울신대)는 한국 교회의 전도 패러다임과 관련 영국 신학자 C.H. 다드의 견해를 예로 들며 한국 교회는 대중에서 구원의 소식을 알리는 케리그마적 전도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박사는 한국교회의 전도는 일단 사람을 데려오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로 인해 건물과 부대시설에 더 많이 집중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진단을 내렸다.
전도에 대한 일방적인 밀어붙이기 전략, 전도자들에게 전투의 병사를 요구하는 교회, 그리고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는 모습들은 결국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앞서 지적한 교회는 늘었지만, 교인은 줄고 성도지만 교회에 나오지 않는 ‘가나안’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전도는 앞으로 어떤 방향을 걸어야 할까? 전문가들은 전도 패러다임의 전환을 받아들이고 실천해 나아가길 당부한다. 말이 무척 어려운 것 같지만 지금까지 실천해 온 것들에 변화를 준다면 패러다임의 전환은 생각보다 쉽게 다가올 수 있다.
먼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며 일단 교회로 오게 만드는 전략에 대한 검토와 수정이 필요하다. 이 같은 방법을 고수해온 입장에서는 전도가 안되는 이유를 ‘기도의 부족’, ‘도구의 확장’에서 찾는다. 이 때문에 더 큰 마이크와 시설을 원하고 배너의 높이와 크기도 커진다.
교회 신뢰성 회복이 전략의 으뜸
하지만 일방적인 전도가 먹히지 않는 이유는 이제 전도 대상자가 교회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LA 지역 마켓에서 노방전도를 하는 C 장로는 “요즘 사람들 교회를 너무 잘 아니까 교회를 더 멀리하더라. 전도가 더 어려운 것 같다”고 언급한다. 이 말은 곧 교회의 신뢰성과 연결된다. 이 때문에 전도는 우선 교회의 신뢰성 회복에 중점을 둔 전략으로 바뀌어 나가는 것이 좋다. 한 예로 무조건 교회로 나오라는 전도지 배포보다는 교회 구성원들이 정기적 봉사운동을 펼치며 지역사회에 영향을 주고, 그와 같은 선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불신자들에게 참여의 기회를 주며 복음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한다면 이는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전도에 있어서 70년대 스타일의 전투용어 사용 역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여성을 비롯해 한인 차세대들에게 더욱 교회를 멀리하고 반감을 가지게 만드는 요인일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표현을 강요하며 따르게 강제하는 것은 지금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보다 더 다양한 계층을 수용하고 전도자들에게 더 많은 참여 기회를 주고자 한다면 이제는 바뀔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단지 세상이 변하는 것에 맞춰 교회가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비록 전환의 기반은 될 수 있겠지만 결국 한 영혼을 구원해오는 것은 프로그램이나 트렌드 수용과 같은 외적인 부분이 아닌 결국 복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 인류는 사회 문화 경제 전반에 걸쳐 4차 산업혁명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놓여있다. 교회의 지속과 성장에 영향을 주는 ‘전도’ 역시도 이 같은 시대를 비껴갈 수는 없다. 과거로부터 배울 것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이나 해봤던 방법만을 고수하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교회 수와 반비례로 느는 교인 수의 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2019년 성령강림절을 맞아 초대교회 성도들이 경험한 성령을 지금 어떻게 전도하고 알릴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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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이미지와 패션은 교회 분위기에 큰 영향
단순히 잘 차려입은 의상을 의미하지 않아... 자신에게 맞는 색상과 차림 찾아야
“오늘 설교 어땠어?”, “아니 목사님 넥타이 컬러가 좀 이상해서 계속 시선이 거기에 머물렀어. 안타까워”
주일 오후, 대형 교회가 자리한 동네 주변 카페에 앉아 있으면 심침찮게 들려오는 대화다. ‘안 보는 곳에서 나라님 흉도 본다’는 속담도 있듯, 예배 후 목회자의 흉을 보는 것을 뭐라고 할 것은 아니다. 다만 그날 그 목사님 넥타이 컬러가 그 성도에게 거슬리지 않았다면 더 말씀에 집중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도 해본다. 반면 어떤 목회자는 티셔츠와 면바지를 입고 강대상에 오르지만, 누구도 옷차림 때문에 말씀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평을 듣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은 결국 패션이나 옷차림의 문제가 아니다. 성도들의 시선을 모으고 말씀을 보다 더 잘 전하기 위해 목회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마케팅 전문가들은 인간이 가진 다섯 가지 감각 중에서 ‘시각’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컬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에 드는 것을 결정하게 만드는 주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것이 가진 영향력은 때로 심리 치료에 이용되는 등 컬러가 우리 삶 속에 미치는 범위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도 컬러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활기차거나 차분한 느낌을 주기 위해 빈 공간에 색을 더한다든가 교회 외부에 시선을 끌기 위한 고유의 색을 입힐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 내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포인트는 바로 목회자의 컬러다.
천주교 신부나 불교의 수행자와 같은 성직자들은 항상 같은 옷을 입곤 한다. 하지만 개신교 목회자의 경우는 특정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복장 선택에 있어서 자유로움이 있다. 이 때문에 목회자들의 옷차림은 항상 교회 안에서 큰 관심을 끄는 주제가 된다. 즉 목회자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컬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날 교회의 예배가 달라지고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지 옷을 잘 입고 못 입고의 문제가 아니다. 일반인들에게도 그렇지만 특히 목회자의 경우는 자신이 고른 패션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생각해야 한다.
남가주에서 이미지 컨설턴트 전문 그룹 <마이이미지코드>를 운영하는 써니 최 대표는 목회자들에게 이미지 컨설팅을 당부한다. 최 집사는 “이젠 옷을 잘 입는다는 사람들의 평판에서 끝나지 않고 옷을 어떻게 입는가로 전달되는 이미지가 자신의 능력 중 하나로 인정받는 시대가 됐다. 이렇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는 목회자의 이미지는 잘 관리되고 있는가?”라며 의문을 던진다.
실제 많은 목회자가 주일 설교나 교회 행사를 앞두고 패션과 컬러 선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거운 설교 주제에 너무 밝은 옷을 입는 것은 어울리지 않으며 너무 밝은 주제의 설교를 할 때 무거운 톤도 그리 반갑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목회자 스스로 잘 받는 컬러와 패션을 알고 있느냐의 문제다.
“하나님이 최초의 이미지 컨설턴트라고 생각한다. 창세기 말씀에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니…, 라는 구절이 있다. 원문 해석을 보면 ‘image’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이미지는 믿는자들에게 더욱 중요하다. 혹시나 목회자들이 자신의 피부톤과 맞지 않는 컬러나 넥타이를 골라 이미지를 어긋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믿는자들에게 자신의 이미지 코드를 찾는 훈련을 당부한다. 이것은 패션이나 컬러 선택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이미지코드를 찾기 위해선 내부 이미지(성향 기질), 외부 이미지(피부, 체형, 얼굴) 그리고 영적 이미지에 대한 부분을 살펴봐야 한다. 불신자들의 경우는 대체로 외부 이미지에 집착하고 그것을 따르려고 하고 믿는자들은 영적 이미지에 더 큰 관심을 둔다. 하지만 이들은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영역이 없다. 따라서 이미지 코드를 찾기 위해서는 세 가지 영역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야 한다.
최근 사회 전반에서 드레스 코드 찾기와 같은 강의가 심심찮게 열린다. 그만큼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교회에서도 목회자 및 안내자들을 위한 드레스 코드에 대한 세미나가 늘고 있다고 한다. 목회자의 이미지와 패션이 바뀌면 교회 분위기도 바뀐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례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2000년 초반부터 미국 교회들은 정장을 벗고 캐쥬얼을 교회로 들여왔다. 할렘 지역 성마가연합교회는 더운 여름 정장 차림의 교우가 예배를 드리다 숨진 것을 계기로 교회 내 캐쥬얼을 허용했다.
한국 교회도 정장을 벗고 가벼운 차림으로 강대상에 서는 목회자들이 늘고 있다. 이는 교인들에게 딱딱하거나 보수적이기보다 다가서기 쉬운 성직자의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이미지가 외적인 부분에만 치우쳐서는 안된다. 정장을 입어도 부드러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고 가벼운 옷차림 안에서도 무게를 느끼고 싶다면 방법은 어렵지 않다. 나와 어울리는 컬러, 내 얼굴과 맞는 패션, 드레스 코드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하나님이 주신 나의 은사와 같은 영적 이미지를 찾자.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라면 더구나 이미지 코드 찾기에 큰 관심을 두길 당부드린다.
이미지 컨설팅 문의: 마이이미지코드(http://blog.naver.com/myimagec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