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신 수요예배 드리는 ‘평균 연령 78세’ 교회 / 베이비 박스 이종락 목사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2019-07-20 08:26:38 read : 3234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주일 대신 수요예배 드리는 ‘평균 연령 78세’ 교회
서울 ‘백사마을’ 연탄교회
서울 연탄교회 성도들이 10일 노원구 백사마을 예배당에서 연탄은행 정지은 간사의 인도로 찬송을 부르며 박수를 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주말엔 폐지 줍느라 바쁜 노인들을 위해 주일 대신 수요일에 예배를 드린다. 헌금은 2000원 이상 하지 말라고 말씀드린다. 평균 연령 78세에 장로 권사 집사 등 직분이 없는 교회.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하며 국수와 떡을 나누는 교회. 사회복지법인 밥상공동체·연탄은행(대표 허기복 목사)이 함께하는 연탄교회 이야기다.
10일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104번지 속칭 백사마을의 연탄교회를 찾았다. 서울에 마지막 남은 에너지 빈곤층 밀집지역 한복판에 있는 곳이다. 오전 10시50분 출석을 부르는 것으로 예배가 시작됐다. 초등학교 교실처럼 책걸상이 놓인 예배당, 연탄난로 모양의 강대상, 2명씩 짝지어 앉은 어르신 30여명이 눈에 띄었다. 주보엔 “하나를 받으면 열을 환원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가난해도 당당하게 성실히 살아갈 것”이라고 소개돼 있다.
성도들은 ‘행복가’를 불렀다. “우리들의 인생은 예순 살부터/ 가난과 역경도 걱정 없어요/ 예순에 우리들을 모시러 오면/ 할 일이 많다고 전해 주세요.” 노래는 5절 “백세에 우리들을 모시러 오면/ 천국으로 간다고 전해 주세요”가 나옴으로써 끝났다.
성경 봉독은 시편 90편이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10절)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란 말씀이 유독 크게 들렸다.
기도는 김영수(82)씨가 했다. 이웃한 상계3동에 사는데 연탄은행에서 제공하는 연탄으로 겨울을 난다.
그는 “더운 여름에 건강한 몸으로 교회에 찾아와 예배드리니 감사합니다”라며 “장마가 시작되는데 비가 새는 가정들을 돌봐주시고 지켜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성도들은 “아멘”과 함께 손뼉을 쳤다. 예배 순서마다 박수로 마무리하는 게 특징이었다.
주기도문을 끝으로 예배당 안쪽 주방에서 삶은 국수가 나왔다. 주님의 절대적 사랑을 뜻하는 ‘아가페 식사’였다. 특별히 이날은 이선근(70)씨가 떡을 공궤(供饋)했다. 뇌졸중을 앓는 이씨는 “백사마을을 곧 떠나 이사한다”며 “떡이라도 돌려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가페 식사를 마치고 예배당을 나서는 성도들. 강민석 선임기자
연탄교회는 2015년 7월 설립됐다. 2014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연탄은행에 수여한 상금에 후원자들의 정성을 보태 백사마을 중앙의 빈집을 교회로 바꾸었다.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 예배와 아가페 식사,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 성경공부와 함께 간식을 나눈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있는 예배당은 더운 여름 주민들의 폭염 대피소가 된다. 지난 4년간 총 167회의 수요예배가 열렸다.
헌금함 없는 예배당이고 2000원 이상 내지 말라고 해도 성도들은 십시일반 나누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모인 헌금으로 지난해에는 뇌수막염을 앓고 입원한 백사마을의 한 중학생 병원비 100만원을 감당했다. 경북 포항 홍해읍에 세우는 포항 연탄교회에도 건축헌금을 보냈다.
허기복 목사는 “주말엔 파지를 수거하러 가는 어르신들이 많아 수요일을 예배일로 정했다”면서 “지역교회와 충돌을 피하려는 생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작은 교회이지만 규모를 떠나 새로운 모습의 교회로서 어려운 이웃들이 현실적으로 접근 가능한 교회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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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교회의 특별한 십일조..탈북 청소년 위해 10억 사용하기로
지난해 새 예배당 봉헌한 수서교회..건축헌금 10분의 1 한국교회 위해 사용하기로
탈북청소년 대안교육기관 '여명학교'에 10억원 지원하기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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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새로 짓고 건축비의 10분의 1을 한국교회에 내놓은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건축 십일조는 통일선교를 바라보며 탈북청소년들을 교육하는 한 대안학교에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천수연 기잡니다.
서울 수서교회가 탈북청소년 대안교육기관인 여명학교에 1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수서교회는 지난 2월까지 석 달 동안 ‘한국교회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해 여명학교가 제출한 학교 건축 사업을 최종 선정했습니다.
공모전 기금은 수서교회 건축헌금의 십일좁니다.
지난 해 헌당예배를 드린 수서교회는 건축헌금 100억 원의 10분의 1인 10억 원을 한국교회를 위해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예배당 건축의 모든 과정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교회의 신앙고백 차원에섭니다.
[황명환 목사 / 수서교회]
"이 교회를 지으면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저희들은 계속 고백을 했거든요. 우리가 받은 이 은혜를 어떻게 감사를 드릴까 하다가 우리의 마음을 제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십일조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한 거죠."
그렇게 진행된 아이디어 공모전에는 133건의 교회와 기관 사업 등이 접수됐습니다.
수서교회 측은 여명학교를 제외한 132건의 아이디어는 한국교회가 필요로 하는 소망의 내용들이라면서, 또 다른 교회, 교인들과 연결될 수 있도록 정리해 발표할 계획입니다.
[황명환 목사 / 수서교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짜고 고민하고 기도했을 거 아니예요. 그렇게 수면위에 올라와가지고 좋은 안이 나오면 연결할 수 있는 길이 많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좋은 일이라면 내가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도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 수서교회의 지원을 받게 된 여명학교는 2004년부터 탈북청소년들을 교육해온 대안교육기관으로, 최근 학교를 새로 지어 이전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학교가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 건물을 오는 2021년 2월까지 비워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지원헌금은 학교강당 마련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이흥훈 교장 / 여명학교]
"학교 교사를 4층으로 지을 예정인데 그중에 4층을 ‘홀리 씨드 홀’이라는 이름으로 해서
주일에는 교회로 사용하고 주중에는 학교 목적으로 사용해서.."
현재 여명학교는 학교 신축에 총 100억 원이 들 것으로 보고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학교 측은 교회의 십일조를 받게 된 만큼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교회와 함께 통일선교에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습니다. CBS 뉴스 천수연입니다.
▲그동안의 교회사역과 교회 창립 35주년에 대해서 설명하는 좋은마을교회 신원규 목사 ⓒ미주 기독일보
올해로 창립 35주년을 맞는 좋은마을교회(구 삼성장로교회) 신원규 목사를 만났다. 그는 교회 이름처럼 '좋은 사람들과 좋은 마음을 가지고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교회 놀이터에서 밝게 뛰노는 교회 아이들의 모습 때문인지 그의 모습이 더욱 평안해 보였다.
미국 남가주에서 20년 이상 살아온 사람들은 모두 알만큼 삼성장로교회는 유명한 교회였다. 1984년, 당시 29세였던 신원규 목사와 몇 가정이 함께 시작한 교회는 1990년대에 들어서자 무섭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남가주 이민교회에서 최초로 시작한 다니엘 특별새벽기도회는 실로 대단했다. 멀리 샌디에고에서 찾아올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매주 새신자들이 교회로 찾아왔고 한 주에 30~40명씩 몰려오기도 했다. 폭발적으로 교인 수를 늘려가던 삼성장로교회는 1천500명까지 출석하는 남가주 초대형 교회가 됐다. 1990년대 한인교회 가운데 성도수가 1천 명 이상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LA 대형교회들도 500명에서 800여명 수준이었기에 삼성장로교회는 더욱 유명세를 타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교회는 탄탄대로를 걷는 것처럼 보였다.
교회가 사람들로 북적이자 신원규 목사는 1999년 라하브라 지역에 있는 병원 건물을 교회당으로 매입했다. 650만 달러에 구입한 병원 건물은 11개 동이 있을 만큼 규모가 크고, 교통의 요충지에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가격이 뛰었고 10개월 만에 천만 달러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그리고는 2004년 기도원 건물을 또 사들였다.
신원규 목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평가했고, 나의 욕심을 하나님의 꿈과 열정으로 포장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은행에 매달 내야하는 15만 달러에 달하는 이자는 교회 재정의 한계를 부추겼고,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터지자 교회 건물은 하루아침에 은행으로 고스란히 넘겨줘야 했다. 1,500명이었던 교인들도 결국 150명까지 줄었다.
눈부신 교회 성장만큼이나 삼성장로교회의 추락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그러나 신원규 목사는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한다. 고통은 컸지만 그 일을 통해 참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인이민교회 유형적 교회 아닌
선교에 힘쓰는 본질적 교회 돼야
2011년 삼성장로교회는 교회를 잃고, 다른 교회를 얻었다. 외형적 가치를 추구하며 세상에 드러나는 교회를 잃었다면, 하나님을 섬기고 선교에 힘쓰는 본질적 교회를 얻은 것이다.
삼성장로교회는 2015년 교회 이름을 좋은마을교회로 바꾸고 선교적 교회 모델을 따라 선교에 초점을 맞췄다.
교회는 예배당을 잃은 후 8년 전 고아사역을 시작했다.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인도, 케냐, 코트디부아르 등지에서 먹지 못하는 먹지 못하고 방치된 아이들 326명의 아이들을 먹이고 있다.
또 7년 전부터는 제 3세계 목회자 훈련 프로그램으로 PM(preaching ministry)사역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으며, 교회가 오래 전부터 펼치던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을 위한 영성훈련 사역 GOG(Garden of Grace)도 순항 중에 있다.
신원규 목사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낮추시고 겸손하게 다시 교회의 본질을 추구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것은 특별한 은혜였다"며 "이번 창립 기념일에는 선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베푸신 은혜와 감사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좋은마을교회는 오는 9월 7일(토)부터 8일(주일)까지 창립 35주년을 맞아 MKW 고아사역 8년차 이사회 대회, PM 7년차 사역 감사예배, GOG 영성사역 28주년 감사예배를 가질 예정이다. 아래는 신 목사와의 일문일답
-힘든 시간들을 겪은 후 2011년 선교적 교회를 선포하며 새롭게 시작할 것을 다짐했다. 이후 교회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
"우리 교회가 교회당을 잃고 떠나온 지 10년 가까이 됐다. 교회를 잃고 밖으로 나와보니 정말 예수님이,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별히 누구에게도 돌봄을 받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고아들이 먼저 보였다. 그래서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인도, 케냐와 서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고아 326명을 돕고 있다.
특별히 캄보디아는 정부차원에서 고아들을 수치라고 생각해서 고아원을 폐쇄하기 때문에 고아들이 방치가 되고, 다른 가정에 위탁되어도 학대를 받기 쉽다. 심지어 장기 매매로 팔려가는 경우도 있다. '마이키즈월드'사역이라고 하는데 우리교회에서 한 아이에게 30-35불을 후원하면 현지 선교사가 식품을 사서 가정에 가져다 준다. 후원 아동으로 인해 한 가정이 음식을 먹게 된다.
또 PM(preaching ministry)라고 현지 목회자 훈련 프로그램을 열심히 해왔다. 일반적으로 목사 혼자 가서 현지 목회자들을 훈련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교회 집사 장로들이 함께 가서 평신도의 관점에서 교회 안내부터 행정, 목회를 전반적으로 돕는다. 일회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매 회기 100명을 대상으로 4학기 과정을 교육하고 있다.
PM은 미얀마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오래 전 미국 북침례교회에서 양곤에 집중적으로 선교를 했던 적이 있다. 군부독재시절 교회 소유였던 병원과 학교가 몰수됐었는데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지하교회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고 교회가 자리를 잡고 있다. 침례교회가 대다수라 장로교 목회자가 교육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1년 가량의 오랜 인터뷰를 통과하면서부터 우리 교회가 양곤지역에서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있다.
우리교회가 1992년도에 1기를 시작으로 27년 동안 진행해 온 영성훈련 GOG(Garden of Grace)도 선교지에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다. 중동의 선교사들을 비롯해 남미,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전세계에서 진행돼 왔다. 한국에서는 1997년도에 농어촌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동안 우리 교회 GOG를 경험한 사람들이 1200명일 정도로 많은 목회자들을 섬겨왔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모든 교회의 초점을 선교에 맞추고 구제와 복음전파, 목회자 양성 및 훈련에 맞춰왔다. 교회 건물 유지와 관리에 쏟아야 하는 에너지가 선교로 옮겨졌고 나부터도 개척 초창기처럼 성도들을 더욱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품을 수 있게 됐다. "
-교인들의 반응은 어떤가?
"예전에는 교회가 커야 하나님의 일을 크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작은 교회지만 하나님의 일을 예전보다 더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교회 본질로 돌아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예배할 수 있어 좋아한다. 선교에 집중하면서 부터는 이런저런 아이디어도 내면서 기쁨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감사해 한다. "
-교회 건축에는 여전히 회의적인가?
"어떤 통계를 보니까 미국 전역에 있는 교회 예배당 가운데 75%가 공간활용을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 교회가 외형을 중시하는 가식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성도가 모이면 교회부터 지으려는 생각이 아직도 강하다. 또 예배를 많이 만들면 좋은 줄 안다. 100명 모이는 교회가 4부 예배를 드리는 것도 봤는데, 본질이 중요하다.
교회는 양떼를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 건물을 짓는 유혹에 현혹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회 건물을 짖고 교인들이 다 떠나고 없으면 그 교회 건물은 어떻게 처리하게 되나? 중세 사회와 같은 타락이 만연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우리 교회가 이런 것에서 자유롭게 되고, 상한 부분이 있다면 회복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다. 교회가 반드시 필요하다면 지어져야 하겠지만 그것에만 초점을 맞춰져서는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리기 쉽다."
-한인 이민자들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한인 교회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인 이민교회에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 한인 이민 교회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보진 않는다. 유대인들이 세계적으로 흩어져있는 것처럼, 디아스포라 한인들도 세계적으로 흩어져있다. 하나님께서 전세계로 퍼져있는 한국 민족을 사용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한인 이민교회가 개선할 부분은 목회자들의 권위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들 가운데 목회자의 권위를 과도하게 세우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한국적인 전통으로 자신의 의견을 성도들에게 밀어붙이려고 하지만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합리주의 문화에서 성장했다. 권위로 교회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
-한인 교회에 많은 사역이 있다. 오늘날 한인 이민교회가 집중해야 하는 사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민 교회가 1980년도 후반에는 선교의 바람이 불었다. 교회가 경쟁적으로 선교하던 시절이었다. 1990년도에는 교육으로 관심이 옮겨졌다. 교회가 교육관을 세우는데 사활을 걸었다. 그러다가 지금은 혼란 상태가 왔다. 교회가 물론 선교도 열심히 해야 하고, 교육에도 힘써야 한다. 그런데 모든 것의 근본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그 근본이란 '목회자의 마음 속에 소외된 사람들이 모두 담겨지는 것'이다. 교회가 커지면 저녁에 성도들에게 전화 오는 것이 귀찮아진다. 이민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은 '영혼을 가슴에 담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숫자가 목회가 아니다. 성도의 머릿수가 돈으로 계산되면 아무런 소망이 없다. 목회자의 생각과 사명과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목회자의 마음속에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영혼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이 뜨거워져야 하다. 오늘날 교회가 집중해야 하는 일은 무엇보다 영혼에 대한 사랑을 충만하게 회복하는 일이다. "
-후배 목회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미주한인교계에 대형교회 하나가 나타나면 수많은 중소형교회는 문을 닫게 된다. 우리교회도 한 주에 3~40명씩 몰려올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중소형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님들의 아픔을 몰랐다. 그러다 교세가 기울고 성도들이 나가는데 그 아픔을 알고 가슴으로 느끼게 되더라.
한창 교만하던 시절 교회가 부흥하니 100명 이하 교회 목사님들하고는 교제도 하지 않았다. 목사라고 했지만 마음의 철이 늦게 들었고, 주의 나라 갈 날이 가까워지니 우리 주님의 마음 '겸손'을 알게 되는 것 같더라.
나에게 30대가 주어진다면 진정한 주님의 목회를 다시 해보고 싶다. 눈에 보이는 유형적인 것에 목회의 사활을 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같이 걷고 싶다.
많은 교회 목사님들이 목회를 하면서 삶의 터전에서 일을 하신다. 목사님뿐만 아니라 사모님도 일을 하신다. 우버 운전도 많이 하시는데 목회자가 삶의 터전에서 크리스천으로 사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유형적인 것이 우리의 일이 아니라, 우리 삶 그 자체가 목회다.
우리 삶이 목회가 될 때, 더욱 성도들의 마음의 깊은 곳을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목회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좋은마을교회는 계속 선교적교회를 지향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치과의사가 되어 의료선교를 펼치고 싶다. '지금 65세로 의사가 되면 70세인데 어떻게 선교를 하겠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는데,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명 다하는 날까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에 동참하고 싶다."
-왜 치과의사인가?
"캄보디아를 방문하는 중에 한 아이의 엄마가 퉁퉁 부은 얼굴을 붙잡고 아이를 업은 채로 신음하고 있더라. 너무 안타까워서 살펴보니까 이가 다 상해서 치료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치과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연신 민간요법으로 나무 잎사귀만 씹고 있었다. 치아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 그날 이후 '치과 의사가 되겠다'고 했더니 주위에서 모두 놀라더라. 그렇지만 슈바이처와 같이 사람들을 돕고 아픈 곳을 싸매며 남은 생애를 주님께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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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박스 이종락 목사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베이비박스 없는 나라’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
▲ 베이비박스에 대한 실화를 다룬 영화 ‘드롭박스’의 한 장면. ⓒ필름포럼
지난 한 주간, 기독교계 인물로는 몇 안 되게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아왔던 ‘베이비 박스’ 이종락 목사의 기초생활비 부정수급 문제로 시끌했다. 4년간 2억 원의 기초생활비를 부정 수급한 혐의로 서울 금천구로부터 피소된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 목사는 2014년 7월부터 교회에서 매달 사례비를 받으면서도 소득신고를 하지 않았고 올해 4월까지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유지하면서 정부로부터 2억 900만원의 기초 수급비를 받았다.
이에 서울 금천구청은 지난 5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위반 혐의로 이 목사 부부를 고발했다. 이 중 6천800만원은 환수 조처됐다.
이 목사는 지난 3일 ‘공식 사죄의 글’을 통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진심으로 머리 숙여 죄송하다. 법과 질서를 알지 못했다”면서 “부정수급에 대한 법적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라며 사죄했다. 하지만 후원금을 사적으로 썼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아래 사죄문 전문)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이종락 목사를 비난하며 돌을 던지고 있다. 이 목사가 사죄문에서 밝힌 것처럼, 고의였던 무지에 의한 것이었던 부정 수급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고 법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그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는 본질의 문제를 직시해, 이 목사가 평소에 부르짖었던 것처럼 ‘베이비 박스가 없는 나라’를 만드는 일에 본격 나서야 할 것이다.
이번 일이 발생하기 전, 이 목사는 비밀출산제를 도입하고 정부가 위기 산모를 위한 상담소와 긴급영아보호소 등을 설치하는 내용의 ‘임산부 지원 확대와 비밀출산에 관한 특별법’안 발의를 주도했다. 이 법안은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상태다.
이 목사가 ‘비밀출산제’를 제안한 것은, 아이를 분만한 병원에서 모든 아동의 출생 사실을 지방자치단체에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는 현행 ‘출생통보제’의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출생통보제’ 도입으로,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은 산모가 병원 이용을 꺼려 출산 위험이 커지짐은 물론 태어난 아이를 베이비박스로 보내거나 유기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비밀출산제’를 함께 도입하면 익명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산모가 양육을 포기하면 바로 지자체 등이 개입할 수 있어 ‘출생통보제’에 따른 폐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비밀출산제’를 허용하면 오히려 정부를 믿고 아이 양육을 쉽게 포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상당수 선진국에선 ‘출생통보제’와 ‘비밀출산제’를 함께 시행하고 있다. 병행 시행 이후 베이비박스가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한편, 미국에서는 출산 직후에 아이의 양육을 포기하고 병원, 교회 등의 기관에 안전하게 맡기면 유기의 책임을 묻지 않는 ‘세이프 헤이븐 법’이 모든 주에서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종락 목사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가 ‘베이비 박스가 없는 나라’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서둘러 말씀드리지 못하고 이제야 몇 자 적습니다. 며칠 동안 저와 우리 공동체에 대한 언론 기사가 여러 군데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때, 고백하면 경황이 없었고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님께 엎드리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사회가 정의하고 있는 법과 질서에 무지몽매하여 하나하나 챙기지 못하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실수나 책임이 있다면 경찰 조사를 통해 밝혀지리라 믿습니다.
다만, 18명의 장애인의 아버지요 위기 미혼모부와 아기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명을 가지고 목숨을 걸고 지금까지 왔으나 저의 사회적 책임으로 인해 상처를 입을 아이들과 아직도 도움을 바라고 있을 미혼모부들에게 혹여 영향을 미치고 있진 않을까? 심히 걱정되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려웠던 과거로부터 제가 스스로 감당해야 했던 저의 아이들을 앞세워 법적 판단이 내려진 부정 수급에 대한 법적 책임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지은 죄는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이미 공적 기관에서 이에 대한 전말을 밝혔습니다. 경찰 조사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부르면 가서 과정을 설명하고 결과에 대해 겸허하게 책임지겠습니다. 기간, 액수, 대상, 참작할 만한 사연 등을 여기에 설명드리는 것이 다소 구차합니다.
이 일로 일선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금천구청 공무원 분들과 금천경찰서 분들에게 무거운 짐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그리고 직접 오셔서 걱정해 주셨던 공무원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후원금을 부정하게 사용한 의혹이 있다는 기사를 여러 건 보았습니다. 이를 제보했다는 전직 직원이었다는 분의 말을 빌렸더군요. 가까이서 저를 오래 지켜보았고 실제 우리 공동체에서 실무 책임자로 사역하셨던 분입니다. '부정하게 사용했다'라는 단정을 하지 않고 '의혹이 있다'로 제보를 하신 모양입니다.
제가 이 부분은 감히 단정 지어 대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후원금을 부정하게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사용하지 않았는지 보다 우리 공동체가 후원금을 어떻게 사용해 왔는 지를 따져보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와중에 저의 실수나 착오가 있었다면 혹은 함께 사역하는 분들의 실수나 착오가 있었다면 그리고 그게 부정한 것이었다면 응당 책임을 져야 하고 그 몫 또한 저의 것이라는 걸 말씀드립니다.
이런 일말의 가능성이 존재함에도 제가 부정하게 사용하지 않았다고 단정 지어 말씀을 드릴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어린 생명들과 미혼모부를 돕고 있는 제가 그들을 위해 쓰임 받기를 원하는 후원금을 부정하게 사용할 생각을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후원금 사용에 대한 의혹에 앞서 함께 어려운 사역을 능히 해 왔던 분이 이처럼 저를 정죄하기 위해 나선 것 자체가 제겐 무척 가슴 아픈 일입니다. 아름다운 관계를 항상 소원하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또한 관계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인간으로서 억울한 마음과 분노를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그 누구도 정죄하지 않겠습니다. 목사인 저도 결국은 참 어리석고 죄 많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며칠 동안 제 안에 가장 큰 두려움은 제가 받을 죗값의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축복받아야 할 생명을 고통스럽게 끌어안고 어쩌지 못해 홀로 숨어 울고 있는 가련한 미혼모부와 어린 생명들의 위태로운 삶입니다.
기사들과 의혹들로 인해 베이비 박스로 오는 생명들의 발걸음이 이 일로 인하여 주저하게 되고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여 아기들이 생명을 잃을까 심히 두렵습니다.
이러한 죽음이 생긴다면 이것은 저의 책임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기에 지금도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을 지켜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십여 년을 보아 왔던 그들의 삶이 저에게는 가슴이 미어지고 아플 정도로 지금도 안타깝고 지금도 위태롭고, 지금도 두렵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두려움은 오직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벼락처럼 내려주신 미혼모부와 어린 생명들을 살리기 위한 사역은 제가 평생 감당 못 할 수도 있지만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저는 이 사명을 목숨을 걸고 감당해야 됩니다.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살리고 지키는 일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만약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이들을 도와준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건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과 관련해 다만 저는, 제가 지은 죄는 책임지고 능히 감당하겠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는 저의 마땅한 소임입니다.
다시는 이러한 심려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9년 7월 3일 이종락 목사 올림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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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없는 교회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동식물들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면 좋아한다. 요즘 반려견을 키우는 것이 유행인데, 개는 자기를 예뻐하는 주인을 반기고 따른다.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고 한다. 화초도 사랑을 받으면 더 잘 자란다고 하고, 농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관심을 가져주기 바라고, 사랑받고 싶어 하고, 칭찬 받기 원하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기본적 욕구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는 보통 아이들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고 말하면서, 아이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라고 한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능력을 인정해주면 더욱 열심히 일하고 칭찬을 들으면 좋아한다. 그런데 목사들 가운데에는 사람에게 칭찬을 들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으려고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기독교인에게 하나님의 칭찬이 중요하지만, 사람의 칭찬을 무시해도 좋은가?
인간을 보지 못하는 목사
어느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교회의 야외 농구장이 설치된 지 10년이 넘어서 탄성포장재로 입혀진 바닥이 들뜨기 시작했다. 그뿐 아니라 탄성포장재에 중금속 성분이 들어 있어서 몸에 해롭기 때문에 학교의 탄성포장재 트랙을 없앤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그래서 교회학교 부장이 농구장 바닥 공사를 다시 해달라고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교회에서는 계속 미루기만 했다. 토목공사를 하는 김 집사가 그 말을 듣고 들뜬 바닥을 걷어내고 우레탄으로 말끔하게 바꾸어 놓았다.
그러자 김 집사의 헌신에 감동한 부장이 그동안 주일학교의 숙원 사업이었던 농구장 리모델링을 김 집사가 자비를 들여서 해주었다고 담임목사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광고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광고시간에 목사는 농구장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장은 목사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김 집사가 칭찬을 듣기 위해서 이 일을 한 것은 아니겠지만, 교회 측에서는 이런 헌신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이 응당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부장이 예배 후에 목사를 찾아가서 “목사님 농구장에 관한 광고를 하지 않던데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목사는 “내가 광고를 하지 않고 칭찬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칭찬이 중요하지 사람의 칭찬이 무어 그리 중요한가요!”라고 대답했단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그 부장에게 “아마 목사님이 깜빡 잊은 것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잊지 않았다면 광고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잊었으면 잊었다고 말하면서 오후 예배 때나 다음 주일에 광고하겠다고 대답하면 되지, 사람에게 칭찬 받기를 원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 아닌가요?”라고 응대해 왔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그 목사는 동식물까지도 관심을 가져주고 사랑해주고 칭찬해주면 좋아한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목사는 아이들을 칭찬하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처럼, 교인들도 그들의 수고를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면 더욱 열심을 내서 봉사한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 경우 칭찬해주면 개인에게도 좋고 교회 부흥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말이다. 왜 그는 그런 아주 기본적인 것을 모르고 있을까?
신앙이란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피 흘리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사람의 칭찬을 원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신앙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몇 십 년 씩 교회를 다닌 집사나 권사나 장로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리고 사람의 칭찬보다는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쯤 모르는 사람도 없다.
말 한 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가 어떤 힘든 일을 했을 때 그 수고를 인정해주는 말 한 마디가 우리에게 새 힘을 준다. 우리는 그런 것을 흔히 가정이나 직장에서 경험하는데, 교회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교인들을 칭찬해주지 않는 목사는 교인들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목사는 하나님이면 혹은 예수님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의 눈에는 하나님만 보이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하늘만 보이고 세상은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를 암송하면서도, 하나님이 세상을, 즉 사람을 사랑하셨다는 데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 그런 목사는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목사는 설교 시간에 믿음만을 강조하고 행위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율법이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개혁자들의 주장이 구원의 문제에 관한 것이지 신앙인의 삶 전반에 걸쳐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사람을 전적으로 타락하고 전혀 자유의지도 없는 무가치한 존재라고 본다. 그리고 우리의 능력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지만, 기도하면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해주신다고 믿는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해주신다고 배운 우리에게 그런 믿음은 아주 모범적이고 훌륭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고 행동을 외면하는 사람을 본회퍼는 ‘값싼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성경에는 노력하라고 가르치는 구절이 많다. 대표적으로 야고보서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2:26)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는 예수님의 말씀은 결단과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가? 자기를 본받으라고 말하면서 자기는 푯대를 향하여 달음질한다고 말한 바울은 노력하지 않은 사람인가? “우리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는 바울의 말은 분명히 행위를 강조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믿음과 행위 어느 한편만을 강조하지 않고 양편 모두를 중시하고 있다. 그런데 개혁자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들은 그 두 가지 중에서 믿음만을 중시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원론에 근거한 플라톤 철학의 영향으로 인해서 서양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분법적으로(either/or) 사고했다. 하나님과 인간, 하늘과 땅, 영혼과 육체, 남자와 여자 같이 대립되는 것들 가운데서 앞선 것들을 중시하면서 뒤의 것들은 무가치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인간, 땅, 육체, 여자도 중요하다고 보는 양면수용(both/and)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양면수용적 사고는 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신학자 박봉랑은 1960년대의 신학적 기류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면서, 맨 먼저 ‘이 세상성’을 언급했다. 이것은 특히 본회퍼의 신학에서 두드러진다. 그러나 해방신학이나 생태신학 같은 상황신학에서도 세상성이 강조된다. 그 결과 현대신학에서는 하늘뿐 아니라 이 세상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소위 ‘아래로부터의 신학’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신학적 관점의 변화에 주목하면, 우리는 바울과 예수님의 말씀에 나타나는 양면수용적 태도를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바울의 글에서 플라톤의 이원론적 영향에만 주목하지만, 죄인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인정받는다는 바울의 주장은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벗어난다. 그리고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는 예수님의 말씀은 의인만을 사랑하지 않고 죄인도 사랑하신다는 양면수용의 선포였다.
예수님의 양면수용적 태도는 이 외에도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예수님은 남성중심 사회에서 인간적 대우를 받지 못하는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시고 그들의 권익을 위해서 힘쓰셨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사랑에만 치중해서 인간인 부모에게 드릴 것까지 하나님께 드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유대인들의 이분법적 사고를 비판하셨다. 한 서기관이 하나님 사랑을 염두에 두고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뿐 아니라 인간 사랑도 중요하다고 대답하셨다.
이러한 양면수용적 태도는 놀랍게도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에게 육신을 입혀서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도, 육신도, 세상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셨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그리고 하늘 보좌를 버리고 세상에 오셔서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이분법적 사고의 해체를 체현하신 분이다.
예수님의 제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양면수용의 시대에 와서도 예수님이 이미 2천 년 전에 이분법적 사고를 해체하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아직도 이분법적 사고의 틀 안에서 사람의 칭찬은 대수롭지 않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칭찬을 먹고 사는 사람들
우리는 보통 축하할 만한 일은 여럿이 축하해주면 기쁨이 배가된다고 말한다. 20여 년 전의 일이다. 이제는 고인이 된 선배 한 분이 귀한 상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같이 저녁을 하자고 청한 일이 있었다. 둘이서 식사를 하면서 그동안 열심히 좋은 논문들을 쓰고 저서를 내더니 이런 좋은 상을 받게 되어서 축하한다고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했다.
그분이 술을 몇 잔 드신 후에 축하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면서 옛날 일을 털어놓았다. “수년 전에도 내게 좋은 일이 있었는데, 아무도 축하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장남에게 이런 좋은 일이 있어서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더군.”
사람들은 어리든 나이가 들었든, 신앙인이든 아니든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하고, 축하받기를 바라고, 칭찬을 좋아한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2:52)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칭찬을 받고 인정받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칭찬을 듣는 것과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것이 모두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누가복음 7장에서 보면,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9)고 그의 믿음을 인정하셨다. 마가복음 12장에서는 한 여인이 값진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을 때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9)고 예수님이 그 여인의 행위를 극찬하셨다.
예수님이 어릴 때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셨다는 기록이나 예수님이 사람들을 칭찬하셨다는 기록을 보면 교회에서 교인들을 칭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다시 말하지만, 어린 아이들만 칭찬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는 칭찬을 먹고 산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러한 존재로 지으셨다.
세상과 천국
사람의 칭찬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나님의 칭찬이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목사는 이 세상의 삶은 의미가 없다고 우리의 소망은 오직 천국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목사는 흔히 요한1서 2장 15절에 나오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을 인용한다. 그런데 그 말씀은 16절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우리가 육체의 정욕을 따라서 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지 세상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목사는 『천로역정』의 주인공의 삶을 본받으라고 말한다. 그 주인공은 이 세상은 장차 망할 곳이라고 믿고 처자식을 비롯해서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천국만을 바라보고 나아간다. 진정한 신앙인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 가정도, 직장도, 재물도, 명예도 모든 세상적인 것을 내려놓고 천국만을 소망하고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면 정말로 이 세상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 살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 사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고 하나님의 축복이다. 십계명에서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오래 사는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일부 목사들의 가르침과는 달리, 신앙인에게 있어서 이 세상의 삶은 아주 중요하다. 계시록에는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20:13) 받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세상에서 선을 행한 사람은 낙원에 가고, 악을 행한 사람은 지옥으로 간다. 달리 말하면, 세상에서 사람에게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을 한 사람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도 칭찬을 받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악인이라고 낙인이 찍힌 사람은 하나님도 악하다고 보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칭찬은 당신은 천국에 갈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라는 축복의 말이다. 따라서 어떤 교인이 칭찬받을 만한 일을 했을 때 그를 칭찬하고 그의 착한 행실을 인정해 주는 것은 바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을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주고 축하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왜 교회에서 착한 일을 한 교인을 칭찬하는 데에 인색해야 한단 말인가?
마치면서
하나님의 칭찬만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교인들이 인간이라는 것을 보지 못하는, 신본주의적 신앙을 고수하는 사람들이다.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신본주의를 강조하고 인본주의를 이단시했다. 신본주의자들은 인간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인간을 전적으로 타락하고 무능한 그리고 무가치한 존재로 본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으시고 세상에 살도록 허락하신 사람이 정말 그렇게 무가치한 존재일까?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그를 축복하셨다. 우리는 이렇게 축복을 받은 존재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물들을 다스리라고 위임받은 청지기들이다.
그리고 구약에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인간이 전혀 무가치하다면 그런 무가치한 존재가 영광을 돌리는 것이 하나님에게 무슨 기쁨이 되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찬양을 기쁘게 받으실 만한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다.
문예부흥기 이후로 인간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면서 교회 밖의 사람들이 인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혁명이 일어났고, 그 결과 전제군주제가 무너지고 민주제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이나 존엄성을 내세우는 사상가들의 주장이 그러한 정치적 변화를 뒷받침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이해의 확대는 성경의 해석에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축자영감설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하나님이 자유의지를 인간에게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의 기록이지만, 그 기록 과정에 기록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본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예정해 놓으셨지만, 일정부분 스스로 선택해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인간에게 허락하셨다고 본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이 적극적으로 표명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말을 들으면 근본주의자들이나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은 크게 반발하려 하겠지만, 신학자들의 진지한 연구의 결과에 의한 이러한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다. 과학에서 패러다임이 바뀐 뒤에도 옛것을 지키려는 과학자들이 있는 것처럼 교회에도 옛것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더구나 신앙은 확신의 문제이기 때문에 옛것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아주 강하다.
하나님의 칭찬만이 중요하고 사람의 칭찬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목사는 옛날의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다. 사람의 칭찬을 무시하는 사람이 평신도라면 그것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고 자기만의 신앙적 신념을 지키는 것을 아무도 시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혹은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교인들을 가르쳐야 하는 목사에게는 그것이 심각한 문제가 된다.
옛날 교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면서 나를 돌보지 않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사람들처럼 지금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은 자아의식이 강하다. 그들은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한 인간으로서 인정받으려 하고 칭찬받기를 원한다. 그들은 교회에 와서도 같은 것을 기대한다.
그런데 교회에서 사람의 칭찬은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치고 그들의 수고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그들의 내면에 불만이 쌓인다. 그러면 점차 교회에 나가는 그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결국 그 교회를 떠난다. 요즘 가나안 성도가 2백만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들이 교회에 안 나가는 이유가 여러 가지이겠지만, 그 이유들 중의 중요한 것은 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르침이란다. 그런데 그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개야 짖어라 기차는 간다’ 식의 목회를 하는 목사들이 많으니 참으로 걱정이다.
나는 교회가 현대문화에 영합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요즘 많은 사람의 주목을 끄는 복음주의 목사 팀 켈러는 교회가 현대사회 안에 들어가서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실상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의 삶의 방식과 의식을 파악하지 않고는 그 사회의 문제점을 복음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나는 그의 말에 동감한다.
인권이 신장된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옛사람들과 달리, 그들의 수고가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교회에서 그런 기본적인 소망이 무시되는 것을 발견할 때, 다시 말해서 교회에 인간이 없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들은 교회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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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사 성폭행 목사 결국 재판에 넘겨져
▲사이코드라마 등을 활용한 심리치료로 유명세를 탄 심리상담사 목사가 성폭행 혐의로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고 연합뉴스 등 주요 소식통이 2일 전했다.
사이코드라마 등을 활용한 심리치료로 유명세를 탄 심리상담사 목사가 성폭행 혐의로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고 연합뉴스 등 주요 소식통이 2일 전했다.
보도에 의하면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박은정 부장검사)는 지난달 24일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 혐의로 ㅎ치료연구소장 김모(55) 씨를 불구속기소 했다.
경찰은 김씨의 범행이 전형적인 '그루밍 성폭력'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루밍 성폭력이란 가해자가 피해자를 길들이면서 성적 학대를 가하는 것을 가리킨다.
피해자는 앞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심리상담사가 '그루밍 성폭력'을 가했다는 정황을 보여줬다. 심리상담사는 피해자가 성폭행을 거부할 때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연습의 일환이다" "이런 태도면 앞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피해자가 잘못 행동하는 것처럼 인지하도록 했다.
성폭력 트라우마에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A씨는 저명한 심리상담사의 말을 믿고 따를 수 밖에 없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폭력 트라우마로 회복을 꿈꿨던 피해자는 유명세를 등에 업은 심리상담사에게 치료를 가장해 또 다시 성폭행을 당하는 고통을 겪게 되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지난해 2월부터 3개월간 자신의 치료연구소 사무실 등에서 심리상담을 빙자해 성폭력을 가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한편 심리상담사 목사는 성폭력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