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베스의 기도(Prayer of Jabez)' 가 미국 서점가의 베스트 셀러가 되더니 영락없이 한국에서도 불티나게 팔려나간다고 한다. '프라이스 클럽' 단골인 아내는 거기서 눈에 띄는 그 책을 사다 내게 줬다. '프라이스 클럽'에서조차도 무더기로 쌓아 놓고 팔고 있는 것을 보면 미국사람들도 그 책에 깊은 매력을 느끼는 모양이다. 대학 다니는 아들에게도 보낸다고 아내는 '십대들을 위한 야베스의 기도(Prayer of Javez for teens)' 란 책도 사들고 왔다. 이제 '할머니를 위한 야베스의 기도,' 혹은 '아줌마를 위한 야베스의 기도'도 나올 참인가?
야베스는 누구인가? 역대상 4장 9절-10절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인간의 족보가 소개되면서 유다의 자손가운데 등장하는 이가 야베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9절에 이어 10절에서는 이렇게 그의 삶이 묘사되어 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이 성경구절에 근거하여 '야베스의 기도'란 책을 쓴 사람은 아틀란타에 사는 브루스 윌킨슨(Bruce Wilkinson)목사. 이 책을 통해 그가 독자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는 기도하면 성공적인 목회와 영적인 축복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가르침을 주려는 것 같다. 지극히 세속적인 뉘앙스를 풍겨주는 성공이란 말로 잘 나가는 목회를 규정지으려는 발상도 조금은 거북스럽다. Successfu l이란 말보다는 Fruitful이란 말을 쓰는 것이 좋다는 어느 목사님의 주장에 나는 동감한다. 윌킨슨 목사의 주장 가운데 더욱 거북한 것은 도대체 기도 없는 목회가 어디 있단 말인가? 기도하면 목회도 성공할 수 있다? 그럼 성공하지 못하는 목사들의 그 실패 원인이 부족한 기도 때문이란 말인가? 오히려 기도의 양이나 질을 따지면 실패하고 있는 목사들에게 그것은 더욱 심각하고 절실한 것일진대 그 성경학교 교과서 수준의 원론적인 이야기에 왜 사람들은 그토록 매료당하고 있는가?
물론 윌킨슨 자신은 '야베스의 기도'는 물질적인 축복이나 질병으로부터의 치유를 약속하는 만사형통의 복음(Prosperity Gospel)과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고는 있다. 그는 거의 30년이 넘게 매일 아침 똑같은 기도, 즉 역대상 4장 10절의 기도를 되풀이 한다고 했다. 위에 소개되었지만 야베스의 기도 골격은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그러니까 복을 주시더라도 곱빼기로 흘러 넘치게 주시고 "내 지경(Territory)을 넓혀달라"는 것이다. 야베스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도 야베스와 같이 기도하면 복에 복을 더해 주시고 우리의 지경을 넓혀주셔서 우리도 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인디애나 폴리스에서 한 퀘이커 교회를 섬기며 무숙자들을 위해 "푸드 앤 쉘터"를 운영해가고 있는 아메리칸 침례교회 출신의 제임스 멀홀랜드 목사는 이 야베스의 기도가 축복의 노다지인양 달려가는 미국의 대중들을 향해 그런 열정을 가지고 오히려 '주님의 기도'를 다시 한번 암송해 보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는 오늘 이 시대를 사는 크리스천의 기도모델은 야베스가 아니라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즉 The Lord's Prayer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극히 물질적이고 자기중심에 중독이 된 현대인들에게 매일 매일 "복 주옵소서, 복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라는 것은 자기 혼자 복 받아 잘먹고 잘 살겠다는 사람들의 놀부근성을 신앙적으로 합리화시켜주는 아주 위험한 물질만능이요 경제제일주의라고 지적하고 있다. 기도란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으로 끝나고 오직 그분의 뜻을 살피는 것이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즉 기도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이지 인간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주님의 기도 모델에선 하나님과의 친밀감, 책임감, 이웃에 대한 관심과 자기 부정이 골격을 이루고 있다고 그는 해석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이 언제나 인간의 필요보다 선행되어야 함을 예수님은 삶을 통해 보여 주셨고, 그리고 그분의 기도샘플을 통해 우리들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 . . ."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은 '기대사항'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야할 명령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 . " 그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첫번째 우선순위는 기본적인 인간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라고 멀홀랜드 목사는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일용할 양식, 깨끗한 물, 집과 옷이 없는 사람들에게 안식처와 의복을 제공해야 마땅하고 그리고 병든 자와 감옥에 갇힌 자 들을 돌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야베스의 기도에 몰려가는 그리스도인들이여! 예수님의 기도를 다시 생각하라(Rethink Prayer of Jesus)고 당부하고 있다.
인스탄트 문화속에 하나님의 축복도 인스탄트인양 착각을 심어주고 있는 이 시대의 교회들이여! 수퍼로토 당첨자가 없어 그 상금이 몇 주일을 지나 마침내 천문학적 숫자로 껑충 뛰어오른 날이면 주유소나 '세븐 일레븐'에 줄지어 서있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자들의 모습을 보며 무엇을 생각하는가? 사실은 오늘날의 교회들이 주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수퍼로토를 기대하며 줄지어 서 있는 저속한 한탕주의자들로 만들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야베스의 기도'보다 주님의 기도를 실천하는 일, 나를 생각하는 것 못지 않게 남의 형편을 살피는 이타주의적 삶의 회복이 우리의 시급한 영적 과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