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기도를 하라 2002-03-13 23:48:17 read : 2702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눅11:1-4
오창우
2002-03-03
오늘 성경에 보니까 이상한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예수님 제자들이요,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 그럽니다. 여러분, 기도가 배워서 하는 겁니까? 그냥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 가르쳐 달라는 말에 `아니요` 하지 않고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기도는 그냥 하는 거 같지만, 사실은 잘 배워서 해야 되요.
나는 이 말씀의 내용을 보면서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하셨던 말씀이 생각이 났어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다` 경건이라는 게 뭐예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생활이거든요. 모양은 있어요. 그런데 능력은 없다.
마태복음에 나온 말씀처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게 아니다`하는 말씀이 생각이 나거든요. 이들이 뭐라고 그랬어요? `나는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도 행하고, 그런데 나를 모르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랬더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다 내게서 떠나가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고 믿음생활을 한다 그러는데 이것이 주님 앞에서 모양만 나타나고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 쓸짝이 없다 그런 말 아닙니까?
히브리서 5장에도 보면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사람들을 위해서 제사를 드린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너도 너 자신을 위해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 우리가 주의 일 실컷 하다가 하나님 앞에 버림 받는다 이거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어요? 그 중에 하나가 기도도 그렇단 말이에요.
하나님 앞에 뭔가 기도했어요. 그런데 주님은 나 모른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기도를 가르쳐 주신다구요.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여기 이렇게 기도하라는 말은 이것의 중심에서 기도하란 말이에요. 기본적인 원리라 그런 얘기예요.
여러분, 주기도문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의 정신만은 우리가 알아야 해요. 저는 그 정신,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은혜를 같이 나누려고 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 기도의 정신을 바르게 알라 하는 말이죠.
유대인들은 기도를 안했습니까? 사실, 했거든요. 유대인만큼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은 사실 없어요. 공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침 9시, 12시, 오후 3시, 일주일에 한번 금식, 기도의 횟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책망하신 적이 있어요. `외식하지 말라` 이들은 기도를 꼭 기도를 회당에 가서 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회당에 가니까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문 밖에 서서 기다릴 때, 그 앞에 서서 기도하는 거예요. 사람들 보는데서 막 기도를 하는 거지요. 이런 걸 보고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외식하지 말라`
또 하나 주님이 책망하시는 말씀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이 중언부언이라는 것은 어린아이들 옹아리입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게 옹알옹알 하는 거예요. 하여튼 뭔가 해요. 그런데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어떤 사람들은 착각하지요. 이것이 반복해서 하면 안되는 건가? 여러분 반복하는 것은 강조하는 거거든요. 그렇게 해야 되요. 우리 주님께서도 밤 세도록 기도하실 때, `내게서 가능하시면 이 잔을 옮기시옵소서` 하는 이 기도를 밤 세도록 했거든요. 사도바울도 자기 몸에 가시가 있다 할 때 세 번이나 기도했다, 똑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기도한 거거든요. 반복하고는 달라요.
중요한 것은 경건의 모양은 있었다는 것이지요, 유대인들에게. 제자들에게도. 그러나 능력이 없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예수님께서 산 위에 올라갔다 내려오시는데, 제자들이 있다가 귀신들린 어린 아이 하나 만났거든요. 그런데 이 귀신들린 어린 아이가 참 고생하는 걸 보니까, 그 부모가 안스러워 하는 걸 보니까 마음이 안되었어요. 그래서 제자들이 이 병든 아이를 고쳐주려고 무진장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안되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내려오시자 마자 그 아이의 병을 고쳐주셨어요. 궁금한 거예요. 어떻게 고침을 받았나. 그래 예수님께 물었어요. `예수님, 어떻게 이 아이가 고침을 받았습니까? 주님은 어떻게 이 아이를 고쳤습니까?` 그 때 주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나니까, 내가 예수 아니냐? 내가 하나님의 아들 아니냐?` 이렇게 말씀하면 할 말이 없어요.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없느니라` 기도하면 된다는 거예요.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너희들도, 우리도 기도하면 귀신들린 아이에게서 귀신을 내쫓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주님의 기도와 제자들의 기도는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모양으로 볼 때는 유대인들이나 제자들도 했어요. 그러나 능력이 없단 말이에요. 주님의 기도에는 능력이 있어요. 그것도 나만을 위한 능력이 아니라 남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능력이 있었단 말입니다.
그 주님께서 오늘 이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어요. 이 주기도문의 내용을 우리 다시 한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2절부터 4절까지 한번 읽어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오시며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아멘.
여러분, 이 기도를 보시면서 가장 처음 느끼는 게 뭡니까? 나는 이 말씀 속에서 첫째, 능력 있는 기도는 하나님만 믿어야 된다 하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는 거거든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거든요. 하다못해 일용할 양식도 내가 해결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달라고 하거든요.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기도는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거예요.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하나님 바라보지 않고 뭘 바라봐요? 물론 하나님 바라본다 그래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어요. "하나님 나는 하루에 세 번 기도하고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십일조를 바쳤고, 나는 저기에 있는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하나이다" 기도는 하는데 하나님은 없어요. 내가 뭐 했다는 거예요. 내가 한 것만 보는 거예요. 하나님도 내가 한 것만 보라는 거예요. 이 것 보고 복을 달라는 거예요. 저 사람하고 비교해서 저 사람보다 내가 낫지 않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지 않습니다. 이게 유대인들의 기도예요. 경건의 모양만 있는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이 좋다 하는 사람 가운데 거꾸로 보면 없다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자기 자랑만 해요. 남이 못한 것만 얘기해요. 그리고 자기가 가장 의로운 것처럼 생각을 해요.
여러분, 히스기야를 보세요. 병들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병 낫게 해주셨어요. 바벨론이 아직 나라가 적을 때, 사신을 보내 가지고 축하한다고 예물을 보냈어요. 그랬더니 그 사신한테 어떻게 해요. `우리 궁정 좀 볼래요?` 얘기도 안했는데, 막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거 다 내 꺼야` 자기 자랑만 해요. 하나님이 내 병 고쳤고, 하나님이 이렇게 잘살게 해주셨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버리시는 거예요. 더 끔찍한 것은요, 그 아들 왕이 어떻게 해요? 과거에 어느 역대 왕 보다 더 악하게 살아가는 거예요. 하나님 자랑하지 않아요. 이거는 저주예요.
여러분, 경건의 모양만 있는 기도는 절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능력 있는 기도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겁니다. 우리는 가끔 기도하지 않는 이유를 바빠서 못한다 그래요. 어떤 사람은 겸손해서 게을러서 못한다 그래요. 그런데 제가 볼 때는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딱 한가지예요. 하나님 믿지 않아서 그래요. 하나님 믿지 않으니까 기도 안하는 거예요. 기도 안 하는 사람은 믿지 않는데 해도 틀림이 없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여러분, 좀 부끄러운 얘기 하나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냥 예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쉽거리가 안되면 좋겠습니다. 짐 베이커 라고 하는 미국의 유명한 방송설교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방송설교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200개 방송국의 설교를 해요. 자기 일을 돕는 사람이 3,000명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그만 감옥에 갔어요. 돈 문제, 여자 문제에 걸려 가지고. 그래서 이 분이 감옥에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책을 썼는데, `나는 잘못되었다` 하는 책입니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나는 바빴다. 하루 16시간을 일했다. 그런데 조용히 기도할 시간도 없었고, 조용히 말씀 볼 시간도 없었고, 그리고 가족과 단란하게 지낼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유혹이 다가왔을 때 나는 반격할 만한 무기도, 영력도, 하나님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여러분, 착각하지 마세요.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 그것이 하나님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나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에요. 기도하는 사람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인도하심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뭐라고 얘기해요.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남을 용서하는 이유는 딱 하나예요. 내가 은혜 받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하나님 없이는 못살겠다 하는 그 믿음 때문이잖아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뭐예요? 사탄도 내가 방어할 만한 능력이 없어요. 아무 능력이 없어요.
사실 사람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해요. 달리기를 빨리 못하니까 자동차를 만들어서 빨리 가잖아요. 하늘을 날라 가지 못하니까 비행기 만들어서 하늘 날라 가잖아요. 바다 속을 헤엄치는 거 오래 못하니까 잠수함을 만들어서 바다 속을 다니잖아요.
그러나 정말 인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강합니까? 2001년도 911 미국 뉴욕의 무역센터가 무너졌을 때 어떤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어요. "아이고, 저 무역센터도 칼 하나로 무너졌구만" 난 그게 무슨 말인가 했어요. 여러분, 무역센터가 얼마나 철통 보안이 되어있는 줄 아세요? 엄청나게 보안합니다. 규모가 대단한 빌딩이에요. 웬만해선 무너진다는 것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 하는 말이 칼 하나로 무너졌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무너졌는가 들어보니까 이 얘기예요. 칼 가지고 승무원을 위협했어요. 그 위협한 승무원에게 조정실의 문을 열게 했어요. 그리고 그는 비행기를 뺏었어요. 그리고 범인이 비행기를 몰고 그 건물에 가서 부딪친 거예요. 대단한 것 같지만 칼 하나 가지고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라 그 말이에요.
서울을 지키는 수방사 말이에요. 지난번에 괴한 2명이 철책을 넘어가 가지고 보초병들을 때려눕히고 총 2자루 뺏어 달아났잖아요. 여러분, 뭘 믿고 사십 니까? 우리 집이 뭐, 안전 시스템으로 방어하면은 될 것 같습니까? 망치 하나면 끝난다 하더라구요. 뭘 믿고 그렇게 안심하고 사느냐 말이에요.
여러분, 요새 뉴스 보십니까? 뭘 믿을 만해요. 법을 믿겠습니까? 경제를 믿겠습니까? 정치를 믿겠습니까? 뭘 믿겠어요?
실종된 딸아이가 없어져서 찾아다녔더니 남의 지하 주차장에 성폭행 당한 채로 죽어 있더라구요. 참 그걸 보면서 안전한 데가 어디 있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기도한다고 하는 첫 번째 자세는 하나님을 믿는 거예요. 아니 그보다 먼저 우리 자신의 무능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하나님 도와 주셔서 살 줄로 믿습니다 하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신앙 좋은 분이 자랑하는 게 뭐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만이 나를 살게 한다 하는 것이지요.
에디슨이 1,300개를 발명했어요. 그런데 그는 귀머거리입니다. 사람들은 얘기했어요. `불행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그는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내가 귀머거리가 되어서 세상 소리 듣지 않고 하나님의 소리만 들으니 감사합니다`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갔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손을 놓지 않았어요. 왜?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 기도 때문에,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사자굴에 빠지는 그런 위협을 당했지만 하나님은 그 안에 지켜주시고 오히려 그 일을 전화위복으로 삼으셔서 바벨론의 국무총리를 만드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다니엘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내용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지 못한다면 이것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나는 이 세상이 우연히 생겨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난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셨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도 믿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때 이세상과 사람을 잘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주관자이심을 믿습니다.
그래서 믿고 기도하면 병도 낫고 믿고 기도하면 문제도 해결되고 난 미신적인 것 같지만요, 문제 생기면 다 기도해요 먼저 기도해요. 그런데 하나님은 저를 한번도 실망시키신 적이 없어요 하나님을 믿으십시다 믿음의 기도를 하십시다 모세가 믿음의 지팡이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갔던 것처럼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할 때 놀라운 능력과 은혜로 함께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 능력 있는 주님의 기도, 경건한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여러분 이거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기도입니다. 여러분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오시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성서학자들이, 주석가들이 이 말씀을, 주기도를 보면서 하는 말이 주님의 기도는 두 가지 주제를 가졌다
첫째는 하나님 사랑이고 둘째는 이웃 사랑이다 저는 그 해석을 보면서 율법사가 예수님을 찾아 왔을 때 그가 "어떻게 영생을 얻으니이까?" 그러니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율법에 뭐라고 써있냐" "첫째는 하나님 사랑이고 둘째 이웃 사랑입니다" 하는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랬더니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말이 옳도다 가서 행하라 그리고 그리하면 살리라"
다른 성경에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이다. 성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다 그 말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가르치시게 한 것이 아니라 기도 속에도 이 말씀의 내용을 그대로 넣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이 받으시고 나라가 임하옵시고" 하나님 사랑이에요.
거룩히 여긴다고 하는 말은 구별됐다는 말입니다 구별됐다는 하는 것은 나쁜 것, 좋은 것 골랐는데 좋은 것을 고를 때 구별했다 이런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과 다르신, 전혀 다르신 그 하나님이십니다 하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죄 용서하옵시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이건 사람에 관한 문제입니다. 주님은 이 기도 속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실천하는 의지가 담아 놓으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이 있어야 해요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짝사랑처럼 비참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 이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은 전혀 생각지 않고 내 말만 한다 그건 서로 뭔가 통하지 않습니다. 독백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그 내 기도 속에는 그 말씀 살려고 하는 의지가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알지만 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그 말씀에 묵상이 없기 때문이에요. 오늘도 말씀을 들으면서 그 말씀이 나에게 주신 말씀이고 그것을 어떻게 적용할까를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해야 되요. 그래야 그 말씀이 내 말씀이 되고, 그 말씀 속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에 남군이나 북군이나 다 예수를 잘 믿었어요. 그런데 전쟁하면서 기도 안하는 군대가 있겠습니까? 기도를 했겠지요. 하나님이 얼마나 곤란하시겠어요. 남쪽 편도 못 들고, 북쪽 편도 못 들고.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어느 편을 드시겠습니까? 우리 가정이 있는 팀이요? 어떤 것을 기준 삼으시겠어요?
북군의 사령관인 링컨의 기도 속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그 부하 장교들이 하는 말이 `각하,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아브라함 링컨이 한마디로 거절을 합니다.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 편이 아니라 나는 내가 하나님 편이 되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전쟁이 뭐하는 겁니까? 죽고 사는 거거든요. 근데 그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 하나님 높이시고 승리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모양이 좋다고 다 좋은 게 아닙니다. 우리가 비록 가난하게 살고 병들 게 살았다고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면 하나님 내 당대에 안 주시면 내 후손에게라도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아주 믿는 사람이에요.
여러분, 시편 2편 7절에서 9절에 있는 말씀을 함께 보십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아멘"
하나님이 우리를 아들이라 그러고 내가 너를 낳았다 그랬어요. 그리고 약속하기를 이방나라를 주겠다 소유를 땅 끝까지 이르게 하겠다 그리고 악한 세력을 철장으로 깨뜨리고 부수어 버리겠다 그렇게 약속합니다. 이게 얼마나 큰 축복이에요. 그런데 그 중간에 이 말씀이 있어요. "내게 구하라"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말씀대로 기도하시고 이 말씀의 실천이 여러분의 삶 속에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수녀원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수녀원의 원장님이 잔소리가 많은, 나이 많은 수녀님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 수녀가요, 이 수녀님에게 참 잔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잔소리 듣고 나면 늘 자기 방의 문을 `꽝` 닫고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어요. `에잇, 잔소리 많은 늙은 수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방에는 앵무새가 한 마리가 있었어요. 문소리가 꽝 나면 한다는 말이 `저 늙은 수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하는 거예요. 큰일 났어요. 이거를 늙은 수녀님이 들으면 어떻게 할까? 걱정이 되가지고 사제관을 찾아가 가지고 신부님에게 말씀 드렸어요. 그랬더니 신부님이 `이거 어떻게 하면 좋겠냐? 그러면 그 앵무새, 나한테도 앵무새 한 마리 있으니까 갔다가 내 앵무새는 그런 말 안하니까 친구 삼아 그런 말 안하도록 해보자`
그래서 신부님도 이 앵무새, 수녀님 빨리 죽으면 좋겠다 하는 앵무새를 데려다 놓고, `꽝`하면 그러니까 조심조심해서 다녔는데, 하루는 말이에요. 실수로 살살 닫는다는 게 바람이 불어서 `꽝`하고 닫혀 버렸어요. 그랬더니 그 앵무새가 한다는 말이 `저 늙은 수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신부의 앵무새가 하는 말이 이렇게 말을 했대요.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했대요.
참 배우는 게 중요하거든요. 이 앵무새 분명히 하나님을 잘 믿고 의지하겠다는 수녀원에 있잖아요. 기도의 장소에 있잖아요. 그러나 기도의 장소에서도 요런 소리 잊지 않고 앵무새가 다 기억합니다.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 생각하고, 하나님 말씀 안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얘기를 하고 마치겠습니다. 주님의 기도 속에는 하나님께로 향한 간절함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기도 속에는 간절함이 없습니다. 기도는 오래하면 할수록 주문을 빨리 외우는 숙련된 내용은 있지만 간절함이 없어요.
나는 얍복 강가에서 밤세워 기도하는 그 야곱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절대로 당신을 놓을 수 없습니다." 환도뼈가 부러지는 그 아픔 속에서도 놓을 수 없습니다 간절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향해 "그래, 사랑하는 자가 되라" 그 축복을 받은 다음에야 야곱이 그 자리를 절뚝절뚝거리며 떠나게 돼요 그 때 아침의 해가 떠올랐다는 거예요. 어제도 떠오르는 해지만 그 의미는 너무나도 새롭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빛으로 보이는 거에요.
인도의 한 젊은이가 하나님을 믿었는데 대충 믿었어요 근데 웬일인지 눈이 아파요. 하루는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하는 말이 "당신 눈에는 독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니 내 눈에 독이 들어갈 이유가 있습니까?" "그런데 독이 들어가 있어요 그러니, 이 눈을 빨리 뽑아야 됩니다. 뽑지 않으면 그 눈의 독이 몸 안으로 들어가서 당신의 목숨을 해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속상해요 수술을 날짜를 잡아 놓고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 소식을 예수 잘 믿는 친구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우리 하나님 앞에 기도해보자."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정말 염치없지만 내 눈을 고쳐주시기만 하면 내가 주를 위해 살겠다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데, 왜 자기가 그 동안 하나님 앞에 잘못한 건만 그렇게 생각나는지요. 그게 눈물이 나서요.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밤새동안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했습니다. "이제 나는 수술을 받으러 갑니다. 주님 나를 지켜 주시옵소서" 수술대 위에 섰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의사가 깜짝 놀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게 웬일입니까? 당신 눈에 독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밤새도록 간절한 기도를 할 때 눈에 독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간절함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도 우리에게 간절하게 기도할 것을 말하잖아요. "구하라 구할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라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 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는 거예요.
오늘 한국 교회가 성장이 둔화되었다 하는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교회마다 수양관은 많이 짓는데, 기도원은 짓지 않는다는 거예요. 가서 쉬고 성경보고 하는 수양관은 짓는데, 정작 간절하게 부르짖는 기도원은 안짓는다는 거예요. 기도원도 변해서 다 수양관이 되버리고 말았어요.
저는 교육전도사 시절에, 부목사 시절에 그 때는 기도를 많이 한 것 같아요. 1월 1일 신년예배를 드리고 나면 꼭 빨간 색 쳐진 그 며칠, 청년들이 가만히 있질 않아요. `목사님 갑시다.` 그래서 보따리 싸들고 저 산으로, 삼각산으로 가는 거예요. 그리고 2박 3일 동안 밤세워 기도하면서, 그리고 내려왔던 기억들을 생각해 봅니다.
요즘 청년들은 수양회 가자고 그러지 기도원 가자고 안해요. 그 때 그 청년들이 지금 교회의 큰 일군들이 되고 그 청년들 가운데 목사님, 사모님 많이 나왔어요. 우리 교회보다 더 큰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사님들도 나왔어요. 얼마나 감사해요. 기도해야 힘이 있어요. 간절함이 있어야 됩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을 네게 보이리라 주님의 주기도문을 보면 볼수록 주님의 간절함이 베어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다고 하면서, 기도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그 기도 속에 얼마나 많은 능력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사십니까? 기도의 모양은 있는데, 기도의 능력은 없는 우리들은 아닌지, 우린 이 시간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능력 있게, 기도의 놀라운 역사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주기도문, 여기서 기도만 빼면 주문이에요. 기도가 있을라고 하면 첫째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둘째 말씀의 실천을 위해서 기도하고, 셋째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주기도문이에요. 그러나 그냥 생각없이 하면 주문 밖에 안됩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의 삶 속에 이런 기도의 능력과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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