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성도가 전도에 대해 열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도를 좀 더
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성경 가운데 「전도서」가 있는 것을 생각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성도는 이름이 「전도서」이니까 전도에 필요한 것
들을 모아놓은 성경이라고 생각하고서'그렇구나! 전도가 중요하니까 성경 가운
데 전도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성경도 들어 있구나! 당연한 일이지! 「전도
서」에는 전도 잘 할 수 있는 비결이 들어 있겠구나!' 하고서 「전도서」를 열
심히 읽었다고 합니다. 결과는 실망이었습니다.
「전도서」는 '코헬레트'란 말을 번역한 것인데 '코헬레트'는 사람이 모인 곳
에서 말하거나 전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설교자', 또는 '전파자'라는 뜻입니
다. 이런 사람이 말한 것을 모아놓은 것이 전도서입니다. 전통적으로는 「전도
서」를 기록한 '코헬레트'가 솔로몬이라고 말합니다.
9절 앞부분을 봅니다.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가르쳤고' 전도
자는 가르치기에 힘쓴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도서는 '교육서'라고 보는 것이 바른 이해입니다.
이제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학교들이 개학식과 입학식을 끝내고 공
부를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매년 3월 둘째 주일을 학원선교교육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학원선교
교육주일은 학교 선교를 통해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주일입
니다.
특별히 감리교회는 2002년을 '감리교 교육의 해'로 정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생각하며 오늘은 '교육서'라고 할 수 있는 「전도서」의 끝 부분을
통해 참된 교육과 학원 선교의 문제를 살피는 가운데 깨달음이 있기를 원합니
다.
모범적인 교사라고 할 수 있는 전도자가 내린 교육의 결론이 바로 오늘의 본문
입니다. '교육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르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1절 뒷부분을 보세요.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한 목자'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삶의 근본적인 진리를 가르쳐
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의 근본적인 진리는 13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
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무엇을 배우든지, 어느 분야에 종사
하든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을 본분으로
해야합니다.
옛날 서당에서 제일 나이 어린 사람이 하는 일은 먹 가는 일이었습니다. 스승
이 쓸 먹, 자기보다 나이 많은 학동들이 쓸 먹을 갈아야 합니다. 저희 교회 문
화원 서예반에서 붓글씨 배우는 것을 보니까 요즘은 먹도 기계로 갈더군요.
어느 서당의 나이 어린 학동이 이 일을 하다가 귀한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
다. 서당 밖에서 이 사람의 먹을 갈아 먹물 그릇에 담아놓고, 저 사람의 먹을
갈아 먹물 그릇에 담아놓고, 그렇게 하는데 맑은 날에는 이 먹물 그릇에도 해
가 비치고 저 먹물 그릇에도 해가 비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먹
물 그릇에 한 해가 비칩니다.
'아, 내가 배워야 할 진리는 하나이구나!'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먹을 갈 때마
다 그 사실을 깨닫기 때문에 이 어린 학동은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그 일을 즐
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교육은 먹물은 많아도 그 안에 비치는 해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교육이 온통 '어떻게?'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
을까?' '어떻게 하면 출세할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기능중심입
니다.
'왜?'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한 목자이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왜?'에 대한 답을 줍니다.
창세기 1장, 천지창조의 기사를 '하나님은 어떻게 천지를 창조하셨나?' 하는 과
학적 관점에서 보아서는 초점이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왜 천지를 창조하셨나?' 하는 관점에서, 더 넓은 관점에서 보아야 합
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천지를 창조하셨고 특히
그 피조물들을 잘 관리하라고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우리 나라 교육 현장이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또는 붕괴되고 있다는 소리가
높습니다. 교육부총리가 지난 6일과 8일, 일선학교들을 돌아보며 수업을 참관하
고 교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큰 일이네!'를 연발했다고 합니다.
교육의 위기는 나라의 위기, 특별히 나라의 내일의 위기라는 점에서 이런 현실
은 매우 염려스러운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시대의 흐름, 교육관료주의도 문제가 됩니다.
종교에 기초한 도의 교육, 인간교육이 중요한데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
이라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들, 삶의 기본적인 진리들을 먼저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모세는 신앙교육, 세상
교육, 현장교육, 세 가지 교육을 골고루 받았습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먼저 신앙교육, 그 다음에 세상교육, 현장교육의 순서입
니다.
먼저 어머니에 의해 신앙교육을 받았습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최초의 교사는
어머니였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최초의 교사였을 뿐만 아니라 가장 훌륭한
교사였습니다.
이 기초 위에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애굽의 학문들을 배우게 되었습니
다.
그 다음에 미디안 광야에서 양들을 치며 현장교육을 받았습니다. 겸손해지는
법도 배웠고 낮아지는 법도 배웠습니다. 참는 법도 배웠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양을 달래는 법도 배웠습니다. 미디안 광야는 모세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학교
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먼저 배웠습
니다. 그 기초 위에서 세상 학문을 배웠고 그 다음에 현장학습을 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가 오두막에서 모세를 품에 안고 '너는 고난 받는 히브리 족속이
다. 너는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이다.' 가르친 신앙교육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되
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치는 것을 볼 때 '괜히 나섰다가 손해
볼 필요 없어! 못 본 척 하지, 뭐!' 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우리 나라에 친일파 문제가 새삼스럽게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신앙교
육의 기초가 없었다면 모세는 고난 받는 동족을 외면하고 애굽 왕실의 영화에
빠진 친애굽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이스라엘의 역사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원동연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공학박사로서 한동대학을 비롯하여 연변과학기술
대학, 창조과학회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분인데 이 분의 간증을 들어
보면 이 분은 처음에 이 순서를 거꾸로 밟았습니다.
청소년기 이 분의 목표는 무조건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서울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를 합니다. 그 앞뒤의 일을 이 분은 자신의 간증에
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서울의 학원가를 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죽기 살기로 굉장히
열심히 했습니다. 그 다음 해에 서울대학교에 시험을 봐서 최초로 제가 원하던
곳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서울대에 들어가면 공부 잘 하고 열심히 할
줄 알았는데 들어가 보니까 그게 잘 안되었습니다. 국민학교, 중·고등학교 때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들어 보거나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오로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으니까요. 정말
대학시절을 엉터리로 보냈습니다.
저의 대학 성적표는 모두 D이고 잘 나온 것이 C, 가끔 B 같은 것이 하나씩 있
는데 그것은 체육이나 교련 이런 과목들입니다.
바른 목적을 갖지 않고 대학에 들어가면 이렇게 됩니다.
이제 곧 고3 학생 수험생들의 명단을 파악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시
작할 것입니다. 여러분, 수험생 명단 파악할 때 일찍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처
음에는 말하지 않다가 시험이 다가와서야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재수
생의 경우에 많이 그렇게들 하시는데그 때문에 수험생 명단을 여러 번 수정해
야 합니다.
일찍부터 기도를 받는 것이 수험생활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수험생들을 위해 기도할 때 빠뜨리지 않는 것이 바른 목적을 갖고 시험준비를
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많이 배워 많이 봉사하겠다. 많이 배워 하나님께 더
많은 영광을 돌려야 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수험을 준비하게 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수험생의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의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무조건 합격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지 말고 왜 대학에 가야하는지를 알고 수험준비에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원동연이라는 분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신앙을 갖
게 되었습니다. 그 뒤의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어쨌든 방황을 거의 마무리 짓고 제 나름대로 해답을 찾았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신앙도 제대로 갖게 되었습니다. 삼십대가 되어서 저 나름대로 어떻
게 사는 것이 좋겠고 무엇을 하는 것이 좋겠는가 하는 인생의 길을 겨우 찾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인생의 방향들에 대해 젊었을 때부터 의식을 갖고 교육을 받았으
면 참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너무 많습니다.
한 목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의 방향을 가르쳐줍니다.
원동연이라는 분은 순서는 뒤바뀌었지만 학문과 신앙이 결합되니까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일보사에서 1992년에 '21세기를 대표할 100인'을 선정했습니다. 과학계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전 분야에서 선정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로 소개되었습니다.
동아일보사에서 과학원 재학생 열 명, 졸업생 열 명, 스무 명을 뽑아「노벨상을
가슴에 품고」라는 책을 냈는데 그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분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전에는 진화론이 전부인 줄 알았
는데 많은 과학적 자료들이 창조론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창조론 연
구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신앙과 학문이 결합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요즘 많이 쓰는 말인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신앙과 연결되지 않은 세상의 가르침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12절에 "책들을 짓
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는 말씀이 있
는데. 여기 나오는 책과 공부는 세상의 지식만 논한 책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학교의 학생들입니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만 학교가 아닙니다.
모세에게 있어서는 어머니의 품이 학교였고, 애굽 왕실이 학교였고, 미디안 광
야가 학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시내 광야가 학교였습니다. 세속적인 노예민족에서 계
약의 백성으로, 선민으로, 영적인 민족으로 바뀌는 학교였습니다. 아주 엄한 훈
련을 오래 받았지요. 시내사관학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유학생활이었습니
다.
우리는 지금 인생학교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11절에 지혜자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다고 하였습니다. '때리는 채찍'이
라고 하지 않고 '찌르는 채찍'이라고 한 것은 '채찍'이라는 말이 송곳으로도 번
역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시켜 다윗에게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겠다고 말했습니다(삼하7:14).
우리는 때로는 채찍을 맞으며 배우는 학생입니다. 이 채찍은 맞을 당시에는 아
프고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러나 참다운 지혜를 제공해 줍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를 겪고 체험하며 여러 가지를 생각합니다.
그 가운데는 한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담겨야 합니다. 그것을 통
해 인생이 바른 방향을 가야 합니다.
아프게 맞으면서 그 말씀을 듣지 못하면 그 아픈 것은 무익한 것이 됩니다.
우리들이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이 땅의 학교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 제일 먼저 생긴 제도는 가정입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만드시고
그 다음, 그 안에 가정을 두셨습니다.
학교도 아주 일찍부터 생긴 제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 살았습니다. 고고학자들이 일찍부터 이 갈대아 우르
를 발굴했는데 챨스 레오나드 울리라는 분이 1922년부터 1934년까지 체계적으
로 발굴하였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고대 도시인데 매우 발달한 도시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
게 발달한 곳에 살다가 하나님의 명령 한 마디에 그곳을 떠난 아브라함의 믿음
에 대해 다시 한 번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놀랍게도 4천 년 전 도시인 갈대아 우르에도 학교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
습니다. 오늘날의 노트와 같은 진흙 서판(書板)들이 발굴되었는데 쓰기, 받아
쓰기, 구구표, 제곱, 입방, 기하, 이런 것들을 배우고 가르친 것을 알게 되었습니
다.
아브라함은 소년 시절을 이런 것을 공부하면서 보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아브
라함이 이 때 고데 근동사회를 지배하던 함무라비 법전도 배웠을 것으로 짐작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행적에 함무라비 법전에 기초를 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생애에는 몇 가지 구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묻고 베
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대답한 것을
계기로 전반기와 후반기로
갈라집니다. 이 문답 이후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나갑니다.
지금은 그 십자가 행진의 거의 끝 부분에 와 있는 사순절입니다.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인 엘리야의 예언활동도 둘로 나누어집니다. 사르밧 과
부의 먹을 것을 해결해 주고 그 아들을 살려내고 바알의 선지자 450명, 아세라
의 선지자 400명과 싸워 이기고 비가 오게 하고, 여기까지가 전반부입니다.
그 뒤에 지쳐서 주저앉았다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일어난
이후가 후반부입니다.
다시 일어난 엘리야가 특별히 힘쓴 것이 무엇입니까?
엘리야가 그 활동의 후반부에서 특히 힘쓴 것은 후계자인 엘리사를 가르친 것
과 선지학교를 세워 선지자들을 양성한 것입니다.
선지학교 이야기는 열왕기하 2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삶의 후반부에서 이와 같이 가르치는 일에 힘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를 살려내고 교육을 살려내고 진정한 일꾼을 키워서 도시와 농촌, 하나님
이 지으신 이 세상 도처에 깔아놓는 일은 교회가 힘써야 할 일들 가운데 하나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실현되게 하는 구체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 우리는 기독교 계통 학교들이 본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특별
한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우리 나라에 들어온 기독교는 학교를 설립하는데 많은 힘을 썼습니다. 특별히
감리교회가 이 일에 많은 힘을 썼습니다.
1884년에 매클레이(R. S. Maclay)라는 감리교 선교사가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
고종 황제에게 '미국 감리교가 한국에 와서 선교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
시오.'라고 청원을 해서 허가를 받았는데 이 때 허락 받은 구체적인 내용은 미
국 상선이 한국 내해를 항해하는 일, 병원과 학교를 설치하는 일, 전신 설치의
일이었습니다.
흔히 '장로교회는 교회를 세우는데 힘썼기 때문에 지금 교회들이 많고, 감리교
는 학교 세우는 것과 사회활동을 하는데 힘썼기 때문에 장로교회보다 교회 숫
자가 적다.'는 말을 합니다. 넓게는 맞는 말입니다.
이 말을 어느 한쪽이 잘 했고 어느 한쪽이 못했다는 말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
니다. 각기 자기의 특성에 따라 귀한 일을 한 것입니다.
기독교 계통학교들은 '우리 나라 교육 현장에는 문제가 많은데 기독교 계통의
학교들은 이런 문제들을 잘 해결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쉬운 일이 아니지요. 무엇보다도 우리 나라 교육행정이 이런 일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기독교 계통 학교에 많은 제약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극복하고 '기독교 계통의 학교들은 무엇인가 다르다.'는 칭찬을 받
을 수 있어야합니다.
실제로 우리 나라에는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학교들이 여럿 있는데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된 대안학교들이 많습니다.
저희 교회에는 교직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분들, 중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분들,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분들, 교육행정을 책임진
분들이 여러 분 계십니다. 이제는 일반속과 이름을 같게 만들었지만 전에는 '교
사속'이 몇 있었습니다.
크리스천 교사들도 무엇인가 다르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합니다.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저의 경우도 학교에 다닐 때 무엇인가 다르게 느껴지던 선생님들이 계
셨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분들의 대부분은 크리스천 교사들이었습니다.
「전도서」를 읽어보면 전도자는 지혜를 얻기 위해 많은 힘을 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0절,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 그래서 「전도서」를 지혜문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전도자는 진리를 구하는 데만 힘을 쓴 것이 아니라 진리를 나누어주기
위해 더 힘썼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
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이 진리를 나누어주기 위한 정열이 전도서에는 가득 차
있습니다. 전도자를 모범교사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진리를 나누어주기에 힘쓰는 크리스천 교직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교회가 세운 학교들이 설립된 목적을 잘 지킬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에서 세운 학교들이 그 정신을 잊어버리는 일이 점점 많아집니다.
심지어는 재단이 다른 종교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잘 지켜야합니다.
이 학교에서 수고하는 교목들의 수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교목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우리는 교사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고 참 애매합니다.' 이
것이 '우리는 교사 가운데 교사, 목사 가운데 목사입니다.' 이렇게 바뀌어야 합
니다.
이들을 통해 예수를 배우는 교육, 예수를 가르치는 교육, 예수를 닮는 교육, 그
리고 예수를 증거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교회들 가운데 예닮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들이 있는데 이것은 '예수를 닮
자'는 뜻입니다. 이름은 어찌되었든지 간에 모든 교회가 예수님을 닮기 위한 예
닮교회가 되어야 하고 나가서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예증 교회가 되어야 합니
다.
기독교 계통의 학교에서 만남의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하
는 교육이 이뤄지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이웃과 만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합
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교육 문제, 학원선교와 교육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기독교계통 학교들에 대
해 관심을 갖고 교목들의 수고에 대해 감사하며 한 목자이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통해 인생의 바른 길을 가도록 하고 우리도 그 길을 가게 되기를 주님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