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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가 밥먹여 줍니까?
    2002-04-13 16:37:35   read : 2850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고전1:18-25 // 2002/03/17

    교회 개척한 이래 제일 고민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좋은 교회로 만드는 것입니
    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책도 보고 세미나도 참여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교회를 모델로 만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 모든 교회가 지향하고 있는 좋은 교회는 무엇인줄 아십니까?
    초대교회입니다. 초대교회는 대단했습니다. 니꺼 내꺼가 없습니다. 함께 살았습니다. 한 형
    제 자매였습니다. 한 공동체였습니다. 아주 멋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가 "바로 그 교회"라고 하는 목표를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사도행전 적인 그 교회를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많이 생각합니다마는 그래
    서 그런 교회가 되지 못하는 것을 정말 아쉬워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교회를 만들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처음에는 가능했으나 후에 고
    린도, 에베소 교회들을 보면 어려운 상황을 만나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사도행전 교회가 완전했다면 후에 생긴 교회들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사회를 위해 일을 해야 합니다. 가난한자들을 위
    해 힘을 써야 합니다.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 영향력을 미쳐야 합니다. 맞습
    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기 때문에 교회의 본질을 잃게됩니다. 진짜 교회는
    십자가를 말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아이! 목사님 모든 교회들이 다 그런데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소리가 들
    리지 않습니다. 복음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방법론은 있는데 본질을 잃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요사이 큰 교회에서 열린 예배라고 해서 예배를 드립니다. 불신자들을 위한 예배입니다.
    그런데 예배는 드라마로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설명합니다. 재미는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
    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배우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영광을 돌리는 시간입
    니다. 접촉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십자가의 이야기가 빠져 있습니다. 유머와 기쁨은 있지만 십자가는 빠져나가는 것
    입니다.
    사도 바울이 살았던 당시에 거대한 로마 제국 안에는 가장 두드러진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면 하나는 헬라인이요 다른 하나는 유대인이었습니다. 물론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로마라고 하는 거대한 세력 안에 속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로마라고 하는 세력은 마치 거
    대한 용광로와 같았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학문이나 종교도 로마 안으로 흘러 들어가기만
    하면 자취도 찾아볼 수 없이 녹아버렸습니다. 그러나 유독 로마 제국 안에서 녹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로마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유대인이요
    다른 하나는 헬라인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유대인들은 종교성에 있어서 가장 큰 자부심을
    가진 자들이었고 헬라인들은 지성에 있어서 그러하였습니다.
    여기서 보는 것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과 종교인들이 나름대로 자신의 틀을 가지고 있어
    서 그 틀과 맞지 않으면 아예 처음부터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나라에도 새로운 귀족층이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이 수지 지역에도 그렇게 되
    는 것 같습니다마는, 이들은 어떤 사교 클럽에 회원제에 가입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모임에 가입하는 사람들을 아주 엄격하게 제한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교수라
    든지 판사나 혹은 변호사라든지 아니면 어느 레벨 이상의 기업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런 사람들끼리 모여서 주거지를 형성하고 있고 아무리 돈이 있어도 함께 어울림으로 자기들
    의 품위에 손상이 간다고 생각하면 가입을 시키지 않거나 이사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품위 있거나 지성적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얼마나 패쇄적이고 자기 중심적
    인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는 그런 것이 좋아 보이기 때문에 그런 그룹에
    들어가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재미있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좌우간 차별화를 시켜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서 우려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들이 이런 지성이나
    종교성이라는 자기 만족의 암초에 걸릴 가능성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종교성을 가진 자나 최고의 지성을 가진 자들이 미련하게 보이는 것이라면 역시 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는 기
    독교를 아주 미련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 도를 믿는 자들이 가
    난하고 무식한 자들이었을 뿐 아니라 기독교가 가지는 메시지나 특성 때문에 그러하기도 했
    습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에서 흔히 보게 되는 경향이 무엇입니까? 설교에 죄에 대한 지적이 없다
    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보혈 이야기 같은 것을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치유라
    든지 위로 같은 말만 좋아합니다. 은사 같은 말은 아주 좋아합니다. 그들은 '피'나 '죄'같은
    이야기가 자꾸 나오면 얼굴을 찡그리면서 무엇인가 야만적인 가르침을 듣고 있는 것처럼 생
    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그 당시에 고린도 교회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현상입
    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죽으면 기독교는 죽고 하나님의 능력은 체험하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18절을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
    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너무나 십자가를 귀하게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것보다 십자가만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2장 1절을 보시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즉 십자가
    를 빼면 교회는 시체라고 하는 말이지요.
    예수를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 자신의 모든 지성이나 경험이나 종교적인 노력을 다 예
    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포기하는 것입니다. 나는 전적으로 가능성이 없으며 오직 하
    나님께서 나를 살리든지 죽이든지 알아서 하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자가라는 수술대 위
    에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입니다.
    그런데 십자가가 너무 쌉니다. 십자가를 우습게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아십
    니까? 너무 쉽기 때문입니다. 믿기만 하면 되니까 대가가 너무나 쌉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쉬운 것에 대해서는 우습게 생각합니다. 자주 듣는 것에 대
    해서 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십자가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쉬우니까 다른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22,23절을 보면 헬라인은 지혜를, 유대인들은 표적을 찾는다고 말합니다.
    오늘 저희들은 이 두 부류를 생각하면서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헬라인들은 본래 지식을 매우 중시합니다. 논리가 있어야 믿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십자
    가고 십자가의 지혜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이성적이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
    다. 우리가 하는 공부가 바로 헬라적입니다. 합리를 원합니다.
    이들은 성경을 지식으로 풀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정도인줄 아십니까? 성경은 믿
    습니다. 그런데 지식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럼요! 홍해 같은 갈대밭을 건넜지요!"
    "동정녀의 몸에서 예수님 탄생?" "그래요! 이해되죠. 아마 요셉이 마리아의 부정을 눈감아
    준 것이지요!" "예수님 부활하졌다고요?" "반쯤 죽었다가 살아나신 것이고 제자들이 시체를
    숨겼을 거예요" 그렇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정말 있냐고요?
    그럼요! 바로 많은 신학교가 이런 것을 신학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지혜로 만든 것입니다.
    좋습니다. 인간의 지혜가 변화가 없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인간의 지혜는
    바뀝니다. 모든 것을 넘어선다는 말입니다.
    할아버지가 누런 시멘트 봉투에 설탕을 퍼 드십니다. 할머니가 그릇 두개를 준비합니다.
    설탕을 마구 드시는 거예요. 밥에도 세 숟가락! 국, 김치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100세입니다. 당뇨! 없습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안됩니
    다. 이런 내용들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습니다.
    소위 머리 좋다고 헬라 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거예요. 우리를 때리시는 거예요.
    이것을 헬라 지식으로는 이해를 못합니다.
    병원이 친절해야 해요. 무슨 싸움하는 사람처럼 손님을 대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이성적으로 대하는 것이지요, 아파서 병원에 오는 사람은 사랑을 원하는 사람
    입니다 그것을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은 지식입니다.
    그러나 삶은 사랑으로 사는 것이지요.
    십자가는 사랑이야기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지식으로 알 수 있습니까?
    사랑은 느껴봐야 아는 것입니다. 성경공부를 많이 했다고 십자가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느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또 한쪽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2절을 보니까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영어로
    기적적인 표적입니다. 유태인들은 십자가 사건의 결말이 로마에서 우리를 해방하는 것이라
    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기복신앙입니다.
    "아니! 예수님이 살아 계신데 어떻게 애가 아픕니까? 아니! 사업이 이렇게 안됩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기도하면 병 낫을 수 있습니다. 취직도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작은 것입니다. 어느 교회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 교회는 감기 걸려도 귀신이
    하는 것이고 무좀에 걸려도 귀신이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단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마찬가
    지입니다. 이런 종교성이 있는 것입니다. 너무 지식만 구해도 안되고 기적을 구해도 안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삶의 목표라고 생각해보시죠.
    교회가 부흥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이 모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이것이 부흥입니다. 그러
    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이 왔습니다.
    성도들이 감옥에 갔습니다. 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기도합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만남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는 평탄해도 ,어려운 일을 당해도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사업을 하는데 잘됩니다. 왜 잘되게 하실 까? 복음 사역에 내가 필
    요한 것일까? 사업이 안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고난을 주실까?" 의미를 두고 있는 것
    입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하나님과의 만남의 의미가 없으면 십자가도 사라집니다.
    그것을 붙들어야 합니다. 성도는 평탄해도 의미를 찾고 어려워도 의미를 찾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만남,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한 의미가 사라져 버리니까 십자가
    가 다 사라져 버립니다.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하면 어디든 갑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인생입니다.
    파스칼을 아십니까? 파스칼 당시, 계몽주의 시대 아닙니까? 파스칼의 주변에 있는 사람이
    밤낮 책상에 앉아 가지고 떠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냐, 철학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러
    다가 병에 걸려 덜컥 버렸습니다. 그 때 성령체험을 했습니다. 기도하다가 파스칼이 뭐라고
    합니까? 내가 하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
    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내가 만났노라!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고난 속에서 만
    나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만나야합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하도 오염된 얘기들을 들으니까 다른 생각을 합니다. 교회는 십자가를 증거 해야
    합니다. 십자가밖에 없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셋째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만 의지해야 합니다.
    죄에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죄란 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한번은 마약 한다는 형제와 상담
    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왜 마약을 하냐고 물어 보니 금단현상이 두렵다고 하더군요, 마
    약을 끊으면 보자기 같은 것이 목을 조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끊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때 마약을 하면 보자기가 사라져 버린다고 합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죄에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솔트레이크 올림픽 김동성 선수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엄연한 오심인데도 바꾸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노!! 그런 영화배우한테 금메달이 돌아갑니다. 죄의 대가입니다.
    이것이 무섭습니다. 묘한 죄의 힘이 있습니다. 두려운 것입니다. 죄의 힘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십자가 뿐 입니다. 십자가만이 죄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과연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형틀이다 그런 거 말고요. 이렇게 설명이 됩니다. 이건 실화입
    니다. 미국을 가면 100년 이상 된 다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강을 건너기 위해 철골로 만들었
    기 때문에 배가 자나면 다리를 올리곤 했습니다. 당시에 스미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3교
    대로 근무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데리고 근무지에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
    은 13살 이하의 아이를 집에 나두면 문제가 됩니다. 법원에 빼앗기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기차가 오기 때문에 다리를 내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아이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기차는 다가오고 아이는 보이지 않습
    니다. 그때 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이가 심심해서 가만히 보니까 밑에 무슨 큰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것이 보인 것이지요, 그래서 그곳에 갔다가 옷이 끼입니다. 자 이 아버
    지는 어떻겠습니까? 기차는 1200명의 손님을 태우고 달려옵니다. 그래서 이 아버지는 결단
    합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않기로 작정합니다. 그리고 스위치를 돌립니다. 기차는 아
    무런 일이 없듯이 지나갔습니다. 아버지는 급히 내려 가봅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톱니에 시뻘건 피만 흐르고 있었습니다. 실화입니다. 미국 신문들은 대서 특필하였습니다.
    이것이 십자가다. 아들을 사랑했지만 다른 사람들을 살리려고 아이를 죽일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십자가 사건임을 특종으로 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십자가를 알리겠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표적이나 헬라인들이 말하는 지혜를 가지고도 안됩니다. 그런데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전도의 미련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미련한 것처럼 보이는 전도를
    통해 십자가를 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사람의 지성으로는 죄 문제
    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 문제의 심각성을 느낄 때에는 이미 그의 마음에 하
    나님의 말씀이 비췬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죄 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는 것은
    이미 그의 마음속에는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영혼
    속에 선포될 때 그는 자신의 죄 문제를 더욱 분명히 느끼며 결국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무
    릎을 꿇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토론의 방법을 택하지 않습니다.
    100여 년 전입니다. 선교사가 와서 더듬거리는 말로 '예수 믿으세요. 구원받으세요.' 했습
    니다. 거기에서 역사가 벌어질 것이라고 누가 알았습니까? 복음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작
    은 씨앗이 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미천해 보였습니다. 하다가 죽었어요. 예수 믿다가 망한
    것 아니에요? 예수 믿다가 죽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쭉 왔습니다.
    지난 10월에 고구마전도에 대한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간단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질문합
    니다. 믿으면 "잘 믿으세요". 안 믿으면 "내가 믿어보니 너무 좋습니다."
    뭐 대략 그렇게 고구마를 찔러 보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데 숙제도 없습니다. 암송도 없습니다. 몇 명 전도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냥 우리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저 2-3개월 동안 매주일 중에 2-3시간만 내서
    예수 믿으십니까? 내가 믿으니 좋습니다. 그냥 그렇게 전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하
    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희에게 복음을 전한 방법이요. 우리가 해야할 방법입니
    다. 이것이 십자가임을 아시고 십자가를 전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십니까? 수없이 많은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는 기적의 역사
    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남은 생명 다 해서 해야 될 가장 중
    요한 사역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알 수 있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유혹에 노출되기도 하며 어
    떤 때는 정말 부끄러운 생각에 우리 자신을 내어 던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결
    코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서 우리와 싸우셔서 결국 그 죄들을 토하게 하시
    고 고백하게 하시고 새로운 능력으로 무장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늘 새롭게 하고 늘 신선하게 합니다. 우리
    는 때때로 죄의 세력에 지기도 하지만 영구적으로 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성
    령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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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
    격려하는 사람이 되라
    끝이 좋을 자신 있습니까?
    좁은 문에 집중하라
    대표선수 교인이 됩시다
    이러한 기쁨에 사는 자
    염려는 불신앙입니다
    너와 함께 하느니라
    신앙 성장의 방해물을 제거하라
    우리의 멘토 다윗
    은혜를 받아야 산다
    아름다운 면류관
    부지런히 가르치라
    성도의 기도
    하늘에 열린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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