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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머나 교회의 실상
    2002-05-03 18:01:13   read : 2591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요한계시록 2:8-11




    오늘은 요한계시록 2장 8절에서 11절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서머나 교회의 실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9절 상반절을 보면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이라고 하였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실상은 보는 겉모습보다도 보이지 않는 속 모습이 더 귀하고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고 하는 실제적인 몸통이 있지 않습니까? 해가 뜨기 시작하면 그림자가 상당히 길어지고 해가 점점 한 낮이 되어질수록 작아집니다. 그러다가 한 낮이 되면 그림자가 내 발바닥 만해 집니다. 해가 넘어가면 반대쪽으로 길어지다가 해가 지고 나면 없어졌다가 다음 날이 되면 다시 나타납니다. 이것이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는 하나의 허상입니다. 즉 거짓모습입니다. 그림자가 참 모습일 수는 없습니다. 그림자를 잡는다고 해서 그림자가 붙잡힙니까? 절대로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몸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림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림자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됩니다. 그림자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나타나 겉으로 보여지는 것은 중요할 수도 있고,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실체, 속 사람 즉 나의 실체적인 몸통이 중요하다고 오늘 본문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서머나 교회는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머나 교회에 모인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서머나 교회의 실상은 서머나 교인들의 실상입니다. 이 서머나 교회의 실상이 우리 광성교회 성도들의 실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제목을 '서머나 교회의 실상'이라고 정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을 따라 서머나 교회의 실상이 무엇인지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부요의 실상 (8-9)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겉으로는 상당히 가난해 보이지만 속에 들어가 보면 알부자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상당히 가난해 보이는데 속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믿음의 큰 부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돈을 가져다준다고 한들 가정과 바꾸겠습니까? 돈을 달라하고 그 대신 가정을 내 놓을 수 있겠습니까? 돈 보다 가정이 귀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에게 '돈을 줄테니까 믿음을 내 놓으라'고 한다면 돈을 받고 믿음을 내 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 역시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돈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돈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믿음의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물질은 가난해도 좋지만 믿음이 가난하면 곤란합니다. 믿음의 부자가 바로 서머나 교회의 실상입니다.
    잠언 23장 5절을 보면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하였습니다.
    돈에는 날개가 붙어 있어서 오늘은 내게 있던 돈이 내일은 저 사람에게로 가고, 그 다음날은 이 사람에게 가고, 그 다음날은 또 다른 사람에게로 간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7절을 보면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하였습니다.
    재물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늘지 않으면 줄고, 줄지 않으면 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재물이 없어졌다고 해서 안타까워할 것도 없고, 많아 졌다고 해서 좋아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재물은 있으면 좋은데 없어도 믿음만은 실상 부자여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8절에서 9절을 보면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서머나라고 하는 곳은 유대 땅이 아니라 소아시아 즉 지금의 터키에 속한 지방입니다. 이 도시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이주해 와서 살았습니다. 그렇기 까닭에 모든 주도권은 유대인들이 잡았습니다. 상권도 유대인이 잡고 나름대로 세도도 유대인들이 잡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교회가 세워졌고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얼마나 속터지게 생각하겠습니까? 목수 노릇이나 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가 어떻게 우리의 조상 적부터 기다리는 메시아냐고 하면서 유대인들이 서머나 교회 성도들을 핍박합니다. 핍박을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난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머나 교회 교인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난한 교인들이 모이다 보니 교회 살림도 가난했습니다. 결국 가난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교인들은 가난한 교인, 그 교회는 가난한 교회라고 자타가 공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실 때는 부자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부자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5절을 보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부자는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뭐가 아쉬운 것이 있어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길 것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그렇기 까닭에 부자가 예수 믿기가 그렇게 힘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너무 아쉬움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면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면 얼마나 뜨겁게 믿음 생활을 잘 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에는 돈 몇 푼이 상관이 없습니다. 믿음이 중요합니다. 물질이 부자가 되면 좋습니다. 나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물질에는 가난할지라도 믿음만은 부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강철 왕 카네기와 이름은 같아도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강철 왕 카네기는 세계적인 갑부가 아닙니까? 그런데 데일 카네기는 저술가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평생에 100권 가까운 그 어마 어마한 책을 저술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명성이 강철 왕 카네기 못지 않게 유명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본래 아버지가 일찍이 세상을 떠나고 어렸을 때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너무 너무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빵 조각으로 하루 세끼를 먹으면 잘 먹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잠 잘 때면 어머니가 꼭 들어와서 하시는 말씀이 "카네기야! 하나님이 너를 돌보아 주신다"라고 하셨습니다. 몇 번이고 그 말을 반복해서 컴퓨터에 입력을 시키듯 자기 머리에 입력을 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기도하자 하고 기도하는 중에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렇기 까닭에 카네기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나를 돌보아 주신다는 말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난 속에서도 그 때 그 때마다 하나님을 힘입어 힘을 얻고 공부를 해서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데일 카네기는 부모에게서 돈 한 푼 유산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로부터 아름다운 믿음, 독실한 믿음을 그대로 이어 받은 믿음의 부자였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부자 되기 전에 하늘 나라 부자가 먼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돈 부자 이전에 믿음의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서머나 교인들은 나는 가난하다 했지만 주님이 보실 때에는 믿음의 부자였습니다.

    둘째, 충성의 실상 (10-)
    우리는 두 가지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첫째는 이것은 내 것이다, 혹은 저것은 내 것이다 하는 소유권에 대해서는 종의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종은 자기의 것이 없고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것도 내 것이다, 저것도 내 것이다 했을 때에 그것을 두고 소유권이 내게 있다고 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주인의 의식이지 종의 의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졌다 하는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다'라는 종의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충실히 소유권에 대해서는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잘 관리하는 청지기 노릇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소유권에는 반드시 종의 의식을 가지라고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둘째 봉사에는 주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혹시 어떤 일이 있을 때 날 품꾼을 데려다 일을 시켜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삯꾼들은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 보고 있노라면 답답합니다. 시간을 때우려고 하는 것이 역력히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시간이 되면 자기가 받을 것을 받아 가지고 가면 그만 입니다. 이것은 종의 의식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성가대로 봉사할 때 종의 의식을 가지고 봉사하면 마지못해 하고 억지로 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일 하게 되면 언제 하더라도 나의 일이 아닙니까? 그래서 대충하지 않고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합니다. 이것이 바로 봉사에 대해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충성하고 교회에서 봉사할 때는 반드시 주인 의식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히브리서 3장 5절에서 6절을 보면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 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인들이 그렇게 추앙하는 모세보다 훌륭한 분이 예수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충성을 비교해 보여주었습니다. 모세는 충성하기는 충성했는데 그 집의 종으로 충성을 했고, 예수도 똑같이 충성을 했는데 그 집의 아들 즉 주인으로 충성을 했다고 비교를 했습니다. 종과 주인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납니다. 이처럼 종의 충성과 주인의 충성은 그렇게 다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서머나 교회 교인의 충성이 그렇게 귀한 충성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10절을 보면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서머나 교인들은 자기 동족은 말할 것도 없고 유대인들에게서조차 핍박과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충성을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앞으로는 이 보다 더 큰 환난이 오는데 그 환난은 10일 동안이라고 하셨습니다. 10일이라고 하는 것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9라고 하면 어딘가 모르게 불완전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10이라고 하면 완전한 숫자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10, 100, 1,000, 10,000, 100,000은 전부 10단위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10은 완전한 숫자입니다. 서머나 교인들이 앞으로 당할 환난은 완벽하고, 빈틈없고, 철저한 환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10일 동안이라는 환난입니다.
    둘째 10일이라고 하면 기한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때문에 당하는 환난과 고통은 절대로 무제한이 아닙니다. 반드시 기한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고난이 닥쳐올 때에야 끝이 없을 것 같아서 낙심이 되지만 반드시 끝날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큰 고난이 기한부로 닥쳐올 때 지금도 충성하지만 너희들이 그 때에 충성을 하는데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는 만 70세가 되며 은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죽도록 충성하라고 했으니 난 은퇴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목사노릇하고, 죽을 때까지 장로 노릇을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죽도록 이라는 말은 목숨을 내 놓고 충성하라는 말입니다. 그 때는 충성을 하려면 목을 내놓지 않고는 못하는 때였습니다. 목을 내 놓고 충성할 때 누가 당하겠습니까? 나가서 일당 백, 일당 천을 할 수 있는 것은 목을 내 놓은 사람이 아닙니까? 그래서 서머나 교인들은 이 말씀 따라서 순교도 각오했습니다. 서머나 교회 감독인 폴리갑이라고 하는 분을 선두로 해서 서머나 교회에 순교자가 많이 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사유에서입니다. 즉 죽도록 충성했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섬의 성자 비닝거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본래 스위스 사람입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 위해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이민선을 탔습니다. 그 때 마침 얼마나 무서운 전염병이 돌았는지 미국 땅에 닿기 전에 대서양 바다 한 가운데서 아버지 어머니가 전염병에 죽었습니다. 갑자기 고아가 된 것입니다. 미국 천지에서 누가 그를 환영해 주겠습니까? 그래서 그 땅에 내려서 안 해 본 일이 없습니다. 공부가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월사금이 싸고 나름대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장학금도 주는 성경학교에 가서 졸업을 합니다. 성경을 깊이 파고 들어가 보니 너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나는 성경 밖에 다른 것은 모르는데 이 성경의 복음을 누구에게 전할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인가 싶어서 알아보았습니다. 토마스 섬에는 농사를 짓는 대농들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노예로 팔려와서 죽도록 일만 하는 농로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 비닝거는 배운 것은 많지 않아도 자유인입니다. 일하고 품값을 받아서 제 살 만큼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토마스 섬에 가서 농노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하면 그런 예수는 당신이나 믿으시오 하면서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농장 주인을 찾아가서 나에게 돈 한푼을 주지 않아도 좋으니까 나를 노예로 삼아 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사정 사정을 해서 노예로 들어갔습니다. 그 노예들과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뒹굴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나중에 비닝거가 죽고 나니 토마스 섬의 모든 노예들이 다 예수를 믿고 그렇게 거칠던 사람들이 다 순해졌습니다. 주인들까지라도 감동을 받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온 섬이 복음화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죽은 후에 토마스 섬의 성자 비닝거라고 이름을 붙여 준 것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 한 몸을 희생해 가면서 목숨을 걸고 충성했고 복음을 전하여 성자라는 이름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평안히 예수 믿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예수 따라 가고 예수 닮아 가려고 하면 고생이 되고 손해가 되고 어려움이 많습니다. 편히 믿으려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 믿고 구원을 얻었다면 이 한 몸 바쳐서 충성하는 충성이 여러분들의 믿음의 실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영생의 실상 (11-)
    제 나이가 지금 한국 나이로 69살입니다. '참 지독히 오래 살았네, 왜 아직도 살아서 저러고 있노'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가대에 앉으신 여러분들, 저에게 '얼마나 지겨웠냐?'고 물어 보십시오. 저는 조금도 지겹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눈만 감으면 이팔청춘으로 생각이 됩니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그러는지 안 그러는지 말입니다.
    또 '그 만큼 살았으니 죽고 싶지 않느냐?'고 저에게 물어 보십시오. 저는 절대 죽고 싶지 않습니다. 살 수만 있다면 천년이고 만년이고 살고 싶습니다. 사람의 욕망 중에 가장 큰 욕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영원히 산다는 영생이 가장 큰 욕망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서머나 교인들에게 영생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우리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영생입니다. 이 땅 위에서 돈 몇 푼 더 벌어서 너 보다 많이 가지고 편하게 살겠다는 것은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11절을 보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사망의 해를 받으면 큰일납니다. 그 둘째 사망의 해를 받으면 그것은 영원한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영생의 축복을 준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으나 믿지 않으나 우리는 다 죽습니다. 그것을 첫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다 죽어 땅에 묻혀 한줌의 흙이 됩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재림을 하게 되면 그 때 성도들이 부활하여 들림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의 그 몸과 똑같이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을 합니다. 이것을 생명의 부활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하사 지옥에 보낼 사람은 지옥에 보내겠다 하여 백보좌를 베풀었을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다시 살아납니다. 이것을 심판의 부활이라고 합니다. 심판을 받기 위해서 그 사람들은 부활을 합니다. 지옥에 가기 위해서 부활을 합니다. 이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첫째 사망은 믿으나 안 믿으나 다 같이 당하지만 본문에서는 그것을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금 긴 잠을 자는 것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둘째 사망은 영원한 멸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환난 중에도 끝까지 믿음 지키는 사람은 둘째 사망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몸과 똑 같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을 하여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하여 영원토록 영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만이, 하나님만이 인생에 가장 귀한 욕망인 영생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서머나 교인들은 영생을 보장받았습니다. 영생을 축복으로 받은 것입니다. 어떤 댓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서머나 교회의 실상이 세 번째로는 영생의 실상이었다면 우리 광성교회 성도들도 빠짐없이 영생을 축복으로 받는 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매미에 대해서 공부를 해 보았습니다. 저는 매미가 대 여섯가지 종류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이 세상에 매미 종류가 3천 가지라고 합니다. 그 중에 참매미가 있습니다. 참매미는 처음에 나방이 알을 낳습니다. 그러면 알에서 깨어난 유충이 땅 속이나 거름더미 속으로 들어가 굼벵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일년 동안 더럽게 지내면서 허물을 벗습니다. 또 일년 동안 그 속에서 살면서 허물을 벗습니다. 이래서 7년 만에 매미가 됩니다. 굼벵이의 몸과 그것이 변하여 매미가 된 몸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굼벵이와 같은 우리들의 현재의 몸이 이 다음에 부활할 때는 굼벵이가 매미가 되듯이 비교되지 않을 만큼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의 우리의 몸을 가지고 영생을 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지옥에 가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로운 몸으로 영생을 합니다.
    매미가 며칠 동안 사는지 아십니까? 자로 된 듯이 꼭 같은 시간에 죽는 것은 아니지만 평균으로 15일을 산다고 합니다. 매미는 15일을 살기 위해서 7년 동안 굼벵이 노릇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70년 동안 굼벵이 같은 인생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15일에 10배인 150일을 살고 만다면 부활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1,000배 10,00배 그리고 끝도 없는 영원히 사는 영생은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하나님 믿고 영생의 축복을 받은 것을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영화로운 몸으로 영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만이 전하는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크나큰 축복입니다. 서머나 교인들은 핍박 중에 죽어 끝나는 것 같았으나 실상은 영생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실상은 첫째 부요의 실상입니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믿음은 부자였습니다. 둘째 충성의 실상입니다. 그네들은 환난과 핍박을 당하여 예수님을 저 버릴 것 같은 상황에서도 목숨을 내 놓고 충성하여 마지막에는 승리합니다. 셋째 영생의 실상입니다. 순교를 당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것 같으나 "아니라"는 겁니다. 다시 살아 나 영원히 영화로운 몸으로 영생하는 축복이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서머나 교회 성도들의 실상이 여러분들의 실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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