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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꿈꾸는 교회 III
    2002-05-31 23:30:21   read : 2783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바른 신앙 고백이 있는 교회 ]
    마16:13~20

    19C 중엽 일본 정부는 외국에서 오는 귀빈들을 맞이하기 위해 영빈관을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미국 시카고의 프랭클린 라이드 라이트라는 사람에게 설계를 맡기기로 했는데, 그가 일본에 와서 영빈관을 짓기로 한 자리를 보니 지하 2.4m 밑에 18m의 진흙층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땅은 집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땅이니 다른 곳에 영빈관을 짓도록 해달라고 일본정부에 요청했으나 일본 정부가 허락지 않아 하는 수 없이 호텔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기초공사만 무려 2년 정도가 걸렸는데 옆 건물은 준공되어서 벌써 끝나고 있을 때, 이쪽은 아직도 땅 파고 있고 기초공사 위에 건물만 짓는데도 2년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임페리얼 호텔 영빈관을 두고 사람들은 ‘가장 쓸데없는 돈을 많이 들이고 부질없는 시간을 낭비해서 지은 비효율적인 호텔’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원래 계획에도 없던 수영장을 만들어서 당시 일본 당국자들에게 이 호텔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52년 뒤 동경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동경시내의 모든 건물은 다 부셔졌습니다. 그런데 임페리얼 호텔만은 하나도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호텔 안의 물건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호텔은 1964년 철거됐는데 사용할 수 없어서 철거된 것이 아니라 좀 더 나은 건물을 짓기 위해 철거되었습니다. 이때 이후로 세계 건축학자들이 미국 시카고의 건축학자 프랭클린 라이드 라이트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보기 시작했습니다. 관심을 갖고 지켜본 결과 그의 건축비법은 바로 기초공사에 있었슴이 밝혀졌습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건물은 무너지고 부셔지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기초를 잘못 세운 사람들은 원치 않는 어려움이 다가올 때는 곧 무너져 버립니다. 스스로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망가지는 인생들을 많이 봅니다.

    IMF가 터졌을 때 불과 한 달 만에 우리나라의 만여 가정이 이혼으로 깨어졌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수많은 가정이 위기에서 가정의 불화를 종식시키고 하나 되어 복된 가족으로 변화된 상반된 현상들도 있습니다. 기초가 튼튼한 사람들과 가정은 어려움이 올 때 흔들림이 없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고 오히려 더 아름답게 빛나게 되는데, 그렇지 못한 교회나 가정, 개인은 무너져 내린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갖가지 문제와 아픔들 가지고 흔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개인이 세웠던 꿈과 계획들이 흔들리고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지기 직전에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 터는 어떠합니까? 오늘 우리나라 경제와 정치의 기반들은 또 어떠합니까? 모든 것이 요동하여 균열이 생기고 흔들리고 있다면, 그 이유를 근본적인 문제 ‘나는 어디에 기초하고 있는가'를 점검해 봐야 됩니다.

    맥아더 장군은 「오늘 이 땅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전쟁과 다툼의 문제는 바로 그 이면 속에 경제적인 문제에 원인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 경제적인 문제도 조금 더 우리가 생각해보면 인간의 도덕과 윤리의 문제에 근거하고 더 나가서 이 모든 문제의 궁극적인 것은 종교적인 문제에 귀착되고 있다」고 그는 이야기 했습니다. 그렇다면 갖가지 문제에 부딪치고 있는 중에 원인이 종교적인 문제에 있다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시던 질문 앞에, 함께 관심을 갖고 살펴보아야 되리라 생각되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2년 반을 함께 지내셨습니다. 이제 6개월 뒤면 주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데 제자들이 대체 자기를 누구로 알고 있는지 궁금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이사 빌립보라는 휴양도시에 제자들을 데리고 올라가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그때 제자들이 앞을 다투어 얘기합니다.
    “엘리야입니다. 세례요한입니다. 예레미야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대답 앞에 반응을 보이지 않으시고 또 다시 질문을 던집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님은 그때의 제자들에게만 던지신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에게도 역시 동일하게 물으십니다.

    ‘너희가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헌금하고 교회 봉사 열심히 하는 이 모든 것의 기초가 어디에 있느냐?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느냐?’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그 말은 곧 우리가 그렇게 봉사하고 살아가는 이유가 어떤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냐 하는 질문과 동일합니다. 그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칭찬하시는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복은 이 땅에서 죽고 난 다음의 내세의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닌 이미 주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고 사는 사람에게 현재 임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고백을 하는 자체가 복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드릴 수 있다면,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인 복이 우리에게 올 뿐 아니라 미래에 약속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기쁨을 누리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하기 전에 몇 가지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됩니다. 주님을 그리스도라고 대답할 때에 대답 속에는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은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그 메시야입니다. 헬라어 문법상으로 보면 우리가 기다렸던 메시야, 그 주님이 바로 당신입니다 그런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표현, 크리스토스라는 이 단어는 ‘기름부음을 받다‘는 뜻이 있는데 구약에 기름 부음을 받는 사람은 세 종류의 사람이었습니다. 첫째는 왕을 세울 때, 둘째는 선지자(선생님)를 세울 때, 셋째는 제사장을 세울 때 기름을 부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라는 말의 뜻은 ’주님은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입니다‘ 하는 의미가 속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오늘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는 대답 속에 세 가지를 나누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은 바로 왕이라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기다렸던 메시야 그 주님은 바로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왕으로 오셨습니다. 야곱의 집에서 왕 노릇하리라는 예언과 더불어 주님은 이스라엘의 왕 자기 백성을 저희의 죄에서 구원할 왕으로서 이 땅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빌라도 법정에서 네가 왕이냐 물었을 때 주님은 왕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할 때 ‘호산나 호산나 다윗의 왕 자손이여’ 하는 백성들의 환호는 왕의 족속으로 왔다고 공인하는 외침이었습니다. 주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었습니다. 예수님 사역의 중심은 하나님 나라였는데 곧 임할 나라의 왕국의 왕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왕과는 다릅니다. 세상의 왕은 백성을 가지고 있고, 영토를 가지고 있고, 주권을 가지고 있는데 왕 되신 예수님은 예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어디나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 명령을 내가 순종하면 내 마음이 하나님 나라가 된다는 것이요, 내 이웃과 이웃사이의 관계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루어지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요, 가정과 교회도 하나님 명령 앞에 순종하면 바로 그것이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아주 절묘한 영토 개념을 갖고 계신 왕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곳에는 어디든지 예수님 말씀대로, 뜻대로 순종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이 왕은 자기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을 징계하고, 채찍으로 다스리고, 세금을 거두는 그런 왕이 아닌 의와 희락과 화평을 나눠주는 ‘화평의 왕’ 입니다. 즉 주님의 통치를 받는 마음, 가정, 교회에는 하나님의 의가 살아나서 화평과 평강이 넘치는 모습이 됩니다.

    게다가 주님은 능력의 왕입니다. 왕 되신 주님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질병에서 놓임 받게, 연약한자를 강하게 세우시며 보호하시는 권세 있는 능력의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서 “나사로야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시지 않고 만약에 그냥 “나오너라” 하셨으면, 그 근처에 있는 모든 시체들이 나왔을 것이라 얘기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라는 이름을 구체적으로 부르셨기 때문에 나사로만 나왔지, 하마터면 모든 시체들이 부활해서 난리가 났을 거라 얘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말은 사망의 권세도 깨뜨리시는 주님, 어둠의 세력 마귀에게 명하시면 그 악한 사탄도 쫓겨나가는 능력의 주님, 자연에게 명령하시면 순종하는 주님, 이러한 주님이 바로 우리의 왕되십니다.

    빌립보서 2장 9절~11절에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도 모든 무릎을 예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였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을 드리면서 ‘나라가 임하옵시며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고 시험에 들게 마시고 악에서 건져주십시오’ 하는 의미는 왕 되신 주님을 우리가 인정하고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한번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백세에 아들 이삭을 얻지 않았습니까? 백세에 얻은 아들은 얼마나 귀합니까? 자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 아닙니까? 그리고 이 아들은 약속의 아들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하나님 내가 다른 것은 다 드릴 수 있는데 이 아들만은 안 됩니다’하고 만약 그가 명령을 듣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못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순종할 수 없는 가운데서도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했고, 그에게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이루어졌으며 아브라함 자체로서 하나님 나라인 그에게 의와 희락과 축복과 평강이 또한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아주사 그로 하여금 인류를 사망과 어둠으로부터 건져내신 권세 있는 하나님을 우리는 바라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를 섬기면서 살아갑니까? 자존심을 섬기던 돈을 섬기던 우리 자녀를 섬기던 젊음을 섬기던 누구나 다 무엇인가를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한제국멸망사>를 썼던 헐버트선교사가 그의 책에서 ‘조선 사람들은 사회생활 할 때 보면 유교가 지배하고 있고, 생각하는 철학적 사고를 보면 불교인데, 위기와 어려움을 만나면 샤머니즘, 즉 무속신앙가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외국사람들 눈에 비친 우리 모습 저변에는 무속 신앙적이고 미신적인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주일날 하루 빠지면 꼭 벼락 맞을 것 같지요? 길가다가 돌부리에 차이기라도 하면 무슨 잘못을 했는가 생각합니다. 물론 신앙 생활할 때 이러한 태도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만 그렇게 하다보면 하나님을 유치한 하나님으로 만들게 됩니다. 잘하면 상주고 못하면 벌주는 하나님은 내가 만든 하나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아닙니다.

    우리들 마음속에 정말 내 인생과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왕 되신 주님을 나의 왕으로 영접해야합니다. 권세 있는 주님이 백성 삼으실 때, 그 권세를 나를 위해서 쓰시고 사용하신다는 겁니다.

    교회에서 한쪽 다리 없는 장애인이 기도하는 것을 보고 있던 주위사람이 수군거립니다. ‘하나님은 암이나 고치는 내과의사지 떨어진 다리를 붙이는 외과의사는 아닌데 저렇게 기도한다고 무엇인가 달라질까?’ 그때 장애인교우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는요 지금요 저의 다리를 고쳐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 남은 다리한쪽 가지고도 내 인생을 불평, 원망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 뜻대로 살수 있을지 그것을 위해서 주님 앞에 기도하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 사람의 삶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오늘 어떠합니까? 내 삶의 현장에서 주님이 나의 왕 되심을 인정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나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주님, 오늘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사망과 어둠의 권세를 깨뜨리실 수 있는 권세 있는 주님이 나의 왕 일진데, 주님은 나에게 명령하시고 나는 그 주님께 순종하며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죄에 대해서 자유함이 있어야 되고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담대함이 있어야 되고 나를 지켜주시는 왕 되신 주님께서 나의 왕이 되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됩니다.

    한 어린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빠 왜 이 땅엔 전쟁이 일어나요. 사람들이 서로 왜 죽이고 살고 그래요.” 질문합니다. 아빠가 전쟁에 대해서 제1차대전은 이렇게 해서 일어났고 제 2차대전은 이렇게 해서 일어났고 6.25사변은 이렇게 해서 일어났고 그런데 아이가 잘 이해를 못하니까 주방에 설거지하던 엄마가 답답해하며 “여보 그렇게 설명하면 안 되죠 그렇게 설명하면 아이가 알아듣나요. 당신처럼 설명해서 알아듣는 아이는 천재겠네요.” 그랬더니 아빠가 얘기합니다. “참견하지 말고 설거지나 해.” 근데 아내가 또 반박을 합니다. “이왕 설명을 하려면 알아듣게 해야지 아이가 당신 같은 줄 아세요. 눈높이라는 것도 몰라요?” 그러니 남편이 “네가 해봐” 그러면서 방으로 들어갑니다. 아내도 화가나 그릇을 집어던지니 아들이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겁니다. “설명 안 해줘도 알겠어요. 왜 전쟁이 일어나는지.”

    왜 전쟁이 일어납니까? 내 속에 내가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회의를 하다가 종종 언쟁이 일어납니다. 다툼이 일어납니다. 만약 우리 교회에서 회의를 하다가 다툼이 일어나면 회의를 중단하고 ‘하나님! 왕 되신 우리 주님 이 문제에 대한 주님의 뜻이 분명히 있는 줄로 압니다. 우리가 함께 복종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의 다툼과 우리의 나눠짐 앞에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함께 엎드려 기도하고 다시 회의를 시작 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될 수 있다면 우린 분명히 왕 되신 주님의 지배를 받는 교회가 됩니다. 어떤 회의나 모임에서 나눠짐과 격렬함이 생길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기도를 드리면 주님께서 우리를 지배하실 것이고, 그 결과는 성령의 열매요, 의와 희락과 화평의 열매가 열릴 것입니다.

    우리 당회 할 때도 한번 그렇게 해 봐야겠습니다. 장로님 두 분이 종을 들고 있다가, 의견이 격렬하게 일어나 도무지 안 되겠다 싶을 때 종을 땡쳐서 잠시 중단하고 기도한 후에 다시 토의하는 것 말입니다. 이것은 미국 퀘이커 교도들이 영성 수련할 때 하는 방법입니다. 너무나 진지한 문제라서 쉽게 대화로 할 수 없을 때, 또 종을 치면 다시 엎드려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으며 하나님의 지배와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받고자 할 때 분쟁은 끝날 것입니다. 거기서 의와 희락과 화평이 일어납니다. 가정에서도 실습해보십시오. 가족 회의하다가 엄마,아빠가 싸우기 시작하면 아들이 종 딱 치고 회의를 잠시 중단하고 다같이 기도합니다. 화난 모습으로 기도하면 주님 응답하실까요? 저는 믿습니다. 화나서 기도해도 주님은 엎드리는 그 모습보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두 번째,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의 의미 속에는 주님은 나의 예언자(선생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언자의 예자는 ‘미리 예’자도 있지만 ‘맡을 예’자의 뜻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분으로써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속에는 거짓된 지식들이 적지 아니합니다. 우리를 죽이는 지식이 있습니다. 또 우리를 살리는 지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지식이 있는 반면에 우리를 무익하게 만드는 지식이 있습니다. 돈 들여가면서 소매치기 하는 법 배우려는 분 있으십니까? 우리를 죽이는 지식을 가지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원치 않게도 죽이는 지식, 잘못된 지식을 나의 것으로, 그것이 마치 내게 희망을 주고 생명을 주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따라가면 때로는 고난처럼 보이기도, 어려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말씀의 궁극적인 결과는 생명이요 소망이요 희망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바로 ‘주님은 나의 선생님입니다. 주님은 나의 예언자입니다.’하는 고백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지 아니하고 권세 있는 자처럼 가르쳤다는 말씀은 주님의 가르침 속에 자유함과 삶의 방향 그리고 삶의 의미가 있었고, 주님의 가르침 속에 자기의 삶을 돌아보는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책망과 교훈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합당한 귀한 말씀 따라 우리 를 고쳐나가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의 선생님이라고 얘기하면서도 진실로 주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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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천과 재림사이
    기도로 변화된 운명
    마음의 상처가 내 삶의 주인이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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