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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교적 복음 공동체
    2002-06-18 14:54:49   read : 3087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06/09 // (요한 13:34-35; 살전 5:14)

    요즘 저는 "교회란 무엇이며, 그 존재 의의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곰곰이 하다가 "교회는 친교적(親交的) 복음 공동체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면 친교적 복음 공동체란 무엇일까요? 사랑으로 친밀하게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를 말합니다. 사실 이 시대에 "공동체가 과연 존재하는가"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공동체란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삶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 개인주의적이 되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밖에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자기 가족밖에 모릅니다. 이렇게 볼 때 공동체가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는 곳이 있다면 아마 교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성령 받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서로를 사랑으로 돌보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친교적(親交的) 복음 공동체를 이루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살펴봅시다.



    1.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고,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5:14에서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安慰)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고 했습니다. 누군가를 붙들어주는 것은 내가 힘이 있어서, 또는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동정해서 하는 행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의 사랑에서 우러나와서 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 도와주고 붙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주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그냥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고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성령이 내 마음을 감동해야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1969년에 데레사 수녀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공산 당원 한 사람이 수녀에게 물었습니다. "데레사 수녀님, 당신은 공산주의자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서슴없이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나의 형제 자매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의외라는 듯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수녀님은 우리를 좋게 생각하시는군요.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데레사 수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덕분이지요 그분은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지요"(마태 25:40).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을 돕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가끔 봅니다. 물론 우리가 보낸 밀가루나 그 외의 다른 물품이 굶주리는 북한 동포에게 가지 않고 공산당원들이 차지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쨌든 북한은 지금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그들이 어려울 때 돕지 않으면, 나중에 통일이 되면 그들의 얼굴을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단순히 굶주린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형제요, 자매입니다. 또한 그들의 고통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돕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에게 해 드린 것과 같은 것이라는 인식이 우리에게 있을 때 그들을 사랑으로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히 굶주리는 북한 동포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알아야 됩니다. 교회 나오는 사람들은 다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다들 고통이 있습니다. 가정마다 문제없는 가정이 없습니다. 그래야 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고통 당할 때, 그들과 함께 있어주고, 그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손을 잡아주며 그들의 고통을 같이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그저 늘 하든 대로 그들이 어려울 때 잠깐 같이 있어주고 붙들어 준 것을, 받는 사람은 영원히 잊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90년에 미국에 유학을 가서 한 학기를 마치고 목회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공부는 계속 하며 목회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신학교에서 몇 몇 교수가 문제를 삼아서 힘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약자이었고,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신학교에서 가르치던 김 영일 박사가 바바라 트록셀이라는 여자 교수님에게 저를 데려갔습니다. 그 교수님은 감리사를 지낸 분이십니다. 아주 친절한 분이셨습니다. 여장부였습니다. 그분이 저를 보더니 "저들이 저렇게 나오는데 우리는 이런 식으로 머리를 쓰자"고 하면서 감리사(여)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목회 하는 것을 학점을 받는 '현장실습 교육'(field education)으로 해 주었습니다. 제가 목회 들어간다고 문제삼던 사람들―제가 미국에서 영주권 받고 눌러 살라고 신학교를 이용한 것이다라고 억지 주장을 했던―이 아무 소리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석사학위를 마치는데 목회한 것이 학점으로 인정이 되어 학점이 넘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는 그분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 제가 사는 동안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저는 사랑의 빚을 많이 진 사람입니다. 한국에 와서 목회하면서 어려울 때 기도해 주고, 격려해주고, 도움을 준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목사인 저도 때로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여러분이 성령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어려운 사람을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특히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같이 이웃해 있는 이들에게 어려움이 없는가 돌아보고,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사랑은 다른 게 아닙니다. 어려운 일 당한 사람을 붙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려움 당할 때 붙들어 주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누군가 어려움 당할 때 그를 붙들어 준다면, 그가 주님의 사랑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도와주고 붙들어 주면, 그들은 여러분이 붙잡아 준다고 생각지 않고,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셨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2. 좋은 일이 있을 때 축하(祝賀)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고쳐야 할 게 있습니다. 그것은 남이 잘 될 때 진정으로 축하해 주는 것이 너무 인색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것이 있는 걸 볼 때 아마 시기심 때문에 남 잘되는 것을 축하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여러분은 이웃해 있는 집에 무슨 좋은 일이 있으면, 아낌없이 축하해 주십시오. 누군가를 축하해 주면, 그 축하를 받는 사람은 사랑 받는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동을 받습니다. 이게 전도의 길을 활짝 열여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몇 해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 광림 교회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예배 후에 파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교회 어떤 권사님 회갑잔치였습니다. 촛대에 불을 밝히고, 교우들이 함께 모여 앉아 노래를 부르며 축하하는 것을 보니 참으로 좋았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한국 분들이 많이 와서 같이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려운 이국 생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삶을 경축하는 것을 볼 때, 참으로 보기가 좋았습니다. 삶을 축하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삶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삶을 긍정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21절 말씀을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성령 충만하면, 마음으로 하나님께 노래하는 삶을 살고,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 늘 기뻐하며 신령한 노래와 시와 찬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한 불평이 떠나가고 감사하며 사는 삶입니다. 즉, 늘 감사로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즉위 50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지난 3일 밤에는 여왕이 버킹엄 앞의 빅토리아여왕 기념탑에서 첫 횃불을 점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영국과 영연방 전 세계의 축하 행사를 이어주는 횃불 2,000개가 점화되고, 에든버러에서는 밤 10시 30분까지 가든파티가 열러 거리 공연, 음악, 춤, 어린이 행사 등이 열렸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삶을 경축(慶祝)하며 사십시오. 작은 것이라도 함께 즐거워할 일이 있으면 이웃을 초대하여 같이 촛불을 밝히고, 축하하십시오. 저희 집에는 촛대가 하나 있습니다. 식구들이 함께 저녁을 먹을 때 가끔 촛불을 킵니다. 촛불은 생일 때만 키는 게 아닙니다. 평소에도 삶을 축하하기 위해서 켜 보십시오. 분위기가 달라지고, 삶을 새롭게 긍정하는 효과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루미의 사랑노래』라는 책에 나오는 "사랑의 연금술"이라는 시에는 삶을 긍정해 주시는 주님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당신은 손닿는 모든 것을 바꾸어 놓으십니다. 세속의 관심사와 골치 아픈 일들과 슬픔이 당신 현존(現存)안에서 분해되어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 받는 자, 농부와 왕에게 기쁨을 안겨 줍니다."



    마리아는 20세도 안 된 순결한 여인이었는데도, 성령으로 잉태되었음을 천사로부터 고지(告知)받고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두려운 마음을 안고 친척 엘리사벳에게 달려갔습니다. 그 거리가 150km라고 하니 멀리도 갔습니다. 그 때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마리아에게 축하 인사를 했습니다. "그대는 여자들 가운데서 복을 받고, 그대의 태 속에 있는 열매도 복을 받았습니다. 내 주의 어머니께서 내게 오시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그대의 문안하는 말이 내 귀에 들어왔을 때, 내 태 속에 있는 아기가 기뻐서 뛰놀았습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줄을 믿은 여자는 행복합니다"(눅 1:42-45). 이 때 마리아의 마음에 짙게 드리웠던 두려움이 어느덧 사라지고, 그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엘리사벳의 축하가 그녀로 하여금 두려움을 떨치고 하나님을 찬미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진정한 축하에는 삶을 긍정하는 힘이 담겨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이웃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부지런히 축하해 줄 줄 압니다. 이 때 축하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고, 삶을 새롭게 긍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3.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認定)>해 주어야 합니다.

    사랑은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남을 인정해 준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해 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삶에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남을 인정해 줄 줄 압니다. 우리 사회는 정말 남을 인정해 주고 받아주는 것이 너무 부족합니다. 받아주기 보다는 거절당하기가 일쑤입니다. 소설『로빈슨 크루소』를 쓴 대니얼 디포라는 사람은 처음부터 훌륭한 작가로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그의 원고『로빈슨 크루소』를 들고 출판사 문을 수 없이 두드려야 했습니다. 20군데 출판사를 돌아 다녔지만 다 거절당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21번째 출판사를 찾아가 마침내 『로빈슨 크루소』를 세상에 내 놓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리처드 바크가 쓴 『갈매기의 꿈』도 12번이나 출판을 거절당했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인정받기가 그리 쉬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서울 시내 초·중·고교생들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하다고 합니다. 338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체형 만족도 설문조사'에서 전체 학생의 절반 가량이 자신의 키, 몸무게 등 체형을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등, 우리나라 어린이 청소년들의 '신체 콤플렉스'가 심각한 것으로 조사 되 충격이 되고 있습니다. 초·중·고교생 중 전체 20-30%만이 자신의 키와 체중에 만족한다고 합니다. 물론 성장기에는 외모에 관심을 많이 갖는 게 당연한 과정이지만, 지나치게 외모 가꾸기에만 치중하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늘어 공부가 잘 되지 않고, 원만한 인격 형성에도 방해가 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가꾸는 느긋한 마음을 가지도록 지도하되, 외적인 아름다움보다는 내적인 아름다움이 더 귀한 것임을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이 사회에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받아주는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며칠 전에, 텔레비전을 보니까 탈북 청소년 문제를 방영하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탈북 청소년의 2/3가 6개월 이내에 왕따를 당해 학교를 떠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어떤 인류학자는 이들을 받아주지 않는 것은 남한 사회의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보여주는 장면은 아주 보기 좋았습니다. 그것은 19살이나 되어 학교에 가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어떤 탈북 청소년(여)에게 영어 과외 공부를 가르쳐 주는 어떤 국제학 대학원생(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 북한에서 왔구나' 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함경도, 추운데서 왔구나'라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남을 받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도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용납 받고 인정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정한 수단으로 돈을 벌며 온갖 잘못을 저지르며 살던 삭개오를 찾아가셔서 그의 집에까지 머무셨습니다.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깨달은 삭개오는 자신의 재산을 포기하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라고 하시며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셨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았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고 하면서 잔치를 벌이며 좋아하셨습니다. 그 아들은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내 세울 수 없어서 품꾼의 하나로 써 달라고 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갔지만, 아버지는 그를 아들로 인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영접해주시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령 받고, 사랑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은,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받아주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 때, 친교적 복음 공동체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이런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나갈 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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