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축구대표팀을 맡으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의 목표는 90분 동안 통제할 수 있는 팀을 만드는 것이다. 선수들은 포지션 별로 임무를 정확히 파악해야 할 뿐 아니라 상황에 따른 전술 변화를 이해할 수 있어야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 현대축구에서는 선수들이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뛰어난 팀이다.” 그는 나름대로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대영이라는 별명과 비판을 받아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2002년 6월 월드컵에 모든 것이 맞추어져 있다고 하면서 그의 철학에 따라 한국축구 대표팀을 훈련시켰습니다. 그리고는 월드컵 4강에 이르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그래서 요사이 히딩크의 지도력에 대한 연구가 한창입니다.
히딩크 감독은 축구계에서 이미 많은 경력을 쌓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축구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자마자 그의 꿈을 펼친 바 있고 또한 이루었습니다. 반면에 저는 목회자로서의 경력을 별로 쌓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대구제일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하자마자 이 교회를 향한 꿈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1년의 시간이 지났고, 어느 정도 교회의 모습을 파악하고 있기에 이제 앞으로의 꿈을 제시하여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떤 꿈과 목표를 제시할 것인가? 여러분들은 매우 궁금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저와 여러분들은 우리의 주님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꿈과 비전 그 이상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꿈과 목표는 분명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 맞추어져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분명 꿈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그 분의 꿈은 매우 분명합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사도행전 1:8에 기록된 것처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땅끝까지 가서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 그 분의 꿈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꿈은 마태복음 28:18-20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두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기에 더욱 그 의미가 큽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이 곳에 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로 이 예배당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꿈과 목표는 꿋꿋하고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세계인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족속’이라는 표현을 통해 인종적인 면에서 어느 누구 빠짐없이 그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세상 끝날까지’라는 표현을 통해 시간적인 관점에서 예수님의 꿈은 영속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땅끝까지’라는 표현을 통해 지리적인 관점에서 지속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꿈과 목적은 사람과 연관되어서나, 시간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모두 지속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꿈과 목적에 우리 교회의 꿈과 목적도 맞추어져야 합니다. 이는 우리교회도 이 세상 마지막 날까지 존속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교회의 목회표어를 '천년의 역사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교회'라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천년이라는 단어는 숫자적인 의미도 있습니다만, 천년은 성경에서 긴 시간을 의미합니다. 영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그래도 사람들이 모이는 지상적인 존재이기에 나름대로 부족함이 있어 이 세상 끝까지 지속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지 않나 생각해서 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20의 표현을 보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육신적으로 우리와 항상 함께 있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행전 1:8에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증거하는 모습입니다.
이는 오래 된 구약의 전승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쉐키나(Shekinah הניכשׁ), 이는 하나님이 함께 거하심을 의미하는 단어였습니다. 그 하나님이 예수님의 모습으로 오늘날은 성령님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대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27장에 서술된 사도 바울의 경우도 그러했습니다.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압송되어 가다가 풍랑을 만나 파선할 때 하나님의 사자로 소개되는 성령님이 함께 하시지 않았습니까?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 그리고 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너에게 주노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사도 바울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선교의 일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꿈을 이루려 모여든 우리에게 역시 약속되어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가 천년을 이어가려면, 하나님의 임재 없이는 불가능 할 것입니다. 대구제일교회의 담임목사인 저는 여러분에게 제시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을 항상 느끼고 확인하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배당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은혜를 받아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항상 가르치면서 자신의 꿈과 목적을 이루려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20에 의하면 예수님은 자기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모든 것을 계속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8 자체도 제자들의 잘못된 관심에 대한 가르침으로 제시됩니다. 제자들은 언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미래가 불확실하고 고통스러운 이 세상을 하루 속히 벗어날 수 있을까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의 생각에 아랑곳하지 아니하시고, 성령이 임하고 그 성령이 능력을 주시면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잘못된 것에 대해 올바로 가르치시는 주님의 모습은 그의 꿈을 이루어나가게 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저의 바램이 있습니다. 우리교회 역시 천년을 이어나가기 위해 신앙적인 교육이 올바로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교육은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단지 교회 안에서의 생활만을 위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매일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또한 그 분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교육입니다. 하나님을 발견할 줄 알고, 이를 고백할 줄 알며, 인격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수준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좀더 좁혀서 주일에 이루어지는 교육에 대한 꿈이 있다면, 이는 매우 가족적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가족들이 손을 잡고 함께 교회에 나와 예배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가끔 가족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모습도 있어야 하겠고,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주간에는 온 가족이 함께 차를 타고 교회에 와서 어른들은 본당에서 아이들은 자기들의 예배실에서 예배드리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하겠지요. 우리 교회에 다양한 부속건물이 필요하지만, 교육관보다 더 시급한 일을 없을 것입니다. 현재 당회에서는 교육관을 건축하기로 결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했기에 제직회에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지는 대로 제직회가 이를 수용하고 교육관이 지어진다면, 좀더 알찬 교육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이 영적으로 함께 하시고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은 선교의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5:27에서 이방인이 영적으로 예루살렘에 진 빚을 물질적으로나마 갚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구제헌금을 모았습니다. 선교를 하는 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빚진 것을 갚는 일입니다. 우리교회가 천년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도 영적인 빚을 갚기 위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사도행전 20:35에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는 교회의 모습은 예수님이 활동하신 갈릴리 호수와도 같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헐몬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요단강으로 내려보내기에 항상 신선한 물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요단강의 물을 받기만 하는 사해는 더 이상 물을 내보낼 곳이 없습니다. 이는 결국 짠물로 변하여 죽음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선교는 바로 우리교회가 살 길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를 통해 예수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는 것은 우리교회가 가져야 할 사명입니다.
우리교회도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라오스에는 장기선 선교사님을 파견했고 지원해 오고 있습니다. 아직 준비단계에 머물러 있고 이제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여야 할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네팔에는 김정근 선교사님을 파송하였습니다. 비록 자비량 선교사이기에 많은 금액을 우리가 지원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책임을 지고 있는 선교사입니다. 이분은 아직 어학연수와 문화적응 단계에 있지만, 앞으로 큰 일을 하실 것으로 또한 여겨집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선교활동 단계에 들어가 있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면, 우리교회는 아직 선교에 대해서는 걸음마 단계에 있습니다. 아직은 부끄러운 단계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꿈과 뜻을 이루어 드리기에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선교에 있어 조심하여야 할 일도 많이 있습니다. 선교 지상주의의 환상에서 깨어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선교사를 파견하고 싶어도 또한 많은 것을 주고 싶어도 우리의 꿈과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오히려 교우들에게 상당한 피해가 가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선교에 있어서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선교지에 가서 물질적인 도움을 주고 오는 것으로 끝을 낸 경우가 없다고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는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하나님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끝까지 이루시고자 하는 지상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교를 위해서는 놀라운 지원을 해 주십니다.
예를 들면, 19세기 후반에 중국선교에 몸을 바쳤던 허드슨 테일러의 사역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셨기에 가능했었습니다. 한 번은 1887년 상해에 모여 중국내륙선교를 위해 100 명의 선교사를 보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지원하기 위하여 1년 안에 1만 파운드의 헌금을 요구했습니다. 그랬더니 1 년이 지난 후 하나님은 실제로 102 명의 선교사를 보내주셨고 1만1천 파운드의 헌금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이루어지자 이번에는 1000 명의 선교사를 보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5 년 후 1894년에 통계를 내보니 총 1153 명의 선교사가 새로 중국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선교의 꿈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한없는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는 이제 또 다른 한 곳에 눈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이는 무너진 저 북녘의 제단을 새로 세우는 일입니다. 저는 지난 연초부터 북한선교에 대한 꿈을 조금씩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길을 열어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난 달 청년4부를 통해 탈북자의 강연과 신앙간증을 듣게 하셨고 또한 며칠 전 저에게 한 분을 보내셔서 북한선교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선교를 하는 사람들이 얻는 축복이 있습니다. 이는 진취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은 받은 사람들의 시야가 점점 더 넓어져야 할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로, 그리고 사마리아로, 마지막으로는 땅끝까지 이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이러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대구를 중심으로 해서 활동하다가, 한국 전체를 향해 뛰는 사람이 되고, 또한 아시아를 마당 삼아 뛰는 자세가 필요하며, 결국 온 세계를 향하여 뛰는 사람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교육을 시켜 온 세계를 무대로 뛸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넘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