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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르앗으로 가자
    2002-07-02 11:02:04   read : 3540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렘8:18-22 // 2002년 6월 30일

    한달 동안 4800만 우리 민족을 들끓게 했던 월드컵의 열기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월드컵에 다섯 번이나 출전했지만 한번도 승리하지 못했던 우리나라가 첫승은 물론 16강의 벽을 넘어 4강에까지 오르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까? 그래서 월드컵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 모두는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이 기간만큼은 지역감정도 없었고 남자도 여자도 어린아이도 나이드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도 한 마음이 되어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필승 코리아를 외쳤습니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한 마음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까? 언제 우리가 이렇게 대한민국을 외쳤던 적이 있습니까? 언제 우리가 이렇게 열열하게 환호했던 적이 있습니까? 저는 그런면에서 이번 월드컵은 하나님께서 우리민족에게 주신 아름다운 선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생산성약화로 기업경쟁력이 둔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월드컵 금단현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은 집중이 되지 않고 일하는 사람은 일손이 잡히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저는 월드컵 이후 붉은 악마의 응원단 때문에 악마의 개념이 원수의 개념이 아니라 아주 친근하고 승리와 행운을 가져다 주는 개념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이것이 마귀의 궤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월드컵 이후 마귀의 이런 궤계가 역사하지 못하도록 중보의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번 월드컵은 우리에게 하나됨과 더불어 많은 기쁨과 승리와 환희를 경험하게 했습니다. 이런 환희와 기쁨은 그동안 억압되고 짓눌려 있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놓았습니다. 저는 이번 월드컵이 우리에게 준 최고의 축복은 바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가 이번 기회를 통하여 치유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과 복잡한 관계로 인하여 닫혀 있고 눌려 있던 마음들이 이번 월드컵을 통하여 풀어지게되었습니다. 환희의 눈물을 흘리면서 많은 아픔과 상처들이 치유되었습니다. 마음의 응어리들이 풀어졌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경험하는 승리와 감격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히딩크를 붙잡으려고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우리가 승리를 자축하고 기뻐해도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는 치유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열광하고 기뻐한다고 해서 죄책감의 문제가 해결됩니까? 인간의 본질적인 저주의 문제가 해결됩니까? 아닙니다. 인간의 진정한 아픔과 상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치유되는 것입니다. 축구는 우리를 잠시 기쁘게 해 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복음은 아닙니다. 축구는 축구일뿐이지 복음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영원한 치유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다시 한번 소개하고자 합니다.

    □ 선지자의 아픔= 하나님의 마음
    오늘 본문은 심판을 앞두고 있는 이스라엘백성들을 바라보면서 마음 아파 하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고뇌와 아픔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의 죄를 짓다가 앗수르에 의해 정복을 당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남왕국 유다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말씀 앞에 순종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사람들처럼 남왕국 유다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한 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죄는 무엇입니까?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신들을 숭배하였기 때문입니다. 19절 하반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르시기를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케하였는고 하시니"(19절하)
    그들은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을 보았으면서도 계속하여 생명이 없는 것들을 우상으로 숭배하여 왔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그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은 없다. 우리는 안전하다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공격해 오는 바벨론의 군대의 말발굽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이제 곧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예루살렘 성은 무너지고 성전은 불에 태워지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 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로로 끌려간 그들이 먼 이국 땅에서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19절 상반절을 보겠습니다. " 딸 내 백성이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19절상)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는 벌써 바벨론 땅에서 고통당할 민족의 한숨과 절규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너무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백성이 당할 아픔과 고통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18절)
    수 많은 거북이들이 태양이 강하게 내리쬐는 사막을 향해 기어가고 있는 다큐멘타리를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바닷가를 향하여 기어가야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닷가와는 정반대 방향인 사막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기어가는 주변에는 벌써 작렬하는 뜨거운 태양열 아래서 말라 죽은 거북이들과 그들의 뼈들이 여기 저기 뒹굴고 있었습니다. 또 어떤 거북이는 작렬하는 태양을 이기지 못하여 뒤집어진채로 발버둥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를 뚫고 많은 거북이들이 낑낑 거리며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자신도 머지 않아 죽게 되고 곧 마른 뼈만 남게 된 다는 사실을 모른채 그들은 잘못된 방향을 향하여 기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 거북이들은 방향감각을 잃고 죽음을 향해 바닷가가 아닌 사막을 향하여 기어가고 있을까요? 태평양의 어느 무인도 섬에서 핵실험이 있었는데 이 실험 이후에 거북이들은 방사능에 오염되어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해변가로 나와서 알을 낳은 후 다시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반대방향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도 방향이 중요합니다. 열심보다는 방향이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았다 할지라도 그 방향이 잘못되어 있으면 그 열심은 도리어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정말 열심히 인생을 사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방향이 잘못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인생의 방향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방향감각을 상실한채 바닷가가 아닌 사막을 향하여 낑낑거리며 기어가는 거북이들을 보면서
    많은 시청자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야! 거북이들아 방향을 좀 틀어라! 조금만이라도 틀어라 그러면 너희들은 살 수 있다. 지금 너희들이 가는 길은 바다가 아니야 물 한방울도 없는 사막이란 말이야! 보아라! 얼마나 많은 거북이들이 주변에 죽어 있는지를.....저 뼈들이 보이지 않니? 그러니 어서 빨리 방향을 바꾸란 말이야! 많은 시청자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소리쳤지만 방향감각을 상실한 거북이는 들리는지 마는지 미련하게 뜨거운 사막의 길을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혼이 없는 거북이들이 방향감각을 상실한채 바다가 아닌 죽음의 사막을 향하여 기어가는 것만 보아도 안타까운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성이 무너지고 성전은 불에 태워지고 포로로 잡혀가 먼 이국 땅에서 고통을 받게 되었는데 선지자의 심정이 편하겠습니까?
    그래서 예레미야는 슬퍼했습니다. 슬퍼했다는 말은 울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번뇌로 가득찼습니다. 다시 한번 18절을 보겠습니다.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
    그리고 계속하여 21절을 보겠습니다.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21절)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들이 받을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며 마음이 상하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슬퍼했습니다. '너희들 그럴줄 알았어. 내가 뭐라고 했어 그런데 왜 내 말은 듣지 않고 거짓선지자들의 말을 들었지? 내가 말할 때 들었으면 이런 일이 생겨나지 않을 텐데 한번 당해보아라....'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자기가 예언한대로 될 것이니까? 시원하잖아요? 이제야 말로 사람들이 자기를 참 선지자로 인정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온 거잖아요. 만일 자기가 예언한대로 되지 않고 거짓 선지자들이 말한 대로 심판이 없이 지나간다면 자기는 이제 거짓 선지자로 낙인을 찍히게 될 것이고 아마 백성들에게 돌에 맞아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적인 감정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자존심 보다는 그들이 주님 안에서 치유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도리어 그들이 받을 심판때문에 슬퍼했습니다. 마음이 상했습니다. 마음이 번뇌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곧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방향감각을 상실한채 죽음의 사막을 향하여 기어가던 거북이들처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모른채 불타는 지옥을 향하여 달려가는 영혼들이 이 땅에는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방향을 상실한채 세상의 넓은 길을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들을 바라보는 당신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이 세상 사람들을 향한 당신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받을 심판과 고통을 생각하며 찢어지는 고통 속에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습니까?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예레미야에게는 있었습니다.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도"(18절)
    정말 예레미야는 주님의 마음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주님의 아픔이 무엇인지, 주님의 눈물이 무엇인지를 알았던 사람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이해해 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아무리 복음을 거절하고 핍박을 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나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을지라도 그들을 정죄하지 맙시다. 그들을 미워하지 맙시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그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이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 길르앗으로 가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받을 고통과 아픔을 보며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아픔은 그들이 길르앗을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범죄하였다는 사실보다는 그들이 길르앗을 찾지 아니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더 슬퍼하며 괴로워했던 것입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22절)

    그러면 길르앗은 어떤 곳입니까?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전에 차지 했던 요단 동쪽의 땅을 말합니다. 때로는 세 지파가 차지했던 요단 동편의 땅 전체를 말하기도 하고 일부분을 말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르앗을 찾아야만 했을까요? 아니 오늘 저와 여러분이 왜 길르앗으로 가야만 했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유명한 유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유명한 유향의 생산지였습니다. 유향은 향료의 일종으로서 성경에 보면 두로와 애굽에 수출되었고 특별히 길르앗에서 생산되는 유향은 유명한 약재로 사용되었습니다. 유향은 향나무의 옆구리에 상하게 하여 흘러 나오는 것을 채취한 것인데 그 당시 유향은 질병을 치유하는데 가장 비싼 최고의 명약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 유향은 피부를 아름답게 해 주고 향기를 나게 하는 화장품의 원료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르앗의 유향(향료)은 바로 우리 예수님을 말합니다. 길르앗의 향료는 우리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길르앗의 향료가 되시는 예수님 앞에 나아오기만 하면 치유를 받고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보혈은 어떤 아픔과 상처까지라도 다 치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보다 더 명약은 없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안타까움이 뭡니까? 너희들이 비록 우상 앞에 절하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고 많은 상처가 있다고 할지라도 길르앗의 향료가 되시는 주님 앞에 나아오기만 하면 될터인데....왜 길르앗으로 가지 않느냐? 이것이 선지자의 안타까움이었습니다. 그래서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하냐"라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길르앗의 향료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의 상처를 완전하게 치유하시는 약
    이십니다. 최고의 약이 되십니다. 뿐만 아니라 치유받은 그 상처에서 도리어 향기가 나
    게 하시는 분입니다. 단순히 겨우 상처만 아물고 치유받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 상
    처에서 향기가 나게하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치유가 이루어 집니다. 저는 이것을 가르켜
    '넘치는 치유'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길르앗에는 의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22절)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의사가 있습니다. 여기서 의사는 바로 만병의 대의사가 되시는 예수님을 말합니다. 의사가 그곳에 계시니 길르앗으로 가라고 말합니다.
    의사는 병을 치료하는 자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체질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이 세상의 의사는 오진할 수도 있고 병명을 알아 내지 못할때도 있고 수술을 하다가도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병의 대 의사가 되시는 주님 앞에서는 못고칠 질병이 없습니다. 어떠한 영적인 병도, 정신적인 병도, 육체적인 병도 완전하게 고치시는 의사중의 의사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길르앗의 의사에게 가라는 말은 의사중의 의사이신 우리 하나님께로 달려 나오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병이 드셨습니까? 죄책감이 있습니까? 길르앗의 의사가 되시는 주님을 부둥켜 안으십시오. 주님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향유를 바르십시오.
    여러분의 상처는 치유되어야 합니다. 사실 상처가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그러기에 툭하면 깨어지고 금가고 긁힙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많은 상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를 그대로 놔두면 안됩니다. 반드시 치료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상처로 인하여 피가 나고 곪아 터지고 살이 썩어져 가는데도 사람들은 그 상처를 치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 방치하면 사단으로 하여금 우리를 공격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일을 하게 됩니다. 또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또 상처는 나 자신을 낙심시키고 드디어는 절망시킵니다. 마지막으로 상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능력있게 살지 못하도록 합니다. 승리의 삶을 살지 못하 도록 하는 큰 요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처를 치유받아야 합니다.

    여기 한 여인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여인은 한때 남편과 두 아이를 버리고 가출해서 춤바람에 휘말린 적이 있었습니다. 수개월 후에 다시 가정에 돌아와 남편의 권유에 따라 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첫날 목사님의 설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설교 요지는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여인의 마음은 세상에 자기 같은 큰 죄인이 없을 것 같은 생각으로 고통을 겪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다음 예배에서도 목사님은 죄짓지 말라는 강경한 표현에 이 여인이 더욱 갈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어느 날 자기가 어쩌다가 이런 큰 죄인이 되었을까를 생각하다가 자기를 타락으로 몰고 간 남자의 유혹적인 말 한마디가 생각났습니다. 그 남자의 유혹이 자기 자신의 미끈하게 잘 생긴 다리 칭찬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다리를 저주하기 시작합니다.
    어린아이가 집에서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부모로부터 벌을 받은 후에야 안심하듯이 인간이 죄책감을 느낄 때도 거기에 상응한 벌을 받고자 하는 이상한 심리가 인간의 마음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이 자신을 엄청난 죄악의 소굴로 빠뜨린 첫 원인을 자신의 다리가 제공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잘못된 행동의 책임을 다리에게 전가하는 듯한 미숙한 분노가 다리에게 쏟아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다리를 저주하면서 두들기기를 십여일 동안 했을 때, 어느 날 새벽 이 여인은 하반신이 마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날부터 이 여인은 병원과 한의원 치료를 두 달 이상 계속 받았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이 여인이 하는 이야기의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난 치유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어느 목사님은 이 여인이 자신의 다리 때문에 죄를 지었다는 심한 죄책감으로 인해 하반신이 마비가 왔다고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는데 그것은 이 여인으로 하여금 용서함을 받도록 인도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목사님은 먼저 이 여인에게 사랑의 하나님과 용서의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인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죄책감을 다 털어놓고 고백하며 회개하게 했고, 목사님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용서와 사죄의 기도를 합니다. 물론 이 치유작업은 3주일 동안 연속으로 행해진 일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여인으로 하여금 여인의 삶에서 흐트러진 모든 관계를 정리하도록 도와주었다. 놀라웁게도 3주일이 지난 어느 날부터 여인의 다리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서서히 걷게 되어 지금은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길르앗의 향료가 되시고 길르앗의 의사가 되시는 주님 앞에 나오면 어떤 아픔과 상처도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길르앗으로 가기만 하면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래서 너무나 분명하게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왜 우리가 길르앗으로 가야 하는가?
    세 번째 이유는 , 길르앗에 도피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도피성은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피하여 숨어 지내는 곳입니다. 곤경에 빠진 사람들이 와서 지내는 곳입니다. 누구도 그 도피성에 들어가면 제사장의 허락없이 그 안에 들어올 수 도 없고 사람을 헤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안전한 곳이 바 도피처입니다.
    야곱이 장인 라반을 피해 달아았을 때나(창31:21-55),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쫓겼을 때나(삼상13:7),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겼을 때(삼하17:22) 그들 모두는 길르앗으로 피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길르앗은 죽음의 절박한 상황속에 있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고 생명을 확실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피난처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길르앗의 도피처입니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처를 갖고 있어도 괜찮습니다. 보기 끔찍하고 징그러울 정도로 절망적인 상처를 안고 있어도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피난처가 되시는 우리 하나님께로 달려 가기만 하면 우리는 그 곳에서 상처를 완벽하게 치유받습니다. 그뿐만아니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편안히 쉴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길르앗에는 향료가 되는 우리 하나님이 계십니다.
    길르앗에는 의사가 되시는 우리 하나님이 계십니다.
    길르앗에는 피난처가 되시는 우리 하나님이 계십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상한 마음 그대로 가지고 나아오라! 찢겨진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내게로 나아오라! 내가 너희를 치유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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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나를 찾으면 만나리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어디로 가시렵니까?
    역전의 은혜(2)
    역전의 은혜
    누가 당신을 가장 사랑합니까?
    가난한 자의 복
    당신은 제자입니까?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라
    열등감을 극복하라.
    쓴 뿌리를 제거하라!
    길르앗으로 가자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의 확신(2)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의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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